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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향수](Perfume: The Story Of A Murderer, 2006)의 한 장면. 이런 것을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제목은 사실 그냥 낚시다.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만 이 글도 에로틱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죄송합니다.) 본 글은 78호에 기획기사로 실렸던 씨리얼님의 'SF를 쓰려면 무슨 공부를 해야 하나요'와 연결이 될지도 모르고 안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씨리얼님의 기획기사에서 SF의 중심은 “다른 세계관에 대한 상상”이라는 얘기를 읽고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씨리얼님의 기획기사 덕택에 내가 여태까지 하던 불륜치정을 홀라당 그만두고 SF를 막 쓰게 된 게 절대 아니라는 사실은 이후 시간의 잔상 게시판을 보시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씨리얼님의 글에서 저 “서로 다른 세계관들의 만남”이라는 말씀은 언제나 가지고 있던 의문, 그러니까 “환상문학이란 무엇인가”와, “왜 환상문학을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발견하는 하나의 단초가 되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환상문학에 관한 두 가지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발견하는 모험을 함께떠나 보아요. 제 1번 이론편.


▲ [환상문학 서설]은 환상문학이라는 명칭 아래 이론화를 시도한 쯔베탄 토도로프의 저작. [덧없는 행복 루소론 환상문학 서설]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96년도에 출간되었다가 2005년도에 재간)

 1. 첫 번째 질문, 그러니까 “환상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으로 가장 상세하고 친절한 해설서는 개인적으로 꼽자면 쯔베탄 토도로프(Tsvetan Todorov)의 [환상문학 서설](Introduction a la litterature fantastique)이다.

 토도로프 아저씨는 ­――― 1939년에 태어나셨으니 올해 만 71세라서 아저씨라기보단 할아버지지만 어쨌든 ――― 현재 불가리아의 수도인 소피아에서 태어나서 공산정권을 피하여 1963년 프랑스로 이주하신 이래 문학 이론가로 명성을 떨치셨다. 위에 말한 저 [환상문학 서설](쯔베탄 토도로프 지음, 이기우 옮김, 한국문화사, 2005년 4월)은 토도로프 아저씨가 1970년에 출간하셨는데 환상문학을 처음으로 정식 문학 취급을 해서 장르 비평의 이론적 기틀을 세웠다는 면에서 여태까지도 토도로프 아저씨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된다. 물론 그 외에도 업적 많지만.


▲ 쯔베탄 토도로프. 1939년 불가리아에서 태어났다. 2006년 현재 프랑스 국립 고등 연구원(CNRS) 미학(철학)부문 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덧없는 행복-루소론 환상문학 서설], [비평의 비평], [산문의 시학], [상징의 이론], [러시아 형식주의], [구조시학] 등이 있다.

 내가 느끼기에 [환상문학 서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토도로프 아저씨의 말투다. 참 어찌나 조근조근하고 상냥하고 세심하신지. 왠지 친절하고 소심한 지도교수님이 연상되면서 내가 아무리 못 알아듣고 헤매도 야단치지 않고 잘 가르쳐줄 것 같아서 안심이 된다. 그리고 실제로 독자가 헤매지 않게 아주 단순한 문장으로 쉽게 써 놓으셔서 완전 감동이었다. 문학 이론서 중에 이렇게 친절한 책 많지 않다. 정말이다. (책을 불어로 썼는데 그게 토도로프 아저씨한테도 외국어였기 때문에 문장이 더 단순해진 건지도 모른다. 그치만 책을 읽다 보면 아저씨 성격도 원래 차분차분한 거 같다는 느낌이 막 든다. 좋은 사람 같애.)

 하여 그 친절하고 조근조근한 말투로 토도로프 아저씨가 주장하시는 것은 문학도 학문이기 때문에 다른 과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체계를 정립한 이론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다. 물론 그 이론이 막 절대 진리라서 순수과학에서 하듯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학 작품에 모두 동등하게 적용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문학이라는 학문 분야, 그 중에서도 환상문학이라는 문학의 하위분야를 근본적으로, 그리고 상당히 광범위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틀을 정립하려는 것이 [환상문학 서설]의 목적이다.

