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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심사평

2017.03.31 20:1703.31

안녕하세요.

완연한 봄이 다가왔습니다. 독자우수단편 평을 쓰고 있는 지금은 창 밖에 봄비가 내리네요. 뉴스를 보면서 겨우내 겪은 추위의 끝에 맺힌 가느다란 결실을 보기도 합니다. 진실과 정의에 대해서 부끄럽지 않은 따뜻한 봄을 맞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165호 독자우수단편 후보작으로 Pip님의 「블런더버스」를 선정합니다.

「친구(망각의글)」는 어쩌다가 마주친 기억나지 않는 친구와 긴 대화를 나눈 끝에 시공간의 겹쳐짐 때문에 잠깐 마주한 미래세계에 살고 있는 아들의 친구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소품입니다. 진행과정이 빠르고 유쾌합니다. 어처구니 없는 결말에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말까지 나아가는 과정에 장치가 너무 없다는 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장치가 없어서 오는 통쾌함이나 경이감보다는 허망함이 앞서네요.

「블런더버스(Pip)」는 고전적인 판타지의 포맷에 레이먼드 챈들러 풍의 하드보일드를 끼얹은 듯한 조합이 매력적인 소설입니다. 늙은 드워프의 자기연민과 몰락, 그를 둘러싼 세계의 폭력이 냉정한 필체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서사의 방향입니다. 드워프는 자신이 당한 폭력을 돌려주기 위해서 문제에 대해 가장 책임이 덜한 성매매 여성을 폭행하고, 자신의 고통에 대한 보답을 받기 위해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짓밟습니다. 물론 주인공은 그런 비열한 사람일 수 있으나, 이런 비열함과 서술의 거리감이 지나치게 적다는 점이 위험하게 느껴집니다.

이번 호는 1분기 독자우수단편이 선정되는 호이기도 합니다. 이번 호에 독자우수단편으로 의심주의자 님의 「개나 고양이」를 선정했습니다. 선정을 축하드리며, mirrorwebzine@gmail.com 으로 택배를 받을 수 있는 전화번호와 주소를 보내주세요.

다음은 1분기 독자우수단편인 「개나 고양이」에 대한 평입니다.

A :미지의 것이 참행을 저지르고 주인공 또는 화자에게만 보이며 점점 가까워지는 이야기는 수없이 되풀이될 정도로 흔한 소재지만, 또한 이야기마다 작가의 개성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불패의 이야깃감이기도 합니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것은 두 가지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화자 또는 주인공과 대상인 미지의 것 사이에 뗄 수 없는 관계가 성립되어야 한다는 것. 이야기 내에서 생기든, 알고 보니 이미 예전부터 있었든 간에 불가분의 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야기의 전개와 맞물려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몰입의 기술입니다. 이것은 분위기 조성으로 되기도 하고, 예기치 못한 전개, 반전, 속도감 조절 등 많은 기술이 필요한 난제입니다. 의심주의자 님의 「개나 고양이」는 실패할 수 없는 이야깃감을 선택해 안정적으로 이끌고 나간 작품입니다. 다만 위의 두 가지에 좀 더 신경 써서 다듬는다면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B :길고양이라는 소재는 이제 도시인들의 삶에서 떼놓을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끊임없이 이 생물을 박해하곤 합니다. 우리 주변에 아주 밀접하게 붙어있는 소재를 가지고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공포까지 확대했습니다. 흡인력이 있는 매끄러운 서사 전개가 가장 큰 장점입니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역량에 비해서는 충분한 분위기가 조성되지는 않았습니다. 단순히 정체불명의 생물이 등장하는 것 이상으로 주인공의 삶과 세상의 사건들이 첨예하게 얽힐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빠른 서사의 전개도 중요하지만 그 서사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전개의 양태에 대해 좀 더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어떨까요.

C :사건을 심화하지 않는 채로 주인공의 비슷한 경험과 의심이 반복되는 바람에 독자의 긴장을 효과적으로 고조시키지 못하는 점이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독자가 가장 긴장한 상태로 맞았어야 할 결말이 덤덤하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인 듯합니다. 그러나 독자를 붙잡은 채로 흡입력을 유지하는 문장과 표현이 장점인 글입니다. 비록 긴장이 크게 고조되지는 않았지만, 화자의 감각과 감정이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면서 독자의 긴장을 떨어뜨리지 않고 지속하는 점이 인상 깊습니다.

댓글 2
  • No Profile
    의심주의자 17.03.31 23:28 댓글

    감사합니다. 다른 글을 쓸 때에도 염두에 두고 더 나은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 No Profile
    Pip 17.04.01 16:28 댓글 수정 삭제

    저도 쓰면서 아 이거 좀 서술이랑 시점이 많이 그런데. 하는 생각은 많이 했고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도 많이 들었는데 그냥 올려버렸네요.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감평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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