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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곽재식 인터뷰

2013.05.31 17:5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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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 : 곽재식
진행자 : 라키난, pena
일시 : 2013년 05월 11일


“거울의 명실공히 가장 재미있는 작가” 곽재식 님의 책이 정식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바로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와 [모살기] 두 권입니다. 이는 출판사 ‘온우주’에서 기획하는 단편선의 첫 책이기도 합니다. 다른 거울 분들의 책도 출간 예정작에 올라 있는데요, 야심찬 시리즈의 첫 포문을 올리는 책이니만큼 많은 기대가 됩니다.
이에 온우주 출판사의 주선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인터뷰의 일부는 온우주에서 간행하는 정기 소식지의 내용으로 실립니다. 소식지는 책을 주문하면 받을 수 있으며, 출판사 온우주의 홈페이지에서도 본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www.onuju.com). 인터뷰에는 라키난 님과 pena 님이 수고해주셨습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많으니 아직 책을 읽지 않으신 분은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은 따로 표시했습니다.


1. 이 나왔습니다.

팬들이 만들었던 [곽재식 단편선]을 제외하면 자기 책은 처음이잖아요. 어떤가요?

여기가 지금 막 생긴 출판사잖아요. 더군다나 사장님이 제일 먼저 제안을 주셨는데, 치밀한 계획보다는 뭔가 번쩍 생각이 들어 이메일을 주신 것 같았습니다. 사실 공동 단편집에 껴서 나가는 거나 독자 분들이 만들어주신 책은 어떻게 보면 부담이 적은 건데, 그런데 이건 저만 들어가는 거니까, 사실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출판사에서도 노력을 많이 해서 냈는데 망하면 어쩌나, 아무도 안 봐주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글만 묶어서 책을 내긴 했는데 대부분 이야기들이 시간이 좀 지난 것들이었습니다. 최근 거라고 해봐야 3년이 지난 글입니다. 막상 책으로 나와 보면 어떻게 보면 유행에 뒤쳐진 글일 수도 있겠다, 결과에 출판사에서 실망하면 어쩌나, 싶기도 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연락을 주신 것도 그렇고, 계약금 주신 것도 그렇고, 굉장히 편의를 많이 봐주셨습니다. 매우 좋은 작가를 섭외하신 듯 우대를 해주셨는데, 거기에 부응을 못 하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오기 전에 책으로 묶인 거 읽고 왔거든요.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책이 잘 되는 건 작가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와 출판사와 독자와 대자연의 오묘한 이치가 작용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나름 “거울의 명실공히 가장 재미있는 작가”시고요. 표지는 보셨죠?

네. [모살기] 표지는 무난해 보였습니다. 상상하던 모습과도 비슷하고, 누가 봐도 내용과 어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반면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는 처음엔 아주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은 평이한데 표지가 너무 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막상 최종적으로 편집된 걸 보니까 괜찮아 보입니다. 나름대로 멋있어 보이고. 출판사에서 하는 이야기로는, 표지가 독특한 면이 있기 때문에 판매대에 놨을 때 눈길이 간다고 하더라고요.

원래 작품이 많은데, 그 중에서 골라서 묶은 기준이 있을 것 같은데요.

[모살기]에는 예전 [곽재식 단편선]에 없는 것들만 있고, 그에 비해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는 하나 빼고는 다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처음에 사장님이 그 [곽재식 단편선]을 읽고 전화를 해 주신 거였습니다. 그 부인 되시는 분이 읽는 걸 옆에서 같이 읽다가 이걸 출판하자고 생각하셨다나 봐요. 처음에는 그걸 다 책으로 찍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좋은 것만 뽑아서 한 권만 잘 해봅시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곽재식 단편선]에서 재미있는 걸 뽑고, 그 다음에 나온 것 중 재미있는 걸 뽑고, 했는데 그걸 편집장님이 유형별로 묶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렇게 해서 현대물이 첫번째 권이고, 역사물이 두번째 권이 입니다.
이야기는 다 제가 고른 대로 묶였습니다. 내 이야기 중에서 이게 재미있다 싶은 거를 묶어 봤습니다. 두 권으로 묶을 수 있는 것 중에는 나름대로 제일 괜찮다 싶은 것들만 모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글을 그냥 쓸 때랑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받았을 때가 다르고, 책에 실릴 때는 또 다르잖아요. 출판하기 위해 글을 고친 건 없나요?

거울에 올린 것에서 고친 내용이 일부 있습니다. 내용을 바꾼 건 아니고 표현을. 저는 글을 쓸 때, 특히 신나게 진행되는 부분에서는 뭐 비문이 나오건 말이 앞뒤가 안 맞건 리듬에 맞춰서 줄줄 써나가는 게 있는데, 그런 걸 주로 고쳤습니다.

글로는 괜찮은데 책으로 보면 이상한 부분이 있어서 고친 게 좀 있어요. 저도 종이로 뽑아서 보니까 다르더라고요.

정말 구비문학이네요. (웃음) 그럼 작가 입장에서 이 책을 소개한다면 하고 싶으신 말?

그런 걸 작가가 못하기 때문에 편집자가 하는 거예요. (웃음) 홍보 문구는 이건데요. “사랑은 모험이다, 말 그대로.” “곽재식표 블록버스터급 이색연애담의 진수.” 저는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분량도 괜찮게 나온 것 같아요.

그런데 가격이 14,800원이면 좀 비싼 거 아닌가.

네, 비싼 책입니다. 단가를 맞추느라. 대신에 이걸 사면 만화도 부록으로 오고, 신문도 오고, 그렇습니다. 예약 판매 때 많이 사라고 해야겠죠?
(*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 시 만화화된 단편과 온우주의 소식지가 부록으로 같이 발송됩니다. 온우주 홈페이지(www.onuju.com)의 이벤트란 참고)


2.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나름 다 최고작이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 하나를 추천한다면?

다 잘 썼는데요. (고민)
<달과 육백만 달러>가 고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딱 단편소설 분량입니다. 그런데 내용도 충실하고, 인물도 생동감 있게 다양하고, 배경도 많이 나오고, 사건도 여러 가지 벌어지고, 짧은 분량에 내용이 꽉꽉 잘 채워진 것 같습니다. 군더더기가 거의 없습니다.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는 중간에 재미있다 싶으면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하면서 수십 페이지씩 가거든요. 그런 게 그런대로 재미있는 점이기도 하지만, <달과 육백만 달러>는 정말 딱 있어야할 내용만 있는 느낌입니다. 하나만 본다면 이걸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독자들께서 특별히 좋아해 주신 것은 <최악의 레이싱>이나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인 것 같습니다.

