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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별들에게 남기다

2014.08.16 11:0208.16

별들에게 남기다

 

0.

학살을 보았다. 304명이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천천히 죽어갔다. 아무도 구조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 학살이 이어진다. 여의도 국회 앞과 광화문에서, 피해자의 가족들이 다시 한 번 천천히, 소리 없이 조용히 죽어가고 있다.

죄목은 돈이 없고 힘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돈 없고 힘 없는 나 또한, 피해자가 되어 함께 침몰하거나 아니면 등을 돌리고 가해자의 무리에 합류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참사는 진행 중이다.

 

1.

- 진성여왕의 막내아들 양패(良貝)는 당나라에 사절로 가면서 후백제 군사들이 길목을 막고 있다는 소식에 궁수 50인을 뽑아 떠났다. 배를 타고 가던 중에 사신 일행은 곡도(鵠島)에서 풍랑을 만나 섬에 십여 일간 머무르게 된다. 이에 양패가 근심하여 점을 치니 섬에 있는 신지(神池)에서 제사를 지내면 좋다는 점괘가 나왔다.

 

이에 연못 위에 제사상을 차려 놓으니 못물이 한 길 이상 용솟음쳤다. 그날 밤 꿈에 어떤 노인이 나타나 양패에게 이르기를 활을 잘 쏘는 사람 하나를 이 섬에 머물러 두게 하면 순풍을 얻으리라 하였다. 그리하여 양패와 군사들은 나뭇조각 50쪽에 각자 이름을 써서 물에 넣어 제비를 뽑았는데 군사 거타지(居陁知)의 이름이 물에 가라앉아서 그를 섬에 남겨두니 순풍이 일어나 배는 지체 없이 떠났다.

 

거타는 수심에 잠겨 섬에 서 있었는데 홀연히 한 노인이 못에서 나와 말하되 “나는 서해약(西海若)인데 해가 뜰 때에 한 중이 하늘에서 내려와 다라니(陁羅尼)를 외우면서 세 번 이 못을 돈다. 그러면 나의 부부와 자손이 모두 물 위에 뜨게 된다. 중은 내 자손의 간장을 다 빼먹고 오직 우리 부부와 딸 하나만 남겨놓았다. 내일 아침에 반드시 또 올 것이니 청컨대 그대는 활로 쏘아달라”고 하였다. 거타가 승낙하니 노인이 감사하며 물속으로 들어가고 거타는 숨어서 기다렸다.

 

이튿날 동쪽에서 해가 뜨자 과연 중이 와서 전처럼 주문을 외우며 노룡(老龍)의 간을 빼 먹으려 하였다. 그 때 거타가 활을 쏘아 맞히니 중이 곧 늙은 여우로 변하여 땅에 떨어져 죽었다. 이에 노인이 나와 감사하여 가로되 공(公)의 덕택에 나의 생명을 보전하였으니 나의 딸로 아내를 삼아 달라 하였다. 거타가 가로되 주시는 것을 저버리지 아니함은 원하는 바이라 하였다. 노인이 그 딸을 꽃가지로 변하게 하여 거타의 품속에 넣어주고 또 두 용(龍)을 명하여 거타를 받들고 사선(使船)을 쫓아가 그 배를 호위하여 당나라에 도착하였다.

 

당나라 사람들은 신라 배에 두 용이 받들고 있음을 보고 임금에게 아뢰니 임금은 신라의 사절이 반드시 비상한 사람일 것이라 하고 잔치를 베풀되 여러 신하의 윗자리에 앉히고 후하게 금백(金帛)을 주었다. 고국에 돌아오자 거타는 꽃가지를 내어 여자로 변하게 하여 동거(同居)하였다. -

 

거타지 설화는 삼국유사 제 2권 <기이(奇異)> 제 2편에 수록되어 있다. 용왕과 주술이 등장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시대적 상황이나 조난당한 섬의 이름 등 구체적인 요소들이 정확하기 때문에 설화 치고는 매우 현실적인 측면이 강하다.

 

어쨌든 영웅설화이기 때문에 국문학계와 국사학계에서는 신라 말기의 혼란한 시대에 새로이 떠오르는 업종이던 해상무역 (더 정확히는 당나라를 대상으로 한 조공무역)에 종사하는 주인공을 내세워 당시의 타락한 지배계층을 상징적으로 타파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고 싶은 민중의 염원을 반영한 이야기로 해석되고 있다.

