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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독자우수단편 선정단입니다. 선정과 감평 방식이 달라진 후 첫 선정작을 내는 달입니다. 우수작으로 두 차례 이상 선정되시거나 연말에 최종 우수작으로 선정되신 분께는 거울 필진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2월 16일부터 3월 15일까지 올라온 글은 평을 쓰기 어려운 짧은 작품이 많았습니다. 치무쵸 님의 {그날 산속에서 시간여행자를 만났어}와 K.kun 님의 {크고, 무겁고, 무서운 것} 두 작품 중에서 치무쵸 님의 작품을 선택했습니다. {크고, 무겁고, 무서운 것}은 쉽게 읽어내려갈 수 있는 필력과 광대한 스케일이 좋았지만, 무정한 관계와 반전 외에 작품이 담은 주제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 말은 곧 자기만의 이야기로 독자에게 어필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건필을 빕니다.

3호에 걸친 1분기 독자우수단편 후보작은 치무쵸 님의 {무림제일고}, MadHatter 님의 {악몽}, 치무쵸 님의 {그날 산속에서 시간여행자를 만났어} 세 편입니다. 거울 독자우수단편 선정단에서는 세 작품 중 치무쵸 님의 {그날 산속에서 시간여행자를 만났어}를 1분기 우수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선정을 축하드리며, 세 분 모두에게 책을 보내드리니 mirrorwebzine@gmail.com 으로 택배를 받으실 수 있는 전화번호와 주소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아래는 세 작품에 대한 평입니다. A, B, C는 매번 바뀝니다. 


치무쵸 - 무림제일고 

A: 무협의 세계관이 일반화 된 현대사회라는 비일상적이지만, 비일상적이라는 측면에서 소재로 많이 쓰여(…) 이제는 비교적 익숙한 배경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디테일이 매우 훌륭합니다. 고등학생들의 심리묘사나 환경에 대한 묘사도 훌륭하고요. 우등생인 현의 캐릭터도 이렇게 가볍게 치고 나가는 소설의 주인공이 되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문장의 가독성이 좋고 소설이 빠른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강점입니다. 다만 부자와 빈자의 비유가 도식적인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물론 빈자들의 세계와 부자들의 세계는 다르고, 그것이 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설득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표철호와 현이 다른 길을 선택하는 방향이 매우 전형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표철호라는 인물이 가진 매력에 비해 그저 단순히 세계의 뒷면에서 힘을 키워서 그걸 뒤집으려고 하는 악으로만 묘사된 게 아쉽네요. 조금 분량이 길어진다면, 표철호라는 인물의 세계, 그 인물이 상징하는 세계에 대해 깊게 묘사해 주면 좋겠습니다. 주인공인 현이 계속해서 받아야 하는 유혹도 바로 그것일 테니까요. 재미있는 소설이었습니다.

B: 무림과 과학기술을 조합해서 만들어낸 세계관이 흥미진진한 글입니다. 다만, 독특한 세계관을 독자들에게 펼치기 위해 인물들의 대화 대부분을 세계관 설정 설명에 할애하는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세계관 설정이 이 이야기의 핵심적인 매력임은 분명하지만 인물과 플롯이 그것을 설명하는 도구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점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러나 무협에서 등장하는 공력이나 기혈의 개념을 공력응축기나 유전적 재능 등과 같은 과학적 소재와 결부시킨 아이디어는 흥미롭고 매혹적입니다. 무림제일고라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단순한 사건을 서술하고 있지만 그 속에 계급, 기득권의 세습, 사회의 부조리와 같은 현실을 투영하여 담아내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정교한 플롯 속에서 이러한 설정을 자연스럽게 녹여내었다면 매우 흡입력 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완성도가 높아질 가능성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C: 무협을 현대로 옮겨온 세계에서 일어난 교내 난사 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문과와 이과를 내경과와 외경과로 바꾸는 등 현대의 학제에 더 치중이 간 설정입니다. 그에 비해 외경과 내경이 계층으로 나뉘는 것, 외경인 표철호가 자기 몸에 한 짓이나 테러의 원리 같은 것은 무협의 무공 원리에 대해 들어본 사람이 재미를 느낄 법한 요소입니다. 이런저런 것 때문에 단편 치고 설명이 많아졌고, 범인을 찾는 미스터리가 큰 줄기이다 보니 그 와중에 독자에게 단서를 숨기기 위해서 화자가 너무 편의적으로 바뀌는 점이 아쉽습니다. 또한 군데군데 비문이 거슬립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연작이나 장편 첫 편으로 어울리면서도 완결성 있고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MadHatter - 악몽

A: 가상현실과 악몽을 연결하며 현실을 들여다보는 글입니다. 소재가 신선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작가가 천착하는 한국의 현실을 은유와 실제를 섞어 잘 표현하였습니다. 또한, 시궁창 같은 현실을 방황하는 화자의 가족애를 흡입력 있게 표현하여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도 장점입니다.

