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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내용

안녕하세요, 9월 독자우수 단편 선정을 맡은 새로운 선정단 인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2기 선정단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뒤를 이어서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3기 독자우수단편은 1조와 2조가 격달로 진행합니다. 이번 9월 달의 심사는 1조인 콜린님, 그리고 날개님이 진행하였습니다. 서버이전 기간으로 인해 업데이트 날짜는 늦어졌으나 예정대로 9월 15일에 올라온 글까지 심사를 했습니다. 이후부터 11월 15일까지 올라온 글이 한꺼번에 심사되어 11월 말에 결과가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2조인 10월, 11월달 심사는 김보영님과 앤윈님이 수고해주시겠습니다. (2기와 마찬가지로 심사단 A와 B는 무작위로 바뀝니다.)

심사 규칙은 2기 독자우수단편 선정단과 동일하게 A4 5장 미만은 분량 미달로 심사 제외했고, 원고지 150매 이상은 분량 초과로 제외하였습니다. 다만 다음 달 부터는 원고지 150매 미만은 분량 미달 없이 모두 심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선정단으로서의 첫 번째 달을 맞아 어떤 글을 만날 것인지 그리고 최선을 다해 잘 평할 수 있을 지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다양한 장르와 소재의 글이 등록되었고, 모든 작품이 평균 이상의 수준을 이룩한 글이라 평하고 싶습니다. 글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장르 소설을 읽는다는 것 그리고 쓴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1편의 글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이었지만 한편으로 조금씩 부족한 부분이, 하나의 단편을 읽었을 때의 성공적인 쾌감이나 경이감을 느끼기에는 다소 부족한 면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아쉽게도 당선작을 고르지는 못하고 가작 세편을 선정했습니다.


112호에서는 가작으로 먼지비님의 ‘갈매움과 돗뫼’, 유이립님의 ‘머니게임’, 야경군흑아님의 ‘우주 시대의 고찰’을 선정하였습니다. 다음 달에도 작가분들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8월 16일부터 9월 15일 자정까지 올라온 총 12편의 글 중 심사대상이 된 글은 11편이었습니다. 심사대상에서 제외된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분량미달:
   여름의 최후-이상혁(원고지 23매)



로부전 勞婦傳 - 룽게

A : 로부전은 '이야기의 힘'에 대한 단편입니다. 단편은 많은 분량을 할애해 학인, 여진, 약현, 임금 등의 등장인물과 그들의 관계에 대해 서술하지만, 진짜 사건은 이들의 관계에서가 아닌 약현이 쓴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로부전'을 가운데 두고 만난 임금과 약현이 대화 끝에 각자가 가진 가치관이 충돌하는 순간, 이야기는 독자를 숨 막히는 긴장 속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러나 파국으로 결론날 것 같던 상황은 그렇지 않은 결말을 맞으며 예상치 못한 코믹한 정서를 끌어내죠. 반전의 중심에는 '로부전'이라는 이야기의 재미, 그러니까 이야기가 가진 '힘'이 임금을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들었다는 작가의 농담이 있습니다. 글의 다른 요소들은, 이를테면 '기다림은 쌓이고 쌓여 갈기를 견디지 못하고 모래를 입에 넣을 지경에 이르렀다.' 같은 단단한 문장들이나 치밀하게 서술한 시대 배경 등은 이런 가벼운 결말을 예상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작가는 마지막 문장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토대를 쌓은 다음 반전을 등장시켜서 정말로 이 이야기가 가진 '힘'을 증명해 낸 셈입니다.

B :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고전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는 소설입니다. 크게 어색한 부분이 없고, 몰입도가 높은 편입니다. 형식의 특색 때문에 독자가 흥미를 가지고 이야기를 읽어나가게 됩니다. 초반에는 충청도 청원의 청천이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하여 최학인이라는 인물을 등장시킵니다. 최학인은 임금의 유시를 계속 받지만 고사를 합니다. 그에게는 여진이라는 딸이 있습니다. 여진은 지나가는 선비, 이약현을 만나 혼인을 하게 됩니다. 그 뒤 최학인은 세자의 서연관으로 입직되고, 약현은 집현전의 학사가 됩니다. 여기서 이야기는 본 궤도에 오릅니다. 최학인과 대신들의 갈등에 사위인 약현이 쓴 잡서가 꼬투리가 잡힙니다. 소설 속 소설 '로부전'이 환상성이 가득한 이야기로 흥미가 배가됩니다. 간단히 줄거리만 나열된 '로부전'의 이야기는 소설 바깥보다 흥미롭습니다. 다만, 약현의 쓴 이 '로부전'이 3권까지 나왔고 더 이어져야 하며 임금이 이 책을 읽었다는 점에서 결말이 예상됩니다. 결국 독자가 예상한 흐름대로 흘러가며 결말까지 벗어나지 않습니다. 매끄럽게 진행된 이야기의 기대가 마지막에 허무함을 줍니다. 초반 전개가 느리고 불필요한 듯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트리고, 맥이 빠지는 결말까지 어쩌면 고소설의 한 양상을 작가가 의도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단편소설이라는 양식에서의 완성도가 구성의 느슨함으로 인해 떨어지는 느낌이 있어서 아쉬웠습니다. 후반부의 긴장감을 살려서 진중하게 독자의 예상을 벗어난 결말을 맺었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수퍼좀비 히어로 - 빈군

