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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

2008.07.18 00:1807.18



지은이 | 곽재식, 김보영, 김이환, 김주영, 박애진, 배명훈, 백서현, 은림, 이수현, 정소연
펴낸곳 | 황금가지
펴낸날 | 2008년 7월
본문 맛보기 | 쿤구는 날 끌고 싸우는 사람과 우는 아이와 물건을 팔려는 사람 틈을 능숙하게 뚫고 걸었다.그 시장 어딘가에 죄를 새기는 사람들과, 죄를 새기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죄를 새기는 사람들은 모두 아홉 명이었는데, 그들은 조금도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구석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순번을 기다렸다. 주위에는 창을 든 경비병들이 있었다. 저녁때가 오자 그들이 먹을 밥을 이고 오는 사람이 있었다. 먹을 걸 마련해 줄 가족이 없는 사람은 그저 굶으며 기다렸다.
넋을 이고 죄를 새기는 사람들이 하얀 액을 묻힌 바늘을 한 땀, 한 땀 찔러 죄를 새기는 광경을 보았다. 그들은 전에 새긴 사람의 피가 묻은 수건으로 지금 새기는 사람에게서 흐르는 피를 닦았다. 위생 관념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 '문신' 중에서

어머니는 이모들의 도움을 받아 매일 반나절 이상 사람보다 큰 물독에 들어가 있었다. 그 독은 이웃의 눈에 띄지 않는 어두운 광에 놓여졌다. 지금의 나는 반나절을 집안 욕조에서 보내고 있지만 그때는 욕조란 게 없었으니 어머니는 많이 불편하셨을 것이다.
"왜 나무가 되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지?"
어머니께 묻는 내 목소리는 앙칼지게 날이 서 있었다. 홀로 버려지는 것에 대한 반발심으로 나는 나무가 된다는 것에서 심한 모욕감마저 느꼈던 것이다. 남다른 부모님의 교육 덕에 남들보다 배는 빠르게 아이들의 문턱을 넘은 머리만 커다란 열세 살짜리는, 나무가 된다는 특별한 느낌을 내가 남과 다르다는 이질감과 비정상이라는 기분 나쁜 꼬리표로 뒤바꿀 만큼 생각이 자라 있었다. 지금 보면 그마저 어린 생각이지만... - '할머니나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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