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5월부터 우수 독자 선정단 2조에 1기 선정단이셨던 박애진님이 함께 해 주십니다. 1년간 2조는 세 명이 번갈아가며 심사합니다. 선정단에 돌아와 주신 박애진님을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달에는 김보영과 박애진이 심사하고, 다음 달에는 앤윈과 박애진이 심사합니다. A와 B는 매달 변합니다.
이 달에는 여덟 명의 작가들이 함께 해 주셨고, 4월 16일부터 5월 15일 자정까지 올라온 글을 심사했습니다. 단, ‘숨쉬는 돌’님의 ‘블루 제트’는 소설이 아닌 시인 관계로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3월에는 오랜만에 우수작이 나와 기뻤는데, 이 달에는 아쉽게도 선정작이 없습니다. 다음에는 선정작을 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도둑과 경찰 그리고 마피아 - 진영

A : “창밖의 한 바탕 쏟아지던 비는 언제 쏟아 내렸냐는 듯 멎어 있었다.”
첫 문장부터 문법이 맞지 않더니 마지막까지 맞지 않습니다. 맞춤법이 맞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문법이 맞지 않습니다. 형용사와 부사를 계속 바꿔 쓰고 계십니다. 소설은 단순히 문법이 맞는 수준을 넘어서 자신만의 유려한 문체를 요구하는 세계니 갈 길이 한참 멉니다.
소설적으로 갖추고 있는 것이 적어 영상매체나 만화의 콘티에 가까운 글입니다만 그렇게 보아도 좋게 평가할 구석이 없습니다. 상황은 말이 되지 않고 반전은 의미가 없습니다.
나이가 어린 분이 아니라면 글쓰기와 독서 훈련이 많이 부족하신 분인 듯합니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국어문법에 익숙해지려면 번역 작품보다는 연배가 있는 한국 작가의 소설을 필사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길게 보고 천천히 훈련해 주세요.

 

B : 물건을 훔치려는 도둑, 지키려는 경찰, 물건 쥔 마피아 사이에서 벌어나는 일을 재미있게 그리고자 노력한 글입니다. 마지막에는 자기 꾀에 자기가 속아 넘어가는 마피아의 모습을 그려 반전을 노렸고요. 더 많이 쓰며 노력하면 좋아질 듯 합니다.
좋은 글을 쓰려면 가장 먼저 문법에 맞는 문장을 구사해야 합니다. 이오덕의 “우리글 바로쓰기” 등을 읽으며 문법을 다듬으시기 바랍니다. 문장을 짧게 치고 과한 장식을 줄이면 문법에 어긋나는 문장이 줄어듭니다.
이 글처럼 지키는 이, 훔치는 이, 물건 주인이 얽히고설키는 이야기는 실제 경비가 얼마나 삼엄한지, 도둑이 경비를 얼마나 절묘하게 피하는지, 훔치려는 물건이 얼마나 중요한지 독자에게 충분히 보여줘야 합니다. ‘신출귀몰한 도둑’, ‘한 때 도시를 주름잡던 마피아’라는 말로만은 인물을 설명하기 부족합니다. ‘민첩하게, 하지만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라는 말 역시, 삼엄한 경비가 있을 저택을 빠져나오는 방법으로 보기에 설득력이 없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말로 선언하고 넘어가지 않고, 어떤 방법이 좋을지 더 많이 생각해 구체적으로 쓰기 바랍니다.

