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전 달에 비해 탄탄한 글이 많이 눈에 들어온 달이었습니다. 스토리와 플롯에 대해서 생각하고 쓰는 글이 많아졌으며 손 가는 대로 쓴 것 같은 산만한 글도 많이 줄었습니다. 특히 꾸준히 글을 올려 주시는 분들의 글들이 변화하는 것이 보여 반가웠습니다. 글쓰기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꾸준히 자신을 되돌아보는 과정이라는 것을 더욱 더 느끼게 되는 글들이었습니다.
2월 16일부터 3월 15일 자정까지 올라온 총 25편의 글중 심사대상이 된 글은 15편이었습니다. 그 중 82호 독자 우수단편 우수작은 라퓨탄 님의 ‘장군은 울지 않는다’, 가작은 룽게 님의 ‘그림자 매듭’, 지이 님의 ‘아마존’ 2편입니다. 세 분 모두 축하드립니다.
심사대상에서 제외된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분량 미달  
빛 (Mad Hatter, 원고지 35매)
싼타말레나 은십자가 파괴 사건(황당무계, 원고지15매)
망각의 숲 (원고지 42매)
군대갈래? 애낳을래? (볼트, 원고지20매)
어떤 결핍 (빈군, 원고지 31매)
기계씨앗 (살인두부)

2) 분량초과 : 코드명 P (원고지 160매)
3) 심사제외명시 : 태평요술서 (먼지비)
4) 연작 : 밤꽃나비-변태 (Orion), 거래 (먼지비)


십금일무(十一錦舞) - sylvir

A: 이복남매의 정, 천재성, 황실과 맞먹는 가문, 예술 등 사춘기 소녀들이 지향하는 소재들이 담뿍 담겼습니다. 자칫 허황되게 보일 수 있는 소재들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탄탄한 스토리와 구성에서 나오는 재미가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스토리가 산만하게 전개되고, 장편을 축약해 놓은 느낌이 강합니다. 주제의 응집력이 결말에서 드러나지만 스토리와 동떨어졌고, 주제로 삼은 십일금무의 의미도 이야기 속에 충분히 풀어지지 않았습니다.


B: 중편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 같은 분량에 그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많은 인물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 소설은 마치 소녀들의 환상속에 등장할 법한 소재들의 종합 선물셋트 같은 느낌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일본 작가 ‘온다 리쿠’를 연상시키게도 하는군요. 하지만 한 번쯤은 생각할 법한 소녀들의 동경에 대해서 쓰더라도 인물들의 개성은 살아 있어야 하고 단편으로서의 축약성도 흩어져서는 안 되겠지요. 세 중심인물의 소녀들의 특징이 모호해서 가끔은 사건들이 서로 섞이기까지 합니다. 장편소설로 충분히 녹여낸다면 매력적일 수도 있겠지만 평범한 소재와 주제를 어떻게 매력적인 장편 소설로 만들어 낼 지는 작가의 역량 문제겠지요.


나이팅게일 - 니그라토

A: 사춘기 소년의 의식 흐름을 묘사하였으나 다만 그뿐입니다. 한 인간의 의식 흐름을 따라 이야기를 전개한다면 응당 어떤 성찰이 담겨야 하지 않았을까요? 한 소년의 일기에 불과한 내용이 독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B: 노골적일 정도로 소년의 환상에 기대고 있는 이 소설에서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다면 1990년대 후반에 쓴 작품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고유명사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10년도 넘은 과거의 이야기임에도 90년대만의 정서를 녹여낸다거나 하는 의미는 없어 90년대적 소재들도 단순한 고유명사의 나열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소년이 동경하고 있는 소녀에 대해 신성화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다가 미래 이동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소녀가 소년에게 스스로 몸을 허락하려고 하는 창녀화까지, 정말로 10대 소년의 환상의 결집체라고 할 수 있겠군요. 그런 감정을 가져본 적 있는 독자들이라면 이 글을 다른 느낌으로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불편할 뿐이죠.


