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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내용

안녕하세요. 12월 우수독자 단편 선정단입니다. 추운 날씨가 계속되고 대선 기간이 겹쳐 창작이 위축되지 않을까 싶은 기간이었지만, 의외로 많은 단편이 등록되고 번역 작품도 게시되는 등 단편 게시판의 움직임이 활발했던 한 달이었습니다.

11월 16일부터 12월 15일 자정까지 올라온 총 16편의 글을 심사하였으나, 아쉽게도 당선작과 가작을 선정하지 못했습니다.

16편의 글 모두 장단점을 지닌 개성 있는 글입니다. 하지만 좋은 글로 인정받고 권위를 부여받으려면 이에 걸맞은 가치를 글 안에서 성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6편 중 좋은 글로 선택할 만큼 완성도가 있거나 일부분 미숙함이 보이더라도 그것을 능가하는 재미를 주는 글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16편이나 되는 단편이 올라왔는데 당선작을 내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다음 달에는 더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합니다.

16편의 심사평은 아래와 같습니다.(지난 달 부터 선정단은 짧은 소설도 심사하기로 했습니다. 단지 짧은 소설은 분량이 적은 만큼 평도 짧아질 수 있습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입술들 - xx

A : 우연히 전 여자친구를 만나는 상황을 중심으로 한 단편입니다. 전 여자친구와의 대화가 이야기를 이끌고 있습니다. 전 여자친구는 예전과 달리 살이 찐 모습입니다. 그 이유가 밝혀지면서 소설은 결말을 향해 갑니다. 이런 구조일 경우 대화가 그만큼 신선하고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처음에는 갑자기 변화한 전 여자친구와의 만남과 이전과 다른 외모 때문에 독자의 흥미를 끕니다. 그러나 그 뒤에 대화들이 독자의 예상을 벗어나거나 어떤 깨달음이나 울림을 주거나 화두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평이하게 흘러가서 긴장감이 떨어집니다. 대화를 어떻게 이끌어가냐에 따라서 인물들도 기존 소설들과 차별화된 개성을 부여받을 수도 있었지만 현재는 작가가 인형을 갖고 대화를 나누도록 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전체적으로 글이 대화로만 이루어진 편이고 배경도 고정되어 있으며 상황 전개가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인물들도 단조롭고 대화는 산만하며 무엇을 말하려는지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B : <입술들>은 신경을 긁는 불편함에 대한 글입니다. 타인의 불편한 면과 마주했을 때 느끼는 불쾌함을 최대한 과장하여 공포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여성 취향의 공간인 빵집을 배경으로 삼고 그곳에서 여자 친구 없이 혼자 남은 주인공이 낯선 분위기에 위축되면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정말로 그런 장소에 느닷없이 혼자 남겨진다면 그것도 큰 공포일 것입니다. 이 와중에 전 여자 친구와 마주치고 그가 그녀와 과거에 나눴던 성행위가 폭로되며 전 여자 친구의 동성 애인이 등장하면 불편함은 극에 달합니다.
글은 불편을 공포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상황을 최대한 과장하고 있으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과장된 설정이 등장합니다. 무시무시하게 살이 쪄서 나타난 전 여자 친구와 그 옆에 앉은 동성애인 같은 소재는 꽤 흥미롭습니다.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털어놓을지 짐작이 안 간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과장이 지나쳐서 작위적인 영역으로 넘어가고 맙니다. 예를 들어서 홀로 남은 주인공이 디저트를 먹고 화장실로 달려가는 상황이 그렇죠. 주인공이 느끼는 불편함과 앞으로 벌어질 기괴한 상황의 암시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싫으면 그냥 안 먹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죠. 간혹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기도 합니다. 주인공이 수정에게 전화번호를 묻는 행위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라고 해도 그런 상황에서 전화번호를 묻지는 않을 듯합니다. 만약 수정에게 초자연적인 무언가가 있어서 주인공이 정신을 홀렸다고 본다면 이해가 가긴 합니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겪는 좌절에 이르면 이 씁쓸한 이야기에 인상적인 방점이 찍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논리적이고 절제된 방식으로 풀어냈으면 더 재미있었을 것입니다.



누수 – xx

A : 아파트의 층간소음을 다룬 여러 단편들처럼 이 단편은 아파트의 ‘누수’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한 단편입니다. 층간소음을 다룬 소설들이 기이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듯이 이 ‘누수’ 역시 누수의 원인이 몇 층인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어 생활에 밀착된 공포를 자아내려고 합니다. 기묘한 분위기가 초반에 잘 형성된 글이었습니다. 그러나 결말 부분으로 갈수록 글이 힘을 잃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모든 것을 대화로 비밀을 실토함으로써 맥이 빠지게 합니다. 소설의 핵심 주제나 비밀을 대화를 통해서 처리하는 것은 가장 1차원적인 방식이고, 작가가 피해야 할 첫 번째 방식일 것입니다. 글에 부여된 신비감이나 긴장은 대사 몇 개로 실없이 해소되어버리고 글이 정작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모호해졌습니다. 독자는 마지막에 갑자기 풍선에 바람에 빠진 것처럼 허탈감이나 허무감을 느끼고 글을 끝마치게 됩니다. 글은 초반에 힘을 준 것처럼 마지막까지 같은 힘을 유지해야 탄탄한 긴장이 조성됩니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주고 결말을 열린 엔딩으로 처리해서 여운을 주든지, 환상적이거나 신비하게 혹은 공포나 스릴을 느끼게 애잔하게 소름이 끼치게 등 엔딩을 바꿈에 따라 독자의 감정선을 건드릴 다양한 길이 있었을 것입니다. ‘누수’라고 하는 소재를 통해 건드릴 수 있는 많은 주제와 분위기를 쉽게 몽유병과 결합시켜 단순한 발상으로 끌어내린 듯해서 아쉬운 작품이었습니다.

B : <누수>는 호러입니다. 물이 새는 아파트, 홀로 고립되어 있으며 불안정한 주인공, 평화를 깨는 불편한 소음, 정체불명의 이웃 등의 소재들이 어두운 기운을 뿜으며 하나로 뭉쳐 있습니다. 주인공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불안이 주변을 맴돌다가 어느 순간 주인공을 덮칩니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을 통해 다시 공포가 표면에 드러납니다.
하지만 이것이 효과적으로 구성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이 글은 설명도 많고 과장도 많습니다. 잠을 많이 자기 위해 공복에 차를 마시는 주인공처럼 여러 설명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글을 끝까지 읽었을 때 사실은 필요 없었던 것들이 많습니다. '파란나라'도 글에서 어떤 기능을 할지 궁금증을 유발하지만 다 읽고 난 다음에는 그것이 공포의 장치로 쓰여서 흥미 보다는 허탈하다는 느낌이 먼저 옵니다. 글에 과장이 있으면 간결한 생략도 있으면서 강약 조절이 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 반전 역시 약합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두 명의 여성은 죽은 아이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는 공통점이 있고 이것이 반전으로 연결되는데, 이 장치가 독자에게 딱히 놀라움을 주지는 않습니다. 두 여성은 그저 우연히 같은 아파트에 살았을 뿐인 것처럼 보입니다.



