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박애진: 원초적 본능 feat. 미소년 인터뷰

 

박애진icon.gif jxk160.gif

Aejin-Park_Cover.jpg

박애진 작가의 작품집 <원초적 본능 feat 미소년>이 온우주 출판사에서 12월 29일 출간되어 1월 말 온라인 서점들에 배포되었다. 두 번째 작품집인 <각인>도 올해 3월 중순에 출간될 예정이다. 첫 번째 작품집 출간을 맞아, 이번에는 양 작품집의 권말 서평을 맞았던 김지원(jxk160)이 작가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둘은 웹진 거울 초기부터 만나 가끔 오프라인에서도 교류하면서, 제법 인연이 오래된 편이다. 이 인연을 바탕삼아 김지원이 이번 서평 원고를 쓰게 되기도 했다.

2월 6일, 남독일은 유난히 따스한 겨울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었고 한국은 아직 쌀쌀함이 가시지 않았던 날, 독일에서는 오전 7시, 한국에서는 오후 3시의 시간에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시차에도 불구하고 아침 타입인 김지원과 오후 타입인 박애진이 상성이 잘 맞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둘 다 7시 정시에 카카X톡 피시 버전을 켜고 로그인을 했으나, 김지원이 일어나자마자 일단 커피를 끓여먹고 싶었던지라 조금 늦겠다고 양해를 구하는 톡을 보내왔다. 애진님도 얼른 커피를 타왔다. 모니터 저편에서 서로 따끈따끈한 커피를 한 잔씩 가져다놓고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김지원이 어째 좀 쭈뼛쭈뼛하다가 먼저 말을 꺼냈다.

김지원: 음... 바로 질문으로 들어갈까요?

박애진: 넵. 바로 해요.

김지원: 음. 일단 작가 인터뷰를 하는 거니까, '인터뷰'를 여는 질문부터 한두개 할게요. 그리고 님 저 아시죠... 제 질문들 자체가 좀 틀이 잡혀있을 수 있어요. ‐_ㅜ 이 문제는 극복이 안 되어서. 알아서 자유롭게 깨 주세요(..)

박애진: 넵.

김지원은, 필진으로 소설을 올리던 시절부터, 본인이 하는 말은 워낙 본인 틀에만 틀어박힌지라 다른 사람들한테는 잘 전해지지 않을 거라는 트라우마가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쭈뼛거렸지만, 애진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그러나 - 애진님이 나중에 슬쩍 고백해오셨던 바 - 김지원 이 인간의 질문은 어차피 어떤 틀에서도 본 적 없는 것이었다 한다.

 

 

 

1. 인터뷰를 들어가며 - 작가와 작품 사이, 창작과 출간 사이

 

A. 작가와 작품 사이

 

작가는 소설을 쓰며, 그 소설의 작가이다. 거기에 대하여 인터뷰라는 형식을 다시 한 번 덧씌워 굳이 작품으로부터 독립된 ‘작가’를 부각시키는 것은, 흔히 사용되는 전략이긴 하다. 그러나 늘상 어딘지 그 사이의 공간이 애매하기는 매한가지다. 소설 텍스트가 그 작가에 대한 인간적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 불러일으킨다면 어떤 식으로, 어떤 강도로?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시대와 문화마다 다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박애진 작가 본인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인터뷰를 여는 질문으로 작가와 작품의 관계에 대한 질문으로 운을 떼어 보았다.

 

김지원: 음... 애진님이 작가의 말 후기에도 한번 쓰셨고요. '낙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서술자와 작가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 둘은 천만광년(인가 그냥 몇천이었나;;) 떨어져있다고요.

박애진: 네.. (찾아보니 지구와 천왕성 만큼이라고 썼네...)

김지원: 음... 사실 작품에 대한 관심이 작가에 대한 관심으로 간다는 게, 작가가 서술자를 만들어내고 작가가 작품을 쓰는 거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 하는 작가 ‐‐> 작품의 방향이 하나 있어요. 작가가 존재하고 갸가 소설을 쓰는 거니까, 당연한 거 아냐? 이런 거. 그렇지만 요즈음 문예학에서는 작품이 어떤 식으로 작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방향으로 쓰여지나, 작품 내적인 구조에 대한 관심이 훨씬 더 높죠. 그러니까 작품 --> 작가의 화살표가 어떻게 구성되나 하는 거죠.

그렇게 구성되는 관심의 종류도 여러가지가 있겠죠. 예컨대 나는, 작품에 따라서, 분명 그 작가의 이름을 인식하고 그러한 하에 '믿고 사게 되는' 작가는 있지만, 딱히 그 작가에 대해 심리적 혹은 사생활적 관심이 생기진 않아요. 하지만 반면 그런 개인 심리적인 방향의 관심이 가게 되는 작가도 있죠. 애진님 경우는 글을 읽으면, 후자쪽의 관심이 세게 오는 경우예요. 이 인간 뭐지(...) 랄까(...)

박애진: ^^;;;;;

김지원: 음... 길게 썼는데, 지금 '작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마당이라, 그런 걸 한번 물어는 보고 싶었어요. 본인에 대한 것이 아니더라도, 작품을 통해 작가에게 개인적 관심을 느끼게 되곤 하는지,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인지. 아니면 본인이 작가로서 작품을 통해 어떻게 알려지고 싶은 방식이 있는지, 그게 본인 생각엔, 작품을 통해서 독자 측에서 작가를 알고 싶어하는 욕망이 어떻게 촉구되는가와 잘 비례되고 있을지.

박애진: 낙원 후기에 썼던 말은 1차원적인 방어였던 것 같아요.

김지원: 에 난 좋았는데. 나도 가끔 서술자‐작가를 혼동하면 때려주고 싶음. (...) (말하자면) 1차원적인 경우도 많으니 1차원적 방어도 필요하겠죠. ㅎㅎ

박애진: 대놓고 (애인과) 헤어진 후에 쓴 글이죠? 라는 질문도 받아봤고, 직접 경험을 토대로 쓴 글이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낙원이 베드씬도 있고 막 그렇단 말이에요. 남자 독자들이 "이 글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라고 물어보면, "무슨 답을 바라는가."싶어져서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기왕 작품 후기를 쓰는 기획이 있던 김에 넣었어요.

글을 읽고 상상한 작가와 실제 작가가 비슷한 사람들도 있는데 전 좀 다른 경우인 것 같아요. 한 번은 어떤 편집자와 만나기로 해서, 도착해서 전화를 했는데, 제 목소리를 듣고 놀라더라고요.;;

김지원: 목소리요? 왜요?