A : '좀비' 이야기는 두 가지 방법으로 창작할 수 있을 겁니다. 하나는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바이러스나 전염병 같은 기존의 아이디어를 따라가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이죠. <수퍼좀비 히어로>는 한국적이고 초자연적인 힘을 설정해서 그것이 '걸어 다니는 시체'를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주인공이 부모의 죽음 이후 운명을 거스르려고 자신의 힘을 사용하다가 결국 좀비군단을 만들어 내고 마는 이야기를 글은 다소 과잉된 감정으로 풀어놓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해석이고 색다른 출발이지만 아쉽게도 이야기는 출발에서 끝납니다. 좀비 장르를 새로운 아이디어로 해석하려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좀비 이야기가 주는 쾌감으로는 진입하지 못하고 그 바탕만 만들어 놓고 끝나는 것이죠.
글을 읽다보면 주인공의 행동이 상당히 혼란스러워서 간혹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부모의 죽음을 겪은 주인공의 괴로움 때문이라는 내부적인 논리가 있긴 하고, 이런 혼란스러운 정서가 글이 만들어내는 감성의 일부분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조절이 필요했다고 봅니다.

B : 무당과 좀비를 엮어서 한국식 좀비 소설로 만들었습니다. 무당을 강력한 주술사처럼 묘사하고, 각종 도술과 비의를 아는 예언자로 그린 작품입니다. 발상이 눈에 띄었고, 초반의 흡인력은 바로 이 설정을 탐구해가면서 생겨났습니다. 시종일관 진지한 독백체로 이야기가 서술되는데 작품의 무게감을 주는 한편, 답답한 느낌도 주었습니다. 내용에서 야심차게 쓰인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제목의 과잉만큼, 작품에서도 너무 많은 소재를 다루려는 것 같았습니다.
  초반에 어머니가 아버지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한 노력들에 대한 설명은 흥미로웠습니다. 그런데 화자가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아버지의 비극을 아버지의 손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점에서는 위화감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이런 감정이 쉽게 이입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핍진성이 떨어지지 않나 싶었습니다. 여러 설정들이 독자를 설득하기에는 충분치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낯선 소재나 설정, 발상을 등장시킨다면, 독자에게 얼마나 간명하게 효과적으로 전달시키느냐가 중요할 것입니다.
  1, 2, 3의 구분이 어색한 느낌을 받았고, 너무 단절된 느낌을 주며 이야기의 색이 급변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한, 앞부분과 달리 이야기가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화자가 통제권을 잃듯이 소설 전체가 통제권을 잃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설 전체가 작가가 장악하지 않고, 짜임새 있는 구성이라기보다는 헐거운 스토리 나열식 이야기인 느낌이 들어 지루한 느낌도 있었습니다. 이는 서사는 그리 복잡하지 않은데, 주인공의 사고가 같은 말을 반복하고 늘리는 듯해서 전체적으로 군더더기가 많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작가가 담으려고 한 이야기가 이 분량 안에서는 쉽게 소화할 수 없는 복잡한 면이 있습니다. 운명이라는 소재, 무당, 주술, 좀비, 복수 등. 그에 반해 서사는 나레이션으로 처리되면서 플롯의 재미나 캐릭터의 흥미가 떨어져 아쉬웠습니다. 덜어낼 것을 덜어내고 다른 시점에서 시작하면 다른 결말로 이야기가 흐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제목을 보는 순간, 이 소설의 결말이 예상이 갔고, 소설은 장광설을 지나 결국 그 결말에 도달하는 느낌이라 마지막까지 읽고 감탄을 느끼는 부분이 없었습니다.


다윈과 나 - 조나단

A : 다윈과 나는 '이해'의 이야기입니다. 다른 문화권의 두 인물이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가 우연히 접촉해서 일정의 사건을 겪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최근의 영화 <아바타>를 비롯해 지속적으로 반복되어온 이야기죠. <다윈과 나>는 적으로만 생각했던 비글 족 다윈과 주인공이 만나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잔인하고 폭력적이어서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알았던 적을 직접 만나보자 정보가 대부분 잘못됐거나 타인에 의해 주입된 편견이었음을 주인공은 깨달아갑니다. 그 과정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잘못된 가치관을 의심하고 일부분 수정합니다. 이야기의 결말에서 주인공과 다윈이 사실은 주인공의 생각보다 다른 종족이 아님을, 단지 다르게 진화해서 행동양식이 달랐을 뿐임을 반전으로 밝힙니다. 그 순간 글이 주는 경이감을 통해 작가는 주인공의 편협한 가치관이 상징하는 우리 인간의 악한 면모를 독자가 되돌아보고 교훈을 얻길 원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외계인 다윈을 주인공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주인공과 정반대 성격을 지닌 인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보통의 경우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통해서 주인공이 상대방과 부딪히고 마찰을 빚다가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중요시하기 마련인데, <다윈과 나>는 내가 다윈을 지켜보면서 내 정보를 수정해갈 뿐 별다른 액션이 오가지는 않습니다. 이런 구조에서 간혹 작위적인 면이 드러나 아쉽습니다. 예를 들어 '비글'이나 '다윈' 같은 호칭도 작위성이 먼저 느껴집니다. 깨달음을 주기 위한 설정임을 독자에게 들킨다면 더 이상 독자에게 놀랍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런 요소가 아쉽습니다.

