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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자 배명훈님을 만나다

참가 : 배명훈, 아프락사스, 진아
정리 및 기사 : 아프락사스






거울에 오는 독자들 중에서 배명훈을 모르는 독자는 거의 없지 않을까? 작가가 되기 전에는 SF 팬덤과 별다른 인연도 맺지 않았으면서도 ‘과학기술 창작문예’ 당선을 통해 데뷔해 이름을 알리는 ――― 어찌 보면 정석에 가까운 ――― 방식은 한국 SF계에서는 그 자체가 이례적인 일로서 주목을 받을만 했다. 이후 《환상문학웹진 거울》 ‘시간의 잔상’ 필진으로 들어와 거의 매달 글을 올릴 만큼 왕성한 창작력을 선보이더니, [제3회 과학소설창작문예 수상작품집](배명훈 외, 동아사이언스, 2006년 1월), [누군가를 만났어}(김보영 외, 행복한책읽기, 2007년),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곽재식 외, 황금가지, 2008년 7월) 등의 단편선에 작품을 수록하고, 잡지 《판타스틱》, 《크로스로드》, 《글틴》, ‘네이버 오늘의 문학’ 등에 연이어 작품을 발표하며 SF 팬층을 사로잡았다. 이후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연재하고 오멜라스에서 출간한 [타워](배명훈, 오멜라스, 2009년 6월)로 SF 팬덤만이 아닌 일반 독자들에게도 배명훈을 알렸다. 그후 문예지에 발표한 첫 작품 {안녕, 인공존재!}로 제1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해 다시 한 번 작가로서 역량을 보여주었다.

배명훈님이 거울에서 진행했던 인터뷰들

배명훈님과의 대담
배명훈님 자작 인터뷰
누군가를 만났어 - 배명훈 김보영 박애진을 만나다 1/2
누군가를 만났어 - 배명훈 김보영 박애진을 만나다 2/2
배명훈 특집 기획 ① 독점 인터뷰 - 작가 배명훈을 만나다 1/2
배명훈 특집 기획 ① 독점 인터뷰 - 작가 배명훈을 만나다 2/2

[타워] 출간 이후 곳곳에서 20번이 넘는 인터뷰를 하고, 거울에서도 이미 여러 번 인터뷰를 한 배명훈을 다시 찾게 된 건 거울에서 한 마지막 인터뷰 이후 배명훈 님의 근황에 두 가지 중요한 소식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거울에서도 이미 거울 단신(링크)을 통해 소개되었던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 소식, 그리고 배명훈님의 새로운 단편집, [안녕, 인공존재!]의 출간 예정 소식이었다. 경사가 두 가지나 겹친 덕에 여기에 대한 배명훈님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인터뷰는 햇볕이 유난히 좋던 모월 모일, 홍대의 모 카페에서 이루어졌다. 인터뷰는 배명훈님과 진행보조 진아님, 그리고 인터뷰의 진행자이자 기록자인 아프락사스가 함께 했다.




▲명훈님 (꽃보다 작가? ^^)


작가 배명훈이 말하는 SF적 상상력

공교롭게도 인터뷰 진행자는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에 어느 전공 수업에서 [타워]로 발표를 진행했었다. 인터뷰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대학 수업 교재로 만난 타워

아프락사스(이하 아프)        개인적인 질문으로 시작해도 될까요? 얼마 전에 제가 [타워]로 발표 수업을 진행했었요. 본격적인 작품 분석에 들어가기에 앞서 SF를 ‘과학적 상상력을 이용하여 경이감을 선사하는 장르’라고 정의하면서, [타워]는 사회과학적 상상력을 이용하여 권력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소설이니까 충분히 SF라고 불릴만하다는 주장을 했거든요.

그랬더니 발표 후에 선생님께서 SF가 그런 장르라고 한다면, [타워]는 SF가 아니지 않겠느냐, 하시더라구요. 소설에서 차용된 권력 개념들이 정치학계에서는 그렇게 참신하다 보기 어려운 견해이고, 문학 쪽에서도 조지 오웰 같은 사람들이 충분히 써먹었던 방식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소설이 기존 소설의 문법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어떤 참신함을 가져다주겠느냐는 거죠.

배명훈(이후 명훈)        독자들이 참신하게 생각하던데요 (웃음) 그런데 SF에 대한 정의를 그렇게 내려놓고 그렇게 질문을 하면 그렇게 되죠. SF에 대한 정의가 그게 아닐 수도 있어요. 꼭 경이감과 참신함을 줘야 하는 장르는 아닐 수도 있는 거죠. 뭐라고 해야 좋을까… 사실 ‘SF 아니에요’ 해도 되요 (웃음)

출판사 쪽에서 뭔가 최초다, 신선하다 하고 마케팅을 하면, 그 수업을 들었던 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출판사에서도 글의 내용과 상관없이 어떤 식의 구성이든 발랄하고 참신하다고 쓰는 게 되게 이상해요. 발랄함과 참신함 다음의 홍보문구는 없나.

진아        그런데 그건 질문부터 문제가 있네요. ‘전쟁과 평화’ 같은 전쟁을 다룬 훌륭한 소설이 있는데, 더 이상 전쟁에 대한 소설을 쓸 필요가 있겠는가, 라거나, 그런 식으로는 이 세상에 나온 작품들에 대해 다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명훈        근데 {엄마의 설명력} 같은 경우에 거기서 제가 가져온 과학 이론이 천동설과 지동설이잖아요. 그건 전혀 참신한 이론이 아니지만 그걸 써도 되는 것 같아요. 오래된 걸 쓴다고 해서… SF매니아들은 뭘 갖다놔도 비슷한 걸 찾아내잖아요. 실제로 그렇지는 않아요. 20년 전에 누가 했던 소재를 다룬다고 해서 똑같은 글은 아니에요.

