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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소설 읽기의 새로운 세계가 시작됩니다”

-행복한읽기 SF총서와 happysf.net에 대하여②

임형욱(happysf.net 운영자)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은 미러 웹진 지난 호 마감을 지키지 못한 것부터 사과드려야 할 것 같군요. 이유야 어찌되었건 독자 여러분께 약속드렸던 원고를 펑크 낸 점에 대해서 운영자님과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사과를 드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하군요. ^^;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글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호에서처럼 20매라는 분량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니 더더욱 마음이 가볍습니다.

“과학소설 읽기의 새로운 세계”는 시작되었나?

  행복한책읽기 SF 사이트(www.happysf.net)에 접속하시면 맨 먼저 시작되는 인트로 화면에 움직이는 영상으로 “과학소설 읽기의 새로운 세계가 시작됩니다”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happysf.net 사이트를 만들면서 전담 기획자인 김상훈 씨와 머리를 마주대고 ‘어떻게 하면 가장 인상적인 대문을 만들 것인가?’를 논의하고 논의한 끝에 결정한 문구가 지금 인트로화면에 걸린 그 문구입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행복한책읽기의 SF들로 인해 “과학소설 읽기의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었습니까?
사실, 행복한책읽기의 SF들은 “과학소설 읽기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보겠다는 이런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출발하였습니다. 한 출판사의 여러 라인업 중에 한 가지이거나, 시리즈 중간 중간에 간혹 SF를 끼워 넣는 그저 그런 전략이 아니라 처음부터 SF 시장을 새로 개척해보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출발을 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결국은 지켜지지 못하고는 있지만) “1년에 10권씩의 SF를 지속적으로 내겠다”는 호언장담(!)도 공공연하게 했던 것이고, 호기 있게 첫 출발부터 SF를 세 권씩 묶어서 내기도 했습니다. 처음부터 SF 팬덤과는 함께 가겠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SF 전용 사이트도 따로 만든 것이고, 그냥 형식적으로 사이트의 양식만 갖추고 만 것이 아니라 직접 출판사 대표가 사이트 운영자가 되어서 가능한 최선을 다해서 독자 여러분과 함께 호흡하려고 노력을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모든 것이 목표하고 욕심을 부렸던 것대로 된 것은 아닙니다. 잘 아시겠지만 2003년 초반부터 불어온 불황의 검은 구름에 행복한책읽기라고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어서, 처음의 호기가 상당 부분 주춤하게 되고, 예정된(또는 예고된) SF의 출간들이 자꾸 밀려버리는 일들이 생기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책읽기의 SF 출판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언제나 살아 움직이며 시장과 독자에 반응한다는 것이고, 단순히 시장과 독자의 반응에 뒤따르는 것뿐만이 아니라 필요하면 앞장서서 시장을 개척하는 일에 뛰어들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2004년 한국 SF의 출판계의 기념비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과학소설 전문무크” < HappySF >의 창간이나, 행복한책읽기 SF총서와는 별도의 라인업으로 “행복한책읽기 작가선집”이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것 등을 들 수 있겠지요. 물론 이 무크지가 지속적으로 발간이 되고 시장에서 살아남는 문제와, 행복한책읽기 작가선집이 SF총서를 뛰어넘는 확실한 색깔을 가진 새로운 시리즈로 자리 잡는 문제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이런 새로운 시도들은 출판사로서나 한국 SF 출판계로서나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건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행복한책읽기의 이런 끊임없는 새로운 시도들이 “과학소설 읽기의 새로운 세계”를 시작하는 것이 될 것인지 아닌지는 전적으로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행복한책읽기의 SF들은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해 많은 분들이 행복한책읽기에 애정 어린 질타를 보내주셨습니다. 2003년에 호기롭게 시작했던 SF 출판이 그래도 그럭저럭 7권이라는 권수를 채웠고, 개중에는 < 쿼런틴 >이라는 따끈따끈한 신작 '정통 하드SF'가 들어 있기도 했고, 비록 재간이긴 했지만 ‘빅3’ 중 한 사람인 하인라인의 < 스타십 트루퍼스 >나, SF와 판타지 양쪽에서 ‘대가’로 사랑받고 있는 < 신들의 사회 > 같은 명작들이 들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2004년에는 9월이 다 되도록 “나온다 나온다” 말만 무성했지, 정작 제대로 된 SF  한 권 출간된 적이 없으니 독자 여러분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낼 만도 했지요. 그러나 드디어(!) 2004년 봄으로 계획되었다가 6월로 연기되었던 국내 최초의 (상업적 형태의) 과학소설 전문무크 < Happy SF >가 9월에 창간되었습니다. 그리고 무크의 창간에 맞추어 아름다운가게와 MBC가 주최한 “뚝섬 나눔의 가게”에 “SF벼룩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벼룩시장을 열어서 언론이나 서점보다도 SF팬덤 여러분께 더 먼저 선을 보이게 되었지요.
  그리고 곧이어 여러분도 잘 아시는 테드 창의 ‘걸작’ 중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우여곡절 끝에(처음에 인쇄했던 양장본 2,500부를 전량 폐기하고 2,500부를 다시 찍는 초유의 인쇄사고를 겪은 후에(!) 11월 15일 출간되었습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출간되기 전에 새로운 시리즈명에 'SF'를 표시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SF 팬덤 여러분과 뜨거운 논의가 있었고,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마케팅 포인트를 SF 팬덤이 아니라 일반 독자(또는 본격문학을 읽는 독자)들에게 두고 테드 창이 이 중단편집을 “소설문학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본격문학에 대한 대안”으로 두고자 하는 출판사 측과 SF 팬덤 사이에 또 한번의 논쟁이 있었고, 지금도 여기에 대한 논쟁은 어느 정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실 SF 출판의 핵심 독자층인 SF 팬덤이 아니라 주변 독자층이라 할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번 전략은 많은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자칫하면 SF 팬덤으로부터도 외면을 받을 수 있고, 읽을 만한 SF들을 찾는 초급 SF독자들이 SF인 줄 모르고 지나쳐 버릴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의도했던 대로 언론에서나 본격문학 쪽에서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일반 독자들에게서도 사랑받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고요.
  현재로선 새로운 라인업에다가, 마케팅 전략조차도 다소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무크지 < Happy SF >를 통한 사전홍보와 적절한 이벤트 등이 어울려 알라딘에서는 1주일만에 300권 가까이 팔리며 종합베스트셀러 순위 26위에 오르는 등 일단 출발은 좋아 보입니다.
  이것이 사전에 테드 창에 대해 인지를 한 SF 팬덤의 열광적인 잠깐의 반짝임으로 그칠지, 출판사에서 의도하였던 것처럼 일반 독자들에게도 SF의 지평을 넓히는 차원으로 나갈지는 좀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행복한책읽기는 SF 출판 자체를 잠깐 치고 빠지는 단기전으로 보지 않고, 처음에는 시장을 개척하기도 하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시도들을 해나가며 SF 출판의 파이를 넓혀나가야 하는 장기전으로 보고 있습니다. 처음에 시작했던 것처럼 그렇게 요란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책들을 지속적으로 출판하며 불황 중에도 더욱 불황인 SF 시장에서 굵고 길게, 또는 가늘더라도 길게 살아남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행복한책읽기의 SF들은 누가 만드나?

