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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감시학교

2015.04.01 00:3004.01

꿈꾸는돌 12

위대한 감시 학교 
위대한감시학교.png



로렌 매클로플린 장편소설 | 곽명단 옮김
304쪽|140mm×210mm|중고등학생 권장|값 12,000원
2015년 02월 23일|ISBN 978-89-7199-652-2 44840

“과학기술을 통해 보다 완벽한 인류를”
이미 시작된 미래, 
지금 이곳의 현실과 놀랍도록 닮은 ‘위대한’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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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오래 사귀었든 서로 얼마나 아끼든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아. 
자기가 앞서가려면 누구든 기꺼이 희생시켜야만 해. 
보답받을 수 있는 충성은 오로지 감시 평가제에 바치는 충성뿐이야.

머지않은 미래, 극으로 치닫는 계급사회의 대안으로 스코어 코프 사에서 고안한 ‘감시 평가제’가 등장한다. 출신 성분이나 빈부에 관계없이 품성 평가 항목을 잘 지키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 같은 점수대끼리 단결하고, 감시 평가 비대상자와는 어울리지 말 것. 곳곳에 달린 감시 카메라 앞에서 의심받을 행동은 하지 말 것. 가난한 집안의 장녀 이마니는 단짝 친구 케이디의 일탈로 인해 하루아침에 90점대 우등생에서 60점대 따라지로 추락한다. 낙담한 이마니에게 역사 수업을 함께 듣는 감시 평가 비대상자 디에고가 뜻밖의 공동 작업을 제안한다. 이마니는 디에고와 얽히면서 믿고 싶지 않은 감시 평가제의 진실과 마주하고, ‘성적에 불리한’ 감정들을 디에고와 공유하게 된다.
『위대한 감시 학교』(원제: SCORED, 2011)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미국 작가 로렌 매클로플린의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책에서 그리는 미래 사회의 모습은 여타 디스토피아 소설들에 비해 이질감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현실과 흡사하다. 작가는 ‘감시 평가제’라는 가상의 교육 시스템을 통해 제2 대공황과 중산층 소멸, 농어촌의 자생력 상실, 약자 연대의 해체, 비인간화 등 코앞까지 닥친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내 보인다. 『위대한 감시 학교』는 디스토피아 소설의 양대 고전인 『1984』와 『멋진 신세계』의 골격이나 주제 의식을 이어받아 오늘날 세태와 교육 실정, 지금의 청소년들이 느끼는 고민들에 맞게 재단하고 발전시켜 더욱 현실적인 울림을 준다. 또 사춘기 소녀와 소년이 겪는 미묘한 긴장과 갈등, 감정 변화가 다른 한 축을 이루며 묵직한 주제 의식과 균형을 맞추고 흥미를 더한다. 두 주인공이 경계를 허물고 우정과 사랑을 지키며 결국 의미 있는 공동 작업을 해내는 결말은 소름 끼치도록 암울한 상황과 대비를 이루며 더 큰 감동과 희망을 준다. 
아울러 새롭고 낯선 단어들 하나하나에 담긴 함축적 의미까지 우리말로 오롯이 옮기기 위해 역자가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철학 박사이자 고등학교 현직 교사인 안광복 선생의 추천글은 특별히 우리 독자들이 『위대한 감시 학교』를 읽으며 생각해 볼 만한 문제들을 짚어 준다.     



