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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어가는 글

  문학, 그 중에서도 특히 소설 장르는 예술 중에서도 역사가 긴 편이 아니다. 고대의 샤먼들에 의해 영의 세계와 소통하기 위한 시도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던 회화나 조소, 음악 등의 분야에 비해 문학은 그 정의 상 대다수의 일반 독자들이 문자를 이해하고 그를 통해 체계화된 세계 인식을 이루는 정신적 필터를 거쳐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이전부터 신화나 서사시, 설화, 민담 등 구전 형태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있어 왔지만, 시집의 형태로 출판될 뿐 아니라 대중 앞에서의 낭독 역시 자주 행해지는 시나 공연의 형태로 행해지는 희곡 등의 분야에 비해 문자에 대한 해독력이라는 점에 있어서 소설은 근본적으로 근대적인 문학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을 구분함에 있어서 가장 흔한 접근 방식 중 하나가 순수 문학과 대중 문학이라는 도식화다. 양쪽 모두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일정한 구조 속에서 배경과 등장 인물, 사건의 조합을 통해 인간의 모습이나 사회상을 드러낸다는 공통점은 가지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순수 문학은 작품의 도구성이나 사회 참여적 면모를 부정하거나 최소화하고서 문장 자체의 아름다움, 작가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 및 주제의식과 그의 미학적인 승화, 구조적인 정교함과 균형 감각 등 예술 자체로서의 미적인 가치에 중심을 두는데 비해 대중 문학은 순수 문학의 아카데믹한 작품과 작법을 부정하고 보다 자유로운 방식의 창작을 시도함으로써 보편적인 아름다움보다는 로맨스라거나 추리, SF, 판타지, 호러 등 특정 취향에 맞춰진 독자층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로 인해 장르 문학은, 순수 문학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작가의 의식 표현을 위해 동원되는 고도의 상징과 수사보다는 이해하기 쉽고 직관적인 서사와 등장인물 고유의 개성이 부각되는 편이다. 그 정의 상 순수 문학 작품들이 그 깊이나 독창성에 있어서는 대중 문학 작품들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지만 장르 문학 작가들의 의식적 성장 및 기술 향상을 통해 그 격차는 많이 좁혀졌으며, 문학이 대중문화의 첨단에서 물러 나 있는 현재 시점에서는 유럽을 중심으로 해서 양자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가 활발해지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과거에는 장르 문학에서만 사용되던 기법들이 순수 문학 작가에 의해 시도되는 등의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출판사와 서점의 관리 및 유통 편의 상 순수 문학과 대중 문학은 여전히 구분되고 있고, 이를 다룬 논문 등에서도 별개의 의미를 가진 문학 형태로 구분되어 쓰이고 있지만 창작을 하는 작가 입장에서는 양자 간의 괴리가 점차 좁혀지고 있다.



  2. 웹진 ‘거울’에 관하여

  ‘거울’은 2003년 처음 문을 연, 인터넷 상의 비영리 대중 문학 웹진이다. 창작자의 입장과는 별개로 ‘순수 문학은 대중 문학보다 우월하다’는 관점이 지배적이고, 대중 문학 분야에 있어서는 확고한 이론적 기반을 다져줄 만한 이름 있는 작가나 평론가가 많지 않다는 한국의 현실로 인해 완전 무료에 회원제도 아닌 웹진이 얼마나 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창설 멤버들 간에도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자신의 소설을 발표하고, 독자들로부터 피드백을 받고 싶다는 욕구는 그러한 현실적 문제를 넘어설 정도로 강했고 창설 멤버들이 사비를 털어 서버를 세우고 홈페이지를 열었다. 1기 편집장의 취임사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처음 거울은 대중 문학, 그 중에서도 판타지 장르의 단편을 쓰는 작가들이 발표할 곳이 없어 고민하는 걸 해결하기 위한 취지로 구상되었으나 1.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러한 장르의 구분이 점차 희미해지고 의미가 없어져 간다는 이유로 인해 ‘그런 거 구분하지 말자’는 결론이 내려졌다. 1기 편집장의 취임사를 보면 그러한 관점의 편린을 읽을 수 있다.

   “……환상은 현실을 그대로가 아니라 좌우가 바뀐 모습으로 비춰주는 거울처럼, 현실을 약간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무엇을 환상이라고 할 것인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그러한 관점 차이를 어떻게 좁힐 것인가. 그 기준을 정의함에 있어 웹진 거울은 가장 편리하고 현실적인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다. 작가가 소설을 주며 ‘이 글은 환상문학이며 판타지 소설이다’라고 말한 글은 환상문학이며 판타지 소설로 분류하기로…….”

