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일정 수준 이상의 글들이 많이 보인 한 달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글을 써 오신 것 같은 유려한 필력, 오래 고민해 온 것 같은 주제의식 등, 장점이 두드러지는 글을 많이 볼 수 있어서 기쁜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민하고 단련한 부분 외에 소홀해진 부분, 글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부분이 두드러지기도 해 아쉬운 마음이 드는 한 달이었습니다. 하나의 단편이 완성된 글이 되기까지, 치명적일 수 있는 단점이 없는지 퇴고하는 기간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굵직한 부분에 빠짐없이 신경을 쓰면 분명 처음보다 더 나은 글, 궁극적으로 자신이 쓰고자 했던 글의 원형에 가까운 글이 태어나리라 믿습니다.

104호에서는 우수작 없이 가작으로 조나단 님의 ‘곶자왈에서’를 선정하였습니다. 더욱 건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12월 16일부터 1월 15일 자정까지 올라온 총 15편의 글 중 심사대상이 된 글은 11편이었습니다. 심사대상에서 제외된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분량미달: 육개산성과 전자레인지궁(김진영, 원고지23매), 세 번째 기적(너구리맛우동, 원고지60매)
2) 해외번역작: 루엘라 밀러(킨스 프리먼 작, 구자언 옮김), 새엄마(루시 클리포드 작, 구자언 옮김)


기억을 전이시키는 금색 시계 by 목이긴기린그림
A: SF나 판타지를 쓰고 싶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한 번쯤은 소재로 잡고 싶은 것이 ‘시간여행’이 아닐까요. 시간여행에 관한 수많은 명작들을 읽으면서 그런 마음이 더 커지기도 하지요.
한 번쯤 써보고 싶은 소재, 누구나 많이 써 본 소재를 다룰 때는 누차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자신만의 독특함이 배어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설정에 독특함을 더하든지, 혹은 소설 자체로서의 완성도와 깊이를 더하는 것이지요. 코니 윌리스의 옥스퍼드 시리즈는 설정상으로는 평범하지만, 그 안에서 따뜻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휴고 상과 네뷸러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고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였지요. 대가와 비교하는 것은 가혹할지 모르겠으나, 이 글에서는 주인공을 ‘갑’과 ‘을’로 단순화하고 둘의 대화도 비슷하게 처리할 정도로 설정에 치중하면서도 독자가 설정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자신들이 어찌 할 수 없는 ‘인류 99%의 멸망’이라는 상황 앞에서 시간여행이 가능한 두 명의 연인들의 에피소드는, 얼마나 많은 상상력을 자극하는지요. 그런데 둘의 첫만남도 그 뒤의 에피소드도 지나치게 밋밋하고, 심지어 ‘을’의 행동은 독자가 이해하기조차 어렵네요. 3인칭 시점이면서도 ‘갑’에 밀착된 서술 때문에 ‘을’이 도대체 뭘 하려고 했었고 실제 뭘 한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전작 ‘화장터’에서 보았던 짧고 강렬했던 문장이나 ‘귀신대면’에서 보였던 생생한 인물들도 사라졌습니다. ‘잠자리 인간’에서 보이던 작가만 알고 독자는 모르는 상황 설명이 이어지니, 작가가 하고자 한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조차 모호해질 밖에요.

B: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글은 주로 시간의 패러독스에 관한 설정을 기반으로 벌어지는 사건에 주로 초점을 두게 됩니다. 정통 SF로는 코니 윌리스의 ‘개는 말할 것도 없고’가, 보다 대중적인 소설로는 보다 최근에 발표된 ‘시간여행자의 아내’가 이에 해당하지요. 성공적이라고 평가되는 두 글의 공통점은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중심사건과 이어가는 탄탄한 구성입니다. 이 글의 경우에는 시계를 이용하여 30일간의 기억만을 보냄으로서 기존의 시간여행과는 조금 차별되는 설정을 사용하고자 의도하였습니다. 많은 부분을 설정에서 할애하고 있지만, 그 분량에 비해 작가가 설정한 시간여행이 정확히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쉬운 점입니다. 또한 갑과 을 두 사람 사이에도 시간여행과 관련되는 뚜렷한 사건은 보이지 않은 점이 아쉽습니다. 인류의 멸망을 이미 보았다거나, 공원에서 시간여행을 사용하여 만나는 장면 등에서 시간여행 설정을 사용하기는 하였지만, 로맨스를 그렸다고 하기엔 두 사람 사이가 밋밋하고 인류 멸망이라는 참사를 대면하는 느낌도 지나치게 담담해서 자꾸 고개가 갸웃거려지는군요. 시간여행이라는 설정 속에서 뚜렷하게 손에 잡히는 사건이나 인물들의 치밀한 심리묘사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글입니다.


