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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신규 필진 인터뷰(1) - 이나경 작가

2017년 1월, 이나경 작가님은 단편 ‘다수파’가 2016년 독자우수단편 최우수작으로 선정되어 거울 필진이 되셨습니다. 새로 도입된 거울 정규필진 가입절차를 통해 배출한 첫 필진이어서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들이 많이 설레었다는 후문입니다. 탄탄한 문장과 아름다운 이야기로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나경 작가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어서 수줍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독자들께 간단히 자기소개를 해 주세요.

 
이나경
 

안녕하세요. 이나경입니다, 정도만 말해도 대충 자기소개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이나경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거울은 그간 여러 방식으로 새 필진을 맞았습니다. 작가님은 어떻게 거울의 필진으로 활동하게 되셨나요? 필진으로 활동하려고 결심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나경
 

‘다수파’라는 소설이 2016년 독자우수단편 최우수작으로 선정되어 필진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을 쓰면 공모전에 낸다.’ 아마추어 작가로서는 이것이 거의 당연한 수순일 텐데요, 제 경우에는 어쩌다 보니 본말이 전도되어 ‘공모전에 내려고 소설을 쓴다.’의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쩐지 소설은 죽어라 쓰는데 지나고 보면 남는 게 없더라고요. 한참 만에 이를 깨닫고 ‘소설을 쓰면 그냥 다음 소설을 쓰자.’로 마음을 고쳐먹었지요. 그 결과 집에 굴러다니는 소설들이 제법 많아진 것입니다. 뒤늦게 그것들의 쓰임새를 찾다가 우연한 기회에 거울 독자단편 게시판에 올리게 되었고요. 시시한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만….
그 우연한 기회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거울에 가입한 지는 꽤 오래되었습니다만 사실 제가 컴퓨터 화면으로 글을 읽는 것이 아주 취약하거든요. (전자책은 곧잘 읽는 걸 보면 명조 글꼴이 아닌 소설을 읽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끔씩 중단편선을 주문하러 들르는 정도였습니다.
막연히 필진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필진이 되는지는 몰랐어요. 이 경우 적극적으로 활로를 개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 사람이 있지요. 저는 후자입니다.
그런데 작년 가을에 또 밀린 책을 왕창 주문하러 왔다가 그날따라 게시판을 기웃거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거기서 또 마침 독자우수단편 심사방식 변경 공고문을 보았고요. 여기서 잘만 하면 웹진 거울의 필진으로 활동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근두근!
그래서 가장 아끼는 소설을 아낌없이 올린 것입니다.

 
 
 

언제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하셨고, 그 계기는 무엇인가요? 처음으로 창작한 소설 내용도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나경
 

저는 대학교 문학동아리 소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졸업 후 직장 2년차인 2008년 6월부터 소설을 쓸 생각을 진지하게 했습니다. 결국 계기는 ‘직장 2년차’라고 할 수 있겠네요. 더 직접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오랜만에 만난 동창에게 요새 재미있는 책 뭐 있냐고 물었다가 추천받아 읽은 책이 하도 실망스러워서 “이럴 거면 내가 쓰고 말지.” 하고 분개한 것입니다. 휴, 두 가지 다 새삼 너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군요.
상황이 이러하니 처음 창작한 소설을 소개함에 있어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요, 직장 2년차에 처음 쓴 소설은 ‘귀향’이라는 제목의 SF였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몰랐던 저는 백일장의 형식으로 물꼬를 텄습니다. 즉 ‘보조개에 관한 글을 쓰세요.’라고 스스로 주문한 것입니다. 그렇게 완성한 내용은 히스토리 채널 ‘고대의 외계인들’에서 흔히 볼 법한 것입니다. 결국 보조개에 관한 이야기였지만요. 지금 생각하면 썩 잘 쓴 글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사실 저는 2005년에 어엿한 소설을 한 편 완성한 적이 있습니다. 명색이 문학동아리의 일원으로서 문집에 한 편은 실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뒤늦은 책임감에 부랴부랴 50매 분량의 스릴러를 썼었어요. 제목은 ‘밝은 미래’입니다.
저는 ‘귀향’을 쓴 다음에 ‘밝은 미래’를 80매 정도로 새로 고쳐 썼어요. 수학의 오류를 깨달은 수학 교사가 그로 인해 곤경에 처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것은 제 소설 중 그럭저럭 잘 풀린 케이스 중 하나로, 현재 교보문고 사이트에서 미스터리노블 시리즈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소설을 창작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이나경
 