여기 연애담이 엄청 나오잖아요. 본인의 경험이 있는지.

없습니다. 사건은 여기저기서 따온 게 많습니다. 다른 소설이나 영화, 신문 기사, 뉴스에서 본 걸 섞었습니다. 나라면 저렇게 안 했을 텐데 싶은 거라든가.

<최악의 레이싱>에는 연애에는 시누이들의 경험담을 참고하는 게 좋다고 나오는데요.

이건 이야기할 게 있습니다. 이게 2005년인데, 이때만 해도 이런 게 유의미한 팁이었습니다. 요즘에는 이런 노하우가 너무 많이 퍼진 것 같아. 비법도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최신 유행이라는 느낌으로 쓴 건데, 지금보면 얘는 철 지난 이야기를 새로운 것처럼 하고 있어 보입니다.

전 몰랐어요. 전혀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충분히 새로웠어요.

남자가 찾기 어려운 소스를 찾아냈다는 느낌도 있으니까.

그리고 또, 여기 주인공도 연구원에 출장 다니잖아요. 이건 확실히 작가의 경험이 묻어난다 싶었거든요. 연구원이 많아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많은 거 같은데. 본인이 익숙해서 많이 나오는 건지, 아니면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많이 넣는 건지.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등장시키는 경우가 많은 듯 합니다. <최악의 레이싱>은 꼭 연구원이어야 했고, <왕>에서는 잘 모르겠네.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는 연구원일 필요는 없는데.

저는 분광계 때문인 줄 알았어요. 엑스레이로 방사선 측정해보고 출발하잖아요.

연구원 좋은데요.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일을 하잖아요.

연구원이란 직업을 매너리즘처럼 많이 고르게 됩니다. 직장인의 일상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면서, 독특한 소재를 같이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사실 모든 직업이 다 그런 면이 있을 테지만 연구원은 좀 더 특이한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기서 커피 만드시는 분들의 세계에도 독특하고 신기한 이야기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연구원이 좀 더 특이한 것은, 그냥 업계안의 이야기 뿐만이 아니라 세상에서 맨 처음이라는 이야기를 갖다 붙이기 좋다는 게 있다는 것입니다. <최악의 레이싱>도 그런 면이 있고. <달과 육백만 달러>는 직장인의 면모가 더 강조되어 보입니다만.
그래도 <달과 육백만 달러>의 인물을 그냥 비행기 조종사라든가 정도로만 설정해도 상당히 비슷하게 진행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여주인공을 우주로 보내려면 파일럿 정도로는 부족한 겁니다. 더 많은 구구한 설명을 해야 했을 겁니다. 그런데 연구원, 과학자로 가면 평소에는 일상적으로 생활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우주에도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거 웃겼어요. 지금 엄마가, 하고 계산하더니, 지금 저기 있어 하고 하늘 가리키는 부분.

그것도 재미있었어요. <아이언 맨>이 공돌이의 꿈이잖아요. 그것처럼 <최악의 레이싱>에서 공돌이들이 모여 뚝딱뚝딱 만들면서 재미있어하는 부분. 그리고 컴퓨터 이름이 휴스턴인 것도요. “휴스턴, 들리는가?”를 하기 위해서 휴스턴인가.

그렇죠. 무슨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잘 설정했네.

거울에 처음 글을 올리셨을 때는 우수단편으로 선정이 안 됐더라고요. 그런데 <달과 육백만 달러>는 확 좋아졌어요. 뭔가 절치부심을 하셨나, 그런 걸 물어봐야겠다 싶었어요.

저한테도 글이 달라지는 게 보였거든요. 특히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는 반 권 정도 길이인데도 지루해지는 부분 없이, 오히려 그 길이를 힘으로 삼아 마지막에 집중하는 게 보이는 거예요. 정말 글이 좋아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느꼈거든요. 혹시 본인이 글을 쓸 때 나아지고자 노력한 부분이 있었나요?

확실한 것은. 처음에는 정말 순수하게 취미로 쓰는 거였으니까 쓰고 싶은 대로만 썼습니다. 그러니까 재미있으면 아무 말이나 썼습니다. <달과 육백만 달러>만해도 쓴 다음에 그냥 그대로 올린 겁니다. 하지만 보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조금 달라진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거울에서 활동한 지 2-3년 지난 후부터는 재미있다고 해도 유행어로 웃기려는 유혹에는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습니다. 속어나 나만 아는 말은 안 쓰고, 문법에 맞는 말을 쓰려고 해보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쓰게 됩니다.
내용에 대해선 크게 의식한 점은 없는데. 이런 건 있습니다. 거울에서 활동하던 초반에는, 인터넷에 올라오는 단편에는 유독 비극이나 잔인한 글이 너무 많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균형을 맞추자는 생각이, 그리고 나는 다르게 나가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순수하게 밝은 거, 결말이 정말 행복하게 끝나는 걸 많이 쓰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초반에 밝은 글을 많이 써놓고 나니까, 내 나름대로 세상에 균형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요즘에는 어둡게 끝나는 것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렇게 경향이 바뀌어 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달팽이와 다슬기>가 그렇잖아요. 저는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가 연애담을 모은 줄 알았는데 <달팽이와 다슬기>를 보니까 아니더라고요. 주제별로 묶은 게 아니었군요?

주제보다는 배경으로 묶은 거죠. 현대물, 역사물.

근데 <달팽이와 다슬기>는 이 책에서만이 아니라 전체로 보아도 좀 튀지 않나요?

튀어요. 심지어 여기엔 여자애가 엑스트라밖에 없어.

난 걔랑 나중에 연애하는 줄 알았어요. 또 재미있는 거 알아요? 배명훈 작가는 ‘김은경’이 주인공이잖아요. 여기서 히로인은 언제나 ‘그녀’인데, 이름이 있는 여자로는 ‘은영’이 나와요. 엑스트라로 많이 나와요.

그랬나?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여기서는 그런 것만 묶였나. 학교 다닐 때 반에 은영이가 네 명쯤 있었던 거 같은데요. 참 많지 않나요. 그래서 무난한 이름으로 골라서 쓴 건데.

여우조연상이라는 느낌.