마왕의 태양 아래 by 솔리테어
A: 단편의 분량에 비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면서도 인물들의 개성이 생생하게 살아나 있습니다. 문장이 굵고 힘이 있으며, 대사들도 때로 과하다 싶을 정도로 무게가 있습니다. 기사와 아쳐와 마법사, 마왕과 용사 등 전통 중세 판타지로 분류될 세계관 아래에 몰락한 용사의 후계자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떠나는 이야기. 이 흔한 이야기 안에 작가의 개성이 충분히 잘 녹아났네요. 이 글은 평가단에서 마지막까지 당선작으로 할 것인지 고민한 글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 글이 완성된 단편 하나로 읽히는 것이 아니라 장편에서 일부분을 뽑아낸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치명적인 문제로 작용합니다. 문장의 서술이 장편의 호흡이라서만은 아닙니다. 주인공 ‘갈라드’가 그토록 집착하는 아버지와 동료들의 일이 이 글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왜 우도르와 아이라는 용사 아도르를 배신하고 아도르만이 쥬나와 함께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는지, 배신자들은 봉인당한 마법의 힘을 쥬나는 그대로 가지고 있을 수 있었는지. 그렇게 긴 분량이 필요하지도 않은 이야기가 글에서 숨겨져 있으니 주인공의 분노에 독자는 동조할 수 없고, 우도르 부부의 아이에게 그토록 주인공이 동요하는 이유도 알 수 없지요.
자주 말씀드리는 이야기지만 장편의 일부분을 뽑아낸다고 해서 단편이 되지는 않습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다시 냉철하게 읽어 보시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보시면 훨씬 좋은 글로 완성되리라 생각합니다.

B: 갈라드의 복수에 얽힌 사연이 끝까지 명확하지 않은 것이 이 글의 치명적인 단점으로 보입니다. 갈라드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칼을 닦고, 후에는 (독자로서는 대체 누구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의문의) 자파디를 죽이고 두 마법사를 찾아가는 여정을 걸어갑니다. 그런데 이 결연한 여정에 독자가 함께 할 자리가 너무 적지는 않은지요? 독자들은 주인공의 시선으로 사건을 이해하고 보게 될 때, 감정이입을 하면서 사건을 흥미롭게 쫓아갑니다. 그런데 이 글은 독자에게 그럴 여지를 거의 주지 않습니다. 그 점이 매우 아쉽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마법사, 용사의 복수, 용사와 로맨스가 펼칠 것 같은 소녀의 등장, 숨겨진 사연으로 인해 힘을 봉인하고 살아가는 마법사 등 판타지의 매력적인 기본요소를 적재적소에 잘 배치하여 설정의 묘미를 잘 살린 글입니다. 인물들의 자연스러운 대화나 인생의 의미를 복수에 두고자 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호소력 있게 묘사한 점 역시 인상이 깊습니다. 서사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글이어서 단편보다는 장편에서 훨씬 훌륭하게 기량을 발휘할 필력이 아닌가 합니다.


강철괴물 by 솔리테어
A: 두 작품 모두에서 문장의 힘을 느낍니다. 오래 문장 훈련을 해 오고 써 온 문장이며 남성적인 힘이 강하게 실려 있습니다. 혹 기성 출판 작가가 아니실까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다만 단편보다는 장편을 많이 써 오신 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짧은 단편 안에 적절히 글의 내용과 설정을 감추고 드러내는 조절이 좀 더 필요할 것 같군요. 대사와 서술이 구별되지 않고 쓰여 서사시 같은 느낌을 주는데, 전체 흐름이 잘 잡히지 않아 안타깝군요. ‘왕’과 같은 보통명사보다도 고유명사를 적절히 사용하시는 것이 독자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기에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요.