[타워] 같은 경우는 그냥 정치학 이론을 가져온 게 아니라 현상이 있어요. 2008, 2009년 당시 한국 사람들이 느끼던 현상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오래된 현상이 아니고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던 이야기고, 이걸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이론을 접목하는 거니까… 학문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오래된 이론이라도 그게 실제 일어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이라면 낡았다고 하지 않죠. 어디서 본 개념을 가져왔다 해서 참신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저는 요즘은 구상 중인 소재를 다른 사람에게 던져줘도 그 사람이 그걸로 글을 쓰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제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글은 절대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예전처럼 소재를 숨기지도 않아요. 그걸 줘봐야 내가 쓰려는 소설을 못 써요. 소설은 작자의 인격이 개입되기 때문에, 똑같은 소재에 똑같은 배경, 똑같은 캐릭터를 가르쳐줘도 똑같은 글이 되진 않아요.

진아        거울 소재별 앤솔러지만 해도 흡혈귀나 고양이라는 같은 소재에 대해서 다른 단편이 나오잖아요.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가 없다는 건 성경에도 나오는데. 소재가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고 주제가 이야기의 전부도 아니잖아요. 어떤 식으로 변주하고 어떤 식으로 자기만의 요소를 넣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작가 배명훈이 말하려고 하는 것

아프        같은 소재를 가지고 각자가 하려는 이야기가 각자 다르다는 거군요. 그런데 명훈님 소설에 대운하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요?

명훈        그래요? 몇 번 안나왔는데…        

진아        몇 번 안나왔다고 하셔도 명훈님 소설이 워낙 많아서요. 그렇게 느낄 수도 있어요. 세 편이면 적은 건 아니라서. 그 쪽에 특별히 관심이 있으신가 물으신 거죠? 저는 가끔 명훈님 소설 보면서 부끄러울 때가 있어요. 이렇게 사회 문제를 다룰 수 있어야 하는데. 너무 다뤄본 적이 없어서.

아프        그 풍자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데… 예비군 로봇이 네이버에 실렸을 때 '이 작가는 좌빨이다'라고 하는 리플이 있었잖아요. 정말 많이 웃었는데…

명훈        아, 봤어요. 좀 더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또 무슨 보수 쪽에서 되게 유명한 사이트래요. 거기에 ‘좌빨 작가 출현’하고 올라왔길래. 그래서 기대했거든요. 이 사람이 널리 퍼뜨려주길 바랐는데, 너무 잘나가는 사이트라 금방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서 묻히더라구요.

진아        그만큼 뚜렷한 자기 정체성이 보이는 게 부럽다고 생각해요.

아프        저도 그게 되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단편적으로 던지는 대신에 아예 대놓고 써보시면 좋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명훈        대놓고 쓴게 있잖아요. {위대한 수습}이 그렇게 쓴 건데.


▲명훈님의 {위대한 수습}이 수록된, [타로카드 22제]

진아        《판타스틱》에 실렸던 단편이 독재자를 소재로 한 단편이기도 했죠.        

명훈        거기에서도 대운하가 나오는군요. 배가 인천에서 들어왔나요, 부산에서 들어왔나요 하면서 나오죠. 제가 글에 그런 소재를 집어넣는다고 해서 모두 그걸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중요하게 다루는 경우가 있어요. {예비군 로봇}에서는 대운하가 중요한 역할을 해요. 대운하를 만들었다가 해체해야 하는 바람에 중장비 기사 자격증을 남발하게 되요. {위대한 수습}에서는 총통이 왜 운하에 집착하는가에 대해 다뤘고요. [타워] 때는 그 내용에 대해 논쟁할 일이 많을 줄 알았는데 없어서 심심했다고 해야 하나. 가끔 인터넷 돌아다니면서 어디 싸움 안나나… (웃음)

아프        SF 비평이 썩 활성화되지 않아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독자들 사이에서 [타워]에 관한 논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건 [타워]의 주제에 독자들이 별 주목을 안했다는 걸까요?

명훈        그렇다기보다, 제가 바랐던 것 중 하나는 이걸 계기로 뭔가 다른 이야기들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는데, 타워 자체에 대한 감상 단계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게 안좋다는 건 아니지만, 이런 책은 나왔고 이런 이야기를 했고, 넘어가자. 이렇게 된 것 같다는 거죠. 거기에서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는 출발점이 되는게 아니라. 타워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독자들이 모두 동의해야 하는 의견은 아니거든요. 그냥 내 의견인 것도 있는 건데. 거기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생길 줄 알았는데. 무슨 이야긴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어요. 무슨 이야긴지 모르겠어서 재밌는지 모르겠다가 되는 거죠. 그런 사람도 꽤 있어요.                        

진아        이젠 작가 인터뷰나 팬 미팅보다는 토론회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토론회라고 하면 올 사람도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한 1, 2년 지나면 그렇게 토론회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SF나 판타지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도 오래되었죠. 초기에는 SF나 판타지에 한국식 이름이 나오면 억지로 한국적 요소를 집어넣은 것 같은 위화감을 느끼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단계에서 벗어난 것 같아요. 선구적인 작품이 있었죠. [양말 줍는 소년](김이환, 황금가지, 2007년 12월)도 그렇고 [타워]도 그렇고. 이제야 베이스가 깔린 거고, 이제야 독자들이 우리 식의 SF나 판타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된 것 같아요. 이제 더 많은 독자들이 그것을 편하게 받아들이고 당연하게 생각하면 더 많은 문제 제기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바람.

아프        토론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저도 많이 해요. 예전에 합평회에서도 장편 합평회를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었잖아요. 합평회에서 하기 어렵다면 토론회를 해보고 싶단 생각도 들어요. 막상 실행에 옮기려면 업무가 생기고 실무자가 필요하니까 어려워서 그렇지.        