저는 이름을 써야할 일이 있으면 70년대 이전에 우리나라에 나왔던 연극배우나 오페라 가수 이름을 쭉 보고, 옛날 이름 같지 않은 걸 골라서 주로 씁니다. 은영이는 그 중에서 예외네요.

이름이 많이 나오진 않아요. <최악의 레이싱>에 나오는 ‘박명화 교수님’ 정도?

네. 그런 편입니다. 그 중에서 ‘진수 선배’는 그냥 지어냈고요. 재찬이는 제 이름에서 한 글자 따고 친구 이름에서 한 글자 딴 겁니다.

곽재식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본인 이미지를 쓰진 않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최악의 레이싱>에는 덩치가 크다는 묘사가 계속 나오거든요. 배경도 KAIST 같고. 그런데 ‘곽재식’이 나오는 경우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어요. 전공도 달라요.

왜냐면, 그렇게 곽재식이 나오는 경우에는 대부분 또 ‘나’는 따로 있습니다. 주인공이 다른 사람이기도 하니까. 어쨌건 1인칭이지만 정작 제 경험담이 많지는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작가에 대한 환상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는데, 저는 보통 중반 정도까지는 계산적으로 짜서 씁니다.

그러면 작가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나요?

그렇지 않고, “저는 떠오르는대로 영감에 의해 쓱쓱 썼어요,” 이런게 더 멋있다는 생각도 있잖습니까. 저는 이리저리 많이 짜서 쓰는 편입니다. <달팽이와 다슬기>는 억울한 장면을 먼저 생각한 다음에, 그 사건 앞에 어떤 사연이 있어야 진짜 개같이 억울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맞춰 내서 썼습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달팽이와 다슬기’ 이야기는 창조하신 거죠?

이건 어디 웹사이트에서 찾은 거 같은데. 베트남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는데, 다른 나라에 있던 전설을 조금 고쳐서 실어 놓은 것입니다.

마지막 수록작인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는 정말 긴데요. 이거 쓰는 데 얼마나 걸렸어요?

그건 분량에 비해 짧은 시간에 끝났습니다. 처음엔 분량도 짧게 끝내려고 했습니다. <달팽이와 다슬기> 정도로. 내용도 딱, 이러이러한 사고가 났는데 반대 방향으로 타고 왔더니 아내 될 사람이 감동했다고.
그런데 처음에 너무 느긋하게 시작했습니다. 복선을 넣어야 재미있겠지 싶어서. 처음에는 구체적인 사항이 많이 안 나오게 하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까 계속 이야기가 생겼습니다. 이 사람의 직업, 배경, 미국에 온 이유, 동료나 아내 이야기 등등. 그러다 보니 길어졌습니다. 덧글에도 있었는데, 보다 보면 보는 사람이 같이 지친다고. 쓰면서도 진짜.

편집자 경험을 말하자면, 네 편까지 교정을 본 다음에 이제 하나 남았으니까 좀 쉴까 했었는데요. 하고 돌아오니까 안 끝나는 거예요. 마지막 편이 제일 기니까.

새벽 두시 세시까지 계속 쓰는데, 새벽이 다 됐는데도 여기까지 밖에 못 갔나 싶더라고요. 그런데 느긋한 페이스로 온 마당에 갑자기 끊을 수도 없고. 중간에 잠을 못 잔 흔적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기차를 탄 후로는 그냥 쭉쭉 갑니다. 중국이 얼마나 넓어요. 그런데 자면서 다 가고.

그래서 사소한 질문도 많아요. 가방은 언제 사라졌는가. 몽골 소녀에게 사례는 어떻게 했을까.

몽골 소녀한테 사례는 안 한 거고. 그냥 걔가 베푼 거고. 가방이 사실 문젠데......

어차피 말을 탈 때 이미 캐리어는 가지고 갈 수가 없잖아요.

저도 이걸 다 쓰고 돌아보니까 가방이 없어지더라고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넣을 수가 없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작업을 한 번에 했더니 부작용으로 가방이 없어진 건데.

현실적으로도 가방이 없어질 수밖에 없어요. 말을 타니까.

네. 부드럽게 잘 없어진 거 같습니다. 가방이 문제겠어, 지금 이 마당에. 비행기 타면서 날린 돈이 얼만데.

아 진짜, 결혼자금으로 이미 돈이 마이너스일 텐데. 저는 결혼한 사람이라 그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미 대출받은 게 있을 텐데 돈을 이만큼 끌어 쓸 수 있나. 결혼할 때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데. 그러고 보면 영화 같은 부분도 많아요. <웨딩 코만도>가 가는 데마다 나온다든가.

작품 자체도 영화적인 연출이 있다고 느껴지거든요. 예를 들어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의 달리기 장면은, 이 장면을 위해 앞의 모든 것들이 있었구나, 이게 영화의 클라이맥스 부분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요.

서술 트릭도 있어요. 이 때쯤이면 이야기가 잘 끝날 거라 예상하는데, 그 때가 이야기의 끝은 아니잖아요.

그런 잔재주를 좀 부렸네. 맞아요. 이거 보면 11장까지는 과거의 일을 돌아보는 시점으로 가다가, 12장이 되면 시점이 갑자기 현재 겪는 일로 살짝 바뀝니다. 개성에서 버스를 타는 장면부터인가가 현재가 되고. 영화로 치자면 맨 처음에 버스 타는 남자가 나오면서, 내가 왜 이 버스를 타게 되었는지 1시간 40분을 회상한 다음에 남은 시간 동안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네. 여러 모로 영화에 영향을 받았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많이 받았습니다. 워낙 많이 봤고.


3. 모살기謀殺記

[모살기]의 글은 공부를 많이 했다는 느낌이 나요. 배경이 삼국시대니까 공부가 필요할 수밖에 없겠고요. 그런 점에서 현대물과는 다른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게다가 작품 중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썼다는 게 있길래 거기서 자료 조사 하면서 썼구나 싶었거든요. 맞나요?