B: 꿈과 가상현실은 분명히 차이가 있지만 현실세계의 사람들에게는 비슷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설정들입니다.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많은 SF 소설들에서 변주되면서 나타나기도 했죠. 이 두 가지를 연결지으려고 시도하는 것은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이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은 이 두 가지를 연결하면서 한국 사회를 해석하려는 도전적인 시도를 했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의 캐릭터가 그 안에서 잘 살아 있습니다.
다만 주인공의 '과거'를 서술하기 위해 현재의 서사가 강력한 힘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은 조금 아쉽습니다. 꿈이라는 소재의 특성상 일정부분은 불가피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요. 서울을 배경으로 드러나는 이국적인 분위기가, 꿈과 가상현실이라는 뒤틀린 공간 속에 매력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C: 앞부분은 그림으로 그린 듯한 가족생활과 몽환적이고 공포스럽지만 미묘하게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악몽이 교차되면서 분위기가 좋습니다. 이런 식의 전개가 나오면 자각몽이거나 가상현실일 거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만하지만, 너무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단서를 봉쇄하면 독자를 속이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적절한 수준에서 잘 묘사하고 서술했다고 봅니다. 다만 주인공이 진짜 세계로 불려가는 부분이 후반부에서 너무 급박해지고 설명으로 건너뛰어서 글의 속도가 일정하지 않은 것이 아쉽습니다. 



치무쵸 - 그 날 산속에서 시간 여행자를 만났어.

A: 예전에 사고를 겪은 눈먼 여인이 시간을 뛰어넘어 낯선 곳에서 깨어나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시간여행자의 이야기 근처를 맴돌며 여인이 시간여행을 한 것처럼 분위기를 몰고 가다가 여인에게 남은 후유증이 나오며 장르가 스릴러처럼 변합니다. 그리고 또다시 반전이 있습니다. 후루룩 읽으며 바로 이해하기엔 헷갈리는 면이 있고 앞부분에 조금 인위적인 대화가 많아 그런 혼동을 부채질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필요한 만큼만 서술하고 시점도 거슬리지 않으면서 필요한 만큼 바꾸고 있습니다. 안정적인 서술로 좋은 반전을 선보인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B: 이전에 추천작으로 선정된 <무림제일고>와 여러 면에서 비교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매력적이고 독특한 설정이 유사하고, 설정을 인물의 대화로 설명하며 풀어가는 아쉬움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무림제일고>에 비해 이야기에 비해 소설적인 재미가 더 살아있습니다. 시간여행에서 ‘이동’을 시간과 공간 두 축으로 나누어서 설명하는 화자는 시간 여행자를 찾는 독자의 시선을 기억을 상실한 유림에게 붙잡아 놓습니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시점에서 6년이 흘렀음에 당황하는 유림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지 독자가 궁금해 하며 따라가는 동안 작가는 착실히 반전을 준비해 갑니다. 느닷없이 뒤집힌 시간 여행자의 정체가 독자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때리면서 마무리하는 느낌이 경쾌합니다.

C: 서사가 매우 매끄러운 소설입니다. 그러면서도 완결점이 명확합니다. 타임 패러독스라는 다루기 어려운 주제를 선택해서, 어떤 경이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결말까지 내달리는 힘이 좋습니다. 주인공의 심리상태가 표현되는 것이 굉장히 또렷하다는 것도 장점이네요. 앞이 안 보이는 주인공이라는 특이점을 잘 살려낸 점도 훌륭합니다. 기철이 그곳까지 도달하는 디테일이 그리 섬세하지는 않지만, 서사가 강렬하게 달려나가면 디테일이 약간 뒤틀려 있는 것도 어느 정도까지는 매력적으로 작용하네요. 즐겁게 읽었습니다.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모두 건필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댓글 3
  • No Profile
    치무쵸 16.04.01 18:21 댓글

    우수작 선정이라니. 아주 아주 기쁩니다~

    좋게 봐주시고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No Profile
    MadHatter 16.04.02 21:42 댓글

    평 감사드립니다. 아쉽게(?) 우수작은 못되었지만 치무쵸 님 소설은 저도 재미있게 봐서 할 말이 없습니다....

    메일은 금방 보내겠습니다.

  • No Profile
    유이립 16.04.04 01:47 댓글

    선정되신 모든 분들께 축하드립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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