 


사유하는 철갑 - 니그라토

A : 이야기의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상황이나 담긴 설정을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모호한 가운데 언뜻언뜻 비치는 이미지는 두 달 전에 본 글보다는 한결 시각적이며 다소 몽환적인 면이 좋습니다. 생각을 플롯에 녹이지 않고 서술로 하는 단점은 여전합니다만 이전 글보다는 다소 완화된 면을 칭찬하고자 합니다.
완성된 글이라기보다는 더 긴 이야기의 한 부분으로 보입니다. 장편의 설정을 가져온 글이라 하셨는데 이는 도움이 되지 않는 변명입니다. 무엇에서 나온 것이든 단편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완결성이 필요합니다.
오랫동안 쌓인 버릇이 고정된 면이 있습니다. 소설쓰기도 하나의 기술이고 기술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연습은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할 때가 있고요. 글쓰기 연습은 아마추어 작가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프로작가들도 부단히 수련을 합니다.
제안을 하나 해 보겠습니다. 자신이 ‘말하려는 바’나 ‘논설’은 하나도 넣지 마시고, 풍경 하나를 옆에 두고(사진이어도 좋습니다) 그 풍경을 독자가 머릿속으로 연상할 수 있도록 묘사하는 연습을 한 번 해 보세요. 그리고 이 말을 기억해 주세요. 작가가 생각을 전하려 하면 그 생각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전하지 않으려 하면 전해집니다. 자신의 주장을 어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주장에 반대하는 인물을 이야기 속에 넣는 것입니다. 이 말을 믿을 수 있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다음번에도 변한 것이 없다면 제 평은 아주 짧아질 겁니다.

 

B : 설정만 있을 뿐 이야기가 없습니다. 장편의 설정을 따왔다 해도, 단편으로 보이려면 단편 자체로 완결성이 필요합니다. 인물이 자기 존재에 대해 고뇌하는데, 이런 고뇌를 말 몇 마디로 풀어서는 독자를 이해시키거나 설득할 수 없습니다. 대사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실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보여줘야 합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느낌입니다. 꾸준히 쓰는 걸 압니다. 이보다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비의 행성 - 숨 쉬는 돌

A : 이유는 알 수 없지만(어쩌면 크툴루 때문에?) 몹시 신경이 사나워진 여인 옆에서 고생하던 인공생명체가,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음악을 연주하여 주인의 마음을 안정시킵니다. 하지만 이 음악은 근처에 사는 크툴루에게 들리고, 주인공은 고뇌에 빠집니다. 출렁이는 바다와 쏟아지는 비, 그리고 기계적이지만 헌신적인 주인공의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중간에 음악과 여인의 감정의 관계는 무엇일까 하며 궁금증에 사로잡혀 두근거렸는데, 알려주는 것 없이 끝나는 점이 아쉽군요.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이야기도 물론 많습니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이 대개 그러하고요. 하지만 그럴 때에는 풍경이나 정황 심리 묘사를 지금보다 훨씬 감각적이고 섬세하게 꾸며서 독자가 '그런 것 몰라도 괜찮아' 라고까지 할 수준으로 끌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B : 끝없이 비가 내리는 행성 풍경은 우울합니다. 인공지능 로봇과 여인 둘이 사는데 모선과 연결이 끊긴 후 여인이 불안정해집니다. 로봇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치유하려 합니다. 가청범위 밖에서 울리는 음악으로도, 듣지 못하면서도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매력적입니다.
아쉬운 점도 있는데요. 행성의 모습이 막연하고 추상적입니다. 둘이 이 행성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 탐사하는지 구체적으로 그렸다면 바깥과 연결이 끊긴 곳의 막막함과 고독도 더 살았을 듯합니다. 로봇이 여인을 위해 다각도로 헌신하는 것에 비해 여인의 감정이 독자에게 충분히 와 닿지 못하는 점도 아쉽습니다. 향수병 같기도, 그저 토라진 철부지 여자아이 같기도 합니다. 미지의 행성에 로봇과 단 둘이 탐사를 위해 떠난 사람이라면, 많은 교육과 위기에 대처하는 훈련을 받은 사람이어야 자연스럽습니다. 그것도 로봇에게 ‘윤리와 감정과 직관’을 더하기 위해 온 존재라면 더 그럴 텐데, 너무 아이처럼 행동하니 인물의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로봇이 여인에게 헌신하는 만큼, 여인의 감정과 배경도 현실감 있게 그린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걸 깜박 했네 - 그리메

