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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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그대로 거울이 안 망하는 게 용하고, 한 호 한 호 펑크가 안 나려면 사력을 다해야 하고, 1년에 한 권씩이나마 책을 출간하는 것이 기적 같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희망을 버리지 않고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 부지런을 떨었던 편집장의 노력과, 그에 부응하여 기꺼이 자원봉사와 실험에 투신한 여러 필진들의 호응으로 현재의 거울이 되었다. 지금은 거울 작가들의 글이 실린 단편집이 여러 권 출간되었고, 그 외에도 거울 출신 작가들의 개인 출간, 번역, 공모전 당선 등 거울의 영역이 무척 넓어졌다.
 그러나 거울이 작가집단이자 웹진으로서 중심을 지킬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거울이 꾸준히 내는 종이책에서 온다. 1년마다 그 해 웹진에 실린 단편들을 엄선해서 출간하는 대표 중단편선과, 하나의 소재를 중심으로 거울을 둘러싼 작가와 독자들의 작품을 모아 출간하는 소재별 앤솔러지, 독특한 작품 세계를 가진 작가의 단편을 모은 개인 단편선, 이렇게 3종이 거울을 대표하는 종이책 시리즈이다. 우연의 일치로 이번에는, 연간 대표 중단편선은 연말, 소재별 앤솔러지는 여름, 개인 단편선은 부정기적으로 출간되던 기존 관행을 깨고 대표 중단편선인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와 소재별 앤솔러지 [타로카드 22제]가 함께 출간되었다.

 실질적으로 기획하고 제작한 기간은 다르지만 같은 시간에 출간된 두 종이책을 보면서 감탄하셨을 독자 및 필진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언제부터인가 거울 종이책이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기존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수준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번에 출간된 두 권의 책은 그런 면에서 정점을 찍지 않았나 싶다.
 이에 필자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 거울 종이책 제작에 관한 기획 기사를 제안했다.

 첫째로, 정기적인 축제이자 협동과제인 종이책 제작 과정을 이렇게 저렇게 돌이켜보면서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그것을 기사로 남기고자 했다. 개봉했던 영화가 DVD로 제작되어 나올 때 보면 메이킹 필름이나 배우와 감독의 코멘터리 같은 것이 나오지 않던가? 그것은 제작과정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쓸모 없는 부속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과정에 흥미를 가진 사람에게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며, 참가했던 사람들에게는 뒷풀이이자 미래를 도모하는 자리이다. 이러한 자리를 마련해보는 게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둘째로, 6년 동안 종이책을 끊임없이 출간하면서 생긴 노하우나 팁을 공개하고 공유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로 메이저 출판사에서 쓰는 편집 원칙과 노하우가 공개됨으로써 수많은 동인 작가들이나 신흥 출판사의 편집자가 편집에 대해 길잡이를 얻었듯이, 거울 종이책 제작과정에 대해 공개함으로써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처럼 세세한 수준은 아니라도 외부 자본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종이책을 찍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이드라인은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편집장의 제작 과정 정리와, 두 책 제작진과 오프라인 인터뷰를 통해 이 계획은 실체화되었다. 제작노트를 뼈대로 하여 현장증언과 뒷이야기가 쉴 새 없이 난입할 이 기사는,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와 [타로카드 22제]에 참가한 사람, 구입한 사람, 흥미만 가지고 있던 사람, 두 책에는 흥미가 없지만 도대체 거울에서 어떻게 종이책을 만들까는 궁금했던 사람, 이제부터 종이책을 만들고 싶은 사람 누구에게나 의미와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진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추위와 눈발이 오락가락하던 1월, 인사동 한켠에 모인 제작진에게서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와 [타로카드 22제], 그리고 두 책으로 대표되는 지난 6년 동안 거울 종이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인터뷰 참가자들. 왼쪽부터 명, 유서하, ida, 진아, 자하.