상처입고 상처를 잊어버린 남자는 고통을 이겨내 상처를 치료한다 - 김진영

A: 기억을 잃은 남자가 마침내 자신이 누구인지 자각하는, 다소 흔한 설정입니다. 이러한 설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각한 후에 찾은 정체성이나 그로 인해 반전되는 상황이나 사건일 것입니다. 이 글에서 남자가 되찾는 정체성은 “살인자”이고, 반전은 “논리에 맞지 않아 보이는 신의 용서”일 것입니다. 주제인 동시에, 천사마저 헤아리기 힘든 신의 용서가 단지 천사의 피상적이고도 전형적인 묘사에서 그친 점이 몹시 아쉽습니다. 주제가 던지는 묵직한 의미에 대해 보다 깊은 성찰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은 이 글의 분위기에 잘 어울린 것 같습니다.


B: 감성이 담긴 문체로 서술해가는 이 글의 이야기는 소재나 전개, 인물 어떤 면을 보아서도 평범합니다. 그러나 글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는 무겁고 장중하군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루어서 식상하기까지 하는 기억상실의 모티브와 용서의 이야기가 겉돌아 주제가 제대로 살아나지는 못했습니다. 중편 정도의 분량의 글이지만 서술이 느슨하고 묘사가 추상적이라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느낌은 주지 못합니다. 서술과 대사 전체적으로 멋을 낸 단어와 문장이 많이 보입니다만, 정서적인 서술과 결합하다보니 글이 더 모호해진 느낌이 들고 말았네요.
작가가 인물을 보는 시선이 긍정적이고 따뜻하다는 점이 이 글의 장점이므로 적절한 소재와 결합하면 더욱 좋은 글을 쓰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원여행 : 공원 옆 아파트 꼬마 - 김진영

A: 유괴 당해 죽은 아이와의 추억을 그려낸 글입니다. 목적은 유괴되어 죽은 아이와의 추억을 아련하게 그려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련한 추억을 따뜻하게 부각시키며 강렬한 정서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비되는 유괴라는 사건이 보다 어둡고 잔인하게 묘사되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유괴라는 사건이 던지는 잔인함과 충격이 밋밋하게 그려져서 추억이 별로 부각되지 못한 것이 큰 흠입니다. 전작인 <상처를->에서와 같이 시종일관 인간에 대한 따뜻함이 묻어납니다. 세계와 인간을 보는 가치관이 소설의 가장 밑거름이 된다고 볼 때, 치밀하고 능숙한 구성이 갖춰진다면 따뜻함이 담긴 좋은 글이 나오리라 기대됩니다.


B: 감성 풍부한 작가의 문체는 변함없이 이 글에서도 나타나는군요. 부드럽고 감성적인 문체가 아이의 ‘유괴 살인’ 이라는 소재와 제대로 어울리지는 못한 것 같네요. 그림에서 그린 듯 해서 오히려 현실성이 없어 보일 정도로 귀여운 아이가 어느날 유괴 사건의 피해자로 무참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만, 그 사건을 묘사하는 ‘나’의 감성은 부드럽고 잔잔합니다. 작가의 문체가 사건의 충격을 묻어 버리는 격입니다. 소재의 선택을 고려하거나 혹은 문체의 분위기를 극복할 무언가가 필요할 듯 하네요.


구래희 영감 - 노 새

A: 인간과 생명에 대한 호의와 따뜻함이 넘쳐나는 글입니다. 인간 틈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며 많은 영향을 끼친 외계인의 장례식에서 만난 지구인과 외계인들의 모습은 다른 종족들이 어우러진 이색적인 장례식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일상을 비일상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문학의 힘이 잘 발휘된 느낌입니다. 그러나 장례식장의 풍경이 멀리서 온 손님을 접대하는 것 이상을 보이지 않았고, 절정을 이끌어내는 사건도 존재하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밋밋해진 느낌입니다. 외계인과 지구인들이 모인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조금 더 풍부했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B: 유쾌하고 명랑한 글로 읽는 동안 참 즐거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인물로 기억하는 한 사람의 장례식장에서 실은 그 인물이 외계인이었다는 반전으로 글이 마무리됩니다만 전체적으로 흐름이 단조로워 반전의 묘미로서의 역할은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외계인 이미지를 함께 나열하면서 실제 이 주인공이 전혀 거기에 맞지 않았다거나 하는 식의 배치라든가는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구래희 = 그레이 라는 말장난식의 작명이나 외계인들이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삼합을 먹는 장면 등은 재기 있고 즐겁군요.
그러나 전작인 ‘호모 네티우스’에서 볼 수 있었던, 글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지만 있음으로서 글의 현실성을 더 공고하게 만드는 섬세한 소재와 서술들이 이 글에서는 조금 부족해 보입니다. 재미있는 발상에서부터 글의 형상화까지 약간 서두르신 건 아닐지요. 조금 더 손을 보아 완성도를 높일 가능성이 남아 보입니다.