진아        실무자만 있다면 전 언제든지 추진할 마음이 있습니다. (웃음) 문제는 여기서 모두가 침묵한다는 거죠. (웃음)        

아프        저도 하고는 싶은데 일을 감당할 역량이 안되어서… (웃음) 명훈님도 지금은 합평회 안 나오시지만 토론회라면 참여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SF와 현실의 관계에 대하여

아프        요즘은 리얼리즘의 본산이라는 창비에서도 SF를 내죠.

명훈        그쪽에서 SF 자체를 싫어하진 않아요. 거기 실린 글에 대한 평가를 봐도 '아 이런 황당한게 있다니' 하는 식의 평가는 잘 나오지 않는 듯 해요.

아프        예전에 복거일이 한번 흔들어놓기도 했고, 이미지는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 쪽에서 SF라고 쓰는 글들이 이상해서 그렇지.

명훈        그러니까 그게 문제인 거죠 (웃음) SF의 기준에서 봤을 땐 이상해보이는 글들이 나오는게 문제지. 그런 걸 쓰려고 하는 시도들이 나쁜 건 아니죠.

아프        그 사람들은 SF를 나름 현실을 해석하기 위한 도구로 쓰는 거라서, 그런 건 SF 쪽에서도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명훈 님 소설도 SF적 상상력을 이용해서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요. 어쨌든 소설은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라서. 그런데 자꾸 장르 공식에 천착해버리면…        

명훈        저도 그런 생각이 드는게… 리서치를 안해봐서 모르겠지만, 장르의 공식처럼 보이는 미국 원작들을 쓴 사람들도 나름 자기 현실을 이야기하기 위해 그 공식들을 만들었을 거예요. 우주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더라도 그건 2차 대전처럼 자기들이 방금 겪은 전쟁들에 대한 이야기를 분명히 하는 걸거고. 그런 게 의도들도 나얄도 들어가는 부분이 분명히 있고요.

[아바타](Avatar, 2009)에서도 그런데, 외계 행성에 주둔한 군대가 해병대잖아요. 그건 되게 미국적인 현상이거든요. 그럴 리가 없어요. 거기는 영국군 미국군 이렇게 흘러가니까. 영국이 해외에 파병할 때는 배를 타고 가니까 당연히 해병대가 가게 되잖아요. 공격의 주력이 되는 군대를 해병대라고 표현하게 되는 건데, 우주를 건너 다른 행성에 가는 군대도 해병대일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해병대식으로 머리도 굳어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게 우리에게는 클리셰지만, 이 사람들에게는 실제 현실인 거죠. 지금도 이라크에 파병된 군대는 육군이 아니라 해병대에요. 그 사람들에게 해병대라는 건 방어군이 아니라 공격의 주력군인 거죠. 그건 아마 우리 나라도 그럴 거예요, 해병대는. 그래서 그 사람들이 해병대를 보내고, 스타크래프트에서도 마린이 나오는건 분명한 현실인 거죠.

그런 식으로 의도하지 않아도 당연히 받아들여지는게 있는 건데, 그걸 수입하는 입장에서 맥락을 보지 않고 그대로 텍스트만 떼서 쓰게 되면 우리 현실과는 관계없는 공식이나 클리셰가 되는 거죠.

아프        명훈 님이 예전에 [디스트릭트 9](District9, 2009) 리뷰에서 SF를, 서구의 것을 그대로 수용하지 말고 우리식으로 해석해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예전에 정성일이 듀나의 소설을 보고 ‘동네 SF’라고 표현한 것과 맥이 닿는다고도 생각하는데… 명훈님은 차근차근 우리 현실에 맞는걸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명훈        하게 돼있다고 생각해요. [디스트릭트 9] 리뷰에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한게 아니라, 영화 감독이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려면 그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죠. 한국에서 [디스트릭트 9]을 만들려면, 그만큼 한국적 맥락에 맞는 디테일을 채우지 않으면 그만큼이나 황당하다는 소리를 듣게 될 테니까 주한미군 같은 맥락을 가져오게 될 거라는 거죠. 그렇게 디테일을 잘 만들수록 좋은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지요.

아프        거기에 대한 예시로 {예비군 로봇}을 드신 적이 있잖아요?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로봇이라는 소재가 익숙치 않기 때문에 공사용 기계라는 소재를 끌고 오셨다고. 그게 잘못하면 세계관이나 맥락의 문제가 아니라 소재 차원의 문제로 축소되어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단계적 수용에서 중요한 건 우리 현실과 연결되는 소설을 써야 한다는 거잖아요? 결국 맥락이 중요하다는 건데 결국에는 소재를 잘 써야 한다, 뭐 이런 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명훈        맞아요. 동의해요. (웃음) 그런데 예비군 로봇 이야기를 했던 건, SF 소재를 독자들이 받아들이는 차원에서 이야기한 것 같아요. 미국에서는 우주왕복선을 소재로 이야기를 써도 SF가 아닐 수 있잖아요. 심지어 역사소설로 달 탐사 이야기를 쓸 수 있는데. 우리에게는 그게 되게 먼 이야기인 거죠. 나로호 이야기로 글을 써도 SF라고 할 걸요. 우리 독자가 그걸 잘 모르니까… 과학 문화라고 해야 할텐데, 그걸 이미 다 알면 SF가 아닐 텐데 거리가 머니까 최첨단이라고 생각해요. 나로호는 절대 최첨단이 아닌데. 최첨단이라고 생각하면 그 간격 때문에 SF라고 생각하게 될 소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한 이야기였어요. 한국에서 로봇물을 쓰면 황당한 SF라는 이야기라는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높고… 건담같은 갖춰진 로봇 말고 그보다 전단계의 로봇을 써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 이야기였어요.