SOS – 정세리

A : 방에 갇혀 있는 발상이 스릴을 느끼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방에 갇힌 주인공이 어떻게 될 것인가, 독자는 궁금증을 느끼고 계속 글을 읽어 나가게 됩니다. 꽤 괜찮은 소재로 얼마든지 다양한 방식의 이야기 전개가 가능할 것 같았는데, 갑자기 끝나버려서 당황스러웠습니다. 단편소설의 첫 장만 읽은 느낌입니다. 꿈에서 소재를 얻었다고 해도 그 뒤에는 이제 소설로 다시 구상을 해야 하는 작업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기본적인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구조라든지, 플래시백과 현실을 교차하는 병렬 구조라든지 혹은 액자 구조를 취한다든지 해서 소설답게 구성을 짜본다면 좋은 작품으로 발전할 여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꿈이라든가, 경험이라든가 이런 발상의 첫 단추에 얽매이지 않고 오래 생각한 끝에 소설의 구조를 짠 다음에 충분한 분량을 갖춘 단편으로 탄생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B : 죽어가는 여자의 상념과 그녀의 행동을 모호한 문장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는 여자의 이야기인데도 스릴 보다는 모호한 분위기가 먼저 다가온다는 점이 의아합니다. 일종의 엽기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글로 본다면 그 의도를 받아들일 수는 있습니다. 허공에 붕 뜬 묘사가 자주 등장하는 글인데, 작가가 추구하는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서라면 이런 문장을 사용하는 태도가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글의 어떤 문장들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이해가 안 가기도 합니다. '뇌리에 하드보일드 스릴러 영화를 몇십편 쯤 실은 내 판단은' 같은 표현을 예로 들고 싶습니다. 마지막의 노래 가사도 독특한 분위기를 설명하려는 의도임은 알겠으나 단편 소설의 결말로 합리적인 사용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독자에게 흥미를 주는 이야기를 담은 단편이라기보다는, 강렬한 이미지의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지문으로 사용되어야 할 서술처럼 보입니다. 자기 완결성을 갖춘 소설로는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선천성 불면증 – 박달

A : 선천성 불명증이라는 소재로 짧은 글입니다. 마치 한 편의 일 분짜리 애니메이션이 연상되는 글입니다. 그만큼 이미지가 주요한 글로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문장들로 나열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서사가 잡히지는 않습니다. 짧은 글이라 이야기할 거리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픽노블 『샌드맨』처럼 ‘잠’을 소재로 환상적이면서 광대한 서사로 이어나가면 어떨까 싶습니다.

B : 이미지를 중심으로 나열한 글입니다. 구체적이지 않은 모호한 서술로 사건을 설명하며,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 궁금하다기보다는 어떤 이미지가 펼쳐질지가 중요한 글입니다. 이 글은 여러 상징을 심어놓은 것 같습니다. 독자들이 이를 파악한다면 또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겠으나 상징의 의미를 글 안에서 찾기는 어렵습니다. 마치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시놉시스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만약 이 단편을 바탕으로 환상적인 느낌의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면 아름다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은 자기 완결성을 갖춘 소설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벚꽃을 꺾다 - 나비바람

A : 친일파의 후손으로 그 재산을 이용한 아버지를 증오한 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입니다. 소설의 주요 갈등은 아버지와 아들의 대립입니다. 그런데 이 설정은 초반에 한 두 문장만으로도 설명이 끝납니다. 복잡한 발상이 아니고 실제 역사와 결부되어 설정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구체적인 역사 배경과 실제 인물이 결합되었다면 설명이 길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친일파라는 말로만 설명되기 때문에 독자에게 구체성 있게 혹은 현실감 있게 와닿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추상적인 설정이 소설의 90%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독자에게는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처럼만 보입니다. 이야기 전개가 진행되지 않고 현실에서의 짧은 시간과 병행하여 과거의 반목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데 이는 초반에 이미 설명한 것을 다시 한 번 말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독자는 이미 다 아는 이야기를 한 번 더 듣는 듯해서 지루함을 느낍니다. 그만큼 강조할 정도로 흥미롭게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요. 감각적인 문장이나 흥미로운 인물들과 독특한 배경이나 상황이 제시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주 평이한 방식으로 비밀은 밝혀지고 평범하게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식으로 이야기는 흘러가서 읽는 재미가 떨어집니다. 그러다가 이 소설은 갑자기 어머니를 후반부에 부각시키더니 인물 두 명이 각자 대사로 자기 심정을 고백하고 잘못한 게 아니라고 뜬금없는 닭살 돋는 멘트로 위로를 하고 어머니를 생각하며 소설을 끝맺습니다. 구조가 아버지의 대립에서 갑자기 어머니 생각으로 넘어가면서 소설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주제를 흐트러놓고 있습니다. 독자는 구조가 무너지고 산만하고 혼란스러운 글이라고 느끼기 쉽습니다.
  과거의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게 없고 현실에서의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그냥 설정을 그대로 적어놓은 느낌이고, 어머니에 대한 감정도 똑같습니다. 소설로 형상화하기 위해서는 서사 전개가 될 만한 다른 에피소드, 구체적인 사건을 기반으로 해서 쉽고 1차원적인 대사로 처리하는 게 아니라 사건을 통해 보여주기를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B : 일본을 상징하는 꽃인 '벚꽃'을 '꺾다'는 제목이 주제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친일파는 나쁘다'라고 간단히 요약 가능한 글이지만, 그 안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친일파인 가문이 싫어서 집을 떠났던 주인공이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동생과 재회합니다. 주인공은 과거의 일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지 의문을 갖습니다. 그가 나뭇가지를 꺾다가 손바닥의 굳은살을 보고 깨달음을 얻는 결말은 아름답습니다. 신념을 가지고 살아온 삶이, 여린 그를 어느덧 강하게 만든 것입니다. 정말 생각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는 아름답지만 안에 추한 비밀을 숨긴 집이나, 악당처럼 보이는 동생도 사실은 형과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일 뿐이라는 설정들도 흥미롭습니다.
아쉬운 점은, 이 글은 모든 것이 직접적입니다. 작가가 글을 직접 설명하면 독자는 글을 해석할 여지를 빼앗기겠죠. 어떤 부분에서는 등장인물이 감정을 느끼기도 전에 작가가 먼저 서술하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모든 면을 다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글이 흥미롭다면 독자가 알아서 찾아낼 것입니다.
또한 복잡한 이야기가 아닌데도 분량이 길고, 때로는 정신없는 느낌을 줍니다. 중간의 회상 장면들이 매끄럽게 삽입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점을 해결하면 훨씬 간결해 보일 것입니다.
가장 아쉬운 점은 결말입니다. 형과 동생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고, 제 3의 인물이 털어놓는 말로 끝을 맺습니다. 이 글은 독자에게 교훈을 주려는 의도가 강하게 드러나긴 하지만, 교훈을 마치 작가의 개입처럼 보이는 인물의 말을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형과 동생의 이야기인 만큼, 형과 동생이 충돌하고 화해해서 결말을 맺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줄 없는 꼭두각시 – 니그라토