박애진: 저는 작품에서 독자들이 떠올리는 이미지에 더해, 거울 초대 편집장 이미지가 더해져서... 음... 차분한 톤을 상상하셨나봐요. 흐흐흐

김지원: ㅋㅋㅋㅋ

박애진: 그런 소소한 일들, 저는 상대를 모르는데, 상대는 제 글을 읽었다는 이유로 저에 대해 이런 사람일 거라고 먼저 상상하고 대하는 일들이 불편했던 적도 있는데 지금은 받아들였어요. 읽으면 상상하게 되는 거고 제 안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건 맞고.

음... 저는 좋아하는 작가는 많지만, 그걸 넘어 그 사람 자체를 알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창작을 할 때와 일상을 유지하는 사람은 같으면서 다른 사람이랄까. 창작을 할 때는 작가에게 다른 인격이 하나 덧씌워진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작가의 소설이 너무 좋은데, 어쩌다보니 알고 지내게 되었는데, 그 사람 자체도 너무 멋진, 그런 아름다운 일들이 있었고. 그럼 그 사람과 계속 어떤 테두리에서,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있어 계속 서로 최소한의 닿아있는 지점을 유지하며 그렇게 계속 갈 수 있길 바라기는 해요.

답이 되었을까요. ^^;

김지원: 헤헤. 음... 네. 그 정도면 일단....

박애진: 나도나도.. ^^; 이 인간 뭐지.. 는 무슨 뜻일까요. ^^;

김지원: ㅋㅋㅋㅋㅋㅋㅋㅋ… 음... 에... 아니 말이죠, (스포일러) 인형을 막 칼로 썰어서 죽이고 있으면 이 인간 뭐지 ㄱ‐ 라는 생각이 든… 다는 건 반농담이지만요.

박애진: ... ^^;; 스포일러라뇨; 그게 언제 쓴 글인데.. 새삼. ^^;

김지원: 음... 설명하기 좀 어려운데, 글이 소위 테크니컬하게 잘 잡혀있는 경우가 있어요.

이게 딱 분리해서 말하긴 어려운 얘기지만, 그러니까 이런이런 장치들을 썼구나, 잘 했는데? 하고 기존것들과 새로운 것들, 뒤틀기와 부활, 등등 상호텍스트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글들이 있죠. 머리와 지식으로 많이 실력발휘한 글들이예요. (노파심에 말해두자면) 이런 쪽으로 나타나는 게 재능이 아니라는 게 절대로 아니고, 이런 식으로 번뜩이는 재능이 있다는 거죠. 근데 이런 경우에는 작가에게 심리적 관심이 가진 않아요. 걍 응 계속 생산해내거라! 신난다! 하는 느낌? 예컨대 제겐 움베르트 에코. 걍 오래 살아라- 계속 많이많이 써 줘-하고 응원을 보내지만, 인간적으로 이 새끼 대체 뭐야 ㄱ‐ 하는 느낌은 아님.

박애진: ㅇㅇ...

김지원: 근데 님은... 뭐랄까... 되게 외곩수임.

박애진: ^^;;;

김지원: 뭔가 괴이한 개인의... 심리적인 그 독특함이랄까... 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걸로 걍 몰아붙임. 이건 지식 활용과 상호텍스트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독특함이 재능으로 발현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게 하는 글들이 대부분이예요.

이게 좋은 얘기로 받아들여질지 모르겠다.... 써놓고보니;;

박애진: 뭔가... 많은 걸 생각하게 하네요.

김지원: 근데 난 굉장히 좋은 점이라고 생각해요.

박애진: 저도 좋은데요;;

김지원: 사실 테크니컬하게 모자라는 부분이 있는 글들도 가끔 있지만요(요번 작품집 1권은 오래된 글들도 있죠 ㅋㅋ 특히 난 교정 전의 것을 봤어...).

박애진: (으악.. ^^;;;;)

김지원: 거기서도 이미 번뜩이는 '사람'의 무언가가 보이죠. 그게 좋아요. 근데 그게 또 어쩔 수 없이 실제 '사람'으로서의 작가에게도 관심을 갖게 하죠. ...끗!

박애진: 난 지금 좀 묘한 생각을 한게 “뭔가 괴이한 ~~ 발현되는구나.” 이건 딱 님한테도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김지원: 시끄러(...)나... 난 이제 이론 할 거야! ( ‐_) ....음 이제 다음 질문으로 갈까요?

박애진: 아, 네.. 근데...

김지원: 넵?

박애진: 음.. 기왕 저 개인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온 김에 이야기해보자면...

김지원: 넵!

박애진: 가까이서 제 볼 꼴 못 볼 꼴을 다 봐온 가족‐아우가 오랜 세월 해온 잔소리가 있어요. 가식 좀 떨지 마라. 솔직해라.

전 가식적인 인간이에요. 저도 알아요. 어쩌면 그게 절 실제 만난 사람들을 당황시키는 걸 수도 있어요. 이메일, 온라인에 올리는 공지에 가까운 글들에서는 감춰지는 게, 실제 만나서 까지는 잘 안 되기도 하고.. 뭐, 여러 가지 면에서..

늘 같은 잔소리를 하던 아우가 어제, 그러더라고요. 근데 누난 솔직할 수 없구나. 진짜 모습은 '완전 이상'하니까.

김지원: (공지를 가식 안 떨고 올리는 인간따위 상대하고 싶어요...? ㅠ_ㅜ) ㅋㅋㅋㅋㅋㅋㅋ

박애진: 푸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

김지원: 기엽게 이상해요(쓰담쓰담). ㅎㅎ 님이 그걸 글로 쓴다는 건 말이죠, 즉슨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건, 인간들에게, 인간들아, 너네도 원래 다 완전 이상하잖아. 하고 인류의 자리에서 텍스트로 외쳐주는 거임. 잘 했어요. 그런 게 재능이라고 봐요.

박애진: 아... 음... 네.;; (뭔가 되게 좋은데 대놓고 좋아하기엔 막 쑥스럽기도 하고;; 인터뷰라지만 이런 멋진 말 막 들어도 되나;; 막.. 히히히)

김지원: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까염? 아님 이상한 거 더 보여줄래...? (....)