 

용왕이라는 주술적이고 민속적인 등장인물이 당대 지배계층의 종교였던 불교를 상징하는 사미(동자승)와 맞서는 구도에서 장수가 아니라 일개 군졸에 불과한 거타지가 용왕을 도와 불교의 승려를 활로 쏘아 죽인다는 전개나, 쏴 죽인 승려가 알고 보니 늙은 여우였다는 전개 등은 지배계층과 결탁한 승려들이나 부패할 대로 부패하여 귀족층의 재산 도피처 노릇을 하고 있던 사찰에 대한 민중들의 반감을 보여준다. 특히 당대 지배자였던 진성여왕의 가문 전체가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진성여왕의 시대는 9세기,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 전이었다.

혼란하고 불행한 사회는 언제나 비슷한 모습으로 혼란하고 불행한 것인지도 모른다. 당시 주류 종교의 이름을 다른 종교, 혹은 종교를 사칭하는 사이비 단체의 이름으로 바꾸고, ‘해상무역’이라는 단어를 이보다 더 정교하고 기만적인 다른 상업 관련 단어들로 대체하고 … 그리고 진성여왕의 남자관계가 문란하였다는 세부사항까지 고려하면, 과연 그 1200년 사이에 왕조가 몇 번을 바뀌었어도 우리는 그 조상들의 후손이 맞긴 맞는 것 같다고, 그다지 자랑스럽지 않은 기분으로 확인할 수 있다.

 

2.

자녀를 낳아 키워보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거리로 나온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자식 키우는 부모도 물론 많이 있지만 독신이거나 자녀가 없는 사람도 아주 많다. 늙은 여우는 그저,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참사의 진상을 밝히라는 요구는 피해자를 위한 것만이 아니다. 목격자의 입장에서도 당연한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그리고 나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저런 끔찍한 상황을 며칠씩, 몇 주씩, 몇 달씩 지켜보아야 하는가.

 

서명을 해서 어디다 쓰냐고, 몹시 화난 표정으로 물어온 아가씨가 있었다. 서명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나는 정성껏 설득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왜 일어났는지 밝히고 책임자를 찾아내야 이런 참사를 방지할 수 있고, 실종자가 아직 열 여섯 명이다(그 때는 열 여섯 명이었다, 지금은 열 명이다, 날짜는 너무나 무섭게 하루 하루 빨리 흐르고 실종자 숫자는 고통스럽게도 제 자리에 머물러 있다, 은화야 다윤아 지현아 현철아 영인아 미안해, 고창석 선생님 양승진 선생님 죄송합니다, 혁규야 미안해 혁규 아빠 권재근님 죄송합니다, 이영숙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남은 실종자도 끝까지 모두 찾고 이 사건 끝까지 밝혀야 하지 않겠냐,

 

이쯤에서 아가씨는 입술을 꽉 물고 결연한 표정으로 서명했다. 주소란에 ‘경기도 안산시’라고 썼다. 뒤에서 지켜보던 친구가 “단원고등학교도 써”라고 말했다…

 

친구가 단원고등학교를 다녀서, 아는 동생이 단원고등학교를 다녀서, 본인이 단원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집이 안산이라서….

고개를 들 수 없다. 서명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감히 웃는 얼굴로 말할 수 없다.


"일반 시민"과 "피해자" 사이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다.

 

3.

거타지 설화가 포함된 삼국유사 제 2권 <기이> 제 2편에는 사실 두 개의 이야기가 함께 들어 있다. 거타지 이야기의 앞부분은 일명 “왕거인(王巨仁) 사건”이다.

 

- 제51대 진성여왕이 임금이 된 지 몇 해 만에 유모(乳母) 부호부인(鳧好夫人)과 그의 남편 위홍잡간(魏弘匝干) 등 3, 4명의 총신(寵臣)들이 권력을 마음대로 해서 정사를 어지럽히자 도둑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나라 사람들이 근심하여 이에 다라니(陁羅尼)의 은어(隱語)를 지어 써서 길 위에 던졌다. 왕과 권세를 잡은 신하들은 이것을 얻어 보고 말했다. "이 글은 왕거인(王居仁)이 아니고는 지을 사람이 있겠느냐." 이리하여 거인을 옥에 가두자 거인은 시(詩)를 지어 하늘에 호소했다. 이에 하늘이 그 옥에 벼락을 쳐서 거인을 살아나게 했는데 그 시는 이러했다.

