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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2월, 3년에 걸쳐 1년에 한 편씩 개봉했던 영화 [반지의 제왕]의 마지막 편이 개봉하며 긴 장정을 마쳤다. {왕의 귀환}이란 부제와 반대이기도 하고 묘하게 잘 어울리기도 하는 끝이었다. 오랫동안 합당한 자리에 앉지 못하고 황야에서 살며 자신의 핏줄을 부정했던 자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순간에 새 시대가 시작되고, 옛 시대는 종말을 고한다. 시작과 끝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기에.



▲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프랜차이즈는 성공했다. 아라고른이 왕이 된 것처럼.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반지의 제왕] 3부작은, 그와 함께 또는 뒤에 개봉했던 많은 판타지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를 이끌어낸 선두주자이자 일등공신이었다. 매년 한 편씩 개봉하는 3부작 이상의 영화가 흥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서 우리는 나니아와 해리 포터를 스크린으로 보았고, [매트릭스]와 [캐러비안의 해적]도 3부작으로 만났다. ‘판타지’가 일반인의 베스트셀러 리스트와 홈쇼핑에 등극했고, 사회적인 주목을 받았다. 2009년에는 장르문학 관련지가 아닌 곳에서 ‘판타지’를 메인으로 내건 문학상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이 기사에서는 이 모든 것이 시작되었고 진행되던 그때의 분위기를 돌아보고, 영화 [반지의 제왕]이 던져주었던 의미를 본 후, 이후에 대해서 간략히 짚어보고자 한다.


 3년에 걸친 신화의 현장

 장르에 대해 관심이 있고 정보를 입수할 정도로 열정이 있는 사람은 대부분 [반지의 제왕] 1편이 개봉하기 전에, 아니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을 영화화한다더라 하는 말이 떠돌기 시작할 때부터 언젠가 이 꿈의 작품이 현실이 될 날을 목하 기다려 왔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과연 그 신화 속의 인물들을 누가 연기할 것이며 그 광활한 싸움의 현장과 사악한 입김이 뿜어져 나오는 악의 탑과 순결한 계곡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가 아무래도 가장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갈라드리엘은 케이트 블란쳇이 맡았다거나, 아르웬 역을 리브 타일러가 졸라서 맡았다거나, 크리스토퍼 리가 사루만 역을 맡았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려와 때로 적역이라고 무릎을 치고, 때로 분노하면서, 전체적으로는 기대에 두근거리면서도 실망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섞인 기다림의 시간이 흘러갔다.
 마침내 공식 홈페이지와 트레일러가 떴을 때 모든, 아니 거의 모든 우려가 날아갔다. 그림에서 보았던, 머릿속에서 보았던 초록빛 호비튼이 있었다. 부시시하지만 인자하고 세월이 느껴지는 잿빛 방랑자가 있었다. 시간이 정지된 듯한 낙엽 속의 리벤델이 있었다. 그리고 영화만의 특징으로, 절세미모를 자랑하는 프로도와, 역시 절세미모와 스워시버클링을 자랑하는 레골라스, 무시무시하게 등골을 훑는 전율의 나즈굴과 같은 보너스까지 있었다! 물론 원작에서 사랑스러웠던 것들 몇 가지가 어둠 속으로 숨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2001년 12월, 개봉이 미뤄지는 우여곡절을 겪은 후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가 개봉되었다. 옛 숲과 톰 봄바딜이라는 중요하고 사랑스러운 부분이 빠졌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스펙터클한 화면과 압축미, 그리고 약간의 각색에 힘입어, 반지의 제왕 원작 중 가장 지루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반지 원정대를 흥미롭게 그려내는 데에 성공했다. 더불어 원작에서 고도의 상징처럼 묻혀 있는 반지의 해악을 영상과 음향으로 그려내며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는 동시에 영화에 알맞은 표현방식을 찾아냈다.



▲ 모두가 꿈꾸던 장면들 중 하나.