박애진: 넘어가요. 와와‐

 

생각보다 이 첫 번째, 인터뷰를 여는 질문이 길어져서, 조금 서둘러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B. 창작과 출간 사이

소설 텍스트를 자기 랩탑 앞에 앉아 혼자 써 내는 것과, 상품의 형태로 ‘출간’을 해 내는 것은 또 다른 얘기다. 더 다양한 방향의 많은 일들이, 많은 사람들 간의 협동이 필요하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 여는 질문으로, 이 과정에 대해 작가분께 아주 짤막하게 한번 여쭤보기로 했다.

김지원: 에... '작품'이 하나 출간되어서 진짜로 시장에 나오려면, 살아있는 작가 한마리가 글을 써야하고, 또 교정, 편집, 표지 작업도 있고 그렇죠. 출간해서 서점들에도 내보내야 하고... 애진님은 이중 앞의 세 가지 정도는 어느 정도 참여하시고 계신다고 제가 들었던 거 같은데요...

박애진: 제가 교정에 참여한다고 보기는 어렵고요. 다만 실컷 수정한 원고를 보내놓고, 교정본 받으면 또 잔뜩 수정해서 보내서;; 편집자와 pdf 반영하는 작업 하시는 분들 입장에서 힘드셨을 거라는 정도;; 편집이 내지 디자인을 의미하는 거면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은 참여한 적 없고, 출판사에서 알아서 했고요. 표지는 이번 작품집은 의견을 많이 낸 것 같아요. 다 수용된 건 아니고, 다 수용되길 바란 것도 아니고, 어떤지 물어보는 메일을 받아서 답을 보냈는데, 편집자가 굉장히 구체적인 의견이었다고 이야기한 걸 보면 다른 작가들보다는 의견을 냈던 것 같아요. 아마 “원초적 본능 feat. 미소년” 표지 이미지가 제 취향이다 보니까 더 눈이 가서 저도 모르게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던 것 같아요.

김지원: 아항. ^^

그리고 우리는 드디어 작품들에 대한 질문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2. 글과 그림 - 흔들리는 세계, 글쓰기의 방

A. 두 개의 매체, 흔들리는 세계

박애진은 그림도 그린다. 텍스툰에서 기획했던 홍대기담 단편에 삽화를 그리기도 했고, 장편 “부엉이 소녀 욜란드” 이미지 일러스트를 그려 거울에 올리기도 했다. 요즘은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대신 그림을 그리다 보니 웹툰 작가냐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다고.

Aejin-Park_Pic1.jpg Aejin-Park_Pic2.jpg Aejin-Park_Pic3.jpg

김지원: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애진님이 그림을 그린다는 것도 알고 있고 애진님 그림들을 거울 외 다른 사적 경로로도 접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의식하게 되는 주제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역시, 객관적으로 생각해봐도 즉슨 이런 전제지식없이 애진님의 소설 작품들만 보더라도, 그림이 참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걸로 보이리라고 생각해요. 직접 테마로 삼는다기보다, 구조적으로요. 곧 출간될 두 번째 작품집에서 특히 더 두드러진다고 보지만, 굳이 이 작품집의 스포일러를 하지 않더라도 이번 1권에서도 이미 그림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어요. 특히 '이번엔 외계인이냐'에서는 직접적으로 언급되기도 하죠.

음... 일단 좀 거칠게 묻자면, 이건 님 글을 보면서 하는 생각이기도 한데, 글과 그림이 각자 어떤, 주어진 '진짜' 세계에 대한 각각의 두 표현 양식일까요. 아니면 글/그림이라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구분 양식일까요. 예컨대 님의 글을 읽으면서 독자가 머릿속에 말 그대로‘그리는’ 는 건 어떤 실제하는 '세계'일까요, 아니면 그저 ‚그림‘ 그 자체일까요.

애진님의 글을 보면 그림이 세계를 보여준다기보다, 그림이 그 자체로 불투명하다, 하는 느낌이 많아요. 네므는 인형이고, 연인은 안드로이드죠. 즉슨 그림들인데, 무언가에 대한 모사이기도 하지만, 그림들 자체로 존재하는거죠. 외계인이냐‐도 그렇고, '낙원'에서도 스크린들이 서로 중첩되어 있는 구조가 많이 이용되죠. 중요한 것들은 '기억' 혹은 환상으로 머무르고, 잡아내더라도 화면 너머로 잡아내는 거죠. 근데 그게, 화면 너머에서, 또 다시 그림들을 잡아내는 거고...

애진님이 글/그림에 대해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그런 면에서 궁금해요. 특히 하나의 주어진 세계에 대한 각각의 두 표현인가, 혹은 한쪽은 글 한쪽은 그림이라나ᅟᅳᆫ 그 자체로서 서로 다른 두 매체 양식인가, 라는 데에 중점을 두어서.

너무 추상적인가. 예를 들자면, 님 작품들에서는 네므도 환상이기도 하지만 또 '진짜'고, 그 연인 안드로이드도 역시 또 환상이지만 '진짜'고 하는 느낌이라... 또.

박애진: 음.. 이게 동문서답이 될까봐 걱정이긴 한데... 1차원적으로 대답하자면...

김지원: 서쪽 방향은 길하죠...

박애진: (나 잠시 ‘빵’ 터졌음.)

어... 그리고 싶은 걸로 올 때가 있고, 서술하고 싶은 걸로 올 때가 있죠.

김지원: 얼, 그렇게 말하니까 오히려 딱 이해하기 쉬운데요. 올 때가 있다! (수용자 입장에서는 글과 그림이라는 걸 감각 형식과 관련된 매체 차이로 생각하게 되는데, 생산자 입장에서는 영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방식의 차이로 느껴지게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재미있었다)

박애진: 네므도, 안드로이드도, 분명 진짜 존재하지만, 대상이고 환상이기도 해요. 일방적이라면, 일방적이고, 다 허구고 착각이라면,그냥 허구고 착각인 거.

김지원: ㅇㅇ. 딱 진짜거나 허구라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그 사이에서 진동한다는 느낌...

박애진: 네. 실재하고, 반응하니까. 제한적이냐, 그렇기에 진실되느냐, 라는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달까요.

좀 더 이야기해보자면 ‘이번엔 외계인이냐’는 이 작품집 안에서는 신작에 속하잖아요. 전에는 글에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넣은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은 무언가는 시시때때로 강림하고,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 혹은 그저 무엇이든 그리고 싶다는 충동도 잊을만 하면 한 번씩 찾아와 사람을 뒤흔들었는데, 워낙 못 그려서, 그림은 정말로 안 되나보다 했거든요. 근데 충동은 자꾸 오니까...학원도 다녀보고, 교재도 사보고, 이리저리 어찌 하다보니까, 어느 날 어느 순간 한 장벽을 넘더라고요. 지금은 내가 하면, 하는 만큼 돌려줄 거라는 나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은 생겼고, 그러고 나니까 글에도 넣을 수 있게 되었어요.