<모살기>는 쓸 땐 금방 썼는데, 궁리는 한 달 정도는 했습니다.
원래는 [독재자]에 넣을 원고로 의뢰를 받아서 쓴 건데, 저는 사극으로 하겠다고 결정을 했습니다. 그러고는 [삼국사기]를 보면서 어느 시대의 인물이 독재자 분위기가 나는지 줄줄 읽어 가면서 찾아 봤습니다. 그러다가 이 시대가 괜찮은 거 같아 보였습니다. 기록은 몇 줄밖에 없었습니다. 임금은 의심이 많은 사람이고, 그 삼촌은 외곽에서 수비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는데 사람들 사이에 인기가 너무 많아서, 임금이 계략을 세워서 죽였다. 이렇게만 나오고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럼 이 삼촌이 인기를 이용해 독재를 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구려 시대의 여러 기록을 보면서, ‘이런 걸 갖다 붙이면 독재하는 느낌이 나겠다’, ‘요런 상황에서 이렇게 행동하면 독재자 같겠다’는 생각을 여러가지로 해 봤습니다. 그리고 임금이 어떤 식으로 음모를 꾸며야 삼촌을 죽일 수 있을까. 계략을 크게 꾸몄으면 기록에 남아야 합당할 거니까. 기록이 안 남을 정도로 음침하면서도 사람을 죽일 방법이 뭐가 있을까. 그렇게 계속 생각해 가면서 어울리는 근거가 있는 소재들을 찾아봤습니다. 한 달 동안 소재를 찾아서 틀을 짜놓은 다음에 출발을 시킨 겁니다.
그리고 갈등구조가 얘네 둘만 있으면 너무 단순해 보이니까, 관찰하는 사람도 하나 등장시켰고, 그 관찰자를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삼을 만한 드라마를 넣자. 임금과 삼촌이 싸우는 사이에 이러이러한 사건이 벌어질 수 있는데, 거기에 이 관찰자인 주인공을 같이 엮어 넣자. 그렇게 해서 내용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짜서 쓰는 게 많은 편입니다. 한편 <지진기>는 <모살기> 조사하고 난 자투리로 쓴 것입니다. 둘이 갈리는 게, <모살기>는 등장인물이 왕이나 귀족 같은 높은 사람 이야기로 쏠려 있습니다. 그에 비해 <지진기>는 대부분 낮은 계층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짜놓고 벌려 놓은 이야기 거리들 중에 높은 사람들 이야기는 <모살기>로, 남은 자투리가 엮여서 <지진기>가 된 것 처럼 보입니다.

이거 쓰려고 조사하는 과정도 재미있는 과정이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이런 쪽에 취미가 있어서 재미있게 했습니다.
가끔 이럴 때도 있었습니다. 밤에 시간이 좀 나서 한 30분만 써야지 하고 시작했는데 안 끊어지고 계속 할 수 밖에 없을 때. 너무 요즘에 글을 안 쓰는 것 같에서 뭐라도 조금이라도 써보자 싶어서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까 재미있어서 계속 쓰게 될 때가 있습니다. <지진기>와 <모살기>가 그랬습니다. 둘 다 밤에 잠깐만 쓰려다가 한 시간 두 시간 계속 쓰게 됐던 것들입니다. 나도 재미있어서, 이게 어떻게 결말이 날지 궁금하다 하면서. 내일 출근 못하면 안 되는데 하고 새벽 네다섯 시까지 쓰고.

<지진기>는 이틀 만에 쓰셨다면서요.

네. 사실 이것은 한번에 쭉 쓴 겁니다. 결말 즈음만 시간을 두고 썼습니다. 맨 마지막에 <모살기> 끝날 때 보면 술집 주인이 한 마디 하면서 끝나는데, 이런거 진짜 멋있지 않습니까? 독자 입장에서는 ‘아 왜 이런 걸 몰라’하면서 자기가 인물 대신에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되니까. 작가가 사연을 꾸며 놓은 걸 독자가 들어와서 잡아가는 겁니다.

좋아요. 그 부분이 감동적인 부분이잖아요. 그런데 감정을 자극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멀어져서 제삼자의 눈으로 보는 거잖아요. 사실은 이 주인공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인데, 그러나 나름의 일을 해내긴 하지만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 거 아니에요. 앞으로도 부조리한 일은 계속 일어나는 거고. 주인공들에겐 나름대로의 능력과 사연이 있지만, 술집 주인의 눈처럼 그를 둘러싼 세상은 거기에 동조하지 않는 거죠. 그런 생각도 했어요.

뭔가 세상이 못 알아봐주는 그런 느낌. 영향을 못 끼친 듯한.

그래서 더 균형이 잘 잡힌 느낌이 들어요.

<지진기>는 리얼하다고 해야 하나. 주인공이 찌질한 게.

거기엔 옥저 아이란 인물이 나오는데, 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귀엽다는 묘사 한 마디도 안 나오는데 애가 귀엽다고.

감초 같은 맛이 있어서 귀엽게 느껴지는 거 같아요. 

<모살기>도 좋아하시는 분들은 저보다 더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 저는 <모살기>는 이 정도야 뭐 마음먹으면 쓰는 거지 했는데 (웃음) 다시 보니까 확실히 괜찮은 거 같기도 합니다.

역사물은 표현이나 분위기도 많이 다르잖아요. 자료 조사용으로 찾아본 거 말고도 분위기를 내기 위해 참고한 게 있을 것 같은데.

일단 사극도 그렇고 역사물도 그렇고, 너무 현대적인 단어가 나오면 어색하게 들립니다. “누가 어떤 행동을 했는데 누가 감동을 받았다.” 이건 평범한 문장인데도 역사물에 등장하면 애매해지는 느낌입니다. 과연 “감동”이라는 단어가 저렇게 먼 시대에 부담 없이 나올 수 있는 단어인가. 감동, 행동 같은 단어만 해도 요즘에 생긴 단어니까, 생긴 지 백몇십 년 정도밖에 안 됐을 겁니다. 가끔 어쩔 수 없이 나올 수야 있겠지만 너무 많으면 이상합니다. 만약 누가 다른 사람을 부르는데 멀리 떨어져 있어서 휴대전화를 썼다, 그런데 배경이 고구려면 안 맞는 것처럼 표현이 현대적일수록 안 어울리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있게 넘어가면 재미있어지는 경우도 많이 있는데, 진지한 장면에서는 더 어려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극에서 두 남녀가 연애를 하는데,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에게 “난 너에게 버림받은 아픔이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어” 이러면, 현대 노래가사에 나오는 말이라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들리지 않게 쓰려고 노력했고. 그렇다고 너무 예스럽게만 쓰자면 나도 잘 모르고 읽는 사람도 잘 모를 테니까 쉽게 쓰려고도 해봤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있을 법한 무난한 말을 많이 써봤습니다. 너무 현대적인 표현이나 단어를 안 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을 했습니다.
어울리는 말투를 만들기 위해서는 옛날 설화집을 일부러 많이 읽었습니다. 혹시 [태평광기]라는 책 아십니까? 한 천 년 전에 중국에서 나온 책인데, 그 때 수집할 수 있는 모든 이상한 이야기나 괴상한 설화를 다 모아서 송나라에서 편찬한 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문 공부할 때 많이 읽었던 모양입니다. 그게 몇 년 전쯤 완역이 됐습니다. 번역본이 두꺼운 책으로 한 30권 정도 됩니다.