■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안전한 감옥
서머턴은 쇠락한 어촌 마을로, 21년 전부터 시범 지역으로 감시 평가제를 받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을 두어 달 앞둔 이마니는 서머턴에서 정박장을 운영하며 근근이 먹고사는 가난한 집안의 장녀다. 그나마도 부자들은 대부분 시설 좋은 정박장으로 발길을 돌렸고, 대합조개 양식장은 쇠퇴했으며 바닷가재는 씨가 말랐다. 이마니는 대학에서 해양생물학을 전공한 뒤 고향의 강과 바다를 지키며 살고 싶다. 그런 이마니에게 감시 평가제는 거의 유일한 희망이다.
제2 대공황 이후, 중산층이 전멸하고 사회는 1%의 특권층과 99%의 극빈층으로 양분된다. 양극화를 해소할 대책으로 스코어 코프라는 IT 기업이 개발한 ‘감시 평가제’가 등장한다. 사회적 지위나 부와 같은 특권을 이용해 선행학습을 할 수 없도록 품성 평가를 실시하고, 점수에 따라 대학 진학과 취업 기회를 부여하는 시스템이다. 스코어 코프 사는 ‘아이볼’이라고 불리는 최첨단 감시 카메라를 학교와 거리 곳곳에 설치하고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집단 일체성, 충동 억제력, 자기 일관성, 근면성, 친화력 등 이른바 ‘적응성 5대 평가 요소’만 잘 지키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셰리: 그전까지만 해도 미처 몰랐는데, 소년원 수감생들은 우리 실험에 참여할 준비가 다 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감시 카메라가 아이들 속에 있는 원초적인 것을 두드린 겁니다. 뭔가를 다시 일깨운 것 같아요. 
마틴: 그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셰리는 카메라를 한참 응시했다.
셰리: 믿음이요. 
마틴: 무엇에 대한 믿음일까요?
셰리: 공정한 대결이죠.
마틴은 머리를 갸웃이 기울인 채 명쾌하게 설명해 주기를 기다렸다.
셰리: 그들은 평가받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리도 처음에는 그 소프트웨어가 성공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소년원 아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기 행동을 평가받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도 개의치 않았죠. 평가받는 데 이골이 났으니까요. 다만 이제는 평가 주체가 좌절한 교사나 언제든 학대할 가능성이 있는 교도관이나 늘 못마땅해하는 부모가 아니라는 점이 다를 뿐이죠. 그들 대신 합리적이고 공정한 것에게 평가받는 겁니다. 인간이 아닌 어떤 것한테요._본문 164-165쪽(12. 보다 완벽한 인류를)

부정확하고 불공평한 평가 주체 대신 합리적이고 정확한 프로그램 아래 공정한 대결을 펼칠 수 있다는 믿음, 스코어 코프의 창시자인 네이선 클라인과 셰리 포터 부부가 주장하는 감시 평가제의 성공 요인은 충분히 타당해 보인다. 한편 이마니는 어느 날 감시 평가제를 받지 않는 특권층 남자아이들에게 ‘조개재비(조개잡이)’라고 놀림을 받고 모욕을 당하는데, 두려움과 수치심을 속으로 삼키며 감시 평가제가 보편화되어 특권층이 깡그리 없어지기만을 기다린다. 공정하게 평가받고 균등하게 기회를 보장받는 사회, 누구든 으슥한 골목을 떨며 지나지 않아도 되고 반대로 누구든 함부로 특권을 휘둘러 약자를 괴롭힐 수 없는 사회. 클라인-포터 부부의 주장이나 이마니가 겪은 일에 비추어 볼 때 감시 평가제가 지향하는 것만큼 바람직한 사회가 또 있을까 싶다.
하지만 이마니는 언제부터인가 주렁주렁 매달린 아이볼을 벗어나야 숨통이 트인다. 점수대가 달라지면 친구 관계도 끝내야 하는 감시 평가제가 어쩐지 꺼림칙하게 느껴진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항상 지켜보고 평가하는 공평하고 안전한 감옥, 그곳은 지옥일까, 낙원일까. 


■ 친구를 버려야 올라갈 수 있는 낙원
그래도 이마니는 성실하게 90점대를 지키고 있었다. 졸업할 때까지 성적을 유지하면 이마니는 바람대로 대학을 나와 서머턴의 강과 바다를 위해 일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단짝 친구 케이디 때문에 이마니는 하루아침에 60점대로 추락하고 만다. 
점수대가 다르거나 아예 감시 평가를 받지 않는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은 평가 요소 중 가장 중요한 항목인 ‘집단 일체성’에 위배된다. 케이디는 언제부턴가 이마니와 아예 점수대가 달라졌고, 이마니도 그런 케이디와 어울리면서 조금씩 점수가 떨어지고 있었다.