리듬!(단호) 그러나 이유를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길어질 테니 인터뷰 리듬을 고려하면 생략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네요. 아무튼 리듬, 무조건 리듬입니다!

 
 
 

특별한 취미가 있으시면 소개 부탁드려요.

 
이나경
 

특별한 취미가 바로 글쓰기랍니다.

 
 
 

좌우명이나 가장 좋아하는 글귀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것을 좌우명으로 삼거나 가장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이나경
 

좌우명은 없습니다. 다만 그 비슷한 건 있네요.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를 본 후로 닥터 슐츠가 죽기 직전에 한 대사가 저도 모르게 떠오르곤 합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네, 물론 죽을 걸 알면서도 참을 수 없는 때가 있긴 하죠 그런데 문제는 이게 너무 빈번히 떠오른다는 거예요. 일을 해야 하는데 농땡이를 피울 때, 글을 써야 하는데 영화를 볼 때, 살이 쪘는데도 치킨을 주문할 때, 일찍 일어나야 하지만 늦게까지 놀 때 등등 흥청망청 닥터 슐츠를 소환해 왔으니 이 기회에 참회하겠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고요.

 
 
 

작가님을 화나게 하는 것과 기분 좋게 하는 것은 각각 무엇인가요?

 
이나경
 

– 화나게 하는 것: 차도로 내려와 택시를 잡는 사람들, 버스기사에게 행선지를 묻는 사람들, 꿈을 꾸다 갑자기 깨어나는 것, 맛없는 커피, 드라마가 캔슬되었다는 소식, 후텁지근한 날씨, 숫자 두 개만 맞은 로또, 동물 학대, 미세먼지, 흥정을 고려해 높게 책정된 가격의 물건, 불편한 자리에 참석하는 것, 모든 종류의 회식, 미리 세워둔 계획이 어그러지는 것, 러시아워
– 기분 좋게 하는 것: 버스 기사들이 자기들끼리 손인사하는 것, 평일 저녁에 마트 장보기, 스토리가 뚜렷한 꿈, 어릴 적 친구의 이름이 우연히 떠오르는 것, 아이와 동물의 정다운 모습, 5만원에 근접하게 채운 서점 장바구니, 공룡 이름을 발음하는 것, 잠들었던 손목시계를 흔들어 깨우는 일, bogo, 어린이의 사고방식, 5년째 하고 있는 게임의 기록을 경신하는 것, 지도를 보며 여행 동선을 짜는 것, 녹차 맛의 모든 식품, NETFLIX 오리지널, 기계식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 돈!

 
 
 

2017년에 ‘이것만은 꼭 이루고 싶다.’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나경
 

하하, 벌써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여지가 있는 일이니 자세한 소식은 가을쯤 전해드리겠습니다, 라고 멋대로 선약을 잡아봅니다.

 
 
 

‘앗, 이것은 내 인생 소설이다!’라고 느낀 소설이 있으신가요? 어떤 소설이며 왜 그렇게 느끼셨나요?