B : 외계 종족과의 만남(콘택트)을 다룬 SF 단편입니다. 이 소설 속 우주에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류와 비글(Beagle)족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테르미누스 비행단 편대에 속해 비글 족 개척행성의 지표면 전진기지를 목표로 하는 작전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비글 족의 무인 방어시스템에 노출되어 편대의 절반을 잃고 격추됩니다. 비글족 개척민은 주인공을 구해주고 치료해줍니다. 자살용 폭탄도 제거해주고, 통역 프로그램까지 설치해줍니다. 다르레이 윈도르고 어쩌고 하는 여덟 음절이나 되는 긴 이름의 이 비글족을 주인공은 다윈이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이후 주인공은 다윈의 곁에서 관찰합니다. 인류의 적인 비글족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입니다. 반대로 비글족은 인류에 대해 학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주인공이 비글족에 대해 탐구할 수록 독자 역시 한 외계 종족에 대해 이해하고 가까워지게 됩니다. 외계 종족을 설정하고, 이 설정을 설명하는 것은 작가나 독자 모두 즐겁습니다. 다만, 이런 설정만 풀어놓으면 심심할 것입니다. 이 소설은 종족 간의 차이 등을 내보이며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왠지 충분치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변화를 드러내는, 소설로 형상화하는 과정이 에피소드로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인공은 그저 관찰하고 받아들일 뿐, 어떤 이야기에 참여해서 주동적인 인물이 되지 않습니다. 사건의 주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는 밋밋합니다. 차분하고 은은한 분위기의 소설이지만 그만큼 독자에게 흡인력을 주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이야기의 초반 전쟁 양상 설명은 전형적이라 클리셰처럼 느껴집니다. 과학적 정밀함이나 특색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기체의 날개가 날아가고 행성에 불시착하는 엄청난 사건이 대수롭지 않게 간략히 서술되어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후반부 역시 갑작스럽습니다. 다윈은 갑자기 '맞이 시간'이라며 주인공을 데리고 ‘고향 맞이’를 하러 갑니다. 앞에서 암시와 복선이 약했기에 독자는 당황스럽고, 플롯의 완성도가 높지 않다고 느끼게 됩니다. 대부분의 설정은 사건이나 행동으로 보여주기(showing)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비글족 다윈이 말하고 주인공 찰스가 듣는 형태입니다. 즉, 작가가 편한, 대사로 처리하는 말하기(telling) 방식으로 쓰였기 때문에 소설이 단순해지면서 독자에게 큰 재미를 주지 못합니다. 좀더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서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형상화 되었으면 훨씬 매력적인 작품이 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로 인해 비글족의 개성이 잘 살아나지 않고, 글자로만 구성된 종족으로 느껴집니다. 진짜 먼 우주에 있을 법한 종족으로 느껴지게 하는 방식을 고민해보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에 반전처럼 다가오는 결말은 예상 범위 안에 있기 때문에 충격이나 감동이 적습니다. 또한 뒤로 가서 힘이 빠지고 급격히 마무리된 느낌이라 독자가 여운을 느끼거나 사고를 정리하기도 전에 이 세계가 닫히는 느낌입니다. 보다 다양한 사고로 이끌 수 있는 방향으로 결말이 난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대하여 - summer

A : SF에서 우주를 동경하는 청소년은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입니다. 먼 우주로 나가서 모험을 하고 성장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지닌 아이는 흥미로운 소재죠. 전쟁으로 폐허가 된 별에서 살아가는 주인공은 낯선 사람과 만나 우정을 쌓고 그에게 같이 우주로 떠나자는 제안을 받습니다. 요약하면 명확한 줄거리지만, 글 내부에서는 이런 줄거리가 의외로 중심 내용은 아닙니다. 주인공이 사는 디스토피아는 멸망한 세계이면서도 여전히 지금 한국의 동네를 움직이는 논리대로 돌아가는 곳입니다. 전쟁 때문에 문명이 퇴보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학원을 다니고 과외를 받습니다. 정말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만, 이야기 속 대부분의 논리는 어느 정도 작위성을 담보하고 있습니다. 디스토피아 세계의 이미지에 현실의 모습을 작가가 직접적으로 덧칠해 색다른 이미지를 창조하려는 것입니다. 글은 이런 이미지를 모아 이야기를 만들기 보다는 어떤 '정서'를 먼저 구현합니다. 글은 주인공의 시선으로 배경을 서술하다가 어느 순간 우주인의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우주인의 과거 이야기를 계속 듣는 단순한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플롯보다는 문장을 타고 흐르는 감성을 음미하는 것이 더 중요한 단편이기 때문에 이런 구성도 나름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지나치게 직접적인 제목이 아쉬운 글입니다. 글 어디에서도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대한 언급은 없는데 제목에만 갑작스럽게 등장했습니다.