참가 | 명, 유서하, ida, 진아, 자하
정리 및 기사 | 진아, 자하



 책 만들기의 시작: 기획과 마감

 연간 대표 중단편선은 거울 창간 기준으로 1년간의 웹진 수록작을 토대로 작품 선정에 들어간다. 이번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는 61호부터 72호까지 수록된 작품을 기준으로 선정되었다. 이런 식으로 1년의 기간 제한을 두고 표제작을 정한 것은 2006년 [변신!]부터 이어진 전통이다. 중단편선을 3년째 만들다 보니, 이후로는 한 해 한 해의 변화 양상을 담음으로써 웹진에 변화와 발전의 견인차가 되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 2004년부터 2008년까지, 거울의 발자취.

 이 취지는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었고, 거두고 있다. 제한 기간 한 달 전쯤에 편집장의 공지가 뜨면(“다음 호까지가 2009 중단편선 수록 대상입니다”) 그때까지 끙끙대며 글을 쓰던 작가도, 잊고 있던 작가도 왠지 서두르기 때문이다(아는가, 1년을 공친 기분! ……필자는 잘 안다……).

 [타로카드 22제]는 기획하고 원고를 모으는 과정이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와 비교하면, 아니, 어느 소재별 앤솔러지와 비교해도 흥미진진하고 드라마틱했다. 소재별 앤솔러지는 대체로 아주 사소한 깨달음이나(“뱀파이어 등장하는 글이 요새 많네요?”) 단순한 열망에서(“꼭 고양이를 소재로 하겠어요!”) 시작했고, 사실 이번도 시작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필진 게시판에 올라온 배명훈 작가의 아름다운 공지문과, 그 공지문이 담은 야심 찬 내용 때문에 이 기획은 무려 2년짜리 장기 기획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배경음으로 촌스럽게 천둥벼락이라도……)!




▲ 작가동원령. 펑크는 없다!

 이 기획은 다른 단편선에는 없던 두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첫째로, 타로카드라는 것이 하나의 세트이기 때문에 글 수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둘째로, 모든 글을 ‘신작’으로 받았다.


 진아 처음 공지는 2008년 2월에 냈지만 사실 시작은 2007년이었어요. 처음 얘기 나온 건. 2007년에 하자고 했다가 2008년에 동원령을 올린 거죠. 기획 특성상 절대 펑크 불가라고 올렸지만 펑크가 많았고.

 ida 그때도 걱정 많이 했죠. 일년에 책이 하나 나오고, 거기에 스물두 명의 작가가 참여를 한 적이 없는데...

 진아 있죠. 거울 책에 스무 명 정도는 많이 참여를 해요.

 서하 하지만 대표 중단편선에 실리는 작품은 이미 써둔 게 대부분이죠.

 ida 근데 이건 신작 위주라…… 그때 걱정 많이 하셨잖아요.

 진아 그때 아마 명훈 님이 거울 시간의 잔상 표를 만드신 적이 있어요. 이 기획을 하게 된 것도 글을 쓰고 싶지만 오랫동안 못 쓰신 분들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글을 쓸 수 있을까(하는 데서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한 번 진행을 한 건데…… 솔직히 이렇게 전 작품 신작 기획, 두 번은 안 할래요. 펑크도 많았고, 땜빵도 참 기적같이 누군가 나서서 해주셨고.

 ‘진아 만 30세의 주재하에 협상’이란 사실상 자신이 쓰고 싶은 소재를 온라인 가위바위보 형식으로 따내야 하는 가혹한 서바이벌이라서 여기에서도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다고 한다.

 ida 이게 참 재밌었던 게 타로카드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소재가 하나쯤은 있어서.

 자하 전 (고르기) 힘들었어요!

 진아 자하님 네 번인가 밀렸어요.

 서하 저도요.

 진아 카드 획득은 우선순위를 적고, 아무도 안 골랐으면 그냥 갖고, 같은 카드를 고른 사람이 있으면 저에게 각기 가위바위보를 메일로 보내서 이긴 사람이 획득하는 거였어요. 한 반쯤은 아무 경쟁자 없이 획득했고, 나머지 반은 한두 번 정도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두세 분이 너댓 번 연달아 지셔서……(자하님이랑 서하님 포함^^;).

 자하 결국은 펑크 난 걸로 바꾸기까지 해서 최종적으로 ‘죽음’을 쓰게 됐죠.

