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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황금 드래곤 문학상 후기


Melchizedek ( melchizedek@naver.com )



 00. 들어가기에 앞서


 참 극적이었다.
 (끄덕) 개인적으로 봤을 때 이번 문학상에는 여러모로 극적인 부분이 많았다.

 작년, 그러니까 2003년이 가기 전 갑작스런 문학상 개최 소식에 나는 망연자실 내 원고지를 내려다보았다.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 같은 기회의 문은 열렸고, 야심차게 준비하던 소설은 아직 완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2년간 투덜대던 것은 내 입뿐이었던 모양으로, 진도는 전혀 나가지 않은 상태에서 3개월로 축소된 문학상 기간에 나는 절규했다.
 …하지만 어쩌리, 이미 물 건너 간 것이었다.(후에도 삼일간 밤을 새 가며 헛된 시도를 했다는 여담 같은 것도 있지만 생략.)

 비평단이 된 것도 의외의 일이었다. 빈둥빈둥 문학상 사이트를 기웃대며 읽을 거리를 찾던 중 비평단 공모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시큰둥했었다.(그 때까지만 해도 아직 완결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한 상태였다;) 3개월간의 공짜책 세례는 매력적인 것이었지만, 그만큼 부담스러운 일 일거라는 생각에, 그리고 아직 비평이라는 것을 쓸만한 분량의 탐탁한 소설을 찾지 못했기에 슬렁슬렁 넘겨버렸다. 그런데 행인지 불행인지, 비평단 구성이 이틀정도 미뤄졌고, 하루 전에 찾아낸 분량합격의 소설을 읽고 쓴 평글이 덜컥 하고, 버린 껌 운동화 바닥에 붙듯 붙어버린 것이다!

 …그런 별로 고상하지 못한 비유처럼, 나는 '비평단 필자 6'이라는, 무거운 명함을 아무런 준비 없이 받아들게 되었던 게다. 비평이라는 것은, 남들에게 내보일만한 실력이 있거나 얼굴이 매우 두꺼운 경우에나 해 낼 수 있는 일이다. 둘 중 어느 경우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얼굴은 두꺼울지 모른다;) 나로서는 오직 소설에 대한 애정 하나로(!) 함량미달의 평글을 써 올렸던 셈이다. 지금도 가끔 내 글을 읽어보면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며 온 몸에 옻이 오르는 듯한 1도 화상 증상이 나타나곤 한다. 어차피 비평단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감상글 정도는 쓸 생각이었지만, ‘비평단’이라는 이름을 달고 보니 아마 더 부담스러웠으리라.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평글을 올린 다음날에는 비공식 커뮤니티를 기웃대며 내 글에 대한 언급이 없는지를 살피곤 했다. 초등시절 이후로는 그럴듯한 감투라고는 써 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힘든 나날이었다.
 그래도 이러저러한 사이에 3개월의 문학상 공모 기간이 지났고 어찌어찌 해낸 비평단 활동을 통해, 이리 영광스럽게 거울에 원고를 쓰게 되었으니 행(幸)이라 할만 할 지도.

 정식 원고를 받은 주제에 처음을 이리 가벼운 어투로 시작하는 이유는 그래서이다. 어차피 나는 정식 비평 훈련을 받은 사람도 문학 전공자도 아니다. 비평단이라는 감투 덕에 원고를 받게는 되었지만 턱없이 부족한 사람일지도. 그러니까 나는, 단지 한 사람의 독자로서, 문학상 참여자로서, 그리고 판타지(혹은 환타지)를 사랑하는 한 명의 민중으로서 이번 문학상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편집장님이 멍석은 깔아준 셈이니 미천한 놀이꾼이나마 이야기 한 자루를 풀어놓을까 한다. 관중 여러분은 얼쑤, 추임새를 넣어주셔도 좋고, 혀를 끌끌 차 주어도 기쁘겠다.


 01. 문학상? 문학상!


 이번 3회 황금드래곤 문학상은 개인적인 의미가 아니더라도 극적이었다.