B : 제목이 바로 소설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신데렐라 컴플렉스에 대하여'를 SF로 풀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목이 소설의 흥미를 떨어트리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피노키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AI가 제목을 '피노키오에 대하여'로 잡았다면 좀 어색하지 않았을까요.
  영생 수술이나 미래가 없는 행성 등의 소재들이 진부한 느낌을 줍니다. 소재들이 클리셰라도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새로움을 줄 수 있을 텐데, 이야기 역시 진부하게 흐르는 것 같습니다. 신선한 이야기도 아니고, 예상을 벗어나거나 깊은 울림을 주지도 않습니다. 갈등이 약한 편입니다. 인물들도 어디에도 없는 개성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 생동감이 적습니다. 기호들이 움직이는 듯합니다. 독특한 개성, 사고, 행동이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멸망하는 세계라는 점에서 수많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단편들이 생각나게 합니다. [종말 문학 걸작선 1, 2]도 떠오르는데 여기에 실린 단편들에 비해 서사, 인물, 플롯이 대체적으로 단순하고 심심한 것이 단점 같습니다. 다른 세계로 떠나느냐, 안 떠나느냐에 대한 소재를 가지고 인상적인 인물과 플롯으로 직조하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성장소설 - summer

A : 성장소설도 summer님의 다른 단편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대하여>처럼 제목에서 먼저 주제를 먼저 언급합니다. 외계 어느 행성에서 살았다가 다른 별로 유학을 떠나 공부를 하고 돌아온 주인공의 성장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배경이 되는 행성은 아주 길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우기 속에 머물고 있습니다. 마치 여름 장마에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그곳에 머물고 있는 주인공 역시 영원히 성장하지 못하는 것만 같죠. 주인공은 다른 별로 유학을 가면서 변화를 맞이합니다. 우주로 유학을 떠났다가 돌아오면 이미 몇 십 년에서 몇 백 년의 시간이 지나 있으니 배워온 지식이 소용없을 텐데도 학생들은 너도나도 훌쩍 떠나버립니다. 이런 설정 역시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대하여>의 논리와 비슷합니다. 글이 추구하는 목표도 비슷하지만, 결과는 약간 다릅니다.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대하여>가 출발을 다룬다면 <성장소설>은 긴 세월이 지난 후 돌아와서의 감정까지 다루고 있는데, 긴 시간에 걸친 이야기와 변화가 주는 감정이 더 극적이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에서 고장 나기 직전의 텔레비전을 마주할 때 독자가 받는 무거운 감정은 압도적입니다.
초반의 외계인 이야기가 글에서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점과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대하여>처럼 직접적인 제목이 오히려 글에 감정 이입을 방해하는 점이 아쉽습니다.

B : 먼 미래, 인류가 여러 행성에 살고 있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주인공이 태어난 별에는 첫 탐사대가 외계인을 만났다는 기록이 있다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백 년 후의 두 번째 탐사대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면서 신비함을 부여합니다. 독자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전형적이면서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이 존재하지 않는 외계인 유목민은 소설 전체에 내내 긴장감을 부여합니다. 필연적으로 독자는 이 존재에 대한 해명이 소설 내에 나오기를 바라게 됩니다. 그러나 이 소설이 마지막을 장식하는 방법은 단순히 다큐멘터리를 보고 주인공이 그 생각에 공감하며 기분 좋아지는 것으로 끝납니다. 전체 서사에서 도입부에 등장한 외계인 유목민이 허무하게 소비되고 끝난 기분입니다. 이를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했다면 독자들이 더 만족스럽게 소설을 읽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지나치게 얌전하고 적은 액션으로 그리고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보며 생각하며 끝내는 방식은 독자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외계인 유목민과 비슷한 장치로 지구에서 온 아이가 있습니다. 음모론을 들먹이며 역시 이 백년이 아니라 더 아득한 시간을 넘어온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신비감을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이 우주로 갔다 와서 시간이 흐른 뒤에 그 아이와의 조우는 그려지지 않고 찾을 수 없었다며 독자가 허탈감을 느끼게 처리해버립니다. 따라서 도대체 그 아이는 분위기용으로만 등장한 것인지 의문이 들고 이야기의 주제나 분위기 역시 깨져버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전체적으로 담담하게 서술되는 먼 미래 행성의 이야기가 매력적인 구석도 있었지만, 초반의 기대와 달리 후반으로 갈 수록 앞서 흩어놓은 이야기 거리들을 멋지게 승화시키지 않고 어물쩍 숨기거나 수습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제목과 달리 주인공의 성장도, 인류의 성장도, 혹은 성장의 희망도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의 내면 변화에 집중하고, 외계인 유목민과 지구에서 온 아이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서사로 그려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갈매움과 돗뫼 - 먼지비