이마니가 속한 90점대 졸업반은 매달 첫 번째 화요일 오전만큼은 서로 모른 척하기로 했다. 적어도 성적이 게시되기 전까지는 그러기로 했다. 본의 아니게 오염되는 일이 없도록 미리 조심하자는 취지였다. 먼저 건의한 사람은 애닐 하네시였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계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성숙한 태도라는 데에는 모두 한마음 한뜻이었다._본문 27쪽(2. 첫 번째 화요일) 

성적이 발표되는 매달 첫 번째 화요일이면, 어제까지 웃으며 인사하던 친구도 서로 모른 척하는 것이 감시 평가제를 받는 아이들의 암묵적인 규칙이다. 누구 한 명이 다른 점수대로 옮겨 갈 경우 혹시나 실수로 집단 일체성을 어겨 감점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마니도 학교 안에서는 이 규칙을 철저히 지켰지만 학교 밖에서는 몰래 케이디를 만났다. 똑같이 90점대였던 중학생 시절, 두 사람은 성적에 관계없이 언제까지 함께하기로 맹세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마니는 케이디가 감시 평가 비대상자와 연애를 할 정도로 바닥까지 떨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맹세? 그게 무슨 말이지?”
“친구로 지내자고요, 무슨 일이 닥쳐도.”
휠러 교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성적 문제라도 말이니?” 
이마니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비로소 확실히 깨달은 기분이었다. 자신이 케이디와 맺은 우정이 얼마나 위험한 본성인지 휠러 교장은 이해했다. 그런데 그것은 자기 엄마 아빠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할 사고방식이었다. 성적 집단에 따라 교우 관계가 달라지는 세상에서 두 소녀가 굳게 신의를 지켜 나가는 모습을 ‘기특하고 훈훈하게’ 여기는 부모니까. 지금 생각하니 엄마 아빠가 너무나도 고지식한 것 같았다. 
휠러 교장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두툼하고 푹신한 크림색 의자 등받이에 다시 등을 기댔다. 
“신의라. 재미있구나. 너도 알겠지만 사람들이 한때는 그런 특성을 소중하게 여겼지.”
우리 부모님 같은 사람들이겠죠, 이마니는 생각했다.
“물론 요즘 사람들은 정신을 차렸지. 신의는 덫이야, 이마니. 무력하게 만드는 유대감일 뿐이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매일같이.”_본문 72쪽(4. 따라지들의 운명) 

성적을 만회할 방법을 물어보려 찾아간 이마니에게 휠러 교장은 점수를 다시 올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면서 위와 같이 이야기한다. 이마니는 교장이 케이디를 껌 종이나 사과 꽁다리 취급하는 것이 불편하지만, 교장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케이디가 감시 평가 비대상자와 사귀는 문제로 집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마니는 차마 자기 집에서 지내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더 이상 피해를 주지 않으려 이마니 곁을 떠나겠다고 먼저 말하는 케이디를 끝내 붙잡지 못한다. 가장 오래된 친구 케이디를 잃는 것보다 당장 케이디 때문에 점수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인생이 망가지는 것이 더 괴롭고 아프다. 이마니가 60점대로 떨어지자, 친동생마저 자기한테 불똥이 튈까 봐 길에서 이마니를 외면하고 말 걸지 말라며 타박한다. 피를 나눈 가족도 그러할진대 친구는 오죽할까. 우정과 신의는 고지식한 부모님 세대에나 귀한 가치였고, 이마니는 진즉에 케이디를 버려야 했는지도 모른다.  


