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루드링 님의 {악마를 믿으세요?}는 악마랑 계약하는 건 위험한 행동이라는 걸 교훈으로 삼고자 했다고 밝힌 글인데,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전설, 고전소설부터 시작해 이미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악마와 계약하는 위험에 대한 경고를 하는 이야기들은 보통 그 과정에서 펼쳐지는 인간성의 추악함이나, 주인공의 기지나, 인간과 악마의 엎치락뒤치락하는 머리싸움 등이 미덕인데, 교훈을 이야기와 별도로 삽입했을 뿐, 그런 이야기가 갖는 미덕을 체현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누가 왜 아이를 납치했는지 등이 나오지 않았고, 아이의 소원이나 행동도 납치당한 아이의 모습으로 보기 어려워 갑자기 나온 납치 이야기가 뜬금없었던 등 이야기 안에서의 개연성과 당위성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글을 써 나가면서 이 인물이 이 상황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느끼나? 일이 이렇게 풀려도 자연스러운가? 왜? 라는 질문을 계속 해서 이야기의 전개와 인물의 심리나 행동이 당위성을 가지도록 해보시기 바랍니다.


스아 님의 {자유의지에 대해서}는 자유의지란 것을 너무 단순하게 보았거나 잘못 사용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작가가 내세운 주제와, 독자가 읽을 수 있는 주제 사이에 차이가 생긴 것 같은데요. 글 자체로 보자면 자유의지에 대한 글 보다는 기계가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작은 면모에 대한 글로 보였습니다.
단편이긴 하지만, 또는 단편이기 때문에 더욱 많이 성찰하고 다각도로 생각해서 압축적인 일화를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공포영화를 보고 심장마비에 걸려서 죽는다는 것 등 중간 사건의 개연성에서도 문제가 있으니 어떤 심리를 대표적으로 나타내주는 압축적인 일화를 더 찾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다른 유명한 작품이 떠오르는데, 이는 작품의 독창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니, 좀 더 자기만의 이야기를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멜 님의 {최고의 주심들}은 시의성도 있었고, 재미도 있었는데, 결말이 어떤 식으로 날지에 대한 독자의 예측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감동과 재치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은 유지했는데 너무 정통파 담론이라서 심심해진 면이 있습니다.


니그라토 님의 {샴 바이러스}는 니그라토 님의 글에 대해 반복해서 이야기하게 되는 면이 다시 보였습니다. 소설은 소재와 주제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전개가 필요합니다. 이번 글은 주제도 모호해서, 더욱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알기 어려웠는데요. 니그라토 님의 글은 겨울나무 같습니다. 앙상한 가지만 있어요. 잎을 틔우고, 열매를 맺어 어떤 나무인지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글을 쓰는 이는 늘 독자보다 쓴 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중 일부를 표현하면서도 머릿속에 있는 것과 연결 지어 더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더 과감하게 이야기들을 풀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유진 님의 {스토퍼 M}은 한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다가 결말에서 갑자기 시점을 바꾸었는데요. 화자이자 주인공으로 그 사람에 대한 것을 독자에게 알려준 후에 끝은 그 사람이 당하고 난 이후 진실을 보여주는 걸로 시점이 완전히 바뀌어버리는데 이건 독자에게 공정하지 않습니다.
왼쪽 눈을 가려놓고 오른쪽 눈으로만 보게 하다가, 왼쪽 눈을 가린 가리개를 치우는 격이랄까요. 양쪽 눈으로 다 보고 있다는 '착각'이라도 심어주는 것이 좁게는 추리물 작가가, 넓게는 작가가 유념해야 할 테크닉입니다.
작가에게 '사기당했다' 혹은 작가가 이 이야기를 '조작'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야기는 생명을 잃습니다. 단편이라서 그 느낌이 덜하기는 했지만, 반전이 있는 글을 쓸 때는, 특히 유념해주시기 바랍니다.


DOSKHARAAS 님의 {괴수가 나타났다.}는 이런저런 장르 코드들을 나름 적당히 섞어서 재미있게 짜맞췄습니다. 큰 욕심을 부린 글은 아니고 그만큼의 재미를 주었습니다.


일리야 님의 {미수사}는 일단 제목의 의미를 알 수 없었습니다. 한자라면 한자라도 써주었다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일단 기본적인 줄거리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아 사건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파악하려고 노력한 것은, 비평단이기 때문입니다. 일반 독자들에게 이렇게 사건의 개요 자체가 들어오지 않는 글을 읽으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숨겨진 사연이나 한두 가지를 미결로 남겨 독자에게 추측할 여지를 주는 열린 결말로 가는 것은 좋으나 전반적으로 상황 자체가 너무 들어오지 않습니다. 주인공 여자와 뒤처리를 해주는 남자도 뭔가 더 사연이 있는 듯 한데, 역시 아무 설명이 없었고요. 지나치게 설명조가 아니더라도 이야기를 더 길게 쓰면서 살을 붙인다면 더 재밌는 이야기가 될 듯 합니다.
이 글도 시점이 들쭉날쭉한데, 중점이 사건을 일으킨 쪽에 있는 거라면 그 사람이 행동한 후 수습하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걸 보여주고 그 외의 것에서 반전을 주었어야 했습니다. 끝에 몇 마디 대화로 모든 걸 다 풀어버리는데, 그걸로도 전체 상이 확연하지 않다는 건 사건 자체가 개연성이 없다는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진짜로 벌어진 일을 글을 쓴 이 자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이 있게 구성해놨었는지 사건 자체를 재구성해보고, 어느 만큼 조각을 보여줘야 나머지 퍼즐이 보이는지를 거꾸로 생각해보시길 권합니다.


