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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독자우수단편

안녕하세요. 이번 달 독자우수단편 선정을 맡은 박애진, 김이환입니다. 이번 달에는 많은 글이 올라왔습니다. 거울 독자 단편란은 다양한 장르의 글이 올라오지만 의외로 소재가 많이 겹칩니다. 특히 사회 비판을 다룬 글의 경우, 88만원 세대, 자살, 학교 폭력 등이 많습니다. 이런 소재를 쓰는 것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들이니까요. 이런 소재를 글에서 다룰 때 어떤 관점을 제시하느냐가 좋은 글과 평범한 글을 가릅니다. 글에서 드러나는 통찰이 깊게 고민해서 얻은 결과인지 항상 생각하면서 글을 쓰셨으면 합니다.

이번 달에는 열다섯개비님의 <당신의 1%>를 우수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귀동 - sopi

A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글입니다. 어머니를 관찰하는 딸의 능청맞은 서술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손님’이 등장하지 않는 대신에 어머니가 뱀파이어라는 상황이 중요한 갈등을 만듭니다. 딸이 관찰자로만 머무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와는 달리 이 글은 주인공의 성장을 직접 다루고 있습니다. 딸에게 평범한 어머니가 되어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어머니와, 그래도 어머니를 사랑하는 딸의 블랙 코미디 같은 상황이 이어집니다. 슬프면서도 때로는 마당에 놓인 사슴처럼 웃긴 상황도 있습니다. 아이가 소녀로 성장하면서 넓은 세계로 나가고 그렇기 때문에 집 안의 세계와 충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재밌게 풀어냈습니다. 결말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지만 깔끔하면서도 여운을 남깁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B 엄마가 흡혈귀라 수업참관이나 운동회에도 오지 못한다는 도입부가 신선했습니다. 문체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어 어떤 이야기로 흐를지 기대가 컸는데 소소하게 끝나버렸습니다. 화자의 말투는 지금 말투 같지 않은데 배경이 명확하지 않은 점도 아쉽습니다. 근대를 배경으로 하고, 그 시대의 배경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좀 더 다양한 사건을 넣었다면 더 재미있는 글이 나오지 않았을까 합니다. 확실한 절정이 없이 잔잔하게 흐르는 이야기인데 조금 길었습니다.



애리조나 드림 - 장피엘

A 주인공이 여행에서 일어난 일을 들려주는 형식입니다. 하지만 이야기에 별 사건이 없습니다. 우연히 ‘우주의 브레인’을 만난 인물은 대화를 하면서 글의 설정만 풀어놓습니다. 설정 자체는 흥미를 끕니다만 설정이 사건을 만들진 않습니다. 여행하면서 겪은 경험담을 들려주는 방식은 흥미를 끌지만, 이렇게 기묘한 경험은 오히려 이야기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는 느낌만 끌어내는 것 같습니다. 사건이 더 있었다면 설득력을 얻었을 듯합니다. 

B 여행 도중 수수께끼의 남자를 만나 미지의 존재와 나눈 이야기를 듣습니다. 문장이 번역체라 집중하기 어려웠고, 대사만으로 모든 걸 설명해 지루했습니다. 소녀를 찾는다는 부분이 나와 마침내 무언가 사건이 시작되나 싶었는데, 그마저도 현재 진행형으로 끝났습니다.
우주의 브레인이라는 존재도 매력적으로 그리지 못했고, 질문에 대한 답들은 설정에 대한 강의를 듣는 기분이었습니다. 배경 설명만 하다 끝난 것 같기도 했고요. 핵심이 되는 사건을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완벽 - 현재

A 글 초반에는 화자의 정체를 의도적으로 감추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장미꽃이고 배경은 정원입니다. 아름다워지는 것만 생각하며 살던 장미꽃이 아름다움을 잃고 나서 삶의 새로운 의미를 깨닫는다는 우화입니다. 그런 면에서 초반의 트릭은 구성과 맞지 않는 듯합니다. 주인공이 장미이며 생각하고 말도 할 줄 안다는 점을 바로 보여주고 분량도 지금보다 더 짧았으면 간결한 우화로 보였을 것 같습니다. 또한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것을 잃고 좌절한 장미가 교훈을 찾기까지의 과정에서 더 설득력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지금은 주제를 작위적으로 설명한 느낌입니다.