■ 동상이몽으로 시작된 불온한 게임 
친구도 잃고 점수를 끌어올릴 방법도 찾지 못한 이마니에게 느닷없이 디에고가 쪽지를 전한다. 디에고는 역사 수업을 함께 듣는 감시 평가 비대상자인데, 캐럴 선생이 기말 보고서 대신 제출하라고 한 논문을 위해 “분별력 있는 공동 작업”을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캐럴 선생은 감시 평가제가 사회 전역에 침투하는 것을 우려하는 이른바 ‘침투 공작원’으로, 자기 교실을 감시 평가 중립 영역으로 선포했다. 항상 정해진 교과 내용을 가르치기보다는 시사적이고 인문학적인 문제들로 토론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 시간에 작은 국기로 아이볼을 덮어 버리는 등 엉뚱한 소동도 종종 벌여서 학교에서는 요주의 인물이다. 어느 날 캐럴 선생은 오티스 연구소라는 곳에서 장학금 4만 달러가 걸린 논문 대회를 주최했다며, 기말 보고서 대신 논문을 써서 제출하라고 했다. 단, 감시 평가 대상자는 감시 평가제에 반대하는 주장을, 비대상자는 감시 평가제에 찬성하는 주장을 펼칠 것.
이마니와 케이디는 역사 시간이면 캐럴 선생의 진행 아래 서로 대립각을 세우며 치열하게 토론을 벌이곤 했지만, 수업 때 말고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은 사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감시 평가 비대상자와 어울리는 것은 집단 일체성에 가장 크게 위배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마니는 디에고의 수에 말려 얼렁뚱땅 공동 작업에 응한 꼴이 되지만, 개운치 않은 일을 벌이는 것이 두려워 교장에게 모두 이야기한다. 그리고 교장에게서 디에고의 어머니가 감시 평가제를 반대하고 학교 운영을 방해하는 변호사이며 디에고는 염탐꾼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는다. 이에 이마니는 교장에게 자신이 먼저 염탐꾼이 되어 디에고한테서 어머니 정보를 빼내 오겠다고 약속한다. 그것만이 점수를 만회할 유일한 기회라 믿고.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생각을 품고서 위험한 게임을 시작한다.
디에고와 이마니는 수준 높은 토론을 벌일 만큼 뛰어난 우등생이라는 점을 빼고는 모든 면에서 대비된다. 디에고는 감시 평가를 받지 않는 백인 남자아이로, 부자들만 모여 사는 언덕 위 저택에서 변호사 어머니와 교수 아버지 아래 부족한 것 없이 살고 있다. “지금처럼 고장 난 사회에서는 유일하게 옹호할 값어치가 있는 게 ‘반사회적’ 행동”이라며 술도 마시고 출입 금지 구역에서 스쿠터도 타는 등 호기를 부리는 반항아지만, 속은 여리고 섬세하며 순정적이다. 이마니는 특권이라고는 누려 본 적 없는 가난한 흑인 혼혈 여자아이로, 감시 평가제에 순응하며 어떤 경우에도 규칙을 어기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범생이다. 하지만 속은 어떤 남자아이보다 강인하고 특히 강이나 바다에서는 거칠 것이 없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 얽히는 과정에서 이마니는 디에고가 자신과 태생부터 다른 사람임을 확실히 깨닫는 동시에 점점 진지하게 호감을 표시하는 디에고 때문에 혼란스러워한다. 그래도 공동 작업이라는 명분 아래 숨은 목적을 이루려고 애쓰지만, 결국 감정에 솔직한 디에고에 동화되며 경계를 무너뜨리고 감정을 공유해 간다. 대상자와 비대상자, 빈부와 계층 차이를 떠나서 사춘기 소녀와 소년 사이에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긴장과 갈등, 감정 변화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또래다워서 아름답고 흥미롭다. 때로 웃음을 유발하고 가슴 설레게도 하면서 독자를 한껏 몰입하게 만든다. 


■ 완벽하지 않아도 함께 꿈꿀 수 있는 세상 
감시 평가제는 ‘과학기술을 통해 보다 완벽한 인류를’이라는 구호를 내건다. 이마니는 디에고와 싸우고 공부하고 소소한 모험들을 해 나가며 언뜻 긍정적이고 진취적으로 보이는 이 구호에 숨은 진실들을 깨닫는다.
‘완벽한 인류’라는 말에는 ‘완벽하게 예측과 통제가 가능한 인류’라는 속뜻이 숨어 있다. 스코어 코프가 감시 평가 비대상자들을 흡사 인류의 적인 양 이야기하는 것은 감시 평가제에 있어 통제 불가능한 대상은 없애야 할 ‘버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마니가 감시 평가 비대상자 아이들은 감시 평가제 같은 촉매제가 없기 때문에 자기 계발에 실패할 거라고 주장하자, 디에고는 감시 평가 비대상자들은 자기 머리를 가지고 있다고 반박한다. 감시 평가제를 받는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음에도 모든 판단을 아이볼에게 넘기는 것이다. 이마니가 감시 평가제 없이도 자생 가능한 서머턴을 만들고 싶다면서 그러기 위해 감시 평가제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감시 평가제 아래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힘을 잃었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예측과 통제가 가능한 사회는 결국 누구에게 유리할까. 조지 오웰이 『1984』에서 빅브라더라는 정치적 독재자를 내세웠다면, 『위대한 감시 학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막대한 돈을 버는 기업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감시 평가제는 약자들 간의 연대를 와해한다. 노예 해방 운동이나 여성 해방 운동 등의 사례를 보면, 신분 상승이라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에 약자들이 힘을 모아 제도 자체를 타파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감시 평가제에서는 약자들끼리 감시하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도구로 상대를 이용한다. 노력하면 신분 상승이 가능하다고 믿게 만들기 때문이다. 