도깨비 - 하동완

A: 도깨비라는 민속적인 소재를 선택하였지만, 이야기는 흔한 전래동화를 재해석 없이 옮겨 놓은 것 이상이 아닌 것으로 느껴집니다. 배경이 현대이기는 하지만, 구성이나 도깨비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참신함도 새로움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도깨비라는 소재를 어떻게 재해석할지 또는 도깨비에 얽힌 이야기에 어떠한 새로운 주제를 담을지, 고민이 부족했던 점이 아쉽습니다.


B: 서양의 전승물에 근거한 판타지에 대한 대안으로 한국적 판타지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만, 도깨비를 소재로 한다고 해서 한국적 판타지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이 글에 등장하는 도깨비는 작가만의 개성이 담겨 있는 존재가 아닌, 동화책에서 스쳐 지나간 익명의 존재처럼 보입니다. 신화 속의 ‘엘프’와 톨킨의 ‘엘프’가 같지 않고 해리 포터의 ‘마법’과 르 귄의 ‘마법’이 같지 않은 것처럼 어떤 소재든 작가만의 재해석이 없으면 소재의 매력은 반감해 버리고 맙니다.


파란 남자 - 하동완

A: 전작인 <도깨비>와 마찬가지로 도깨비에 대한 재해석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싸리 빗자루가 도깨비로 둔갑한다거나 씨름을 좋아한다거나 해를 받으면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서 그 이야기를 그대로 엮어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도깨비가 가진 특성으로 어떤 이야기를 “새롭게” 재구성할지 고민하였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B: 전작과 마찬가지로 도깨비에 관한 전래 동화 속 에피소드를 현재로 옮겨 놓은 이야기입니다만, 현실적 상황과 결합하면서 적절하게 재해석되거나 녹아들지는 못했습니다. 신화나 전설 속의 존재라 할지라도 소설 속에 등장했을 때엔 존재로서의 개성과 특징을 가져야 하겠지만, 태양빛을 받아 사라지는 도깨비의 전설 속 특징이 주인공을 공격하는 공포와 잘 녹아들었는지 의문입니다.


멸족의 밤 - 천공의 도너츠

A: 단편이라기보다 장편을 요약해 놓은 글로 느껴집니다. 오히려 길게 늘여서 장편으로 구성하면 좋은 글이 나올 것 같습니다.


B: 오랜 시간을 대립 관계로 라이벌관계였던 두 부족의 최후. 판타지로서 무게감 있는 소재이고 대립 구도의 인물들도 비교적 구체적으로 잘 그러졌습니다. 그러나 독립된 단편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의 구성을 취하고 있다기보다는 장편 소설의 결말부를 떼어 놓은 듯한 느낌이 강합니다. 이 글의 서술 이전에 이미 두 부족의 오랜 싸움이 있었고, 독자는 그 오랜 싸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보니 마지막의 장중한 결말에서도 독자의 느낌은 반감하고 마는군요. 오히려 이 글에서는 간략하게 언급하고 넘어갔던 부족간의 대립을 치밀하게 구상해서 장편 소설화 해 보시는 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성형외과가 사라졌다 - 하늘깊은 곳

A: “성형외과가 사라졌다”는 사건은 매우 흥미로운 소재입니다. 그렇다면 응당 그것이 사라진 이유나 사라진 뒤에 벌어지는 독특한 사건이 어우러져야 했겠지요. 그러나 이 글 속에서는 단지 미용 외의 목적으로 시술되어야할 성형이 없어져서 불편한 수준에서 그쳐버렸습니다. 소재에 대해 보다 깊은 고민을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B: 전작의 ‘공’ 과 마찬가지로 소재의 선택이 좋습니다. 아이디어를 잡아내는 솜씨가 탁월하시네요. 하지만 전작과 마찬가지로 소재를 이야기로 녹여내는 데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성형외과가 사라졌다는 전제 하에서 가장 처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건은 어떤 것일까요? 성형외과가 있을 때는 없었던 증상이 돌연 성형외과가 없어지는 것과 때를 같이 해 일어나서 수술을 못하게 되었다, 그 소재 외에는 다룰 수 있었던 것이 없었을까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주인공은 여성입니다만, 다른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오히려 남성에 가깝네요. 생리 이야기가 나왔을 때 놀랐을 정도입니다. 인물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겠습니다.