 

연단(燕丹)의 피어린 눈물 무지개가 해를 뚫었고,

추연(鄒衍)의 품은 슬픔 여름에도 서리 내리네.

지금 나의 불우함 그들과 같거니,

황천(皇天)은 어이해서 아무런 상서로움도 없는가.

 

또 다라니(陁羅尼)의 은어(隱語)는 이러했다.

 

나무망국 찰니나제 판니판니소판니 우우삼아간 부이사파가

南無亡國 刹尼那帝 判尼判尼蘇判尼 于于三阿干 鳧伊娑婆訶

 

해설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찰니나제(刹尼那帝)란 여왕(女王)을 가리킨 것이요, 판니판니소판니(判尼判尼蘇判尼)는 두 소판(蘇判)을 말한 것이다. 소판은 관작(官爵)의 이름이요, 우우삼아간(于于三阿干)은 3, 4명의 총신(寵臣)을 말한 것이요, 부이(鳧伊)는 부호(鳧好)를 말한 것이다." -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http://goo.gl/woqsr9)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 요구를 해 봤자 별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은 어느 현자가 아예 나라를 망친 주범들의 이름을 써서 수도의 거리에 뿌려버린 것이다. 트위터가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왕거인 사건에 대하여 내용이 <삼국사기> 제 11권 진성왕 2년조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위에 나타난 사기의 내용에는 왕거인이 시를 지어 감옥 벽에 붙이니 천재지변이 일어나 여왕이 결국 왕거인을 풀어주었다고 나와 있다. 이러한 면에서 야사(野史) 중심인 삼국유사의 설화적 해석과 대체로 정사(正史)로 여겨지는 삼국사기의 기록은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어쨌든 왕거인 사건에 대한 부분은 설화가 아니라 실제 일어난 정치 사건으로 여겨진다. 학자들은 이 왕거인 사건에 대하여 백성들이 적어서 땅에 뿌린 다라니는 당시의 정치 현실을 범어(梵語)를 빌려 풍자한 것으로, 왕거인 사건이 일종의 참서 사건이며 문제의 다라니는“현대의 반정부 삐라”에 해당하는 것이라 해석한다. (박철완, “거타지설화의 상징성 고찰”, <청람어문교육> 제 1권 (1988년) 246쪽.)

 

좀 더 자세하게는 왕거인 사건이 백성의 조세저항과 각지에서 일어난 도적떼, 지나친 사치로 인한 왕실의 재정 위기 등 사회적 혼란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이해한 학술자료도 있다. (전기웅, “삼국유사 소재 ‘眞聖女大王居陁知’ 조 설화의 검토”, <한국민족문화> 제 38권 (2010년) 221-233쪽.)

 

4.

국회에서 바라본 밤 하늘은 평온했다. 멀리 정문 바깥의 여의도 거리는 휘황하기 짝이 없었다. 그 무심하고 평온한 광경은 찬란해서 어딘지 비현실적이었다. 본청 앞 계단에 앉아서 그런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옆에서 들려온 대화 중에 “단식”이라는 무서운 단어가 섞여 있었다.

 

국회_밤.jpg


7월 14일 월요일에 단식 농성이 시작되었다. 국회에서 어머님과 아버님들 10명, 광화문에서 아버님들 5명이 시작했고 중간에 어머님들 5명이 추가로 참가하셨다.

 

한 분씩 차례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셨다.

8월 15일 광복절, 광화문에서 유민이 아버님 혼자 33일째 단식 중이다. (8월 16일 현재 34일)

딸을 위해, 말 그대로 살을 깎아내며 물과 소금만으로 버텨온 34일.

 

“피 어린 눈물 무지개가 해를 뚫었는데…

하늘은 어이하여 아무런 상서로움도 없는가.”

 

5.