B 화자가 누구인지 궁금했습니다. 막상 밝혀진 모습은 예상했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경비원 아저씨가 해바라기를 꺾으려는 덩치 큰 사나이를 말릴 때는 꽃들과 사람의 말이 통하지 않는 듯 했는데, 갑자기 정원사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어색했습니다. 독자의 상상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교훈적인 서술로 마무리 지은 게 아쉽습니다만 장미꽃이라는 화자를 통해 타인의 기대, 기대에 맞추려 무리하다 자기 자신은 막상 일그러지는 모습을 그리려 한 점은 좋았습니다.



기억 단편 이어짐 - 칭소마라

A 지나치게 멋을 부린 문장이 거슬립니다. 쉽게 쓸 수 있는 문장은 쉽게 썼으면 합니다. 기억 상실증에 걸린 남자의 이야기인데 상황을 짐작하기 어려운 모호한 묘사가 이어져서 내용 이해가 어렵습니다. 모호함이 글의 중심이 되는 분위기긴 하지만 마지막에 반전을 품은 글에 이런 화법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또한 남녀의 사랑이야기라면 감정이 절실해야 하는데 문장이 지나치게 난해해서 오히려 감정이 살지 않습니다.

B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한 충격으로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와 남자를 찾아오는 여자친구 이야기입니다. 무슨 내용인지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둘이 대화하는데 남자와 여자 중 어느 쪽이 말하는 건지도 종종 헛갈립니다. 누가 말하는 건지 한 번씩 짚어줘야 합니다.
기억이 지속되지 않다보니 현실이 환상처럼 반복되는데요. 화자는 몰라도 독자는 알아야 하는 구체적인 부분을 좀 더 명확하게 서술한다면 불필요하게 어려운 부분은 사라지고 몽환적인 매력이 살 것 같습니다.



밤의 여왕 - 숨쉬는 돌

A 구성이 좋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반전을 숨기고 있는 글인데 복선이 적고 구성이 단순해서 반전이 잘 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결말이 다소 뜬금없는 느낌입니다. 구성에 더 신경을 써야할 것 같습니다.

B 우주 공간에서 맞이하는 고독, 핵폭발처럼 거대한 힘으로 잃어버린 것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만 있을 뿐 명확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단편 소설에는 이야기/서사, 기승전결의 구도가 필요합니다. 글의 기본기를 좀 더 닦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죽기 좋은 날 - 세유

A 자살하려고 옥상에 올라간 남자가 다른 사람과 마주칩니다. 주인공의 상황을 설명하는 도입부는 사연이 절절하기 때문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지만, 뒤의 인물들은 다소 이입이 어렵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여자는 우울한 상황인 건 알겠지만 자살을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길 정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여자가 마음을 바꾸고 내려가자 학생이 나타나는데, 인물이 등장했다가 퇴장하고 새로운 인물이 나오면서 그들의 사연을 통해 주인공이 위로를 얻는 상황은 재미있지만, 지금은 분량 조절이 잘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조금 분량을 늘리고 완전히 결말을 맺거나 반대로 아예 더 열린 결말을 냈으면 싶습니다. 지금은 긴 도입부 끝에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하더니 갑자기 끝나는 느낌입니다.

B 생명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본능에 역행하는 자살이라는 걸 선택하기까지는 수많은 갈등과 고뇌가 있을 것입니다. 가족은커녕 친구도 없고, 빚은 많은데 앞으로도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으리라는 절망은 자살을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한창 잘 나갔는데 점점 되는 일이 없다거나, 잘 해나갈 길이 없으면, 아직 어린데 공부에 대한 지나친 압박과 부모의 편애 역시 극단적인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걸 이야기 속에서 잘 녹여내어 독자를 설득했는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글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습니다.
죽으려던 사람이 의도치 않게 죽으려던 사람 둘을 구했고, 본인도 죽을 생각을 접었다는 소재는 좋았습니다. 죽고자 하는 마음까지 사람을 몰아치는 고독, 소외, 각박한 삶을 진정성 있게 그리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비닐을 뒤집어쓴 여자 - HYH

A 주인공은 고양이를 데리고 다니는 여성에 대해 동네 사람들에게 묻고 다닙니다. 다양한 인물의 엇갈리는 증언을 통해 글을 구성하는데, 도입부는 흥미롭다가 증언이 반복될수록 흥미가 오히려 떨어집니다. 증언에서 새로운 사건이 별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물들이 새롭게 주는 정보가 기존의 정보와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스릴이 없고, 그저 사람들의 장황한 생각만 듣고 다니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왜 여인에 대해 묻고 다니는지도 잘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 만큼 말투도 다양해야 하는데 이 점도 아쉽습니다. 사극 말투가 좀 뜬금없는데, 인물이 직접 어색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색합니다.