 시작 전부터 열린다 안 열린다로 말이 많았던 터라, 행사 중간에는 기술적 문제로 잠깐 열리지 않는 사이트를 두고 주최측이 수지가 안 맞아서 도망갔다(;)라는 유언비어가 돌기도 했다. 극 간데 없이 미뤄지는 일정과 최근 상황이 좋지 못했던 판타지 문학상 체제에 대한 우려였던 듯 싶다.

 몇 년 전부터 있었던 메이저급 판타지 문학상으로는 황금가지의 ‘황금드래곤문학상’과  북하우스의 ‘한국판타지문학상’을 들 수 있을 것이다.(최근에 두 개 정도의 공모전이 더 생겼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최근의 일이다.) 인터넷 소설의 양적 팽창과 더불어 질적 성장을 노리며 야심차게 시작되었던 이 두 개의 문학상은 아마추어 작가와 판타지 독자층에 많은 관심을 이끌어 내었으나, 이렇다 할만한 커다란 성과를 거둬주지 못한다. 오히려 인터넷이라는, 공개된 공모의 장의 폐해를 잔뜩 뒤집어썼던 것이 사실이다. 각각 2회와 4회에서 시끄러운 소음이 일었고, 그로 인해 참가자 및 독자층들 뿐 아니라, 주최측에서도 문학상의 존폐 여부를 두고 심각한 고민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내 지인(知人) 중에서도 문학상 참가 뿐 아니라 개최 자체에까지 회의적인 분이 생겨났다. ‘황금드래곤문학상’은 개최가 무기한 연기되었고, ‘한국판타지문학상’은 온라인 공모 부문을 포기하고 완전 오프라인 공모로 돌아섰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공모전의 원래 취지가 ‘좋은 작품의 선별’에 있었던 바, 만약 판타지 매니아층의 기억에 남을 만한 굵직한 작품이 문학상을 통해 탄생되었다면 모두 덮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각각의 문학상 수상작들은 판매실적이나 독자층에 회자되는 비율로 보나,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다. 몇몇 작이 선전하기는 했지만 기존 작가들을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 그와 더불어 각각 2회와 5회의 문학상에서 대상작이 나오지 않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개인적으로는 이 때가 판타지 문학상 체제에 가장 큰 위기가 아니었던가 싶다. 특히 황금드래곤문학상의 개최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오프라인으로만 열렸던 제5회 한국판타지문학상이 가작조차 선정하지 않았을 때, 나는 이제 우리나라 판타지 쪽에서는 문학상이 완전히 끝나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절망적인 생각까지 했었다.



 혹자는 문학상이라는 것이 인터넷 판타지 소설 속에서 얼마나 의미가 있는 일인지 의문을 표할지도 모른다. 원래부터 매니아에 의해 ――― 판타지를 즐기는 층에 의해 거의 자생적이다 라고 할 만한 성장 모습을 보여왔던 우리 나라 판타지이기에, 순문학 쪽에서 많은 폐해를 보이고 있는 문학상의 도입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나타내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판타지 소설계에서 문학상의 대두가 꼭 필요한 흐름이며 이것이 곧 인터넷 판타지 소설의 작가층이나 독자층에게 모두 신선한 자극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꽤 오래 전부터 현재의 판타지 소설의 흐름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4대 통신망을 통해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했던 초기부터 거의 전지역에 인터넷이 보급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판타지 소설은 많은 변화와 성장을 거듭해 왔다.
 허나 그 변화를 과연 발전이라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인가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혹여 양적으로는 발전했다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양’의 면에서도 불균형적으로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면만이 부각되고 있는 것은 아닐지. 판타지 소설 아니, 장르 소설 전반이 생성기부터가 대중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한 채 자라났으며 그러한 면에서 상업성의 배제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상업성과 대중성이라는 면이 너무 비대해져 무제한 증식하는 암세포처럼 외려 판타지 자체를 잠식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무절제한 출판과 독자․작가 의식의 결여, 소설구성의 도식화 등, 이제는 ‘자유’라는 이름을 앞세워 오히려 더욱 더 속박 당하고 있는 출판 판타지 소설의 현실은 무척이나 안타깝다.
 단지 한 편 한 편의 소설 내부에만 국한되는 일이겠는가. 장편 소설 위주의 출판 풍토는 많은 판타지 키드들에게 ‘판타지 소설은 용돈벌이의 하나’라는 인식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그러한 ‘돈벌이가 되지 않는’ 중단편 판타지 소설의 양적 축소와 질적 정체를 가져왔다. 문학이 어찌 한 종류의 발달로만 성장할 수 있겠는가. 특히나 단편은 장르 문학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부분이다. 작가들의 가장 내밀한 정신세계의 터전이며 반짝이는 아이디어의 전시장이다. 그러한 중단편을 단지 장편소설을 쓰기 위한 습작 내지는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풍토는 장편 소설의 빈곤한 토대로 이어졌다.