B. 글쓰기의 방 - 망원경과 현미경을 쟁여놓고

글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나누었다. 가끔, 작가님 본인이 우려하셨다시피, 동문서답같은 대화도 나오곤 했는데, 주로 수용자와 생산자라는 두 입장 차이에서 오는 사고틀의 차이 탓인 것 같았다. 때문에 원 질문에서 좀 멀리멀리까지 갔다가도 또 다시 돌아오곤 했는데, 개중에서도 특히 재미있었던 한 부분을 발췌한다.

작가는 누구나 글쓰기의 방이 있다 - 현실에도 있지만, 마음속과 머릿속에도 있다. 박애진의 글쓰기의 방이 글과 그림, 두 매체가 겹치는 공간에서 살짜기 피어나는 모양을 훔쳐보기로 하자. 흔히 엿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닌 거 같다.

박애진: 음... 나는 머리로 쓰거나 그리는 인간이 아니라 정말 뒤늦게 알았는데 그림도 한 면에 여러 사람이 있는 걸 못/안 그렸어요. 항상 한 명만 있어요.

김지원: 어, 그렇구나. 그러고보니 (애진님이 그리신 크로키에서) 가릉이도 늘 한 마리만 있었던 거 같아요.

박애진: 네, 그죠.(가릉이랑 연이는 붙어있질 않아서이기도 합니다만. ^^;) (한 명만 그린다는 걸) 깨닫고, 요즘은 여럿이 같이 있는 그림을 의도적으로 연습하고 있어요. 한 명만 있는 것만 그려버릇해서 한 쪽에 두 사람이 있으면 나중에 그리는 사람이 이상해져요. 비례나 구도나 자세나 암튼 굉장히 이상해지고...

그래도 따로따로 떨어져있으면 좀 나은데 닿거나 겹치는 부분에 가면 완전 깨지거든요.

김지원: ...미안해요. 근데 뭔가 님이랑 어울려요(...)

박애진: 으하하하하하하하하;;

풍경도 건물 한 채 딱 그리는 건 묘사해가며 나름 나쁘지 않게 그리는데 건물이 여럿이면 또 뭔가 굉장히 혼란스러워져요. 세부를 아주 정밀하게 그리는 그림이 아닌, 원경을 그리는 건 그냥 머리가 하얘지고... 근데 이건 내가 깨달았고, '기술'적인 부분이라 훈련해서 극복할 수 있는 것 같고... (질문 다시 확인... ㅋㅋㅋㅋㅋㅋ 너무 이야기가 멀리 간다.)

김지원: 아, 아뇨. 재밌어요.

맞는 말 같은게, 왜냐면 난 님의 글에서 커다란 풍경화, 혹은 도시 풍광이 마구마구 펼쳐지는 뭐 이런 걸 본 기억이... 생각해보니 안 나네요(단편들 기준). 뭐 좀 멀리 있는 게 보일려면 스크린 이쪽 편, 이라는 걸로 후퇴해 들어와서야 보이는 거잖아요. 방향이 너어어른 벌판 펼쳐진다가 아니라 스크린 안쪽으로 드드드들어온다 이거. 방 안으로의 후퇴 방향이지 저 바깥으로 나가서 전진하는 방향이 아니에요.재밌네요.

박애진: 네. (하지만) 글에서도 넘어서려고 하고 있어요. (더 이상) 한 개인에 천착하지 않고, 굳이 말하자면 현미경과였는데 이제 망원경도 좀 들여놔야 하지 않나...

김지원: 근데 그 장비들 결국 어느 ‘방’에 들여놓고 꼭꼭 거기 안에만 쌓아놔야 하죠? 응? (놀림놀림) ...미안해요

박애진: 으앙... ㅠㅠㅠㅠ

음... 지금은 뭐랄까, 계단이 하나 있어야 해요. 여긴 현미경 방, 좁고 어두컴컴한 계단을 올라가면 망원경 있는 옥탑방. 지금은 분리되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장편은 현미경과 망원경을 오갈 수 있는데도.

일단은 멀리 보는 걸 훈련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쓸 때 인물에 이입하는 편이었는데 거리감을 둬보는 것. 그런 걸 실험이랄까 훈련을 하려고 해요. 그림도 하나만 그리는 게 아니라 겹치게... (그려보려고 하고요.) 이상한 표현이지만 겁먹지 않으려 하고 있어요. 겹쳐도 된다, 닿아도 된다, 뒷사람/건물은 가려져도 된다.

김지원: 님만의 방식으로 그것도 할 수 있다면, 기대되는걸요.

아, 이 얘기 하다보니 제 안에서는 다음 질문을 위해 점해놨던 테마로 걸로 이어지네요. 성장이라는 테마요.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3. 성장

김지원: 네므나 짝짓기, 조화, 얘들은 특히, 음... 이렇게 굳이 딱 말하긴 어렵지만, 굳이 카테고리화하자면, 인물들의 '성장'이라고 말할 만한 순간들이 엿보여요. 네므는 에잇 망했다!! 인지 뭐가 된 건지 알 수 없지만(...) 여하튼 분명 성장 모티브가 있는 거 같고요. 조화나 짝짓기는 망했다! 가 아니라, 뭔가 일이 되긴 된 듯한(...) 성장이랄까. 제가 제대로 이해한 거라면... 이렇게 성장물적 요소를 자주 도입하게 되신 동기라도?

박애진: 제가 성장물스러운 글들을 좀 쓴 이유가 있었는데;; 저도 나중에야 알았는데. 중학교 때 교과서에 제목은 기억이 안 나는 외국단편이 있었는데...

남자애가 나비 표본을 모았어요. 하루는 친구 집에 갔다가 자기가 찾아 헤매던 나비 표본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훔친 거예요. 그러다 돌려놨고, 근데 이미 손상되었고, 친구에게 고백해요. 친구는 비웃으며 "그래, 뭐, 네가 그렇지." 하고... 이 아이는 돌아와서 그간 모은 나비 표본을 다 부수죠. 선생님이 물어봤죠. "이 이야기의 주제는 뭘까?" 애들이 대답했죠. "남의 물건을 훔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선생님이 아니라는 거예요!

왜? 나도 당연히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왜 아니지?