B: 이번 달에 같이 올리신 ‘마왕의 태양 아래’와 마찬가지로 서사적인 힘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두 글을 읽어보았을 때는 자신의 글에 대한 확실한 기풍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왕의 태양 아래’와 비교해 본다면 사건보다 서사에 치중된 글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사건을 파악하기 쉽지 않은 것은 비슷합니다. ‘왕’이 너무 많이 등장하고, 시점이 바뀌어서 누가 누구인지, 사건의 흐름이 어떻게 되는지 종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힘차고 서사적인 묘사 속에서 심리적 흐름을 잘 표현한 글입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단편이라는 그릇에 담기엔 설정과 서사가 방대해서 장편에 어울리는 기풍입니다.


트라우-마트 by 밤조심
A: ‘스마트 좀비‘나 ’아마존 바이러스‘ 같은 전작들과 자꾸 비교하게 되는군요.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여전합니다만, 인간의 심리를 다루면서 조금 가벼웠던 것은 아닌지요. 웹툰 등에서도 심리학을 다룬 작품들이 등장합니다만, 참고 서적을 많이 읽고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는 등, 진지한 자세로 접근하고 있지요. 하지만 이 글에서는 트라우마를 ’정신적 문신 같은 거다. 문신은 실제보다 강하게 꾸며주는 효과가 있지‘ 라는 대사와 함께 인물들의 심리는 지나치게 가볍게 다루고 있네요. 혹시 작가분이 말하고 싶으셨던 것은 ’트라우마‘라는 것이 본래의 심리학적 의미가 아니라 너무 가볍게 다루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신적 외상‘이라는 의미처럼 원래 트라우마란 당사자에게는 벗어나려 해도 벗어나기 힘든 무거운 상처인데도, 요즘은 ’상처받았다‘는 말 대신에 가볍게 ’트라우마가 됐다‘고 쓰는 사람들이 보이니 말입니다.
마지막 장면까지도 뭔가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를 생생히 만들어내는 작가분의 필력이 살아 있는 점은 반가웠습니다.

B: 흥미롭게 읽은 글이지만, 주제를 찾기 힘들어서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게 되는 글이었습니다. 전체 글은 인간의 트라우마가 어떻게 생기는 것인가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두었지만, 결말은 아내의 머리에서 트라우마가 주입된 흔적을 찾고 싶은 욕망으로 끝이 나서 전반부와 후반부의 초점이 어긋난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트라우마트를 경험한 이야기에서 아내의 트라우마에 대한 부분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트라우마에 대한 단순한 대화 이상으로 설득력 있게 그려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그러한 부분에서 아내의 트라우마에 대한 주인공의 집착이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면 결말이 보다 힘을 얻었겠지요. 그러나 트라우마에 대한 해석이 매우 돋보이는 글입니다. 임상에서 트라우마는 이 글에서 작가가 제시하는 개나 송충이 등 단순한 대상에 대한 공포보다 훨씬 더 복합적이고 복잡한 개념이지만, 트라우마가 마치 가벼운 유행처럼 다뤄지는 세태에 대한 풍자로 썩 잘 어울리는 글인 것 같습니다. 트라우마를 정신적인 문신으로 해석한 점이나 트라우마트라는 공간에서 경험하는 주인공의 이색적인 경험 등이 창의적이고 흥미롭게 그려진 것이 인상이 깊은 글입니다.


모든 것의 기적 by 윤소아
A: 전작 ‘재귀공방’과 마찬가지로 상징적이고 깊이 있는 소재를 다루시는 작가의 개성이 잘 녹아났습니다. 우주의 인간관계 속에서 개인이 휩쓸려가는 상황과 그 한계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만 비극, 복수, 원한 등에 사로잡힌 인간들이 아니라 오히려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있는 ‘우주’에 초점을 맞춘 시점이 독특합니다.
실제 미국의 공격에 부모를 잃은 안사르와, 미국이 마을을 공격한 원인이었던 호삼, 안사르의 마을을 공격했지만 안사르의 은인이기도 한 에드워드 세 사람의 관계는 그것만으로도 현대의 비극이지요. 하지만 작가는 이들이 아니라 세계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 ‘우주’에 중심을 두고, 우주가 그들을 보이지 않는 손으로 움직여 왔다고 이야기합니다. 광활한 우주의 구성원에 지나지 않는 인간의 살의가 우주 자체의 죽음을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 독특하지요. 작가의 인간관, 철학을 생각하게 됩니다.

