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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메이커

2009.01.31 00:1301.31

스타메이커

올라프 스태플든, 유윤한 옮김, 오멜라스, 2009년 1월


□ 책 소개

우주의 처음과 끝,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별과 우주문명들을 창조하고 파괴하는 ‘스타메이커’

세계 과학소설 사상 10대 명작으로 꼽히는
올라프 스태플든의 장대한 우주 대서사시

내가 오랫동안 소설로 담아내고자 고민하며 만지작거리던 것을
당신이 손아귀에 넣고 먼저 써버렸군요. 부럽습니다.
―――버지니아 울프 (소설가)

밤하늘을 오랫동안 바라본 적이 있는가? 그 숱한 별들 하나하나에 담겼을 이야기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우주의 광막함을 헤아려본 적이 있는가. 건조한 과학 이론도, 특정 종교의 교리도 모두 접어두고 다만 그 압도적인 스케일 속에서 어떤 창조주의 의지를 느낄 수 있는가.
버지니아 울프와 처칠이 인정한 작가, 도리스 레싱과 보르헤스가 한목소리로 칭송한 작가, C.S. 루이스와 아서 클라크의 세계관을 만든 작가 올라프 스태플든의 대표작 [스타메이커Star Maker](1937)는 가없는 우주와 뭇 별들, 그리고 인류를 포함한 온갖 우주 문명의 운명을 다스리는 절대자에게 다가가려는 한 탐구의 여정을 기록한 서사시이다. 우리와 하나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지구인이었던 주인공은, 지구를 떠나 우주의 여러 문명 세계들을 돌아보고, 우주의 운명에 대해 같은 의문을 품은 외계 친구들을 만나며, 결국에는 창조와 사멸을 반복하는 ‘스타메이커’의 의지를 하나의 깨달음으로 받아들인다.



다양한 우주 지성들―――노틸로이드, 공생 인류, 식물 인류……

주인공이 만나는 여러 외계 문명인들의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미각이 사회와 문화의 핵심적인 원리로 기능하는 ‘또 다른 지구’, 작은 배처럼 생긴 연체동물로서 좌현과 우현이라는 출생 방향에 따라 계급이 정해지는 '노틸로이드', 하나의 공생체를 이룬 거미 인류와 물고기 인류, 제비만 한 비행 생물체들이 모여 복합 정신으로 움직이는 새구름 인류, 식물적 본성과 동물적 본성의 긴장에서 오는 위기를 겪는 식물 인류 등등. 이들의 다양한 사고와 감성, 그리고 영광과 허무로 범벅된 문명의 흥망성쇠들을 접하며 주인공은 점점 더 스타메이커의 진정한 의도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고 혼란스러워한다.

은하 문명과 우주의 최후, 그리고 창조

우주의 여러 문명들은 갈등과 전쟁과 멸망의 거대한 서사를 연출해내고, 까마득한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별들 스스로가 의식을 지닌 존재로서 은하의 최후와 함께 사멸해간다. 주인공은 스타메이커의 궁극적인 의도가 무엇인지 고민한다. 스타메이커는 스스로 창조해낸 피조물들을 대견하고 뿌듯하게 바라보는 듯하더니 어느 순간 그들의 결함에 눈을 뜨고 다시 소멸시켜버린다. 과연 창조의 부조리함이 스타메이커의 본성인 것인가? 그러나 스타메이커는 또다시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내고 주인공의 의식 또한 그와 함께 새로운 우주에 자리 잡는다. 출발점이었던 지구의 작은 언덕으로 돌아온 주인공. 그의 앞에 펼쳐진 작지만 아기자기한 지구라는 행성은 이제부터 그가 다시금 새롭게 추구해야 할 이성과 깨달음의 소우주이다.