암튼 선생님이 이건 성장소설이고, 나비 표본을 부스는 건 유년기가 끝났다는 뜻이다, 뭐 일케 길~~게 설명을 하는데, 전 무슨 소린지 전혀 알아듣질 못했어요. 빠른 애들은 다 이해했을 거. 전 늦었던 거죠.

그게 무의식속에서 남았었다는 걸 몇 년 전인가 알았어요. 그래서 성장소설을 쓰며 중학교 때 모르던 것의 해답을 제가 직접 써보며 알아내려 했던;;;; 그런 마음이, 그게 전부는 당연히 아니지만, 그런 무의식?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그걸 알고 나니 성장소설스러운 글에 대한 흥미가, 특히 그런 사춘기 감수성이 남아있는 글들에 대한 애정이랄까 창작욕, 그런 게 좀 식더라고요. 새로운 무언가를 찾을 때도 됐었고.

아무튼 20년이 흐른 제 기억으로만 이야기한 거지만 (그 단편) 제 취향 같지 않아요? 특히 마지막에 나비표본 손으로 으깨(?)는 거;;

김지원: ㅋㅋㅋㅋ... 음, 그러면 제가 이 테마를 왜 먼저 질문 드렸던 그림 테마와 관련해서 떠올렸는지 말씀드릴게요. 애진님이 아까 그림 얘기하시면서, 혼자 있는 그림밖에 안 그렸는데 이제 여럿도 넣어보려고 한다, 서로 닿아도 되고 가려져도 되는 그림을 그려보겠다,라고 하셨을 때 생각난 게, 성장이라는 게 결국 사람 관계를 통한 성장인 경우가 많잖아요 - 말하자면. 특히 애진님의 저 세 작품 네므,조화, 안드로이드가 그렇다고 느꼈고요.

그렇다면 성장물에 해당하는 이 작품들은, 성장 이전까지의 과정을 그린 거라면 한명씩만 있는 그림에 해당할까요? 그 이후에는 (성장 이후) 다분화된 인간관계, 즉 다분화된 그림에 서 있어야 할 테니까요. 그렇다면 그림에서 이런 부분을 벗어나고 싶어하신다는 건 성장물에 해당하는 글에서도 좀 벗어나보시겠다는 의미일까요?

박애진: 한 사람/대상을 낱낱이 해부하고 조각낼 정도로 파고들어갔는데... 이젠 좀 더 멀리 보고 싶어졌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글의 기본은 성장물일 지도 몰라요. 위기, 변화 뭐, 그런 거 없이는 이야기라는 게 성립하기 힘드니까.

지금까진 글을 쓸 때 인물이 처한 상황/감정에 몰입하는 편이었어요. 그것도 한 명에게요. 단편이니까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해도, 두세 인물이라도 각 인물마다 자기 입장이 있고, 대립하는 지점이 있게 그린다기 보다, 한 인물에 중심을 두고, 그 인물 이야기가 제 이야기라도 되는 것처럼 이입했어요. 아마 그래서 자기 이야기를 소설화한 게 아닌가 하는 오해를 받기도 했던 것 같고요. 그런데 이젠 말씀대로 벗어나고 싶어요. 개개 인물에 이입하지 않고, 인물들을 더 많이 집어넣어, 그 인물들이 일구어나가는 세계를 그리고 싶어요. 흔히 하는 말처럼, 인물을 장기판의 말로 사용하는 거죠. 서사구조에 집중해 더 큰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요.

김지원: 음, 그러면... 이 작품들 중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으신 작품이 있으실지요?

박애진: 네므의 난도질(...;;;) 씬은 일월님(만화 그려주신 작가님)이 너무 아름답게 그려주셨지만 그와는 또 다른 저만의 느낌으로 그려보고 싶어요.

 

4. 성역할 - 독자와의 머리싸움, 작품집의 제목

A. 성별을 드러내는 장치, 감추는 장치? 독자와의 머리싸움

김지원: 음 그럼 다음 질문으로. 성역할 문제인데요. 성역할이 직접 테마 혹은 소재로 드러나는 건, '조화'가 대표적인 듯 하지만, '이번엔 외계인이냐'에서는 이건 뭐 이미 성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다른 우주적인(!) 차이들이 너무 많죠. '완전한 결합'도 재밌죠. 일단 '성'이'생식'과 같다고 착각되는 부분은, '완전한 결합'에서, 결코 아예 버려지지는 않으면서도 미묘하게 뒤틀려있고(이거 재밌었어요).

여하튼... 음. 성역할이 테마나 소재가 되는 작품들의 경우, 소위 인물 성별을 드러나지 않게 하거나 비틀어서 표현하는 장치들이 많이 사용되는 거 같아요. 특히 '조화'는 알려면 알 수 있게, 모르려면 무심히 넘어가게, 근데 알아야 하긴 알아야 하는데(...)... 이 경계에서 많이 고민하셨죠? 이 글 언젠가 거울 합평회 때도 가져오셨던 듯 해서, 기억이 나요.

박애진: 네. (눈물이 주룩주룩)

김지원: ㅋㅋㅋㅋ

박애진: 나중에 머리가 좀 식은 후 너무 힘줘서 쓴 글이라는 생각에 많이 괴로웠어요.

김지원: 근데 반대로 말하자면, 누군가 성별을 ‘속이는’ 장치들을 쓴다면 그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성별을 ‘드러나게’ 하는 장치들이 이미 있기 때문에 그걸 비트는 거죠. 근데 그 원래의 장치들을 쓸 때는 이미 마치 딱히 뭔가 인공적인 '장치'를 쓰는 게 아닌 것처럼, 심하게 익숙해져 있어서 장치로서 잘 못 느끼는 거고요. 하긴 이 감도도 사람마다 다르지만...

박애진: 조화는 진짜 아무도 몰랐어요. 거울 합평회에서도 아무도 몰랐다는 건, 제가 합평회 때는 많이 반박했지만 실마리를 너무 심하게 감췄다는 거죠;

김지원: ㅋㅋㅋㅋ

박애진: 근데 결국은 못 건드리겠더라고요. 퇴고에 퇴고를 하면서도 결국 실마리를 추가하진 못했으니까;;

김지원: 저도 등장인물 성별이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할 글을 한번 쓴 적 있어요. 그땐 그냥 전 아예 아무 장치도 안 썼지요 - 그러니까 웬만한 장치는 그냥 다 제거하는 마이너스 방향으로만 간 거예요. 성별 자체가 테마가 아니었고, 남녀로 생각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정도의 글이었니 그게 맞을 줄 알았지요. 근데 이 경우, 이렇게 장치 없이 써 두면 다 '남자'인 줄 알더라구요. 그건 좀 쇼크. ‘성별과‐무관함‘ 이라는 영역이 사람들 머릿속에 존재하긴 하는가, 에 대해 좀 쇼크였는데요.