 당연히 반지의 제왕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쏟아졌다. 영화 세 편을 만들겠다고 돈을 받아서는 한 편에 다 쏟아붓고선 나머지 돈을 뻔뻔스럽게 계속 청구했다는 영화 제작 에피소드, 그렇게 펄펄펄 곱절로 뛴 제작비를 1편으로 이미 다 벌어들여서 남은 분량도 더 효과에 돈을 들인다는 이야기, 반지의 제왕에 출연하고 난 젊은 배우들은 모두 개런티가 일약 상승했지만 반지의 제왕의 경우에는 3편을 다 몰아서 찍었기 때문에 배우 재계약 문제는 없을 거라는 이야기, 호주의 군인들이 우르크하이에 동원되었다는 이야기, 호비트들은 실제 배우와 난쟁이 대역이 번갈아가면서 찍어서 합성했고 세트도 두 개씩 만들어서 비율을 실제처럼 보이려고 했다는 이야기 등 촬영과 제작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넘치도록 돌아다녔다. 영화를 보고 난 동인녀들의 패러디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은 듯 만개하며, 이후 웹툰의 길을 열었다. 이러한 장르에 대한 관심과 면역이 없던 언론권에서는, 반지의 제왕이 이제 와서 이런 열광을 자아내는 데에 대한 철학적이고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담론을 갖다 붙여 설명하느라 바빴다. 그러나 정말 팬들 사이에서 공통적인 주제는, 저 3년짜리 연간 연속극을 어떻게 기다려야 하느냐였다.
 1편과 2편 사이에 기다림에 지치거나 추억처럼 묻혔어야 할 시간이 또 다른 기다림으로 불타는 나날이 된 것은 DVD라는 매체 때문이었다. 메이킹 필름과 인터뷰, 오디오 코멘터리와 같은 여러 가지 서플이 들어갔다는 것만으로도 기다릴 DVD에, 감독이 편집한 확장판까지 나오자 요새말로 이것은 “은혜로운 떡밥”이었다. 극장판에서 시간상, 또는 플롯상 간단하게 언급하고 지나갔거나 없앤 부분들을 다시 살린 확장판이라니, 매니아의 생리를 철저히 파악하고 그들의 주머니를 졸라 매다 못해 즙을 짜서 두 번 죽이는 행위…… 라고 해도 정작 그 매니아들은 확장판 안 나오느냐고, 좀더 빨리 내라고 아우성치는 기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DVD, 영화 음악 사운드 트랙, 클립, 패러디, 절대반지에 관련된 여러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반지의 제왕은 이미 1편으로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 기억나시죠?

 2002년 12월, 기다리던 연간 연속극의 중간편이 개봉되었다. 모두들 그동안 걱정했다. 그렇게 긴 1편으로도 3권 중 1권을 겨우 소화했는데, 원작 2권부터는 전쟁과 얽히고 설킨 인물들간의 이야기와, 무엇보다도 셋으로 나뉜 반지 원정대의 행보를 모두 소화해야 하니 시간이 얼마나 늘어날 것인가? 아니 그 이전에 물리적으로 우겨넣을 수 있는 양이긴 한가? 물론 개봉에 앞서 공개된 트레일러는 그런 의심을 80% 정도 걷어 주기에 충분했지만 실제로 3시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영화를 봐야 한다면 체력적인 문제로 영화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뚜껑을 열고 보니 우려는커녕 찬탄만이 흘러나왔다. 앞에서 걱정한 모든 것을 훌륭히 소화해 냈을 뿐만 아니라 백색의 기사로 거듭난 간달프의 위용과 이중인격 골룸이라는 세기의 캐릭터까지 얻은 것이다. 1편에 비해서 이리저리 뜯어고쳐서 영화에 알맞게 고친 부분이 많아서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다. 3편 왕의 귀환에 맞추어서 아라곤을 띄우기 위해서인지 아르웬과 아라곤 사이의 로맨스, 아르웬의 선택, 아라곤이 왕으로 거듭나는 모습 등을 중점적인 플롯으로 엮어 넣은 것이 가장 대표적으로 의견이 엇갈린 부분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원작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을 정도로 극적 요소를 강화한 것이 2편 성공의 요인이었다. 특히 어머니 부대.(...) 주위 사람들의 부모님 세대는 모조리 2편 때 보고 거 재미있겠다 싶어서 1편부터 다시 보고 3편을 기다리신 분들이 많다. 나중에 발매된 확장판에서는 또다시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긴 분량이 추가되었으며 추가된 분량이 대개 유머러스한 것이라 색다른 2편을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압권은 에오윈이 왕님에게 정성 어린 음식을 바치지만 테러가 되어버린 씬으로, 이것만 클립이 떠서 여기저기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3편이 2003년 12월에 개봉되었다. 개봉되기 전부터 여기저기에서 MSN 대화명이나 홈페이지 일정으로 ‘그분이 돌아오시는 날’ ‘왕님 영접하는 날’ 등등 이날을 기다리는 해바라기들이 피어나더니, 12월 17일 개봉에서 24일 개봉으로 미뤄졌을 때 우리나라만 안 밀리는 초유의 현상이 일어나고, 각종 대형 극장과 예매 사이트에서 아주 일찍부터 예매 일정이 뜨는가 하면, 메가 박스의 경우 매일매일 예매 시간표에 들어가서 확인하면 반지의 제왕 상영관이 하나씩 늘어나는 신기한 현상까지 일어났다. 그래서 “왕께서는 그냥 돌아오시지 않고 극장가를 초토화시키면서 돌아오신다”는 속설이 떴다. 개봉날 표를 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뛰어다녔고, CGV에서는 “예매하지 않으면 올해가 가기 전에 볼 수 없다!”는 극강한 광고 문구로 예매를 부채질하기도 했다.
 마지막 편 개봉에 맞추어 극소수이긴 하지만 1편과 2편의 확장판을 함께 상영하는 극장이 있어서 1, 2, 3편을 극장에서 이어서 볼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되었다. 허리의 압박보다는 웅웅거리는 극장 스크린과 음향의 압박이 더 센 자리였지만 어쨌든 필자도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정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엉덩이와 다리에는 쥐가 났다. 그러나 나오면서 필자와 친구가 나눈 잡담은 “내년에 확장판 3편을 포함한 1, 2, 3편 연속 상영을 해 줄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었다. 환상의 세계로 데려가주는데, 머리와 엉덩이와 다리의 아픔이 대순가. 고작 그 정도 대가로 행복해질 수 있다면, 세상에서 제일 싼 행복권이 아닌가.