아프        오락물로 소비되는 대신에…

명훈        오락물로 소비되어도 되는데, 그게 문제가 아닌 거죠. 건담 같은 로봇을 우리나라에서 쓰면 ‘수입 했다’는 이야기를 하거나 일본에서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차용했다는 소리밖에 못듣는다는 거죠. 독자들에게는 그렇게 보일 거라는 거예요.

진아        추리의 클리셰 중 하나가 밀실 사건이잖아요. 추리를 잘 못 읽어본 독자들은 해외의 유명한 밀실 살인 사건 소설을 읽은 다음에 국내 작가가 밀실 살인을 소재로 쓴 추리 소설을 보고는 ‘이거 혹시 따라한 거 아니냐’는 식의 문제를 제기하는 그런 경우들이 생기더라고요.

명훈        로봇이라는 게, 우리에게 익숙한 데서부터 한발 더 나간 정도는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어요. 그래서 중장비 시리즈를 써 볼 생각이었죠. 포크레인도 로봇처럼 무척 정교하게 작동할 수 있어요. 계란을 깬다든지. 거기서 약간 더 나간 정도라면 너무 멀리 간 것도 아닌 것 같고… {크레인 크레인}도 그런 맥락이에요. 배경을 이상한데 가져다놓긴 했어도 크레인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없잖아요. 우리나라에 되게 많은 건데.


문단과 SF 팬덤의 차이 - {안녕, 인공존재!}에 대한 양측의 온도차

이쯤해서 명훈님의 젊은작가상 수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보기로 했다. 먼저 수상소감을 여쭈었다.

진아        아, 수상 축하드려요. 그런데 되게 고무적인 것 같아요. 평 보니까 대상 후보에도 계속 오르셨었고. 사실 받아들이기 쉬울 것 같지 않은 작품인데 의외로 받아준 거기도 했고. 방식을 보니까 젊은 비평가들이 먼저 한 번 걸러낸 것 같더라구요. 그런데 이 책 자체가 젊은 작가와 젊은 비평가들을 위한 책 같아요. 참여한 비평가들도 다들 젊은 사람들이고, 사진도 작가 사진은 없는데 비평가 사진은 있더라구요.

명훈        사진 넣는게 더 안좋은 건데. 벌칙이잖아요(웃음)

아프        아, 그래요?

진아        사진 넣는걸 싫어하는 작가들이 많아서…


▲언제나 얼굴은 가려드립니다. ^^


명훈        그런데 그렇게 상을 받게 되면 제게 유리한 점이 있죠. 이런 글을 써도 되고 저런 글을 써도 되니까요. 작가로서는 그게 가장 좋죠.

아프        명훈 님은 여기서도 저기서도 다 작가로 받아들여지는게 좋아요.

명훈        문학동네에 낼 때만 해도 이런거 내면 사람들이 실어주나 하면서도 그 쪽에서 먼저 청탁했으니까, 그러고 말았는데… 이렇게 받아들여지고 나면 내 색깔을 굳이 그 쪽에 맞추지 않고 내가 평소 하던거 해도 되잖아요. 문예지에서 청탁이 들어와도 ‘여기는 문예지니까 문예지에 맞게 써야지’ 하는 압박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그렇다고 장르 쪽에서 '그 쪽으로 가려나?' 하는 의심을 안받아도 되고요. 평소에 쓰던 글을 쓰면요.

아프        심사평은 어떻게 읽으셨어요? 전 심사평이 그리 탐탁치 않아서…

명훈        저는 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던데요.

아프        박완서 님 평을 보면 호의적으로 쓰시긴 했는데, 과연 소설을 제대로 이해한 채 쓴 걸까 싶어서요.

명훈        SF라는 배경을 다 이해하고 썼기를 바라면 안되죠. 그건 말이 안되는 거고(웃음)

아프        내가 잘 모르는거 나와서 좋았어-라는 느낌이라서.

진아        그런 태도라면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 아닌가 싶어요.

명훈        이상한게 나와서 신기해가 아니라 이상한게 나와서 좋았다는 평들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우리가 그쪽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 우리쪽 잘 모르고 우리쪽에 대한 거부감이 심할 거라는 생각에 비하면 그런건 없었던 듯 해요. 오히려 더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전 {안녕, 인공존재!} 같은 경우는 장르 매체에 실렸으면 오히려 묻혔을 거라고 생각해요. 받아들여지는게…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쓴대로 안받아들여질 글이라서요. 작가라거나 철학자… 자기 존재에 대해 고뇌해본 사람들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그런 쪽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일반 독자들에게서는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적절한 매체에 갔다고 생각해요. 거기는 철학 공부한 분도 많고, 그런 주제에 대해 고민했던 분도 다른 데에 비하면 비중이 높고. 그런게 재밌어요. 장르 매체에 내면 그냥 묻힐 글들인데 저쪽에다 가져다 놓으면 더 읽힐 글들… 저 쪽에서 계속 글을 쓰시는 분도 이 쪽에 가져오면 더 잘 읽힐 글도 있는데…

이거 나오고 나서 날개님이 여기저기 소개하셨잖아요. 배명훈 작가가 쓴 글 중에서 가장 좋은 글은 아니지만…이라고 하셨더라구요. 저는 다시는 이런 글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썼는데… (웃음) 저는 결과물이 잘 나왔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날개님이 어떤 글을 제 글 중 가장 좋은 글로 꼽으셨는지가 궁금해요 (웃음) 날개님에게는 어떤 답이 나올까.

