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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TRPG 이야기-던전월드

2013.06.24 00:0506.24

이런 거 써도 되나 싶긴 한데(...) 거울에도 RPG하시는 분들이 많은 듯하겠다, 게시판도 요즘 조용하겠다 슥슥.

 

던전월드(Dungeon World)라는 룰이 최근에 나왔습니다. 원래는 아포칼립스 월드라는 룰을 기반으로 한 건데...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한 원본에다가 중세 판타지 배경의 모험물 스킨(?)을 씌웠다고 보면 됩니다. 이런 인디 룰들이 그 특성 상... D&D를 내는 위저드 오브 더 코스트 사처럼 디자인이다 테스트 플레이다에 쓸 인원이 적은 군소 회사들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큰 회사에서 나온 다른 룰들처럼 데이터가 풍부하다거나 수치적 밸런스가 잘 맞는다거나 하지는 못한 대신, 소수 취향에 특화된 독특한 배경 설정을 들고 나온다거나 룰적인 측면에서 실험적인 독특한 시도를 하는 경우가 많지요. 시장의 반응을 끝없이 의식하는 대기업 제품과는 달리, 신선함과 과감함이 살아 있다고 해서 인디 룰을 더 선호하는 매니아들도 많습니다.

 

새로운 아이템이다 몬스터다 마법이다 해서 서플리먼트가 나올 때마다 데이터가 추가되는 최신 D&D 계열의 경향과는 정 반대로, 던전월드의 룰은 극히 심플합니다. 마스터와 플레이어들 간의 대화와 묘사로 거의 모든 상황이 정의되며, 이러한 대화와 묘사 가운데 룰이 개입할 만한 상황이 발생하면 그 때서야 판정을 합니다. 모든 판정은 6면체 2번 굴리기로 정하고, 어떤 행동을 했냐에 따라 거기에 추가로 능력치 수정치가 붙고요(근접전이라면 +힘 수치 수정치, 지식 더듬기라면 +지능 수치 수정치라는 식). 그래서 10 이상이면 목표로 한 행동이 완전히 성공하고, 7~9가 나오면 행동 자체는 성공하지만 상황에 따른 부작용이 일어나고, 6이하가 나오면 행동이 실패하며 덤으로 부작용도 붙고, 그 대신 경험치를 1점 얻는 식입니다. 능력치 종류는 D&D를 통해 친숙한 물리적 능력치 3종과 정신적 능력치 3종해서 6종류이며, 캐릭터 클래스도 D&D의 그것을 거의 그대로 따라갑니다.

 

이 룰의 가장 혁신적인 부분은, 마스터가 시나리오를 짜고 플레이어가 마스터가 주는 '퀘스트'를 클리어한다는 전통적인 전제에서 상당 부분 탈피해 있다는 겁니다. 그러한 역할 배분이 완전히 도외시되는 것은 아닌데, 던전월드에서 계속해서 강조되는 것은 '플레이를 해서 알아낸다'입니다. 이것은 마스터가 지켜야 할 던전월드의 3대 법칙 중 하나로(참고로 다른 둘은 '환상적인 세계를 표현한다', '캐릭터들의 삶을 모험으로 채운다') 플레이를 하면서 마스터는 계속해서 플레이어에게 질문을 합니다. 전사 캐릭터가 전투에서 화려한 검술로 오크를 베어 넘겼다면, 그 검술을 가르친 스승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마법사 캐릭터가 악마 소환의 주문을 알아듣는다면 어떤 악마가 불려나오냐고 물어봅니다. 그리고 플레이어의 대답은 그것이 플레이 분위기에서 크게 벗어나거나 지금까지 플레이를 해오며 밝혀진 바와 위배되지 않는 이상 모두 '진실'이 됩니다. 던전월드 룰의 '마스터' 챕터에선 이렇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강령은 환상적인 세계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던전월드는 배짱과 용기, 재치를 갖고서 암흑과 맞서는 RPG입니다. 영광스런 보상을 얻기 위해 모험의 삶을 택한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마스터가 캐릭터들이 그런 모험을 할 수 있는 세계를 플레이어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이야기에 참여합니다. PC들이 없으면 그 세계는 혼돈이나 파멸에 빠지게 됩니다. 어쩌면 PC들이 있어도 그렇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 세계의 판타지적인 면모를 묘사하는 것이 마스터의 일입니다. 이 세상의 멋진 면들을 플레이어들에게 보여주고, 이에 반응하도록 권하십시오.