B: ‘우주’라는 초현실적인 존재를 빌어 인간의 삶에 대해 성찰하고 자신의 철학을 풀어놓은 것이 돋보입니다. 전 우주적인 흐름에 비하면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삶, 역사 속에서 맞닥뜨리는 개인의 비극이나 나약함을 주인공의 인생행로를 통해 보여줌으로서 ‘우주 vs. 개인’을 썩 잘 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철학을 우주를 통해 펼치는 화자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개인의 비극적인 인생이 다소 인위적으로 배치된 요소 이상을 느끼기 힘든 점은 아쉽다 하겠습니다. 광활한 우주의 입장에서는 촉수를 뻗어 잠시 연결되는 수많은 존재 중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그 사소한 존재들의 만남 속에서 벌어지는 비극들이 사실은 우주를 전율 시킬 만한 살의를 지녔다는 것이 바로 이 글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피로 얼룩진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그로 인해 벌어지는 호삼과 안사르의 치열함 삶이 우주를 죽음에 이르게 하기보다 오히려 비극을 거치며 살아남는 삶의 의지로서 우주를 움직이는 원동력에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작가의 철학과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대치하면서, 인간의 삶에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외면해 버린 느낌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작가 내면의 갈등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루고자하는 주제를 명확히 알고 있고 또한 그것을 이야기 속에서 표현하는 방식에 능숙한 점은 높이 평가할 부분입니다.


쥐들 by 장피엘
A: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텅 빈 집들이 있습니다. 똑같은 얼굴들의 아이들이 공중곡예처럼 뛰어다니며 위험한 장난을 하는데 말리는 어른은 없습니다. 식당의 음식은 맛이 없고, 처음 보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냉장고가 침입자에 의해 털리는가 하면, 살인과 강간이 눈 앞에서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 기묘한 사건에 접한 ‘사내’는 도대체 이 마을은 무엇인지, 자신이 보는 이 광경이 의아해 할 뿐, 사실을 풀어 내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3인칭 시점으로 사내에게 밀착해 있는 것이 마치 1인칭을 연상시킬 정도이지만 사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행동은 독자에게 다소 낯섭니다. 빈집에 들어가 살라는 말에 그렇게 하는 행동이나, 살인 강간을 목격하고도 신고하기는 커녕 피해자의 시체를 찾아다닙니다. 사라진 시체를 아이들이 자신의 방 안에 옮겨다 놓고 눈 앞에서 강간 상황을 재현하는데 사내는 아이들이 떠난 후에야 집에서 나와선, 다음 날에야 그 동네를 떠나기로 하지요.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아 생기는 의문에 인물의 행동에도 공감이 되지 않으니 글 마지막까지 독자는 ‘사내’보다 더 당혹스러울 밖에요. 원래 상징과 비유에 강한 작가분이시지만 전작 ‘식물의 집’에서 나타난 현실비판이나 주제의식은 보이지 않고 낯선 비유만 남아 버렸네요.

B: 쥐들을 인간으로 의인화해서 보는, 혹은 실제로 쥐들이 인간으로 둔갑해서 살아가는 마을의 모습이 재미있게 묘사된 글입니다. 먹지 못할 만큼 이상한 음식, 비슷비슷한 생김새, 쥐들의 행동을 꼭 닮은 마을 사람들의 행동 등에서 설정을 세밀하게 풀어나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가씨의 죽음, 또 다른 아가씨의 등장 등 기괴한 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힘들고, 쥐와 인간을 빗대어서 독자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보여주고 싶은지 명확하지 않은 점이 아쉬운 글입니다.


당신과 나의 고양이 by 쿼츠군
A: 우연히 집에 두게 된 고양이, 고양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아가씨, 무차별 동물학살범을 추적하게 되는 이야기의 얼개가 흥미진진합니다. 그 범인과 주인공 인수의 관계가 밝혀지는 것이 이 소설의 중요한 반전이 되지요. 그런데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긴장감 없이 늘어지고 산만해지면서 얼개의 매력이 반감하고 말았습니다.
이 글에서는 인물들의 개성이 특히 중요한데, 글의 열쇠를 쥐고 반전을 풀어내는 ‘냥이’가 현실성이 떨어지는군요. 톡톡 튀는 대사나 행동으로 귀여운 이미지를 만들려 했을지 모르겠지만 인형에 옷을 입힌 듯이 어색하기만 합니다.
반전의 묘미는 처음부터 다시 읽을 때 이게 이 말이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데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다시 읽었을 때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반전 이후의 쓸모없는 전개가 너무 길어지면서 전반적으로 글이 더욱 늘어져 버렸네요. 압축적으로 이야기를 손보면 더 완성도가 높아질 것 같습니다. ‘한때 그곳에 심장이 뛰었다.’에서 보였던 깊이 있는 사고가 아쉽습니다.