 이제 더 이상 인터넷 판타지 소설을 ‘보이지 않는 손’의 흐름에만 내맡기는 것은 진정 판타지 매니아 층이 원하는 방향이 아닌 극히 과장된 시장 논리로 인한 판타지 장르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고, 나는 한 명의 판타지 독자로서 걱정한다.
 그리고 그러한 한 쪽으로의 불균형적인 쏠림 현상을 해결할 만한 대책으로 문학상을 뽑고 있는 것이다.

 순문학계에서 문학상의 폐해가 지적되고 있는 것은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난 문학상이 그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독자들의 요구마저 수용하지 못한 채 한 작가 몰아주기 식, 명함 만들기 식의 쳇바퀴만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 판타지 소설 쪽에서는 이와 반대로 문학상이 ‘많이’ 팔리는 글만을 양산해 내는―즉, 수요가 많은 쪽으로만 쏠리는 무절제한 시장논리에 제동을 걸고, 그 반대편에 또 하나의 목표를 작가들에게 세워줌으로서 독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소설의 생산에 기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서 의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최근, 대여점 위주의 판타지 출판시장에 우려를 나타내는 사람들이 내세우고 있는 바와 그리 다르지 않다 하겠다. 즉, 작가 중심의 창작 커뮤니티의 활성화, 창작과 비평 중심 사이트와 판타지 전반을 깊이 있게 다루는 웹진의 형성 등, 일각에서 일고 있는 바람을 지원해주는 커다란 돛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삼국지에 한 일화가 있다. 유비의 익주 평정 후 너무 준엄한 법령을 내세우는 공명에게 법정은 한고조 유방이 법을 간소화해 민심을 얻었던 일화를 얘기하며 법률을 풀어줄 것을 주장했다. 이에 공명은 이렇게 답했다. ‘그대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는구려. 진나라는 법을 잔학하게 만들어 백성들의 원망을 산 끝에 한나라에게 망하였고, 한나라는 그 법을 관대하게 고쳐 백성을 위로했지요. 유장이 어리석어 촉의 법이 서지 못했기에 나라가 망하지 않았소? 이 때에는 떨어진 법의 위엄을 세우고 법도를 준엄하게 만드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요.‘

 자아, 지금의 판타지계는 어떠한가. 한쪽으로 치우친 양팔저울을 수평으로 맞추어 줄 저울추는 무엇일까.
 나는 이번 황금드래곤문학상을 보며 그 가능성을 엿본다.


 2. 흥미진진한 싸움―황금룡이 이길까, 투명드래곤이 이길까?


 말이 길어졌다. 어쨌든, 이런 식의 희망을 걸고 있던 나에게 암울한 문학상 관련 소식들은 참으로 찹찹하기 그지없었다. 가작조차 선정되지 않은(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상금을 걸고 공모전이라 이름 붙였다면 적어도 가작정도는 뽑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는 참가자와 공모전을 지켜봤던 많은 이들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제5회 한국판타지문학상 심사결과에서는 분노까지 느꼈다.
 그저 그렇게 몇 가지 시도가 끝나는 듯 싶었다.

 그리고 2003년, 제3회 황금드래곤 문학상이 열렸다.
 (그와 더불어 출판사 주최의, 각각 두 개의 공모전이 더 생겨난다.)

 참으로 기뻤다. 공모 기간과 상금의 축소, 그 외 기타 등등의 미비점이 있다 할지라도 기뻤다. 이번 제3회 황금드래곤문학상은 공모전의 결과나 공모작들의 질을 떠나서 문학상 개최 자체만으로도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문학상 체제는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허나, 이제 겨우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황금드래곤 문학상이,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기울대로 기운 저울의 눈금을 수평으로 맞춰 줄 만한 저력을 가지고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실제로 2회 이후에 오랜 기간 연기 사태를 맞이했던 데다 앞서의 문학상에서 대상작이 나와주지 못한 까닭에 더욱 그렇다.

