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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12월 독자우수단편 선정단 박애진과 김이환입니다. (A와 B는 계속 바뀝니다)

추운 날씨와 많은 약속 때문에 글쓰기 쉽지 않은 연말입니다. 다들 건필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혹은 내년의 계획을 위해 잠시 충전 중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올 한해 거울 독자단편 게시판에는 끊임없이 글이 올라왔고 그 중에는 멋진 단편도 많았습니다. 심사를 하는 입장이지만 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내년에도 올해처럼 좋은 단편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1월 16일부터 12월 15일까지 올라온 8편의 단편 중 심사제외를 신청한 두 편을 제외한 6편을 심사했습니다. 이번 달에는 위래님의 <쿠소게 마니아>를 우수작으로, 유이립님의 <화초가>를 가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악녀와 요술사 - 니그라토

A : 비문이 많고,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는 단어가 많이 보입니다. 기본기를 다질 필요가 있습니다. 전체로 보아 글이 너무 얕습니다. 글을 쓴 이가 독자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만, 이 글을 다 읽은 첫 느낌은 무성의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글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몇 마디로 풀어버렸는데, 읽는 이들은 몇 줄의 말로 공감하지 않습니다. 버리다시피 헤어진 애인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아룬도, 허무한 죽음을 맞는 어머니도 고속도로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처럼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축제를 즐기러 나온 마을 사람들, 복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여동생의 선택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데, 죽음에 무게가 없습니다. 그러니 드미뜨가 세레나의 목을 치는 장면도 아무 희열이 없습니다. 

B : 언뜻 보면 전형적인 장편 판타지 소설의 도입부 같습니다. 악당이 마을을 불사르고 이 와중에 가족을 잃은 주인공은 복수를 다짐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형적이지 않은데, 글을 구성하는 작은 부분들에서 이상한 점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결말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글을 바꿔놓는 이 이상한 요소는 인물들의 감정을 다루는 작가의 태도입니다. 글에는 인물들의 감정이 삭제되어 있습니다. 아룬과 레아가 헤어질 때 ‘목 놓아 울었지만 그 밖의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는 레아의 반응이 그렇고, 아룬이 마을 사람들을 죽일 때의 태도, 아룬이 죽었을 때 레아의 감정, 레아가 죽었을 때 드미뜨의 감정 등이 그렇습니다. 인물의 감정이 잘 설명되지 않았거나 설명하지 않고 있으니, 독자 역시 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차이들이 평범하게 시작한 글을 결말에 이르면 이상한 뒷맛을 주는 글로 바꿔놓습니다. 때문에 글에게 좋은 인상을 받기 어려웠습니다.



이상향 - 깨진 유리잔

A :묘사와 서술을 아름답게 하고자 공을 들였는데, 비문이 많습니다. 일단 문장을 올바로 쓰는 법을 익히시기 바랍니다. 소년은 미대를 준비하는 학생인 듯 하고, 불확실한 앞날에 대해 괴로워하다 절망하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꿈처럼 추상적인 장소를 서술할 때에도 공간을 구체적으로 서술해야 합니다. 문이 없다, 나갈 곳이 없다, 고 서술하지 마시고, 문을 찾아 헤매는 묘사가 들어간다면, 독자들이 소년의 절망을 좀 더 느낄 수 있을 듯 합니다.

B : 글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이미지가 글 앞에 첨부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깨진유리잔님이 머릿속에 품은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하지만 글에 존재하는 장점은 아쉽게도 이정도 뿐입니다. 문장은 서툴고 오탈자도 많습니다. 이야기는 단순히 소녀와 소년의 엉뚱한 대화 그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결말로 이뤄져 있습니다. 습작으로는 나름의 기능을 하는 글이겠으나 완성된 단편으로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거울 게시판에는 찰나의 이미지를 소재로 삼은 짧은 글이 가끔 등록되는데, 이런 글들은 습작으로는 나쁘지 않은 글이겠지만 완성된 단편으로는 대부분 아쉬운 수준이고, <이상향> 역시 이런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거울 독자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작가님들이 이점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셨으면 합니다.



