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축하합니다. 그리고 각오하시길.

3주년 특집 원고를 부탁받았을 때도 이 제목으로 시작했습니다. 맨 처음은 역시 ‘축하합니다’라는 말만한 것이 없는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의미로 정말 축하합니다. 꾸준하게 계속해 왔던 점도, 점점 발전해 가는 모습도, 새롭게 변해갈 미래에 대해서도요.

그런데... 이 기획기사를 클릭해 들어온 여러분께는 축하의 인사를 할 수가 없겠네요. 제가 부탁받은 원고가 무언지 아세요? 이제까지 거울이 출판한 중단편선 소개입니다. 거울은 이제까지 총 15권의 중단편선을 출간했고요, 그 중 9권이 매진되었습니다.

매진
n. 하나도 남지 아니하고 모두 다 팔려 동이 남. (네이버 국어사전)

이미 예감하고 계시듯 이 글타래는 기사를 빙자한 자랑과 염장의 장이 될 듯 합니다. 억울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거울 첫 단편선 출간부터 이 곳을 알고, 매진 전에 get할 만한 행동력과 자금력이 있던 저는 위너니까요. 호호. ...이러다 제 코를 납작하게 할 만한 댓글들이 줄줄이 달릴 것 같으니 서론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본론이 더 흥미진진할 겁니다. 훗.)

7년간 15권이라는 상당한 다출판을 해 낸 거울. 대단합니다. 무엇보다도 작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요. 짝짝짝. 그럼 지난 7년간의 거울 작가들의 활동을, 출간작을 중심으로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거울의 뿌리: 연도별 중단편선

지난 기사(ida특집기획⑦거울을 만난 날)에서 편집진 여러분이 첫 단편선을 만들고 ‘신기했다’고 이야기하셨는데요, 저도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와, 내가 거울책을 사다니! 우와! 우와!’랄까, 처음 배달되어 온 책이 얼마나 애지중지하게 느껴졌는지 가장 먼저 한 일이 책비닐로 랩핑하는 것이었습니다(차마 검은 표지가 오래 되면 벗겨질 것 같았다고는 말 못하겠고...). 그래서 거울 연도별 중단편선하면 저에게는 어쩐지 아련하고 오래된 추억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뭔가 함께 자라 왔다는 감개무량이라고나 할까요.

[2004 환상문학웹진 거울 단편선](2004.08.10.) 상당한 퀄리티라긴 해도 역시 거울책들을 줄줄이 늘어놓고 보았을 때는 확실히 첫 번째라고 느껴질 만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서투름이 아닌 풋풋함이랄까, 잘 해 보자라는 힘찬 기합이 느껴지는 이 단편선은 첫 번째였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가질만한 좋은 책입니다.
이 때는 표제작이 없었으니 단편선의 첫장에 실린 작품을 볼까요. 가연(박애진)의 ‘아도니스’. 이제는 진아로 닉네임을 바꾼 이 작가의 예전 모습인 기본기 탄탄한 이 작품은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소설은‘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방법이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이었습니다. 직접적인 묘사가 아닌 주변인의 생각을 통해 그것을 드러내고 있거든요. (별빛을 박은 듯한 눈빛, 붉은 입술 어쩌고...일색이었던 통신 소설 세대였으니까요.)
사소한 재미 몇 가지. 이 책만 ‘단편선’이라는 이름으로 나왔습니다. (이후부터는 ‘중단편선’으로 출간됩니다.) 그리고 독자우수단편이라든가, 편집부 추천 단편, 저작권이 소멸된 일본 단편 같은 다양한 소설들이 실렸습니다. (나중에 이 글의 작가들도 대부분 거울필진이 됩니다.) 그래서 거울책이라기 보다는 거울작가들이 이제까지 넷상에 발표했던 작품들의 모음집이라는 의미가 더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거울에서 새로 쓴 작품보다 다른 곳에서 봤던 소설들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그런 탓에, 내용들이 꽤 좋기도 합니다. 이 작가들의 그 때의 베스트, 라는 느낌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이 작가라면 이 소설은 읽어봐야!’라고 꼽는 작품이 아직도 이 책에 가장 많습니다.