[요재지이]보다 많네요.

[요재지이]는 주석도 달려있는데 이건 주석이 거의 없는 대신에 한자 원문이 있는데 훨씬 많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많아요. 설화 형식으로 이야기 구조가 갖춰진 것도 있고, 그런 거 없이 한두 줄만 있는 것도 재밌는 것 많습니다.
여기 이야기들이, 처음에는 배경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서기 553년 복건성 지방에 사는 김 모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그 다음에 길을 가는데 앞에 가는 사람이 너무 오랫동안 아무 소리 없이 길을 걷길래, 말이라도 붙여보려고 여보쇼 하고 어깨를 짚었더니 돌아보는데 얼굴에 눈코입이 하나도 없었다. 이런식으로 그냥 짧게 몇 마디하고 신기하고 여운 남기면서 끝, 이런 것들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우리가 전통적인 우리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거, 그런 것들도 배경만 바꿔서 원형이 보이는 것들도 많이 실려있었습니다.

읽으면서 놀란 게,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에서는 악역인 여자가 없거든요. 그런데 [모살기]에는 팜므파탈이 많이 나와요.

이건 영화를 많이 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많이 따왔습니다. 듀나 게시판인가, 어떤 분이 댓글 달아주신 게 기억이 납니다. <피의 수확>이라는 옛날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이 있는데. 제 글을 보고 ‘고구려 판 <피의 수확>’이라고 해주신 분이 계십니다. 제대로 보신 것이, 이야기 쓸 때 그런 분위기로  되어 있는 옛날 영화 많이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눈치를 채신 거죠.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는 훈훈한데요. [모살기]의 사람들은 왜 그렇게 행복하질 못하나요.

행복할 수 있나, 이런 상황에.

대표님이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진짜 악인이 없다는 거예요. 다들 정당성이 있어서 모든 인물이 당당하다. 그게 매력이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정말로 왜 행복하지 못하나요. 현대도 충분히 살기 좋은 세상은 아니잖아요. 현대에서는 개인의 일상이 나오는데, 역사물에서는 일상이 아니라 사회가 나오잖아요. 사회가 나오면 행복하기 힘든 것 같아요.

예전에 [곽재식 단편선] 비평할 때도 날개님이 말하길, 연애 이야기는 그래도 해피엔딩으로 가는데 산업보호법이나 다문화가정 같은 사회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해피엔딩을 안 내더라고. <모살기>는 특히 높은 사람 이야기라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지진기>는 결말을 확정하지 않고 끝나잖습니까. 나름대로 암울한 면을 줄여보려고 그랬습니다. 다 죽고 다 망하고 끝나는 것보다는 주인공이 반성하는 걸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잖습니까. <모살기>에서 눈길을 헤쳐가는 장면도 나름 꿋꿋한 면을 보여주려고 한 거고. 근데 정말로 사회를 다루는 이야기에서는 어두운 면이 있어 보입니다. 제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걸 표현하려고 하다 보니까 그런 건지.

곽재식님 연애물이 ‘블록버스터급’인 게, 인물은 소시민인데도 행적은 영웅이에요. 사랑이 걸리면 힘을 내서 성공하잖아요. 이 업적은 영웅물에 어울려요. 그런데 사회적으로 이루는 건 없죠. 단편에서 인물 하나가 사회를 바꾸기는 힘들기도 하고. <왕>에서도 남산은 변화하지만 본인은 전전긍긍하며 살게 되잖아요. 개인과 사회, 행복과 불행이라는 점에서도 두 권이 좋은 대비를 이루는 것 같아요.


4. 글쓰기에 대해

글을 쓸 때 처음에는 그냥 쓰고 싶어서 썼는데 차츰 신경을 쓰게 되었다고 하셨잖아요. 지금은 거울에 거의 매달 글을 올리시는데요. 혹시 나름의 이유나 다짐이 있었던 건가요?

일단 노력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전업 작가로 열심히 쓰시는 분에 비하면, 전 거울 말고는 어디 글 써서 내는 게 없습니다. 다른 데 정기적으로 연재하는 것도 아니고, 장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한 달에 단편소설 하나 정도는 신경을 쓰면 가능한 일이고, 무슨 필사의 각오가 필요할 정도는 아닌 겁니다.
그럼 왜 신경을 쓰냐면. 저는 2005년부터 거울에서 이것저것 쓰다가 2007년에 처음 방송국에 판권도 팔아보고, 그 이후로 가끔 원고 청탁이 왔었습니다. 잘 안 풀려서 도중에 엎어진 건들도 있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그래도 한번 해봅시다, 텔레비전에서 해보고 싶으니 논의해봅시다, 그런 게 조금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재작년부터 그게 갑자기 뚝 끊긴 느낌이었습니다. 딱 없어진 것 같았습니다. 한 1년 동안 불러주는 사람이 없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끝물인가보다.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어차피 처음부터 취미처럼 한 건데 굳이 무슨 끝물이라는 식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꾸준히 글을 쓰는 자세를 유지해야지만 이렇게 조용한 시기도 잘 보낼 수 있다고. 그래야지 퇴보하는 일 없이 계속 쓸 수 있을 거 같다고 생각도 했습니다. 좀 재미없는 글 같아도 꾸준히 한번 써보자.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작년하고 올해에 좀 더 꾸준히 써봤습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리면, 다른 작가 분들이 열심히 하시는 거에 비해 저는 그리 힘들게 작업하는 것은 아닙니다. 틈틈이 시간 나는대로 하다 보면 한 달에 단편소설 하나 정도야, 그런 정도입니다.

그래도 일을 하면서 병행하기는 힘들지 않나요?

일이 많을 때는 힘들기도 한데, 그래도 그렇게 크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정말 재미있고 좋은 것만 써야 한다고 하면 부담감이 클 수도 있겠는데, 그보다는 적당히 이번 달에 쓰고 싶은 것을 엮어보자는 느낌이라서.