가족들은 관광버스에 나눠 타고 열흘 동안 전국을 돌았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강행군이었다. 새벽에 숙소를 나와 출근 시간에 거리에서 홍보를 하고, 오전에 잠시 서명을 받고, 낮부터 오후까지는 군수 도지사부터 읍장 면장까지 만나주겠다는 사람은 모두 만나서 면담을 하고 기자회견을 하고 간담회를 하고, 저녁에는 다시 퇴근하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서명을 받고, 밤에 촛불문화제에 참가하고, 그런 뒤에 잠은 버스에서 자면서 다음 도시로 이동하고, 다시 새벽이 되면 숙소에서 씻고 아침식사만 마치고 다시 출근 시간에 맞춰 거리에서 홍보전…. 을 반복했다. 그런 생활이 일주일째 되던 날에 국회에서 입법청원이 이루어졌다.

 

정당에서 법안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것은 희생자와 가족들의 뜻을 왜곡하는 참서(僭書: 신실하지 못하고 어그러져 비방하는 글)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어째서 무슨 이유로 어떤 경위로 죽음을 맞아야 했는지 밝혀 달라는 상식적이고 정당한 요구에 제대로 된 대답 대신 돈을 내밀었다.

 

실제로 준다 해도 받지도 않을 더럽고 끔찍한 돈을 전면에 내세우며 가족들이 그 돈을 원했다고 거짓말로 주장하면서 가족들과 일반 국민 사이를 이간질했다. 제 1야당에서는 게다가 대학 특례입학을 내세웠는데 이는 더 심한 이간질이었다. 일반 국민과 피해자 가족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데 이어서 피해자의 가족들 중에서도 희생자 및 실종자 가족과 생존자 가족 사이를 또 갈라놓으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간질하려는 시도는 매우 효율적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신분 계층과 생활 수준과 사고방식까지 존재의 거의 모든 측면을 결정짓는 돈과 대학 학력이라는 두 개의 미끼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속고 있는 줄도 모르고, 교묘하게 이간질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믿으며, 오직 진실을 원한다고 울부짖는 가족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국회와 광화문의 농성은 원하지도 않는 돈과 특혜를 내세워 진실을 침몰시키려는 악하고 거짓된 시도에 대항하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이 절박한 싸움에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위해 “별마중”이라는 예쁜 이름을 붙였다. 별이 된 아이들을 위해 노란 종이배를 접어서 보고 싶은 아이들의 이름을 적어 국회와 광화문의 잔디밭에 수를 놓았다.

 

국회앞별마중2.jpg


8월 15일 광복절, 국회와 광화문에서 가족들의 별마중은 35일째를 맞이했다.

 

6.

삼국유사에 실린 거타지 설화의 본 제목은 “진성여대왕거타지(眞聖女大王居陁知)”이다. 거타지 설화는 앞서 소개한 왕거인 사건 이야기 바로 뒤에 아무 설명도 없이 붙어 있다.

거타지 설화가 왕거인 사건처럼 당대의 사회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정치사건의 기록과 함께 수록되었다는 점에서 거타지 이야기 또한 단순한 설화가 아니라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의미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진성여왕은, 앞서 말했듯이 남자관계가 몹시 문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공식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적인 자식 또한 없었다. 그렇다면 여왕의 ‘아들’도 아닌 ‘막내아들’이라는 구체적인 표현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해진다. 학자들이 아무리 추정에 추정을 거듭해도 어째서 거타지 설화의 도입부에서 군사를 이끌고 떠나는 양패(良貝)라는 인물이 진성여왕의 존재하지도 않는 ‘막내아들’로 명시되어 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이에 대하여 서울여자대학교 사학과의 정연식 교수는 거타지 설화가 별자리를 바탕으로 창작된 것이라는 대답을 내놓는다. 물론 거타지 설화의 원 창작자에게 직접 대답을 들을 수 없으니 이 또한 추정에 불과하지만 정연식 교수의 추정은 대단히 섬세하고 치밀하며 그렇기 때문에 설득력이 아주 강하다. (정연식, “거타지 설화의 새로운 해석”, <동방학지> 제 160권 (2012) 169-209쪽.)