B: 매우 긴장감이 높아야 하는 이야기인데, 스릴보다 감각적인 상큼함이 강해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조금 난감한 글입니다. 사건을 압축하기보다 풀어서 서술하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사건보다 인물들의 개성이나 그들 간의 상호작용을 많이 나타냅니다. 고양이, 소녀, 고양이를 주운 친절한 청년이라는 선량한(?) 소재 덕분에 이들의 상황과 대화 역시 감각적이고 상큼한 느낌이 살아나지요. 중심사건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런 분위기가 반전을 위한 장치로 사용되어 극적인 느낌을 살리지 못한 점이 아쉬운 글입니다. 또한, 작가가 의도한 것이 끔찍한 사건을 나타내는 반전이었다면 불필요한 대화나 상황 제시는 과감하게 생략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글의 핵심은 선량한 청년인줄 알았던 인수의 정체가 반전되는 것에 있지만, 태기와 인수가 범인임을 나타내는 복선이나 단서가 너무 적은 점도 마음에 걸리는군요. 앞에 등장했던 전화 대화를 통해 독자가 조금은 납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반전이 된 지점에서 독자가 ‘아!’하고 떠올릴 수 있는 섬세한 복선이 여러군데 장치가 되었다면 좋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반전이후 짧고 강렬하게 이야기를 맺지 않고 이야기가 늘어지면서 반전의 효과가 줄어든 점도 아쉽긴 마찬가지입니다.



사조백수전射鳥白手傳 by dcdc
A: 한자어의 동음이의어 등을 이용해서 세태를 비틀어 내고, 고시생들의 푸념을 ‘화산논검’이라는 무협의 장을 빌어 이야기했습니다. 작가의 필담이 십분 발휘된 즐거운 글이군요.
[약력에 기연을 적어내라]고 하는 표국의 심사는 대학입시, 취직 등에 인생의 고난 극복 사례를 요구하는 현대의 세태를 비판하고, [세금탈루에 불법증여까지 해도 황실에서 굽실대며 모시]는 [삼성세가]는 대기업에게 공정하지 못한 정부, 현 세태를 빗대는군요. [국고를 탕진하지 못해 안달이 났는데도 귀인 상]인 [한나라 두목 되는 치]는 노골적일 정도네요. 경연 프로그램에서 가난한 인재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을 명목삼아 [치고박는 꼴을 깔깔대며 보는 꼴]인 [초신성대전]처럼 TV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고, 6년간 [교단에서 요구하는 헌납금]을 내야 하는 [사학재단邪學財團]은 사학私學에 대한 비판입니다. [고시공 5급을 달성한 이더라도 한 일가를 꾸리기 힘든 시절]은 고시 합격이 성공의 보장이 되지 못하는 현실을 이야기하지요. [희망승합차]로 [운동권 계파 간의 정파 싸움]을 비판하는 것까지, 현 2011년의 굵직한 화두들은 다 언급한 것 같습니다.
많은 분야의 비판이 함께 나오며 비판의 깊이가 얕고, 독자가 알기에 너무 직설적일 정도로 노골적인 비유가 단점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가볍게 현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헛웃음 한 번 지으며 읽기에 좋은 글이겠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산만하지 않게 마무리 한 글의 완성도는 작가분의 역량을 보여주네요.

B: 무협형식을 빌어 온 세태풍자입니다. 무협장르에 대한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즐거운 글이었습니다. 한자어를 비틀어 사회를 풍자한 부분이나 흔히 무협에서 사용되는 인물, 소재들을 잘 버무려서 독자들이 쓰게 웃으면서 읽을 수 있는 글입니다. 작가의 의도도 그러한 것 맞겠지요?


