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대담 정세랑 작가 인터뷰

2012.01.28 00:1001.28





 참석자 pena, 정세랑, 한별
 장소 파주 출판단지



 始. 정세랑 작가를 만났습니다

 묘한 인연을 쌓아온 작가가 있습니다. 작가가 데뷔할 때부터 시작된 인연인데, 지금 생각해보니 재미있네요. 그 분이 제 블로그를 먼저 찾아주셨거든요. 그 이후에도 어쩐지 가는 곳마다 자꾸 마주쳐서 ‘뭐지 이 사람?’ 하고 재미있어했습니다. 그랬는데 이번에는 조금 색다른 관계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관계로 말입니다. 네, 굉장히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편하게 대해주시는 바람에 잠시 본분을 망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상당히 ‘말랑몰랑’한 인터뷰가 되고 말았는데, 기왕 이렇게 된 거 인터뷰가 아니라 만남이라고 우겨보도록 하겠습니다.

 2011년에 출간된 [덧니가 보고 싶어](이하 [덧니])의 저자이자 다수의 단편을 토대로 오타쿠들을 양성하고 있는 오타쿠들의 여왕, 정세랑 작가님을 만났습니다.


 1. 덧니로 콱

 ―. 덧니가 보고 싶어

 한별 [덧니] 출간 축하드려요. 글은 언제 그렇게 쓰셨어요?

 정세랑 퇴근 후에 쓰고, 주말에 쓰고, 여름 휴가 내고 썼어요. 근데 그런 식으로 쓰니까 쉬는 날도 쉬는 날이 아닐 뿐 아니라 글도 점점 나빠지는 느낌이! 제가 못 쓰는 게 아니라 투 잡(two job) 때문이에요! 좋은 핑계다! (웃음) 얼마 전에 신문에서 봤는데, 작가가 평균수명이 제일 짧다면서요. 그게 글을 써서 그런 건지, 아니면 술담배를 많이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투 잡 때문인지 확실하게 해야 할 것 같아요. 저 아는 분은 쓰리 잡도 있으세요.

 pena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작가들이 긍정적인 마인드가 되긴 힘든 것 같아요.

 정세랑 그것도 그렇고, 사실 작가들은 역사적으로 항상 부호들에게 기생해왔는데 최근 몇 세기 동안 갑작스러운 독립을 해야 했죠. 그래서 그래요, B 모 작가님 말대로 메디치 가(家)가 없어져서 그래요.

 pena 예술이니까 후원해주는 게 아니라 ‘이게 팔리면 얼마가 나오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후원하니까.

 정세랑 작가들이 저작물 자체로 생계를 유지하게 된 게 정말 얼마 안 되었다니까요. 주로 가르치는 자리를 주던가, 별채에서 먹고살게 해주던가. 메디치 가 찾고 있습니다. 살롱에서 개인 찬양하는 글 잘 쓸 수 있어요. (웃음)

 pena 지난번에 거울 100호 특집으로 쓰신 <지렁이력 100년 인류 해방사>를 보니까 잘 쓰실 것 같아요.

 정세랑 저 모 웹진에서 SF계 아부의 1인자로 뽑혔잖아요. 곡학아세의 최강자. (웃음)


 ―. 용기를 아홉 번 죽였다

 pena [덧니]를 보는데 내용이 하나하나 너무 아팠어요.

 정세랑 아팠군요. 어떡해. 발랄하게 표지 입혀놓고.

 pena 표지를 열자마자 투 잡 뛰고 있는 장르문학 소설가가 나와서 실연한 남자를 계속 죽이고 있어.

 정세랑 아, 저 이거 확실히 말해야 해요. 저기, 투 잡하고 있는 장르문학 소설가가 주인공이지만 이거 저 아니에요. 저 이렇게 씁쓸하지 않아요. 확실히 해주세요. (웃음) 그렇게 자전적이지 않아요.

 pena 조금 신용이 안 가는 게, 세랑님 소설이 의외로 다 씁쓸하거든요.