A : 소설이 아니라 설명만 있는 설정 같습니다. 소설이라는 텍스트가 단순히 설정집이나 보고문이 아니고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은 감각적인 문장으로 주제를 형상화시키기 때문입니다. 독자를 사로잡는 우리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글들에는 뛰어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소설가 미루야마 겐지는 『소설가의 각오』에서 영화가 할 수 없는 소설만이 전달할 수 있는 무언가를 쓴다고 합니다. 영화가 화면으로 관객을 압도하듯이 소설은 우선적으로 문장을 통하여 독자를 압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도 말합니다. 이 소설은 그러나 소설의 문장이라기보다는 소설 쓰기 이전의 설정의 문장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문장이 설명만 하다가 끝납니다. 읽고 나면 5분 만에 잊어버립니다. 무슨 내용인지 다시 보기 전까지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그만큼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주지도 않고 평범한 서술형 문장과 대사로 처리되어 글이 가볍습니다. 짧은 글로 꽁트나 엽편으로 불릴만한 글이지만, 그런 글들에서 보이는 탁월한 반전이나 풍자, 유머, 위트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갑자기 마지막에 ‘고심했다.’로 끝나는 문장은 열린 결말도 아니고 독자에게 도중에 끝난 느낌만 줍니다. 최소한 한 두 문장이 아예 삭제된 느낌입니다. 소설을 대사로 전개하는 것은 쉬운 방식입니다. 묘사가 없는 글은 가볍게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심해서 대사도 없이 묘사만으로 단편 소설 분량의 글쓰기를 해본다면 분명 한 단계 더 다른 글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B : 짧은 글입니다. 짧은 분량으로도 완성된 이야기로 풀어놓을 수 있으나, 이 글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앞에서 충분히 전개의 역할을 했다면 결말에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 텐데 작가는 마지막에서 '이 결말은 새로운 이야기의 인트로다' 라고 선언하고 끝을 맺습니다.
짧은 이야기이고 단순한 문장들로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장이 연결되는 논리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간혹 있습니다. 마땅히 설명해야 할 부분을 건너뛰는 경우도 많습니다. 짧은 글 안에서 조차 마구잡이로 생략이 존재하는 점이 당혹스럽습니다. 때문에 이 글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어떤 소설의 줄거리를 거칠게 담은 것 같고, 소설 시놉을 짧게 써놓은 메모처럼도 보입니다.



약한자들의 저항법 – 바보마녀

A : 종말 이후 방사능을 피해 돔 안에서 인간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곳은 총통 각하라는 독재자가 지배하고 있고 실험을 통해 초능력자들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설정들이 방사능으로 인해 돔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라든지, 독재자에 의한 지배, 초능력자를 연구하는 기관 등 클리셰들이 많아서 신선한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강력한 초능력을 가진 존재의 등장은 올라프 스태플든의 『이상한 존』이나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 필립 K.딕의 「골드맨」을 비롯해서 여러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의 강력한 초능력자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들은 꼭 인류와 갈등이 벌어지고 서로를 죽이게 되는 대립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초반부의 주인공의 탄생이나 성장과정들은 어떻게 보면 불필요했고 지루한 부분이기도 했습니다.(‘예수’라는 이름조차 진부함을 더하는 듯합니다. 이런 작명법은 이제는 매너리즘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독자는 이미 여러 매체에서 접한 평범한 이미지들을 데자뷰를 느끼며 다시 보게 되고, 신선한 발상이나 역전도 거의 없이 기존 공식들로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설정이나 발상들이 좀 더 신선하고 참신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살아있는 인물이라기보다는 역할을 부여받은 인형처럼 느껴졌습니다. 독재자니까 독재자다운 모습을 하고, 예상되는 몸짓과 대사를 합니다. 전형성에 갇혀 있는 인물뿐이라 더욱 읽는데 재미가 떨어지는 듯했습니다. 그나마 마지막 결말 처리만이 강렬하고 약간의 여운까지 주는데,(또한 가장 핵심인 느낌입니다.) 결말까지 오는 부분이 지나치게 긴 느낌입니다.(또한, 이 소설은 시간 순서대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스토리를 그대로 나열하고 있는데, 이런 방식은 피로감을 유발하는 면이 있습니다. 이보다는 플롯 단계에서 약간은 기교적으로 시간을 뒤바꾼다면, 처음 도입부에 폭발씬부터 시작해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이후 회상을 통해 독자에게 사건 정말을 보여주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하는 식으로 해서 이야기 전개가 단조로움에서 벗어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오히려 앞을 쳐내고 새로운 배경이나 인물들, 에피소드로 구성한 뒤에 지금의 끝맺음을 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B : 주인공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그렇다면 이 단편이 영웅이 세상을 구원하는 이야기라고 예측할 수 있겠죠. 글은 방사능으로 가득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존재인 주인공의 모험을 따라 거침없이 달려갑니다. 지나치게 단순하고 명쾌해서 어느 순간 황당하게도 보이는 전개이지만 글은 자신의 논리에는 충실합니다. 독특한 분위기의 글입니다. 이야기의 정서는 B급 창작물을 의도하고 있는데 논리는 치밀하게 쌓아가죠. 예수가 가지고 있는 무적의 신체가 마치 이 글 자체를 보는 것 같습니다. 끝없이 극으로 치닫고 있는데 아무 문제없다고 외치면서 달려가는 것입니다.
영웅이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 같지만, 막상 예수가 영웅이 되고 나면 그가 악당으로 돌변하는 방향 전환이 있습니다. 반전이라면 반전인데, 이 반전을 동화 같은 방식으로 느닷없이 해결하며 결말을 냅니다. 황당하기는 하지만 이 또한 글이 가진 개성의 일부분입니다. B급 정서와 동화와 하드고어가 결합된 것입니다. 문제라면 이 결합이 너무 독특해서 독자가 감정이입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글은 진지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독자가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것이죠. 하지만 독특한 분위기의 글을 만나기란 어려운 법이고, 작가의 의도롤 끝까지 치열하게 추구한 점은 높이 사고 싶습니다.