광대가 웃는다 by 나비바람
A: 인생과 죽음, 외톨이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돋보입니다. 다소 감상적일 수 있는 문장이 선호도를 좌우할 수 있겠지만 외로움에 지친 광대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풍경은 이럴 수도 있겠네요.
에이즈에 걸린 ‘은혜’가 광대인 나에게 다가오며 두 사람이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게 되는 이야기는 감동적입니다만, 그들의 갈등에 좀 더 깊이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광대의 아픔에 이야기의 중심이 맞추어 져 있다 보니 은혜의 아픔이 생생히 살아나지 못한 것도 아쉽군요.
단지, 자신만이 외롭고 고통스럽다고 느끼던 사람이 자신이 덜 불행해졌다고 느끼게 된 원인이, 자신보다 더 고통스러운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읽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건 자칫하면 타인의 아픔에서 보는 자기 안도, 자신이 저 사람보다는 덜 불행하다는 승리감일 수도 있지요. 아픔이 있는 두 사람의 교감과 이해가 더 잘 그려지기 위해서 은혜의 아픔이 에이즈 같은 극단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아픔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은혜가 광대에게 치유되고 광대가 은혜에 의해 치유될 수 있는 쌍생의 관계가 제대로 살아나기 위해서 말이지요.
하지만 ‘자신이 쓰려고 하는 글’이 무엇인지 작가분이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은 이 글의 장점이라고 하겠습니다.

B: 울 수 없는 죄책감을 안은 남자와 에이즈를 앓는 소녀가 정신적 불치병과 신체적 불치병을 앓는 것으로 대비되는 점, 그리고 불치병을 앓는 두 사람이 희망을 매개로 엮어지는 점이 인상 깊습니다. 다소 구태의연한 소재의 선택이나 서투름이 묻어나는 서술, 성근 구성 등이 많이 아쉬운 글입니다. 그러나 작가가 주제를 매우 진지하게 다루고 있고, 그것을 통해 드러내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서,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많은 글이 아닐까 합니다.


인큐베이션 by 황성식
A: 인류의 기원, 우주와 인간과의 관계 등 이야기의 소재가 그다지 새롭지는 않군요. 이야기의 흐름이 평범하고 인물의 성격보다는 작가의 목소리가 크다고 느낄 정도로 ‘나’의 독백은 철저하게 논리적인 서술을 취합니다. ‘여자’라는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 글에서 유일한 따옴표로 처리된 부분인데, 강한 인상을 주는 서술법이지만 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지요. ‘나’가 시스템을 이해하고 자라가며 지구인의 과학에 대해 설명하는 후반에 이르기까지 글은 전반적으로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논리적인 설명 외에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데, 논리적 설명 역시 새로운 점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원고지 70여매의 짧은 글을 읽고 나면 과학서를 읽고 난 것 같은 느낌입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탄탄하고 안정적이며 묘사가 안정적인 만큼, 평범한 소재 외에 자신만의 소재 혹은 사건을 다루어 보시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B: 종족의 보존, 그것에 대한 고민, 우주로 나아와 인간의 방식과의 조우. 독창적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소재입니다. 방대한 이야기 흐름 속에 종족의 존속, 생명체에 대한 철학이 매우 ‘논리적’으로 펼쳐지는 점이 인상적이지만, 설정을 풀어나가는 논리적인 전개 외에 독자를 붙들어 놓을 장치가 적은 것이 많이 아쉽습니다. 극적인 클라이맥스가 놓였더라면 보완이 조금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러나 정교한 묘사,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논리성, 치밀한 문장력이 훌륭한 필력을 보여주는 글입니다.


곶자왈에서 by 조나단
A: 전작과 같은 작가분이 맞는가 싶어 전작들을 새로 읽었습니다. 2010년 9월에 올리신 ‘사고’가 그나마 공통점을 찾을 수 있지만 ‘목격담’이나 그 이전의 작품들과는 사뭇 달라진 느낌이군요. 꽤 긴 시간동안 신경을 써서 마무리한 글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오랫동안 닫혀 있을 올레길 ‘곶자왈’을 걷는 올레꾼 ‘나’가 우연히 만난 부부의 ‘비밀’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 이야기의 중심입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곶자왈의 묘사가 마치 그 길을 걸어가는 듯이 생생하고, 서정적인 문장도 정교한 묘사에 잘 어울리지요. 한동안 봉인되듯이 사람의 발길이 오지 않을 태고의 숲 속 늪에 죽음만큼 잘 어울리는 비밀도 없겠지요. 그녀는 자신의 비밀을 각색해서 ‘나’에게 들려준 만큼 올레길을 나서는 순간 그녀에게 비밀은 깊이 잠들고 각색된 이야기만이 현실처럼 그녀에게 남을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주인공 ‘나’가 느끼는 심리 상태에 대한 설정입니다. 올레길을 걷던 이들이 스쳐 지나가는 한 ‘여자’에게 여자를 구원해 주기 위해선 살인이라도 할 것 같이 느끼는 것이 과연 현실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 심리를 부연이라도 하듯이 ‘나’가 시나리오 속에서 사람을 죽여 본 작가로서 설명이 붙습니다만, 군더더기만 더한 셈이 되었습니다. ‘비밀’에 필요한 것은 함께 비밀을 만든 공범자이기도 하지만, 그저 아무 관계도 없던 ‘목격자’일 수도 있지요. 작가라는 설정을 떼어내고 ‘나’의 관찰자로서의 역할만을 부여했더라면 어땠을까요. 그 편이 오히려 ‘여자’를 더 매력적으로 묘사할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 비밀은, 또한 나의 것이기도 하다.’ 라는 마지막 마무리 문장 역시 무척 매력적입니다. 건필을 기대합니다.