 
이나경
 

스티븐 킹의 ‘호흡법’. 저는 이 소설의 구석구석을 다 사랑하지만 특히 설정을 마구 낭비한다는 점이 가장 좋습니다. 천일야화를 쓰고도 남을 설정으로 중편 하나를 쓰고 말아버리는 절정기 작가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죠.
사실 스티븐 킹도 내심 아쉬웠는지 어땠는지 여기 나온 설정을 가지고 후속 단편을 (제가 알기로는) 한 편 더 썼어요. 그 소설은 별로였습니다. 액자가 훌륭하다고 그림까지 좋은 건 아니더라고요.
하지만 ‘호흡법’은 다 좋습니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이나경
 

오다 마사쿠니의 ‘책에도 수컷과 암컷이 있습니다’. 최근 읽은 건 아니지만 추천하려니 이 소설이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멀쩡한 척하는 미친 이야기이자 미친 척하는 멀쩡한 이야기입니다.

 
 
 

거울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나경
 

카테고리가 골고루 활성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손거울을 제작해서 굿즈로 팔아주세요! 로고랑 소설 문구 같은 거도 프린트해서. “박승휴 망해라” 이런 거…. 헉! 좋은데!

 
 
 

글도 안 썼다면서 문학동아리에는 왜 들어갔나요?

 
이나경
 

대학에 입학한 해 5월에 저는 OT에서 만난 같은 과 친구들과 캠퍼스를 완보하며 청춘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남자 둘과 여자 셋(간혹 넷)의 정숙한 조합이었어요. 하지만 날이 슬슬 더워지고 있었고 우리에게는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던 참에 여자애 둘이 문학동아리에 가입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어쭈, 그럼 우리도 가입할 거다!”라고 누군가 외친 자리에 저도 있었지요. 저는 물풀처럼 휩쓸려 따라갔습니다.
당시만 해도 우리 동아리는 전반적으로 시를 쓰는 분위기였고 저는 정말이지 아무 생각도 없이 동행했을 뿐이에요.
동아리는 동아리대로 신입생 기근을 겪고 있던 터라 우리가 반가웠을 겁니다. 당장 다음 주부터 축제 기간인데 문학동아리지만 어째서인지 주점을 할 계획이었고 동아리에서는 일손이 필요했던 거예요. 그래서 가입하자마자 우리는 문학을 멀리하고 술을 가까이하며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주점은 빚을 질 정도로 망했고, 동아리 회장 형은 주점이 망한 책임을 지겠다며 회장직을 내려놓고 잠적했고, 그 바람에 제 친구가 얼결에 회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동아리로 인도한 여자애 둘은 진력을 내며 탈퇴했고요.
저는 남기를 선택했습니다. 날은 이미 더워졌고 동아리방은 쉬기에 참 좋았거든요. 테라스가 딸린 방이라 제법 운치도 있고요. 선배들은 유독 우리 둘에게만큼은 너그러웠습니다. 하기야 제가 선배였어도 그랬겠네요. 아무튼 그렇게 코가 꿰여서 수업을 거르고 식사를 걸러도 동아리는 안 걸렀답니다.
…라는 이야기를 제가 또 너무 길게 해버렸군요. 그런데 이런 사람이 결국에는 소설의 세계에 풍덩 뛰어들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어딘지 운명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 필진이 궁금하다!’ 다음 인터뷰이가 될 필진을 지목해 주세요.

 
이나경
 

이거 약간— 고참들이 신병 에워싸고 “야, 이 중에 누가 젤 잘 생겼냐?” 하는 류의 질문 아닌가요! 다들 궁금합니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분들이라…. 그래도 꼭 한 분 꼽자면 정세랑 작가님. (프로필 사진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는 제 짐작이 맞았기 바라며).

댓글 2
  • No Profile
    pena 17.07.11 07:04 댓글

    평소에 글을 길게 쓰는 사람은 소설도 잘 쓴다는 편견이 있는데 (전 정확히 반대거든요. ...) 편견을 증명하는 한 사례를 또 한 번 만나게 되네요. 앞으로도 많이 뵙고 즐겁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덧. 인터뷰 편집 멋져요!

  • pena님께
    No Profile
    이나경 17.07.13 12:20 댓글
    반갑습니다! (라고만 쓰고 말을 아껴야 저에 대한 편견 내지 평가가 다시 적정 수준으로 내려올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얘기를 또 주절주절 쓰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