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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소은혜, 박혜정 외 
펴낸곳 | 민음사 
펴낸날 | 2002년 11월 
실린글 | 김지현(루나벨), {반드시 만화가만을 원해라}

맛보기 | 김지현(루나벨), {반드시 만화가만을 원해라}
미술 시간, 우리는 4B연필로 스케치북 위에 각자의 손을 그리고 있었다. 뎃셍을 배운 아이들은 뎃셍으로,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나는 미술학원에서 배운 대로 기계적으로 내 손을 종이 위에 담고 있었는데, 옆자리에 앉은 그 애가 나에게 툭 던지듯 말을 한 것이다.
   “손, 보지 않고도 그릴 수 있니?”
   평소에 세영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목소리의 대상이 이제까지와는 달리 다른 사람 아닌 나라는 것 때문이었는지, 여자치곤 낮고 또 이상스럽게 부드러운 그 음성이 무척이나 낯설고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나는 세영이의 얼굴 대신에, 그 애의 스케치북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세영이의 작고 가느다란 손이 제법 공간감 있게 그려져 있었다. 명암의 표현은 연필심의 둥근 부분으로 ‘색칠’한 듯 싶었고, 손가락의 비율이 조금 맞지 않았지만, 오히려 내 것 보다도 훨씬 진짜 '손' 같았다. 나는 내 그림과 그 애의 그림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그만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그런 나에게 세영은 계속 질문을 해 왔다.
   “손 그리는게 가장 힘들어. 항상 내 손을 보고 그리면서 연습하는데 잘 안되더라구. 정말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연습하는데 말야……. 너는 잘 그릴 수 있니? 미술학원 다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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