 

국사학과 천문학, 그것도 중세 중국의 별자리 지도와 조선시대의 별자리 지도와 현대 천문학을 아우르는 지식과 그 방대한 내용을 거타지 설화에 적용시킨 41쪽짜리 논문을 여기서 전부 다 소개할 수는 없으니 간단히 요약하자면 여왕의 막내아들이란 여왕성(女王星)을 중심으로 별들이 여러 개 늘어선 별자리 중에서 가장 끝에 있는 별을 가리켜 그렇게 표현한 것이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별자리가 은하수를 가로질러 움직인다는 뜻이며, 용왕은 온화한 노란색의 노인성(老人聖), 늙은 여우는 새하얗고 사납게 빛나는 천랑성(天狼聖), 거타지는 화살을 뜻하는 시(矢) 별자리를 의인화한 것이고, 용왕의 딸은 위쪽에 빨간 별과 아래쪽에 푸른 별이 늘어선 모양의 별자리라서 ‘꽃가지’라고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보다시피 정연식은 논문에서 별들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현대 천문학에서 표준적으로 사용하는 베크렐 단위를 사용한 별의 정확한 밝기와 그에 따른 색채, 그리고 별자리의 전통적인 의미까지 고려하면서 각각의 별자리가 의인화되어 설화로 창작되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극적인 이야기로서 풍성하고 흥미롭게 묘사하였다.

 

1200년 전, 망해 가는 어느 작은 나라에서 답답하고 한심한 주변 상황에 기가 막혀 누군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들에게 의지해서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 이야기는 얇은 종이에 가느다란 문자로 적혀 천 년의 시간을 살아남았다. 그리고 1200년이 지난 어느 날에, 같은 하늘의 같은 별들을 올려다보며 누군가 마침내 그 오래된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의 생각을 읽고 그 마음을 알아주었다. 별들에게 남겨진 이야기는 그렇게 천 년 세월을 뛰어넘었다.

 

별들에게 남기면, 이렇게 가느다란 글자로 적은 힘 없는 우리의 이야기도 천 년이 지난 뒤에 누군가 알아줄까.

10년이 지난 뒤에, 과연 누가 별이 된 우리 아이들을 기억해 줄까….

 

7.

국회에 자리잡고 “별마중”을 시작한 부모님들은 고립되었다. 광화문은 열린 공간이라 아무나 드나들 수 있고 그래서 자원봉사자도 많고 동조단식 인원도 많고 그냥 길 건너 지나가는 사람도 아주 많다. 그러나 국회는 국회이기 때문에 정문이 있고 남문이 있고 옆문이 있고 후문이 있으며 이런 문들은 모두 닫아서 걸어 잠가 버리면 일반인이 열고 들어갈 방법이 없다.

 

8월 7일에 여당과 제 1야당이 갑자기 특별법 제정에 합의했다. 내용은 아니나다를까 보상과 특례입학을 중점적으로 다루었으며 진실규명이나 참사 재발방지는 결단코 하지 말자는 쪽으로 제 1여당의 이완구 대표와 제 2여당의 박영선 대표는 무척 다정하게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이에 대해 가족들은 깜짝 놀라 급하게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발표했으며 기자회견과 이후 계속될 농성에 합류하기 위해 안산에서 250명의 가족들이 버스를 타고 국회로 찾아왔다.

 

그 버스는 국회 남문에서 저지당해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국회 안에 들어갔다가 밖으로 나온 가족들도 경찰에게 가로막혀 다시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가족들은 정문 쪽 잔디밭까지 나왔으나 담장에 가로막혀 밖에 서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을 보며 울었다. 야당 국회의원 한 분이 어머님 한 분을 동반하고 국회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역시 경찰에 가로막혔다. 그 어머님은 정문 안에 서 계시는 다른 어머님의 손을 잡으려고 정문 철창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순식간에 경찰 1개 중대 병력이 자식 잃은 어머니들을 둘러쌌다. 손을 잡으려 했기 때문에.

 

그리고 때렸다. 일반 시민이 주변에 없을 때 경찰은 가족분들을 때린다. 특히 어머님들, 여자분들을 골라서 때린다. 어머님들의 다리는 경찰에게 차여서 멍 투성이다.

 

특별법 야합은 파기되었고 여당과 제 2여당이 재협상에 들어갔으나 수사권이나 기소권 따위를 주면 진실규명을 해서 우리를 엿 먹일 테니 절대로 줄 수 없다는 기득권자들의 배부른 투정에 의하여 8월 13일 국회 본회의에서도 특별법은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가족들은 대통령을 직접 만나야겠다고 결정하고 (5월에 대통령은 가족들이 직접 연락할 수 있는 핫라인을 설치했고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약속했다. 가족들은 8월 초부터 이 핫라인으로 청와대에 정식으로 방문 신청을 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청와대로 향했다. 그리고 5월에 그랬듯이 이번에도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저지당했다. 경찰은 다시 가족들을 때렸다. 성호 아버님과 예지 어머님이 병원에 실려가셨다.