진아        사람마다 다 다르겠죠. 명훈님 글을 많이 봐온 독자라면 자기 나름의 명훈님 베스트가 있을 거예요. 사실 다른 분들도 그 비슷한 이야기는 많이 하셨어요. (웃음)

명훈        저도 많이 들었어요 (웃음) 적절한데 간 것 같아요. 저쪽에서는 오히려 제가 예상했던 것 이상의 평가를 해서 깜짝 놀랐는데… 도대체 왜 상을 주는 거지 하고. (웃음)

아프        그 사람들에게는 그런 식으로 존재에 대해 접근했던 작품이 없었나봐요.


▲명훈님의 수상작 {안녕, 인공존재!}가 실린 [2010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김중혁 외, 문학동네, 2010년 3월). 진아님과 진행자의 책이 한 권씩이다.


SF 작가의 문학상 수상 ――― 문단과 SF팬덤의 관계에 대하여

아프        그런걸 보면 확실히 저 쪽에서도 SF에 대한 관심이 있긴 한가봐요.

명훈        네. 관심이 있긴 한데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한국에 SF작가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채 관심을 갖고 있다는 말이 맞겠죠. 문예지나 수상작모음집 찾아보면 SF들이 들어가 있어요. 그 사람들이 SF에 대한 거부감을 갖는 게 아니라 그냥 잘 모르는 것뿐이에요.

진아        읽을 기회가 없을 수도 있고요. 저도 우리나라 소설을 잘 못 읽는게 그쪽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책도 쌓아놓고 못 보고 있으니까 그런 거죠. 피차 비슷하지 않을까 해요.

아프        사실 저는 두 진영이 하나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해요. 두 진영이 서로 구분되어야 할 이유가 없죠. 저번의 보라님 인터뷰 때도, 외국에서는 장르문학이니 문단문학이니 하는 식의 구분이 그렇게 명확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상당히 와 닿았었어요. 그래서 저는 SF 팬덤들이 가끔 ‘이 작품은 SF가 틀림 없다!’고 외치는 모습이나 출판사에서 책에다 굳이 판타지 소설, SF 소설 하는 식으로 장르명을 붙이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해요. [타워]도 SF라는 말은 뚝 떼버리고 소설이라고만 소개하는 걸 보고 괜찮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명훈        SF라고 하면 안 팔리니까 그런 거죠. (웃음) [타워]는 오멜라스에서 그렇게 포지셔닝을 해줬어요. 그게 잘 맞아떨어졌죠.

진아        오슨 스콧 카드가 쓴 [당신도 해리포터를 쓸 수 있다](올슨 스콧 카드, 송경아 옮김, 북하우스, 2007년 9월)에 보면 장르 규정에 대한 이유가 나와요. 거기 보면 ‘서점의 어디에 꽂혀야 할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라는 현실적인 이야기도 나오거든요.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때로는 그런 것도 필요하죠.

지금은 약간 서점보다는 출판사에서 규정하는 쪽이긴 한데 다행히 오멜라스가 주구장창 SF만 내온 곳이고, 명훈이 여태 써온 글이 있으니까 그게 나름의 효과는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내놓은 덕에 일반 독자도 잡을 수 있고 SF 독자도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선 것 같아요.

명훈        벽 자체가 있긴 해요. 작지는 않은데, 생각했던 만큼 절대 넘지 못할 벽은 아니에요. 은근히 벽 사이를 통과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넘어서 그렇지.

진아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꼭 그렇게 통합이 되어야 하는가. 어떤 작가가 이 쪽 저 쪽에서도 통용되면 그건 그대로 좋은 거고. 다만 거기서 받아들여지냐 마냐 하는걸 너무 신경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SF작가가 굳이 로맨스 장르까지 소화할 필요는 없듯이. 이건 SF고 이건 리얼리즘이고 이건 환상문학이고…

명훈        예전에 ‘미수다’(미녀들의 수다, KBS 프로그램)에 축구 이야기가 막 나왔어요. 한일전, 라이벌전 이야기가 나왔는데, 외국 애들에게도 그런 거 있냐고 물어봤어요. 폴란드 애가 ‘우리는 독일하고 축구하면 한일전처럼 그렇게 한다’고 한참 열을 내서 이야기하는데, 독일 애가 ‘우리는 폴란드를 라이벌로 생각 안하는데요.’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웃음) 지금 딱 그런 상태 같아요. 장르 쪽에서는 저쪽도 우리를 라이벌로 생각해서 뭔가 대결 구도가 그어져 있겠거니 생각하는데, 저 쪽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선을 긋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진아        사실 문단 쪽에서 SF를 어떻게 본다고 누가 확실하게 말한 것도 아닌데… 물론 그런 평론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전체가 그런 건 아니거든요. 꼭 거기서 여기 글을 봐야 하는 이유도 없죠. 거기 글 보기도 바쁠 텐데. 제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장르 소설을 다 보지는 않듯이요.

SF를 쓰고 싶은 작가의 경우, SF만이 표현할 수 있는 글이 있고 SF로만 갈 수 있는 경이감이 있죠. 하지만 다른 경우도 있을 수 있어요. 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는데 쓰고 보니 SF의 문법과 겹치더라는 경우도 있고요. 아프락사스님이 말씀하시는 경우가 후자에 해당할 텐데, 전자에 해당하는 작가들도 상당히 많거든요. SF작가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작가들이 꼭 SF 문법을 무시하고 SF 아닌 것도 받아들여야하고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독자가 적어서 안타깝기는 하지만. 독자들을 끌어오기 위한 연구 차원에서라면 모르겠지만.

명훈        사실 저쪽 독자 끌어와봐야 별로 안 돼요.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일반 독자들을 추구했으면 좋겠는데… 장르 브랜드들에 대한 제 불만은 그거예요. 왜 장르 독자의 숫자를 세냐는 거죠. 이 장르는 미국에서도 SF 팬덤에게 파는 장르가 아니에요. 어차피 일반 독자들을 상대로 하는 장르에서 왜 굳이 장르 독자의 숫자를 세냐 하는 거죠. 아바타를 1천만명이 봤는데 그 중에 100명 중에 한 명만 봐도 10만부를 팔릴 수 있는 건데. 한국 사람들이 정말 SF를 싫어하나면, 전 엄청 좋아한다고들 생각하거든요.