 서하 ‘탑’이나 ’운명의 수레바퀴’ 같은 거 하고 싶었는데 다 밀렸거든요. 아, 세 번째로 못 딴 카드가 아마 ’연인’…….

 진아 아, ‘연인’ 카드를 걸고 저랑 가위바위보 하셨죠. 명훈님이 심판 봐주시고.

 서하 다행인지 (결국 걸린 카드가) 제가 쓰려고 했던 내용과 아주 다르지는 않았어요.

 ida 진아님은 ‘연인’ 카드가 너무나 어울려요. 너무 재밌었던 게 사람들이랑 카드랑 너무 어울리는 거예요. 제가 그런 내용을 이글루스에 올렸더니 댓글이 어, 전 땜빵인데, 땜빵인데, 하고 줄줄이. ^^;; 전 그것밖에 안 남았는데... 그래도 맞는 거예요.

 자하 그것이 운명이죠. 영화도 처음 생각과 달리 캐스팅 된 배우들이 대박나기도 하잖아요.

 몇 번을 뽑아도 ‘연인’ 카드가 나왔던 진아님이라든가, 평소 글에 완벽주의적이면서도 가혹한 면모가 있는 서하님의 ‘심판’, 다른 곳에서도 타로카드를 뽑으면 거의 언제나 ‘운명의 수레바퀴’가 나오는 raile님, 너무나 잘 어울렸던 배명훈님의 ‘전차’ 등 타로카드 22제의 카드와 작가들은 운명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만남이었다.

 원고를 선정하거나 (대표 중단편선의 경우) 다 결정되고 나면 표제를 결정한다. 이 일 또한 만만치 않게 고민의 대상이라고 한다.


 진아 표제는 늘 힘들어요. 제목도 좋아야 하고, 내용도 너무 소품이거나 짧으면 좀 애매하고. 근데 해마다 한 편씩은 눈에 띄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다행히.

 서하 [눈늑대]도 좋았어요.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도 그렇고. 그런데 사실 [타로카드 22제]는 잘 모르겠어요.

 진아 아, 이거 원래 가제였는데…… 어쩌다가 그만 제목 고민을 다시 해야 하는 걸 잊고, 계속 [타로카드 22제]라고 불러버릇한 대로 그만.

 서하 아주 멋진 제목은 아니어도, 컨셉이 딱 들어오는 제목이긴 하죠. 전통에도 맞아요. 소재별 앤솔러지는 (수록 작품) 숫자가 꼭 들어간다는 그거.

 진아 근데 한 가지 아쉬워요. 원래 고양이 앤솔러지에는 제목에 고양이가 안 들어가고, 외계인 앤솔러지는 제목에 외계인이 안 들어가고, 얘도 타로카드가 제목에 안 들어갔어야 하는데. 고민을 했으면 좋은 제목이 나왔을 텐데 그게 두고두고 아쉬워요.

 자하 두 개를 동시 진행한 부작용이죠.

 마지막으로 원고를 기다리는, 너그러우면서도 가혹한 편집장의 자세를 들어보고, 실질적인 제작 과정으로 넘어가자.

 진아 마감을 많이 넘긴 분들 중에 내가 포기를 안 하면 나 때문에 책 제작이 늦어지는 게 아니냐고 걱정하신 분들이 있어요. 근데 작가가 포기 안 하면 편집자가 포기하진 않거든요. 그게 당연한 거죠. 그러니까 다른 상황에서도 가능하면 포기하지 않았으면 해요. 마감이 정해진 상황에서 제가 먼저 사정을 봐주고 마감을 더 늦춰주겠다고 말하긴 어려워요. 하지만 작가가 쓰겠다고 기다려달라고 하면 뭐, 어쩌겠어요. 그러니까 본인이 이야기해야 하는 거죠.


 제작의 시작: 일 맡기기

 마감이 지나고, 작품의 선정이 끝난 후 (또는 ‘타로’의 경우 글이 모두 모인 후) 편집장은 또 하나의 공지를 올린다. 책의 표지와 편집을 맡아주실 분을 찾는다는 공지인데, 실질적으로는 이렇게 진행된다고 한다.