그런 것도 있을 거 같아요. 글 쓰는 게 물리적인 작업량이 많이 필요한 게 아니라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거잖아요. 절대적인 시간이 확보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서 가능하지 않나 싶네요. 그럼 주로 어떨 때 많이 쓰시나요?

주로 할 일 없는 자투리 시간입니다. 제일 집중적으로 쓰는 건, 어디 출장이나 여행을 갈 때 교통수단 안에서입니다. 일이 없이 시간 때워야 될 때나, 누구 기다릴 때에도 많이 활용하고요.

출석왕의 비결이네요. 출장을 많이 간다.

그런데 한창 많이 쓸 때는 출장 가면서도 가끔 부담스럽고 그랬습니다. 예를 들면, 오늘 저기 도착하기 전에는 다 써야하는데,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출장을 가는 본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요즘에는 그 정도는 아니고, 그냥 조금씩 틈나는 시간에 쓰는 겁니다.
많이 쓰다 보니 결과물도 균형이 맞는 것도 같고요. 재미있는 것도 쓰고 거지같은 것도 쓰는데, 쓰다 보니 거지같은 건 많이 줄어들었어요. 그런데 왜 이런 데 취미를 들였는지 모르겠네.

거울에는 어떻게 글을 올리게 되셨는지.

검색하다가 나와서 올렸습니다. 저는 항상 거울에서 활동하시는 작가 분들에 비하면 나는 나중에 합류한 편이지, 했었는데요. 보니까 아니더라고요. 이번에 리뉴얼 하면서 보니까 이 정도면 나도 비교적 초기에 합류한 편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럼요. 지금 10년 됐는데.

2004년인가 그 때, 아직 우리나라에 구글이 별로 안 알려졌을 때인데, 구글에서 검색하면 별 게 다 나온다고 하길래 제 이름으로 검색을 해봤습니다. 송경아 님이 쓴 <나의 우렁총각 이야기>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 이 이야기는 현재 2005년 올해의 문제소설 로 엮여 출판되어 있습니다.) 우렁각시 이야기를 남자로 바꾼 건데, 거기에서 주인공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남편 보고 막 개자식이라고 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근데 남편 이름이 곽재식이었습니다. 저랑 실제로 원한을 진 것은 전혀 아닌데.
거기서 방명록이며 이것저것 보다보니까 거울 홈페이지가 나오더라고요. 그렇게해서 거울에 들어가 보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무척 단정하구나 싶었습니다. 보통 환상문학 하는 홈페이지 가보면 게시판에서 싸우는 것도 많고, 요란하고 잡다한 소설도 되게 많고 그런데, 그에 비해 거울은 조용한 분위기였습니다. 뭔가 진지한 분위기였고. 독자 게시판에 올리면 평도 꼬박꼬박 해주시고 계셨습니다. 그때 <달과 육백만 달러>나 거울에 올렸던 다른 글들은 그 이전에 재미 삼아 써봤던 글인데, 이걸 남들이 보는 곳에 올린다면 거울에 올리는 게 분위기와 맞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원래 추리소설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추리소설이나 다른 걸 써볼 생각은 없어요?

추리소설 같은 요소는 넣고 있습니다. <모살기>가 약간 그런 분위기입니다. 범행을 저지른 수법을 찾고 그러니까. <일라>도 보면 주인공이 나름 추리를 하고. <김가기>는 SF 같은 분위기고. <일라>도 <마이너리티 리포트>랑 비슷하고.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는 1인칭이 잘 어울리고, [모살기]는 기록하는 사람 입장인 게 잘 어울리잖아요. 장르에 따른 문체나 시점이 정해진 느낌도 들어요. 잘 어울리니까 크게 상관은 없지만.

두 권으로 묶느라 그렇게 묶었는데, 이거 말고도 연작들을 쓰셨거든요. 연작은 3인칭이 많아요. 구어체인 건 변하지 않는데, 좀 달라요.

그러게요. 글인데 구어체란 말이에요.

그런 게 좀 특징으로 보입니다. <지진기>는 보다 보면 옛날 말처럼 하는데도 가끔 구어체 같은 부분도 있는 느낌이 듭니다.

날개님이 구비문학이라고 평하셨는데 그 말이 잘 어울려요. 날개님 비평 참 좋은 거 같아요. 정말 비평가가 되셨구나 하는 느낌.

구어체라서 영상으로 만들어도 어울릴 것 같아요. 말장난이 많아서 각색은 필요하겠지만.

아, 텔레비전으로 방영되는 각본을 보니까 소설과는 정말 달랐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집중을 안 하는 매체가 텔레비전이라고들 합니다. 그래서 방송국에서는 “예술하냐”는 말을 욕처럼 쓴다는 말도 들은 적 있습니다. 저는 꼭 그럴 필요가 있나 싶지만서도, 그렇게 시선을 낮추고 공식에 맞춰야 하는 게 있기는 있나 봅니다.
<달과 육백만 달러>이 각본으로 만들어 진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다르게 가더라고요. 은근한 부분은 없애고 직접적인 장면을 키우고.
예를 들어서 맨 마지막 장면이 달랐습니다. 책에서는 그녀에 대한 묘사로 끝나잖습니까. 그런데 텔레비전 각본에서는 애가 손을 흔들어. 그러면 화면 안의 엄마가 손을 같이 흔들 뿐만 아니라, “엄마도 이원이를 사랑해” 하면서 대사도 합니다. 그렇게 단순하고 직접적인 장면으로 조금씩 바꿔놨더라고요.

드라마로 만들어진 거 있잖아요. <토끼의 아리아>.

그건 결말 자체가 다른 이야기로 바뀌어져 있습니다. 소설에서는 남자 아저씨가 이야기를 해주고, 그로 인해 애매한 관계로 끝이 납니다. 그런데 각본에서는 모든 사연이 거짓말일 뿐이었다고 끝이 납니다. 주인공에게 관심을 가졌던 여자조차 거짓으로 꾸민 것이었다고. 결말에서는 뭔가 강한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나 봅니다.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확실히 다른 방향이었습니다.

혹시 본인이 써볼 생각은 없으신지.