애진님 글, 그때 합평회에서도 아무도 못 알아차렸다는 거 보면서, 야 이건 솔직히 독자들도 좀 ‐_‐ 심하다‐_‐ 했는데 뭐 결국 다 작가 책임으로 돌아오는 거니 뭐 ......

박애진: 전 (조화가) 심했다는 거 인정해요. 근데 님하가 아무 장치 안 써서 그렇다는 거 인정하는 거 들으니 왜 기쁘지? ...

김지원: ㅋㅋ 장치 없이 써 두면 '몰라야' 하는데 '남자'로 안다는 건 하지만 슬픔.

박애진: 저도 꽤 오래 왜 성별을 밝히지 않으면 남자로 보느냐, 에 대해 반감이 있었어요.

김지원: ㅇㅇ

박애진: 근데 저도 못 읽어낸 적이 있거든요. 많이 부끄러웠고. 그 뒤 생각을 거듭하며 당연히 남자로 보게 된다는 걸 받아들이게 됐어요.언어는 '사과'라고 하면 '사과'라고 약속한 거고. 이렇게 1차원적인 게 아니더라도 함축된 의미, 어감, 어조, 그런 게 있고. 사람들이 공감/이해하는 서술/문장/단어가 있고, 모든 글은 독자와 하는 머리싸움일 지도 모르죠. 독자/사람들이 무얼 아는가, 이 단어에, 이 서술에 무얼 떠올리는가. 그걸 배제하고 거부하면서 글을 써서 발표할 수는 없는 거. 그 점을 인지하면서도 틀에 안주하지 않고 내 글이 이해받을/나아갈 지점을 계속 찾아야 한달까요.

소설, 만화, 영화, 드라마, 버라이어티, 기타등등 거의 대부분의 작품/세계에서 등장인물은 남자들이 다수예요. 순정만화는 예외라면 예외인데. 그래도 순정만화/로맨스 뭐 여자가 주인공인 작품들에서도, 사실 중요한 건 남주거든요. 대부분의 소설/만화/드라마가 여주가 별로 없고, 여주가 있어도 남주가 핵심인 경우가 많은데 그냥 무턱대고 서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상해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그걸 내 식으로 소화해서 서술해 자연스럽게 넣을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김지원: 흥, 물론 맞는 말이지만 삐죽삐죽(...)인 거져...

박애진: 나는 이런 반감이 좋아요. 나도 반감이 있거든요.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당연시 여기는 것들에 대한 반감은 필수랄까.

김지원: 음... 이번 작품집에 실린 버전은 전 성공했으리라고 봤는데('조화'), 어떨까요.

박애진: 모르겠어요. ^^; 조화가 독자들이 알아차렸을 수도, 몰랐을 수도 있지만... 마음을 비웠습니다. ^^;;

김지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박애진: 그 글이 그렇게 나온 이상 건드릴 수 없는 거고.

김지원: 음. 사실 '이번엔 외계인이냐'나 '짝짓기'가 그런 면에서 좋았어요. 그니까 잘 쓰인 글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테마를 두고 독자들이랑 머리싸움... 이랄까의 전략에서.

(꼭 그 성담론만을 두고 쓰여진 글이라는 건 아니지만, 그런 맥락에서 보면) 특히 '짝짓기'가 재밌는게... 성이랑 생식은 엮여있긴 하지만 하나는 아니거든요. 그게 이상하게 같은 걸로 취급될 때가 많은데, 성에서 생식을 떼어내어도 분명 성담론은 그 자체로 따로 남아있어요. 하지만 달라지겠죠. 앞으로 실제로 둘은 많이 분리되는 상황으로 갈 거 같고.

그래서 마이 재밌었음. ...뭐야 이거 질문이 아니잖아.

B. <원초적 본능> - 우연인가, 필연인가?

질문이 아닌 감상을 얘기해놓고 잠시 생각해보니, 이번 작품집 제목부터가 대놓고 <원초적 본능>이다. 성담론이 작품집 전체를 아우르는 테마인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 작가가 의도한 것일까, 편집 과정에서 발견된 진실(!)일까? 단편들을 모아놓은 ‘작품집’이란 참 재미있는 형식이다.

박애진: 나는 진짜 내가 바보가 아닌가 의심할 때가 있어요. 작품집 내자는 말에 단편들 우루루 보냈고, 둘로 나눈 건 편집자인데. 교정본 받고, 작품 순서대로 읽어서야 흔히 생각하는 관계는 낙원 하나 뿐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나마 낙원도 (남자 인물이) 실제 등장하진 않죠.

그게 뭔가 절 돌아보게 하더라고요. 진짜 생각 없이 쓰는구나, 라는 반성을 했어요. 진짜 생각을 못했어요. 그래서 편집자가 작품집 제목을 성반전이라고 하자고 했었구나. 라는 걸 뒤늦게 알고;

김지원: ㅋㅋㅋ 아니 왜 ㅋㅋㅋ 그게 묘미잖아요. 아, 생각해보니 정말 특히나 단편 '작품집'의 묘미인 거 같기도 하네요. 누가 단편을, '나중에 모아놓으면 이런 모양이 되겠지 랄라랄라'하고 쓸 수 있겠어요.

박애진: 그것도 그러네요.

김지원: 써놓고 보니 조각조각 모아놓으면... 뭔가의 지도가 나오는데... 그것도 시간 간격을 한참씩 두고 쓴 것들이잖아요 ㅎㅎ 근데 그렇게 되돌아보면, 뭔가 그 지도가 애진님처럼 생겼음 깜짝 이게 내 쏘울의 얼굴! 이런 의미도 있겠다 메롱(...)

박애진: 흑....... 좀 충격이었어요.

외계인이냐, 에서 편집자가 보도자료에 쓴 말을 보고, 아, 이거였구나, 라고 또 한 박자 늦게 안 게, '나'는 '누구냐'가 아니라 '어떻냐'가 중요한 사람이었던 거죠. 근데 그 말이 어쩌면 성과 생식과 내밀한 감정이라는 공통분모로 묶인 이 작품집을 관통하는 말인지도 모르겠어요.