 게다가 상대는 뭐니뭐니 해도 ‘졸라 짱 쎈’ 투명 드래곤들인 탓이다. 보이지 않아도 이들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하다.
 홍코너 투명 드래곤들의 무기는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충족되는 수요층을 토대로 한 독자들에게 친숙한 전형성과 검증된 높은 흥미도. 그렇다면 청코너 황금룡들은 무엇을 앞세워 찬란한 비상을 보여줄 것인가.
 (이 글의 원 목적이 3회 황드문학상의 후기인 바, 황드문학상만 두고 이야기하자면,) 1회와 2회의 수상작들은 얼마나 선전해 주었을까. 2회 수상작이 아직 출판되지 않은 까닭에 2회작들과의 상대평가는 어렵겠다. 야심만만하게 출사표를 던졌던 1회의 황금룡들을 살펴보자면, 유감스럽게도 그리 좋은 성적을 올려주지는 못했던 듯 싶다. 김유정의 ‘영혼의 물고기’는 심사위원단과 적지 않은 독자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다. 공모 당시 독자들의 높은 지지를 받았던 ‘아리우스 전기’와 ‘프린세스 조슈아’, ‘신군주론’등도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다. 여기서 기대 이하란, 찬란한 비상에 비해 독자들에게 별반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무어, 앞서 말했다시피 장르문학이란 대중 또는 매니아, 어느 한 쪽에게서라도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 의미를 상실하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첫 번째 황금룡들은 호투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분패. 그러나 그들은 앞으로를 기대해 봄직 할만한 작가층을 내어놓는데는 성공한다. 또한 공모전이라는 새로운 출판 가능성을 열어 두게 된다. 그리고 이제 그들의 비상은 세 번째 황금룡들에게로 이어진다.

 2004년 3월 15일, 36편의 장편과 200여편의 중단편의 응모로 마감된 제3회 문학상.
 현재까지의 중론은 그리 나쁘지 않다. 아니, 어느 정도 성공을 예감해 볼만 함직도 하다.

 물론, 문학상 수상작을 선정하고 시상식을 치른 뒤 수상작이 출판되어 독자의 반응여부를 살핀 연후에야 이번 3회 문학상에 대한 전평을 낼 수 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과정이 좋았다 해도 결과가 나쁘다면야 ――― 그것도 문학상의 존재이유를 생각한다면 더욱더 ――― 실패다.
 허나 현재까지도 문학상 과정상에서 별다른 잡음은 없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호의적인 평을 내리고 있다는 점을 통해 어느 정도 결과를 예측해 볼만도 하다.

