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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특집6] 김주영 인터뷰

2013.09.29 11:30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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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jpg 라키난.jpg

참가자 : 赤魚 김주영

진행자 : 라키난



이 인터뷰는 <보름달 징크스> 출간 기념으로 거울에서 진행한 적어(김주영) 특집입니다. SF도서관에서 진행한 작가와의 만남 이전에 인터뷰를 했기에 그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단편집 <보름달 징크스>는 출판사 ‘기적의책’에서 내는 ‘작가와의 만남’ 시리즈의 첫 책으로, 김주영 님의 10년치 단편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거리 상의 문제로 인해 인터뷰는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인터뷰에는 라키난 님이 수고해주셨습니다.


보름달_징크스.jpg

 

1. <보름달 징크스> 출간에 대해

 

보름달 징크스가 첫 정식 개인 단편집인데요. 느낌이 어떤가요?


첫 개인 단편집이다보니 거의 10년치 단편이 실렸어요. 그래서 그런지 오랫동안 이어져온 연애를 되짚어 보는 기분 같네요. 조금 오글거리기도 하고 설렘도 기억나고


수록작 뒤져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오랜만에 꺼내본 글도 있을 테고. 수록작 중 특별히 남다르게 느껴진 글이라든가, 애착이 가는 글이 있나요?


그랬죠. 예전에 이런 글을 썼던가 싶기도 하고, 그 당시에 나는 어땠나 기억도 나고요. 오래된 앨범을 처음부터 보는 기분 같더라고요. 애착이 가는 글은 아무래도 <걸어다니는 화석>과 <신의 정원>인 것 같아요.

<걸어다니는 화석> 같은 경우는 존재의 소멸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뜻함이 담겨서 애착이 가요. 매일 부대끼며 온기를 느끼던 사람도 끝내 사라지고 잊히는 것, 또 언젠가 그렇게 되는 것이 나의 운명임을 따뜻하게 수용하는 따이푸의 시선이 좋았거든요. <신의 정원>은 신의 피조물인 인간이 망쳐놓은 지구를 인간의 피조물인 로봇이 복원해서 지킨다는 역설이 마음에 들었어요. 인류에겐 대재앙인 결말이 나긴 합니다만, 당시 마음에 품었던 주제를 제대로 잘 표현해낸 것 같아서 애착이 갑니다.


어떤 주제였어요?


인간의 존재 자체가 지구에는 대재앙이기에, 인간이 소멸되면 지구가 구원될 것이라는 주제였어요.


그거 어디서 많이 보던, 그러니까 대충 세기말 때쯤... 음... 네. 익숙하네요. 지금은 어떻게 생각해요?


세기말. 그렇죠. (웃음) 인류는 자연에 정말 못할 짓을 너무 많이 해요. 지금도 자연만 두고 본다면 인간이 없어져야 할 것 같아요. 너무 냉혹한가요. 전 최근 본 <설국열차>에서도 인류가 살아남아서 안타까웠는데.


(웃음) 이분이! 네. 그럼. <보름달 징크스>는 단편집이잖아요. 단편과 장편은 쓸 때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은데요. 차이가 있다면?


이전에 거울 합평회에서 김상현 작가님이 하셨던 말씀으로 기억합니다만, 단편은 너무 많은 것들을 담으면 산만해지는데, 장편은 도리어 많은 것을 담을수록 풍성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야기 길이의 차이가 있다 보니 호흡이랄까, 그런 것이 다르게도 느껴지고요. 아무래도 단편은 압축이 되어야 하니까 장편보다 상징 같은 것도 많이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초기에 단편을 주로 많이 썼기 때문에 이야기를 풀어서 장편을 쓰는 게 힘들더라고요. 반대로 장편을 또 한참 쓸 때는 이야기를 압축해서 단편을 쓰는 것에 또 애를 먹었고요.


수록작은 어떻게 선정한 건가요?