 그리하여 그 “학문 이론으로서의 체계 정립에 관한 대표적인 예시”로서 환상문학이라는 장르를 규정하면서 이미 많이 들어보셨을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망설임” (l’hesitation, “주저함”이라는 번역도 있다)을 환상문학의 특질로 규정하고, 이러한 망설임을 촉발하는 소재와 주제와 그 기술적인 연결방식과 엄정한 의미에서는 환상문학이 아니지만 그래도 어째 비슷해 보이는 인접 장르와의 관계에 대하여 수많은 예를 들어 무척 상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날아다니는 양탄자는 ‘도구의 환상’에 속하며…”)

 물론 이 책 한 권이면 환상문학 완전정복 뭐 이런 건 절대 아니고, 세상 일이 다 그렇듯이 이 책에도 한계는 있다. 토도로프 아저씨도 그 점은 서론에서 미리 언급을 하신다. 근데 이게 또 완전 감동스러운 것이, 뭐라고 하시냐 하면 전부 다 설명할 수 없다고 해도 “우리가 넘어설 수 없는 한계를 인식하고 있”기만 하면 되고, 오히려 이론이라는 게 언제나 불완전해서 전부 다 설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불완전성이, 역설적이게도, 생존을 보장한다”고 하신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물론 원 문맥에서는 문학 이론이라는 학문 분야의 생존을 보장한다는 말씀이지만 나는 어째 문학 이론가의 생존(혹은 생계)도 같이 보장한다는 말씀 같아서 마음이 짠했다. 그러니까 요 이론 완전 정립하고 나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지면 그 다음부터는 뭐 해서 먹고 살 건지 진지하게 고민했던 외국인 노동자의 애수가 가슴 깊이 느껴지지 않냐 말이다. 게다가 결론은 ‘완전정립은 불가능하니까 평생 이거 계속 하면서 먹고 살 수 있어, 괜찮아 걱정하지 마’라는 거다. 이다지도 상냥하고 다정하실 수가.

 2. 그리하여 토도로프 아저씨 완전소중하신데 단 한 가지 불만 혹은 “한계”가 있다면, “환상문학이란 무엇인가”는 끝내주게 설명을 해 주시지만 “왜 환상문학인가”는 별로 자세히 얘기를 안 해 주신다는 사실이다. 결론에서 살짝 다루기는 하는데, 말씀인 즉슨 이렇다. 문학에서 환상의 기능은 첫째로 현실을 배경으로 했을 때 있을 수 있는 검열을 피하게 해 준다는 것인데, 여기서 검열이란 정부라든가 사회의 검열도 있지만 작가 개인의 자기 검열도 포함된다.

 그리고 두 번째로 문학에서 환상의 좀더 본질적인 기능은 문학의 지평을 넓힌다는 것이다. 문학이란 기본적으로 “하나의 균형(equilibre / equilibrium)에서 그와 유사한, 그러나 같지 않은 다른 균형으로의 이동”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주인공이 하나의 현실에서 다른 현실로 옮겨가면서 “자기 것이 아닌 법칙을 받아들이고” 변화하는 과정을 서술한 것이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변화하는 과정이 꼭 현실적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을 설명하면서 토도로프 아저씨 말이 점점 더 꼬여서 뭔 소린지 잘 알 수가 없게 돼 버린다. “문학은 그것이 자기 자신을 불가능하게 하지 않는 한은 가능해질 수 없다. 우리가 말하는 것이 여기에 실제로 존재하거나, 하지만 그 경우 문학이 설 자리가 없어지고, 아니면 문학이 설 자리가 있으면, 더 이상 아무런 할 말이 없다.” 아저씨 헷갈려요…….

 뭐 어쨌든 토도로프 아저씨는 여전히 완전소중하시기 때문에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경험상 보아하니 조근조근 친절하게 잘 나가다가 이런 식으로 말이 꼬인다면 그 이유는 보통 글 쓴 사람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잘 정리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왜 환상문학인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미궁에 빠졌는데, 그러던 와중에 혜성같이 나타나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이 미하일 바흐찐(Михаил Бахтин / Mikhail Bakhtin) 아저씨 되시겠다.