감시 평가를 받는 아이들은 서로 밟고 올라서려고 음모를 꾸미고 비방을 일삼았다. 올라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_본문 214쪽(14. 우리라니요?) 

결국 감시 평가제 사회는 계급사회의 대안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계급사회에 불과하다. 더욱 무서운 사실은 감시 평가제가 대상자들에게 끊임없이 희망을 주입하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위정자들이 99%가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보다 1%로 올라설 수 있다는 그릇된 희망을 부채질하는 데 급급한 정책으로 인기몰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고 공부 잘하는 친구를 사귀라고, 그렇게 해야 성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듯 자녀를 채근하는 부모들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같은 점수대끼리만 밥을 먹고 점수가 낮은 친구는 가차 없이 버리고 성적을 올리는 데 방해되는 친구를 왕따 시키는 아이들의 섬뜩한 모습은 사실 제도화되지 않았을 뿐 이미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이마니가 자신을 감시하고 통제하던 아이볼, 자신이 유일하게 믿고 있던 아이볼을 스스로 깨뜨리는 마지막 장면은 19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러다이트 운동을 연상시키며 큰 감동을 준다. 감시 평가 대상자인 이마니와 비대상자인 디에고가 두 사람을 가로막고 있던 감시 평가제의 경계를 포옹과 입맞춤으로 허물고 성공적으로 공동 논문을 써내는 것은 결국 서로 연대하고 인간다운 우정과 신의를 나누는 것만이 이 사회에 곧 닥칠 비극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안임을 깨닫게 한다.  





차례

1. 금지된 우정 / 2. 첫 번째 화요일 / 3. 60점대 동급반 / 4. 따라지들의 운명 / 5. 뜻밖의 제안 / 6. 어떤 숙제 / 7. 원대한 생각 / 8. 둘이서 당당하게 / 9. 욕설 / 10. 염탐꾼들 / 11. 조개재비 / 12. 보다 완벽한 인류를 / 13. 찌질이 / 14. 우리라니요? / 15. 셰리 포터 / 16. 껌 종이처럼 / 17. 헤아릴 길 없는 강 / 18. 돌 조각상보다 못한 인간 / 19. 자유 타락 카페 / 20. 친구 비슷한 사이 / 21. 깊은 곳에서 출렁이는 / 감사의 말 / 추천글_위대한 감시 학교는 우리의 멀지 않은 미래다(안광복, 철학 박사) 



본문 중에서

이마니는 잘 알았다. 감시 평가제가 있는 게 자기 같은 아이들에게 이롭다는 것을. 감시 평가제가 없으면 자기 앞날은 암담하기 짝이 없으리라는 것을. 서머턴에는 일자리가 거의 없었고, 부모님이 운영하는 정박장은 수지를 맞추기도 빠듯했다. 감시 평가제는 그야말로 ‘위대한 평등화 장치’였다._본문 11쪽(1.금지된 우정)

이마니는 잠시 손을 놓고 우두커니 해협을 바라보았다. 저토록 풍요로운 환경이 어쩌다가 생명력을 잃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저 푸른 물결 밑에서 지금도 여전히 비극이 펼쳐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가 막혔다. 사람들은 어쩌자고 이 지경이 되도록 그냥 두었을까. 그래, 내가 만일 어떤 목적의식을 세워야 한다면 바로 이거야. 강과 섬과 바다를 살리는 일. 엄마 아빠가 깊은 시름에 잠기는 걸 볼 때마다 저 강과 바다가 한때는 서머턴의 중추였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 인간의 영리 활동과 자연이 상호작용하는 길을 다시 살려야 해. 시범 도시가 되기 전, 아니, 시범 도시가 될 필요가 없던 그때처럼 자생력 있는 서머턴으로 가꾸어야 해._본문 102-103쪽(7. 원대한 생각)