 자하 디자이너나 내지 편집자는 어떻게 모으죠?

 진아 제작 시기가 다가오면 능력자들에게……(뻔뻔함과 죄책감이 섞인 특유의 몸짓을 한다).

 ida 진아 님의 “아잉~”으로 시작해요(웃음).

 서하 집에서 뒹굴뒹굴 구르고 있는데 MSN에서 갑자기 “이번에 표지 가능하신가요(라고 물으세요)?”

 ida “답짝―――”으로 시작한 다음에, “사랑해요”를 남발한 다음에……(웃음).

  난 그냥 하라고 해서 했을 뿐……(웃음).

 ida 그 시기에 사라지고 메신저에 접속을 안 해야……(웃음).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정리한 ida님의 말: “진아님의 귀여움에 넘어가느냐 아니냐가 운명을 결정한다.” 무서운 사실은, 귀여움에 약한 사람에게는 귀여움으로, 인연이 긴 사람에게는 강압으로 압박이 온다는 것. 이것이 진정한 편집장의 능력이다(농담……만은 아닙니다)!



▲ 진아님의 귀여움에 넘어간 결과: [타로카드 22제](왼쪽),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

 [타로카드 22제]의 표지 디자인은 유서하님이 맡았고, 내지 편집은 ida님이 맡았다. 표지 일러스트는 원래 ida님이 하기로 하셨으나 개인적인 마감 일정이 폭주하는 바람에 유서하님에게 넘어갔다. 내지에 들어갈 카드 그림은 Cass Lemon님이 맡아주셨다.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는 표지 일러스트와 내지 편집을 명님이 하시고, 표지 디자인은 역시 유서하님이 하셨다.

 ida 그런데 제가 안 해서 다행이에요(타로카드 22제 이번 표지가 훌륭해서……).

 아닙니다, ida님. 미완이지만 [타로카드 22제] 표지도, 지난 [변신!]과 [비몽사몽] 표지도 훌륭했습니다(미완의 표지는 표지 시안 이야기에서 공개합니다)! +_+

 이러한 능력자들도 첫 술에 배부르진 않았다.


 자하 세 분 다 이 번이 첫 책은 아니죠?

 서하 전 [15종 근접조우] 때 일러스트를 그렸던 게 처음이었어요.

  ‘2004’ 디자인하고 ‘2005’ 디자인, 가연 단편선 디자인. 셋 다 내지 편집도 했어요(이어지는 찬사 퍼레이드. “능력자 2……”(진아), “능력자 2가 아니라 원조 능력자인 거지”(자하), “거울의 기둥……”(ida)).

 ida [변신!]하고 [비몽사몽]하고 [멀리 가는 이야기]…… [비몽사몽]에서 제대로 동인지 만든 다음에 정신 차리고…….

 진아 예뻤어요~ [멀리 가는 이야기] 표지도 굉장히 좋았고…….

 ida 거기서 정신 차리고……(웃음).

 자하 [멀리 가는 이야기]가 이 책 이전에는 가장 최근인가요?

 ida 네.

 자하 거울에서 말고 전에 책을 만들어본 경험은요?

 ida 이런 식으로 정식 책을 만든 건 여기(거울)가 처음이고요. 예전에는, 컴퓨터가 이렇게 발달하기 전에는 종이에 써서 복사를 하고 그리고 했어요. 컴퓨터가 나온 다음에도 워드나 한글에 이렇게 기능이 많지 않을 때는 글씨를 써가지고 하나하나 잘라서 붙이는 거예요.
그래서 모여서 한 쪽은 풀 붙이고, 한 쪽은 맞춰서 자르고, 그렇게 했었어요. 다르죠, 지금이랑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부터 만화 동인지 활동 하고, 사람들이 개인지란 걸 내기 시작하면서 본인이 편집하고 그런 체제가 잡혔어요. 그 전에는 옆에서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보기만 하다가…… 시작부터 끝까지 한 건 거울 책이 처음이었어요.