보슬람 – 니그라토

A : 첫 도입부 문장부터 나레이션으로 시작해서 끝까지 나레이션 식으로 진행되는 짧은 글입니다. 이런 글쓰기 방식은 상당히 낡은 방식일 것입니다. 요즘에 독특한 실험소설을 제외하고 이런 낡은 방식의 글쓰기로 꾸준히 밀고 나가는 작가는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다양한 문장 길이, 암시, 은유, 직유, 상징. 디테일. 오감을 사용한 감각적 묘사로 말하기가 아니라 보여주려고 하는, 또 배경과 인물, 상황이 아주 자연스럽게 손에 잡힐 듯이 이미지로 제시한다면 좋을 것입니다. 지금 쓴 분량은 매우 짧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단적으로 말한 한 문장을 가지고도 수 십개의 단편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무지막지한 압축이 나열되어 있는 요약문이기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독자는 하나도 와 닿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 묘사문은 몇 문장 되지 않습니다. 그것도 촉각, 후각, 미각, 청각 등 오감을 활용한 문장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글을 쓸 때는 공간을 독자에게 보여준다는 생각을 먼저 하면 오감을 활용한 묘사가 편합니다. 영상으로 찍는다면 소품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고 손가락 끝으로 만졌을 때의 질감은 어떠하고, 자동차 안의 공기는 무슨 냄새가 나고, 여자의 향수 냄새, 와인의 맛, 자동차 엔진 소리, 이런 다양한 묘사를 덧붙인다면 그 공간 자체가 입체적으로 구성이 될 테고 독자가 현실감을 느끼면서 마치 가상현실을 체험하듯이 실재 눈앞에서 펼쳐지는 일인양 글을 실감나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소설의 핍진성은 바로 이런 디테일한 묘사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글에 등장하는 카니발이나 벤트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독자를 상정하고 도장의 색은 무엇이고 햇빛에 비칠 땐 어떤 색으로 보이며 가속을 할 때는 차체가 어떻게 기울여지고 조폭들이 사시미를 숨길 때는 어디에 넣고 평소에는 어떤 식으로 관리하는지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보여줘야 할 부분들이 많습니다. 여기에 문장들을 또 살펴보면 은유나 직유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문장을 공들여 쓰고 언어 세공을 한다면 글이 훨씬 인상적일 것입니다.
  플래너리 오코너는 “소설쓰기는 어떤 것을 말해주는 일이라기보다는 보여주는 일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론 로젤은 『소설쓰기의 모든 것-묘사와 배경』에서 “그 방법이 소설쓰기에 맞지 않는 이유는 완전히 말해주기로만 이루어진 보고서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만약 「뉴욕 타임스」의 기자라면 기사를 써야 마땅하다. 당신이 소설을 쓰고 있다면 기자가 아닌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114)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절대 말해주기가 안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 가지 방식만을 쓰는 것은 왼팔만 쓰는 복서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정체되었다면 이제는 양 팔을 모두 쓸 줄 알아야 할 것이고, 이를 소설에 적용할 때 완전한 선수가 되어 챔피언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소설 요약문에 중독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독자라면 작가의 노력과 정성이 담긴 글을 더 좋아하게 마련이다. 독자는 발끝을 톡톡거려 장단을 맞추는 여자들이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펀치에 쏟은 밀주에 대해서도 세세히 알고 싶어한다.”(117)
  “말해주기보다는 보여주기는 작가로서 당신이 부려야만 하는 마술의 일부분이다. 사실 그것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독자가 당신의 이야기나 소설을 꼼꼼히 다 읽고 나서 그 안의 인물과 배경, 상황이 모두 대단히 자연스러워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느낌을 안고 책을 덮을 수 있어야 한다. (중략) 이것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독자가 이미지에 대해 듣기보다는 경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단순히 보고받기보다는 그 이미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117)
  위의 론 로젤의 말처럼 교통사고를 당했다보다 교통사고를 직접 당하게 만들면 독자의 충격은 훨씬 큽니다. ‘목을 전기톱으로 잘랐다.’ 같은 문장은 그 어떤 감흥도 들지 않습니다. 그냥 글자일 뿐입니다. 실제 현실감 있게 써서 체험하게 만들 때, 독자의 감정에 가닿을 수 있을 테고 독자를 울고 웃기게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글쓰기를 이제는 요약이나 설정이 아니라 진짜 소설 쓰기에 한 번 도전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B : 소설은 우리 시대의 '돈 많은 사모님'에 대한 정보를 늘어놓으며 폭로를 시도합니다. 낯선 정보가 계속해서 나열되는 면에서는 흥미를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캐릭터가 전형적인데다가 작가마저 그 전형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어서 설득력이 사라지고 맙니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폭로하는 캐릭터인지, 공격 대상으로 만들기 위해 작위적으로 조립된 캐릭터인지, 그러니까 누가 누구를 공격하고 있는 것인지 독자에게 구분이 안 가는 것이죠.
이 단편도 <줄없는 꼭두각시>처럼 도입부에서 끝납니다. 보통의 작가라면 도입부에서 작위적으로 서술하는 정보의 양을 줄이고, 주인공의 살인과 이후 이야기를 스릴로 삼았을 것입니다. 그 사건이 주는 끔찍함은 나중에 생각하더라도요. 하지만 이 단편은 그 이상 이어지지 않고 끝을 맺습니다. 때문에 공격적이고 불쾌한 제목과, 도입부의 신데렐라에 대한 색다른 정보도 큰 감흥을 주지 못합니다.



