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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나와 앤윈입니다.
 
날씨가 어느덧 쌀쌀해졌네요. 이번 달에는 심사제외 작품이 많아서 막상 심사를 하고보니 그리 많은 수의 작품이 들어온 달은 아니었습니다. 한 호흡으로 밀어붙이는 이야기가 많은 달이었습니다. 단편이라는 장르의 호흡은 길지 않은 편입니다만, 그 안에서 분명한 서사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죠. 많은 고민이 느껴지는 작품들을 즐겁게 읽었습니다.
   
소슬 님의 <백수광부지가>를 가작으로, 엠제이 님의 <반 빙하 소설>을 우수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투고해 주시는만큼 저 자신도 배웁니다.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장피엘 - 향기로운 아카시아 꽃 한 아름
 
A : 노인들만 남아 늪지가 되지 않도록 버티는 마을에서 혼자서 살며 매일 미나리를 캐는 여인과 길을 잃어 헤매다 마을까지 흘러들어온 남자의 이야기가 교차되다가 드디어 두 사람이 만납니다. 하지만 별일 없이 남자가 헬리콥터를 타고 가며 이야기는 끝납니다. 둘 사이에는 아무것도 오가지 않고, 둘이 만남으로써 변화도 없습니다. 다만 전체적으로 늪지와 아카시아와 바람의 대비되는 이미지만 남았습니다. 장면을 그리는 묘사력과 문장이 좋습니다만, 이야기에서 그리려는 주제는 명확히 닿지 않아서 아쉽습니다.
 
B : 미나리를 캐면서 삶을 영위하는 여인은 마을에 사는 노인들에게 일정 부분 이용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여인은 전형적인 희생자의 애티튜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한 남자를 구하게 되죠. 그런데…… 끝입니다. 이 여자와 사내의 관계는 대체 무엇입니까? 이 관계가 남은 여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다 읽고 나서 느낀 것은 ‘밑도 끝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묘사와 이미지는 아름답습니다만, 부디 “이야기”를 진행해주시기를.
 


엉클준 - 그들만의 고독
 
A : 벤치에서 노숙한 여자와 남자가 이야기를 나눕니다. 여자의 사연이 본 이야기인 액자구조의 이야기인데, 여자가 이야기를 하기까지가 길고 딱히 필요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또한 이야기를 마친 후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를 보면 남자가 여자의 이야기 속 등장인물인가 싶기도 하지만 뒷받침할 만한 디테일이 부족해서 결론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반전과 숨겨진 비밀에는 탄탄한 근거가 필요합니다. 여자가 이야기를 혼자서 길게 하는데 그, 그녀 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이야깃감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가기 위해 문장과 문단을 적당한 길이로 쓰는 연습도 필요해 보입니다.
 
B : 벤치에서 노숙하고 일어난 여성을 한 남성이 깨웁니다. 남성은 단지 벤치에서 ‘시간을 낚는’ 사람인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 여성이 울음을 터뜨리고 남성은 그 여성을 달래며 삶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야기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는 구성이지만, 진행과정은 상당히 특별합니다. 놀라울 정도로 묘사가 매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대사 모두가 현실감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맞춤법과 문장부호까지 지키지 않고 있으며, 문단 나눔도 어떤 기준으로 되어 있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여자가 혼자서 아주 길게 늘어놓는 이야기는 현실감이 없을뿐더러 서사의 진행조차 허술하여 완전히 자아도취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이 여자가 소위 ‘믿을 수 없는 화자’라는 것을 독자에게 인지시킨 적도 없죠. 독자를 설득시키기 위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야 할지, 어떤 방식으로 서술을 해야 할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423 - 그 남자
 