[스타메이커]는 누구나 한 번씩 품었음 직하지만 감히 묻지 못했던 궁극의 물음들,
생명, 우주, 그리고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들을
대담하게 그리고 연속적으로 던진다.
―――김동광ㆍ과학평론가, 고려대 연구교수





□ 출판사 서평

문학평론가 로버트 숄즈와 에릭 랩킨은 ‘SF 장르에서 [스타메이커]만큼 진지한 작품은 없다’며 이 작품을 과학소설 사상 10대 걸작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과학소설에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지만, 상당수는 [스타트렉] 류의 ‘스페이스 오페라’, 즉 우주 활극담이거나 과학적 상상력을 발휘한 탐험기 형식의 지적 오락물이다. 한편 우주 만물을 창조한 전지전능의 절대자를 다룬 이야기도 많이 있지만 대부분 종교적 테마와 논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다. 그러나 [스타메이커]는 이 두 가지 접근법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독자적인 사색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20세기 전반을 살아낸 서구 지성이 펼쳐 보일 수 있는, 우주와 시공간에 대한 가장 심도 깊은 지적 고찰을 소설 형식으로 풀어낸 셈이다.

그러나 이 책이 철학적, 사변적인 서술이라고 해서 결코 과학소설 고유의 상상력이 취약하다는 것은 아니다. 저명한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F. J. Dyson)은 천체를 인공적으로 둘러싸는 거대구조물인 ‘다이슨 구(Dyson Sphere)’의 아이디어를 바로 이 책에서 얻었다. 또한 옮긴이도 후기에서 인상적으로 적었듯이 과학적 설정이 자아내는 휴머니티의 울림도 이 책의 품격을 말해준다.

지금도 뇌리에서 생생하게 지워지지 않는 곳은 서서히 자전이 멈추게 된 한 행성이다. 낮과 밤의 변화가 거의 없어진 이 행성은 항상 한쪽 반구는 지나치게 더웠고, 다른 쪽 반구는 엄청나게 추웠다. 이곳 인류들은 일출과 일몰을 쫓아 행성 위를 돌아다니며 살다가 자전이 완전히 멈추자 낮 지대와 밤 지대를 세로로 가르는 곳에 정착한다. 마치 한 줄기 강물처럼 행성을 띠처럼 두르며 운신의 폭을 좁히면서까지 살아남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모습에선 애처로운 감동마저 느껴졌다. 아마 주어진 생명을 지키려는 한결 같은 마음이 주는 울림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냉담한 스타메이커라도 어찌 이런 피조물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옮긴이의 말, 329~330p


이 책에는 여러 가지 외계 문명들의 역사가 등장하지만 사실상 그것이 우리 지구 인류의 은유임은 자명하다. 그러나 이는 과학소설의 형식을 빈 인간 사회 비평이라기보다, 우주에서 지적인 존재라면 필연적으로 거치게 될 어떤 통과의례 내지는 진화의 단계이리라고 작가 스태플든이 추론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 책을 통해 우주의 물리적 변화 법칙만큼이나 명확한 정신적, 지적 변화의 원리를 규명해보고자 시도했다. 스타메이커라는 전능한 창조자의 존재를 상정한 것도 실은 이러한 정신적, 지적 변화의 원리라는 추상성에 하나의 객관적 실체로서 구체성을 부여한 것이다. 스타메이커가 결국은 종교에서 말하는 조물주나 하나님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하는 비평이 있을 수 있지만, 스태플든이 이 책에서 추구한 것은 그런 신학적 테마가 아니라 우주에서 (인류를 포함한) 모든 지적 존재의 가능한 사고체계를 헤아려보려는 야심차고 거대한 도전인 것이다. 그리고 이야말로 과학소설적 상상력 중에서도 가장 고차원적인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생전에 과학소설 작가들과 교류도 없었고 남긴 작품도 얼마 되지 않는 스태플든이 오늘날 여러 후배 작가들에게 과학소설계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이유도 바로 이런 분야에서 일군 선구적인 업적 때문이다.
[스타메이커]는 인류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서 한결같이 천착해왔고 앞으로도 붙들고 가야 할 궁극의 화두를 담고 있다. 우주에 존재하는 여러 외계 문명들의 모습, 그리고 별들 및 은하의 운명들이 장구한 시공간 속에서 명멸하는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지구가 존재하고 인류가 존속하는 한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될 시나리오들의 스펙트럼이다. 바로 그런 근본적 문제 제기의 선구자이자 하나의 훌륭한 교과서이기에 [스타메이커]는 과학소설의 고전으로서 그 생명력을 영원히 잃지 않을 것이다.