 한별 읽기는 편한데 섬뜩섬뜩 놀라게 되는 문장들이 있어요. 쉽게 읽히는데 읽고 나면 먹먹해요. 그게 좀 독특한 스타일이랄까.

 pena 특히 [덧니]는 이야기마다 누가 죽거나 꿈이 좌절되거나 사람이 변하거나 하잖아요.

 정세랑 사실 [덧니]를 솔로 삼 년차를 찍으면서 썼거든요. 사리 빚기 직전이어서 씁쓸했던 것 같아요.

 한별 장편 안에 나오는 아홉 편의 단편들도 세랑님 스타일인 것 같아요. 직접 그 글을 쓰셔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정세랑 엄마가 그러더라고요. ‘너 여기 이렇게 아홉 편 털어내고 나면 밥 먹고살기 힘든 거 아냐?’ (웃음)


 ―. 바이터(biter)

 pena [덧니]의 덧니가 저한테는 정반대의 의미로 다가왔어요. 읽으면서 딱딱 걸리는 게, 글을 읽다가 슬픔이나 절망 같은 것들이 계속 툭, 툭! 하고. 절망 같은 것들이 푹!

 정세랑 소설 내에서 조 선배가 “넌 왜 자꾸 절망에 대해 쓰냐”고 하는데 그 말은 제가 실제로 들었던 말이거든요. 그 부분‘만’ 자전적입니다. (웃음)

 한별 에이…….

 pena 에이이…….

 정세랑 (웃음) 어떻게 읽으시든 상관없는데, 그런 분들이 제일 무서워요. ‘장르라서 무조건 가치가 없어’라든가 ‘하드SF가 아니니까 가치가 없어’라든가. 그런 건 장르 쪽에서 엄숙주의인 것 같아요. 아주 편협하게 일부만 우월하고 나머지는 아니라는 태도.

 한별 <항해사, 선장이 되다>라는 작품 내 단편에서도 그 이야기가 한 번 나오죠.

 pena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소프트한 SF였는데 그다음이 너무 아팠어요. “난 이걸 이야기해야만 했어” 이런 부분이 계속 덧니처럼 뚫고 올라와서 푹푹 찌르는 거예요. 이 책은 하루에 적정량 이상 읽으면 안 돼요. 연재 형식이 맞아요.

 한별 편하게 따라가면 덧니에 콱! 물리고.

 pena 이제 좀 고른 길인가 하면 크악!

 한별 함정이 있을 것 같으면 피해 갈 수 있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물어 와서.

 정세랑 그렇죠, 바이터(biter)예요. (웃음)

 한별 표지 그림의 덧니 위치가 딱 송곳니 위치잖아요.

 pena 사실 덧니보다는 송곳니 같아요.

 정세랑 원래는 더 뾰족했는데 둥그렇게 만든 거예요.

 한별 표지는 귀여운데…….

 pena 책의 모든 면이 귀엽죠. 내지도 귀엽고 작가 소개도 귀엽고 사이즈도 귀엽고 다 귀여운데…… 이렇게 홀랑 속여먹을 수가 있나, 진짜.

 정세랑 한 탕 했네요. (웃음)


 ―. 작가의 페이소스

 한별 아 그래요. 그거 물어보고 싶었어요. “오타쿠들의 여왕”이라는 말.

 정세랑 정말 되고 싶었는데! 아직도 되고 싶은데! 독자가 모조리 이삼십대 예쁜 언니들인 거예요. 오타쿠들의 여왕이 되고 싶었으나…….

 pena 그렇게 자기 이야기가 조금씩 들어가죠.

 정세랑 그렇죠. 그 부분은 제 진성입니다. (웃음)

 pena 카레를 해먹고 싶었는데 카레가 없어서 짜장을 해먹는 장면도 있었잖아요. “간절히 원하는 것은 가질 수 없고, 엉뚱한 것이 주어지곤 하지만 후자가 더 매력적일 때가 많다,” 그런 페이소스. 되게 쓴맛 본 이야기잖아요 사실. 비비드할 줄 알았는데 로맨스가 아니고 되게 아픈 이야기고.