B 한 여자가 J라는 여자에 대해 동네 사람들에게 묻고 다닙니다. 분명 한 사람에 대해 묻는데도 사람들은 외모부터 성격까지 모두 다르게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이 사람에 대해 갖는 편견과 오해가 얼마나 심한지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J를 찾는 여자는 J 본인인 듯 합니다. 본인을 앞에 두고도 머리 모양이나 화장, 옷차림을 바꾸자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제대로 읽었다면, 이 자체는 재미있는 발상이지만 설득력은 조금 떨어집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그렇게까지 알아보지 못하지는 않습니다. 결말도 조금 허무했습니다.



우리를 파괴할 네메시스는 어디까지 와 있나 - 유광석

A 글이 여전히 복잡하긴 합니다. 미래가 배경인데 인물도 많고 얽힌 역사도 길고 설정도 촘촘해서 그런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문장 중간에 엔터를 친다거나 괄호 안에 단락 하나 분량의 글이 들어가는 등 잘 쓰이지 않는 방식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주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복잡함과 독특한 사이의 균형을 맞춰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B 전에 올렸던 글과 본질적인 부분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 합니다. 배경과 인물 설명, 소소한 대화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분량도 길고, 등장인물도 많은데 그걸 아우를 전체 사건이라 할 만한 게 없습니다. 다른 말로 사건과 인물 설정이 겉돕니다. 이야기는 한 점을 향해 가야 합니다. 중심이 되는 인물과 사건은 살리고 그 외에는 과감하게 가지를 쳐야 합니다.


존재잔향存在殘響 - 성우창.

A 사건이 계속 일어나지만 사건과 사건 사이의 논리는 약합니다. 팬픽션이라고 끝에 밝히신 것을 보고 그래서 글의 성격이 이런 걸까 생각했습니다. 글에서 사건보다는 캐릭터가 어떻게 움직이는가가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목적이었다면 이런 분위기의 글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캐릭터가 아닌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웠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B 팬픽이라고 하셨는데, 원작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평을 하기 조심스럽습니다만, 글 자체를 두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옴니버스 중 한 편으로 보이고,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에게는 이 글 자체로 한 편의 완성된 단편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현장에 사체는 없이 피만 흥건한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는데 우연한 만남으로 큰 갈등 없이 해소되어 글이 밋밋합니다. 사건 해결까지 좀 더 드라마틱한 일들이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z시대의 멘토링 - 고르고르

A 좀비 소재를 새로운 형식으로 풀어내서 신선함을 주려는 시도는 많이 있습니다. 이 글이 자기계발서 형식을 취한 건 꽤 괜찮은 아이디어인 것 같습니다. 일단 흥미롭고, 힘든 현실을 빈정대며 비판하는 분위기가 재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계발서는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복잡한 이야기를 담기 어렵고, 이 글 역시 사건이 부족한 점이 아쉽습니다. 단편으로는 무리 없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설정을 통해 여러 상상을 할 여지도 주고 있고요. 그래도 이야기를 좀 더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B 사회 풍자적인 글이었습니다. 재치 있는 표현들도 보이고요. 다만 이 상태로는 조금 부족합니다. 해답을 줄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의 완결성은 있어야 합니다. 이 글은 이런 챕터가 더 있어도 무리 없을 글이라 어느 면 쓰다 말았다는 느낌도 줍니다.