캐릭터들의 삶을 모험으로 채운다는 것은, 플레이어들과 협력하여 생동감 있고 흥미진진한 세계를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모험가들은 항상 세계의 운명을 좌우하고 존망을 위협하는 대사건에 말려들기 마련입니다. 그런 진행을 장려하고 육성하십시오.

다른 많은 RPG의 시나리오와 달리, 던전월드에서는 플레이어의 행동을 예측하지 않습니다. 던전월드에서는 살아 움직이는 세계, 그리고 그 안에서 각자의 목적을 추구하는 크고 작은 사람들과 세력들을 묘사합니다. 이 세계와 그 주민들이 PC들과 부대끼면 사건은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마스터의 역할은 그 사건의 결과를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플레이를 해서 알아내는 것입니다. 자신이 묘사한 세계와 주인공들이 어떻게 서로 작용하고 어떻게 서로 변하는지는 플레이를 해야 알 수 있습니다. 마스터도 플레이어도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니 준비를 너무 철저히 하지는 마십시오. 그러면 룰이 수시로 방해가 될 것입니다. 다른 RPG를 많이 해 본 사람은 믿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일이 어떻게 풀리는지 두고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재미가 있습니다.

   

현재 던전월드는 웹을 통해 한글화된 룰 전체가 공개되어 있고, 하드커버와 일러스트, 다양한 예시를 추가 수록하여 도서출판 초여명에서 곧 책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http://mirror.enha.kr/wiki/%EB%8D%98%EC%A0%84%EC%9B%94%EB%93%9C

 

여기의 '한국어 공개룰북 웹페이지'를 참고해 주시면 됩니다(직접 링크는 안되는군요). 이하는 예시 차원에서 걍 한 번 올려보는,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하는 던전월드 플레이에서의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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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titled.png

 

사냥꾼(5레벨)

종족:엘프

이름:셀리온

가치관:선(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위험한 것과 싸우기 위해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립니다)

날카로운 눈, 눌러 쓴 후드, 군살 없는 몸

근력 8(-1) 민첩 18(+3) 체력 13(+1) 지능 9(+0) 지혜 16(+2) 매력 13(+1)

HP:21 기본 피해:D8

핵심 액션:

*험난한 여정을 떠날 때 어떤 역할이건 10+로 성공

사냥과 추적

사람이나 짐승이 지나가며 남긴 자취를 따라갈 때, +혜 판정을 합니다. 7+이면 대상이 방향이나 이동 방식을 크게 바꾼 지점까지 추적해 갈 수 있습니다. 10+이면 더불어 한 가지를 고릅니다:

대상에 관한 유용한 정보를 얻습니다. 마스터가 정해서 알려줄 것입니다.

자취가 왜 여기서 끊어지는지 알아냅니다.

정조준

방어를 할 수 없거나 기습을 당한 적을 멀리서 공격할 때, 원하면 특정 부위를 노려서 쏠 수 있습니다. 목표를 정하고 +민 판정을 합니다:

머리: 7~9이면 상대가 잠시 정신 없이 휘청거립니다. 10+이면 여기에 통상적인 피해까지 줍니다.

: 7~9이면 상대가 들고 있던 것을 떨어뜨립니다. 10+이면 여기에 통상적인 피해까지 줍니다.

다리: 7~9이면 상대가 이동이 느려집니다. 10+이면 여기에 통상적인 피해까지 줍니다.

태양을 가리리라

사격을 할 때, 원하면 판정하기 전에 발수를 추가로 소비하여 추가 목표를 지정할 수 있습니다 (발수 1점당 목표 하나 추가). 판정은 한 번만 하고, 같은 피해를 모든 목표에 적용하십시오.

익숙한 사냥감

괴물에 대해 지식 더듬기를 할 때 +지 대신 +혜로 판정할 수 있습니다.

호랑이의 눈

동물에게 피, 흙, 진흙 등으로 표시를 하면 그 동물의 눈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거리는 관계가 없습니다. 한 번에는 하나의 동물에만 이런 식으로 표시를 할 수 있습니다.

야성의 교감

동물의 말을 이해하고 동물과 대화할 수 있게 됩니다.

동물 친구

늑대 "영월"

사나움 +2, 교활함 +2, 장갑 0, 본능 +1.

