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어느덧 날이 쌀쌀해졌네요. 덥고 힘겨운 여름이 지나가고 더욱 풍성하게 글을 쓸 수 있는 계절, 가을이 다가왔습니다. 이번 달에는 작품이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니그라토 님의 <일진의 승리>를 제외하고 세 편의 작품을 심사하였습니다. 저희가 작품을 흥미롭게 읽은 만큼 평도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달에는 아쉽게도 선정작이 없습니다. 다음에는 선정작을 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비, 내리다 - 초이


A : 이 소설의 상황에 대한 설명은 세 가지입니다. 원인모를 비로 전인류 사망, 사실은 내가 죽은 것임, 컴퓨터 시뮬레이션. 하지만 주인공의 행동은 어느 면에 빗대어도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비가 천년을 쏟아지든 인류가 일시에 절멸하든 상관없어요. 어떤 비현실적인 상황이라도, '아, 나라도 그렇게 했겠다'라는 점이 보이면 독자는 그 이상한 세계로 충분히 빨려들어가 줍니다.


비가 몇 달이나 쏟아졌다는데 주인공은 비가 오는 거리 한 복판에 서 있어요. 뭐 해요? 우산 안 써요? 사람 죽일 지도 모르는 비인데요? 아니, 설사 사람 죽이는 비가 아니라도 그렇지, 체온저하는 어쩌고 맞고 있어요?
상황 자체는 마치 1분 전에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그러면 그럴 수도 있겠죠. 아직 우산 찾을 시간이 없었다든가. 경황이 없다든가. 하지만 주인공은 자기가 인류 마지막 생존자라고 생각해요. 정보를 충분히 얻었다는 거죠. 그런데 그거 언제 알았어요? 다른 나라 가 봤어요? 방송에 나왔어요? 우리 동네 돌아다녀 봤더니 사람이 다 죽었을 수는 있죠. 그러면 다른 동네 가서 확인해야죠, 뭐 해요?
배고프다면서 뭐 해요? 백화점에서 무슨 20% 세일 이런 걸 구경하고 있는 거예요? 밥 안 먹어요? 옛날 회상은 왜 하고 있어요?


결국 다 하기는 하죠. 하지만 다 너무 늦어요. 너무 늦어서 오히려 독자에게 ‘참, 그거 했어야 했지. 근데 왜 지금까지 안 했어?’하면서 비현실감만 들게 만들어요. 일단 생존을 위한 모든 걸 다 한 다음에 다 실패하고 자포자기한 주인공이 과거회상 하고 거리를 싸돌아다니면 누가 뭐라나요. 일단 자포자기부터 하고 나중에 하나둘 생존 찾는 척하면 독자는 언제 이 세계로 들어오라는 거예요.
주인공이 비논리적이라도 이야기가 통할 때도 있지요. 이야기 전체가 상징일 때에요. 하지만 그러려면 그만큼 묘사에 유려함이 필요합니다. 훨씬 미학적이어야 해요.


이야기 보드 게임에서 늘 이기는 패가 있죠. '이것은 다 꿈이었다' 패에요. 모든 이야기는 그걸로 결론이 날 수 있거든요. 바꿔 말하면 그건 가장 안일한 패입니다. '이 전체가 시뮬레이션이었다'는 것은 '이것은 모두 꿈이었다'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은 채로 안일하게 끝낸 겁니다.
만약 중간에 나온 '사실은 인류가 아니라 내가 죽은 것'의 설정으로 더 풀어내고 결론을 냈다면 조금은 더 점수를 주었을 것 같아요. 그러면 주인공의 비논리성이 조금은 납득이 되니까요.

 

B : 이 소설에 집중하면서 읽는 건 매우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서사에 제대로 접근하기도 전에 이 소설의 문장이 바로 독자를 서사에서 차단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소설의 문장과 구조, 캐릭터는 ‘미숙함’이라는 코드로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주인공은 비를 보며 납득할 수 없는 상념에 젖어듭니다. “빗물은 내가 하늘을 보는 것이 신을 모독하는 행위라 여기는지 나를 공격했다. 그 작지만 살을 페어 버릴 기세의 날카로운 몸으로…….” “내리는 비 넘어 하늘은 아가리에 핏물을 흘리며 다음 먹잇감이 쓰러져 꺾기기를 기다리고 있는 맹수 같았다.”
어떤 독자도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설명도 없이 저렇게 과잉된 문장이 나열될 때, 과잉될만한 이유가 있었겠거니, 참아주면서 읽을 만큼 친절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분위기가 매우 첨예하게 살아 있어서, 분위기에 압도되어 과잉을 납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비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라면, 비에 대해서 저렇게 과잉된 비유로 행간을 낭비하고 있을 게 아니라 비가 대단한 존재라는 걸 납득시키고 알려줘야 합니다.
주인공의 캐릭터를 파악할수록 이런 과잉된 비유가 ‘그럴만하다’고 납득하게 됩니다. 설득력이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주인공의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로 과잉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말투도, 사고의 패턴도, 행동도, 어느 것 하나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은 평범함을 보여주진 못하고 계속 스스로 평범하다는 자의식의 과잉만을 보여줍니다.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불필요하게 집중하는 것에 비해 사고력은 무지막지하게 떨어집니다. 감정은 무지막지한데 사고는 전혀 그 감정들을 따라가고 있지 못해요. 그러다보니 주인공은 행동은 하지 않고 자꾸 혼자, 상황에 대해서도 아니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주절거리기만 합니다.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소위 중2병에 가까운 주인공을 설정하신 셈입니다.
그러나 대체 그런 주인공의 설정이 이 소설에서 어떤 효과를 가질 수가 있죠? 의심과 불안에 천착하여 인간이 생존을 포기하는 어떤 과정에 대해서 서술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도는 뒤에 가서 매우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만, 주인공의 성격과 그에 걸맞는 문장은 그 주제를 드러내는 데에 지극히도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주어졌음에도 인물이 상황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데, 대체 어떤 이야기가 효과적으로 드러날 수 있겠습니까.

