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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예비평 2013.가을 - 통권 제90호
산지니 편집부 (엮은이) | 산지니 | 2013-08-28





 2) 배명훈: SF와 정치외교학의 변신합체


 배명훈은 장르/문학작가이다. 그가 장르/문학작가인 것은 2005년 단편SF 「smart D」로 제2회 과학기술창작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 아니라 『타워』․『안녕, 인공존재』․『신의 궤도 1, 2』․『은닉』․『총통각하』 등 SF이되, 문단문학과 장르문학을 버무려놓은 듯한 작품을 발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SF와의 관련성을 기준에 놓고 본다면 김중혁보다는 배명훈이 조금 더 이에 가깝다. 그렇다고 배명훈의 소설이 모두 SF로 귀속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진면목이 잘 드러나는 작품은 저항문화의 뮤즈로서 ‘나꼼수’ 같은 인터넷 방송과 작가들의 창작 의욕을 불러일으켜주시는 이 땅의 각하들에 대한 헌정소설집 『총통각하』와 그의 문화이념의 정처인 『안녕, 인공존재』를 꼽을 수 있다.
 장르/문학작가 배명훈은 사실 「‘슐리펜 플랜’ 논쟁의 전략 사상적 기초」(2007)란 석사학위논문을 쓴 외교학 전공자이기도 하다. 논문은 제1차 세계대전의 기원을, 철도를 통한 기동전에 주목한 슐리펜(Alfred Graf von Schlieffe)의 전략을 분석하고 있는 글이다. 근대인들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은 물론 삶을 틀을 바꾸고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철도를 현대전의 핵심요소로 파악한 슐리펜과 그의 플랜에 관한 논란들을 추적, 정리하는 창의성과 정치공학이 돋보인다. 우수논문상을 받을 정도로 그의 정치학에 대한 감각이 확실히 수승한 바 있다.
 「변신합체 리바이어던」은 정치적 상상력과 SF가 합체된 배명훈 문학의 한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알다시피 리바이어던(Leviathan)은 괴물이다. ‘욥기 41장’에 등장하는 바다괴물인데, 악어라는 설도 있다. 전설의 괴물 리바이어던은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에 의해 국가를 의미하는 정치적 은유가 되었고, 배명훈은 이 상징을 문학의 소재로―곧 변신합체로봇으로 전유한다.
 궤도연합군 사령부가 기괴한 합체로봇을 개발하고, 이 합체로봇은 외계종족 ‘기간토기구타’ 와의 전쟁에 투입돼 성공을 거둔다. 합체로봇의 숫자가 많을수록 효율성과 파워가 배가된다는 이른바 나치오 시너지(Natio Synergy) 효과로 인해 로봇은 무려 299명의 대표 조종사들이 조종하는 거대한 괴물로 발전한다. 기체 이름이 리바이어던이고, “조종실 한쪽에 세련된 필체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elum omntium contramnes)’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276)다는 점에서, 또 조종사들 간에 조성된 파벌 가운데서 궤도 연합군 제3군사학교 출신인 170명이 일사불란하게 단 하나의 의견을 내놓는 다수당으로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짐작된다. 총 299명이 대표조종사와 170명으로 구성된 파벌은 우리 제19대 국회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무뇌아처럼 모든 판단이 정지된 채 단 하나만의 의견을 내놓는 170명의 조종사를 제3군사학교 출신으로 설정한 그 위트에 폭소가 터져 나오지만, 의도가 너무 직접적이어서 소설의 “음성변조”의 효과가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 한계 아닌 한계이겠다. 그런데 한계가 노출되는 순간 슬쩍 작은 반전이 일어난다. 수많은 이들이 모여 갈등을 일으키는 합체 리바이어던의 진정한 목적은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 리바이어던이 필생의 각오로 때려죽인 우주괴물이 지구인들을 도우러온 구세주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쟁에 참여한 조종사로 추정되는 화자는 이상의 이야기를 폭로하면서 꼭 ‘음성변조’를 해달라 부탁하며 인터뷰를 마친다.
 「변신합체 리바이어던」이 선보인 SF와 정치공학의 변신합체는 『총통각하』에서도 여전하다. 총통의 유신 치세가 싫어 150년 동안 동면을 반복하는 과학자 부부 이야기로 로빈 윌리엄스(Robin Williams) 주연의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과 제목이 흡사한 「바이센테니얼 챈슬러」, 주요기관의 요직을 모두 차지해버린 총통 각하 치세의 낙하산 인사를 낙하산 부대의 공중 강습 과정으로 풍자한 「새벽의 습격」 등등이 그 예다.
 그렇다고 그의 상상력이 마냥 정치와 풍자의 서사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술의 정체성과 서구 형이상학의 핵심인 데카르트(R. Descartes)의 대명제를 탁월한 은유와 지적 글쓰기로 빚어낸 「안녕, 인공존재」가 대표적이다.
 천재적인 제품개발자 신우정 박사가 “데카르트(1596~1650)의 방법적 회의(懷疑) 공법으로 디자인”한 정체불명의 인공존재를 남겨놓고 자살한다. 그가 만든 인공존재는 정의나 상품화가 불가능하고 그 용도조차 파악할 길 없는 불가사의한 발명품이었다. 독자와 대중으로 향하는 통로를 차단하여 예술이 상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한 모더니스트들처럼 신우정의 발명품 역시 기업의 상업적 악용을 막으려는 과학자의 자존심 같은 것이었다.(최원식, 『문학』, 소화, 2012, 252~253쪽) 용도나 효용을 알 길이 없는, 따라서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인공존재의 무용성과 비실용성은 흡사 근대예술을 연상케한다. 신우정의 애인이었던 이경수는 그런 인공존재를 가리켜 “이건 진짜 예술이라고 불러도 됩니다. 쓸모가 하나도 없거든요.”라고 말해 이같은 추측에 힘을 실어 준다. 그러나 상품화와 개념화로부터 자유로운 이 인공존재의 정체는 의미가 계속해서 지연되고 기표들이 미끄럼을 타는 경계해체시대의 수수께끼 또는 배명훈이 독자들에게 던져준 퀴즈이기도 하다.
 모더니즘이 배척한 B급 대중예술들―SF․코미디․추리소설․영화―들이 ‘예술’로 거듭나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팝아트 같은 소설들은 김중혁이나 배명훈 등 소수의 작가들에게만 국한된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미적 현상이 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김중혁과 배명훈의 뒤를 잇는 사례가 또 있다. 이번에는 SF가 아니라 호러와 추리소설을 문단문학으로 전유하고 있는 최제훈이다. (조성면, 계간 『오늘의 문예비평』 2013 가을호, 특집-한국문학에 장르문학을 허(許)하라―김중혁․배명훈․최제훈의 경우, 6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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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계간 [오늘의 문예비평] 2013년 가을 제90호 특집은 [이야기 문학의 새로움은 어디에서 오는가?]로
(불)가능한 이야기들의 역사 - 전성욱
한국문학에 장르문학을 허하라 - 조성면
언어 틈틈이 언어수줍음 - 조효원
장르혼합, 패러디의 쇠퇴와 패스티시의 약진? - 이택광
등의 글이 실렸습니다.

이중 조성면 교수의 글은 김중혁, 배명훈, 최제훈 작가를 중심으로 장르문학에 관한 글을 실었는데요. 그 중에서 배명훈 작가님의 글만 인용을 해보았습니다.

p.s 여기에는 박가분님의 '장편연재비평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제3회)-고유명으로서의 레닌'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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