A : 글을 쓰고 싶다고 하지만 사실 치열하게 원하기보다는 삶의 도피처처럼 소비하고 그것을 대체할 것이 있으면 안주하면서 살아왔던 남자가 서른 직전에 느끼는 감상을 그린 글입니다. 문장과 전개가 차분하고 섬세한 편이라 술술 읽힙니다. 하지만 주제와 중심 사건이 없이 흘러가는 글이라 재미있게 읽지는 못했습니다. 영롱한 감성이나 가슴을 치는 공감을 문장에 녹이거나, 독특한 사건이나 의식을 넣거나, 어느 한쪽으로 방향을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B : 평생을 핑계를 대고 도피하면서 살아온 남자가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반추를 할 뿐, 그래서 지금부터 어떻게 되는 건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단편소설의 호흡상 이야기를 처음부터 끌고갔으면 훨씬 지루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그 이후에 ‘이 남자’의 이야기가 있어야만 이야기가 서사로서 완결성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 남자가 어떤 인물인지 이 이야기로 충분히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남자는 행동을 해야합니다. 캐릭터를 행동하게 만들어 주세요. 이대로는 그냥 ‘아, 그런가보다’ 이상의 감상을 이끌어내기 어렵습니다.




소슬 - 백수광부지가
 
A : 한신의 빈객 괴철이 한고조 유방에게 최후의 간언하는 모습을 1인칭 시점으로 구성했습니다. 적절하게 구성하지 않으면 매우 어색하거나 지루해지기 십상인 글인데 훌륭히 잘 소화했습니다. 모두가 성왕으로 생각하는 유방의 맨얼굴, 너무 뛰어나서 누구의 아래에 있을 수 없으나 위에도 설 수 없었던 자라는 주제와 전개방식 모두 아주 독창적인 것은 아니지만 유려하게 잘 쓴 글이었습니다.
 
B : 훌륭한 팬픽션(인 동시에 팩션)입니다! 한신에게 자립을 권유했던 괴철의 맥락이 적절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동시에 일정한 허구적 맥락을 만듦으로써 초한지를 아는 이들에게도 공감과 기대감을 끌어올립니다. ‘천재이기 때문에 정치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진한 대장군 한신의 캐릭터는 문학작품 일반이라는 관점에서는 전형적이면서도, 초한지의 한신으로서는 전형적이지 않네요. 무엇보다 처연하고 아름답습니다. 이런 애증의 관계를 괴철의 시선에서 서술한 방식도 매우 좋습니다. 모노드라마 같은 느낌도 드네요.
 
가작으로 선정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엠제이 - 반빙하소설
 
A : 평범하게 사랑하던 한 커플이 외계인의 습격을 받아 한쪽은 죽고 한쪽은 애완동물이 되어버립니다. 사람으로써 누려왔던 모든 것이 완전히 바뀝니다. D 데이를 나타내는 말에서 상상했던 것보다 더 놀라운 반전과 발랄하고 살짝은 괴이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글이었습니다. 사실 초반은 조금 재미난 표현에만 천착하는 흔한 글일 줄 알았지만 앞과 뒤를 연결하면서도 완전히 뒤바뀐 부분이 대조가 되기도 하고 인간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 글이었습니다.
 
B : 한 커플이 외계인의 습격을 받아서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과정을 코믹하면서도 섬뜩하게 그린 수작입니다. 초반에 개를 거세시키자고 이야기하던 커플의 대화에서, 결국 거세당하는 게 자신이 되어버리는 결과로 나아가는 과정이 엄청난 비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발랄하고 짜임새있습니다. 어색하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역량이 대단합니다. 소설적으로 매력적일 수 있는 사소한 부분들도 놓치지 않고 묘사하고 서사로 풀어나갑니다. ‘그로테스크’와 ‘넌센스’가 태어날 때부터 한 몸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은 소설이었습니다. 즐겁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제목이 무슨 뜻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네요. 좀 더 직관적인 제목이었으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우수작으로 선정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독자우수단편에 선정되신 분들께는 책을 드립니다. 엠제이님과 소슬님께서는 mirrorwebzine @ gmail.com 으로 주소와 연락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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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pena 15.10.01 04:26 댓글

    지난 146호 우수단편으로 선정되신 분들께 아직 책이 발송되지 않았습니다. 많이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번 주 내로 발송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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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2016년 4분기 우수작 및 2016년 최우수작 2017.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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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후보작 심사평2 2016.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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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2016년 2분기 독자우수단편 선정 201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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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선정작이 없습니다.1 201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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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거울 독자우수단편 추천작1 2016.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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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선정작이 없습니다. 2015.12.01
선정작 안내 거울 독자우수단편 선정6 201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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