 한별 비비드했는데 순식간에 그레이스케일이 되죠.

 pena 맞다, 그레이스케일. 세피아 색이 되더니 피가 튀기고.

 정세랑 사실 잔인하다 잔인하다 그러는데, 사랑니 네 개에 어금니 두 개 더 뽑은 거면 아직 남은 이 많아요, 그렇게 잔인하지 않아요. B 모 작가님이 잔인하다고 뭐라 그러시던데, 생각해보니까 자기는 삼만 명씩 막 죽이고 여자 주인공 배에 칼 꽂으면서.

 pena 세랑님 글이 그런 면이 있어요, 되게 공감하기 좋은 고통이거든요.

 정세랑 ……그렇죠. (웃음) 어쨌든 간에, 다른 작가들이 저보고 잔인하다고 할 계제는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어요. 나중에 여기 이 부분에 강조 넣어주세요.
 pena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상황이잖아요, 생니 뽑는 거.

 정세랑 혼자 사는 여자의 두려움을 극대화했다는 의견을 듣고 수긍하긴 했지만, 그래도 수만 명씩 죽이는 사람들이 저보고 잔인하다고 하면 안 된다는 거죠. (웃음)

 한별 수만 명씩 죽으면 감이 안 오잖아요. 하지만 치과는…… 아. (한숨) 피가 꿀꺽꿀꺽 넘어온대, 세상에.

 pena 와 진짜, 와.

 정세랑 모 인터넷 서점의 리뷰어 신청란에, 뱃속의 셋째와 함께 읽고 싶다고 신청하신 분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 이름 수집가

 한별 세랑님은 글 쓰실 때 등장인물 이름을 실제 사람에게 빌려 쓰시죠?

 정세랑 보통 친한 친구 이름인데, 친한 친구 이름에는 아무래도 친구들의 이미지가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그게 조금 껄쩍지근할 때는 큰 마트에 가서 제일 발랄한 돈까스 담당 직원 이름 같은 걸 훔쳐 와요. 작품 속 단편인 <닭 발은 창가에>에 나오는 규진이랑 완수는 강남 뉴코아 킴스클럽에서 일하시는 분들이었는데 죄송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허락 없이 이름을 빌렸어요. (웃음) 그런데 그 두 분이 굉장히 친해 보였고, 친구로 나오기 좋은 앙상블인 것 같아서 앞으로도 쓸 것 같아요.

 pena 규진이한테만 미안해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정세랑 그렇죠, 말에서 떨어트려서 죽였죠. 자꾸 사람들이 ‘내 이름을 써도 괜찮은데 제발 죽이지만 말아줘’ 아니면 ‘죽이더라도 잔인하게만 죽이지 말아줘’ 이러는데, 아니 소설에서 죽는 건데 뭐, 저주 능력 같은 거 없어요.

 한별 그렇게 작업하시는 데 이유 같은 게 있나요?

 정세랑 만든 이름은 뭔가 만든 이름 같아요. 너무 특이한 이름을 쓰면 취향이 나빠 보일 것 같고, 너무 평범한 이름으로 하자니 평범한 걸 지나치게 노린 것 같고. 재화는 실제 있는 이름이고 있을 법한 이름인데 너무 흔하진 않고, 아무튼 그 절묘한 지점이 어떤 실재성을 확 주는 것 같아요. 친구 이름을 주인공 이름으로 썼을 때 확실히 애정도 많이 가고. 아마 다들 그래서 비슷한 이름을 쓰고 하는 것 같아요. 용기는 친구의 친구였는데 정말로 일곱 살 연하의 여자 친구한테 차였대요. 전 그거 모르고 썼거든요. 제가 한 건 아니고 저주의 책인 건 아니지만 미안해요. (웃음)

 pena 글을 쓰고 있던 도중에 차인 건 아니죠?