[2005 환상문학웹진 거울 중단편선](2005.08.10.) 뚱띵이라고 불린다고요? 그럴 듯 해요. 기합이 너무 들어간 이 책의 외피는 아무래도 실패인 것 같습니다. 읽을 사람을 두렵게 하니까요. 하지만 내용 면에서는 이 책이야말로 앞으로 계속 거울 중단편선이 출판되겠군, 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만들어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선 새로운 피의 수혈이 매우 순조롭게 이루어졌고, 작가들이 꾸준하게 개작과 창작을 해 나가 읽는 것이 벅찰 정도로 활동이 활발했거든요.(물론 당시에는 그것에 ‘활발’이라고 이름붙일 수 없었지만. 그 때도 거울은 상당히 조용했거든요.)
이 단편선의 첫 번째 작품은 ida(김보영)의 우수한 유전자. 아마 이미 편집장은 개인단편선에 대한 윤곽을 그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간단하나마 작가들에 대한 소개가 삽입됩니다. 상당히 친절해졌지요.
재미있는 것은 서문과 축사(by 진산)입니다. 읽어보면 그 시절에 우리의 고민이 상당히 절실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모두 ‘무서움’과 ‘두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동인지를 출판하면서도 기쁨보다 미래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해야 했던 시대였군요. 이런 변화의 모습을 보는 것도 연도별 중단편선의 재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2006 환상문학웹진 거울 중단편선: 변신!](2006.11.15.) 이 시기부터 표제작이 등장하고 책의 외피가 그럴 듯 해지고, 작가 소개가 풍성해집니다. 편집장이 서문에 ‘그만두지 않는 재능’을 언급합니다. (중단편선 또한 그만두지 않고 이어가는 훌륭한 재능의 거울!입니다. :)
내용면으로도 상당히 훌륭합니다. 작품들의 수준이 고르게 상향평준화되었습니다. 표제작의 작가 콜린(김이환)은 ‘변신!’외에 한 작품을 더 실었고, 배명훈도 두 작품이 실렸습니다. 새롭게 수혈된 작가들의 활동이 활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단순한 작가명의 변화에 그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작풍의 소설들이 도드라지면서 확실히 이전의 중단편선과는 전체적인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기를 거울 제2기로 부를 정도로 변화가 많습니다. 꼭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을 정도에요. 아, 매진이죠? (염장중)
2004에 독자단편을 실었던 jxk160이 ‘바지니에게’를 실으며 개근 도장을 찍습니다. 짧지 않은 글을 쓰는데도 이 작가는 대단해요. 은림과 무한슬픔도 개근입니다. 무한슬픔의 최근작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쉽습니다. 위트와 감각이 매우 뛰어난 작가이거든요.

[2007 환상문학웹진 거울 중단편선: 비몽사몽](2007.11.18.) 2006이 폭풍의 한가운데였다면 2007은 그 폭풍의 결과를 느낄 수 있는 작품선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연도별 거울 중단편선 중 베스트로 뽑습니다. 우열을 고르기가 어려울 정도로 모든 작품이 좋습니다. 거울의 기존 작가층의 발전(특히!)과 새롭게 거울에 합류한 작가들의 약진이 눈에 띕니다. 게다가 선작들의 배치도 상당히 좋아서 그대로 쭉 읽어나가도 아주 좋습니다. 개성 넘치는 소설이 앞에 있고 뒤로 갈수록 감성을 두드리는 단편들이 가슴을 울립니다. 편집장은 서문에서 ‘작가’라는 것에 대해 언급합니다. 아마추어를 벗어나기 시작한 거울의 지향점이 보이네요.
표제작의 작가는 배명훈입니다. 최근 들어 이 작가의 한계를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몽사몽’은 그런 면에서 이 시기의 이 작가를 보여준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당시에는 상당이 센세이션했습니다만 지금은 미래가 더 기대됩니다.