□ 저자 소개

스태플든의 광대한 지적 전망은 나의 우주관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내 작품의 상당수는 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아서 클라크 (작가, 미래학자)

나는 스태플든의 작품들을 너무나도 숭배하기에
그 설정을 차용하는 것에 아무런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는다.
―――C.S. 루이스 (작가)

스태플든의 문학적 상상은 거의 무제한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작가)

스태플든은 굉장한 작가다. 그 비범한 상상력과 시야로 그는 찬란한 대가들의 영역에 입성했다.
―――도리스 레싱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질문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의 탄생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인물로 흔히 프랑스의 쥘 베른과 영국의 H. G. 웰스를 꼽는다. 그러나 이들의 업적은 엄밀히 말하자면 과학소설의 ‘외형’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부분이 크다. 생물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유전자를 물려준 부모와 같은 셈이다. 그렇다면 그 2세의 정신적 측면에 해당하는 철학과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도와준 스승, 현대 과학소설에 깃든 가장 심원한 비전의 하나인 ‘우주와 지적 존재의 장대한 서사’라는 틀거리를 짠 것은 누구였을까?
답변   올라프 스태플든


과학소설의 어머니 쥘 베른, 과학소설의 아버지 H. G. 웰스
과학소설의 스승 올라프 스태플든 Olaf Stapledon (1886~1950)




영국의 작가이자 철학자. 옥스퍼드대학에서 사학으로 학사,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리버풀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차 대전 당시엔 민간 구급요원으로 참전했고, 그 뒤 리버풀에서 노동자 및 사회교육 프로그램의 강사로서 오랫동안 인문, 사회과학의 여러 분야를 강의했다. 20대와 30대 시절에 시집과 철학서 등을 출간했으나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30년에 낸 첫 소설 [최후와 최초의 인간]이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곧장 작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이 작품은 버지니아 울프나 윈스턴 처칠 등 당대의 지식인층에서 폭넓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뒤 [이상한 존], [스타메이커], [시리우스] 등의 과학소설들을 발표하여 현대 과학소설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로 추앙된다. 그의 작품은 아서 C. 클라크, 브라이언 올디스, 스타니스와프 렘, C. S. 루이스 등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전 세계 과학소설 작가들에게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광대한 우주를 배경으로 인간과 지성의 궁극적인 의미를 일관되게 추구했고, 그 과정에서 초인간이나 인류 진화의 테마도 심도 깊게 고찰했다. 한편 다이슨 구(Dyson sphere)나 유전공학, 테라포밍 등 다양한 미래 과학기술 아이디어도 선구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대표작으로서 [최후와 최초의 인간]은 50억 년에 걸쳐 17번의 변화를 겪는 인류의 장대한 역사를 그리고 있으며, [스타메이커]는 앞 작품에 묘사한 인류의 역사조차도 작은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우주와 그 안의 지적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서사를 담고 있다. [이상한 존]과 함께 가장 대중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시리우스]는 인간보다 더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갖게 된 개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렇듯 수위가 다른 지성체 간의 갈등과 소통, 그리고 광대한 우주에서 인간과 지성의 의미를 찾는 철학적 탐구는 그가 일생 동안 천착해온 주제였다.

‘’오멜라스 클래식’에서 출간한 올라프 스태플든의 작품들
이상한 존
  : 우주 가운데 나보다 더 존귀한 이 그 누구인가
시리우스
  :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개
스타메이커
  : 우주의 처음과 끝,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 역자 소개

유윤한
이화여대 과학교육과를 졸업한 뒤 오랫동안 책을 사랑하는 독자이자 편집자로 일하다 지금은 번역에 전념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자기 계발서인 [코끼리를 들어 올린 개미], [셀프 매니지먼트]와 어린이 과학책 [캘빈, 전기는 어디에서 생기니?], [코끼리는 알을 낳을 수 있을까?], [옛날옛적 기기묘묘 고대과학],『우리 아이를 지키는 과일과 채소』,『입에는 달고 몸에는 쓴 사탕과 초콜릿』,『소중한 열대우림을 지켜라!』,『우주의 비밀을 밝혀라!』등이 있다.