A : <갈매움과 돗뫼>는 '한국적인 판타지'입니다. 숲의 주인인 '갈매움'은 화산 '돗뫼'를 만납니다. 갈매움은 숲을 파괴하지 말아달라고 돗뫼에게 부탁하지만 돗뫼는 들어주지 않습니다. 둘은 긴 논쟁을 이어가지만 두 인물은 자연의 두 속성을 나눠 가지고 있을 뿐이며 결국 같은 모습의 자연입니다. <갈매움과 돗뫼>은 한국적 고유명사를 사용하고 이야기의 원형을 신화와 자연에서 가져오고 있습니다. 플롯 자체는 극히 단순하며 예측 가능합니다. 의외의 지점이라면 강대한 화산이며 갈매움보다 힘이 더 세고 나이가 많은 것 같은 돗뫼가 어린 소년의 외모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 정도라고 하겠습니다. 단순한 이야기를 채우는 건 고도로 세공된 문장의 독특한 느낌입니다. 리듬을 따라 흘러가는 문장은 화산이 분화하는 순간 가장 강렬한 이미지를 쏟아내며 결말에 이르면 자연에게 보내는 거대한 찬사로 변화합니다.
'한국적 판타지'는 국내에 판타지 소설이 등장하면서부터 일종의 화두였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판타지 소설에서 한국만의 어떤 것을 확립하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꼭 한국적인 판타지만이 훌륭하다고 주장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새로운 미학을 추구하는 태도는 그 어려운 과정을 고려할 때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 점은 확실합니다.

B : 정련된 문장과 화려한 묘사가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분량에 비해 서사는 단순한데도 독자를 빨아들이는 힘이 있었습니다. 이 흡인력은 뚜렷한 갈등을 끝까지 밀어붙인 힘 덕분일 것입니다. 이 단편에서 보여지는 세계는 마치 변증법적이면서 한편으로는 생극론에서 상생과 생극의 싸움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흰머리산의 주인인 신령 갈매움과 화산신 돗뫼의 마주침과 대결을 그리고 있습니다. 두 명의 인물만 등장하고, 초자연적인 힘의 대결을 묘사하는 것에 그친 소품입니다. 게다가 작가 후기에서 밝힌대로라면 재해석본인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일관성 있게 이어집니다.


세계의 끝 - JH
A : 서간체 형식의 글입니다. 장편에서는 어려운 형식이지만 단편으로는 소재를 잘 선택하면 더 쉽고 친숙하게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세계의 끝>은 주인공이 편지를 받는 상대방에게 졸업식에서 느꼈던 짧은 감정에 대해,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감정을 오랜 시간이 지나난 후에도 떨쳐버릴 수 없었던 자신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주인공이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실행한 게임 이야기가 겹쳐집니다. 게임 속에서 겪은 일이지만 그 감정은 진실한 것이었다고 주인공이 주장하기 때문에 독자에게도 여전히 흥미를 던져줍니다. 독자는 게임이 종료되는 순간 편지의 내용도 끝날 것이며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리라는 기대 아래에 글을 읽어나갑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주인공이 졸업식에 느꼈던 찰나의 감정이 설명하기 미묘한 것이기 때문에 이야기가 결말을 맺는 순간의 쾌감이 크지 않다는 점입니다. 주인공도 당시의 감정을 혼란스러워하고 편지를 통해서도 중언부언하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논리는 성립합니다만, 그 혼란이 글을 읽는 즐거움을 깎아내는 점은 아쉽습니다.

B : 계속 말을 거는 형식으로 단편 하나를 쓰는 것은 쉬운 작업은 아닙니다. 작가는 자연스럽게 지루함을 유발하지 않고 작품을 이어나가고 있는 편입니다. 내용은 가상현실 게임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가상현실은 아니지만 게임을 소재로한 단편이라서 그런지 몇몇 설정에서 42호에 올라온 곽재식님의 {콘도르의 날개}를 떠오르기도 한 작품입니다.) 이 가상현실 게임은 매번 악의 세력이 설정되고 한번 엔딩을 볼 때마다 리셋이 되는 시스템입니다. 약간은 인위적인 설정이라고 느꼈습니다. 작가가 소설을 쓰기 위해서 너무나 편리한 가상현실 게임을 설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교실에서 도미노를 했다는 것도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런 게임이 실제로 있을 법하다고 느끼기 힘들었던 것처럼, 교실에서 뜬금없이 도미노를 한다는 상황이 실제로 있을 법하지 않았습니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상황 제시가 소설에 몰입하기가 힘들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화자는 편지를 보내는 대상과 똑같이 생긴 여자를 가상현실 게임의 NPC로 봅니다. 그리고 그 NPC 때문에 게임을 클리어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단 하나의 엔딩만 있는 게임에서 끊임없이 유예하는 설정은 흥미로웠습니다. 그러나 그 설정 뒤에 결말까지 가는 전개는 평이했고, 결말은 와닿지 않았습니다. 화자가 갑자기 깨달음을 얻은 지점도 이상했고, 그 깨달음이라는 게 진부하고 재미를 떨어트리는 지점인 것 같았습니다.