 서하 저도 동인지였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만화 써클에서 동인지를 만들었고, 대학교 가서도 열몇 명씩 모여서 앤솔러지를 묶고, 그 다음에는 기회가 닿아서 정식 출판물 작업을 하게 되고 …….

 이 자리에 함께한 ida님, 서하님, 명님 외에도 거울에는 알게 모르게 실제 책 작업에 관여해본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 중 사정이 되는 분, 또는 사정이 조금 안 되지만 넘어와주는 분을 섭외하여 전문성과 일정 양쪽을 잡는 것이 편집장의 노하우, 라고 거창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작 과정: 인생만 예측불허가 아니야!

 시대를 풍미했던 순정만화 [아르미안의 네 딸들]에서 등장하는 명대사가 있다. “인생은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가진다.” 훗. 거칠게 비교하자면, 책 만드는 것은 인생살이만큼이나 곡절 많고 예측불허이다.

 서하 그래도 (제작)기간이 넉넉했기 때문에 밀리고 밀렸어도 기간 안에는 다 됐어요.

 진아 보통 거울 대표 중단편선을 11월에는 냈었는데 ida님 마감도 있고 해서 이번에는 12월로…… 그래서 중간에 그 많은 사고를 겪고도 무사히 나왔죠.

 서하 ([타로카드 22제] 표지 청탁을 갑자기 받았지만) [눈늑대]는 하루 만에 했는데, 얘네들([타로카드 22제],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은 한 달은 있었으니까…….

 자하 무려 시안도 받아봤었고요.

 진아 [눈늑대] 표지 디자인은 땜빵으로 하셔서 발매일 맞추느라 하룻밤 만에 하게 되었었죠. [타로카드 22제]는 보름밖에 시간을 못 드렸는데도 너무 잘 해주셔서……. 사실 이번 책 작업할 때 제가 개인작업하느라 그래서 지연된 시간도 좀 있긴 해요;;

 자하 이럴 때 이런 질문하면 좀 잔인한데 이번에만 지체됐나요(웃음)?

 진아 제가 지체시킨 건 이번이 제일 컸어요. 전에는 제 선에서는 그다지 지체되지 않았는데.

 자하 그 중에 한 번 저 범인이었어요. 자진납세.

 진아 (자하가) 교정을 하겠다고 말하고 굉장히 늦게 포기한 적이 있어요. 차라리 일찍 포기했으면 대타라도 찾았는데 너무 늦게 포기를 했어요. 왠지 못할 것 같았는데, 일단 본인이 하겠다고 말하면 하지 말라고 하기도 어려운, 미묘한 선이 있었어요.

 자하 그게 중간 관리가 어려운 점이지.

 ida 음, 못할 것 같으면 잘라야 하는군요.

 자하 못할 것 같으면 냉정하게 돌아보게 만들어야 하는 거죠.

 진아 네가 이 시점에서 포기를 하면 다음 사람은 이 짧은 시간에 이걸 다 해야 한다, 너는 지금 포기하든가 아니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걸 다 완수해야 한다는 걸 차근차근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자하 여러 번의 책을 만들었는데, 이번 말썽 수준은 어느 정도였다고 생각해요?

 진아 평균이었던 것 같아요. 두 권을 동시에 출간하는 게 힘들었지, 항상 이 정도의 사고는 있고. 이 아이들이 열넷, 열다섯 번째 책인가? 암튼 매번 사고가 터지는데, 일단 한 번 터졌던 사고는 대비를 하는데, 같은 사고는 안 터진다는……^^;
매번 새로운 사고가 어디선가 터져요. 교정하는 사람이 포기했던 적이 있고, 이번에는 일러스트가 마감으로 인해서 안 되고.^^; 바코드를 처음 넣으면서 그 작업도 있었고.
늘 일정을 짤 때 그 뒤에 한 달을 그냥 넣어요. 그래야 (예정된 기한 내에) 책이 나오더라고요.