[2008 환상문학웹진 거울 중단편선: 눈 늑대](2008.) 표제작의 작가는 은림입니다. 왜 이제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작가지요. ‘눈늑대’는 기대했던 것에 비해 임팩트는 부족하지만 연도별 중단편선에 계속 작품을 실었던 개근작가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이제 이런 작품도...라는 생각이 들만한 시점이라는 점에서는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그래도 은림을 읽고 싶다면 저는 2006의 ‘환상진화가’를 좀 더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아, 매진이죠? :)
2007이 워낙 만족스러웠기에 2008 중단편선은 좀 더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모색의 단계로 보였습니다. 이 정도 작가진이라면 안정적인 선택이 있을 텐데도 그들이 실은 작품들은 기존의 경향성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모습들을 보입니다. 배명훈의 ‘마탄강 전투’라든가, 은림의 ‘눈늑대’도 그런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김상현 작가가 추천사를 썼다는 점이 눈에 띄기도 하는데 편집장의 서문이 없다는 것은 아쉽습니다. 아무래도 중단편선이니 편집진의 의도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꼭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09 환상문학웹진 거울 중단편선: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2009.12.15) 2008은 상당히 얇았는데 2009는 다시 두꺼워졌습니다. 전체적으로 작가들이 작가다운 욕심을 드러낸 책이었습니다.
중단편선을 읽어나갈 때마다 이 작가에게 이런 면이?!’라고 재조명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니터와 종이에서의 독서감의 차이도 있지만 작가자신이 1년간의 작품 중에 이걸 주목해주세요 라는 의미의 선작이니까 아무래도 공들여 읽게 되는데요, 웹진에서는 그냥 훑고 지나갔던 것이 섬뜩하게 가슴을 관통하기도 합니다. 2009의 표제작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가 그런 경우입니다. 확실히 책의 질감으로 읽으니 훨씬 좋았습니다. 아니, 훨씬이 아니지요. 상당히 좋았습니다. 왜 이 작가를 아직까지 주목하지 못했을까, 라고 의아해질 정도로 작가의 다른 면에 반했습니다. 정식 출판된 ‘문이 열렸다’(새파란세상)나 ‘은아의 상자’(커피잔을 들고 재채기, 황금가지)보다도 훨씬 좋네요. 내용은 좀 더 다듬어 친절해진다면 좋겠지만 이 정도도 괜찮고요, 제목은 화룡정점이라 할 만 합니다. 현재 장르의 흐름상으로 크게 흥하기는 어렵겠지만 일가를 이룰만한 작가로 보입니다.
그게 좋은 거 같아요. ‘잃어버린..’처럼 상당한 임팩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거울같은 공간이라 가능합니다. 아무런 상업적 이해도나 걱정없이 나와줄 수 있는 작품선이잖아요. 아마도 2010년에도 이런 작품을 만날 수 있겠지요? 기대됩니다. :)


거울의 힘: 작가별 중단편선

거울에서는 작가별로 중단편선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연도별 책자보다 부담없는, 좀 더 작은 크기의 포켓북 같은 느낌입니다. 작가별로 작품을 싣기 때문에 중단편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이라면 작가별 중단편선을 먼저 읽어보는 것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일 것입니다.