진아        오히려 SF의 진입장벽이 높다, SF에 대해 외부인들이 편견을 갖고 있다고 SF 쪽에서 정의를 자꾸 하는 것 같아요. SF는 유치하다고 생각해, 어렵다고 생각해, 하고 자꾸 선언하는건 SF 쪽이지…

명훈        맞아요 (웃음) SF 공부하는 분들도 많고 SF를 쓰려고 연구 중인 작가도 많고 실제로 쓰는 사람도 꽤 많고… 그게 정리가 안되고 우리가 다 몰라서 그런 거지…        

아프        뜻밖에 외부에서도 SF에 대한 좋은 논문들이 많이 나와요. SF 팬덤의 폐쇄성에 대해 지적한 논문을 보고 많이 놀랐었는데..

진아        저도 [2010 젊은작가 수상작품집] 읽을 때 무척 긴장했어요. 장르 외 쪽 글을 읽은게 하도 오랜만이라서. 명훈 님 제외하면 대부분 처음 보는 작가였고. 그런데 첫 단편을 읽고 나니까… 좋은데 싶은 거예요. 그 분이 SF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는게 이해되더라구요. 그 뒤로는 쭉쭉… 재밌더라구요. 순문학도 읽어야겠구나 싶은데, 워낙 쌓인 책이 많아서…

아프        피장파장인 거죠. 그 쪽도 우리 안읽고 우리도 그 쪽 안읽고.

명훈        그게 장르 안에서도 똑같잖아요. SF독자가 추리를 전혀 모르는 것처럼. 저같은 작가에게 누가 ‘왜 추리를 안쓰냐’고 따질 수는 없는 거죠. 제가 개인적으로 좀비물을 안좋아하긴 하지만 그걸 쓰는 분들에게 ‘왜 당신은 그런 걸 쓰느냐’고 할 수는 없는 거죠.

명훈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른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사실 지금 장르 출판사라고 하는데서 SF를 다룰 수 있는 데는 없거든요. 장르 출판사라고 이름이 붙어 있으니까 SF가 자꾸 그 장르 브랜드로 할당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쪽은 사실 SF에 대해 전혀 몰라요. 순문학 쪽만 내던 출판사하고 별반 다르지 않아요. 거기에 할당이 되면 더 잘할 것처럼 여기는데, 그렇지는 않죠. 심지어 편집자들이 대놓고 ‘제가 SF는 별로 안읽었는데요.’라고 이야기를 하고 시작해요.

진아        사실 그렇죠. 창작 SF를 내는 출판사가 몇 안되고… 따져보면 생각보다 많긴 한데 안타깝게도 ‘없지는 않은데’ 수준이라.

명훈        글을 보고서 걸러내는 일이라는 게… 추리 스릴러만 맡아오던 분에게 SF를 맡긴다고 잘 하기는 어렵잖아요. 제가 이 단편집을 북하우스에서 다뤄서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좀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재밌다고 하는게… 어차피 다른데 가도 정말 내 생각에 맞게 하지는 않아요. 최소한 여기서는 다르다는걸 알고 있고 그래도 서로 맞춰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는 거죠. 좀 더 길게 보고 가자고 생각하는 거. 그 정도면 충분히 같이 일을 할 수 있죠. 어차피 없으니까 만들어가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렇게 암울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웃음)


▲논의가 진행되자 명훈님의 목소리를 더 잘 담기 위해 마이크를 바짝 들이대는 진행자.


SF 작가가 규정되는 방식 - 발랄한 상상력 이후의 단계를 생각하다

아프        하긴 그건 그 쪽에서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누가 어떤 작가보고 '왜 당신은 한국전쟁 가지고 글을 쓰지 않느냐'고 따지지는 않겠죠. 저는 SF팬덤도 슬슬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던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SF나 판타지 쪽 작가들이 '발랄한 상상력'이라는 프레임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을 때도 많은데… 왜 자신의 글이 그런 쪽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작가들이 SF를 가지고 뭘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덜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했던 거고요.

진아        그렇지는 않죠. 상대적으로 작가들이 약자라서 출판사 쪽에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서 그렇지, 어떻게 자기 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글을 쓰는 사람이.

명훈        ida님도 글을 발랄하고 통통 튀게 쓰거나 하지는 않잖아요. 그냥 재치만으로 쓴 글이 실제로 많지 않잖아요. 오히려 무거운 이야기들을 다루죠. 운명에 대한 이야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 이런게 많지. 오히려 개그를 쓰려는 사람이 더 드물죠. 그건 제 틈새시장이죠.(웃음)        

진아        지금까지 나온 거울 책이나 출판사 책을 봐도 발랄한 톤의 작품은 많지 않아요. 그래서 발랄함이라는게 재밌는 표현이라는 거죠. 그렇게 발랄한 작품은 드문데. 오히려 발랄한 글쓰기가 더 힘들어요. 세상에 심각한 일이 워낙 많아서.(웃음)        

명훈        정말로 글을 읽고 발랄하다고 평가하면 거기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는데, 읽기 전부터 발랄하다고 규정해버리니까.

아프        발랄하다는 말 자체가 뭘 의미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진아        아무래도 신인 작가들에게 기성 작가들이 요구하는게 재기발랄함 같은 거니까.

명훈        책을 팔려는 입장에서 독자들이 ‘재밌고 잘 읽히는 글이다’라고 생각하게 하려는 건데, 문제는 그 다음 단계가 없는 거예요. 발랄하고 참신한 단계 이후의 SF, 판타지를 위한 수식어가 있느냐.