여자는 필요 없다 – 니그라토

A : 일종의 소설을 쓰기 전에 구상만 보는 느낌입니다. 가령 “21세기 말 한 여성 혐오론자 모든 권력을 잡고 지구를 통일했다.”라는 단정적인 문장은 독자가 쉽게 받아들이기에 무리가 따릅니다. 너무나 어마어마한 사실을 간단히 한 문장으로 처리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건 작가가 너무 편하게 가려는 것이지요. 이 문장을 이토록 짧은 글에 우겨넣는 것은 독자가 글을 읽기 힘들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저 문장만으로도 20권이 넘는 대하소설이 나올 수 있습니다. 지구를 통일하기 위해서 얼마나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르는지는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것들을 모두 나열하고 하나씩 해결법을 제시하는 데만 3권이 소요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바로 압축하는 문장이 있는 글은 독자에게 읽히지가 않습니다. 일단 문장 하나하나마다 너무나 많은 가능성과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정보를 다 처리할 수도 없이 무수한 의문만 생산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이 계속 서술되고 있다고 해서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읽고 나면 바로 아무런 기억에도 남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처럼 설명적인 문장으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즉, 오히려 저 문장을 빼버리고 묘사를 통해 그냥 세계 전체를 훑는 식으로 보여주었다면 독자는 더 쉽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디스토피아 영화의 첫 장면의 영상미를 감상하면서 모든 세계관을 미리 숙지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무는 갈색이었다. 나무들이 지구를 통일했다. 나무는 독재자로 불렸다. 외계인이 쳐들어와서 나무를 모두 불태웠다. 해방의 불이라고 불렸다.” 이런 식의 문장과 동일하게 받아들여지고 읽고 나면 역시 아무 기억에도 남지 않습니다. 설명하기가 얼마나 독자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는 기성 작가나 독자들이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장면을 그리려고 해야 합니다. 서술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장면 또는 풍경을 보여주는 것. 풍경의 발견. 그것이 독자에게 인상을 남기는 첫걸음일 것입니다.

B : 글 중간에 '여성부 세력은 진정 어리석었다.'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그 문장을 위해 쓴 글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글을 읽고 나면 독자들이 여성부가 어리석다고 생각하게 될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글은 현재 한국 사회의 여성 혐오를 인식하고 그것에 가치를 둘만한 부분과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정작 이 글이야 말로 무차별적인 여성혐오를 담고 있는 점이 당혹스럽습니다. 독자에게 충격을 주려는 의도로 쓴 글 같으나 실제로는 황당함이 먼저 다가오는 글입니다. 이야기에 감정이입을 할 대상도 없으며 사건이 전개될 때 논리의 비약도 심합니다. 그것을 참고 글을 계속해서 읽어야 할 이유를 글이 전달해주지도 않습니다. 문장은 단순히 결말에 도달하기 위해서만 전개되고 있습니다. 평범한 독자들이 이 글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저는 잘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줄리엣의 언덕 – 바보마녀

A : 세계가 소수의 자본가만 남은 세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일종의 우화처럼 읽히는 글입니다. 그러나 우화를 의도했다면 조금 더 압축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약간은 군더더기 같은 부분들이 보여서 좀 길다는 느낌을 받는 글이었습니다. 그림이나 음악에 대한 묘사가 더 풍부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기계가 인간을 살육하는 것과 대비해서 예술의 묘사를 늘린다면 균형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소설 전체적으로 설명이 주를 이루는 것도 가독성을 해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 소설의 아쉬운 점은 몇몇 파격적인 발상을 파악하고 난 뒤에는 이미 독자가 결말을 짐작해버린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엔딩에서 여운이나 감동이 느껴지기보다는 예상대로라는 느낌이 들어서 김이 좀 새는 느낌이 있습니다. 초반에 독자에게 이야기 전개를 읽힌다는 것은 단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조와 결말에서 독자의 예상을 벗어날 방안을 고심해봤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B : 자본주의의 병폐가 만들어낸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보 마녀님의 다른 글 <약한자들의 저항법>처럼 <줄리엣의 언덕>도 극단적인 설정을 끝까지 밀어붙이면서 이어집니다. B급 창작물의 정서와 하드고어와 동화가 뒤섞여 있는데 이를 진지한 태도로 전개하는 것 것입니다. 진행도 진지하고 설명도 치밀합니다. 이 단편은 <약한자들의 저항법>과 달리 중간의 전환이 없이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데, 그것이 글의 우직한 태도와 더 잘 어울려 보입니다. 뒤돌아보지 않고 직선으로만 달려가는 것이죠. 글의 이런 태도가 결국 무언가를 이뤄내고는 있습니다. 돈 밖에 모르던 부자가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예술에 빠졌다가 마음을 고쳐먹는 우화 같은 이야기가 이렇게 독특한 뒷맛을 주기는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말 부분 아버지가 기계들에 의해 조각나는 모습과 남자가 여자에게 달려가는 동화적인 결말이 결합되는 순간도 그렇습니다. 쉽게 이어붙이기 어려운 이미지와 감정일 텐데 이 글에서는 성공적으로 접합되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쿤다버퍼 – xx

A : 우리 주변의 노숙자나 바보가 사실은 세계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발상은 그리 새롭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이야기를 가장 많이 차지하는 부분은 주인공의 회상입니다. 그런데 이 회상하는 에피소드가 크게 놀랍거나 충격적이지 않습니다. 특별히 에피소드라고 하기에는 서사가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그 뒤의 현재로 넘어가서 이 회상을 토대로 새로운 에피소드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한 두가지 사유를 하고 끝나버려서 뜬금없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충만한 느낌을 주는 엔딩이 아니라 너무 갑작스러운 느낌이라 당황스러웠습니다. 전체적으로 완결성이 부족하게 느껴졌고, 짧은 분량의 글이라고 해도 그 안에 온전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발상을 조금만 구체화시켜 본 듯한 느낌입니다. 오히려 깊이 파고들면서 어떤 사건을 발생시킨다면 긴장감 있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거기서 새로움도 파생될 테고요.

B : 유년 시절 겪은 미스터리한 추억을 짧은 수필처럼 풀어낸 단편입니다. 누구나 어린 시절 추억 중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며 이것이 때로는 삶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어릴 적 동네 형에게 붙잡혔던 위험천만 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안도감을 느끼고 만약 도망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하며 무서워하기도 합니다.
'동네 바보'나 '음모론에 사로잡힌 사람'은 흔한 소재입니다. 이를 어떻게 풀어놓았는지가 글의 재미를 결정할 텐데, <쿤다 버퍼>는 아쉽게도 문장이 거칩니다. 어렸을 적 겪은 짧은 상황을 재미있게 서술하려면 넉살 좋게 그리고 조리 있게 풀어놓는 입담이 필요하겠으나 이 글은 거친 문체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때문에 큰 감흥을 주지 못하고 달을 바라본다는 결말 역시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점이 아쉽습니다.