*감각이 예리하다, 움직임이 은밀하다

*수색, 척후

*고집이 세다

동물과 자기가 같은 대상을 공격할 때, 동물의 사나움이 피해에 추가됩니다.

사냥과 추적을 할 때 동물의 교활함이 판정에 더해집니다.

자신이 피해를 입을 때 동물의 장갑이 자신의 장갑에 추가됩니다.

상황 파악을 할 때 동물의 교활함이 판정에 더해집니다.

협상을 할 때 동물의 교활함이 판정에 더해집니다.

다른 PC가 자신을 방해하려 들 때, 동물의 본능이 그 판정에 더해집니다

장비

모험 장비 (무게 1), 던전용 식량 (4회분, 무게 1), 가죽 갑옷 (장갑 1, 무게 1), 화살 다발 (발수 3, 무게 3).

사냥용 활 (중거리, 장거리, 무게 1)과 소검 (한걸음, 무게 1)

*그림자 단검

사제 카르민은 자연을 존중하지 않으니 나의 존중도 받지 못할 것이다.

도둑 오마르는 야외에서 사는 법을 모르니 내가 가르쳐 주어야겠다.

도둑 오마르는 동료로서 믿을 만한 친구다.

전사 풰 마이에게는 목숨+따귀 한 대를 빚졌다.

경험치:8/12

오랫동안 종족을 배반하고 지하로 숨어든 지저엘프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엘프 부족 족장의 딸이었는데 지저엘프들의 대규모 야습을 받고, 숲이 전부 불타 버린 과거를 갖고 있다. 다행히 부족의 주요 인원들은 피신하는데 성공했지만 족장의 딸로서, 언젠가 자신이 지켜야 할 숲이 불타 버렸다는데 책임감을 느끼고 부족을 떠나 모험가 생활을 시작. 언젠가는 숲을 복구하고 그곳으로 부족원들을 이끌어 가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댓글 5
  • No Profile
    양원영 13.06.25 09:57 댓글

    저도 이번 크라우드 펀딩 참가해서 결과물 나오기 기다리고 있어요. ㅎㅎ 1년에 플레이 1개 초과로 안 늘리겠다고 계획 세워둔 터라 아마 굴려보려면 내년이나 돼봐야 할듯. ㅋㅋ 간단하게 즐기는 놀이로서 기능이 잘 되어있는 듯 해서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 양원영님께
    No Profile
    글쓴이 세뇰 13.06.26 08:52 댓글

    텀블벅 후원자 리스트에서 이름을 발견했는데 그 양원영님이 이 양원영님이 맞았군요(...) 그 외에도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단편 플레이로라도 한번 해보세요, 재미있어요!

  • 세뇰님께
    No Profile
    한별 13.06.26 18:39 댓글

    저도 다음주부터 친구들하고 돌리려고요 :) 

    아이패드로 보니까 그렇게 편하던데!

  • No Profile
    pena 13.06.25 11:59 댓글

    경험치 바로 위에 있는 게 인연인가 보네요. 저도 크라우드 펀딩 참가해서 기다리는 중이에요. 간단하게 티알로 해보려고 생각 중.

    소개 말고, 플레이해본 경험으로는 어떤지도 말씀해주시면 재밌을 듯하네요.

  • pena님께
    No Profile
    글쓴이 세뇰 13.06.26 09:00 댓글

    D&D3.5나 패스파인더처럼 가능한 다양한 상황을 최대한 자세히 '룰'로 묘사하고 해당 룰을 통해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이 규정되는 플레이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처음에는 헤매기 쉬워요. 요즘 겁스를 주로 하고 있다 보니 더 그랬고. "잠깐, 턴 순서 개념이 없다고?" "룰이 너무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데, 이런 식으로 끼워 맞춰도 되는 건가 진짜?" 싶어서 처음에는 혼란의 카오스였는데 할수록 초보 시절에 D&D 클래식하던 느낌이 난달까... '상상력을 룰로 규정지우는 대신, 상상력을 다양하게 발휘할 여지가 있도록 룰이 구조적으로 지원하는 데만 머무르는 형태'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세 판타지 모험물이라는 특성 상 장면을 연출하고 이야기를 만들기보다는 '전투에서 얼마나 간지를 잡을 수 있냐'로 방향이 좀 한정되어 있어서 약간 아쉽긴 한데 이건 장르적 특성이다 보니 어쩔 수 없으려니 싶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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