 정세랑 어, 아니, 어? 약간 겹치는 것 같기도 하고?

 pena 시간을 맞춰봅시다, 얼마나 신통한 마녀인가. (웃음)


 ―. 좋은 친구들

 pena 용기가 고생을 많이 하죠.

 정세랑 아, 만날 깨지죠. 엉덩이 뼈 깨지고, 무릎 뼈 깨지고.

 pena 그거 웃겼는데. “출동했는데 5분 만에 온다면서 왜 7분 만에 오냐 이 새끼야?” 하는 거.

 정세랑 실제로 사설 경비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제 친구가 그런 직업적인 소스를 많이 줬거든요. 친구한테 잘해야죠. 저는 친구들이 웃긴 이야기를 하면 써도 되냐고 미리 확인을 받아요. 왜냐면 나중에 기분 나쁠 수 있으니까. 용기가 술 먹고 토하고 있는데 차 빼면서 누가 “사람이야 사람이야!” 그러는 부분이 있잖아요? 회사 선배 이야기거든요. 책 나오고 나니까 그래서 그때 허락받은 거냐 그러시더라고요.

 pena 주변 사람들이 다 작가면 ‘오늘 이런 소리를 해서 완전 열 받았어’ 이러는데 옆에 있는 작가가 ‘나 그거 써도 돼?’ 그래요. 안 돼, 내가 써야 하거든. (웃음)

 정세랑 그래서 작가 아닌 친구들을 많이 만나야 해요. 친구들은 소스는 많은데 쓸 데가 없잖아요. 내가 받아오면 그게 장당 만 원인 거예요. 몇만 원씩 보태주면서 모르잖아, 좋은 친구들이야. 덕분에 먹고삽니다, 감사합니다. (웃음) 친구들의 사생활을 팔아 장당 만 원으로 교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자기들 이야기를 써서 주면 선물이구나! 하고 좋아하죠. 자기들이 훨씬 더 비싼 걸 많이 줬는데. (웃음)


 2. 오타쿠들의 여왕

 ―. 연애, 그 무게감

 정세랑 <영원히 66 사이즈>도 꽤나 좌절했을 때 쓴 거라고 밝힌 적 있지만, 요즘 글이 안 써지는 게 행복해서인 것 같아요. 연애 이야기는 사실 쓰는 데 에너지도 많이 들고 되게 중요한 이야기라니까요. 우리나라는 연애소설의 지위가 너무 낮아요.

 pena 질리지 않게 먹을 수 있는 로맨스 소설 같은 걸 많이 내고 싶어요.

 정세랑 갖다 붙이면 다 로맨스 소설이라 주장할 수도 있지만.

 pena 아닌 것도 많아요. 저는 배명훈님 소설에선 연애가 나와도 연애 같지 않아요. 뭐랄까, 사람과 사람이 알콩달콩, 이런 게 아니라 세계와 세계가 만나는 것 같아서 만날.

 정세랑 세계와 세계의 이야기군요. 그러니까 배명훈님이 더 잔인하다니까요. 은경이 배에 푹 찔렀다니까요. 에이 몰라, 이제 이니셜 처리 안 해주셔도 돼요. (웃음) 자꾸 나한테 잔인하다 그러시는데, 이게 뭐가 잔인해. 이 몇 개 뽑고 잘 살아 있는데.

 pena 다들 남 생각 못하는 것 같아요. (웃음) 작가들은 사돈 남 말이 장기인 것 같아.


 ―. 언니오빠 판타지

 정세랑 어쨌든 인생의 목적은 오타쿠들의 여왕!

 한별 앞으로도 오타쿠들을 공략할 만한 글을 쓰실 건가요?

 정세랑 사실 못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예쁜 언니 독자들도 좋아합니다. 엄청 아기자기한 것들 매번 보내주시고, 크리스마스카드도 보내주시고. 역시 언니들이 좋아요.

 한별 쓰고 싶으신 글이 ‘언니오빠 판타지’라고 하셨던가요?