가난한 소녀 - 썬펀

A : 동화풍의 이야기를 열심히 쓴 글입니다. 때로 재미있는 표현들도 보였고, 청년과 소녀의 감정선도 실감나게 다가온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다만 이야기에는 최소한의 개연성이 필요한데 그 지점이 아쉽습니다. 동화처럼 말하는 고양이, 아이를 키우는 까마귀가 등장하는데 청년의 행동이나 말은 현실적이라 서로 어울리지 않고 겉돕니다. 글을 쓴 이가 창조해낸 세계라 해도, 그 세계에는 일정한 법칙이 필요합니다. 왜 까마귀가 아이를 키우는지, 보석은 어디서 물어오는지, 의문만 주고 답은 주지 않습니다. 소녀의 청년에 대한 마음을 구구절절 그렸고, 청년 또한 귀찮기도, 애틋하기도 한 마음을 표현했는데, 청년이 죽고, 소녀는 까마귀가 되며 앞에서 서술한 감정들이 모두 허공으로 사라지고, 까메오처럼 등장했던 고양이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이야기에 좀 더 개연성을 부여하시고, 비슷하게 반복되는 문장은 줄이며 다듬으시길 권합니다. 

B : 까마귀와 소녀의 관계는 이기적인 엄마와 순진한 딸의 관계를 연상시킵니다. 동화 같은 분위기는 엄마와 딸의 관계에서 모순점을 찾아내고 곧 독자에게 중요한 교훈을 보여줄 것처럼 움직입니다. 하지만 결말은 교훈과 상관없는 엉뚱한 지점에서 끝납니다. 소녀도 청년도 아닌 고양이가 보물을 갖는다는 허탈하고 냉소적인 결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냉소적인 시선은 이미 글 전체에 존재했습니다. 동화적인 요소로 사용된 존댓말이 오히려 냉소적인 시선을 구현하는 도구로 쓰인 아이러니가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글의 목표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허망한 결말은 독자에게 뭔가를 던져주기 보다는 그냥 허망하게 보입니다.



태풍 속에서 - 백철

A : 좀비를 모티브로 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에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특히 중.단편의 경우 모든 이야기가 결말을 향해 집중되어야 하는데, 굳이 이집트에서 발병했다는 이야기를 넣으며 초반을 길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습니다. 이 도시 안에서 발병한 이야기로 그려도 무리 없을 듯 하며, 그 편이 좀 더 효율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감염이 퍼지는 방식이나 그 후의 대처가 너무 설명적이며, 인물들의 반응 역시 좀비물이나 세계멸망물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이야기나 인물상을 축약한 듯 해 지루하기도 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나서는 것은 숭고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아버지나 친구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어떤 인물이기에 그렇게 하는지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고, 주인공이 마음을 바꿔 사람을 돕는데 합류하는 계기를 그리지 못했습니다. 자원봉사대도 뭘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원봉사’라는 말로 인물들이 하는 일을 다 서술했다고 여겼다면 안이했습니다.
좀비를 모티브로 고립된 도시에서 발생하는 일을 그리는 건 이야기의 외형입니다. 그 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극단적인 조치인지, 희생인지, 극단적인 억압 속에서 이루어지는 숭고한 자기희생인지 생각하시고, 어떻게 해야 그런 이야기를 그릴 수 있는지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B : 최근 좀비 소설은 판타지나 SF만큼이나 활발히 창작되고 있습니다. <태풍 속에서>는 전형적인 좀비 소설 구성을 따라갑니다. 글이 전형적이더라도 나름의 독특함이 군데군데 있어야 독자가 글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태풍 속에서>에는 상투적인 요소가 대부분입니다. 도입부도 이어지는 대부분의 상황도 우리가 좀비 소설에서 흔히 접해온 것들입니다. ‘기생체 X’는 <태풍 속에서>라는 제목으로 짐작해 볼 때 자연재해가 가져오는 불안감을 상징하는 것 같으나 이점이 글에서 흥미롭게 구현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기생체 X는 처음 등장했을 때의 상황으로 봐서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지 않은데 왜 정부에서 백신을 만들려 노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황당한 상황 역시 어떤 은유인가도 싶었지만, 또 그렇다고 보기에는 글에서 단순한 장치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말에서 불안해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상황을 맞이하자고 마음먹는 주인공의 태도는 다소 고루하고 느닷없어 보입니다.