PARASITE SPIDER - 칼리코

A: 정체불명의 거미가 인간에게 놓은 알이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온다는 소재가 흥미롭습니다. 기계처럼 일하는 공장 근로자의 삶이 정체성의 혼란과 나란히 놓이면서 인간에 대한 성찰로 다가가는 느낌입니다. 조금 더 깊이 있게 주제에 접근했다면 주제 의식이 묵직한 독특한 글로 완성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성이 치밀하지 못하였고, 주제보다 오히려 거미의 그로데스크함에 치중하면서 글은 방향을 잃었습니다.


B: 조직 속 인간의 정체성 상실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기생으로 인한 정체성 상실에 빗대어 표현한 독특한 소설이었습니다.
무거운 주제에 걸맞은 분위기 조성도 돋보였지만 작가분이 의도한 것은 기생이라는 소재의 기괴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깊고 무거운 주제를 다룰 수 있는 글이 기생의 주체인 거미에 집착하면서 공포 소설의 분위기가 진해지면서 정체성 상실의 부분은 가볍게 다루어진 것이 아쉽습니다. 번역체가 강하게 느껴지는 자연스럽지 못한 일인칭 서술과 반복되는 말줄임표가 글의 무게를 떨어뜨리는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다만, 기생의 피해자인 주인공의 시점에 밀착하여 서술되면서 기생 대상자의 공포와 불안을 생생하게 그려낸 점은 돋보입니다.


Antifreeze - 빈군

A: 폐허가 된 세상에 살아남은 인간 군상들의 모습에 담고자한 희망과 인간성에 대한 낙관이 따스하게 느껴집니다. 삼촌, 나, 여자 사이에 오가는 감정들과 황폐한 분위기가 대비되면서 보다 더 섬세하게 묘사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큰 글입니다. 사건으로 끌어가는 이야기라기보다 폐허가 된 세상과 대비되는 인간들의 생명력과 모습을 그리고자 한 만큼 보다 깊은 정서가 표현되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B: 따뜻한 서술과 부드러운 분위기로 한 편의 동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만 글의 구성이 안정적이지는 못하네요. 삼촌의 시신을 땅에 묻는 강렬한 장면으로 시작해, 기묘한 분위기의 여성의 춤 장면으로 신비로운 느낌을 주더니 인물들이 실제 3년간을 ‘생존’해 왔다는 것이 나타나면서 독자의 흥미를 자극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서 인물들은 생존에 내몰리게 되었는가, 삼촌은 어떤 존재였는가, 춤을 추자고 하는 묘한 분위기의 여성은 과연 누구인가.
그러나 글이 진행되면서 아쉽게도 이러한 독자들의 의문은 거의 해결되지 않고 난해함은 더욱 깊어지기만 합니다. 갑작스럽게 나타나 생존의 버팀목이 되어준 삼촌은, ‘나’를 생존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여성은 신비로운 분위기 이상의 아무 것도 없이, 오히려 사실성이 떨어지는 정체불명의 캐릭터로 마지막까지 남아 버립니다.
사건의 대부분을 모호함 속에 덮어놓는 글인 만큼 대비되는 인물들의 정서가 얼마나 치밀한가에 달려 있겠습니다만, 분위기 조성에는 성공했어도 인물들의 정서가 독자들의 공감을 어느 정도로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내 아내의 남편은 누구인가 - 미노구이

A: 같은 인간이 여러 명 존재한다면 그 인간의 아내는 누구를 남편으로 선택할 것인가. 만약 한 대상에게 전혀 다른 감정을 지닌 두 사람이 한 사람으로 합쳐진다면 그는 누구인가. 어느 쪽이 진실인가. 아주 흥미로운 의문을 클론이라는 소재를 통해 잘 풀어냈습니다. 클론에 대한 해석이 천편일률적이기 쉽다는 점을 감안할 때, 특히 그 해석이 돋보입니다. 이야기 구석구석에 등장하는 SF적인 요소들과 상상이 매력적이지만, 때로 그것을 설명하려는 욕구가 지나친 점은 조금 아쉽습니다. 치밀한 구성에 바탕을 두고, 온전히 전개에 집중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B: 클론이라는 평범한 소재에서 출발해 독특한 아이디어의 소재를 결합한 솜씨가 돋보입니다. 물질의 재결합을 통해 공간이동을 만든다는 설정은 평범하지만 그 결과 두 사람의 ‘진짜’가 존재하게 되었다는 설정은 흥미롭습니다. 특히 사고 이후 두 사람이었던 개체가 하나가 되면서 자신이 어느 쪽이었는지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는 부분이 멋집니다. 다만 서술 일부분에서는 실제 두 사람 가운데 하나가 클론이었을 가능성을 짐작할 수도 있을 듯한 부분이 있습니다. 작가분의 의도가 어느 쪽인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가능성으로 집중시키는 쪽이 낫지 않을까요.