예전에 하이텔 환타지 동호회에서 데카메론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그 때 제법 단편을 많이 썼거든요. 그 중에서 선택하고 나머지는 이후에 작업한 글들을 추가했어요. e-book 단편집인 <노래하는 늪>에 실렸던 글들도 몇 개 다시 추렸고요.


앗. e-book에 실렸던 건 어떤 건가요.


<마지막 티타임>, <신의 정원>, <붓끝 한 방울>, <다시 쓰는 선녀와 나무꾼>. 이 네 작품입니다.


데카메론 프로젝트에서 나온 글이 많이 들어가 있는데요. 그만큼 의미가 있기 때문인 건가요? 아니면 그만큼 많아서?


둘 다죠. 아무래도 작가들과 같이 교류하면서 즐겁게 썼던 글이라서 애착도 많이 가고요, 다양한 소재로 많은 글을 쓰기도 했으니 양도 많지요.


네.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표제작은 어떻게 고른 거예요?


고민을 오래 했어요. 사실 <다른 방식의 진화>나 <걸어다니는 화석>도 후보로 생각했는데, 꼭 과학서적 제목 같더라고요. 그래서 좀 환상성이 있는 제목을 고르다 보니 <보름달 징크스>가 되었죠. 기억하기도 쉬울 것 같기도 했고요.


넵. 그리고 그걸로 이번에 거울에서 이벤트 하기로!


예이~!


출간하면서 뭐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계약한 후에 출간까지 거의 1년 반이 걸렸는데, 기다리는 것이 힘들었어요. 작업이 좀 천천히 진행이 된 편이어서. 게다가 <보름달 징크스> 이전에 계약하고 출간이 못 된 책이 2권이나 있어서, <보름달 징크스>도 그렇게 되면 어쩌나 마음을 졸였죠.


어. 그건 어떤 거였어요?


하나는 잡지 <판타스틱>에 폐간까지 연재됐던 <용선 파미르>고 또 하나는 모 출판사와 계약했던 라이트노벨이에요. 여전히 아쉽긴 한데, 인연이 안 닿았다 생각해요. 시간이 갈수록 글이 부끄러워져서. (웃음)


아. 맞다. <파미르>는 어떻게 됐어요?


음. <파미르>는 출간 보류 상태고요. 라노베 같은 경우는 완성한 원고를 두고 출판사랑 출간이 불발됐어요. 편집자랑 계속 조율하면서 썼던 글인데 그렇게 되고 보니 출판사가 야속하긴 하더군요. 결국 인연의 문제겠지만.


근데 라이트노벨로 출간됐던 <이카, 루즈>나 <여우와 둔갑설계도>를 보면, 요즘의 분위기랑은 좀 어긋나지 않나 싶기도 해요.


출간하고 보니 그렇더라고요. 사실 출간 당시에는 라노베가 뭔지 잘 몰랐어요. 출간을 제안한 서울문화사 편집장님도 라키난 님처럼 <이카, 루즈>가 일반적인 라노베와는 좀 다르다는 말씀을 하긴 하셨는데 당시엔 무슨 뜻인지 몰랐죠. 다양한 라노베를 내어보고 싶어서 제안하시는 거라고 해서 덥석 그러겠다고 했어요. 덕분에 <여우와 둔갑설계도>까지 내게 되었으니까 좋은 기회를 잡았던 것 같아요.


그러네요. <이카, 루즈>가 먼저였죠?


네. 불행히도 완간하지 못하고 결국 거울에서 연재로 완결을 봤었죠.


완간은 어쩌다가.


별 이유가 있겠습니까. 다음 권을 낼 만큼 판매량이 안 나와서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웃음) 하지만 2권에서 끝나지 않고 3권까지 출간했으니 나름 선전했다고 여기고 있어요. <이카, 루즈>는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다른 판형으로 완결까지 제대로 출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렇군요. <여우와 둔갑설계도>는 무사히 나와서 다행이에요.