▲ 미하일 바흐찐. 1895년 러시아 모스끄바 남부의 오룔에서 태어났다. 빌리뉴스와 오데싸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1916년 뻬뜨로그라드 대학 역사, 문학부에서 수학했다고 알려졌으나 공식적인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1963년 [도스토예프스키 시학의 제 문제]를 출판하였고, 이를 계기로 바흐친에 대한 문학사적 재평가가 활발히 전개되었다. 그의 소설론, 카니발론, 대화론 등은 현재 어문학, 미학, 철학은 물론 문화학, 민속학 등 거의 모든 인문학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3. 바흐찐 아저씨 원래 이름을 전부 늘어놓자면 미하일 미하일로비치 바흐찐 (Михаил Михайлович Бахтин)인데 아버지 이름도 미하일이었다는 사실 외에 이름에 큰 의미는 없다. 1895년에 태어나서 1975년에 돌아가시기까지 대단히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겪으셨는데 1929년에 “비합법적 우익 지식인 모임”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까자흐스딴의 꾸스따나이라는 곳으로 유배를 당했다. (우리나라에서 “좌파” 빨갱이가 주적이라면 당대 쏘련에서는 “우파” 지식인이 주적이었다. 억압의 본질은 똑같은데 좌우만 바꾼 입장 차이라니 재미있지 않은가.) 이후 60년대 초까지 약 30년 넘게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고, 그러다가 1945년에 다발성 골수염이 심해져서 한쪽 다리를 절단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기회가 되는 대로 계속 논문도 쓰고 강의도 하고 그랬는데 정권에 이미 한 번 찍힌 몸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자기 이름으로는 그 논문들을 발표할 수가 없어서 친구들 이름을 빌려서 내고 그랬다. 근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악조건 속에서 분투하며 틈틈이 써낸 논문들이 하나같이 주옥과도 같은 명저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는 주로 바흐찐 아저씨 문학 이론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철학 논문도 무진장 흥미롭고 하여간 여러 모로 박학다식하셨다. 멋져.

 그러나 바흐찐 아저씨는 다 좋은데 환상문학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아쉽게도 환상문학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바흐찐 아저씨가 좋아하는 건 도스또옙스끼, 메니포스의 풍자, 그리고 카니발이다. 도스또옙스끼는 여기서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메니포스의 풍자(Мениппова сатира / Menippean satire)와 카니발은 환상문학에 있어서 몹시 중요하다.


▲ 미하일 바흐찐의 국내 번역된 책들. [장편소설과 민중언어],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 [말의 미학] 등

 4. 도스또옙스끼하고 카니발은 대충 알겠는데 그럼 “메니포스의 풍자”는 뭐냐? 라고 물으시면…… 사실 나도 잘 모른다. 메니포스의 풍자 얘기는 [도스또옙스끼 시학의 문제](Проблемы поэтики Достоевского, 1963)라는 책에 자세히 나오는데, 이 책을 보시면 바흐찐 아저씨가 주장하시어 왈, “메니포스의 풍자”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으음……) 문학의 한 장르로서, 어떤 작품의 다음의 요건들을 갖추고 있으면 대충 메니포스의 풍자라고 우길 수 있단다.

 그 요건이란 “웃음의 요소를 강조”하고, “그 어떤 현실과의 유사성에도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극단적인 상황들”과 “환상적인 요소”를 “유연하게” 포괄하는 것 등등이다. 그리고 이러한 환상과 극단적인 상황들을 통하여 “이제까지의 삶을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평가하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 메니포스의 풍자라는 장르의 “사상적-철학적인 목적”이다.

 한 마디로 웃고 즐기는 사이에 인생관이 변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근데 또 (바흐찐 아저씨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웃음의 요소가 꼭 그렇게까지 강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안 웃긴 메니포스의 풍자도 근현대 문학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대로 인생관과 세계관의 변화를 가져오는 “극단적인 상황”을 위해서 환상적인 요소가 자주 사용된다.

 여기서 말하는 환상적인 요소는 토도로프 아저씨가 규정한 것처럼 꼭 현실에 한 발을 걸치고 머뭇머뭇 망설여야만 인정해주는 게 아니라 진짜로 뭐든지 상관없다. 바흐찐 아저씨의 주장에 따르면 메니포스 장르의 주인공은 “하늘로 올라가기도 하고 지옥으로 내려가기도 하며 알려지지 않은 환상적인 땅을 여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자유로운 환상과 상징의 요소들은 “때로 극단적으로 거친 자연주의와 유기적으로 결합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자연주의란 나무나 풀이 나온다는 얘기가 아니고 인간의 “자연적인,” 그러니까 짐승같은 면을 거침없이 드러내보인다는 말을 점잖게 표현하는 전문용어다. 그리하여 메니포스 장르에서는 “사상적이고 철학적인 진실”“사람들이 다니는 대로변, 창녀집, 도둑의 소굴, 술집, 시장 광장, 감옥, 비밀스러운 종교집단의 에로틱한 난교파티” 등 그 어떤 배경과 사건을 통해서나 다 드러날 수 있다고 한다. 읽다 보면 에로틱한 난교파티를 통해서 사실적이고 철학적인 진실을 나타내는 저거 나도 조만간 꼭 한 번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치솟는다.