▲ 주의! 기다리는 즐거움은 유료입니다.


 새 시대의 찬란한 시작, 옛 시대의 희미한 몰락

 앞서 길게 이야기했듯이 영화 [반지의 제왕]이 차례대로 개봉되었던 3년간은 살아 있는 신화의 현장이나 다름없었다. 처음에는 안다는 사람들만, 이후에는 그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반지의 제왕이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그에 관련된 소스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원작을 빌려주었지만 한 달이 가도록 한 챕터를 못 넘기던 친구가 스스로 책을 사서는 완독하는 일 따위가 벌어졌다. 반지의 제왕 관련 샵이 각종 웹 쇼핑몰에 열렸다. 그 자체로 고루한 이야기이며 환상의 이야기인 반지의 제왕이 SF를 방불케 하는 첨단 시대에 이토록 인기를 누리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기도 하고 신기한 만큼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대가 [반지의 제왕]과 같은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열광할 준비가 되어 있었든 그런 옛것, 그러나 무시해 버릴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이야기를 열망하고 있었든 진실은 하나다. 영화가 영화로서 재미없었다면 애초에 이런 현상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오로지 위대한 작품을 다른 매체로 훌륭하게 변환한 피터 잭슨의 몫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영화답게 되기 위하여 부각시킨 부분과 포기한 부분을 보았을 때에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반지의 제왕] 영화판은 몹시 힘차고 약동적이다. 물론 무시무시하고 어마어마한 악의 대군을 묘사한 부분도 인상적이지만, 영상과 음향으로 느낄 수 있는 악의 성질은 원작에서 느끼던 것과는 매우 다르다. 원작에서의 악은 데네소르가 신석을 보고 미칠 정도로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마음을 서서히 더럽히고 물들이는 마약과도 같은 동시에 감히 항거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무언가였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악의 편이 공포스럽게 느껴졌던 것은 반지원정대에서 호빗들이 나무 뿌리 밑에 숨고, 그 바로 위로 덮쳐누르듯 앉은 나즈굴과, 나즈굴이 부름에 따라 온갖 곳에서 기어나오던 독충이다. 인간으로 위장하려고 노력했으나 결코 가릴 수 없는 사악한 본성과 한기가 뿜어져 나오던 그 목소리는 또 어떤가. 나즈굴에게는 결코 정면으로 맞설 수 없고 눈속임으로 피하는 거나 겨우 가능할 것 같은 절대적인 무언가가 있어 보였다. 골룸도 나중에 “죽여요? 사람이 죽여서 죽는 존재가 아니에요.”라고 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악의 향연은 끝이다. 백만 대군이 몰려온다 해도 공포스럽지 않다. 그것은 영화에서 그려내는 방식의 문제도 있지만, 기본 정서가 인간과 정의와 신의에 대한 믿음과 희망 쪽으로 몰아 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혹자는 이를 B급 정서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는 나쁘지 않다. [두 개의 탑]에서 피터 잭슨은 간달프를 밖으로 내몰아 최후의 순간이 되기까지 간달프 없이 인간들만으로 헬름 협곡에서 버텨내도록 만들었으며, 간달프가 데리고 돌아온 병사들 또한 자신의 왕을 위하여 돌진하는 용맹한 기마대였다. 검은 문 앞에서 사우론의 입과 맞서서 조용히 눈을 피하지 않던 왕 대신, “언젠가 인간과 요정의 동맹이 깨지고 모두가 쓰러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오늘은 아니다!”라고 하면서 열정에 찬 연설을 하는 왕이 있는 세계가 영화판 [반지의 제왕]인 것이다.
 대신에 사라진 장면들을 보자. 사라진 대표적인 장면 중 하나는 옛 숲이다. 톰 봄바딜은 세상 누구보다도 더 먼저 이 세상에 존재하던 사람이다. 즉 커다란 줄기에서는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나, 그는 자기 자신의 주인인 자로서 자신의 영토를 설정하고 그 안에서 자족하면서 사는 은거인의 모습을 보이는 매력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역시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자이다. 그리고 또 다른 대표적인 삭제 장면은 사루만이 샤이어를 꿰차고 앉아서 프로도 일행을 맞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메인 스토리가 끝난 이후에 질질 끌 수 없어서 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앞서 아이센가드에서 간달프와 사루만의 대면 장면이 빠진 것과 맞물리면 사루만의 ‘몰락’과 호빗 일행의 ‘성장’이 대비되는 부분이 빠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이센가드에서 사루만이 간달프의 말에 꼼짝 못하는 부분이나, 비천해질 대로 비천해져서 호빗들의 반격에 도망가는 부분은 1편에서 당당한 사루만과 얼마나 천지차이인가. 또한 사루만의 더러운 손길로부터 샤이어를 지키기 위하여 자위군(...)을 조직하는 메리와 피핀은 처음에 여행을 떠날 때에 비하면 얼마나 달라졌으며, 사루만을 죽이려는 행위를 막는 프로도는 얼마나 큰 인물이 되어 있는가. 샤이어 부분이 빠짐으로써 영화는 새 시대의 시작과 옛 시대의 몰락이라는 큰 두 축 중 새 시대의 시작에 확실한 무게를 두는 작품이 된다.
 그렇게 놓고 보면 원작과 영화 사이에 매우 확실한 대조점이 보이는 듯하다. 지난 세기에 씌어진 원작은 무시무시한 악을 무찌르는 동시에 세계의 아름답고 선하고 오랜 것들 또한 사라지는 슬픈 운명을 보여 준다면, 영화는 그럼에도 살아서 오래도록 번영하고 평화를 나눌 인간의 시대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점이 이 영화의 미덕이자 또한 한계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새 시대는 시작되었는가?