A : 몇 가지 흥미로운 설정은 있습니다만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네요. 전자파 발생으로 전등이 꺼진다는 가설이 등장하다가 폴더가이스트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더니 건전지 없이 말하는 헬로 키티가 등장합니다. 헬로 키티의 문제는 나름대로 마무리가 되지만 전자파와 폴더가이스트 사건은 이 짧은 글 안에서도 기억 저 너머로 날아가네요. 중심사건이 아닌 주변묘사에 공을 많이 들여서, 단편이라기보다는 앞으로 이런저런 설정을 갖고 시리즈물을 전개할 긴 이야기의 서막……을 시작하려다 마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그렇다 해도 아직 독자의 눈을 끌만한 요소는 보이지 않습니다.
장편에서는 이런 글쓰기가 허용될 수도 있습니다만, 단편은 간결성과 통일성이 많이 요구되는 문학입니다. “만약 어떤 장면이 이야기를 발전시키지도 주인공을 변화시키지도 않는다면 삭제하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는 단편을 위한 격언입니다만. 이 격언을 생각하며 작품을 한 번 퇴고해 봐 주세요.

 

B : 준지와 미수, 두 인물이 실제 주위에 있을 법하게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여자친구의 마음도 몰라주고 엉뚱한 소리를 내뱉는 짓궂은 남자친구 모습이라거나, 토라지는 여자친구 모습 등등이 귀엽습니다. 배경이 되는 학원 이야기도 사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각 인물의 성격과 앞으로 일어날 사건도 잘 보여줍니다.
학원에서 미수의 수업 시간에만 전등이 나가고, 기괴한 꿈과 꿈속의 존재가 등장하며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기대하며 읽었는데, 남자친구인 준지다운 엉뚱한 대사로 끝나 허무했습니다. 전등을 직접 교체해본다는 현실적인 해결 방안도 흐지부지 되었고요. 글에서 서술한 사건은 어떤 식이든 해결을 보아야 합니다. 그럴 수 없다면 넣지 말아야 합니다. 기왕 현실에 비현실을 섞었다면, 둘 중 어느 쪽에든 강세를 두어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 나가 마무리 지었다면 재미있는 글이 나왔을 듯합니다.

 


동충하초 - 하루만 허세

A : 베란다에서 버섯과 동충하초를 기르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학대를 겪은 주인공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장례를 치릅니다.
어려운 소재를 가져온 어려운 글입니다. 그래서 괜찮은 필력으로 쓰셨음에도 삐걱거리는 부분이 많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학대하고 딸을 강간했다.” 처참하고 비극적인 일이지만, 또한 참으로 흔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역설적이게도 이 사실을 단순히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독자의 공감을 얻기 어렵습니다.
이 소설에서 작가의 시선이 가장 깊이 들어가는 부분은 남편과 아내의 평화로운 일상이고, 가장 비극적인 부분에 이르러 작가는 민망함을 느끼며 서둘러 지나갑니다. 실은 그 반대여야 할 겁니다. 비극의 순간의 묘사는 짧아도 좋습니다만 정면으로 직시하며 바닥까지 빠져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전에 등장인물이 먼저 미쳐 날뛰면 안 됩니다. 순식간에 독자를 멀어지게 합니다.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 작가라 조금 무리한 요구를 해 보았습니다. 건필을 기원합니다.