 특히나 작품 면에서의 향상은 눈이 부실 정도다. 2회때부터 있어 온 현상이었지만, 많은 작가들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되었다. 이에 따라 문장을 볼 때 이전의 중점 사항이 비문 찾기였다면, 이제는 문장의 유려함과 전달력 측에 더 초점을 맞추어도 될 정도로 문장력이 향상되었다.
 또한 세 번째 시기를 맞이하여 황금드래곤문학상은 판타지 중심에서 장르 문학이라는 좀 더 큰 개념으로 확대되면서, 단순히 정형화된 판타지의 틀을 넘어서 여러 장르와의 혼합을 시도하며 소설의 내용과 구성이 다양해진다. 문학상 기간동안 여러 번 언급했던 동양풍 판타지 외에도 가상미래를 다루는 환상 이야기, 현실에서 일어나는 환상 이야기 등, SF나 호러, 추리 등으로 세분화하기에는 아직 장르적 특성이 완연히 구별되지는 않더라도 그 가능성 면에서만은 기대할 만한 작들이 많이 눈에 띈다.(실제로 이번 3회 황금드래곤문학상은 여전히 판타지 소설이 중심이었으며, 팬덤 SF나 호러, 추리 쪽에서는 그리 많은 호응을 얻어내지 못한다. 이는 황금드래곤문학상의 태생을 생각해 본다면 아마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좀 더 많은 홍보와 노력이 기울여지지 않았다는 점은 불만사항이다.)
 이 정도면 한 명의 독자로서 앞으로의 대어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개인적으로 황금드래곤문학상의 특징이자 큰 자랑으로 여기는 중단편상의 유지는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실제로 상금이 축소되면서 혹시나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조바심이 일었었다.) 나는 1회와 2회 때도 장편보다는 오히려 중단편 쪽에서 좀 더 많은 감정의 여운을 느꼈다. 이전 수상작 ‘할머니 나무’나 ‘할티노’의 유려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들은 장대한 장편소설(판타지 소설 쪽에서는 이 ‘장대함’이 일반문학보다 훨씬 그 크기를 더하는 것 같다)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아릿아릿한 여운을 남긴다. 2회 단편 수상작 ‘모텔 탈출기’의 경우는 엽기유머의 일종으로 잘못 알려진 채로 한 동안 인터넷 안을 풍미하기도 한다. 이는 비록 원래의 소설적 의미로 평가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작품 자체의 이야기적 재미에 대해서는 폭넓은 대중들에게 검증 받았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대여점 출판시장 위주의 판타지만이 메이저 무대로 진출하는 바람에 많은 대중들이 생각하고 보고 있는 판타지가 매우 한정된 일부일 뿐인 이 때, 메이저 주최의 중단편 문학상이란 그 의미가 크다. 최근 들어 주최측이 수상 중단편들을 모아 출판할 생각이 있음을 알게 되었기에 여기에 거는 기대가 더욱 높아진다. 그와 더불어 3회에 이벤트 형식으로 치뤄진 주제작품 공모는 커뮤니티와 창작을 연계하는 최근의 흐름과 맞아떨어지며 참여자 사이에서도 가장 큰 호응을 얻었다. 선정작들도 기대치를 웃돌아 눈과 머리를 즐겁게 한다.
 이들 중단편의 황금룡들이야말로 작지만 알찬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해 볼만한 주역들이 아닐런지.

 그러나 올 3회가 완전한 장미빛 미래만을 약속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졸라 짱 쎈 투명드래곤들의 공습은 드세고 그들의 무기 중에서도 덧대고 배워야 할 것들도 적지 않다.
 커뮤니티의 축소와 미비한 홍보효과는 황금룡들의 큰 적이다. 3회에는 독자들이 활동할 여지가 적어진 탓인지 아니면 전체적인 공모 소설들의 성향 탓인지 온라인 연재형식의 공모에도 불구하고 작품홍보의 파급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또한 상향 평준화로 인해 오히려 대부분의 작들이 고만고만해 보인다는 점, 수작은 있을지 모르나 명작을 찾기는 어렵다는 점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번 3회는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 중 눈에 띄는 소설들도 많았지만 기대했던 작가들이 앞으로 나서 주지 않아 실망스럽기도 했다. 몇몇 기대했던 작가나 1,2회 때 관심을 끌었던 작품들이 올 해 불참해서 아쉬움을 더했다. 문학상의 시작이 들쭉날쭉인 것도 안타까움을 더하는 요인 중 하나다. 참가자들이 집필에 정진하고 힘을 쏟을만한 안정된 여건의 마련이 필요하다.
 더불어 황금드래곤문학상의 성향에 대해서도 약간의 우려가 있다. 문학상이라는 타이틀을 내건바 어느 정도의 문학적 완성도는 분명 필요하겠지만, 그것에 너무 얽매인 나머지 참가자들이 장르 문학 자체의 실험성과 반짝이는 아이디어 구상력을 잃지는 않을는지 하는 지레 걱정이 든다. 어디까지나 지레짐작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당연한 말이지만 싸워야 구경꾼이 많이 몰려든다. 세상에서 젤 재밌는 게 싸움 구경하고 불구경이라지 않는가. (용들끼리 싸우면 당연히 불도 난다. 브레스를 내뿜을 테니까.)

 황금룡이 졸라 짱 쎈 투명드래곤과 대등하게 설 수 있는 그 날, 판타지 소설이 더욱 더 구경거리가 많아져서 그만큼 구경꾼들이 많이 몰려드는 그 날, 아마 그 날이야말로 우리 나라 판타지 소설이 win-win게임에서 대승하는 날이 아닐까.