 

5. 이름의 국적, 소설의 현실감

김지원: 음 그럼 작품 관련으로는 마지막 질문을 할게요. 네므랑 짝짓기는 이름을 한국식으로 바꾸셨는데요.

굳이 국적 불명일 이유는 물론 없지만, 한편 굳이 '한국' 이름일 이유도 없다... 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근데 이건 외국 사는, '한국'도 그냥 여러 나라 중 하나의 나라로 일단 밖에서 봐야 하는 사람의 입장일 거 같고요. 국내에서는 아무래도, '한국'이라는 게 하나의 나라라기보다, '바로 내 주변 환경'의 느낌이겠죠? 그런 의미에서 바꾸셨을라나... 등등의 생각이 들었어요.

박애진: 현실에 환상을 살짝 섞어서, 마치 원래 이런 것처럼, 이 세계가 이래~ 이런 선언이나 설명없이 그냥 가는 거. 그냥 원래 이런 세계인 것처럼. 저는 그런 걸 '천연덕'이라고 하는데. 그런 거 굉장히 좋아해요. 네므나 완전한 결합의 경우 현실도 너무 추상적이었던 거죠. 국적 불명의 세계였기에 현실을 좀 더 강화하고 싶었고. 글 쓸 때 기본인 잘 아는 곳, 잘 아는 것에서 시작하는 거니까. 새삼 외국 자료;;;를 찾으며 헤매지 않고, 또 굳이 그럴 것까진 없으니까. 편집자가 우리나라 이름으로 바꾸자고 했을 때 든 생각이 위에 썼듯이 현실을 더 강화할 수 있으니 그게 더 낫겠다, 라고 생각해서 받아들여 수정했어요.

김지원: 음 그건 어케 보면 소설에서 '현실감'이란 독자(혹은 작가 개인도 포함)의 경험적 현실에 붙박이해야 한다는 얘기... 인 거 같기도 한데요. 자기 생활 환경이어야한다는 거잖아요.

박애진: 음.. 근데 또 그렇게 붙박으면 지우전, 욜란드, 이런 거 못 쓰죠. 기본적으로 이 작품집에 있는 글들 대부분이 현실에 매인 글들은 아니니까...

근데 이런 거죠. 진짜 그럴싸한 거짓말은 사실에 거짓을 조금 섞는 거거든요. 자기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 많은 독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도 실감나게 그리지 못하면서 자기가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를, 그 세계를 전혀 모르는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거든요. 그런 면에서 가까운 현실도 제대로 그릴 수 있고, 볼 수 있어야 하고, 그걸 잘 섞었을 때 환상, 가상도 같이 빛나는 것 같아요.

김지원: 흠... 하지만 또 한편 말씀하신대로, 지우전이나 욜란드, 또 짝짓기같은 건 완전 새로운 가상인 거 같지만 알고보면 현실과 접점이 있는 걸로 드러나는 거니까, 이건 또 반대 방향이려나요.

박애진: 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예전에 누가 해준 이야기인데, 실제 역사에 극적인 게 많다. 소설보다 현실이 더 드라마틱하다고 하잖아요. 그 좋은 소스들을 놔두고 왜 힘들게 다 만드느냐고. 이 말도 맞거든요.

- 김지원이 문득, 공부하는 입장에서, 그 좋은 소스들 제대로 캐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당신이 해보든가 하라면서 울분을 터뜨렸다.

하하, 네, 물론 실제 사실을 캐는 것도 쉽지 않죠. 아무튼 실제 사실이 주는 힘이 있어서, 그 힘을 가져다 잘 쓰면 이야기에도 무게가 실리니까요. 이름을 바꾼 건 그런 이유였습니다. 그 쪽이 더 재밌을 것 같았어요.

김지원: 흥 그러나 네므는 네므지(...)

이건 한국에서도 인형은 외국이름을 많이 쓰니까, 일까요...

박애진: 네므는 가릉이 같은 거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지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렇게 말하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릉이한텐 (네므한테처럼) 그러지 마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박애진: 요즘 가릉이 부르면 와요. 감동. ㅠㅠ (10년을 넘게 같이 살면서도 불러도 모른 척 하는 도도한 넘이었다.)

김지원: 흠, 그럼 독일에서 문예학(...) 하는 인간으로서, 번역의 문제도 생각하게 되네요. 그 쪽에서 그런 환경적 이유로 한국 국적의 이름이 되어야 했다면, 이쪽에서는 오히려 독어 이름으로 번역해야 하려나요.

박애진: ... 독일어로 바꾸어 번역되어도 재밌겠... *쿨럭쿨럭*

 

6. 생활 구조로서의 글쓰기?

도도하기로 이름난 고양이, 김지원이 놀러갈 때마다 매번 캬악거리기나 했던 가릉이가 이제 무려 이름을 부르면 온다는 얘기에 약간 쇼크를 받아서 잡담을 조금 더 하다가, 시간이 훌쩍 지나버려서 인터뷰를 슬슬 마치기로 했다. 마지막 닫는 질문으로, 글쓰기에 대한 질문을 하기로 한다 - 소설이라는 텍스트 결과물을 내어놓기 위한 과정인 글쓰기라기보다, 한 사람의 삶의 구조로, 생활 구조로서 체화되어버린 글쓰기 말이다 - 아니, 양자가 구별이 되는 것이던가? 구별이 안 되어서 즐겁고 슬프고 괴롭고 기쁜 일이던가?

김지원: 왜 그래 가릉… 쳇. ㅎㅎ 여튼, 음(헛기침), 마지막으로, 닫는 질문요.

말이죠, 나도 논문쓰다보니 약간 이입되는 건데. 그게 말이죠, 열심히 써서 결과물이 글인 게 아니라, 이놈의 글이 사람 생활을 글쓰기라는 모양으로 구조화시키죠. '작품'은 나오는 거지만... 이제 난 사는 거랑 쓰는 게 별로 구별이 안 되는 거 같기도 하고....

박애진: 아, 네!

김지원: 생활 구조로서 글쓰기를 채택하다 보면, 아무래도 음... 뭐 어떤 일을 하든, 무슨 일을 하나 오래 붙잡으면 그렇겠지만, 글도 오래 쓰다보면 소위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사는 게 좀 달라져요. 그러다보니 인간들이 글 오래 쓰다보면 메타 글쓰기(글쓰기에 대한 글쓰기 우에에에)로 자꾸 빠져버리는 경우도 많고....

여하튼, 그런 느낌이 있나염. 글을 쓰다보니 글쓰기 자체에 내 삶이 잡혀가는 느낌. 이게 글쓰기를 위해서는 또 결국 좋을까나 나쁠까나.혹은, 다른 사람에게도 함 추천해볼 만한 삶의 양식인가.