  행복한책읽기의 SF들을 만드는 것은, 아주 협소하게 이야기하자면 전담 기획자 김상훈 씨와, 송경아 이수현 정소연 박민정 등의 번역자님들, 그리고 출판사의 편집팀이 만든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정말정말 좁게 해석한 것이고, 넓게 해석하자면 SF 팬덤 여러분들과 같이 만들어 간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최소한 저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담 기획자 김상훈 씨가 “행덤”(‘행복한책읽기 SF 팬덤’이라는 뜻)이라고 부르는 happysf.net의 회원 여러분들이야말로 행복한책읽기의 SF들을 실질적으로 만들어가는 분들이라고 봅니다. 이 분들 중에는 물론 고장원, 김태영, 박상준, 최용준, 홍인기 님 등등 SF전문 번역자이거나 ‘SF 왕팬덤’이라고 불리우는 분들도 있고, ‘젊은거장’님 ‘스페이스오딧세이’님 ‘작두에 발 벤 소녀’님(원래는 ‘작두 타는 소녀’였으나 저 때문에 발 베신 후 아이디를 바꿈 ^^;)처럼 행복한책읽기를 통해 처음 SF를 접하신 분들도 있습니다(물론 더 많은 분들이 계시지만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다고 섭섭해하지 마시기를... ^^;;) .
  이런 분들이 새로운 SF들을 소개해주시거나, 특정한 SF를 출판해달라고 출판사에 압력을 넣거나, 자진해서 출간 전에 교정을 봐주시거나, 서점에 나가 행복한책읽기 SF의 판매상황 등을 모니터하여 주시거나, 개인 사이트나 블로그를 통해 열심히 홍보해주시거나, 인터넷서점에 서평을 올려주시거나, 주변에 있는 친구분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해주시는 등의 정말 출판사로서는 눈물겹게(!) 고마울 정도로 열성적으로 SF를 소개해 주십니다.
  그러니 당연히 행복한책읽기 SF를 만들어가는 분들은 이분들, “행덤”이라고 해야겠지요.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번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ㅜ.ㅜ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행복한책읽기가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말씀드리고 글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우선은, 할 수만 있다면 < Happy SF >를 반연간지 또는 계간지 형태의 정기간행물로 만들고 싶습니다. 지금은 시장 상황이나 출판사의 내부 사정을 돌아보건대, 솔직히 꿈만 같은 욕심이긴 합니다만, 어느 정도만 상황이 좋아진다면 꼭 그렇게 해보고 싶습니다.
  우선은 무크지 형태로, 새로운 작가들을 소개하고 발굴하는 일을 계속하고, 해외의 좋은 작가와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그리고 특정한 주제를 가진 특집들을 통해 계속적으로 SF와 관련한 이슈와 담론들을 만들어내고, SF에 대한 체계적인 자료도 소개하고 축적하고, SF를 처음 접하는 독자님들을 위한 요긴한 정보들도 소개해드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정말 역량이 된다면, 최종적으로는 SF와 판타지, 그리고 추리문학을 아우르는 장르문학 전문 계간지 정도로 자리매김을 시켜보았으면 하는 욕심이 있습니다.