마지막 바빌론의 탑 - 알렉산더

A 바벨탑처럼 높은 건물을 만든다는 설정 자체가 작위적인 면이 있습니다. 바벨탑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주제를 전면에 내세우고도 있고요. 그런데 작위적인 설명에 어울리지 않는 지나치게 거창한 설명이 붙습니다. 아이디어는 직설적이고 단순한데 글은 이에 어울리지 않게 점점 커지는 기분입니다. 신화로 시작해 문명의 발달 단계를 인용하면서 끝내는 글이지만, 사건은 단순합니다. 높은 탑을 쌓는 남자의 집착이죠. 지금은 글이 규모가 큰 것이 오히려 현실적이지 않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B 먼 과거의 신화와 먼 미래의 모습을 교차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과 멸망을 보여줬습니다. 나쁘진 않았지만 이대로는 뭔가 부족합니다. 별다른 기복이 없이 그냥 일직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독자가 이입하거나 감동할 만한 지점이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청새치 - 그믐여울

A 시를 삽입한 글은 많지 않고 시도하기도 어려운데 이 점을 잘 해냈습니다. 억지로 끼워 넣은 것이 아니라 설정 속에 잘 녹여냈습니다. 이미지가 글의 전면에 나와 있는 글이 흔히 가지는 어딘가 붕 떠 있는 분위기가 좋기도 하면서 아쉽기도 합니다. 인어가 현실에 존재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설정이 비현실적인 것 같고, 인어를 불러내지 못한다고 사람을 절벽에서 미는 상황은 다소 의아합니다. 분위기 뿐 아니라 사건에서도 감수성을 만들 수 있습니다. 더 노련한 방식으로 비극적인 결말을 끌어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B 머리에 꽃이 피고 시를 부르면 바다에서 나와 외로운 소년을 달래주는 인어의 이야기는 아름답고 몽환적입니다. 이미지는 아름답지만 이야기에 극적인 요소가 부족합니다. 황순원의 ‘소나기’는 요약하자면 두 소년 소녀가 무를 씹고, 비를 피하고, 개울을 건널 때 업어준 게 전부였지만 오래 남는 감동이 있습니다. 꼭 거칠고 큰 사건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여운이 남는 이야기들이 있었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주사위 - 알렉산더

A 시뮬레이션을 통해 미래를 내다본다는 설정은 새롭진 않지만 이 글에서는 나름 신선하게 풀어냈습니다. 주인공은 어떤 여자가 좋을지 고민하면서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는데, 사실은 여자가 문제가 아니라 주인공이 문제입니다. 주인공의 잘못된 행동이 결국 파멸을 불러온다는 결말은 설정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지금 이 글에서는 다소 뜬금없어 보입니다. ‘연보라’는 글 도입부터 등장하고 꽤 비중이 많은데 설명이 끝까지 없다가, 죽은 첫사랑을 로봇으로 만들었다고 결말을 냅니다. 이 반전이 다소 쉬워 보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군데군데 복선이 있긴 합니다만 반전을 더 세련되게 풀어낼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B 미래를 시물레이션해서 안 좋은 미래를 피할 수 있다는 발상은 재밌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너무 단순하게 그립니다. 미모의 여인은 질투가 심하고, 비슷한 배경을 가진 여자는 돈을 탐내고, 스폰서가 필요한 여자는 돈만 보고 접근하고, 사랑하는 여자는 부모가 반대합니다.
결혼 생활이나 오래도록 사랑했던 사람을 눈앞에서 잃는다는 것이 어떤 상실과 고통을 유발하는지 전혀 모르면서 쓴 글입니다. 글을 쓰는 분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에서 글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빛이 올 거야 - 이늬

A 자살과 죽음을 다룬 글입니다. 분위기가 우울하면서도 어딘가 코믹한 부분이 있어서 주인공이 죽을지 희망을 찾을지 궁금해 하면서 읽었습니다.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서로의 이야기가 얽히면서 진행됩니다. 아이디어는 좋은데, 이 세 인물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점에서는 잘 흘러가지 않습니다. 서로의 과거가 많이 나오고 이야기도 많이 만들고 자주 마주치기도 하는데 이것이 모여서 사건을 만들려는 순간 글이 끝납니다. 설정도 좋고 희망을 찾는 결말역시 좋은데 사건이 조금 더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았으면 합니다.