대본이나 각본 이런 건 어떤 점이 나쁘냐면, 다 쓰고 나도 정식으로 팔리지 않으면 그냥 버려지는게 아까워 보입니다. 옆 사람이랑 돌려보기도 안 좋습니다. 각본 읽어보기 좋아하는 사람 진짜 없으니까요. 소설은 거울이나 인터넷의 공개된 장소에 올리면 보는 사람이라도 있는데, 좋아하는 영화라도 각본을 찾아보는 경우는 훨씬 적다고 생각 합니다.
그보다 연극 대본이나 단막극 대본은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렇게하면 아마추어 극단에서 한 번 해 볼 수도 있는 거니까. 무대에 올리지 않더라도 연습용으로 쓸 수도 있고.

사장님 야망 중에 있어요. 단편 중 하나를 연극으로 만드는 거. 그래서 자기는 엑스트라로 출연하고 싶대.

연극도 좋아해요?

그냥 가끔 봅니다.


5. 작가에 대해

영화도 많이 본다고 하셨는데요. 책을 많이 봐요, 영화를 많이 봐요?

둘다 많이 보는데, 책을 사는 건 쌓아 둘 때가 더 없어서 책은 잘 안 사게 되는데. 영화는 그렇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사실 DVD도 너무 많긴 한데. 제가 진짜 엄청난 용단을 내린 게 뭐냐면, DVD를 디스크만 빼서 담고 케이스는 다 버리면. 부피가 확 줄어듭니다. DVD는 그렇게 줄일 수 있고, 극장에서 본 영화는 집에 남는 건 없고. 그래서 영화를 좀 편하게 보게 됩니다.

책은 전자책도 많이 나올 테고. 영화는 약간의 노가다를 하면 하드 하나에 보관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보관하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영국이나 스페인 이런 데서 DVD를 사오면 그럴 수 밖에 없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는 텔레비전이나 비디오나 전부 NTSC 방식으로 되어있는데, 그런데 유럽권에서는 PAL 방식을 쓰니까 보니까 무척 어렵습니다. 코드 프리하고 상관 없이. 그럴때 제일 편한 방법이 그냥 컴퓨터로 리핑을 떠서 적당한 AVI 파일로 만들어 버리는 거였습니다.
사실 직장 다니고 하다 보면 양적으로는 정말 열심히 보는 분들보다는 많이 보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저는 장르나 완성도를 따지지 않고 그냥 이거나 저거나 하여간 잘 보는 편입니다. 잘 만든 거나 못 만든 거나, 옛날 영화나 요즘 영화나 별로 가리지 않고 다 봅니다. 영화는 그렇게 뭐든지 다 보는데, 책은 재미가 없으면 안 보는 편입니다. 읽다가 재미가 없거나 취향이 아니다 싶으면 중간에 그만 둡니다.

좋아하는 작가나 감독이 있어요?

우리나라 소설가 중에는 듀나가 제일 좋습니다. 해외 작가와 비교해 봐도 정말 잘 쓰는 것 같고.

어떤 점에서요?

그냥 잘 쓴 것도 많이 있고. 타율이 100%는 아니지만, 별로인 작품도 다른 사람의 망한 글보다는 더 나은 것 같고. 그렇게 품질 관리가 잘 되어 있습니다. 정말 존경심이 드는 게 뭐냐면, 옛날 초기작을 보면 정말 잘 썼다는 생각이 드는 것들이 있습니다. 듀나의 초기작은 90년대 중반 이럴 때 쓴 건데. 20년 전이잖습니까. 그런데 이 때 나온 다른 소설과 비교해보면 혼자 다른 세계에 가 있는 느낌입니다.

[대리전]?

[대리전]은 2000년대 중반에 나온 거고요. <면세 구역>이나 <나비효과> 같은 거.

[대리전]만 해도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소설이 나올 때 발 맞춰 나왔다는 분위기인데, 90년대 중반에 나온 것들 보면 이 사람은 대체 어디서 왔길래 이런 걸 쓰나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하이텔 활동할 때 올라오는 글들은 올라올 때마다 봤는데, 당시 과학소설동호회에 어떤 말이 있었냐면, 한국 이름이 나오거나 한국이 배경이라면 SF소설을 쓸 수 없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찬동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왜냐면 SF소설을 쓰려면 어떤 식으로든 기술의 최극단에 접점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거리가 너무 멀잖습니까. 그렇다고 억지로 쓰면, 뭐 “지금은 2020년, 우리나라가 기술의 발전으로 세계 최강대국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쓰면서 시작하면 너무 유치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이기 쉽고요. 그런데 듀나의 소설이 나오고 나서, 다들 한국, 한국인을 한 SF 소설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버리게 된 듯 합니다.
90년대에만 해도 당시 하이텔 과학소설동호회의 많은 사람들이, 듀나은 명작 SF의 특징을 잘 잡아서 요즘 자기 느낌으로 펼쳐놓는구나, 그런 식으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저도 사실 그렇게 생각했었고요. 필립 K. 딕이나 테드 창 같은 사람들이 1급 작가들이고, 그 한참 뒷선에 듀나가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보니까 그게 아닌 거 같습니다. 듀나야말로 1급인 거 같습니다. 이런 말 하면 욕먹을 것 같기도 한데, 그런데 진짜 잘 씁니다.
물론 가끔 실망스러운 걸 볼 때가 있지만, 어떨 때 보면 정말 미친듯이 잘 썼구나 싶고. 최근에 나온 것 중에는, 인터넷에만 올라온 거 같은데, <모두의 힘을 모아>라는 게 있습니다. 크로스로드에 올라왔던 건데. 주인공 이름이 화영이었던거. <사춘기여 안녕>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도 비교적 최근에 나온 건데, 진짜 잘 썼습니다. 기술적으로도 잘 꾸며서 썼고. 소재를 끌고 오는 신선함은 90년대에 처음 봤을 때처럼 충격적이지는 않는데, 게다가 요즘에는 독특한 소재로 쓰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훨씬 많이 있고, SF 쓰는 사람도 많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참신하고. 쓰기도 참 잘 썼고.

본인이 배우는 점도 많이 있겠네요?