 책을 만들 때 오탈자와 사고는 떼고 싶어도 뗄 수 없는 멍에이고, 벗어날 수 없는 친구란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덜 완벽하게 했음에 대한 변명이자, 정말 필연적인 한탄이기도 하다. 게다가 매년 책을 내는 거울에서는 언제나 제작과정에서 매번 다른 사고가 일어났는데, 이번 두 책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새로이 실험해본 것도 있어서 얻은 것도 많았다. 이에 대해선 찬찬히 이야기하기로 하자.


 완벽을 향한 몸부림: 미완과 시안

 2008년 대표 중단편선이었던 [눈늑대]는 표지 일러스트를 명님이 하시고 디자인을 서하님이 하셨는데, 이 결과물이 매우 멋지게 나오자 2009년에도 같은 콤비로 이어졌다. [타로카드 22제]의 경우에는 ida님의 일러스트가 미완이었고, 결국 일러스트 없는 표지가 완성되었지만 두 표지 모두 시안까지 나오는 열정적인 과정을 거쳤다.



▲ 명님의 표지 일러스트 시안 두 개.

 진아 필진 내부에서 투표했을 때는 둘 다 비슷한 표를 받았죠.

 자하 나는 (채택된) 그림을 지지했는데, 촌스러운 출판사 감각으로 눈에 확 띄는 (투구 같은) 오브젝트가 있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일러스트가 들어갈 거면.

  표지로 간다면야 나도 (채택된) 이쪽이 더 좋았는데, 책이 이렇게 두껍게 나올 줄 알았으면 저것도 좋았을 것 같아.

 서하 네, 저도 고민 많이 하다가 쟤(채택된 일러스트)를 골랐던 것 같아요.

 일러스트가 완성되고 채택된 후에도 그것을 바탕으로 책 표지가 완성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와 시도를 거쳐야 했다.

 서하 결과적으로 [눈늑대]보다 퀄리티가 더 좋아지지는 않은 것 같아서…… 시안을 보면서 진아님이랑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시간을 많이 들인다고 해서 디자인이 잘 나오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달까요).
시안 중에 위아래를 반씩 나눠본 것도 있고, 컬러도 여러 가지로 해보고. 작업할 때는 마음에 들었는데 떨어져서 보면 별로고. 이 폰트(희고 두꺼우면서 조각조각 갈라진 느낌이 나는 폰트)도 조각내는 작업을 하면서는 일러스트랑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해놓고 보니까 좀…….

 ida 느낌은 좋은데…….

 진아 괜찮았어요. 폰트가 멋있어서. 그런데 의외로 결과물은 너무 멋 부린 폰트보다는 (최종안) 폰트가 책을 더 돋보이게 해주는 것도 같고.

 자하 일러스트도 시간이 퇴색하는 느낌인데 폰트까지 그러면 좀 그럴 것 같기도 하고요.

 서하 본문 내용을 묘사한 일러스트라서, 책 전체를 대표하는 듯한 느낌이 있었는데…… 처음에 많이 망설였던 건, 채도를 가라앉히니까 색연필 터치가 많이 죽잖아요(원본 일러스트는 컬러였다―――자하). 밋밋해질까봐 텍스처를 세 장쯤 얹었어요. 낡은 종이 느낌 텍스처 같은 거(드로잉과 디자인 프로그램 문외한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였다!―――자하).



▲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 표지 시안.

 그러고 보니 실제로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가 만나서 직접 의견을 나눈 것은 인터뷰 날이 처음이라고!

 자하 일러스트레이터와 표지 디자이너의 관계는 감독과 각본가 관계 같기도 하네요.

 서하 원래는 서로가 서로를 괴롭혀야 하는데. 왜 이렇게 하셨어요? 막 그러고.

 자하 나의 위대한 그림이 죽었어, 막 이러고.

 진아 원 일러스트는 컬러였는데 흑백으로 나와서 좀 서운하진 않았는지?

  난 내 손을 떠나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하 명님을 전에 뵌 적도 없고 그래서…… 원래는 제가 말씀을 드려야 하잖아요. 색깔을 빼야 될 것 같다거나, 아니면 색깔을 더 얹어야 할 것 같다거나, 그래야 하는데, 진아님께 이렇게 말씀드려주세요(라고 떠넘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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