 정세랑 작가마다 상대해야 하는 대상이 있잖아요? 관료주의가 주적인 사람이 있고, 자본주의가 주적인 사람이 있고, 제 주적은 엄숙주의인 것 같아요. 엄숙하게 구는 걸 견딜 수가 없어요. ‘언니오빠 판타지’는 가볍게 쓰겠다, 생활언어로 쓰겠다, 그런 이야기도 되지만 엄숙주의를 벗어야지 독자들과 소통이 되지 않을까? 그런 의미도 있어요. 독자들이 한국문학에서 괴리되고 있으니까요. <말랑몰랑>에 썼듯이 편의점에서 팔리고 싶단 이야기죠.

 한별 세랑님은 덧글이나 리뷰 같은 거 굉장히 열심히 찾아다니시는 것 같아요.

 정세랑 저 완전 스토커예요. [덧니]를 언급하거나 저를 언급하신 분들은 다 물색해서 팔로우하고 있어요.

 한별 그렇게 말씀하고 계신 오타쿠들의 여왕이십니다. (웃음)

 정세랑 네, 여왕이 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요. (웃음) 부끄럽지 않아요. 트위터는 만나기 위해 하는 거죠. 전 100% 맞팔율을 자랑합니다.


 3. 신년계획

 ―. 새 책 주세요

 pena [덧니]가 10월쯤 나온다 그랬는데 계속 밀린 거죠?

 정세랑 네, 사실 표지 붙이기가 쉽지 않은 책이잖아요.

 한별 이 뽑는 장면 같은 걸 표지로 넣어버리면 이제…….

 정세랑 곤란하죠.

 한별 표지 느낌이 조금만 무거웠어도 굉장히 무겁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

 정세랑 딱 마음에 들게 첫 책이 나온 것 같아요. 이런 행운이 몇 번이나 인생에 있을지. (웃음)

 한별 단편집도 내셔야 하는데.

 정세랑 2012년 후반으로 잡고 정리하고 있어요. 관계자분들께, 마감을 지키기 못해서 죄송합니다. 잘못했어요. 제가 편집자니까 절대 마감을 어기지 않겠다, 그거 하나만은 꼭 잘해야지 그랬는데…… 데뷔 2년도 안 돼서 스스로의 맹세를 어기게 됐어요. 어쩔 수 없구나, 마감이라는 건. (한숨)

 한별 내년 후반기면 딱 좋네요.

 정세랑 그렇죠. 단편 발표한 게 많아서 그 책은 두꺼울 것 같아요. 두껍고 큰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9~10편 정도 되는데, 그중에는 발표 안 한 것도 넣고 싶어요. 어떻게 될지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다 따라 읽어주신 분들을 위해 미발표작도 한두 편쯤 넣는 게 목표이긴 한데……. 다 읽은 이야기 또 사기 아깝잖아요.

 한별 잡지에 실린 글은 지나가면 못 보잖아요. 그런 글들은 돈 주고 사서 계속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세랑 마감해야죠. (웃음) 쓰는 것보다 고치는 게 더 어려운 것 같아요.

 pena 쓸 땐 그게 더 어렵죠.

 한별 쓸 땐 쓰는 게 어렵고 고칠 땐 고치는 게 어렵고? (웃음)

 정세랑 (웃음) 다 어렵다는 걸로 정정하겠습니다.

 한별 진짜로 단편집 나오면 재밌겠네요. 단편집 말고 다른 소식은 없나요?

 정세랑 두세 달 안에 새 장편 나와요.

 한별 장편이요? 빨리 나오네요.

 정세랑 좀 빨리 나오죠? 제가 첨벙첨벙하고 다니다가 일정 조절을 못 했어요.

 한별 책 소개 좀 해주세요.