머니 게임 - 유이립

A : 단도직입적으로 시작해 빠른 속도로 돌진하는 글입니다. 글은 '욕망'을 이야기 합니다. 주인공은 영웅이 되고 싶은 욕망과 돈을 벌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온라인 게임에 빠져 살아갑니다. 두 욕망은 같은 욕망인데, 우리 시대에서 영웅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방법 중 하나가 많은 돈을 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영웅'이 되는 과정도 방법도 위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단지 아직 기회만 만나지 못했습니다. 주인공은 게임 속에서는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 같은 리더일지언정 사이버 세계에서만 그럴 뿐이고 현실에서는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이해 받지 못하는 실업자입니다. 그에게 큰돈을 거머쥘 기회가 찾아오면서 그의 움직임도 이야기도 속도감을 내면서 달리기 시작합니다. 돈을 손에 쥐느냐 마느냐, 이야기는 그것에만 집중합니다. 욕망을 향해 돌진하는 인물을 어떻게 움직여야 인물을 지켜보는 독자가 스릴을 느낄 수 있는지 유이립님은 그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반드시 파티를 이뤄야만 게임을 할 수 있지만, 같은 파티의 누구에게 배신을 당할지 누가 실수하는 바람에 모두가 들인 노력과 돈이 헛수고로 변할지 몰라 모험은 아슬아슬하게 흘러갑니다. 차례대로 단계를 거쳐야 맨 마지막의 큰돈을 얻을 수 있는데 그 와중에 주인공은 실패와 성공을 반복합니다. 마지막까지 주인공의 욕망은 쉽게 충족되지 않고 심지어 정말로 그곳에 큰돈이 있는지도 확실치 않습니다. 이야기를 읽다가 보면 이런 시스템 안에서 영웅이 되기 위해 발버둥 쳐야하는 주인공이 안타깝고 게임 시스템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품게 되는데, 정말로 주인공은 최종 보스로 시스템 관리자를 만납니다.
글 속 게임의 설정이나 여러 디테일들이 현실과 차이가 날 수는 있지만, 주인공이 사고 싶어 하는 부동산이나 주인공이 이용하는 사채 같은 욕망의 방향은 실제로 우리 곁에 존재합니다. 우리 시대의 욕망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낸 글입니다.

B : 온라인 게임을 소재로 한 게임소설입니다. 온라인 게임으로 돈을 버는 설정에 집중해서 쓰인 작품입니다. 분량이 긴 편이지만 끝까지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시원스러운 대사가 잘 쓰였고 전개가 빠른 편입니다. 돈을 욕망하는 인물들 덕분에 전개가 빠릅니다. 다만, 문장이 거칠고 구성이 헐거운 느낌도 있습니다. 쉬지 않고 이야기 전개에만 집중한 느낌입니다. 이런 글은 불필요한 사건과 인물을 제거해서 압축하거나 아니면 아예 묘사와 설명을 추가해서 이야기를 풍부하게 하는 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진짜 있을 법한 온라인 게임을 세밀하게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뭉뚱그려서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온라인 게임을 배경으로 합니다. 단편임에도 꽤 많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인 정호의 속물적인 캐릭터성은 잘 살아있고, 갈등을 일으키는 곤잘레스도 잘 살린 느낌입니다. 다른 캐릭터들도 똑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가독성 높은 흥미 위주의 작품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잘 읽힐 단편인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이야기가 내포할 수 있는 은유가 다양할 수 있는데 뼈대만 있는 것처럼 이야기 전개에만 급급해서 여러 가능성을 죽인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주시대의 고찰 - 야경꾼흑아

A : <우주시대의 고찰>은 섹스코미디입니다. SF에서만 가능한 설정으로 섹스코미디를 만들었는데 결과적으로는 효율적인 조합이었습니다. 주인공 김성수영호민식은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돈도 잘 벌고 멋진 근육도 가지고 있지만 세 개의 머리 때문에 여자와 섹스에 성공한 적 없습니다. 머리 셋 달린 주인공은 그 자체로도 희극적인 소재지만 상징을 구체화한 이미지기도 합니다. 사교성 없고 잘난 줄만 아는 두 개의 머리는 남성들이 마음속에서 품고 있지만 겉으로 말하지는 못하는 욕망을 아무 생각 없이 밖으로 쏟아내는 존재입니다. 그들 때문에 겪는 실패와 좌절은 남성이 여성 앞에서 자신이 초라해 보일 때 느끼는 자괴감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초반의 배경 설명이 끝나면 이야기는 주인공이 섹스를 하느냐 못 하느냐를 두고 본격적으로 움직입니다. 글은 때로는 주인공을 불쌍히 여기면서 때로는 주인공을 조롱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섹스에 집착하는 평면적인 성격의 남성 주인공 맞은편에는 역시 평면적인 여성들이 있습니다. 남성을 위해 무한히 희생하는 자애한 사랑을 표현하는 로봇 엄마가 있고, 남자와의 관계를 일종의 거래로만 생각하는, 그래서 정말로 처녀성을 돈으로 환산해서 거래하려는 에이미 박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에서는 '얼마나 웃길 것인가'가 글의 목표일 텐데 글은 세 머리가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성공적으로 유머를 끌어냅니다. 이야기는 주인공의 좌절로 마무리 지었습니다만, 어쨌든 글은 주인공에게 다소 성장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독자에게는 즐거움을 확실히 안겨줍니다.