B 이상하게도 주변 사람이 자꾸 죽는 여자, 죽을 위기가 몇 번이나 닥쳐도 행운이 찾아와 살아남는 남자와 죽고 싶은데 자꾸 방해받아 죽지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재미있는 설정인데 조금씩 부족합니다. 자기 곁에 있어도 살아남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여자의 간절한 마음과 과거의 상처를 좀 더 깊이 있게 그렸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다치는 데도 너무 담담한 남자도 조금 이상합니다. 이 남자도 좀 더 어떤 마음과 상태인지 드러났으면 좋았을 것 같고, 죽기 원하는 남자는 자살 동기가 희미합니다. 이런 점들을 보완해 셋의 관계를 좀 더 치밀하게 얽히고설키게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가위 - 별들의대왕

A  ‘가위’는 호러 소재로 많이 사용하고 특히 한국적인 소재기도 합니다. 도입부에서 이야기의 배경이나 주인공에 대해 잘 짐작할 수 없어 조금 힘들었습니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두 학생 이야기라는 걸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야기가 마지막에 반전을 가지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반전을 잘 살릴 만큼 구성이 좋지는 않습니다. 글 전체적으로 능숙하게 이끌어가는 솜씨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B 오래된 공포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가위는 많은 사람들이 눌리지만 한 번도 가위에 눌려보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가위에 눌려본 사람은 당시의 공포를 생생히 느껴야 하고, 가위에 눌려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글을 읽는 순간에나마 가위에 눌린다는 게 어떤 건지 알아야 하는데 묘사도 평이했고, 결말도 독자의 예상을 깨기 어려웠습니다.




당신의 1% - 열다섯개비

A ‘자살’이나 ‘학교폭력’은 흔한 소재입니다. 이번 달에 올라온 글만해도 여럿이죠. 하지만 <당신의 1%>는 흔한 소재를 새롭고 좋은 글로 풀어냈습니다. 어떤 소재를 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통찰을 보여주느냐가 중요합니다. 특히 사회적인 문제를 다룰 때면 더 그렇습니다. 학교 폭력을 다룬 많은 글이 ‘어쩔 수 없지 뭐’ 식의 자조적으로 끝내거나 갑작스러운 폭력으로 끝내면서(이를테면 피해자가 가해자를 죽이고 자살하는) ‘우리 모두가 나쁜 사람들이고 희망은 없다’는 결말을 내곤 합니다. 두 가지 결말도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모습이긴 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1%>는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서 생지옥 같은 현실을 같이 돌파해 결국 희망을 끌어냅니다. 이 점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구성이나 글을 끌고 가는 테크닉도 딱히 흠잡을 곳이 없습니다.

B 인상적인 글이었습니다. 굉장히 아픈 글이기도 했고요. 어른들은 무책임한 일반론을 반복하거나 대책 없는 횡설수설을 늘어놓고, 아이들은 평범한 아이부터 모범생까지 탈출구가 없습니다. 사회도, 경찰도, 선생님도, 부모도, 종교도 기댈 곳이 되어주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모습은 그대로 사회를 반영하는데, 사회는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깁니다. 아직 성년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금지되는 건 많은데, 책임은 아이들의 몫이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뭐 하나 덜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글이었습니다. 다른 글을 더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수작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선정되신 분들에게 거울에서 책을 보내드립니다. 열다섯개비님은 pena12 @ gmail.com 으로 택배를 받으실 수 있는 주소와 연락처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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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7월 심사평 2021.08.15
선정작 안내 6월 심사평 및 2분기 우수작 안내1 2021.07.15
선정작 안내 5월 심사평 2021.06.15
선정작 안내 4월 심사평 2021.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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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12월 심사평 및 4분기 우수작 안내1 2021.01.15
선정작 안내 11월 심사평 2020.12.15
선정작 안내 10월 심사평 2020.11.15
선정작 안내 9월 심사평 및 3분기 우수작 안내 2020.10.15
선정작 안내 8월 심사평 2020.09.15
선정작 안내 7월 심사평1 2020.08.15
선정작 안내 6월 심사평 및 2분기 우수작 안내2 2020.07.15
선정작 안내 5월 심사평 2020.06.15
선정작 안내 4월 심사평1 2020.05.15
선정작 안내 3월 심사평 및 1분기 우수작 안내2 2020.04.15
선정작 안내 2월 심사평1 2020.03.15
선정작 안내 1월 심사평3 2020.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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