조나단 님의 {사막에서}는 제목이 조금 심심했지만 무난하게 잘 쓴 글이었습니다. 다만 노인이 물을 얻으려고 사람을 끌어들였다는 게 반전인데, 정보가 편파적이라 반전을 위한 반전이 되었습니다.
다른 글에서도 잠시 나왔던 이야기이지만, 한 사람 시점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으면 결말까지 그 시점으로 가능하도록 이끌어 가야지, 결말에서 반전이라며 확 바꿔버리는 건 살짝 반칙입니다.

{출장}은 섹스 머신에 대한 이야기인데, 소재만 있었습니다. 아이디어 자체가 누구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처음 쓰는 소재가 아닌 이상, 소재만 있는 소설은 무리가 있습니다.


clancypark님의 {스캔들}은 재밌었는데, 대부분이 독자들이 안기부가 나왔을 때 간첩으로 몰릴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결말까지 상식적으로 건전하게 끝나서 아쉽습니다.


튠업 님의 {어느 게임 마니아의 일상생활}은 아는 사람은 알 만한 상황을 가지고 쓴 글인데, 재치가 2% 부족했습니다. 더 압축해서 재미있는 부분만 살렸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팍타 님의 {자동응답}은 너무 추상적이었습니다. 소설의 설득력과 재미는 많은 부분, 독자를 얼마나 몰입하고 감정이입하게 할 수 있는가에 좌우되는데 보통 그건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배경 묘사와 개연성 있는 상황 구성에서 나옵니다. 아무리 상황이 달라도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란 비슷한 부분이 있게 마련이고, 그 점을 잡는 게 소설입니다. 그냥 감정만 늘어놓는 건 독백입니다. 그 점에 유의하셔서 좀 더 공감할 만한 상황을 잡으면서 감정 묘사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qui-gon 님의 {룸펜 헤드}는 도입부가 필요 이상으로 길었습니다. 인물들 이야기가 계속 나와 인물들간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룸펜 헤드라는 우주선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우주선 자체에 대한 사연을 보강했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지막 룸펜 헤드의 반응이 자연스럽게 글에 녹고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여기 타 있는 사람들 사연도 중요하지만, 어디까지나 룸펜 헤드 라는 우주선 부속 에피소드로 강력하게 묶어줬어야 하는데 그 점이 아쉽습니다.
룸펜 헤드가 메인인데도 큰 사건들이 터졌을 때 상황이 명료하게 들어오게 서술하지 못했습니다. 나무를 그리느라 숲의 지형이 가려진 듯 합니다. 전체상을 먼저 확보해주세요.

{신본격 추리 역사물 : 토끼 간 실종사건}은 재미있었습니다. 문장들도 읽는 맛 나게 감칠맛 나게 썼고. 동화 패러디도 맛깔스러웠습니다.


dcdc님의 {지성수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는 공교롭게도 요즘 자살에 얽힌 사건들이 많아 시사 비판적인 글로 읽히게 된 면도 있었고요. 다큐멘터리 찍는 형식에서 오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다만 지성수가 음악을 하게 되는 이유가, 이 사람을 영웅이라고 화자가 말하는 이유일 텐데 죽음 후 부활에 따른 온갖 추악한 현상들에 가려서 빛이 바랜 점이 아쉽습니다.

{대통령 항문에 사보타지}는 조금 지저분하지만 재미있었습니다.


qui-gon 님의 {신본격 추리 역사물 : 토끼 간 실종사건}을 우수작으로, dcdc님의 {지성수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가작으로 선정합니다.
거울 독자우수단편에 선정된 분께는 책을 한 권씩 보내드립니다. 두 분은 ltpimento @ paran.com 으로 주소, 성함, 전화번호(택배 발송시 필요)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모두 건필하세요.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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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ui-gon 08.10.06 12:59 댓글 수정 삭제
    지적 감사합니다. 룸펜 헤드는 사실, 우주선을 포함한 등장 인물간의 관계 형성에 중점을 둔 글인데 사실 글의 응집력이 조금 떨어진다는 생각은 있었습니다. 조언주신 부분들을 염두에 두고 손을 대봐야 겠네요. 좋은 충고,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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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c 08.10.07 17:59 댓글 수정 삭제
    선정 감사합니다. 소설을 쓸 당시는 막연하게 신자유주의 비판같은 추상적 상황만을 -그것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염두에 두었었는데 서글프게도 현실이 소설을 추월해버리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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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아 08.10.09 19:05 댓글 수정 삭제
    지적감사합니다. 좀더 열심히 써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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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팍타 08.10.18 20:42 댓글 수정 삭제
    지적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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