[신체의 조합: 가연 단편선](2005.02.) 첫 번째 타자는 가연(현 닉네임 진아)입니다. 20세기 감성이 묻어나는 작품입니다. 실험적이고 읽기 쉬우며, 역동적입니다. 첫 작가선인데도 촌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표지와 책장이 참 좋습니다. 작품의 질은 조금 들쭉날쭉한 편입니다만,그 때의 박애진, 그 당시 작가의 날 것을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책이지요. 또한 이 작가는 다작하는 편은 아니지만 재탕은 하지 않아서 ‘누군가를 만났어’(행책)외에는 여기의 수록작을 다른 곳에 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매진되었네요. 훗.(참고로 제 책에는 작가 친필사인도 있습니다요.;)
표제작인 ‘신체의 조합’은 지금 읽어도 참 좋습니다. 유토피아를 향한 인간의 갈망은 시대를 초월한 화두이니까요. 그 외에  사랑스런 사춘기 소고‘나의 사랑스러웠던 인형 네므’, 사랑에 대한 또다른 정의 ‘완전한 결합’등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상하게도 작가선집 중 이 책에만 작가서문이나 편집장 후기가 없습니다. 아쉬운 일입니다.

[할티노: 은림 단편선](2005.05.07.) 두 번째 작가선이 은림인 것은 그 당시 당연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서사면에서 독보적인 작가입니다. 아름다운 환상을 맛볼 수 있는 이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는 하나하나씩 짚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이름만으로 읽을 책을 선택할 작가를 꼽으라면 은림은 꼭 들어갈 테니까요. 문학상 수상작도 두 편(할티노, 할머니 나무)이나 들어간 이 선집에는 앞에는 유명한 장르작가들의 축전과 뒤에는 작가의 술회가 들어 있어 책으로서도 의미가 꽉 차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단점은 그가 너무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만 쓰기에는 잘 하는 게 너무 많아요. :)

[우리의 삶을 부수기 전에 부숴야 할 것들: fool SF단편선집](2005.08.11.) 당시 책표지가 많은 화제가 될 정도로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넘치는 단편선집입니다. 장르웹진으로서 SF선집을 내고 싶었던 욕심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fool(박성환)은 그 욕심에 아주 잘 부합하는 작가입니다. 어렵지 않은, 인문학 SF다운 소설들입니다. 단편들은 우울하지만 재미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선집의 첫 번째 단편 ‘바람에게 말하노니’을 추천하고 싶네요. 우울과 절망 속에서도 다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밤 너머에: jxk160 중단편선](2007.09.20.) 앞의 세 개의 작가선집이 누구에게 권하주든 평균 이상의 평가를 받을 것을 확신하는 것에 비해 이 책은 조금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솔직히 아무에게나 환영받을 작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거울이기에 낼 수 있었다는 편집장 후기가 마음에 와닿는 작가지요. 이 작가는 아직 소설로 판단하기보다 작가 자체의 특징이 작품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대표작이 나와줬으면 하네요. 만약 이 작가를 읽고 싶다면 꼭 이 단편선을 사서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모니터에서는 잡히지 않는 뭔가가 느껴질 거에요. 표제작인 ‘밤 너머에’는 상당히 좋습니다. 이 작가가 친절해진다면 굉장한 서사에 응집된 폭발력이 놀라울 겁니다. 이제 7년(오타아님. 편집장후기를 참조하세요) 남았네요. 사 두시길 권합니다.

[멀리 가는 이야기: ida 개인 단편선](2008.) 소개가 필요없는 작가입니다. 이 작가선은 매진됐습니다만 똑같은 표제작에 같은 작품을 실은 단편선이 행책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마디만 할게요. 꼭 읽으세요.






거울의 열매: 소재별 중단편선

솔직히 소재별 중단편선이 이렇게 잘 될 줄 몰랐습니다. 이거야말로 그냥 작가들끼리 키득거리는 잡담같은, 그냥 이벤트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 중단편선이 계속 이어지는 모습을 보자니, 거울의 저력이 굉장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르의 재미지요. 소재를 놓고 글을 쓴다는 것, 작가이며 독자인 누구나에게나 재미있는 시도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물이 일반적인 예상과 전혀 매치되지 않는다는 게 거울의 장점이자 단점인 거 같습니다.