B : B급 정서로 쓰인 우주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잘 읽히는 작품입니다. 대화 위주로 쓰여서 가독성이 뛰어납니다. 이야기 전환이 빠릅니다. 거침없이 전개가 인상적입니다. 예측을 벗어난다기 보다는 예측할 틈이 없을 정도로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됩니다. 서술로 비약을 하면서도 크게 어색하지 않습니다. 블랙 코미디를 의도한 글처럼 읽히고 쓴웃음이나 헛웃음을 많이 짓게 됩니다. 독자에 따라서는 취향을 많이 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이야기 이상이 없어서 아쉽기도 합니다. 큰 웃음도, 인물의 매력도, 풍자의 매력도 적은 편입니다. 조금 더 구성을 정돈하고 이야기의 층위를 만들었다면 더 풍부한 소설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이어지고 들러붙다 - 나폴마틸다

A : <이어지고 들러붙다>는 한국적인 분위기에 전형적인 판타지 이야기를 결합한 '한국적인 판타지 소설'입니다. 한때 영웅이었지만 실패하고 세상에서 유배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주인공은 자신과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세상으로 나갑니다. <이어지고 들러붙다>의 문장은 짧고 건조하며 이야기를 힘과 속도감 있게 전달합니다. 대신 독특하게도 대화에서 사투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발상인데도 상당히 색다른 도구로 보입니다. 사투리는 한국적인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인물의 감정을 개성 있게 표현하는 두 가지 성취를 동시에 이루고 있습니다. 고유명사에도 한국적인 단어를 사용했는데 복잡한 설정이 배경에 있는 것 같으나 글에서 모두 다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려면 글의 분량이 너무 길어졌을 것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설정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독자를 낯선 세계로 친절하게 안내해야 하지만 설정을 설명하다가 독자를 지루하게 만들면 안 되는 까다로운 난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어지고 들러붙다>는 주인공이 싸우는 마물들을 절대 악으로 설정해 이를 일부분 해결했습니다. 설정이 어렵고 마물의 정체를 잘 모르겠더라도 일단 주인공이 해치우는 되는 괴물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점점 더 큰 전쟁을 향해 나아가고 결국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의 속의 영웅이 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아버지의 명예도 구원하고, '원래 그렇다'는 무녀의 대답 속에서 마음의 안정도 찾습니다.
한국적 판타지는 미학적인 완성도와 재미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어지고 들러붙다>가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뤘는지 최종적인 판단은 독자의 몫이겠으나 그 도전은 높게 평하고 싶습니다.

B : 순우리말을 사용한 용어들과 '귀신잡이군' 같은 특이한 직업이 독특한 동양풍 환상소설의 배경을 그립니다. 또한, 대사를 사투리로 처리해서 색다른 정서를 전달합니다. 그대신 가독성이 떨어집니다. 일반적으로 독자들이 흥미를 느끼기 힘들고, 사건 내용을 따라가기도 힘들어 보입니다. 서사가 복잡하지는 않으나, 쉽게 이해되어야 할 대사가 가장 해독이 쉽지 않으니 작품이 전체적으로 난해하게 보입니다. 낯선 설정으로 가득찬 소설인데 단편 양식의 한계인지 설명이 불충분한 면이 있습니다. 세계관 자체가 독자의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효과적으로 간명하게 세계관을 전달할 수 있었으면 훨씬 좋았을 것입니다. 현재로써는 묘사와 설명이 많이 부족한 느낌입니다. 요괴나 괴물이라고 간단히 적고 넘어가기보다는 실제로 손에 잡힐 듯한 묘사와 체취가 느껴질 정도로 생동감 있게 그려졌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비록 세계관 전체의 모습을 조명할 수는 없겠지만, 이 작품 속 인물에 빙의되어 가상현실을 체험하듯 둘러보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세계관의 특색과 달리 서사는 밋밋한 감이 있어서 아쉬웠습니다. 전형을 비틀어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거나, 혹은 다루고자 하는 주제에 더 깊이 천착해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소년 - 징이