박애진: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나는 글감이 떠오를 때까지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살았어요. 그러다 그게 아니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았고, 매일 글쓰기를 생활화하는 게 너무 늦었죠. 매일 쓰다 보니까 생활이 글쓰기에 맞춰져요. 일어나서 잠 좀 깨면, 글 쓸 때 배고프면 집중 안 되니까 밥 적당히 넣어주고, 카페인도 좀 부어주고, 잠이 안 와서 괴로워도, 지금 못 자면 내일 너무 늦게 일어나게 되고, 그럼 글 쓰는데 지장 있으니 잠 안 와도 자는 거고. 운동도 글쓰기가 체력싸움이라 하는 거고. 그렇게 제 일상을 글에 맞추면서 처음으로 사는 것처럼 산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뉴튼이 달걀을 쥐고 시계를 삶았다는 일화가 있잖아요. 진짜 작가는 그렇게 살아야하는 게 아닌가. 머릿속에 다른 게 있으면 안 되지 않나. 그런 거. 난 언제쯤 시계를 삶는 경지로 갈까.

김지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건 근데 그걸 누가 목격하고 구제해 줘야 함 ㅋㅋㅋㅋ 걔는 가정부(maid)가 있었음(....) ....(먼 산)

박애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지원: 가릉이가 해 주겠음 연이가 해 주겠음...(한숨) 에휴 그놈들 ....여하튼 뭔 말인진 알아요 ㅋㅋㅋ

박애진: 위대한 예술가에게는 헌신한 내조자가 있었죠. 있어야 해. 안 그랬으면 혼자 어느 구석에선가 망가졌을 거. 뭐, 없으니 자급자족(응?;;) 하며.

김지원: ㅋㅋㅋ 같이 싱나게 망하는 애들도 많아요. 괜찮아요. (응?)

박애진: 하는데까진 해봐야죠. 지우전이 정말 집중하며 써서... (님하;; 괜찮지 않아 ㅋㅋㅋㅋㅋ)다 써 갈 무렵, 갑자기 집을 보게 되었는데, 순간 입을 떡 벌리며 내가 여기서 먹고 잤나, 싶을 만큼 가관이었는데, 근데 뭔가 막 뿌듯하기도 하고. 나, 열심히 썼나봐. 가릉아, 우리 시계 삶으러 가자. *하악하악* 하고...

김지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박애진: 네, 뭐, 그렇습니다. ^^;

김지원: 음... '진짜 산다는 느낌 들었다는 거 공감요. 생활구조로서도 괜찮습니다, 글쓰기, 여러분! (광고)

박애진: 그럼요! 건강도 챙기게 되고요!

ㅇㅇ!

김지원: 그럼 일단 여기서 마무리해요.

박애진: 고생하셨어요. 부비부비‐ 포오옥‐

 

인터뷰를 마치자 어느새 9시 반이 넘어있었다. 김지원은 서둘러 짐을 싸들고 학교로 갔고, 박애진은... 뭘 하셨을까? 김지원이 독일로 날아간 이후로 둘은 서로 오프라인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다. 오랜만에 얘기를 나눠서, 특히 글에 대해 실컷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다. 인터뷰 시작 전에, 글을 통해 독자가 작가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과정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보았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미 사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떨까? 글이라는 제 3의 것을 사이에 두면, 서로 별다른 매개 없이 소위 직접적인 대화만 할 때 보다 훨씬 풍부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을 때가 있다. 두 번째 작품집이 나오면 또 이런 기회를 갖게 되겠지. 이 인터뷰를 읽어주신 독자분들도 즐거우셨길 빌며, 곧 또 두 번째 작품집의 인터뷰로 찾아뵙도록 하겠다. 꾸벅. 

댓글 0
분류 제목 날짜
한중SF문화교류 [중국 초청 작가 및 SF단편 소개 ⑭] 엄정진 「U, Robot」 2018.05.06
한중SF문화교류 [중국 초청 작가 및 SF단편 소개 ⑬] 김창규 「뇌수」 2018.04.22
한중SF문화교류 [중국 초청 작가 및 SF단편 소개 ⑫] 김지현 「로드킬」 2018.04.08
한중SF문화교류 [중국 초청 작가 및 SF단편 소개 ⑪] 박성환 「레디메이드 보살」 2018.03.15
한중SF문화교류 [중국 초청 작가 및 SF단편 소개 ⑩] 김두흠 「사이보그가 되세요」 2018.03.15
대담 신규 필진 인터뷰-윤여경 작가님 2018.03.01
한중SF문화교류 [중국SF리뷰] 세계를 보는 또 다른 시선 : 대륙에서 온 여섯 통의 편지 2018.01.15
한중SF문화교류 [중국 초청 작가 및 SF단편 소개 ⑨] 전혜진 「옴팔로스」 2018.01.15
한중SF문화교류 [중국 초청 작가 및 SF단편 소개 ⑧] 유이립 「치킨 헤드」 2018.01.15
대담 콕! 필진 릴레이 인터뷰(4) 곽재식 작가 2017.12.15
한중SF문화교류 [중국 초청 작가 및 SF단편 소개 ⑦] 양원영 「천녀보살 신드롬」 2017.12.15
대담 제4회 SF어워드 수상자 인터뷰-김주영 작가4 2017.10.31
대담 제4회 SF어워드 수상자 인터뷰-김이환 작가2 2017.10.31
한중SF문화교류 [중국 초청 작가 및 SF단편 소개 ⑥] 김주영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 2017.10.31
한중SF문화교류 [중국 초청 작가 및 SF단편 소개 ⑤] 전삼혜 「안드로이드 고양이 소동」 2017.10.31
한중SF문화교류 [중국 초청 작가 및 SF단편 소개 ④] 곽재식 「영혼을 팔아도 본전도 못찾는다」 2017.09.29
한중SF문화교류 [중국 초청 작가 및 SF단편 소개 ③] 김보영 「진화 신화」 2017.09.29
대담 콕! 필진 릴레이 인터뷰(3)-손지상 작가1 2017.09.28
한중SF문화교류 [중국 초청 작가 및 SF단편 소개 ②] 배명훈 「예술과 중력가속도」 2017.08.31
한중SF문화교류 [SF기획 ②] 한국SF역사 관련도서 소개 2017.08.31
Prev 1 2 3 4 5 6 7 8 9 10 ... 25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