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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11월 심사평

2018.12.15 00:0012.15

안녕하세요. 독자우수단편 선정단입니다.
이달의 후보작을 선정합니다.
우수작으로 2차례 이상 선정되시거나 연말에 최종 우수작으로 선정되신 분께는 거울 필진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번 호 독자우수단편은 2018년 11월 1일부터 2018년 11월 31일 사이에 창작 게시판 단편 카테고리로 올라온 작품들을 대상으로 하여 후보작을 추천하였으며, 독자우수단편 후보작으로는 노말시티의 「살을 섞다」가 선정되었습니다.

심사대상에서 제외된 작품은 「23세기 소설가」(인투스), 「단화개문」(후안) 입니다. 해당 두 작품은 분량(원고지 150매 이내) 초과로 인해 심사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 「극지인과 도넛」(희아아범)

노동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는 소설입니다. ‘극지인’이라는 존재를 배경으로 취업준비생인 도영의 일상과 사랑을 그려냈습니다. 극지인은 잘 보이지 않는, 동시에 아무렇지 않게 탄압받는 노동의 양상을 상징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데요. 난민 문제와 함께 최근 많이 회자되는 ‘인공지능과 노동의 미래’라는 화두를 떠올리게도 하네요. 다만 이야기의 중심소재일 것으로 모든 독자가 예상할 ‘극지인’이 막상 소설 속에서는 지나치게 주변화 되었습니다. 도영과 유나의 사랑이야기와 극지인의 문제를 엮어내고 싶었을 것이나, 극지인은 마지막에 집단사고를 한다는 게 밝혀지는 것 외에는 서사에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되는 소재는 서사에 단단하게 묶여있을 때 충분하게 빛날 수 있습니다.

· 「불광동 수정씨」(희아아범)

마찬가지로 ‘극지인’ 시리즌데요. 극지인과 도넛보다는 조금 더 앞선 시점으로 여겨지네요. 극지인들이 완전히 사회에 자리잡기 이전. 수정과 외계인으로 추정되는 한 남자의 하룻밤을 따뜻한 시선으로 다루었습니다. (제가 아는 만화 속의 이루리는 <쿨핫>의 이루리 뿐이라, <쿨핫>의 이루리를 상상하며 읽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담담하게 남자(혹은 다른 개체)와 재회하는 순간을 흘려보내는 수정씨의 결기는 아주 매력적이네요.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다 만 듯한 느낌이 어쩔 수 없이 듭니다. 남자가 외계인이라는 것도 확신할 수 없고, 그 외계인들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자리잡을지도 확정되지 않았고요. 남자와의 하룻밤이 어떤 의미인지도 명료하지 않네요. 소설에 나오는 등장하는 요소들이 반드시 명료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이야기의 진행에서 어딘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흐릿해서는 안 됩니다.
주인공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을 묘사하는 방식은 지나치게 도식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곽수정씨는 입체적인 인물이지만, ㅁ과 ㄹ의 경우는 어떠한가요? ‘공돌이·공순이’와 같은 단어도 그렇습니다. 70~80년대라고 하더라도 공장노동자의 양상은 지역에 따라 다면적이며, 자신의 직업을 숨기려고 애쓴다는 식으로 퉁치고 넘어갈 수 없습니다. 도식적인 묘사는 그 묘사 자체로 타자화가 될 수 있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너울)

노인이 되면 어떨까요?
사람들은 많은 경우 자신이 늙었을 때를 상상하지 않습니다. 죽음은 상상할지라도 늙음은 어쩐지 상상되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그래서 쉽사리 70세가 넘으면 투표권을 뺏자느니 하는 말을 하지요. 이 소설은 지금보다 시간이 훨씬 더 지났을 때 노인이 된 ‘우리 세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지만 상상하지 않)는 수준으로 발전한 미래 세계와 거기에 걸맞지 않는 노인이 되어버린 ‘밀레니얼 세대’를 겹칩니다. 실제로 지금 밀레니얼 세대는 노인들에게는 자신과 다른 종으로 여겨질 정도로 기술에 한 몸처럼 붙어있지요. 하지만 우리와도 다른 종이 등장한다면, 이라는 가정으로 노인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를 돌아보게 만든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게 전부라는 점입니다. 기술의 발전 양상이 사회에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이 서사에 좀 띄엄하게 붙어 있네요. 이 기술에 대한 상상을 이야기에 착 달라붙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렇게 되면 훨씬 매력적인 소설이 될 것 같네요.

· 「살을 섞다」(노말시티)

서로의 살을 베어내서(!) 먹이는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살을 베어내고 상처를 입히는 모습은 불결·혐오·병·죽음과 같은 불안한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고, 필연적으로 섬뜩하게 느껴집니다. 우리의 혐오감과 연결짓는다면 살을 베어먹는 이미지는 아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직장이란 공간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붙어있어야 하는 구조적 공간이죠. 이 상징적이고 풍부한 이미지를 활용해서 서사를 층층이 쌓아올리는 기술이 훌륭합니다. 숨이 내려앉는 장면들을 적재적소에 끼워 넣은 점도 멋지네요. 특히 묶여서 등장하면서도 환한 미소를 짓는 고기집 직원의 얼굴 같은 장면은 탁월한 이미지입니다. 이런 섬뜩한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소설이 ‘착하다’는 점도 큰 매력입니다. 주인공과 동기는 결코 무리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직장생활이라는 것이 그렇듯, 순조롭게 흘러가는 데도 이야기가 엉망진창이 된다는 점에서 작가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멋진 소설이었습니다.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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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야아범 18.12.17 10:46 댓글

    ㅎㅎ 이렇게 언급되니 기분이 좋은데... 희야아범입니다...

    그리고 <불광동 수정씨>는 <극지인과 도넛>보다 무려 30여년 후의 이야기랍니다. ^^

  • 너울 18.12.18 11:21 댓글

    흐흐흐 건실한 평 감사합니다. 노말시티님 축하합니다!

  • 노말시티 18.12.18 13:20 댓글

    기쁘면서 부끄럽기도 해서 어떤 말을 적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이제야 감사를 드립니다. 좋게 읽어 주셔서 너무 뿌듯하고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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