A : 소년은 생략과 생략 사이의 여운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도입부도 낯설게 시작하고 결말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정체도 주변 인물들의 사연에도 많은 생략이 존재하며 시대 배경도 알기 어렵습니다. 사실 무슨 이야기인지도 파악하기 어렵죠. 소년이 겪는 사건이 나름 강렬한 이미지의 연속이긴 합니다. 차갑고 어둡고 비정하며, 소년은 살아남기 위해서 움직이다가 끊임없이 위험에 빠져듭니다. 소년을 둘러싼 세상은 상당히 잔혹하며 소년은 언제 세상에게 잡아먹힐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사실적이라기보다는 절반 정도는 신화적인 이야기이고 은유적으로 보입니다.
독특한 감성을 구축한 글이기 때문에 독자에게 낯선 체험을 하려는 목표는 이룬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글이 주려는 최종 목표가 그것이었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초반에 등장하는 불을 찾는 소년 이야기처럼 신화적인 이야기의 재현인지, 인간의 삶이나 성장의 고통을 어두운 이야기로 은유한 것인지, 아니면 독특한 이미지로 엮은 이야기를 읽는 쾌감을 주려는 것인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B :   말똥구리라는 이름의 야만족 소년이 주인공인 소설입니다. 세계는 원인모를 추위가 뒤덮은 설원입니다. 초반 회상씬에서 할아버지가 신화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신화 속에서는 한 소년이 불꽃을 찾아 남쪽으로 떠났다고 말합니다. 소년은 야만족을 잡아 먹은 강도에게 붙들리기도 하지만 늑대 덕분에 도망쳐 한 노인의 집에 당도합니다. 원시적 문양의 옷감을 짜는 법을 배우다가 다시 과격파의 방문에 소년은 노인이 숨겨둔 총을 가지러 가고, 그 사이 노인과 오두막은 불타버립니다. 이 소설은 친절하지는 않습니다. 소년이 왜 혼자 설원에 살아가게 된 것인지, 할아버지는 어떻게 되었는지, 할어버지의 이야기 속 소년은 어떻게 되었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게다가 장면들이 짧아서 영화의 씬으로 보자면 짧은 씬들의 연속이라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습니다. 동일한 성질의 씬들이 모여서 하나의 시퀀스를 구성해야 하는데, 각기 다른 씬들이 붙어 있는 느낌이 듭니다. 짧은 문장들 사이에 툭툭 정보를 몇 개 주고 끝납니다. 이 불친절함 때문에 한 번 읽고 나서는 인물 관계도나 세계관, 스토리를 한 번에 이해하기 힘듭니다. 몇 번 되풀이해서 읽어야 겨우 윤곽을 잡게 됩니다. 하나의 문단이 집중해서 정보를 전달하는 것과 한 두 개의 문장으로 곳곳에 정보를 박아넣는 것은 독자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큰 차이를 느끼게 합니다.
  이 소설 속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자세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일종의 분위기만 느낄 수 있습니다. 야만족 소년이 할아버지와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지만 다른 이들과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 마지막까지 강조되어 묘한 울림을 줍니다. 이 소통의 부재가 이 소설의 긴장감을 줍니다. 야만족의 설화 속에는 세계가 이 모습이 된 이유와 불꽃을 찾으러 간 소년이 등장합니다. 소년은 어쩌면 이후 남쪽으로 가서 불꽃을 되찾아오는 소년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은유를 작가가 같은 '소년'이라는 호칭으로 부름으로써 의도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노인이 마술사가 살았다며 소년의 할아버지를 언급하는 부분에서도 묘한 정서가 생성됩니다. 그러나 모든 게 모호한 면이 더 큽니다. 긴밀한 구성이라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장치들이 곁가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소년은 주인공이지만 이야기를 듣고, 도망치고, 또 도망치다가 착한 사람들을 만나 이동하게 되면서 끝납니다. 플롯에서 상징적 연결 말고는 큰 재미를 느낄 부분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주체적이지 않고 상황에 휩쓸려 갈뿐이고 별다른 의지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소설이 심심하고 밋밋합니다. 독자가 재미를 느낄 부분이 적고 소설 전체가 무기력한 느낌을 줍니다. 소품인 느낌이 있고 답답한 면도 있습니다.

112호 독자 우수단편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거울 독자우수단편에 선정되신 분들께는 책을 한 권씩 보내 드립니다. euseoha @ gmail. com 으로 우편물 수령할 주소, 성함, 전화번호 (택배 발송시 필요)를 보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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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6월 심사평 및 2분기 우수작 안내4 2018.07.15
선정작 안내 5월 심사평2 2018.06.15
선정작 안내 4월 심사평1 2018.05.15
선정작 안내 3월 심사평 및 1분기 우수작 안내2 2018.04.15
선정작 안내 2월 심사평2 2018.03.15
선정작 안내 심사평2 2018.02.15
선정작 안내 2017년 최우수작 안내 2018.01.15
선정작 안내 12월 심사평 및 2017년 4분기 우수작 안내 2018.01.15
선정작 안내 심사평4 2017.12.15
선정작 안내 업데이트 일자 변경 안내 2017.12.02
선정작 안내 심사평1 2017.10.31
선정작 안내 심사평 및 2017년 3분기 우수작 안내 2017.09.29
선정작 안내 심사평1 2017.08.3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후보작 심사평3 2017.07.3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후보작 심사평1 2017.06.30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선정3 2017.05.3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후보작 심사평 2017.05.01
선정작 안내 심사평2 2017.03.3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후보작 심사평1 2017.02.28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후보작 심사평 2017.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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