[혈중환상농도 13%(2006.07.01.) 흡혈귀가 소재인 단편 13편입니다. 그리고 흡혈귀하면 떠오르는 짜릿한 일탈이나 에로와는 거리가 먼 작품들입니다. 참 그들다워요. 너무 거울다워서 혀를 차게 된달까요. 첫 수록작인 ‘냉동인간과의 인터뷰’는 배명훈이 거울에 합류하고 처음으로 종이책에 실린 작품입니다. 그 외에도 fool, 은림, 가연, jxk160등 거울의 대표 작가들의 작품이 실려 있어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같은 소재인데도 그 작가다운 글이 나왔다는 게 참 재미있습니다.


[제15종 근접조우](2007.07.01.) 외계인을 소재로 한 15개의 작품선입니다. 혈중..보다는 이 쪽을 더 권해주고 싶게 가볍고 즐겁습니다. 그러나 역시 외계인 하면 떠올릴 일반적인 내용은 없습니다. 거울이 그렇죠, 뭐.(으쓱)





[달과 아홉 냥](2008.07.10.) 드디어 거울에 어울리는 소재가 나왔네요. 고양이 소재 9편입니다. 이 단편선은 작가들이 좀 더 즐기는 소품 느낌이 큽니다. 솔직히 이전의 단편선 출간 때부터 꾸준했던 고양이 관련 이야기들을 좀 더 확장하여 재미있게 변주한 것 같습니다. 그만큼 작가들이 힘을 빼고 즐겁게 쓴 작은 책입니다. 고양이를 사랑하고 환상소설을 좋아하는 교집합의 사람들에게 딱인 선물이네요.


[타로카드 22제](2009.12.15.) 타로카드 각각의 이미지를 주제로 작가 각자가 소설 22편을 써냈습니다. 이전의 소재별 중단편선과 달리 좀 더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준비기간이 길었던 만큼 내용이 알차고 작가 각자의 풍미가 살아 있습니다. 이 단편선에서는 각자가 고른 소재에 맞춰 글을 쓰는 것인만큼 작품 자체보다 이 작가의 소설, 이라는 의미로 보게 되는데요, 이 선집의 작품들은 상당히 흥미로우며 즐겁습니다. 거울의 역량이 늘어나고 작가들이 필력이 성장했다는 것이 보여서 흐뭇하네요.


7년간...

거울 중단편선의 작가들은 계속 많은 변화와 진퇴를 거듭했습니다. 그것이 거울의 진정한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고여있지 않아요. 작가를 받아들이는 데 거침이 없습니다. 무서워하지 않아요. 하나의 경향성을 만드려고 하지도 않지요. 어쩌면 장르의 바깥으로까지 외연을 확장할 정도로. 때로는 이 모습이 장르적으로 위태로워 보이기도 했는데, 이제는 걱정 않고 믿어볼까 합니다. 그 믿음의 원동력은 중단편선에 있습니다. 이 중단편선이 나와주는 한은 어떤 작가가 들어오든 나가든 무슨 작품이 실리든 뭔가 하고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7년이 흐르고 나니 흐름이 보일 정도로 말입니다. 편집진에 대해 믿음이 생기네요.

중단편선은 장편소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풍미가 있지요. 그것도 한 작가의 모음작이 아닌 단편선은 굉장히 재미있는 특징이 생깁니다. 편집장의 입김이 들어가요. 그건 단순히 편집장이 나서려고 하거나 하지 않거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편집장의 역할을 되도록 축소하려는 작가주의 경향이 강합니다만, 소설이 아닌 책 자체도 하나의 창작물이라고 볼 때 기획력과 문학적 심미안을 가진 편집진의 필요성이 점차 대두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거울의 중단편선들은 크게 보아 우리나라 문학에 있어서도 하나의 중요 선례가 될 것입니다. 동인지가 이 정도의 퀄리티와 시간을 축척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거울을 주목하는 시선들은 거울의 중단편선을 단순한 동인지로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거울이 세월을 흘러 역사를 쌓아가고 있다고 한다면 그 연대기는 바로 연도별 중단편선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가별 선집은 위인전집쯤 될까요. (소재별 중단편선은 아직 그 자리를 모색하고 있는 단계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편집진의 운영의 묘에 따라 다양한 가능성을 펼칠 장이 되겠습니다.) 참 훌륭한 역사서라고 생각합니다. 몇십년이 흐른 후 독자들 입에 평범하게 오르내리는 입문서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 작가는 거울 14번째 중단편선으로 등단했으며 그 이후 꾸준한 작품활동을 통해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