 

B : 가족 내 폭력을 다룬 어려운 이야기였습니다. 영희와 철수가 나누는 대화도 어색하지 않았고, 따뜻한 남편과 좋은 가정을 이루었으면서도 남편에게 말하지 못하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로 고통 받는 영희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빠가 죽은 후, 겨우 1년 남짓 살고 죽은 엄마의 모습도 마음 아팠습니다. 남편 또한 아내가 감춰 온 면이 드러난 순간 당황하지만, 그래도 포용하려 하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다만 문장이 과거형과 현재형을 오가고, 시점이 3인칭과 1인칭이 섞인 부분이 어색합니다.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인데 ‘영희’와 ‘철수’라는 교과서에 흔히 등장하는 이름을 써 몰입도가 떨어집니다. 집안일에 보탬이 되지 않는 오빠들에 대한 서술도 막연하고, 아빠가 죽은 후 엄마는 어땠는지, 엄마의 모습도 보이지 않습니다. 영희의 삶에서 긍정적인 부분을 구체적으로 그린 이상으로 어두운 부분도 끝까지 파고들어 명확하게 서술하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겨울. 꿈 - 서호

A : 한편의 동화와 같은 글입니다. 무리 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법’은 주인공에게 어떤 의미인지, 스메트르 삼촌과 트로이메나는 누구인지, 눈 덮인 밖으로 나간 소녀의 여정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한편의 꿈처럼 이유도 모르고 앞 일도 기약할 수 없이 흘러갑니다.

 

B : ‘겨울, 꿈’에는 귀엽고 순수한 소녀, 마법을 쓰는 신비로운 여우, 눈 쌓인 아름다운 풍경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인물과 배경은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갈등/사건/위기가 없습니다. 혼자 있다 심심해진 소녀가 밖으로 나가 차를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돌아온 걸로는 단편 소설이 되지 못합니다. 소녀가 보호자 없이 홀로 집을 나갔다면, 하다못해 한 번 넘어지기라도 해야 합니다. 또한 등장하지 않는 인물은 빼야 합니다. 모리라는 이름이 나왔다면, 모리가 최소한의 어떤 역할을 해야 합니다. 모리가 없더라도, 혼자 있기 심심하면 나갈 수 있습니다. 등장했다면 그 이상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소재와 인물, 배경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에 대해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늘 반대지점이 필요합니다. 소녀의 순수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면, 순수함에 반대되는 무언가가 등장해야 합니다. 이 이야기가 소녀가 외출했다 돌아온 이야기로 끝난 건, 다른 말로 이 소녀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글을 쓰기 시작한 무렵에 하게 되는 조언, 다른 말로 글을 시작하는 방법은 비슷할 수밖에 없습니다. 글을 쓰신 분의 실제 관심사에서 이야깃거리를 찾아주세요. 소설을 쓰기 위한 소재를 너무 먼 곳에서 찾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날 친구와 함께 놀러갔던 일로도 훌륭한 단편 소설이 나올 수 있습니다.

 


