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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독자우수단편 선정단입니다. 이달의 후보작을 선정합니다. 우수작으로 2차례 이상 선정되시거나 연말에 최종 우수작으로 선정되신 분께는 거울 필진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번 호 독자우수단편은 2020년 3월 1일부터 2020년 3월 31일 사이에 창작 게시판 단편 카테고리로 올라온 작품들 가운데 심사 기준을 만족한 작품을 추려 심사, 후보작을 추천하였습니다.

독자우수단편 후보작으로는 강엄고아 님의 「별의 기억」이 선정되었습니다. 임채성 님의 「목도리와 우주적 불행의 이야기」도 빼어난 단편이라 두 단편 가운데 고심하였습니다.

 

운정 님의 「나쁜 꿈」 은 난해한 단편입니다. 작품의 핵심은 트라우마를 제거하는 물질을 주입받는 상황과, 그로인한 여파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에 대한 설정이 작가가 사용한 상징들과 의미가 관련없어보여서 난해하게 여겨집니다.

이비스 님의 「말실수」는 긴 장편의 짤막한 일부 같은 단편입니다. 스티브와 진이 좀더 각각 어떤 인물이고, 어떤 교감이 있었기에 이런 말실수가 튀어나왔는지 보강되면 더 매력적일 것 같습니다.

거우리 님의 「좋은 꿈」은 작품의 목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작품 내에서는 이야기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작품 자체가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해수 님의 「불사, 라이플 그런데 몬스터」의 죽음이 사라진 세계라는 설정을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하나하나의 설정과 상황이 흥미롭습니다만, 이러한 설정과 상황을 유기적으로 조직하는 서사가 약해서 아쉽습니다.

강엄고아 님의 「별의 기억」은 슬픈 여운이 길게 남는 이야기입니다. '주인은 코코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했다.' '이기적인 사랑이었다.' 이 문장은 과연 코코링과 주인만을 향한 문장일까요? 엘드에 대한 '나'와 아내의 사랑, 아내에 대한 '나'의 사랑에 향하는 문장은 아닐까요? 슬픔으로 오열하는 아내를 강제로 재워버리는 '나'의 모습을 정부의 요구로 마지막 연구를 완성한 '나'의 모습과 겹쳐서 생각하면, 이야기의 다른 각도가 보입니다.

여현 님의 「달의 바다」는 여운이 남는 단편입니다. 사연을 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인어는, 만나는 사람에게 하나씩 자신만의 비밀을 안겨주고 있네요. 서정적이고 아름다웠습니다.

거우리 님의 「밥노을」에서 규아와 악마의 재치있는 티키타카를 즐겁게 보았습니다만, 규아가 왜 악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규아는 왜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요?

한때는나도 님의 「개이비」는 시대의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는 단편입니다. 데이트만을 위해서 개를 샀다가 애견문화에 대해 알게 되고, 유전자 조작 이슈에 대해서 알게 되며, 점차 땅이를 점점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지수를 비롯한 애견인들이 왜 개의 유전자 조작을 반대하는지, 그저 사랑스럽기만 한 땅이는 어떤 개성을 가진 개인지 등 선욱을 제외한 다른 단편의 요소가 다소 피상적으로 다뤄진 듯해서 아쉽습니다.

이비스 님의 「어느 화물선에서 일어난 일」은 로봇이 자신에 대해 밝혀왔을 때, 진실인지 아닌지 반신반의하는 장면과 이후의 전개가 아주 인상깊은 단편입니다. 밝혀지지 않은 경위가 있어서 독서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먼저 옮겨간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걸까요? 로봇이 된 사람은 왜 다른 사람을 덮치는 걸까요? 결혼에 대한 버닝험과 버니의 의견이 작품 전반부의 중심인데, 이 의견은 결국 로봇의 등장에 대한 서두라는 의미만 있는 걸까요?

마음의풍경 님의 「달에서 온 32번째 메시지」에서 ECHO의 레이와 현실의 레이 사이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토마스의 마음에 대한 묘사가 좋았습니다. 토마스의 마음에 조금씩 젖어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단편의 도입부에서 현실의 레이와 토마스의 관계성이 좀더 잘 표현되면 단편 후반부의 매력이 더욱 살아날 것 같습니다.

임채성 님의 「목도리와 우주적 불행의 이야기」는 인상깊은 단편입니다. 우주적 불행의 총량에 대한 오류를 수정해주기 위해서라는 명목을 앞에 내건 기다림, 그리고 그 밑에 직접 말하지는 않지만 면면히 흐르는 그리움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단편이었습니다. 문장 이면에서 흐르는 감정을 전달하는 솜씨가 빼어나 감명깊었습니다.

한조각 님의 「조각을 찾아서」는 우연한 귀걸이 하나에서 조작된 기억, 가족이 숨겨둔 비밀로 접근해가는 전개가 좋았습니다만, 갈등의 핵심 요소인 조작된 기억이 우연으로 밝혀져 버리니 단편의 결말에서 힘이 빠지는 느낌입니다.

온연두콩 님의 「쇼어 목장의 잔딧불이 무덤」은 한 소녀의 과거에 감춰진 비밀이 드러나는 과정이 흥미진진합니다. 누가 정말로 소녀를 도우려는 걸까요? 그림자 속에서 덮쳐오며 위협하는 건 과연 누구일까요? 결말에 이르러 손을 꼭 잡은 소년과 소녀는 이 모든 기억들을 그저 과거일 뿐인 과거로 남기고 미래로 나아가리라는 확신이 드네요.