“내 말의 요지는, 네 주장이 옳다는 거야. 감시 평가제는 그야말로 개인이 집단 위에 서게끔 역량을 길러 주는 제도니까. 오늘은 둘도 없는 친구였는데 내일은 아예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사람이 되게 만들 수도 있어. 얼마나 오래 사귀었든 서로 얼마나 아끼든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아. 자기가 앞서가려면 누구든 기꺼이 희생시켜야만 해. 보답받을 수 있는 충성은 오로지 감시 평가제에 바치는 충성뿐이야. 애닐은 그걸 알았어. 한때는 나랑 친구였지만 인제는 아니야. 앞으로 내게 애닐은 없는 사람인 거지. 애닐은 그런 식으로 90점대 최고 자리까지 올라갔어. 그게 바로 감시 평가제가 개인을 집단 위에 올라서게 하는 방식이지.”       
디에고가 고개를 힘껏 가로저었다.
“내가 주장하려는 건 그게 아니야.”
“글쎄, 너야 고상하게 어디든 원하는 곳에 올라갈 수 있겠지. 사실상 감시 평가제는 개인들끼리 유대 관계를 오래도록 이어 가지 못하게 막아. 각자 개별적으로 역량을 갖추게 하는 방식으로 말이지. 이를테면 개인을 무력하게 만드는 노예 제도나 여성을 억압하는 제도와는 다른 거지. 이 두 가지 제도에서는 죽었다 깨어도 개인이 성공할 길이 없어. 그렇기 때문에 공동 대의를 찾을 수 있는 거고.”
“가만, 그러니까 네 말은 노예제와 여성 억압 체제는 개인을 무력하게 한다, 따라서 감시 평가제가 더 낫다, 이런 뜻이야?”
“내 요지는, 그런 계급제도들은 개인을 무력하게 만들기 때문에 끝내는 무너질 수 있다는 거야. 네가 원하면 본질적 속성이 아니라 버그라고 해도 좋아. 아무튼 바로 그 점 때문에 노예제나 여성 억압 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거지. 그런데 감시 평가제는 반대거든. 바로 그 점 때문에 아마 영원히 계속될 거라는 얘기야.”_본문 232-233쪽(15. 셰리 포터)

르몽드 씨는 머리를 가로흔들었다.
“부당한 처사 같구나. 비대상자도 마땅히 교육을 받아야 하지 않겠니? 누구나 똑같이? 이건 아주 옳지 않은 일 같다.”
이마니가 콧방귀를 뀌었다. 옳고 그른 것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는 반감의 표시였다.
르몽드 씨는 실망스럽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
“가만 보니 넌 얘기할 마음이 없는 게로구나. 너랑 제일 친한 친구 일인데도.”
타박이 섞인 말투였다. 이마니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비난이었다.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선택을 해 왔는데, 그 고통을 눈곱만큼도 모르는 아버지가 무슨 자격으로 날 몰아세우는가. 이마니는 에스파냐어 책을 탁 덮고 펜을 내려놓았다.     
“좋아요. 그럼 한번 얘기해 볼까요? 제일 친한 내 친구가 자기 인생에다 내 인생까지 내동댕이치면서 어떻게 파커 그레이랑 데이트를 할 수 있는지요? 진짜 목적은 오로지 휠러 교장이 데나 랜디스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뿐인데, 그딴 부질없는 회의에 나가서 다들 어떻게 ‘한 표를 행사할지’에 관해 토론이라도 벌일까요? 시치미 뚝 떼고 그 케케묵은 상식과 도덕심을 발휘하면 풀 수 있는 문제인 척해요? 상식도 도덕심도 아무런 상관없는 세상에서요?”_본문 252-253쪽(17. 헤아릴 길 없는 강)