화초가 - 유이립

A :선택과 집중을 하시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글에 나온 알리제와 단군 동상의 아랫단에 있는 너무 많은 걸 다 포용하려 놓은 온갖 동상처럼 글이 너무 과합니다. 신흥 종교로 인한 정치적인 분쟁 이야기인가 싶었더니, 사랑 이야기고, 외계인이 침략하더니, 클론이 문제가 되고, 다시 사랑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200자 원고지 141매가 조금 넘는 글 속에 너무 많은 걸 담았습니다. 사랑 이야기로 아슬아슬하게 중심은 잡고 있지만, 흘러가는 이야기 중 어떤 것도 깊이 있게 그리지 못했습니다. 매 순간 이야기에 집중하는 힘은 보이니만큼, 한 글 당 하나의 소재를 골라 쓰시면 좋은 글을 쓰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B : 독특한 느낌의 단편입니다. 길이는 단편이지만 많은 사건이 밀도 높게 펼쳐져 있어서 단편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신인류 진화 공동체와 유엔간의 정치적인 갈등 그리고 외계인의 지구침략까지 커다란 사건 속에서 벌어지는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삶을 다룹니다. 복잡한 이야기인가 싶지만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단순히 보면 소년이 소녀를 사랑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흐름이나 사건에서 사건으로 이동하는 논리에 작위적인 면이 많이 보이지만 또 잘 수습하면서 그럭저럭 흘러갑니다. 문장도 단순하고 딱딱하지만 치밀하게 이어진 문장을 계속 읽다보면 어느 순간 앞에서 말한 독특한 질감을 느끼게 됩니다. 중요한 요소인 듯이 등장했다가 그냥 사라지는 외계인이나 클론 같은 요소처럼 상황 전개도 군데군데 아쉽지만, 소년의 짝사랑 중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이런 허점들이 크게 중요하지 않게 보이기도 합니다.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에는 우연도 작위적인 면도 많으나 글 안에 아슬아슬하게 통합되어 있습니다. 어색하고 거창한 대사도 기묘한 유머를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면도 많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면이 공존하는 독특한 단편입니다.

12월 독자단편 가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쿠소게 마니아 - 위래

A : 인상적인 글이었습니다. 굳이 왜 시간을 반복하는지 설명하지 않는데도, 그냥 일어나는 일처럼 그린 필력도 좋았습니다. 비행기는 반복해서 추락하고, 주인공은 계속 탈출하려다 실패하는데도 긴장감을 유지했습니다. 이어플로그를 통해 소녀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듯 하다가 열린 결말로 가며 조금 허탈하기도 했습니다만, 재밌었습니다. 다만 ‘쿠소게’가 무슨 뜻인지 몰라 검색했는데, 막장게임을 뜻한다는 말에 뻔한 무한 루프같은 느낌이 없어 신선했다가 맥이 풀렸습니다.

B : 1시 23분 45초, 비행기가 학교를 들이 받습니다. 수업 중이던 소년은 학교에서 살아서 나갈 방법을 찾습니다. 지루한 수업시간에 누구나 한번쯤 해볼 법한 엉뚱하고 극적인 상상을 소설로 옮겼습니다. 언뜻 단순한 아이디어 같지만 치밀하게 아이디어를 구체화해서 재미있는 아이디어 이상의 글로 완성한 점이 돋보입니다. 박력 있는 연출로 구성한 탈출 장면들이 재미있습니다. 주인공은 끊임없이 다시 살아나고 상황은 반복되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지만 결말에서 잘 설명되지 않습니다. 도입부에 등장한 소녀와 이어플러그가 후반에 다시 중요하게 등장하면서 독자는 이것들이 말끔하게 설명되는 결말을 기대하고 읽지만 결말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해하기도 그리고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은 결말이었습니다. 단단히 응집된 글이 막판에 허점을 보이는 느낌입니다. 제목 역시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렵고 글과 동떨어져 있는 느낌인데, 제목에서 조금 더 힌트를 주고 결말과 연결시키면 어떨까 싶습니다.

12월 독자단편 우수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거울 우수독자단편에 선정되신 분들에게는 책을 한 권씩 보내드립니다.
위래님과 유이립님은 pena12 @ gmail.com 으로 우편물을 수령할 주소, 성함, 전화번호(택배 발송시 필요)를 보내주세요. (책 발송은 1, 2주 걸릴 수 있으니 양해 바립니다.)
댓글 4
  • 위래 14.01.01 03:15 댓글

    불친절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네요. 감사합니다.

  • 니그라토 14.01.01 12:01 댓글

    음.... 잘 납득이 안 가는군요...

  • No Profile
    유이립 14.01.01 21:17 댓글

    가작 선정에 감사합니다. 이메일 보냈습니다. (작년에 제 이메일이 스팸처리되서 늦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새해 시작하기 20분 전에 좋은 소식을 듣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No Profile
    깨진유리잔 14.02.05 14:18 댓글

    제 글이 평가에도 들어가는 줄은 몰랐네요;  재미로 써본 글인데 한글자라도 평이 들어오다니 영광입니다. 서사구조와 이야기의 짜임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저도 알고있는 사실이긴 한데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이겠지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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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2019년 최우수작 안내3 2020.01.15
선정작 안내 12월 심사평 및 4분기 우수작 안내 202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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