 


2. 쓰기에 대해

 

단편은 언제부터 썼어요?


단편은, 온라인에 처음 게재한 것이 1997년이었던 것 같군요. 하이텔 과학소설 동호회에요. 처음 글은 SF는 아니었고요. <백 마리째의 양>이라는 제목의 살인자 이야기였어요. 주인공이 권태로움에서 탈출하기 위해 일부러 살인누명을 쓰고 사형 당하는 길을 택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장편은 언제였어요?


완결된 장편은 <나호 이야기>가 처음인데요. 이것이 연작형태임을 생각하면, 첫 장편은 <열 번째 세계>네요.


그럼 장편은 연재하는 대로 출간이 됐던 거네요.


운이 좋게도 그랬네요. 당시에 활동하던 작가가 적고 연재 작품도 그리 많지 않을 때여서 지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출간이 쉬웠던 덕분입니다. 시대를 잘 만난 탓입니다. (웃음)


글은 주로 어떤 때 쓰나요?


제가 전업작가가 아니다 보니 시간이 생기면 무조건 씁니다. 예전엔 12시부터 새벽 2시를 글 쓰는 시간으로 정해두기도 했는데, 나이를 먹으니 체력이 따라주지를 않네요.


글쓰기의 어떤 점이 좋은가요?


너무 어려운 질문이네요. “왜 그 사람을 사랑하니?” 이런 질문 같은데요. 마냥 좋습니다. 다 좋습니다.


글을 쓰면서 가장 보람찬 때는 언제인가요.


글에서 보람을 찾아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음. 글을 쓰는 게, 그냥 저한테는 오랜 연애를 이어가는 것 같아서.


오랜 연애의 안 좋은 점들은 없어요?


있겠죠? 자신도 모르게 반복하는 소재나 주제가 식상해지는 느낌이 오기도 하고. 권태로워서 쳐다보기 싫을 때도 있고요. 계속 이렇게 글 써야 하나, 고민해 볼 때도 있고.


그만 둘까 한 적은 없고요?


그만 둘까 고민은 해 본적이 아직 없는데, 내 생활에서 비중을 좀 낮춰야 하지 않나 고민은 심각하게 해본 적이 있어요. 나이를 먹으니까 자꾸 다른 것들에도 욕심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다 손에 잡을 수는 없고 뭔가 포기하긴 해야 하니까.


판타지와 SF 같은 장르에 걸친 글이 많은데요. 본인은 이런 걸 의식하나요? 음. 질문이 애매한데. 장르는 장르 문법이 있고 특징이 있잖아요. 그런 걸 참고하는지.


특별히 의식하는 것은 아닌데, 판타지와 SF는 많이 읽어왔으니까 자연스럽게 그 장르의 문법에 어울리게 흘러가는 경향은 있는 것 같아요. 이건 판타지니까, 이건 SF니까 이렇게 써야지, 하는 편은 아니에요.


네. 그런 것 같아요. 라이트노벨로 출간할 때는 어땠어요?


라노베가 정확히 뭔지도 모르고 출간하는 바람에, 출간한 뒤에야 이런 것이 라노베구나 하고 알아갔어요. 특히, 캐릭터 만드는 법을 많이 공부하게 되었어요. 라이트노벨에는 캐릭터 설정서라는 게 있어요. 성별, 나이, 키, 머리모양, 눈 색깔, 성격, 옷 스타일 등을 전부 기재하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디테일하게 인물을 만들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정말 공부가 많이 됐어요.


이후로 활용한 적은?


다음 장편 쓸 때 활용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설정에 연연해서 정작 본편 쓰는 것이 늦어지는 단점도 있네요.


그럼 다음 장편 홍보도 해주세요.