진아        작가들의 깊이 있는 작품 세계를 집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광고와 전략도 필요한데, 계속 신인 작가 취급을 하려 하는게 문제인 거죠. 물론 신인 작가들이 많긴 하지만.

아프        그런가 하면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때면 늘 무슨 무슨 분야의 거장, 무슨 상 수상자 하는 식으로 거창하게만 소개하려고 하죠. 외국 작가들은 다 무슨 거장밖에 없어요.

진아        전 장르문학상 좀 생겼으면 좋겠어요. 전 젊은작가상이 생긴게 정말 좋은 취지라고 생각해요. 비평가들도 좀 뜰 필요 있고 작가들도 좀 더 알려질 필요가 있고.

명훈        이 쪽은 이런 노력을 해요. 이게 뭐냐면 처음에 데뷔하고 나서 거장이든 뭐든 그 단계까지 가기 전에 중간 과정이 없어요. 그걸 하는 거잖아요. 이런 건 길게 보는데가 아니면 하기 힘들어요. 상 하나 만들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진아        이런 상을 통해서 작가들의 위치를 정해주고, 독자들의 눈에 띄게 하는 거죠. 내년이면 또 6,7명 나올 테고.

아프        이게 뭐 문학상 하나 부여해서 책 팔아보겠다는 심사에서 만든 상이라면 굳이 6,7명씩 줄 필요가 없죠. 한 명만 대상 줘서 스타 작가로 띄우면 되는데. 그래서 저도 이 상이 굉장히 좋은 시도라고 생각해요.

명훈        이런 노력도 장르계에서 필요해요. 여건이 안되서 그렇다고는 하는데… 꼭 문학상이 아니더라도 신인 다음의 단계로 갈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그 길이 없어요.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길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걸 지금 다들 못한다고 핑계를 대고 있어요.


단편집 : [안녕, 인공존재!]

아프        책 나온 소감은 어떠세요? 두번째 책이잖아요.

진아        개인 단편선으로는 첫 책이니까. [타워]는 장편이고. 당분간 ‘첫 책’이 나올 때가 많아요. 첫 장편. [타워]는 옴니버스였으니까 (웃음)

명훈        그렇기는 한데 ‘첫 책’의 느낌은 누군가를 만났어 나왔을 때 그 기분을 다 냈어요. 책 나오면 좋긴 한데, 희석이 될만한 때 아닌가요. 지금 몇 년짼데(웃음) [타워] 때도 그렇게 이야기했었는데… 출판사에서는 ‘첫 책인데 좋으시겠어요’ 하고 저는 ‘좋긴 한데요 그 쪽에서 생각하는 만큼 좋지는 않아요.’했어요.

진아        명훈 님이 지금까지 쓰신 단편이 굉장히 많잖아요. 예전에 농담 삼아 그런 이야기 있었잖아요. 명훈님의 소재별 앤솔러지를 내보자. 군대 이야기도… 신 이야기도 들어갈 수 있겠고, 사람 많이 죽는 이야기 모음집이라거나 (웃음) 그런데 이렇게 한 권으로 묶게 된 계기나 순서는 어떻게 된 건가요.

명훈        단편집 처음에 기획할 때, 그런 걸 한번 뽑아봤어요. 어떤 식으로 나오나. 그런데 두 개가 나오는게 태반이고. (웃음) 끼워맞추려면 어떻게든 할 수 있어요. 출판사 의견으로 들어간 글도 있고, 제 의견으로 들어간 글도 있고… 그래서 저 혼자 구성했으면 이렇게는 구성 안했을 거예요. 그래도 들어보기로 한게, 북하우스가 원래 장르소설만 다루던 곳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야기하다가 굉장히 재미있는 걸 느끼게 되요. {매뉴얼}이나 {얼굴이 커졌다} 같은건 출판사에서 고른 건데, 그 두개를 보고 '어, 나라면 안넣었을 텐데?'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곳에 실었을 때 장르 팬들에게 반응이 좋았던 글은 아니었으니까요.

진아        {매뉴얼}이 황금가지 단편집에 실렸던 글이죠? 그래서 그것도 좀 의외였던 거죠. 다른 책에 실린 단편을… 물론 출판사 쪽에서 수락을 했으니까 들어갔을 텐데 좀 의외였던 거죠.

명훈        그쪽은 생각하는게 좀 달라요. 거기는 어디에 실렸던 단편을 모아서 수록한다는 식이잖아요? 우리는 한번도 소개되지 않았던 단편을 선호하고. 그 차이도 있고, 되게 재밌었던게 선정하게 된 계기랄까 그런거 설명해달라고 출판사에 그랬거든요. 독자들이나 평단에게 쉽게 받아들여질만한 글을 골랐다고 하더라고요.

진아        만약에 명훈 님이 단편선을 마음대로 구성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명훈        옛날에 타워가 다른 책을 내려다가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다시 쓰게 된 책인데, 그 때 모아놨던 것 중에 {예언자의 겨울}이랑, {크레다시크레다}은 들어갔을 거고. {예술과 중력가속도}라는, 예전에 합평회에 들고갔던 글.. 그리고 {누알}. 다섯 개를 모아놨던 때

명훈        그러니까 그쪽에서는 {안녕, 인공존재!}에 담긴 글들이 쉽게 받아들여질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제가 '다음에 책 내면 다른 걸 고르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는 제가 생각했을 때 쉽게 받아들여질만한 단편을 고르겠다고 한 거죠. 그 점에서는 저와 출판사의 생각이 같은 거예요. 그런데 눈이 완전히 다른 거죠. 그래서 재밌어요.