양윤영 님의 「시아의 다정」에서 중심 인물 이라는 우주탐사원이지만 대장이라 불리며, 다른 행성을 탐사하지만 우주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다른 행성과의 교류를 이끌어내는 일도 합니다. 이렇게 설정상 걸리는 부분들이 독서를 방해하는 요인이라 아쉽습니다. 또한 결말에서의 반전이 이 단편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알 수가 없네요.

다른이의 꿈 님의 「주마등」은 B가 주는 단서들이 맞물려 결말을 만들어내는 구성이 좋았습니다. 단지 B가 화자를 그렇게 구해주려고 노력했던 것에 비해 화자와 B 사이의 교감이 깊었던 걸로는 보이지 않아서, 단편 초반부가 피상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아쉽습니다.

 

 

이번 달은 2020년 1분기 독자우수단편 우수작을 선정하는 달입니다. 우수작으로 2차례 이상 선정되시거나 최종 우수작으로 선정되신 분께는 거울 필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1월 후보작인 최의택 님의 「경계선, 인격, 장애」, 2월 후보작인 강엄고아 님의 「임여사의 수명 연장기」, 3월 후보작인 강엄고아 님의 「별의 기억」 중에서 강엄고아 님의 「임여사의 수명 연장기」를 1분기 우수작으로 선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A : 한국인 중에 저승사자의 이야기를 모르고 자란 사람이 있을까요. 까만 옷에 갓을 쓰고 있는 저승사자의 이미지는 이제는 드라마에서 변주되며 검은 슈트를 쫙 빼입고 모자를 쓴 미남자가 되기도 하고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어도 정중하고 따뜻한 검은 제복의 남자가 되기도 할 정도로 한국인에게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신화적 존재입니다. 다만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저승사자, 염라대왕의 이미지는 이미 변주된 다른 작품의 아류로 느껴질 수 있기도 하고 새로운 것이 없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이 작품 ‘임여사의 수명 연장기’는 특별히 저승사자의 외적 이미지나 세부적인 설정을 바꾸지 않은 상태로, 누구나 자신이 상상하는 저승사자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올 수 있도록 한 상태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독자의 팬심에 관해서 이야기합니다. ‘저승사자와의 로맨스’라니, 저승사자들에게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는 주제가 아닌가요. 팬심으로 똘똘 뭉쳐 상관에게 ‘영업’까지 하며 저승사자들은 마침내 팬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결과를 이뤄냅니다. 마지막의 작은 반전도 독자들에게 웃음을 던져줍니다. 독자이자 작가이기도 한 사람들이라면 이 글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연재 간격이 두 배로 벌어지더라도 작가가 건강히 무사히 완결을 내주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독자가 있다니, 작가의 건강을 걱정하는 이 순수한 팬심, 작가라면 한 번쯤 꿈꾸지 않을까요. 임여사님처럼 다른 필명으로 다작하는 작가가 아니더라도 단 한 명의 이런 독자를 갖게 된다면 참 부러운 일이겠지요. 

B : 빠른 전개와 함께 계속 호기심을 자아내는, 아주 재미있고 귀여운 이야기였습니다. 현대의 대중 문화 소비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한국의 토속 신앙과 전혀 어색하지 않게 융합한 점에서, 소재에 대한 작가의 사랑이 돋보입니다. 이 소설의 시즌 2도 기대되네요. :) 

C : 비현실과 현실이 아주 자연스럽게 뒤섞이는 이야기입니다. 삶과 죽음과 인생의 풍파 같은 여러 묵직한 소재들을 경쾌함과 품위를 잃지 않고 다루는 솜씨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정말 재미있고, 뮤지컬이나 연극이나 드라마나 웹툰으로도 보고 싶습니다.
아니... 그런데 정말 재미있거든요. 안 읽으신 분들도 다 읽었으면...!

D :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가치관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좋아하는 이야기를 더 보기 위해서, 아끼는 작가를 위해서 하는 행동들이 모이고 모여서 결국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다정하고 사랑스럽습니다. 미래로 계속해서 이야기가 지속될 것 같은 엔딩은 또 어떤가요. 
시작과 엔딩의 구조까지도 완벽한 이 한편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E : 다양한 의미에서 매우 한국적인 소설입니다. 흡인력이 무척 좋고 서사 진행 과정도 아주 매끄러워서 정말 빨려들듯이 읽었습니다. 환상과 현실, 과거와 현재가 코미디 속에서 이렇게 자연스럽게 믹스될 수 있네요. 수많은 웹소설 작가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무슨 약을 먹어야 하느냐"를 서로 논의하는 광경들을 보곤 하는데요. '업계 메타 서사'로서도 유쾌하고 훌륭합니다. 결말부까지도 즐겁고 산뜻한 소품이었습니다.

 

댓글 2
  • 강엄고아 20.04.19 23:45 댓글

    감사합니다.

    지난 2주간 공룡과 씨름하느라(회사일입니다. ㅠㅠ) 정신이 없어서 이제 봤습니다.

    '임여사의 수명 연장기'와 '별의 기억'에 과분하게 좋은 평을 주셔서 한없이 감사드리고, 마냥 좋습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 강엄고아님께
    심너울 20.04.20 00:32 댓글

    <임여사의 수명 연장기> 같은 작품을 더 보고 싶어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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