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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독자우수단편 선정단입니다. 이달의 후보작을 선정합니다. 우수작으로 2차례 이상 선정되시거나 연말에 최종 우수작으로 선정되신 분께는 거울 필진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번 호 독자우수단편은 2019년 6월 1일부터 2019년 6월 31일 사이에 창작 게시판 단편 카테고리로 올라온 작품들을 대상으로 하여 후보작을 추천하였으며, 독자우수단편 후보작으로는 계수 님의 「만회반점」을 선정했습니다.

[지금, 여기] by 김성호
아름다운 타임 루프물입니다. ‘시간을 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하게 되는 건, 삶의 여러 가지 선택들도 있겠지만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겠지요. 타임 루프물은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인간이 그 결정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실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의 경우는 ‘타임루프’였다는 것이 마지막에 밝혀짐으로써 그 선택을 독자가 함께 할 수 없이, 그저 애달프게 손을 놓고 바라보는 주인공과 같은 처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 점이 특히 슬프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서사의 줄기를 뚜렷하게 그리는 것보다는 주변을 섬세하게 가져가네요. 그런 점에서도 완성도가 높은 소설입니다만, 약간 갑갑하게 느껴지기는 하네요. 형식적 특성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실험실의 동화책] by Cherry
주인공 리티와 지현의 강력한 연대감이 사랑스러운 소설입니다. 인공지능에 대한 소설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 지금, ‘강 인공지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데요. 소설 속 리티는 ‘강 인공지능’을 넘어서 감각을 통해 인식을 만들었다는 설정의 로봇입니다. 인간의 아이와 똑같이 반응하고 행동하는 로봇 리티는 정말 귀엽습니다. A.I.의 데이비드를 생각나게 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인간과 가까운 로봇이 등장하는 로봇물의 경우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은 그걸 호쾌하게(!) 빼 버린 점이 멋지네요. 리티는 그저 생존하려고 하고, 지현이 리티에 대해 가지는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신경 붕괴가 일어난 이후의 리티의 변화는 단순히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신이 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대체 ‘왜’ 그렇게 되는지의 연결고리는 상당히 약하네요. 사실 ‘왜’를 설명해주기 위해서는 이 소설에는 장편 수준의 분량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염려도 됩니다.

[칼이빨 사냥꾼] by 계수
북아프리카 정도의 어딘가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아름다운 판타지 소설입니다. 입 속에서 보석이 자라나는 어린 라제쉬와 복잡한 사연 끝에 라제쉬에게 ‘삶’을 돌려주고 ‘삶’을 앗아가기 위해 찾아 온 키란의 유대가 마음을 사로잡네요. 키란의 과거가 밝혀지는 부분, 반전도 매력적입니다.
다만 마지막에 가서 라제쉬가 ‘왕관의 주인’이 되는 부분의 지나친 비약이 아쉽습니다. 독자에게 경이감을 주고 싶었던 마음은 알겠으나, 그건 차근차근 이야기를 밟아가서 마지막에 터뜨렸을 때 오는 것이지요. 라제쉬가 세상을 가지는 걸 바라볼 틈과 시간도 만들어주세요. (아니면 빼시던가!)