□ 차례

책머리에

1 지구
        _1 출발점
        _2 지구, 별들 속에 있다
2 별에서 별로 가는 여행자
3 또 다른 지구
        _1 또 다른 지구를 찾아가다
        _2 바쁜 세계
        _3 ‘또 다른 지구인의 미래’
4 다시 여행을 시작하다
5 끝이 없는 세계
        _1 모든 세계의 다양성
        _2 이상한 인류들
        _3 노틸로이드
6 스타메이커의 암시
7 더 많은 세계들
        _1 공생 인류
        _2 복합 인류
        _3 식물 인류와 다른 인류들
8 탐험자들
9 모든 세계들의 공동체
        _1 바쁜 유토피아
        _2 천체들 사이의 분쟁
        _3 은하 역사의 위기
        _4 부은하의 승리
        _5 타락한 자의 비극
        _6 은하의 유토피아
10 은하의 비전
11 별들과 해충
        _1 많은 은하들
        _2 우리은하의 재앙
        _3 별들
        _4 은하들의 공생
12 성장을 멈춘 우주 정신
13 처음과 끝
        _1 다시 성운으로 돌아가다
        _2 최고의 순간이 다가오다
        _3 최고의 순간과 그 후
14 창조의 신화
15 창조주와 그의 작품들
        _1 미성숙한 창조
        _2 성숙한 창조
        _3 궁극적인 우주와 영원한 정신
16 에필로그-다시 지구로

옮긴이의 말
작품 해설 : 별의 창조자-꿈을 위한 작살 / 김태영
부록 1 : 우주의 크기에 대한 고찰
부록 2 : 시간의 척도
부록 3 : 용어 해설
작가연보



□ 책 속에서

우리 인생은 우리 집을 드나들고 근교 소도시나 먼 도시, 어쩌면 지구 끝까지 오가며 모은 현실이라는 실로 짜낸 것이었다. 이 삶에는 우리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하루하루의 삶으로 인류라는 복잡한 그물을 짜내기까지 했다. 인류는 계속 번식하며 자라는 그물이었고, 우리 삶은 이 그물을 이루는 씨줄과 날줄이었다.
- 16p

우리 부부의 미묘한 결합에 결합 자체를 넘어서는 의미가 있을까? 예를 들면, 이 결합을 통해 인간의 본성이 미움과 공포가 아닌 사랑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 비록 환경의 방해를 받을 때도 있지만, 전 세계의 모든 남자와 여자가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일까? 더 나아가 우리 결합 자체가 우주의 산물이며, 사랑이 우주를 이루는 기초임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비록 우리가 미약한 존재이기는 해도, 우리 결합이 지닌 본질적인 장점 때문에 영원한 삶을 보증받는 것은 아닐까? 사실 사랑이야말로 천국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신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친밀하고 편안하며 때로는 화나게 하고 때로는 웃게도 만드는 우리 관계가 멋진 영적 공동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관계가 우주, 영원한 삶, 신에 대해 무언가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우리 결합은 완전하지 못한 그 자체의 정당함을 빼면 아무것도 보증하지 못했다. 이 관계는 존재에 숨은 많은 가능성들로 이루어진 작고 선명한 축소판일 뿐이었다.

- 19p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모험에 대한 열망을 한순간도 누르지 못했다.
- 30p

지구에 있을 때 개인의 고통과 하찮음 때문에 실망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그런 것들과 싸우는 우리의 맹목적인 노력이 느리지만 영광스럽게 정신세계를 일깨워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런 희망은 너무도 확실해보였기 때문에 큰 위안이 됐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확신이 흔들렸다. 우주에는 나의 희망을 보장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우주는, 아니 우주의 창조자는 모든 세계의 운명에 무관심한 것 같았다. 우주에는 끝없는 투쟁이 있고, 이에 따른 고통과 보상받기 힘든 노력이 다행히도 정신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모든 투쟁이 헛수고가 되고, 전 세계의 감수성 풍부한 영혼들이 좌절하며 죽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히 악이다. 증오야말로‘스타메이커’가 아닐까? 나는 두려운 나머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 74p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성을 유지하려면, 인류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꼭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그것은 적은 양이라도 효과가 강력한, 감수성과 독창성이라는 조미료이다.
- 106p