  2003년은 일단 행복한책읽기가 SF 시장에 나름대로 의미있게 진입한 한해였고, 그동안 침체 국면에 있던 SF 시장에 다른 출판사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 한해였다고 봅니다.
  그리고 2004년에는 사상 유래없는 불황 속에서도 어느 정도 활성화되기 시작한 SF 출판계에 최초로 과학소설 전문 무크를 창간하고, 새로운 SF 시리즈를 출범하는 등 비록 양적으로 출간 종수는 적었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한해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005년에는 이런 토대들 위에, 가능하면 국내 창작 SF 작가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소개하고, 발굴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무크지를 통해 한국의 대표적인 SF 작가인 복거일과 듀나에 대한 조명을 새롭게 해보고, SF 팬덤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는(덜 알려진) 국내 SF 저자들에 대한 소개와 함께, 새로운 신인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과 단행본 출간의 기회를 많이 가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도에서 제2권에는 국내 SF작가들에 대한 소개와 함께 신인작가들의 창작 SF들이 많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이런 모든 일들이 행복한책읽기처럼 작은 출판사에서 욕심만 가지고 의욕만 가진다고 되는 일들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SF 팬덤 여러분과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립서비스로서가 아니라 실제적인 실천을 통해 SF 팬덤 여러분과 함께하는 행복한책읽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SF 시장을 개척해나가고 확장해 나가는 것은 출판사와 기획자, 번역자, 작가, 독자 모두가 함께 손잡고 같은 목표를 가지고 나갈 때 비로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행복한책읽기가 앞으로 걸어 나가는 길을 관심 있게 지켜보아 주시기를 다시 한번 부탁드리면서, 짧지 않은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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