 5. 어쨌거나, 소재가 뭐가 됐든지간에 중요한 건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통하여 “사상적이고 철학적인 진리”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글을 읽어서 뭔가 얻는 게 있기만 하다면야 그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서 작가가 작품 속에서, 혹은 작품을 가지고, 뭘 하든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저 “사상적이고 철학적인” 어쩌고 하는 건 사실은 등장인물들이 현실적인 인간이 아니라 각각 하나의 관념을 대변하여 작가의 통제하에 놓이지 않고 각자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폴리포니하게 얽히고 설켜서 돌아다니고 기타 등등 다른 깊은 뜻이 있지만 그건 환상문학하고 관계 없으니 여기서는 대충 넘어가기로 하자. 러시아 사람한테서 너무 많은 것을 알아내려고 하면 다친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문학에서 환상적인 요소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테크닉의 일종일 뿐이지 그 자체로 목적은 아니다. “사상적이고 철학적인 진리”가 목적이니까 그 진리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가 그렇지 않은가 ――― 즉 단순하게 말하면 글을 잘 썼냐 못 썼냐가 중요하지 환상문학이냐 순문학(……)이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도 된다. 갈수록 마음에 든다. 바흐찐 아저씨 의외로 내 타입이었네.

 사실 토도로프 아저씨 식으로 “도구의 환상”이니 “과장의 환상”이니 구분해 가면서 장르 공식에 맞추기 위해서 글을 쓰는 사람은, 아주 서투른 작가가 아닌 한, 없다. 작가가 글을 쓰는 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글에서 중요한 것은 작가가 하려는 그 이야기이지 날아다니는 양탄자가 등장했느냐 안 했느냐는 그렇게까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토도로프 아저씨의 이론은 많은 견본들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분류하여 흐름을 짚어내고 체계를 세운다는 면에서 중요하지만 개별 작품으로 들어가서 그 작품 자체가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생각할 때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바흐찐 아저씨의 이론은 이런 공백을 메워주는 데 유용하다. (본인은 그런 공백 따위 굳이 메워주실 생각 없었겠지만.) 테크닉은 테크닉대로 장르 특성으로서 인정하되 주제가 되는 “사상적-철학적인 진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6. 덧붙이자면 이 메니포스 장르에 대한 정의를 읽다가 깨달은 건데, 바흐찐 아저씨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인간은 자유롭다”인 거 같다. 문학 이론을 보면서 그걸 쓴 이론가의 성격 등속을 추측하려고 드는 건 학문적인 측면에서 별로 좋은 버릇 같지는 않지만 글에는 사람이 보이는 법이라 어쩔 수가 없고 그 사람을 제대로 보면 또 글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있기 때문에 글을 읽을 때 이 사람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리하여 가만 보아하니 바흐찐 아저씨가 주장하는 중심적인 세계관은 카니발이다.

 7. 카니발이 뭐냐하면, “웃음의 원리를 통해서 구성되는 모든 <의식적-구경거리> 형식”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꽉 짜인 일상의 체계와 엄숙한 종교적 예식 등을 모두 벗어나서, 정해진 장소 (주로 시장이나 광장)에서 정해진 시간(사순절 직전이라든가) 동안 모든 일탈이 허용되는 것이다. 가면을 쓰고 분장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계급도 위계도 사라지고, 해서는 안 되었던 일들이 모두 허용된다. (에로틱한 난…… 퍽)

 그리하여 축제성은 “전체성, 자유, 평등, 풍요의 유토피아적 왕국에 일시적으로 들어가는 민중들의 제 2의 삶의 형식”이 된다. 그러니까 한시적이지만 천국이라는 얘기이고, 이 한시적인 천국이 때가 되면 정기적으로 돌아오는 삶의 일부였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바흐찐 아저씨의 다른 책인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Творчество Франсуа Рабле и народная культура средневековья и Ренессанса, 1965; 이덕형, 최건영 공역, 아카넷, 2001년 5월)에 나온다. 꽤 괜찮은 책이고 번역도 무척 잘 되었지만 한국어 번역판 책값이 삼만오처넌에 연보랑 찾아보기까지 795쪽 짜리라서 관심 있거든 한 권 사 보시라고는 도저히 말 못 하겠고 도서관에서 혹시 지나가다 눈에 띄거든 26쪽부터 35쪽 부근까지 카니발의 개념에 대한 설명만 읽어보시면 되겠다.

 어쨌든 바흐찐 아저씨의 주장은 그러니까 일상과 카니발은 세계의 질서를 이루는 두 축이라는 것이고, 이 “뭐든지 해도 되고 뭐든지 될 수 있는” 카니발적인 세계관을 문학에 구현하여 “사상적이고 철학적인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 메니포스의 풍자라는 장르다.