 

남은 어머님 다섯 분과 아버님 두 분이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건너편 커피숍 옆 공터의 맨땅에 앉아서 오지 않는 대답을 한없이 기다렸다. 비가 와서 우비와 우산을 드리니 어머님은 “비 맞고 감기 걸려서 죽어버리겠다”며 우비도 우산도 받지 않으셨다. 보다 못한 어느 시민이 길 건너 다른 커피숍에서 커피 담았던 포대를 열 개 얻어왔다. 가족분들 깔고 앉으시라고 전해 드리려 했는데 가족들을 에워싼 경찰이 안으로 넣어주려 하지 않았다. 고성이 오가는 와중에 어느 종로경찰서 소속 경찰이 이경주 어머님의 코를 팔꿈치로 때렸다. 이경주 어머님은 코를 부여잡고 숨을 쉬지 못해 병원으로 실려가셨다.

 

남은 가족들은 밤이 될 때까지 자리를 지켰고 광화문에서 동조 단식하시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님 네 분이 오셔서 경찰의 폭력에 대해 항의했지만 “실수였다”는 변명만 들었을 뿐 어머님을 때린 호로새끼가 누구인지 밝히지도 못했고 사과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가족대책위에서 지원해준 깔개와 덮개도 경찰이 지키고 서서 사용할 수 없게 막았다. 가족대책위 김병권 위원장님은 여기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내 물건인데 왜 손 못 대게 하냐”고 항의하다가 둘러싼 경찰들의 머리 위로 깔개를 던져서 가족들께 결국 전달했다.

 

이어서 손난로와 덮개가 광화문에서 전달되었는데 경찰은 손난로를 들고 오는 50대 여자분을 막으러 나섰다. 변호사님이 이 한심한 검문에 항의하고 나섰고 경찰은 변호사님을 둘러싸고 차도로 끌어내리려고 몸싸움을 벌였다. 이런 어이없는 과정을 거쳐 가족분들은 엉성한 깔개 위에 누워 얇은 담요로 몸을 감싸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한밤의 추위를 조그만 손난로로 이겨내며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노숙을 했다. 청와대의 대답은 여전히 듣지 못했다.

 

8.

유민 아버님은 광복절까지 특별법이 제정된다면 그 때까지 단식하며 버티겠다고 약속하셨다. 이제 광복절이 지났는데도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으니 유민 아버님은 관을 짜 놓고 끝까지 광화문에서 단식하겠다고 선언하셨다.

 

부모님들은 경찰에게 맞고, 목을 졸리고, 발로 차이고, 보수를 참칭하는 단체에게 욕을 먹고 매도를 당하고 그냥 지나가는 별별 이상한 사람들에게까지 이유 없이 벌레 취급을 당하며 멍들고 병들고 다치고 상한 몸으로 집회에 참석하고 청와대로 행진을 하고 진실을 밝혀 달라고,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 달라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그 목소리를 들어주는 모든 사람에게 외친다.

 

아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화면으로 보았고, 이제 부모님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매일같이 눈 앞에서 본다.

매일매일 나도 함께 조금씩 죽어간다.

 

9.

물론 늙은 여우는 인간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동틀 무렵에 늙은 여우를 활로 쏘아 죽여버릴 난세의 영웅은 대체 누구인가.

 

교황 성하는 커다란 위로를 주실지언정 근본적인 답은 주실 수 없다. 교황은 좋은 분이고 가족분들을 “참사 이후 처음으로 존중해주신” (박성호 어머님 정혜숙님 말씀) 한없이 고마운 분이지만 우리를 위해 법을 제정해줄 권한은 없다.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는 끝까지 함께 할 수밖에 없지만,

그 끝이 어디인지… 보이지 않는다.

너무 무서워서, 보고 싶지 않다.

 

10.