이마니는 마음속으로 초읽기를 시작했다. 휠러 교장은 노련한 사람이다. 설득력 있으면서도 간단명료하게 연설할 것이다. 청중을 따분하게 만들 시시콜콜한 군더더기는 과감히 버릴 것이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사실 두어 가지를 들먹이면서 온갖 편법으로 공포심을 잔뜩 심어 줄 것이다. 그러고는 스스로 행동하지 않으면 뒤따르게 될 무시무시한 현실은 각자의 상상에 맡길 것이다. 휠러 교장에 이어 랜디스 부인이 연단에 오르겠지. 그러면 내가 한 짓을 모두 알게 될 테고. 나를 보
호하려고 가명을 지어냈을 테지. 나란 아이와는 무관해 보이지만 성교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는 이름으로. 그 여자애는 농장의 섹* 파티로 유명 인사가 된 케이디 파지오의 단짝이라는 사실도 짐작할 수 있는 이름이겠지. 결국 특별 첩자 이마니 르몽드 사건은 서머턴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잔재로 남겠지. 그 후안무치한 자기 정당화는 아주 오래도록 영향을 미치며, 애당초 그 사건을 낳은 바로 그 제도의 불쏘시개로 쓰이겠지. 감시 평가제는 강고하고, 무엇이든 자기 생존의 대의명분으로 바꿔치기할 수 있다는 것을 이마니는 깨달았다. 미루어 짐작건대 패트리나 휠러와 데나 랜디스가 벌이는 이 대결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한낱 쇼로 막을 내릴 터였다.
결국 승리를 거머쥐는 것은 스코어 코프 기업일 것이다.
_본문 291-292쪽(21. 깊은 곳에서 출렁이는)

“분별력 있는 공동 작업을 제안해 볼래?”
디에고가 앞으로 다가서서 이마니의 한 손을 잡았다.
“모르겠어, 이마니. 과연 저 마지막 아이볼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두고 봐야지.”
두 사람은 부서진 아이볼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다. 이젠 거의 감지하기 어려웠지만 아직도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다.
“네가 제안만 하면 나는 그 게임 할래.”
이마니가 손을 뻗어 나머지 손을 마저 잡았다. 그러고는 한때는 자신을 주눅 들게 했던, 눈매가 날카로운 디에고의 파란 두 눈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그것이 운명이라면 기꺼이 감수하겠노라고._본문 297쪽(21. 깊은 곳에서 출렁이는)


추천사

이 책이 보여 주는 미래는 지금의 우리가 충분히 공감할 만큼 현실적이다. 과연 올바른 세상은 무엇일지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을 절로 이끌어 내면서도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재미있게 빠져들면서도 깊은 생각을 남기는 참 좋은 소설이다._안광복(철학 박사, 중동고 철학 교사)

감시 사회를 탐색한 책 가운데 이만큼 완성도 높고, 이리도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이토록 심장이 벌떡거리게 하는 작품을 아직 읽지 못했다._코리 닥터로(SF 작가)

이미 짐작하고도 남을 가까운 미래를 직접 보는 것 같아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고 오싹오싹 소름이 돋는다. 『위대한 감시 학교』는 모든 독자의 가슴속에서 저항을 끄집어낼 것이다._스콧 웨스터펠드(『어글리』 시리즈 작가) 

대담하고 공격적인 서사로 낙오 학생 방지법에 따른 일제고사 형식의 시험과 현형 재정 정책을 비판하며 불평등이 극단적으로 고착된 사회에서 계층 이동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_커커스 리뷰

대다수 디스토피아 소설이 기존 전체주의 국가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여 준다면, 이 책은 곧 바뀔 사회의 초창기를 독자들의 눈앞에 들이민다._VOYA(Voice of Youth Advocates)



작가 소개

로렌 매클로플린Lauren McLaughlin 
미국 매사추세츠 주 웨넘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잠깐 동안 문화인류학을 공부했다. 저예산 영화사에 근무하며 「큐브 2」의 시나리오를 공동으로 쓰고 「아메리칸 사이코」「버팔로 66」 등의 제작에 참여했다. 영화판에서 ‘매력 없는’ 10년을 보낸 뒤, 영화 제작에 대한 야망을 접고 전업 작가로 돌아섰다. 작품으로는 한 달에 나흘 동안 완벽한 남자로 바뀌는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Cycler』(2008)와 후속작 『Recycler』(2009)가 있다.
매사추세츠 주에서 보낸 수많은 시간, 예컨대 정박장, 해변, 청소년기의 다양한 모험들을 흐뭇하게 추억한다. 그러나 SAT 성적이나 작품 평점을 비롯해 단 하나의 수치로 자신을 규정해 버리는 것들은 도무지 추억할 수 없다.
www.laurenmclaughlin.net

곽명단
소설과 교양서를 번역한다. 옮긴 책으로 『검은 감자』『어느 뜨거웠던 날들』『신이 없는 세상』『하얀 라일락』『행복한 그림자의 춤』『소공녀』『위대한 박물학자』『창조적 단절』『아름다운 죽음의 조건』『빵의 역사』(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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