 II.
 자 그리하여 토도로프 아저씨의 환상문학 서설과 바흐찐 아저씨의 메니포스의 풍자를 완전정복했으니 우리는 이제 동유럽의 주요 환상문학 이론을 앉은 자리에서 막 다 마스터해버렸다. (정말?) 그럼 이런 이론들을 갖다가 어디다 써먹느냐 하는 것이 다음 질문이다. 공부한 이론들을 어떻게 써먹어야 잘 써먹었다고 소문이 날지 또 함께 모험을 떠나 보아요. 제 2번 실전편.


▲ 7월 31일자 네이버 오늘의 문학에 게재된 은림님의 단편 {만냥금}

 1. 그러니까 네이버 오늘의 문학 꼭지에 실렸던 은림님의 “만냥금” 같은 작품 말이다. (http://navercast.naver.com/literature/genre/826) 특정한 식물 가까이에 있으면 천원짜리가 만원짜리로 바뀌는 꿈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그러면서 주인공이 계속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의심하고, 그러므로 도입부만 보면 토도로프 아저씨의 환상문학 정의에 들어맞는 것도 같다. 그러나 그 뒤로 가면 그 환상적인 일들이 그 나름대로의 법칙에 따라 현실에서 확실히 벌어지긴 했기 때문에 토도로프 아저씨의 정의에는 안 맞는 것도 같다. 그런데 그래서 뭐 어쨌다고?

 사실 “만냥금”에서 중요한 건 실제로 돈이 많아졌냐 안 많아졌냐 혹은 그 만냥금 어디 가면 구할 수 있나요 뭐 이런 문제가 아니다. (어디 가면 구할 수 있는지는 좀 알면 좋겠지만.) 작품에는 부동산 투기나 노숙자 문제 등등 현대 한국의 아주 현실적인 문제들이 위에 말한 환상적인 요소들과 매끄럽게 섞여 있다. 그리고 이런 요소들을 맛깔진 입담으로 능란하게 엮어서 작가가 결과적으로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물욕이다.

 그러므로 바흐찐 아저씨의 메니포스의 풍자 이론을 적용하자면 “만냥금”은 환상적인 장치들을 이용하여 주인공을 “극단적인 상황” (없던 돈이 저절로 막 생긴다거나)에 처하게 함으로써 “사상적이고 철학적인 진리” (인간의 물욕)를 보여주며 “현실을 재조명”하는 작품이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욕심에 눈이 멀어서 앞뒤 못 가리는 “자연주의적인”, 쉽게 말하면 조낸 추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말이지. (만냥금이 식물이라서 자연주의가 아니라고!)

 그리하여 이 작품을 볼 때는 “기존의 삶을 새로운 관점에서 평가”하여, 우리 사회가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어디가 잘못돼 있는가, 욕심이 얼마나 사람을 눈멀게 할 수 있는가, 돈과 가족이라는 두 개의 가치가 대립한다면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등등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다.


▲ 2007년 1월 [에스콰이어지]지가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중문화 예술의 첨병 14인' 중 1인으로 선정한 배명훈, 제1회 과학기술 창작문예 중편부문 당선자 김보영, 환상문학 웹진 《거울》을 창간한 편집자 겸 작가 박애진. 독특한 개성과 자기 색깔을 가진 신인 작가 3인의 단편을 수록한 앤솔로지이다. 2006년 출간된 [시소게임]에 이은, 행복한책읽기 '작가의 발견'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2. 그럼 현실하고 상관이 없어 보이는 환상문학 작품은 어떻게 할 건데? 예를 들어서 [누군가를 만났어](김보영, 박애진, 배명훈, 행복한책읽기, 2007년 1월)에 실린 가연 작가님의 {신체의 조합} 같은 단편 말이다. (행복한 책읽기 2007년 간 만이처넌. 거울 시간의 잔상에서는 본문이 삭제됐다.)

 {신체의 조합}을 보면 제목하고는 반대로 사람 팔다리가 막 떨어져! 제조일자 오래된 팔다리는 가만 두면 상하니까 막 갈아끼워!! 신선한 팔다리 얻기 위해서 막 서로 죽여!!! 현대 한국은 절대로 아니고 현실에서는 결단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소설에서 막 일어나!!!! 그래 이런 경우에는 어쩔 거냐고?