광화문 광장의 잔디밭을 수놓았던 노란 종이배는 장마가 시작되면서 어머님들 손에 거두어져 사라졌다. 대신 잔디밭에는 바람개비가 꽂혔다. 종이배와 노란 우산과 마찬가지로 바람개비 날개에도 아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장마가 시작되자 바람개비는 바람이 아니라 비를 맞으며 돌았다.

아이들은 물 속에서 죽고, 아이들의 이름이 적힌 바람개비는 빗방울에 얻어맞으며 쫓기듯이 돌고, 바람개비 날개에 적힌 아이들의 이름마저 물에 젖는 것이 너무나 미안해서 나는 비에 젖은 바람개비를 보며 몰래 울었다.

 

바람개비.jpg


울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하나 하나 말로 풀어내기에는 너무 많은 일들이 광화문에서, 국회에서, 그리고 또 다른 여러 곳에서 매일같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겁에 질리고 긴장해서 울음도 나오지 않았지만 이제는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울고 해가 나면 땡볕이라서 운다. 비가 오면 그 비를 다 맞으며 소리치고 해가 나면 그 뙤약볕을 견디며 걸으시는 분들을 알기 때문이다. 123일을 그렇게 보냈고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날들을 그렇게 보내야 할지 기약이 없는 그 분들, 그리고 함께 비를 맞고 땡볕을 견디는 수많은 다른 분들을 알기 때문이다, 나도 그 분들과 함께 비를 맞고 뙤약볕을 견디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나는 종이배와 바람개비를 보면 울 것이다.

 

11.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위해 싸운다.

나는 부모님들을 “돕는다”고 생각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인간이 존중 받았으면 좋겠다.

상처 입은 분들이 존중 받았으면 좋겠다.

인간의 품위와 다른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지켜졌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이 이런 식으로 짓밟히고 욕먹고 고립되어 잊혀버리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 눈앞에서 보면서 나까지 등을 돌릴 수는 없다.

결국 나는 나를 위해 싸우고 있다. 가족분들이 내가 바라는 세상을 위해 싸워주시기 때문에.

 

12.

우리가 이렇게 간절하게 사랑하고, 애타게 그리워하고, 온몸으로 아파하며 싸웠다는 걸, 별이 된 아이들이 기억해 줄까.

우리는 더러운 땅에서 비루한 싸움을 하다가 언젠가 한 줌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이들을 먼저 보냈으니 그것이 정당한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별이 된 아이들은 높은 곳에서 영원히 깨끗하고 밝고 아름다울 것이다.

 

13. 덧.

광화문역 9번 출구 근처 지하에는 장애인 분들의 농성장이 있다. 그 분들은 그곳에서 2년이 넘게 장애인 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치며 싸우고 있다.

사람의 몸에 등급을 매긴다는 것은 비인간적인 짓이다.

장애인들의 싸움은 외롭다. 그 분들께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 오히려 지하에서 농성하시는 장애인 분들은 땅 위의 광화문 광장에서 서명 받는 사람들을 도와주신다. 부양의무제 장애등급제 폐지 서명을 받으면서 옆에서 특별법 제정 서명도 같이 받고 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분들도 우리와 함께 서명받는다. 밀양에서 오신 할매들 서명하고 가셨다. 씨엔엠 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 분들 노조 전체가 다 와서 서명하셨다.


어째서 가장 힘들고 가장 아프고 가장 외롭고 가장 상처 입은 분들이, 오로지 그런 분들만이 타인을 돌보고 끝없이 베푸는가.


광화문역 지하에서 농성하시는 장애인 분들이 내게는 교황보다 위대하다.

광화문 역장은 교황 방한과 시복미사를 구실로 장애인분들에게 농성장을 철거하라고 통보했다.

장애인분들은 자리를 지키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댓글 6
  • No Profile
    박애진 14.08.16 17:23 댓글 수정 삭제

    페이스북이나 몇몇 곳에 링크해도 괜찮으실까요?

  • 박애진님께
    글쓴이 정도경 14.08.16 17:37 댓글

  • No Profile
    세뇰 14.08.16 18:58 댓글

    저도 블로그나 게시판 몇 군데에 링크해가도 될까요?

  • 세뇰님께
    글쓴이 정도경 14.08.16 19:56 댓글

  • No Profile
    14.08.16 20:52 댓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페이스 북으로 공유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 님께
    글쓴이 정도경 14.08.16 20:54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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