 나는 벌써 선글라스 끼고 그 날을 기다린다.


 03. 백가쟁명의 시대는 도래하는가……


 최근에 인터넷 판타지 소설계에서 두 개의 공모전이 새로 생겨났다. 굿데이.에프월드 판타지 신무협 소설 공모전과 북박스 장르문학상이 그것이다. 일회성 행사로 그칠지, 앞으로도 이어질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현재로서는 4개의 공식 공모전이 치뤄지고 있는 셈이다. 팬덤 만으로 시작했던 장르문학의 초기 모습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할 만 하다.

 특이나 이 4개의 공모전이 각기 특징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다는 점은 고무할 만한 사실이다. 각각 공모 양식에서부터 공모 목적의 차이가 그런 다양성을 담보하고 있는 듯 싶다. 확실한 것은 다른 두 공모전의 결과가 나와봐야 알 수 있는 일일 테지만 나는 어떠한 형식으로든 이러한 다양한 공모전의 개최가 장르문학에 플러스 요소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공모전은 좀 더 확장된 출판기회로서뿐 아니라, 신진작가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앞서의 공모전들의 결과로서 우리는 걸출한 작가들을 얻었다. 1세대 판타지 작가들 이후로 그들과 대등하게 활동할 만한 사람들이 나와주지 못해 독자들의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는 이 때, 그들이야말로 앞날을 기대해봄직한 맹아들이 아닐지. 물론 당장의 결과물로 그들을 평가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사람은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는다. 초기작이 길이 남을 명작으로 남는 경우는 드물다. 계속되는 정진과 집필 속에서 작가의 역량이 비로소 모두 드러나게 되는 법이다. 공모전의 수상작에서 바로 그 작가의 모든 것이 나타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수상작은 작가의 가능성을 가름하는 척도일 뿐이다. 그렇다면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들은 좀 더 활발한 활동을 보여야 할 터이다.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이 그것이다.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들의 후속작들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물론 전업작가가 아니라면 그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공모전 당선이라는 영광스런 짐을 안은 만큼, 미거한 독자의 어리석은 투정 정도는 받을 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잠시 억지를 부려보고자 한다.
 어느 한 장르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말이지만 그 작품을 쓰는 작가층이 두텁고 작품수준이 높아야 한다. 현재의 판타지 소설은 위태위태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몇몇의 알려진 작가들의 위명 속에서 겨우 그 근간을 유지하고 있다. 이제 슬슬 그들을 치고 나올 신진세력들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나는 공모전 당선자들만이 판타지 소설의 미래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독자들의 높은 안목을 통해 자생적으로 생성되는 작가층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의 발달로 매니아들의 입김이 이제 그저 소수가 아닌 ‘힘센’ 소수로 발휘될 수 있는 지금, 자생적인 작가층도 무척이나 중요하고 뜻 깊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가 그저 공자 한 사람만의, 유가 한 유파만의 덕이었던가. 묵가도 있고 법가도 있고 명가도 있었다. 그 출현배경과 사상, 이상 등이 다양한 자들이 모여서야 비로소 ‘백가쟁명’이라는 위명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판타지계에서도, 자생적으로 생겨난 작가층과 공모전을 통해 배출된 작가들이 점점 쌓여간다면 진정 백가쟁명의 시대도 그저 꿈은 아닐 게다.


 04. 마치며


 문학상 홍보 담당 기자는 ‘팬터지’라고, 쓰고 문학상 장르 분류명에서는 ‘판타지’이며, 이 곳 웹진에서는 ‘환타지’라 명명되어진다. 아직까지 혼돈과 환난기에 있는 fantasy.

 하지만 어떠랴, 아직은 자라고 있다는 증거다. 백가지의 사상과 백가지의 다양한 이야기가 판치는 곳. 그런 곳으로 판타지 사이트가 명명되고, 진정한 환상을 다루는 백 여명의 작가들이 배출되기를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여기까지 이 몽상가의 주절거림에 귀 기울여주신 많은 청중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이만 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여기까지 읽어 내려온 당신의 인내심이 먼 훗날 언젠가 보답받기를 희망하며.
 ――― Melchized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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