 

 


수축과 소멸과 증명 - 이유엔


A : 점점 수축해가는 사람의 심리와 상태를 실감나게 묘사하셨습니다. 긴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미지가 좋아요. 파란 종이의 의미는 가늠하기 조금 어렵습니다만 자식의 수축을 예감한 어머니가 그 존재를 어떤 형태로든 지키기 위해 준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인지 파란 종이에 놓인 하나의 점의 존재는 선명하고도 깨끗하군요. 소멸했다기보다는 다른 형태로 위치와 안정성을 찾은 듯해요.
소설의 길이에 비해서는 제목이 조금 거창하지 않나 싶어요.


B : 아름답고 강렬한 이미지입니다. 수축과 빈곤을 연관지으려고 한 시도도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아쉬운 점은 수축이라는 극단적인 설정에 비해 빈곤이라는 커다란 주제는 단지 선언될 뿐 드러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카페인과 니코틴’으로만 결핍과 빈곤을 이야기하기엔, 그 소재는 너무 진부하며 특징이 없어요. 사실 빈곤과 수축이 연결되기 위해선 ‘카페인과 니코틴’ 같은 유희적 소재들보다는 좀 더 즉물적이며 생존에 연관된 소재가 등장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즉물’을 놓아가는 이미지가 등장하는 쪽이 좀 더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요.

 

 

 

발화인간 - 빈테르만


A : 시작부터 문장마다 설정이 쏟아지더니 끝까지 쏟아지는군요. 약간 정신 나간 대가들이 (P.K.딕이라든가, 베스터라든가) 자주 쓰는 수법이긴 하지만 사실 잘 쓰기 굉장히 어려운 방식입니다. 원래 단편은 설정 하나만 제대로 소화하기도 힘들어요. 쏟아내다 보면 설정 간에 모순도 생기기 마련이고, 읽기만 힘들어지죠. 원래 이야기 이해하는 데 필요 없는 설정은 다 군더더기예요.
몹시 위험한 방식으로 진행하면서도 위태위태하게 균형을 잡는 것은 이 이야기의 중심이 인류모태의 정서인 사람과 사람의 교류를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이 하는 일은 이런저런 설명을 붙여봤자 그 사랑을 방해하는 거고요. 비현실적인 세상 속에서 비현실적인 사고를 하면서도 서로를 추구하는 두 사람의 생명력 속으로 다른 복잡다단한 것들이 빨려 들어가는군요.


그래도 정신없는 건 사실이에요. 대가들이 정신없는 이야기를 쓰면서도 훌륭한 이야기를 쓰곤 했지만 그건 대가라서죠. 속도감과 정신없음은 한끝차이예요. 중간에 나온 표현대로 ‘내내 머리에 총을 겨누고 언제 쏠지 모르는 상태로’ ‘계속 나를 쥐어짜는’ 기분이에요. 뭐 대단한 일인지도 모르겠는데 등장하는 사람들은 나 죽겠다고 호들갑이고 주저앉고 소리 지르고 뺨 때리고 난리도 아니네요. 이 두 아이들이 중요한 존재인지 아닌지도 헷갈려요. 정말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면 다들 조금은 더 태연해야 하지 않을까요?
조금만 더 숨을 고르고 약간만 더 천천히 상황을 관망했다면 오히려 더 몰입할 수 있었을 거예요. 작가가 먼저 난리법석을 치니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하고 한 걸음 빠지게 되네요.


B : 두 명의 ‘배양 인간’이 등장하여 시스템을 벗어나 인간성을 찾아가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야기입니다. 많은 SF 소설들에서 여러 번 다루어진 주제이며, 인간성이라는 것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그것의 본질을 어디에서 발견해야 할 것인가 라는 철학적인 문제를 언제나 제기해 온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 주제를 가볍고 산뜻한 필체로 다룬 작품입니다.
특히 ‘이진아’라는 캐릭터는 가벼운 소설에 어울리는 극단적이고 가벼운 캐릭터네요. 굳이 그녀의 이면까지 살펴봐야 할 필요를 특별히 느끼지 않습니다. 그녀가 표상하는 어떤 극단성 속에 소설의 주제와 본질이 함께 녹아들어간 점은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다양한 설정을 이렇게 가볍고 짧은 이야기에 추가한 것이 과연 적절할까 하는 고민이 드는군요. 카프스 세포라는 설정 자체도 생소하지만, 심지어 주인공은 그 문제에 일정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던 것이잖아요? 그렇다면 이진아와 황민우의 행동을 단순히 지켜보는 것뿐 아니라 주인공 역시도 지금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사고와 개입을 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 같은데 너무 관조적인 입장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경우 설정이 주어졌을 뿐,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건 언어의 낭비죠.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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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테르만 13.10.01 03:47 댓글

    심도 깊은 비평 감사드립니다.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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