전도사 – 유이립

A : 우리가 흔히 ‘전도사’라는 단어에서 떠올리는 느낌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글입니다. 규칙적이고 정해진 삶을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인공인 ‘지요’는 반항아로 보입니다. 초반에는 아둔한 사람들 사이에서 ‘전도사’인 ‘지요’가 사람들을 일깨우는 소설로 보입니다. 그럴 경우 이 소설은 우화의 형식을 지닌 글로 비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짧게 마무리될 것처럼 보였던 이야기는 ‘지요’의 반항을 반복해면서 계속 진행됩니다. 이 부분에서 ‘지요’의 반항이 반복되는 부분은 비슷한 패턴의 연속이라 좀 지루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짧게 쳐내거나 에피소드의 변화를 주면 좋았을 것 같았습니다.
  이야기는 갑자기 양치기 소년 이야기를 패러디하더니 싸움이 축제로 되는 양상까지 치닫습니다. 여기까지는 자연스러운 전개 흐름이었습니다. 지루한 부분은 있어도 매끄럽게 읽어나갈 수 있었고 장르소설의 특성상 세계관의 비밀을 밝혀나가는 부분은 흥미로웠습니다. 이 세계관이 어떤 모습이고, 사람들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 소설을 계속 읽어나갔으며 ‘지요’의 역할은 무엇이고 이 소설이 결국 어떤 결말을 맺을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왕모’가 등장하면서 소설은 비약을 합니다. 너무 흐름이 갑작스럽게 바뀌고 지나친 정보량의 폭주, 그것도 대사로만 주입시키듯이 전달해서 아쉬웠습니다. 대사로 꼭 소설의 모든 미스터리를 밝히지 말란 것은 아니지만, 같은 대사로 하는 방식이라도 다르게 할 수 있습니다. 대사를 어떤 식으로 설정하냐에 따라 자연스럽게 독자에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은근한 대사 처리는 독자에게 유추를 통해 전달되면서 근사한 효과를 발생시킵니다.
  또한, 짧은 마지막 문단에서 다시 두 번째 비약이 발생합니다. 시점이 갑자기 할아범으로 바뀌는데, 이렇듯 소설 전체를 하나의 주인공 시점으로 이끌어가다가 아주 짧은 분량으로 시점 전환을 하는 것은 좋은 방식은 아닙니다. 원래 단편에서는 시점 전환을 조심해야 하는데, 이렇게 구조상 독자가 불균형을 확실히 느낄 위치에서 시점 전환을 할 경우 불안감을 느끼고 소설 전체의 구조가 무너진 느낌을 받습니다. 자연스럽지 않고 당혹감을 전해주며 이야기가 매끄럽게 닫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시점 전환을 통해 극적인 효과를 주는 몇몇 단편들을 존재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갑자기 결말에 과도한 비약으로 인해 제대로 결말을 맺지 않고 이상한 축약과 단절로 의문만 수십 개를 주면서 끝나는 느낌입니다. 소설내 세계관에서 현실감이 아니라 꿈이나 환각처럼 보이는 장면이고 마치 급작스런 해피엔딩을 보여주는 뮤직비디오 같은 엔딩이라 아쉬웠습니다. 결말이 이렇게 실망감을 주면 앞부분에 쌓아놓은 근사한 분위기와 인물이 전부 허사가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도입부부터 축제까지 하나의 단일한 분위기를 주었는데 후반부는 다른 사람이 서술한 것처럼 이질감이 느껴져서 아쉬웠습니다.

B : <전도사>는 낯선 세계가 배경입니다. 먼 미래에서 일어난 일 같고 등장인물은 인간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정확한 설정은 글 후반부에 드러납니다. 설정이 명확해지기까지 독자는 낯선 세상 속을 헤매야 합니다. 그것이 이 글이 주는 즐거움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하기도 합니다. 낯선 세계를 설명하려면 정교한 서술이 필요한데, <전도사>는 전체적으로 미숙한 느낌의 문장이 많고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 문장도 간혹 있습니다. 때문에 이야기를 명확히 이해하기 힘들고 머릿속에 그림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저는 첫 문장인 '아침 등이 천장을 뚫고 지요에게 내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데 꽤 오래 걸렸습니다.
분노를 가슴에 품은 주인공 지요는 말썽을 부리고 다니면서 답답하리만큼 도덕적인 사회에 계속 균열을 만들어 갑니다. 반항을 일삼고 거짓말과 욕설을 하고 아무나 붙잡고 싸움을 겁니다. 이런 일탈이 세계의 본질을 밝히는 계기가 되는 설정이 흥미를 주고, 글을 끝까지 읽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하지만 이 재미를 더 크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사소한 실수들로 인해 빛을 발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습니다. 지요의 일탈이 재미있으나 각각의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 조금 더 논리가 있었으면 합니다. 지금은 개연성 없이 즉흥적으로 흘러가는 느낌입니다. 주인공의 행동에 의해 세계가 무너지는 이야기인 만큼, 좀 더 짜임새 있는 구조로 주인공의 행동을 보여주고 세계의 진짜 모습을 정교하게 드러내면서 이야기를 진행했으면, 그리고 이를 더 정확한 문장으로 서술했으면 글을 읽는 재미가 더 컸을 것 같습니다.