제가 읽은 거울책은 이랬습니다. 여러분의 거울은 어떠했나요?
댓글 5
  • No Profile
    가연 10.08.28 21:25 댓글 수정 삭제
    거울에서 제 개인 단편선을 낼 무렵, 저는 벽에 막혀 있었어요. 키보드가 한 백 만 광년쯤 떨어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한 글자도 칠 수가 없었어요.
    다 버리자고, 예전에 뭘 썼든, 뭘 했든 다 없던 거라고,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그래서 만들었어요. 언젠가 내 단편선이 나온다면 넣고 싶던 글들, 다 버리기 전에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고. 거울에서 단편선을 제작하는 자체가 아직 모험이었던 때에 개인 단편선도 첫 시도여서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이건 나를 위한 거니까 아무도 사지 않아도, 아무도 보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절영님이 서평을 써주셨지요. 지인 하나가 프로 작가라도 평생에 한 번 받기 힘든 서평이라고 이야기했어요.
    정말 그 서평을 그 자리에서 몇 번을 읽었는지 몰라요.
    그 호에, 거울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서평을 먼저 봤다면 인터뷰 못했을 거예요.
    이런 서평을 받은 것만으로도 이 책을 낸 가치가 충분하다고, 더 이상 뭘 바랄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어요.

    이번 거울 책 총집합 서평 기획도, 기획회의 때 가장 걱정한 게, 도대체 이 거한 작업을 누가 해줄 수 있을까 였는데...
    고마워요, 절영님.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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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na 10.08.29 17:10 댓글 수정 삭제
    생일선물 같은 글이에요.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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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영 10.11.20 10:16 댓글 수정 삭제
    늦은 댓글 답니다.(제가 부끄럼이 만ㅇㅎ아서..;;)
    시일이 촉박했다는 건 부끄러운 변명일 뿐이지만, 이렇게 좋은 원고를 받고 이 정도 겉핥기식 리뷰밖에 내어놓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자랑질하고 싶다는 부가적인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것 같습니다만.(인증샷까지 찍어서 보낼까 말까 고민했다죠.:)
    어쨌든, 좋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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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영 10.11.20 10:19 댓글 수정 삭제
    가연/저도...사랑합니다.(발그레)
    가연님이 그 서평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실 때마다 부끄러워 손발이 오그라들어요.;;(물론 매우 기쁘고요) 제가 '책을 낸 가치'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 책이, 그 단편선이 가치 있는 것이었을 뿐. 그리고 그렇기에... 그 가치를 더 높이는 것은 가연님에게 달렸어요. 저는 그 부담감을 높이는 역할일 뿐이죠.:)

    pena/저는 책을 받을 때마다 매번 선물 받는 기분인걸요. 아마 그런 독자들이 많을 거에요. 부족한 글줄인데 좋게 읽어주셔서 저야말로 감사.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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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연 11.02.07 16:29 댓글 수정 삭제
    첫 화면에서 내려오면 댓글을 달아주시리라 생각하고, 호가 바뀐 후 기다리다 바로 댓글을 봤는데, 어쩐지 또 과한 말을 들어버린 것 같고, 그래서 뭐라고 댓글을 달기가 수줍어졌고, 그렇게 고민하다 어느새 해가 바뀌었네요.
    절영님께 죽 사랑받는 작가가 되도록 건필할 거예요. (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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