 그리고 6년이 흘렀다. 서두에서 조금 말했다시피 사회는 판타지 영화, 3부작 영화라는 것의 맛을 알았고, 이후로도 계속 그 정도 ‘떡밥’이 없을까 찾아다니면서 묻혔던 고전 판타지들이 새로이 조명받았고, 없으면 만들어내자 정신으로 1억 원짜리 문학상이 판타지를 찾는 현상까지 일어났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새 시대의 시작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반지의 제왕]이 보여주었던 미덕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선택했을 악덕만이 남은 시대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이것은 장르문학 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세상의 분위기와 관련된 우려이기도 하다.
 세상을 위협하고 모두가 힘을 합쳐야만 할 것 같은 악의 무시무시한 면모는 사라졌다. 그러나 악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좀 더 교활한 모습으로, 당신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라는 가짜 명분을 내세우며 선의 자리를 모조리 대체할 법한 기세이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성장하는 판타지의 원형적인 테마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야기’를 팔아먹음으로써 생명을 유지하는 언론사와 출판사에서 찾는 것은 ‘돈 되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1억 원이나 되는 고료를 내걸고 당선된 작품에 대하여 “판타지와 성장물의 결합이 신선하다”라는, 판타지의 근간에 대해 소름 끼치도록 무지한 평이 나온다. 일반 독자들은 판타지 이면에 숨은, 그것이 가지던 신화적 순기능은 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좋은 유아적 환상’을 대리만족해주길 바란다. 아예 딴 세상 이야기는 관심 없고, 차라리 누군가가 어린 시절에 잠시 휘갈겼던 이야기, 개인적인 연애사 같은 것에나 일희일비하면서 그것이 세상의 전부이고 세상 이야기의 모든 것인 양 매달리기도 한다.
 세상은 변했다. 머릿속에서 굴러가는 상상, 옛날 사람들이 했다던 영웅담과 같은 것 말고도 재미있어 보이는 것, 해보고 싶은 것이 지천에 널렸다. 이야기 따위 듣고 싶어도 사는 게 각박해서 돌아보는 것만으로 죄책감 느껴질 만큼 바쁘다. 아니할 말로, 문학 말고도 세상에 미칠 거 세고 셌다. 그럼 세상의 다른 것들이 주지 못하는 것을 문학이 줄 수 있는가? 판타지가 줄 수 있는가? 장르가 줄 수 있는가?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찾고, 만족할 만한 형태로 내밀어 보여줄 수 없는 한, 새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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