  이러한 접근법은 예상치 못한, 그러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글 좀 쓴다고 자부하던 아마추어 작가들은 물론 ‘그냥 쓰고 싶어서 썼는데 일반적인 문예지나 잡지에서는 받아주지 않을 것 같은 글’을 들고 고민하던 프로 작가들 역시도 웹진 거울의 문을 두들겼고, 거울의 운영진들 역시 적극적으로 새로운 작가들을 섭외하여 외연을 확대하는 한편 단순히 매 달 소설들만이 업데이트되는 공간에서 머무르지 않고 필진들의 신간 소개, 해외 소설 번역, 작가 인터뷰, 필진이 아닌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우수 창작 단편 선정 코너의 운영 등을 통해 내실을 다지고자 했다. 하지만 운영진도 필진들도 독자들도 예상하지 못한 점은, 이러한 시도가 순수 문학과 장르 문학 간에 지금까지 존재해 온 괴리를 단순한 단절에 그치지 않게 하고 저마다 가지고 있던 어떠한 한계- 즉 순수 문학 진영의 폐쇄성이나 답보성, 장르 문학 진영의 질적 수준 하향평준화를 넘어서서 그러한 경계를 부수고 문학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비유를 하자면, 여러 종류의 작물들이 어느 정도 구획 지어져 자라고 있는 밭이 있다. 더 잘 자라는 작물들도 있고, 잘 자라지 못하는 작물들도 있다. 인기가 많아 잘 팔리는 작물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작물들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더 잘 자라는 작물, 잘 팔리는 작물들로만 밭을 채우고 나머지를 전부 없애 버린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당장은 큰 수확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작물들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이 돈다면? 시장에서 더 이상 그 작물들이 인기가 없다면? 그 작물들이 지력을 지나치게 소모해 버려서 밭이 황폐해져 버린다면?  

  자연의 질서라고 하면 대개의 사람들은 보통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을 떠올린다. 그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큰 틀에서 행해지는 외연의 확장과 그 안의 무수하게 많은 다양성이 필수적이다. 문화 역시도 마찬가지이며, 발전을 위해서는 다양성의 공존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것은 거울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거울의 창설이 구체적으로 그러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에 의한 이론적이고 실제적인 접근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적어도 거울에 모여드는 사람들 사이에 있어서만큼은 순수문학과 대중문학 간의 괴리와 서로에 대해 갖고 있던 모종의 적대의식을 완화시키고 창조적인 긴장 관계를 끌어내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거울은 비영리 웹진이며, 회원비 같은 것은 전혀 없고 가입 절차도 필요 없다. 홈페이지의 운영에 필요한 돈은 운영진의 사비 및 1년에 1~2차례 발간하는 책들의 판매 수익으로 전액 충당된다. 어찌 보자면 매우 불안정하고 위험한 구조이며 사실 늘 재정란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지만 거울은 2003년 첫 창간 이후 2011년 9월 현재, 8년의 기간을 거치면서 99호까지 나와 있고 50명이 넘는 필진을 두고 있으며 거울에서 작품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알리고 프로로 데뷔한 작가들도 몇 명이나 있다. 이러한 결과를 가져 온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는 거울이라는 웹진이 견지하고 있는 ‘경계를 짓지 않고, 단일한 중심을 두지 않고, 다양한 관점들이 병렬적으로 공존하는’ 문학적 관점일 것이다. 리뉴얼을 거치며 새로 게재된 거울에 대한 소개문에서, 거울이 배출한 대표적인 작가 중 하나인 배명훈은 이렇게 적고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 거울은 국내 외 소설과 서적 리뷰 기사, 기획 기사 등이 매달 업데이트되는, 엄연히 존재하는 환상문학 웹진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사람들은 거울을 장르 소설 작가 및 번역가 등의 인적 자원들이 국내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장르 소설 작가 집단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거울은 경계가 불명확한 인적 네트워크다. 회원 가입을 할 수 있되 하지 않아도 상관없고, 필진과 필진이 아닌 사람의 구분은 있지만 작가가 독자이며 독자도 작가인 불명확한 경계에서 모두가 활동하고 있기에 범위를 쉽게 정할 수 없다. 편집 및 운영진이 누구부터 누구까지라고 정한 적은 있지만 사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거울은 소문이며, ‘거기 꽤 좋은 홈페이지래’ ‘그 사람들 아직도 책 찍는대’ ‘이번 중단편선에는 어떤 작가들이 참가하지?’와 같은 그 소문 속의 대명사로 존재한다.”