우주 엑스레이 – 소보루

A : 현재에서 감독의 불륜에 불만을 가지다가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 중간에 과거에 어머니가 ‘우주 엑스레이’라는 말로 꾀어서 머리를 자르게 한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소소한 일상을 묘사한 부분들은 잔잔한 재미와 함께 잘 읽혔지만, 군데군데 걸리는 부분들이 있어서 아쉬운 글이었습니다. 처음 두 문단은 가독성을 해치고 소설의 진입장벽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흔히 사유로 시작하는 방식을 많이 쓰곤 하는데, 이게 소설과 밀접하게 연결되지 않으면 불필요한 도입부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이 소설은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앞 두 문장을 그대로 날려도 별다른 위화감이 들지 않을 정도입니다. 오히려 시작 부분에 독자가 몰입할 여지만 줄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절제’일 수 있습니다. 퇴고할 때 자신의 오른팔을 쳐내는 기분으로 많은 부분을 잘라내는 게 도움이 될 때도 있습니다. 사유는 대부분 독자적인 생각이므로 독자들의 공감대가 크지 않습니다. 따라서 간결하게 툭툭 던지는 방식이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목부터 소설의 구조가 유기적이지 않다는 느낌이 든 글입니다. ‘우주 엑스레이’가 과연 소설 전체를 떠받치는 제목이자 대표적인 에피소드로 이 소설을 관통할 만한가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설사 하나의 줄기로 꿰어맞출 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독자에게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짐을 떠맡긴 듯이 보였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제목부터 시작해서 ‘우주 엑스레이’가 차라리 통째로 빠져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었고, 반대로 ‘우주 엑스레이’를 중심으로 의미를 부여하며 소설 전체를 하나로 묶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보였습니다. 단편소설에서는 흔히 계시의 순간이라고 불리는 핵심 부분이 있습니다. 소설의 주제 의식이 응축되어 독자에게 전달되는 지점이지요. ‘우주 엑스레이’에서는 그것이 과거의 어머니와의 일화이든 혹은 복수를 하는 순간이든(단순 반발 작용으로만 보일 뿐, 주인공의 사유와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으로 읽히지 않습니다.) 모든 사건을 한데 모아 통일된 질서를 부여하는 부분이어야 하는데, 그 점이 모호한 것 같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로 묶이지 않고 산만한 느낌입니다.
  감독과의 갈등과 마지막의 복수까지는 누구나 쉽게 떠올리고 예상한대로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미령이와의 일화나 채팅녀, 동물들에 대한 정보, 우주 엑스레이, 결말에서 암시도 없이 갑자기 튀어 나온 돈가스까지 전부 유기적인 연결이 없고 다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소설은 하나의 단일한 이미지로 통일성을 갖춰야 구조적인 완결성을 지닙니다. 특히 단편은 한 자리에서 읽기 때문에 그 통일성이 중요합니다. 단일한 정서로 여러 에피소드가 나오더라도 하나의 이미지나 주제의식, 테마로 묶어내서 독자가 충족감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작가가 생각해 놓은 각각의 의미와 연결되는 지점들이 있을지 모르나 그게 효과적으로 보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B : 한 남자의 고달픈 삶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자신을 착취하는 영화감독에게 분노를 품고 있고 그와 불륜을 저지르며 돈을 뜯어내는 여자를 비웃습니다. 하지만 별 반항하지 못하고 힘든 일을 계속합니다. 먹고 사는 어려움이 그를 비굴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돈 때문에 분노를 억누르는 주인공의 자기 비하 속에 온갖 다른 사적인 이야기를 포함하며 글은 두서없이 흘러갑니다.
도입부에 먹을 것에 대한 서술이 굉장히 깁니다. 거의 횡설수설이라고 할 만큼 긴데 딱히 인상적이지는 않은데다가 서술이 앞뒤가 잘 맞지 않습니다. 그 다음 이어지는 꿈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도입부는 글 전체와 잘 어울리지 않으며 마지막 결말과 연결되기는 하지만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후 글은 주인공의 고통, 분노, 추억 등을 두서없이 털어놓습니다. 화자의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 글이라고 꼭 지루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개인의 은밀한 감정이나 추억도 충분히 독자에게 흥미를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은 일이고 노련한 테크닉이 필요하긴 합니다. <우주 엑스레이>는 아쉽게도 글이 잘 다듬어지지 않았습니다. 분노와 자조로 점철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가 주인공의 고통스러운 삶에 감정 이입할 수 있기는 합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연애 이야기와 감독을 흉보는 이야기 등에서 쾌감을 얻었을 독자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장황한 느낌입니다. 덜 서술했으면 하는 부분도 많고 더 흥미 있게 연출했으면 하는 장면도 많습니다. 명확하고 조리 있는 문장으로 글을 이끌고 장황한 부분을 많이 지운다면 더 재미있는 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극우 더 라이징 – 니그라토

A : 글이 뼈대만 있고 살이 없는 느낌입니다. 일단 문장들이 지나치게 단순한 면이 있습니다. 문장 구조도 단조롭습니다. 문장이나 문단이나 너무 획일적이라 독자가 읽는 맛이 적은 편입니다. 전상국의 『소설 창작 강의』를 보면 “문장은 어느 정도의 밀도가 있어야 그 문장이 담고 있는 내용이 충실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소설문장에서 말하는 밀도란 어느 부분을 집중적으로 깊이 있게 서술해 내는 것을 의미한다.(중략)그러나 모든 소설의 문장은 밀도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백 번 낫다. 밀도 있는 문장으로 쓰여진 소설이 성공한 예가 더 많다. 밀도가 없이 듬성듬성 써 나간 소설보다는 아무래도 힘과 공을 더 들였다는 증거다. 그렇게 밀도를 주어 힘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다.(중략)소설문장의 밀도야말로 소설문학이 예술로서의 미적 가치를 획득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228~229)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소설이 밀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밀도가 있을수록 작가가 공들여 쓴 것으로 보이고 그만큼 작가의 강조점이 선명해지며 다양한 암시와 상징이 담깁니다. 또한, 풍부한 묘사를 통해 실감나는 독서가 가능하고 작품 해석의 다양성이 늘어납니다.
  안정효는 『글쓰기 만보』에서 ‘수, 것, 있다’를 3적이라고 하고 빼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간결함과 생동감이 생긴다고 말입니다. 이 글은 너무 설명적이라 ‘있었다’가 반복되어서 지루함을 유발하고 문장이 죽은 듯한 느낌입니다.(‘있었다’만 주의해서 읽어보세요. ‘있었다’만 전부 빼버려도 문장들이 훨씬 좋아질 겁니다.) 참신한 문장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아무도 쓸 수 없는 자기만의 문장을 많이 보유해보려고 시도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또 문장 구조가 다 같기 때문에 지루한데, 다른 소설들과 달리 모조리 ‘다’로 끝납니다. 종결 어미도 변화를 주려고 한 번 의식하고 글쓰기를 해봄이 어떨까요?
  비밀 시설, 강화인간. 너무 단순하게 단어로만 때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판타지 소설을 쓸 때도 판타지 독자들은 당연히 연상할 수 있지만, 일반 독자들은 낯선 마법들은 접근성을 떨어트립니다. 가령, “파이어볼!”이라고만 해버리면 결국 아는 사람들만 읽을 수 있는 글이 됩니다.(몇 미터 크기의 화염구가 어떤 속도로 날아갔는지 시각적, 후각적, 청각적 묘사가 곁들여진다면 일반적인 독자들도 보여지기 때문에 알 수 있겠지요.) 10살짜리 아이도, 70세 노인도 읽을 수 있게 하자, 라고 마음먹고 쓰면 쉽게 처리하고 넣은 부분들을 디테일을 넣어서 설명하게 될 것입니다. 강화인간만 하더라도 두 세장의 묘사와 설명이 필요한 부분일 수 있습니다. 강화인간이라고만 하면 관련 글을 접하지 않은 독자들은 전혀 이미지가 기본적인 외형부터 잡히지 않습니다. 외장의 재질부터 내부 공학적인 설명과 세계의 자금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세부적인 내용이 너무 없다보니 독자는 대충 발상만 적어놓은 글을 보는 듯한 민망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 점이 더욱 사랑스러워지는 베가였다.” 같이 감정을 직접적으로 서술하는 문장들이 이 작품을 비롯해서 이전 작품에서도 많이 눈에 띕니다. 사실 이런 방식 역시 옛날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기법이고 지금은 낡은 느낌을 줍니다. 시에서도 ‘사랑해’나 ‘외로워’ 같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쓰는 것은 좋지 않다는 말이 있지요. 감정을 행동이나 대사, 몸짓으로 독자가 유추할 수 있게 하는 게 현대적인 소설의 방식일 것입니다. 다른 기법을 시도해본다면 작가의 무기가 다양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한 번 ‘카메라 아이’(등장인물의 액션(언어, 표정, 몸짓, 태도, 동작, 행위 따위 일체의 외적 표시)과 용모, 배경만을 묘사하고, 일언반구도 심리적 설명을 포함하지 않는 철저한 외면묘사 수법.) 기법으로만 글을 써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B : 이상한 제목입니다. 한글과 영어가 뒤섞여 있고 다른 창작물의 패러디 같기도 한데 글 내용과 관련 있는 제목도 아닌 것 같습니다.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제목이지만 독자에게 흥미를 주는 제목은 아닙니다.
이야기는 제목만큼이나 직접적입니다.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주인공의 액션이 펼쳐지기는 하지만 그건 잠시 뿐이고 곧 작가의 사상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문장으로 글이 채워집니다. 그리고 글은 갑자기 끝납니다. 할 말은 다 했으니 더 이상 할 필요는 없다는 듯이 툭 끝맺어지면서 독자를 당황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독자에게 강한 충격을 줘서 인식을 바꾸려는 의도로 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독자가 이야기를 어떻게 느낄지 그 입장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단지 독자가 글에 나열된 정보를 충실히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이 가진 개성은 이런 태도에서 나옵니다. 논리의 비약, 단순한 캐릭터, 글 전체에서 느껴지는 냉정함, 절정과 결말을 중요하게 두지 않는 이야기 전개 등이 그렇습니다.
만약 이 글을 재미있게 읽는 독자가 있다만, 글에 몰입해서 이야기를 따라가는 독자가 아니라, 한 걸음 떨어져서 글 속의 정보와 가치관을 냉정하게 검토한 후 옳은지 그른지를 고민하는 독자일 것입니다. 이 글이 그런 독자를 미리 상상하고 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태도 대신 글에 몰입해서 읽는 독자를 상상하고 쓴다면 글이 더 재미있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안녕 하루 – 너구리맛우동