B: 인생의 행로와 올레길, 겁에 질린 여자와 노루, 늪과 죽음 등 비유를 매우 잘 사용한 글입니다. 올레길을 걷는 남자는 먼 인생의 여정에서 사람들을 스치듯 사람들을 만나고, 그 중에서 꽤 인상에 남는 부부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을 관찰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 글은 주인공 관찰자 시점에 잘 어울리는 글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작가가 주인공과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워지면서 실제 사건의 주인공인 부부보다 관찰자인 주인공의 입장이나 심리에 지나치게 몰입하면서 시점이 때로 모호해지는 점은 매우 아쉬운 부분입니다. 특히, 남자가 여자를 그 삶에서 구출해주고 싶을 만큼 거대한 욕망을 느끼는 부분은 매우 의아하지요. 살의에 가까울 정도로 강렬한 욕망이라면 납득할만한 심리적 원인이 있어야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이로 인해 시종일관 담담하고 호기심 어린 관찰자 시선을 유지했더라면 훨씬 더 극적으로 묘사되었을 부부의 행동관찰이 다소 힘을 잃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손에 잡힐 듯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올레길의 분위기, 일상적인 대화, 주인공의 내면적 심리의 흐름이 잘 그려녔습니다. 또한 올레길을 중심에 두고 잠시 길을 벗어나 늪으로 갔다 돌아온 여자의 이어지는 여정, 잠시 같은 길을 걸었지만 비밀을 마음에 담고 길 끝에서 언젠가 헤어져 자신의 일상적 인생을 걸어갈 주인공의 모습이 훌륭한 짜임새로 완성도를 높인 글입니다.


104호 독자 우수단편 가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거울 독자우수단편에 선정되신 분들께는 책을 한 권씩 보내 드립니다. euseoha @ gmail. com 으로 우편물 수령할 주소, 성함, 전화번호 (택배 발송시 필요)를 보내 주세요.

댓글 4
  • No Profile
    밤조심 12.01.28 22:21 댓글 수정 삭제
    결말이 미흡한 점을 반성합니다. 스스로 12월 31일이란 마감일을 정해놓았더랬지요. 빠른 시일 내에 결말을 보강해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글에서 최대한 전문적인 지식, 혹은 인용을 자제하려고 하는데요. 그것으로 부족한 이야기에 물타기를 하고 귄위를 '득'하려는 작품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물론 그런 지식들을 배우고 이해한 후 쉽게, 그리고 재밌게 풀어놓을 정도가 되려면 더더욱 노력해야겠지요. 하지만 해보렵니다. (뭐, 뭐지... 이 중이병스러움은... 그랫! 다음 작품은 중이병-마트닷!!)

    아, 그리고 두 분 심사위원님들의 노고에 늘 감사하고있습니다. 꾸벅.
  • No Profile
    우와, 감사합니다. 지적을 받고 나니까 머리가 마구 자극되는 느낌. 이런 느낌에 기대지 않고 혼자서 척척 해나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지만 어쨌든 퇴고도 열심히 하고 쓰기도 열심히 하고...히히흐헤헤
  • No Profile
    솔리테어 12.02.03 00:33 댓글 수정 삭제
    좋은 평 해주셔서 굉장히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 No Profile
    johnn3 12.02.03 19:12 댓글 수정 삭제
    뒤늦게 확인했습니다. 감사드리고, 그리고 기쁘네요... (지금도 고민인)이 작품에서 '나'의 논리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그런 논리마저 무시될 수 있는 곶자왈 숲의 원시성에, 제 스스로가 너무 의존했던 것인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전적으로 작가의 부족함이겠지요. 분발하겠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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