지금 우리가 순례에 가까운 탐험을 계속하는 동기는 그 옛날 지구인이 신을 탐구하도록 내몰았던 갈망이었다. 그렇다. 우주 전체를 바라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확실히 깨달았지만 망설이며 찬양했던 정신, 그리고 지구에서는 지극히 자비롭다고 찬양받았던 정신에 대해 알고 싶었던 것이다. 과연 그 정신은 우주의 창조주일까? 무법자일까? 아니면 전능한 존재일까? 십자가에 못 박힌 존재일까? 우리는 이런 것들을 깨닫기 위해 고향 행성을 버리고 떠나왔다. 적어도 우주에 신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이미 우리가 아는 정신이 아닐 것이다. 신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모든 세계를 만든 목적도 피조물들을 향한 아버지 같은 사랑이 아닐 것이다. 비인간적이고 이질적이고 어두운 무엇일 것이다.
- 118~119p

우주 탐험 후반부에 이르자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어 생각하고 느끼게 되었다. 당시 우리의 생각은 이렇게 모아졌다. …… 우리는 사랑과 자비심 많은 모든 것을 마음속 깊이 소중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왕좌와 왕좌를 둘러싼 어둠에도 경의를 표한다. 그것이 사랑이든 아니든, 우리 마음은 그것을 넘어 날아오르는 이성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찬양한다.
- 122~123p

문명이 어느 정도 발달하자 사악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대규모의 종간 전쟁을 불러일으키려 했고, 일시적이나마 정말 전쟁이 일어나는 듯도 했다. 하지만 이런 분쟁은 우리의‘남녀 간 싸움’만큼도 심각하지 않았다. 이들 두 종족은 서로에게 너무나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물고기 인류와 거미 인류는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 세계의 문화에 서로 똑같이 공헌했다. 어떤 창조적인 작업을 할 때 대부분 둘 중 한쪽이 독창성 있는 작품을 제공하고, 나머지 한쪽은 비평하고 조절하는 역할을 했다. 이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거의 함께했다. 해초 펄프로 만든 책이나 문서 뒤에도 언제나 함께 서명했다. 대부분 거미 인류는 손으로 조작하는 기술, 실험 과학, 조형 예술, 사회 조직을 실용적으로 관리하는 일에 능했다. 한편 물고기 인류는 이론적인 연구나 문학, 예술에 능했고, 놀라울 정도로 발달한 수중 음악과 보다 신비주의적인 종교 활동에도 뛰어났다. 물론 이런 일반화가 언제나 성립하는 것은 아니었다.
- 128p

우리는 부조리를 느끼며 우주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들의 배후에 있는 무한한 존재,‘스타메이커’(진짜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 것이다)의 특징을 알아내려고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아무리 뚫어지게 관찰해도 전혀 알 수 없었다. 전체를 보아도, 하나하나의 사건을 보아도 우리 앞에 확실히 있는 그 두려운 존재를 느낄 수 있을 따름이었다. 그 존재의 영원한 무한함 때문에 어떤 특징도 알아낼 수 없었다.
가끔 우리는 스타메이커를 ‘전능한 존재’로 상상하고, 각자가 속한 수많은 세계의 다양한 신들로 표현했다. 어떤 경우에는 스타메이커를 순전한 이성으로 확신하면서 우주란 이 신성한 수학자의 연습장이라 생각했다. 가끔은 스타메이커의 본질이 사랑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인간 그리스도, 극피 인류와 해양 인류의 그리스도, 공생 인류의 쌍둥이 그리스도, 유사 곤충 인류의 복합 그리스도라는 식으로 모든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를 떠올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스타메이커의 본질은 부조리한 창조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창조성은 맹목적인가 하면 정교했고, 부드러운가 하면 잔인했다. 또 무수히 많은 존재들을 낳고 또 낳는 데만 급급했고, 수많은 어리석은 행동을 통해 불완전한 사랑을 보여주었다. 스타메이커는 한동안 어머니처럼 근심하며 이런 사랑을 베풀었다. 하지만 피조물이 뛰어나다는 걸 안 순간, 갑작스러운 질투로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파괴해버렸다.