 {신체의 조합} 같은 걸 읽을 때는 토도로프 아저씨의 환상문학론이 크게 소용이 없다. 토도로프 아저씨 이론에 따르면 전혀 망설일 필요 없이 딱 보면 현실이 아닌 이런 작품은 “환상” (fantastique)이 아니고 그거랑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장르인 ‘경이’인지 ‘기이’인지 뭐 그런 데 속하거든. 그치만 이거 아니고 저거로 분류한다 해서 작품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막상 가연님이 소설 쓸 때는 토도로프 아저씨의 환상문학 이론 같은 거 전혀 신경 안 쓰셨다는 데 오십원 건다.

 그보다 {신체의 조합}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보기에 고립과 유대감, 그리고 권력의 문제다. (같은 주제가 가연님의 다른 작품인 {학교}에서도 변주된다.) 살기 위해서 서로 물고 뜯어야 하는 조낸 살벌한 삶의 방식에서 서로 도와서 존재하는 알흠다운 삶의 방식으로 이야기가 옮겨가는 게 중요하단 말이지. 팔다리가 막 떨어져서 갈아 끼워야 한다는 설정이 주인공이 겪는 “극단적인 상황”이라면, 그 갈아끼우는 과정에서 서로들 저만 살겠다고 덤벼들어서 벌어지는 유혈낭자한 사정들이 일종의 “자연주의”적 요소이겠고, 주인공이 그걸 겪으면서 나아가서 그래도 다른 인간과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가능성을 위해 희생하는 후반부가 말 그대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셈이다.

 그러니까 {만냥금}과 {신체의 조합}, 그리고 여기에 지면과 기타 여러 가지 사정상 언급하지 않은 수많은 우수한 환상문학 작품 모두, 환상과 비현실의 요소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우리 삶 속의 문제들을 창의적으로 재조명하는 방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환상은 현실의 거울이고, 그래서 이 웹진 이름도 거울이고, 아 후자는 크게 상관 없는 것도 같지만, 기타 등등 기타등등.

 III.
 이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하는 이유는, 한국에서 환상문학을 접근하는 태도가 근 십년간 변한 게 없어서, 생각하면 무진장 답답하기 때문이다.


▲ 환상문학은 이런 상상력의 작품밖에 없는가.

 1. 한국에서 환상문학에 대한 이론은 (최소한 내가 본 것들은) 대체로 비슷비슷했다. 우선 작품의 소재 (마법사, 검, 용, 엘프, 기타등등 기타 등등) 혹은 작품이 발표된 매체 (PC통신, 인터넷)를 가지고 작품이 속하는 장르를 구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거론하는 작품이라는 것도 대충 [반지의 제왕](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김번, 김보원, 이미애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 2007년 5월), [해리 포터](조앤 K. 롤링 지음, 김혜원 옮김, 문학수첩, 1999년 11월) 시리즈랑, 국내 작품 중에서는 [드래곤 라자](이영도, 황금가지, 1998년 5월) 정도로 한정돼 있다. 그러니까 소위 ‘경계문학’이라고 하는, 예를 들어 위에 찬양한 {만냥금} 같은 종류의 작품에 대해서는, 그 작가가 소위 “순문학”계에서 이미 신춘문예 등을 통해 “등단”한 사람인 경우를 제외하면, 평단에서 아예 말도 꺼내지 않는 분위기더라는 얘기다. (이런 거 아시는 분 있으면 제보 바람.)

 그리고 환상문학은 오로지 마법사와 검과 용과 엘프 등등이 나오는 판타지밖에 없다고 외치는 이 분들은 또 한결같이 환상문학을 “새로운 가능성”이라고 외친다. 2000년도에 발간된 이론부터 2007년도 이론까지 네다섯 개쯤 봤는데 어찌나 천편일률적이신지 이제는 그 새롭다는 말이 새롭지 않은 지경이 돼 버렸다. 근데 새로워서 뭐 어쩌자는 건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책 팔기에 좋다는 뜻인가?

 2. 또 그래서 책 파는 쪽을 슬쩍 들여다보면 출간된 책의 홍보문구도 맨날 똑같다. 2007년도에 출간된 [누군가를 만났어]의 띠지에는 커다란 글자로 “기발하다, 그리고 재밌다!”라고 박아넣은 아래에 “재미있고 신선한” 이야기, “새로운 상상력,” “기발하고 엉뚱한 이야기!”라고 느낌표를 몇 개씩 달아가며 강조해 놨다. 2009년에 출간된 [커피 잔을 들고 재채기]도 뒤표지에 “지루한 일상을 뒤집는 발칙한 상상력” 운운하는데 기본적으로 홍보방식이나 작품에 대한 인식이 다를 게 없다.


