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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크월드 1: 마법의 색

2008.01.25 16:2301.25



지은이 | 테리 프래쳇 
옮긴이 | 이수현(정원사) 
펴낸곳 | 시공사 
펴낸날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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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룬, 꼭 할 말이 있어.”
   흐룬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린스윈드를 돌아보았다.
   “뭐야?”
   “숫자에 관한 거야. 보라구, 7에 1를 더하거나, 3과 5을 더하거나, 10에서 2을 빼면 나오는 수 있잖아. 여기 있는 동안 그 수를 말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 아니면 그냥 죽기만이라도 할 수 있을지도.”
   “그래서 뭐라고?”
   “그 수만 말하지 말라고. 알아들었지?”
   린스윈드는 흐룬이 손에 들고 있는 검을 쳐다보았다. 칼은 검은색, 아니 색이라기보다는 모든 색채의 묘지 같은 빛깔이었고 칼날을 따라 아주 장식적인 룬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쯤에서 검도 린스윈드의 눈길을 알아차렸는지, 느닷없이 손톱으로 유리를 긁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상하네. 왜 8이라는 말을 하면 안 되는 건데?”
   데에, 데에, 데에― 메아리가 말했다. 땅속 깊숙이에서 희미하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메아리는 누그러들기는 해도 사라지려 하지는 않았다. 벽에서 벽으로 튀고 또 되튀며 엇갈리고 또 엇갈렸고, 그 소리에 맞추어 보라색 빛도 깜박거렸다.
   린스윈드는 비명을 질렀다.
   “저질러버렸어! 8이라는 말은 하면 안 된…….”
   그는 창백하게 질려 말을 멈췄다. 하지만 이미 말은 입 밖으로 튀어나와 여기저기에서 속삭이고 있는 동료들과 합세한 뒤였다.
   린스윈드는 달아나려고 몸을 틀었지만, 공기가 갑자기 당밀보다 더 진득해진 것 같았다. 일찍이 본 적 없는 크나큰 마법이 충만하고 있었다. 고통스러우리만큼 느린 동작으로 몸을 움직이자 팔다리에서 길게 금빛 불꽃이 늘어지며 허공에 자취를 남겼다.
   뒤에서는 굉음을 울리며 거대한 8각 돌판이 올라가서 잠시 동안 한쪽 모서리를 대고 섰다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내려앉았다.
   돌판이 사라진 구덩이 속에서 가늘고 시커먼 뱀 같은 것이 튀어나와 린스윈드의 발목을 휘감았다. 린스윈드는 비명을 지르며 부르르 떨리고 있는 바닥돌 위로 엎어졌다. 발목에 감긴 촉수는 그를 질질 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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