A : 좀비 소설들이 국내외 많이 쏟아진 탓에 웬만한 소설들은 식상한 와중에도 ‘안녕 하루’는 동물의 좀비화를 통해 차별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도는 좋았습니다. 동물의 좀비화라는 소재만으로도 하나의 단편을 오밀조밀하게 잘 써나간 듯한 느낌입니다. 다만 분량이 적은 만큼 특별한 서사가 없는 게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아무래도 소재의 소소함 때문에 분량을 더 늘릴 수도 없었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만큼 작은 사건을 세세한 묘사로 탁월하게 표현한 글로써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성공한 글이었습니다. 약간 복잡한 사건이 한 두 개 더 들어갔다면 분량이 충분해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지금으로써는 분량상 괜찮은 소품으로만 읽혔습니다.

B : <안녕 하루>는 반려동물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좀비를 소재로 다룬 글은 많이 있으나 인간 보다는 동물이 좀비 바이러스에 크게 피해를 입는다는 설정의 글은 드문 것 같습니다. <안녕 하루>는 좀비가 된 고양이 때문에 고생하는 주인공을 다룬, 독특한 분위기의 소설입니다. 고양이가 좀비가 된 후에도 주인공은 고양이에게 헌신하고 있으며 그 과정이 꽤 엽기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독특하기 때문에 재미있는 글입니다.
주인공은 좀비가 된 하루를 여전히 반려동물로 여기고 작별하지 못합니다. 어느 순간 하루는 죽은 것이지만,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 경계가 미묘하기도 하고, 주인공이 하루에게 쏟는 애정이 각별하기도 해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합니다. 하루의 신체가 점점 망가져가는 묘사가 세세해서 마치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간단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별다른 방향 전환 없이 전개되다가 결말을 맞습니다. 주인공은 하루와 작별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어머니의 잔소리 덕에 작별하게 된다는 이야기 흐름은 평이해 보이지만,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일이기도 합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충실히 풀어놓고 깔끔하게 끝을 맺는 소박한 단편입니다.



  맥 – 너구리맛우동

A : 꼬리에 꼬리를 무는 구조를 취한 작품입니다.(이런 작품은 고은주의 「칵테일 슈가」 같은 단편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구조에 공을 들인 작품은 그것만이 다인 경우가 많습니다. ‘맥’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중간에 ‘고양이’를 빼돌려 생명을 살리는 부분은 인상적인 에피소드였습니다. 우연의 우연을 거듭하는 소품이라고 느꼈습니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띄며 읽게 되는 짧은 글이었습니다.

B : 짧은 이야기가 인물과 시점을 바꿔서 진행됩니다. 고양이를 길렀던 사람과 기르는 사람들 사이에 펼쳐지는 이야기의 중심에는 악몽을 막아준다는 동물 맥의 인형이 있습니다. 소제목이 붙은 짧은 이야기들이 이어지고 있으나 이야기도 그 연결도 다소 우연이 많고 작위적입니다. '소년'에서 '남자'로 전환할 때처럼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때도 있지만, 뒤로 갈수록 놀라움보다는 작위적으로 나열됐다는 느낌이 먼저 듭니다. 이 점이 이야기의 진상이 드러났을 때의 감동을 다소 방해합니다. 마음을 위로해주는 좋은 이야기입니다만, 더 감동을 주려면 덜 작위적인 화법을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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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달 12.12.31 01:23 댓글 수정 삭제
    짧은 글에도 성실하게 평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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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그라토 12.12.31 13:07 댓글 수정 삭제
    성실한 비판 감사합니다.
    어떻게 해야 소설답게 쓸 수 있는지 헤메고 있었는데, 이 점을 지적하신 것 같습니다. 평을 좀 더 반복해서 읽어 보고, 제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로 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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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그라토 12.12.31 13:11 댓글 수정 삭제
    그런데 전 명쾌하게 주제를 드러내려고 쓴 것인데, 그것이 소설답지 않다는 점으로 연결된다는 것은 좀 당황스럽습니다. 명쾌하게 주제를 드러내면서도 소설답게 쓰는 길을찾아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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