▲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의 뒷표지. "지루한 일상을 뒤집는 발칙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한국판 기담"이라고 적혀 있다. 또한, "젊은 작가들의 재기발랄한 단편들을 만나보자!"라고도 적혀 있다.

 3. 그리고 “새롭다”고 인식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환상문학을 특정 연령대만이 소비하는 한시적인 오락거리로 치부하는 시선도 여전한 거 같다. 2002년도에 나온 어떤 문학 비평에서는 국내 환상문학의 기원을 PC통신과 연관시켜서 “아마추어 작가”들이 생산하고 “청소년층”이 소비하는 문학으로 상당히 단정지어 말한다. (“디지털 시대의 환상문학에 대한 고찰”, 김재국)

 2002년이면 오래 돼서 그렇다고 넘어갈 수나 있지, 2007년도에 나온 다른 논문을 봐도 환상문학이 “문학성을 담보하지 못한 채 멀티미디어의 악영향 하에 양산되는 문제적인 장르로 인식된다”고 정곡을 찌르는 말씀을 하셨더라구. (“’판타지’ 소설의 이데올로기 연구,” 안지나)

 근데 마치 그런 인식이 문제라면서 ‘판타지 문학’을 제대로 문학 취급해서 분석하려는 것처럼 잘 나가다가 이 논문의 결론은 판타지 문학이 “왜곡된 서구지향성”을 드러내며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를 마치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것처럼 위장한다”고 비판한다. 뭐 거기까지는 이 저자께서 [드래곤 라자]가 무척 맘에 안 들었나보다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는데 내가 마음에 걸리는 건 이 논문에서 [드래곤 라자] 한 작품만 중심적으로 다루어 놓고는 결론에서 그 뒤에 ‘양산된’ 판타지 작품들도 다 똑같다고 일반화를 하는 것이다. 아 진짜 왜들 이러셔. “[드래곤 라자] 이후에 출판되고 쓰여진 대부분의 판타지 소설들, ……그리고 지금 쓰이고 있는 여러 작품이 그러한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아직도 받고 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으니 니네는 앞으로도 영영 고 수준밖에 못 할 거라고 저주하는 걸로 보이는데 기분 탓인가?

 4. 얘기가 나온 김에 또 하나 마음에 안 드는 점을 짚고 넘어가자면 이런 논문들이나 혹은 위에 언급한 [커피 잔을 들고 재채기](김보영, 김선우, 김이환, 박애진, 은림, 이영도, 임태운, 정보라, 정지원, 정희자 지음, 황금가지, 2009년 9월)라든가 [누군가를 만났어]라든가 다른 책들의 홍보문구를 보면 모두 다 “청소년층”, “젊은 세대”, “젊은 작가들”을 강조한다. 그런데 여기서 “젊은 작가”라고 하는 건 실제 나이보다도 그러니까 “주류” “순문학” 판에서 봤을 때 초짜라는 거다. 이유는 신춘문예에 당선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거야 그 사람들 생각이지. 신춘문예 당선 안 됐다고 글 못 쓰나? 당선연도 입력 안 하면 아래아 한글이 안 열리는 것도 아니고. 엠에스 워드는 미쿡 소프트웨어라 그런지 잘 열린다.

 5. 그래서 이쯤에서 원래 했던 얘기로 돌아오자면, 바흐찐 아저씨의 이론을 읽고 흥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는 대체로 주류문단 혹은 순문학계의 관점에서 환상문학이라는 장르를 따로 떼어놓고는 이리저리 자기들 멋대로 재단하는 경향이 있는데, 바흐찐 아저씨의 이론에 따르면 이런 벽을 타파할 수가 있을 거 같거든.

 바흐찐 아저씨는 사실 도스또옙스끼를 분석하기 위해서 메니포스의 풍자 이론을 주장하셨다. 그러니까 고전문학 이론 속에 환상의 요소를 언급했단 말이지. 그런데 위에서 말했듯이 이 아저씨의 고전문학, 혹은 순문학 이론은 {만냥금}이나 {신체의 조합} 같은 환상문학 작품을 이해하는 데도 적용할 수 있다.(라고 나는 우긴다.) 다시 말하자면 환상문학하고 순문학하고 그렇게 멀지 않다는 뜻이고, 순문학을 보는 눈으로 환상문학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싫음 말구.)

 여기서 바흐찐 아저씨의 이론이 몇십 년이나 전에 외국에서 처음 나온 이론이라는 사실은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 같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나의……;) 관점으로 재발견하고 바흐찐 아저씨 말씀대로 “재조명”해서 우리 (내……;;) 맘대로 써먹을 수 있는 거지. 일단 이론 자체는 학문적인 기반이 이미 검증되었으니 안심해도 되고.