그림자 매듭 - 룽게

A: 수학을 소재로 하여 세상의 진리를 집요하게 추구하는 과정이 조밀하게 잘 구성되었습니다. 진리를 가로막는 사회 분위기와 오로지 진리만을 향해 걸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대비하여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질을 성찰하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그러한 인간의 본질이 “3규빗짜리 막대기, 그리고 왼쪽 팔에 새겨진 두 개의 상처 사이의 간격. 그 속에는 세상의 둘레가 담겨 있다.”는 문장에서 감동적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느슨하고 즉흥성이 많이 느껴지던 전작들에 비해 구성을 꼼꼼히 하고 치열하게 전개해간 발전이 느껴졌습니다. 다만, 이야기의 주제 외에 보여주고 싶어 하는 인물들의 사건이 많아서 조금 산만해진 점이 흠이라면 흠입니다. 계속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B: 수학자들로 나타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집요함이 잘 나타난 보기 드문 작품이었습니다. 세계가 평평하다고 믿는 세계에서 진실을 추구하며 이단 취급을 감수하는 인물들의 열정이 생생하게 잘 살아났습니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개성이 뚜렷하고 감정 흐름이 손에 잡힐 듯 해서 생동감도 더합니다. 다만, ‘페리아’라는 여성 캐릭터의 등장이 이 글에서 꼭 필요했을까 의문입니다. 신분을 극복한 두 사람의 깊은 애정에 대해서도 다루고 싶으셨던 모양입니다만, 단편에서는 이야기의 중심을 하나에 집중시키시는 것이 더 좋을 듯 여겨지네요.
전작에서 느껴졌던 방만함이 상당히 사라지고 축약된 구성 안에서 이야기가 깔끔하게 마무리되어 있고, 연애 이야기를 제외하면 기승전결과 마지막 여운에 이르는 구성의 흐름이 매끄럽고 좋습니다. ‘그림자 매듭’ 이라는 제목이 주는 모호함이 독자의 흥미를 끌면서 매듭의 의미가 풀리고 인물들의 갈등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면서 스승과 주인공 사이의 감정적 연대를 설명해주는 설정들도 탄탄하고 좋습니다.
다만 ‘흉터’가 주는 의미가 더욱 명확해지도록 사전의 복선이 더 주어졌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결말 부분은 ‘그 속에는 세상의 둘레가 담겨져 있다’ 이후의 문장이 사족으로 여겨집니다. 이교도의 숫자를 써야 하는 큰 둘레, 스승에 대한 연민, 등등 다루고자 한 주제가 많으셨던 것은 알겠지만 때로는 여운으로 남겨야 하는 것도 있는 법이죠.

82호 독자 우수단편 가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아마존 - 지이

A: 하나의 사건을 진행하다가 순식간에 반전을 일궈내는 단편의 구성을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글입니다.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로 변한 여자들과 유일하게 괴물로 변하지 않은 여자. 서두에서 시작된 사건은 반전을 향해 우직하게 달려 나가는 동안 독자의 호기심과 기대를 일으키며 효과적으로 몰입하게 합니다. 반전까지 전개되는 과정에 클라이맥스가 없어서 밋밋한 점이 아쉽지만, 끝까지 밀어붙여 반전을 일궈낸 뚝심이 돋보였습니다.