- 165p

“인생이 시작되기 전에 어린 시절이 필요하다.”
- 174p

스타메이커는 우주가 있기 전에 혼자였고, 사랑과 공동체를 원했기에 짝이 될 완벽한 피조물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아름다움을 갈망하고 사랑을 원해서 피조물을 만들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제 피조물을 벌주고 괴롭혔다. 다행히 피조물들은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마침내 자신을 창조한 스타메이커의 전지전능함을 뛰어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것이 우리가 상상한 우주였다.
- 211p

“우리는 별들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둔 운명이 무언지 모른다. 스타메이커가 무엇인지는 더더욱 모른다. 존재에 대해 잘 정리된 지식조차 잠시라도 믿어선 안 된다. 그것은 존재의 바다에 떠다니는 거품에 우리의 비전이 칠해놓은 색깔들에 지나지 않는다.”
- 214p

어느 산골에서 산책을 즐기던 한 남자가 짙은 안개에 갇혀 길을 잃었다. 앞에 있는 바위를 손으로 더듬으며 겨우 나아가는데, 갑자기 안개가 걷히면서 시야가 확 트였다. 남자는 자기가 벼랑 끝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발아래엔 계곡, 언덕, 평원, 강이 펼쳐졌다. 멀리로는 섬이 점점이 흩어진 바다와 복잡한 도시들이 보였고, 머리 위에선 태양이 빛났다. 지금 내 처지가 이 남자와 같았다. 나 또한 우주 최고의 순간에 나 자신의 유한함이라는 안개를 빠져나와 우주 너머의 우주와 만물을 바라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에 생명을 주는 빛 자체와 마주했다. 그러고 나서 곧 다시 안개가 몰려와 나를 둘러쌌다.
- 274p

꿈의 특징은 전형적인 불합리성이다. 내 마음에 떠오른 꿈이자 신화에서도 영원한 정신은 유한한 존재들의 원인이자 결과라는 불합리성을 보였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모든 유한한 존재는 절대정신이 창조한 허구이면서 동시에 절대정신 자체의 본질이기도 하다. 유한한 존재 없이는 스타메이커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애매한 관계가 어떤 중요한 진실을 나타내는 것인지, 단순히 하찮은 꿈속의 허구인지, 나는 뭐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 278p

어떤 경우에는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여러 사회들이 만들어낸 혼란이야말로 최고의 성취물인 우주도 있었다. 즉 정신의 한 측면에만 헌신하고 다른 것들을 적대시하는 사회들이 겪는 갈등에 우주의 영광이 있었다. 서로 다른 정신이 하나의 유토피아 사회를 이루어 절정기를 보내는 우주도 있었고, 하나의 복합적 정신이 되어 영광의 시간을 보내는 우주도 있었다.
- 286p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비추는 두 줄기 빛이 있다. 첫째는 우리의 작고 빛나는 공동체라는 원자이다. 물론 이 공동체는 그것이 나타낼 수 있는 모든 미덕을 갖추어야 한다. 둘째는 초우주적인 현실을 상징하는 별들의 차가운 빛이다. 이 별들에는 수정처럼 빛나는 환희가 있다. 이상하게도 이런 빛 속에서는 소중한 사랑조차도 냉혹하게 평가되고 반쯤 깨달은 우리 세계가 패배할 가능성조차도 끊임없이 찬양받는다. 게다가 이 빛 속에서는 인류의 위기가 무의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얻는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또 하나 있다. 하찮은 동물이 자기 종족을 위해 짧은 생을 바쳐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싸움이다. 궁극적인 어둠이 오기 전에 우리도 이들처럼 더 높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투쟁에서 어떤 역할을 해내야 할 듯하다.
- 313p



□ 추천사

내가 오랫동안 소설로 담아내고자 고민하며 만지작거리던 것을 당신이 손아귀에 넣고 먼저 써버렸군요. 부럽습니다.
―――버지니아 울프ㆍ소설가

[스타메이커]는 누구나 한 번씩 품었음 직하지만 감히 묻지 못했던 궁극의 물음들, 즉 생명, 우주, 그리고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들을 대담하게 그리고 연속적으로 우리에게 던진다. 이 책에서 인간 정신이 다양한 지적 생명체들과 조우하며 껍질을 벗어나가는 과정은 인간, 생명, 그리고 우주를 고립된 개체로 보는 것이 얼마나 편협한지, 그리고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 자체가 그들을 아우르는 방식으로만 제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김동광ㆍ과학평론가, 고려대 연구교수

[스타메이커]는 완전히 독창적인 창작품이다. 이 작품은 과학소설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스태플든은 이 작품을 최고의 우주 과학소설로 만들려 했고, 실제로 오랫동안 많은 과학소설 작가들이 이 보물과도 같은 작품을 양분으로 커나갈 수 있었다.
―――스타니스와프 렘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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