그리고… 사실 우리는 문예지에 실린 소설을 어렵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그 쪽은 그게 쉽고, 이쪽이 어렵다고 생각해요. SF 같으면 설정이 나올 때도 있는데… 물론 단편에서는 많이 안나오지만, 그걸 다 하나하나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초반에 무척 오래 걸린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하는지 알잖아요. 그냥 넘어가면서 읽는 건데. 서로 다른 면을 가진 사람들, 저도 그런 분들과 일하는 것과는 처음인데, 이런 거 되게 재밌어요 그 전까지 만나보지 못한 독자들과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책이 나오고 반응을 봐야 알겠죠.

아프        양측에서 서로 다른 독자층을 생각하는 걸까요?

명훈        그럼요.

진아        읽어온 글도 다를 거고.

아프        저는 단편들이 다들 뭔가 일관되게 뽑혔다고 생각하는데..

명훈        그렇죠. 뭔가가 있죠.

아프        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명훈        그건 결과론적인 거죠. 뽑아놓고 보니까 그렇게 된 건데… 제가 워낙 사랑 이야기를 많이 썼어요. 나중에 봤더니 절반 이상이 사랑이야기에요(웃음) 그 일관성이라는건 제가 봤을 때, 인물 쪽에 균형이 많이 가 있어요. 제가 뽑으면 세계 중심으로 많이 가거든요. {매뉴얼}이나 {얼굴이 커졌다}는 되게 캐릭터에 밀착이 많이 되어 있어요. 거기서도 그런 의도에서 고른 것 같아요.

진아        지금 나올 단편집에서는 아무래도 젊은작가상 수상작이니까 {안녕, 인공존재!}가 표제작이 된 거겠죠?

아프        제목 자체도 표제작에 괜찮은 제목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인공존재’가 아니라 ‘안녕, 인공존재!’라는게. 마치 인사하는 것 같잖아요. 그 외에도 전체를 포괄하기에도 가장 좋은 제목이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표지가 어떻게 나올지도 무척 궁금해요.

진아        {매뉴얼}은 잘못하다간 진짜 {매뉴얼} 같고, {엄마의 설명력}은 청소년 소설집 같고, {변신 합체 리바이어던}은 잘못하다간 SF 로봇물처럼 보이게 되고. {누군가를 만났어}는 이미 한번 표제작이었고. {안녕, 인공존재!}가 낯설면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에요.

명훈        편집자의 선택이 맞죠. 수상과 연관되서 이 단편집을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 그 안에 들어가는 작품은 어떻게 선정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있죠. 그건 존중해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편집자가 되게 좋아하세요. (웃음)

3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도 슬슬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명훈님의 현재 잡품 집필 상황에 대해 질문했다. 명훈님이 [타워] 이후 첫 장편을 쓰고 계시다는 것은 물론 명훈님의 애독자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그 외에 어떤 작품을 쓰시는지 여쭤보았다.

진아        요새는 어떤 거 쓰세요?

명훈        어디다가 {청혼}을 중편으로 개작해서 낼 거예요. 그거 하고 있고…

아프        앞으로 계속 문예지 쪽에서 발표하시는 건가요?

명훈        거기에서 계속 지면을 줘야 하죠. (웃음) 모르겠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지금 제 입장은 그래요. 제가 쓰고 싶은 글 쓰면 되고. 너 하지마-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뭐 가끔은 있지만(웃음) 가끔 인터넷에 올라온 평 보면 가끔 안좋은 평도 있지만 그거야 뭐 뭘 한들… 김연아도 안티가 있는데 (웃음)

이 질문을 마지막으로 인터뷰는 마무리하고 근처의 중국요리집으로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다들 긴 시간의 인터뷰 때문에 지친 상태였지만 식사 와중에도 장르문학, 작가로서의 미래 등에 대한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그 중에는 초짜 인터뷰 진행자에게 자극이 될만한 내용도 정말 많았다.

인터뷰 도중에 명훈 님은 ‘상을 타서 가장 좋은 건 내가 원하는 글을 마음껏 쓸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답하셨다. 작가의 입장에서 자신의 세계를 마음껏 펼 수 있다는 것만큼이나 좋은 일도 있을까. 인터뷰 내내 자신의 문학관을 개진하며 작가로서의 위치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명훈님의 모습은 진행자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었다.

인터뷰는 기본적으로 인터뷰하는 사람이 인터뷰 받는 사람의 속살을 파고 드는 자리이다. 따라서 인터뷰 진행자가 인터뷰 대상의 속을 잘 파고들수록 좋은 인터뷰 기사가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효과는 인터뷰의 독자들만이 아니라 인터뷰 진행자 자신에게도 영향을 준다. 긴 시간 동안 인터뷰에 응해주시며 초짜 진행자의 빈약한 질문에 성실히 응해주신 명훈님께 감사드린다.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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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a 10.05.29 03:10 댓글 수정 삭제
    잘 읽었습니다. 명훈님 인터뷰는 언제나 재미있어요. 그동안 많이 하셔서인지 ^^ 이번에는 개인적인 이야기보다는 문학계 / 장르계 / SF계 전체에 대한 이야기가 많네요. 그런데 그것도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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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명훈 10.05.29 12:56 댓글 수정 삭제
    좋은 질문이 좋은 인터뷰를 만드는 거겠죠. 제가 요새 어정쩡한 데 끼어 있어서 아무래도 그 이야기를 하게되나봐요. 게다가 이미 사골이라 개인적인 이야기는... 누군가를 본받아 인터뷰계의 사골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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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읽다가 못 읽은 소설 얘기가 자주 나와서 접었습니다. 윽, 얼른 나가서 배명훈님 책 읽고 싶어요.
  • No Profile
    배명훈 10.06.07 09:18 댓글 수정 삭제
    얼른 나오세요, 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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