 6. 그러니까 이론이나 학자 이름이 중요한 건 아닌데,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제 일단으로 대한민국에 환상문학이 마법사와 검사와 엘프와 용이 나오는 ‘판타지’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그 환상문학 작품을 생산하는 작가들이 모두 인터넷 상에서 비뚤어진 욕망을 발산하기 위해 오늘도 게임하다 말고 삘 받아서 텍스트창을 열고 아무렇게나 나오는 대로 직직 써발기는 한가하고 미성숙한 인간들도 절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니 근데 게임하다 삘 좀 받으면 어때?)

 그리고 제 이단으로는 그러므로 작품을 읽을 때 작가가 하려는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했느냐 (기발한 상상력, 작가적 창의력, 발칙한 ……젠장) 뿐만이 아니라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도 좀 같이 봐 달라는 정중한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소설을 읽는 목적은, 그렇게 따지면 쓰는 목적도 마찬가지겠지만, “무엇을” 말하느냐와 “어떻게” 말하느냐의 양쪽을 다 즐기기 위해서니까.

 그러므로 “극단적인 상황과 환상적인 요소를 통해서 사상적이고 철학적인 진리를 드러낸다” 오케? 우리 모두 환상문학을 통해서 인생과 세계를 막 재발견해 보아요. 투쟁♡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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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 10.02.01 04:59 댓글 수정 삭제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II의 6번 내용 일부 본문발췌하고 링크 걸어가요^^
    target=_blank>http://cafe.naver.com/boksilmia.cafe

    카페 회원들에게 참고가 될 것 같아서요

    그런데...;
    아무리 낚시성 제목이라고 하지만
    그대로 옮기기가 살짝 난감하네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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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라 10.02.01 20:37 댓글 수정 삭제
    아 예 죄송합니다. 사실 문학이론이라 좀 딱딱한 얘기이기 때문에 너무 진지한 제목을 붙였다간 아무도 안 읽을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다가 그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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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명훈 10.02.01 22:07 댓글 수정 삭제
    보라님은 진짜 훌륭한 분 같아요. 위인...
    작년에 누가 SF에 대해서 물어서 이런 대답을 한 적이 있어요. "SF가 무슨 특정한 주제에만 한정되는 특수문학인 것처럼 아시는 분들이 많은데(혹은 그러기를 바라시는 분들이), 실제로 SF는 그렇게 불편한 장르가 아니다. SF는 인간사에서 나타나는 거의 모든 주제를 다 다룰 수 있는 보편문학에 더 가깝다. 거기에, SF가 아니면 표현하기 어려운 세상과 인간에 대한 깊이있는 고찰이 추가되니까, 꽤 할만한 장르다."
    사실 <타워>도 설정 자체가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부 다 담을 수 있는 소재라는 점에서 꽤 편리했거든요.
    재미있는 글이었어요. 다만, 앞으로는 제목에 부합하는 글들을 좀 더 많.... 판타스틱에 실린 글을 보니 그쪽으로도 충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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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라 10.02.01 23:45 댓글 수정 삭제
    감사합니다.

    제, 제목에 부합하는 글은, 저기, 그, 그러니까, 노력하겠습니다. 깽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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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로냥 10.02.02 02:35 댓글 수정 삭제
    보라님 멋있다...... 하지만 역시 저도 제목에 부합하는 글이 그... (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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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라 10.02.02 09:26 댓글 수정 삭제
    예 저기 감사합니다;;;; 노력은 해 보겠지만... (저도 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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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본이 10.02.04 21:46 댓글 수정 삭제
    '아니 근데 게임 하다 삘 좀 받으면 어때?'

    심금을 울리는 명문이십니다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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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 10.02.04 22:11 댓글 수정 삭제
    -_-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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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라 10.02.05 12:10 댓글 수정 삭제
    잠본이님 아스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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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패리온 10.02.08 23:48 댓글 수정 삭제
    제목보고 혹해서 들어왔다가 환상문학 견습생 한명이 좋은 글 읽고 갑니다. 평소 제 가치관이 '선입견에 엿을 먹이자!' 였는데. 저도 모르게 선입견이 생긴것같네요. 좋은 깨달음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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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라 10.02.11 12:20 댓글 수정 삭제
    아 저 낚시해서 죄송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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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영 10.02.24 10:51 댓글 수정 삭제
    토도로프아저씨도 멋지지만 보라님도 멋지네요. 어려운 이야기인데 너무 재미있게 써 주셔서 막막 웃으면서 읽었어요. 좋은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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