  거울의 대외적인 활동 형태는 크게 2가지 형태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온라인에서의 활동으로, 1달에 1번 있는 정기 웹진 업데이트다. 매 달 업데이트 일마다 메인 화면에 필진들이 송고해 온 단편 및 중편 창작 소설, 국내외 서적 리뷰, 신간 안내, 해외 소설 번역 등이 갱신되며 거울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독자 단편 투고 우수작 및 가작 심사와 시상이 행해진다. 이러한 제도는 다른 인터넷 상의 문학 웹진도 채택하고 있지만 거울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점은, 그 달의 독자 투고 게시판에 올라온 ‘모든’ 작품들에 대해 심사평이 달린다는 점이다. 이러한 요소를 통해 보다 유기적으로 독자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두 번째는 서적 출간 및 정기 합평회 등의 오프라인 활동이다. 거울은 1년에 1~2차례, 올라온 창작 중단편 소설 중 훌륭한 작품을 골라 책으로 찍어내 판매하는 대표 중단편선 시리즈, 특정한 소재를 정해서 거울 필진 외에 독자들의 작품 투고를 받아서 모은 작품들을 수록하는 앤솔러지 시리즈, 필진들의 개인 단편선 시리즈 등을 출간하고 있다.

  거울의 활동 중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요소는 정기적으로 행하는 합평회다. 합평회란 작가들끼리 일정 기간마다 모임을 가지며 각자가 쓴 작품에 대해 평가를 주고받는 모임으로써, 스스로는 창작 활동을 하지 않기에 관점이 편중되기 쉬운 비평가들이나 맹목적인 칭찬 또는 비난 일색으로 뒤덮이기 쉬운 출판사의 광고들 대신 마찬가지로 소설을 쓰고 있는 입장인 동료 작가들의 관점을 접하고 스스로의 소설을 돌아볼 기회를 갖는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원래 거울에서는 매월마다 필진에 소속된 작가들로만 구성된 합평회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거울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모임에 나오는 작가들이 고정되다 보니까 서로의 작품에 대해 익숙해지고, 새로운 시각을 통한 접근이 어려워진다는 문제점이 지적되어 비정기적으로 일반 독자들 역시 부담 없이 해당 작품을 읽고 찾아와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공개 합평회를 열어 필진 합평회와 병행하여 운영하고 있다.
  


  3. 나오는 글

  근대는 인간의 이성과 활력에 대한 믿음이 최대화되었던 시기였고, 중세 시대 인간의 정신을 지배했던 미신과 미망은 계몽되리라고 많은 이들이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또한 근대는 그러한 이성과 질서에 대한 신념이 유럽 열강들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와 오리엔탈리즘으로 나타난 시기이기도 했다. 두 차례의 광기에 찬 세계대전을 거치며 그러한 믿음은 깨어졌고, 이성과 질서가 광기와 혼란의 대파괴로 끝나는 걸 지켜보면서 단일하고 절대적인 인간 이성- 한 발 더 나아가 우주를 구성하고 세계를 움직이는 단일 원리가 존재하리라는 믿음으로 표상되는 ‘신’은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빈 자리에서 비중심성, 다원성, 가변성, 상대성 등의 속성을 가진 포스트 모더니즘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변화는 문학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이미 후기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기에 들어선 21세기 현재에 이르러서도 그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의 문단 권력은 여전히 확고하고 보수적이며, 판타지나 SF 등의 대중 문학에 대해서는 동등한 위치에서 논할 만한 수준이 되지 않는다고 폄하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한 폄하가 전적으로 부당하다고는 할 수 없다. 소설 창작에 대해 전문적이고 고도화된 훈련을 쌓은 순수 문학 작가들과는 달리 대중 문학은 그 칭호에서부터 드러나듯 대중들의 접근성이 높고 창작에 있어서도 그 문턱이 비교적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서고 나면 대중 문학 역시도 대단히 세련된 기술과, 작가의 고유하고 확고한 철학을 필요로 하게 된다. 쓰는 걸 시작하기는 쉽지만 잘 쓰기는 어려운 게 대중 문학이다. 이것은 대중 소설로 씌여졌으면서도 해당 장르의 팬덤만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많은 비평가들에 의해 권위를 인정받은 움베르트 에코의 [푸코의 진자], 존 로널드 루얼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같은 작품들이 있다는 사실로 증명된다. 문제는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유럽이나 미국과는 달리 순수문학과 대중문학 간의 경계가 뚜렷이 구획 지워진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으며 그러한 믿음과 편견으로 인해 양자 간의 골만 깊어지고 있을 뿐 양쪽 모두가 저마다의 한계에 직면해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웹진 거울은 그 벽을 허물고서 한국의 문학에 새로운 활로를 틔워줄 수 있는 가능성의 중요한 산실 중 하나가 되어줄 수 있으리라고 본다. 나는 거울의 소설들을 그런 의미에서, ‘경계 문학’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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