쓰려고 메모해 놓은 것은 여러 개 있는데 뭐가 먼저 나올지는 모르겠네요. 언제 나오든, 다음에는 환상성을 최소화한 글을 써보고 싶은 욕심은 나네요. 지금까지는 우리 삶에 가까운 사람을 다루는 게 참 어려웠어요. 뭔가 삶에 가까우면 조심스러워져서. 근데 이번에 보름달 징크스를 쭉 훑어보니까 이제 그런 글을 써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경과 인물이 점점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더라고요.


<웃음소리> 생각이 나네요.


그러네요. 그런데 <웃음소리>도 읽어보면 너무 현실을 모르고 쓰지 않았나 여전히 반성이 들어요.


글을 쓰는 데 있어서 거울은 어떤 존재인가요.


든든한 울타리 같아요. 언제든 글을 발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렇게 특집도 해주시고! 사랑합니다, 거울!


하는 김에 데카메론 프로젝트에도 한 마디하고 자세히 소개해 주시면?


즐거웠어요, 데카메론!

데카메론은 하이텔 판타지 동호회에서 200년부터 2003년까지 만 3년간 진행된 프로젝트입니다. 달마다 하나의 소재가 주어지고, 작가들이 그 소재로 단편을 창작해서 게시판에 올리는 식으로 진행되었어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서로가 작가이고 독자니까 다들 신나서 재미있게 참가했던 것 같아요.

글 쓰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일단 많이 쓰게 되었으니까요. 데카메론 프로젝트 시기에 써놓은 글이 많아서 같은 소재로 다시 써보기도 하고, 글 쓰는 감각이 무뎌지면 그 때는 어땠나 돌이켜 읽어보기도 했어요. 글은 많이 써볼수록 얻는 것이 많은 것 같아요.

 


3. 작가 자신에 대해.

 

닉네임이 왜 적어인가요?


제 하이텔 아이디가 REDfish였어요. 하이텔 과소동 분들이 언젠가부터 적어님, 적어님 하고 부르니까 적어가 됐고요. 제가 대학 다닐 때 영국문화원에 몇 년간 공부하러 다녔거든요. 가끔 영국인 강사들과 맥주 마시곤 했는데, 맥주 잘 마신다고 'fish'(술고래?)라고 놀림을 받곤 했어요. 아이디 정할 때 그 생각이 나서, 음, 그래 술고래는 얼굴이 빨간 색이니까 red를 붙여서 REDfish가 됐어요. 지금은 술 잘 안 마십니다!


작가와의 만남 할 때 마셔요.


푸하핫


네. 지금 직장인이시라고 들었는데요. 일하면서 같이 하기 힘들지 않나요?


아, 정말 갈수록 힘들어진다는 걸 느껴요. 나이가 드니까 어릴 때와는 달리 직장에서 요구하는 역할도 커지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해야 할 일도 늘고요. 그런데 체력은 점점 딸리니. (한숨)


지금 글 말고 다른 하고 싶은 건 뭐예요?


지금은 글을 제일 쓰고 싶어요. 지난 몇 년간은 다른 것을 하고 싶다는 유혹에 빠져 지냈습니다만(…).


그래서 현재는 글을 계속 쓰는 쪽으로? 아니면 비중을 낮추는 쪽으로?


계속 써야죠. 갖고 싶은 일보다 행복한 일에 충실하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몇 년을 생각했는데 역시 글쓰기만큼 저를 설레게, 행복하게, 충만하게 하는 일은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오오. 독자에겐 좋은 일이네요.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어떤 글을 쓰고 싶나요? 그리고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우선은 독자들이 읽고 싶어지는 글을 쓰고 싶고요.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독자들이 책을 덮어도 여운이 남는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작가로서는,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해보는 작가가 되고 싶네요. 내 틀 안에 안주하지 않고 멀리까지 가보고 싶어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읽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책 선전을 부탁해도 될까요? 보름달 징크스를 널리 홍보해주시면 보름달이 뜰 때마다 소원이 하나씩 이루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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