B: 독자를 몰입하게 하는 힘이 탁월하며 사건을 끌어가는 서술력이 돋보입니다. 다만 마지막 반전이 글의 핵심인데 비해서 반전의 토대가 되는 복선은 목소리 밖에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여자’가 자신의 실체를 밝히는 순간 추적이나 공격을 피할 수 있었을 텐데도 마지막까지 자신의 실체를 밝히지 않은 이유가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은 점이 아쉽습니다. ‘나’와 ‘여자’ 사이에 연애감정이 싹텄기 때문이라는 추측은 가능하지만 조금 더 구체적인 복선이나 예시가 나타나면 좋았을 것 같네요.
논란의 여지가 있겠습니다만 ‘여자들이 모두 괴물이 된다’는 설정 하에 여성이 전멸하면 인류가 멸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자들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기괴한 상황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졌습니다. 다만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해!’와 같은 글의 전체적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선동적인 대사가 눈에 띄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82호 독자 우수단편 가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장군은 울지 않는다 - 라퓨탄

A: 부분에서 전체로 나아가며 조각이 맞춰진 순간 반전이 등장하는 단편의 특성을 잘 살린 글입니다. 기괴하게 보이는 쌍둥이의 행태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계속 유발하며, 곳곳에 심어 놓은 작은 반전들이 폭죽처럼 터지면서 글의 재미를 더합니다. 자궁을 빌어 지구로 오는 외계인들이 모두 도착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작가의 재치와 사회상을 비꼬는 유머감각이 돋보였습니다. 작은 소재들에 가치를 부여해서 글이 풍부해진 것도 큰 장점입니다. 그래서 가장 핵심적인 반전인 쌍둥이의 정체가 도중에 폭로되어도 끝까지 흡입력이 있고, 마지막에 살짝 비트는 반전은 끝까지 읽어낸 독자들에게 또 다른 웃음을 선사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구성이 느슨하던 전작들에 비하여 치밀하게 구성하고 사건을 전개하는 등 많은 발전이 엿보였습니다. 계속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B: 글을 처음 읽었을 때는 기괴한 느낌으로 읽었고, 내용의 실체가 드러난 순간 폭소하며 줄곧 웃으며 읽었습니다. 읽은 후에 다시 읽으니 기괴하게 느껴지던 내용들이 코메디로 변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솜씨나 글을 풀어내는 방식 모두 매끄러워서 반전이 글의 중반에 나타나면서도 마지막까지 글을 읽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마지막의 추가적인 반전에 글의 앞부분으로 돌아가 다시 읽고 폭소했습니다. 복잡한 사건이나 설정이 들어있지 않아도, 전형적으로 멋지거나 개성적인 인물들이 나타나지 않아도 단편은 재미있을 수 있다는 예시를 잘 보여 주셨습니다.
낙태 때문에 외계인들 일부는 태어나지도 못하고 돌아가게 되었다거나, 영재원 입시 문제를 외계인들이 틀려 입학을 못했다거나 하는 사소한 설정들도 작가가 많은 생각 끝에 글을 썼다는 느낌이 들게 하네요.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82호 독자 우수단편 우수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거울 독자우수단편에 선정되신 분들께는 책을 한 권씩 보내 드립니다. Itpimento @ paran.com (첫글자는 소문자 L입니다)으로 우편물 수령할 주소, 성함, 전화번호(택배 발송시 필요)를 보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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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제목 날짜
선정작 안내 2016년 4분기 우수작 및 2016년 최우수작 2017.01.0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후보작 심사평1 2016.11.30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후보작 심사평2 2016.11.01
선정작 안내 2016년 3분기 독자우수단편 선정2 2016.09.30
선정작 안내 선정작이 없습니다. 2016.08.31
선정작 안내 거울 독자우수단편 선정1 2016.07.31
선정작 안내 2016년 2분기 독자우수단편 선정 2016.06.30
선정작 안내 선정작이 없습니다. 2016.06.01
선정작 안내 선정작이 없습니다.1 2016.04.30
선정작 안내 거울 독자우수단편 선정3 2016.03.31
선정작 안내 거울 독자우수단편 추천작1 2016.03.01
선정작 안내 거울 독자우수단편 추천작1 2016.01.31
선정작 안내 거울 독자우수단편 선정3 2015.12.31
선정작 안내 거울 독자우수단편 선정 2015.12.01
선정작 안내 선정작이 없습니다. 2015.12.01
선정작 안내 거울 독자우수단편 선정6 2015.10.31
선정작 안내 거울 독자우수단편 선정1 2015.10.01
선정작 안내 거울 독자우수단편 선정5 2015.08.31
선정작 안내 거울 독자우수단편 선정2 2015.08.01
선정작 안내 거울 독자우수단편 선정2 201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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