[만회반점] by 계수
이 소설에는 별달리 색다른 게 하나도 없습니다. 전형성을 퍼즐처럼 꿰어맞췄다는 느낌도 들어요. 존중받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을 모조리 거부당한 여성의 삶은 공포서사의 오랜 줄기 중 하나지요. 가장 일상적으로 탄압받는 이고, 그 모멸과 탄압을 옆에서 보면서도 모든 이들이 외면했던 일이니까요. 그렇게 ‘남성을 살해하는’ 공포문학은 수백 년에 걸쳐서 괴담·소설·영화 등을 통해 만들어져 왔는데요. 거기에다가 ‘중국집’이 공포의 소재가 되는 경우도 오랜 클리셰지요. 중국은 신비롭고 으스스한, 서양 사람들(혹은 서양의 영향을 받은 근대 사람들)의 시선에서 여전히 고대의 미지를 간직하고 있는 신비의 공간이니까요. 거기다 ‘중국 사람들이 인육을 판매한다’는 오래된 도시전설이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흡인력은 놀랍네요. ‘만회반점’이라는 제목이 무엇을 ‘만회’할 것인가 신경쓰면서 봤는데, 결말부에 가서 여자의 삶을 ‘만회’시켜버리는 데에서 감탄했습니다. 사악한 일을 한 이들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결말을 소설적으로 주는 부분도 아주 매끄럽습니다. 완성도 높고 재미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이번 달은 2분기 독자우수단편 우수작을 선정하는 달입니다. 우수작으로 2차례 이상 선정되시거나 최종 우수작으로 선정되신 분께는 거울 필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4월 후보작이었던 노말시티 님의 「만우절의 초광속 성간여행」, 5월 후보작이었던 까막이 님의 「저의 아내는 좀비입니다」, 6월 후보작이었던 계수 님의 「만회반점」 중 노말시티 님의 「만우절의 초광속 성간여행」을 2분기 우수작으로 선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A :SF 코미디 장르가 보기 드문 국내에서 오랜만에 보는 작품이라 반가웠습니다. 발랄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초광속으로 우주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어 즐거웠습니다.

B :만우절이라는 소재를 소설적 장치로 활용해 독자를 쥐락펴락하는 솜씨가 발군이었습니다. 두 캐릭터가 거짓말을 주고받으면서 서로를 속이는 과정을 읽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이 소설 자체에 속게 됩니다. 무엇이 진실인가 하는 호기심 때문에 이야기에 빨려들듯 따라가게 되지만 무엇이 진실인지는 끝까지 알 수 없고, 광막한 우주 공간에서 주인공이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겨우 해소되는가 싶으면 어느새 독자는 더욱 섬뜩한 암시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SF로서도, 스릴로러서도 매력적인 작품이고, 소설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거짓말인데 그 안에서 어떻게 진실을 다루는가 하는 메타 문학적 의미까지 건드리는 작품이었습니다.

C :만우절을 포함한 지구적 습성이 사라진 시대의 항해에서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 진행되는 소설이지만 단편 안에 일어나는 사건들에 과거의 역사적인 내용이 함께 얽히면서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게 흘러갑니다. 현대의 우리가 좀 더 이해하기 쉬운 인물을 화자로 택하지 않고 미래적인 인물이 이미 사라진 지구의 개념을 낯설게 받아들이며 그를 관찰하는 시점으로 그려내어 ‘낯설게 하기’ 가 효과적으로 기능합니다.
첫 평에서도 언급되었던 대로 사건이 다소 방만한 면이 아쉽지만 이야기 내의 항해사 시험과 인간에 대한 취급 등 현대에 대한 비판의식이 잘 녹아있으면서도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해나가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D :일단 너무너무 재밌습니다. 설정도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생활감이 느껴지는 것도 좋았습니다. 질량을 가진 짐을 싣고 질량을 가진 우주선을 타고 질량을 가진 육신이 영혼을 이야기할 때 실체가 없을 것만 같은 모든 정서적인 것이 전면에 떠오르는 듯한 순간이, 너무나 아름다워요. 옴니버스 시리즈물로 이 세계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었습니다.

E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특히 먼 시간선의 SF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이 SF적 경이감으로 오는 경우도 많고요. (인간은 오래된 것들에는 쉽게 미지의 진실이 깃든다고 여기니까요) 만우절이라는 이들에게는 이미 오래된 풍습을 따라서 장난치는 것처럼 진실과 거짓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순간들이 유쾌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결국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은 ‘영혼’과도 같은 것이겠지요. 매끄럽게 서사 위를 미끄러지면서도 철학적이라는 점이 특히 아름다웠습니다.

댓글 2
  • 노말시티 19.07.14 20:00 댓글

    감사합니다. 우수작으로 선정되다니 정말 너무 기쁘고 영광입니다. 읽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멋진 평들도 감사합니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계수 19.08.09 22:55 댓글

    감사합니다! 제가 올린 모든 작품들이 이런 세세한 평을 받게 되어서 정말 기쁘고, 6월달 우수작으로 선정된 것은 더욱 기쁘네요. 앞으로 더 나은 이야기를 고민해 들고 오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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