주점 - 오큐먼

A : 가끔 단어 하나만으로도 작품 전체에 편견이 생겨 머릿속에서 지우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첫 문장에 등장한 ‘중세 판타지 세계’와 ‘모험가 복장’, 그리고 초반에 등장한 ‘용병녀’였습니다. 21세기 현대 인터넷 용어인 듯한 용병녀는 넘어가겠습니다만, 어떤 중세이며 어떤 판타지 세계이며 어느 지역의 어떤 모험가 말입니까? 간단히, 누군가 “현대 현실 세계”라고 누군가 희곡 앞머리에 써 놓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현대 현실이 어떤지 모르는 사람도 있나.”하고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톨킨과 D&D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 한국에서 흔히 유행하는 중세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하셔도 물론 상관은 없습니다만, 그런 경우라 해도 자신만의 언어로 다시 묘사해주세요. 같은 세계를 상상한다 해도 작가가 만들어내는 세계는 작가마다 모두 다릅니다.
소설의 형식을 갖추지 않으셨으니 기술을 평가하기는 어렵고 구성과 내용을 보아야 하겠습니다만, 소년과 노인이 하는 이야기는 두 사람이 언급했듯이 흔한 이야기로 보입니다. 소설은 흔한 이야기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만, 이 글은 그런 도움을 받을 길이 없군요.
희곡이라고 해서 안이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희곡이나 대본은 무대에 올려지거나 영상화되었을 때 가장 강렬한 형태로 독자를 사로잡는 문학입니다. 무대장치나 배우의 등장방식, 현실적으로 구현이 가능한 연출을 독자가 상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혹은 대사의 화려한 수사로 현실적인 연출의 한계를 커버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고려하지 않은 희곡을 쓰셨다면 서술을 쓰기 귀찮아 희곡의 형식을 빌린 것이고, 지극히 안이한 글쓰기를 하셨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B : ‘친구 연습하라고 쓴’ 글을 굳이 평해야 하는지 고민했습니다. 습작 단계에서 글이 미숙한 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최소한의 성의를 갖춘 글을 올리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글을 쓴 분부터 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소설 형식을 갖추지 못했고, 그렇다고 시나리오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노인과 소년의 대사를 ‘노인’, ‘소년’으로 치지도 않고 ‘노’, ‘소’라고 표기한 건 무성의합니다. 노인과 소년이 나누는 이야기 역시 흔한 판타지 소설 소재를 늘어놨을 뿐 흥미롭게 읽을 부분을 찾기 어렵습니다. 이야기도 너무 산만해 줄거리를 제대로 따라가기 어려웠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이 글은 텅 빈 글이라는 겁니다. 본인이 이제껏 읽어온 이야기들에서 나온 글이기 때문입니다. 죽음, 배신, 사랑은 어려운 주제입니다. 그런데 글을 쓴 분이, 죽음, 사랑, 늙어감, 배신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본인이 실제 아는 이야기에서 습작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배경을 잘 아는 곳으로 하고, 인물 또한 글을 쓰는 분의 나이와 비슷한 사람이나, 주변에서 모델로 삼을 만한 사람을 찾아 그린다면 현실감 있고 생생한 글이 나올 겁니다. 더불어 무엇보다 글을 쓰는 사람의 관심사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글은 진심을 다해 써야 합니다. 본인의 삶에서 기쁜 일, 힘든 일, 더 나아졌으면 하는 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막막한 일, 내가 생각해도 잘 한 일, 그런 일에서부터 소재를 찾는다면, 최소한의 진정성을 갖춘 글을 쓸 수 있을 겁니다.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맑고 흐림을 논하다 - 먼지비

A : 논어나 맹자 어딘가에 들어있을 만한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로, 두 사람의 대화로 이루어진 가벼운 습작이며 단상입니다만 필력이 출중하고 그 표현과 비유가 아름다워 깊이 빠져들어 읽었습니다. 완전무결하고 이상적인 것이 아니면 나머지는 다 그게 그거고 다 똑같으니 피장파장이라는 생각은 이 나라 전반에 만연해 있으며, 그것이 어쩌면 충분히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을 수도 있는 세상을 점점 더 탁한 진흙탕으로 끌어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B : 읽는 내내 눈을 떼기 어려운, 아름답고 정갈한 문장이 돋보이는 글이었습니다. 다만 화자는 그저 듣고 수긍하니, 거울을 앞에 두고 하는 혼잣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훈계로 끝나는데, 독자들만이 아니라 세상 누구도 훈계를 듣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주제는 말하지 않고 보여줘야 합니다. 깨달음을 주는 말을 읽는 게 아니라 느껴야 합니다. 아름다운 그릇에 반만 요리한 음식이 올라온 격이라 아쉽습니다.

 

 


 

댓글 3
  • No Profile
    숨쉬는 돌 13.06.01 10:45 댓글

    심사평을 읽으니 글을 계속 더 쓰고 싶은 의욕이 생깁니다.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

  • No Profile
    그리메 13.06.01 14:22 댓글 수정 삭제

    감사합니다. ^^ 도움이 커요.

  • No Profile
    하루만허세 13.06.01 15:46 댓글

    도움이 되었습니다. 써놓고 수십 번 이상 읽은 글이라 감흥을 잃어 감각이 없는 상태였는데,

    평을 보니 문제점을 생각하며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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