 정세랑 아, 남자친구가 외계인이에요. 친환경 SF 러브 로망. 하지만 하드SF는 아니니까 하드SF 팬들은 보지 마세요. 보고 욕하려고.

 pena 이럴 때는 욕할 거면 사서 보고 욕하라고 해야죠. (웃음)

 정세랑 아뇨아뇨, 아예 사지도 말고 빌리지도 말고 욕하지도 마세요. 전 엄청 검색해서 찾아 보기 때문에 상처 받아요. (웃음) 안 사도 돼, 안 읽어도 돼. 이건 분명히 소프트SF라고 밝혔는데 꼭 사서 보고 욕할 사람들이 있어요.

 한별 두세 달이라고 하면…….

 정세랑 모든 출판이 그렇듯이, 책은 나와야 나오는 거지만요. 근데 정말 나올 것 같아요. 초절정 미인 담당 편집자가 열심히 달리고 계세요.

 pena 5월에 나오겠네. (웃음)

 정세랑 이번에 같이 일하고 계신 분들은 제가 단편집 마감 못 지키고 있는 바로 그분들이라 …….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마감 못 지켜서 죄송합니다. 저 이런 사람 아닌데.

 한별 그럼 2012년에 두 권이나 나오네요.

 정세랑 그렇죠. 조금 밭은가?

 pena 일 년 사이에 책이 세 권 정도 나오는 게 작가 인지도를 높이는 데 좋대요.

 정세랑 일정을 실수로 잘 맞춘 거네요.


 ―. 너도 한번 물려봐라

 한별 “끝없이 회자되는 가벼운 농담”이 될 수 있으시겠어요.

 정세랑 소설 이야기를 하자니까 다들 왜 ‘작가의 말’ 이야기만 해요, 진짜. (웃음)

 pena 이야기는 진짜 단순한데, 단편 형식으로 이야기가 끼어들어 있잖아요. 소설을 요약하려면 그 이야기를 다 하든가 아니면 간단하게 요약하든가 해야 해요.

 한별 이야기 자체보다는 그걸 풀어나가는 과정이 너무 좋아서. 중간에 덧니에 콱 물리는 걸 설명 못 한다니까요?

 정세랑 그렇구나. 그 부분 강조 쫙 그어주세요, 좋다. (웃음)

 한별 진짜 읽어봐야 물리는 참맛을 깨닫게 되죠. 물려봐야 알아.

 pena 그거 카피로 좋은데요?

 한별 너도 한번 물려봐라?

 pena 맛 좀 봐라.

 한별 이 표지에 ‘너도 한번 물려봐라’는 너무 귀여운데요?

 정세랑 하지만 물리면 아파요.

 한별 아프다기보다는 쓰려요. 두 번째 읽어보니까 확실히 더 쓰리더라고요.

 pena 이별해봤으면 더 쓰려요.

 정세랑 어 그러게? (한별 보면서) 여자 친구 생겼어요? 아, 내가 인터뷰하면 안 되나?

 pena 원래 우리 인터뷰는 당하는 게 전통이에요.

 한별 인터뷰가 아니잖아요, 지금. (웃음)

 정세랑 노코멘트 하고 있어. (웃음)

 한별 네…… 올 겨울도, 혼자…….

 정세랑 응, 올 겨울도 차였어요?

 한별 뭘 차여요?!

 정세랑 그냥 혼자예요 애초에?

 한별 잠깐!!


 4. 광고 하나 하겠습니다

 ―. 광고쟁이

 정세랑 아, 그리고 참. 광고 하나 해도 돼요? 장편이 하나 있는데, 이거 아무리 봐도 소설이 아니라 그래픽노블인 것 같아요. 만화 출판사 관계자분들, 저 이야기 하나 있습니다, 연락주세요. (웃음) 만화가랑 작업해야 하는데 아는 만화가가 없으니까. 제가 원고를 들고 있는 게 아니라 스토리만 들고 있는 거잖아요. 국내 작가를 붙여줄 수 있는 출판사를 찾고 있어요.

 한별 되게 궁금하네요.

 정세랑 페이크 역사서예요 그건. 제가 역사 관련 학과 출신이잖아요.

 pena 그러면 작가만 붙여주면 제가 출판할 수도 있는 거예요? (웃음) 하고는 싶은데, 그건 또 노하우가 있어야 하더라고요.

 정세랑 그러니까요. 편집은 세분화된 세계니까요. 어쨌든 제 꿈이 그래픽노블 내는 거예요. 광고입니다, 그래픽노블 관계자 여러분들, 저 이야기 있어요, 사주세요!


 ―. 크고 두꺼운 전집

 한별 아, 나도 저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pena 아직 학교를 안 졸업해서 그런 거예요.

 정세랑 그보다, 제대도 안 했잖아요. (웃음)

 pena 졸업도 안 했는데 프로들이랑 너무 일을 많이 하고 있어. (웃음)

 정세랑 제가 떡잎부터 알아봤다니까요. 뭔가 될 거라니까요. 이런 사람한테 잘 보여야 나중에 전집 내줘요. (웃음) 난 전집을 위해 자기한테 잘한 거예요.

 한별 세랑님 전집을 내가 내는 거였구나!

 정세랑 나보다 조금 늦게 죽겠지. 내 거 하고 죽어요, 하다 죽으면 안 돼.

 pena 전집 편집하고 서문 쓰면 되지.

 정세랑 서문에 잘 써줘요, 광고를 열심히 하는 여자였다고. (웃음)

 한별 그런데 전집은 원래 작가가 죽은 다음에 만드는 거 아니에요?

 정세랑 보통 그렇죠. 죽기 전에 하기도 하지만.

 한별 저랑 나이 차이 얼마 안 나시지 않아요? 힘든데?

 정세랑 아, 조금 더 어린 친구를 찾아야겠구나. (웃음)


 終. 강조는 인터뷰이 요청대로


 (정세랑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캐나다 파주시는 서울보다 춥고 눈도 많이 온다고 합니다. 파주의 ‘파’는 파 어웨이(far away)의 ‘파’라고 그러시더군요. 그런 추운 곳에서 시간을 내주신 작가님께 잠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편한 분위기라는 명목으로 다소 두서없고 복잡한 기록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네, 역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겠습니다.

 인터뷰 한 날로부터 한참 시간이 흘러 벌써 해가 바뀌었습니다. 예정대로라면 올해 안에 정세랑 작가의 책이 두 권 더 나오겠군요. 단편집 한 권에 장편소설 한 권이면 한 해 동안 섭섭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 정세랑 작가님의 전언입니다. 본인의 싸인은 결코 악어가 아니라 世자와 늑대 얼굴을 합쳐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 세(世)에 늑대 랑(狼), 늑대인간이라는 농담이었는데 자꾸 악어로 오인받고 있다는군요.
댓글 6
  • No Profile
    앤윈 12.01.29 02:19 댓글 수정 삭제
    속았어도 귀여워요. =)
  • No Profile
    정세랑 12.01.29 10:36 댓글 수정 삭제
    ㅋㅋㅋ앤윈 님 같은 귀여움의 표상한테 들으니 더 기쁘네요!!
  • No Profile
    배명훈 12.01.30 23:26 댓글 수정 삭제
    응? 제가 뭘 어쨌다고 자꾸 저를... (어제 쓴 이야기에서는 세 줄만에 1,458,023명이 실종... 하지만 묘사를 전혀 안했기 때문에...)
  • No Profile
    정세랑 12.01.31 10:55 댓글 수정 삭제
    대체 어떤 스케일을 쓰고 계시길래! 잔인해욥 +ㅁ+ 큭큭큭
  • No Profile
    AhoNara 12.01.31 22:46 댓글 수정 삭제
    정 작가님의 작품에서는 '뭔가를 전달해야만 한다는 집착에 사로잡히다 못해 프로파간다를 토해내는 안타까운 모습'이 안보여서 좋아요. ㅎ
  • No Profile
    정세랑 12.02.01 09:11 댓글 수정 삭제
    옷옷 그런가요!! 저 뭘 쓰고 있는지 자각도 없이 쓰는 바보라서 그런 것 같지만 짚어주신 장점, 잘 지켜나가겠습니다 +ㅁ+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 25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