이것도 작가의 환상을 깰 수 있겠는데, 배워서 쓰는 게 많습니다. 제 글의 분위기가 듀나 소설과 거리가 있을 수는 있는데, 쓸 때 듀나 소설 참고한 점들이 많습니다. 듀나가 반전을 만들 때 많이 쓰는 수법으로 어떤 게 있냐면, 처음에 특이한 소재를 하나 가져옵니다. 예를 들면 사람의 정신을 원격으로 조작할 수 있는 기계가 있다. ‘오늘은 어쩐지 짜장면이 먹고 싶은데’, 하면서 먹으러 가지만 사실은 누군가가 짜장면 가게에서 사람을 만나게 하기 위해서 조작했다는 겁니다. 그런 건 다른 SF 소설에서도 많이 나오는 겁니다. 이러면 반전으로 끝나길 사람들이 기대하잖아요. 하지만 사실 깔끔하고 충격적인 반전을 만드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럼 듀나가 쓰는 방법은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는 대신에 오히려 사건을 막 만들어서 소용돌이치게 해 버리는 겁니다.
듀나 소설에 보면 <꼭두각시들>이 딱 그런 소재인데. 우리나라에서 소의 뇌를 조종하는 기계를 만든 게 발단입니다. 예를 들어서 소가 밭을 더 잘 갈게 한다든가, 도축할 때 더 좋은 마음가짐으로 있게 한다는 정도에 쓸 수 있도록. 그런데 그걸 가져다가 정보부가 사람의 마음을 조작할 수 있는 걸로 바꾼 겁니다. ‘나’는 그걸 조작하는 조종사인데, 어쩌다가 나조차도 다른 사람들에게 조작을 당한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보통은 이게 반전으로 끝나는데. 하지만 이러면 좀 약하잖습니까. 어디서 본 거 같고.
듀나는 이걸 어떻게 하냐면, 아예 중반쯤에 나조차도 조종당한다는 게 나옵니다. 대신 상관이나 고위층을 잘 조작해서 누가 자기를 조작하는지 알아내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를 조작하는 사람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조사하면서 알아보니까 나를 조작하는 너도 사실은 누군가에게 조작당하고 있더라. 그렇게 따라가서 계속 배후를 캐는 겁니다. 그리고 최종 배후라고 할 만한 높은 사람이 나오는데, 그런데 알고 보니까 자기만 그런 역추적을 한 게 아니었던 겁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만 그런 요원이 있는 것도 아니었던 거고. 세상에 별별 많은 사람들이 연루된 거였던 겁니다. 그래서 사실 최종 배후라고 생각했던 높은 사람이 사실은 제일 많은 사람에게 조작당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사람은 하루를 보내면 아무에게도 조작 받지 않고 지내는 시간이 단 몇 분도 안 된다고 할 정도로 온갖 사람에게 조작당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엉망으로 꼬인 개판인 겁니다.
결말도 좀 멋있습니다. 둘이 팀으로 조사했는데, 한 사람이 언론에 터뜨리자고 하는데, 다른 사람은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냐고. 그냥 덮어두기로 합니다. 나만 이런 것도 아니고, 이 바닥이 다 이런 거라고. 그리고 지금과 같은 불경기에 국가공무원이 정말 좋은 직업이라는 점은 어떤 정신 조작으로도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이다, 이렇게 약간 유머러스하면서도 반전도 있으면서, 세태에 대한 비판도 있는 결말로 끝납니다. 명확한 반전 없이 대충 틀어막으면서도 뭔가 상쾌하고. 그런 수법을 쓰는 겁니다.

뭐랄까. 어떤 조작이 있어도 결국 현실 앞에서는.

그런 식의 수법인 겁니다. 뭔가 알아내야 할 게 있으면 보통 이 흑막을 추적하면서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결말에서는 살짝 초점을 트는 겁니다. 그런 수법을 전형적으로 써먹은 게 <달과 육백만 달러>입니다. 마지막까지 추적하는 건 애 엄마의 사연입니다. 그녀는 어쩌다가 애를 남에게 맡기게 된 걸까. 애가 엄마와 만나면 어떤 장면이 연출될까.
그러면 보통 감동적인 상봉 장면이나, 애 엄마가 사연을 털어놓는 결말이 흔한 방식이고 깔끔합니다. 하지만 좀 재미있게 끝낼 만한 답을 못 찾기가 어렵습니다. 뭘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것 같고. 그래서 듀나의 수법을 써서 틀어막은 겁니다. 지금 생각하니까 좀 야비한 수법 같기는 합니다. 애가 우는 장면으로 동정심 자극하고. 어쨌거나 사연은 있지만 애 엄마가 잘 살고 있고, 나랑 애가 이렇게 하나의 여행을 완성했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그렇게 끝냈습니다. 듀나한테서 참고한 게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듀나를 좋아하는 게 느껴져요.

본인 이야기보다 열성적이에요. 이것이 팬심인가요.

왜 그런 작가가 더 안 팔리는지.

듀나 말고는 없어요?

작가 중에는 마쓰모토 세이초도 좋아합니다. 듀나에 비해서는 모든 걸 다 좋아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건 좀 대충 쓴 거다, 이런 정도 쓰는 작가는 이 사람 말고도 많이 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들도 자주 보인다고 생각하는데, 반면에 이건 정말 잘 썼다 싶은 작품도 많다고 생각 합니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50년대부터 활발하게 활동했잖아요. 옛날 책을 헌책방에서 구해보면, 마쓰모토 세이초 작품이 아닌데 그 이름으로 붙어있는 책도 몇 권 잘못 사서 봤습니다. 아무 일본 작가나 번역해놓고 이름을 붙여놓는데, 읽어보면 정체불명의 글이 들어 있었습니다. 어쨌건 좋아했습니다.
아, 빅토르 위고도 좋아합니다.

마쓰모토 세이초 하니까 생각나는데, <모살기> 같은 시대물 보면 사회파의 그 건조한 문체가 나오는 거 같아요.

<지진기>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이게 조사 자료에서 서민적인 요소만 모아서 꾸미다 보니 그런 느낌이 납니다. 마쓰모토 세이초 소설 보면 주인공이 바람 났다가 신세 망치고 그런 장면 많이 나오잖습니까. 그러면서 시대 배경이 나오고, 세태가 좀 나오고. 그런 점에서 비슷한 면이 있어 보입니다.

빅토르 위고는 여담이 많은 게 닮았네요.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가 딴 얘기 하는 게 그렇게 재미있다는데.

[레 미제라블]도 마음을 비우고 보면 다른 이야기 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여튼, 이제 본인 책이 나왔잖아요. 정말로 작가라고 해도 좋을 텐데,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이 책이 어떻게 읽혔으면 좋겠는지. 그런 목표가 있다면.

쉽지 않네요. 여기에 실린 작품은 제가 마음에 들고 잘 썼다고 생각하는 것들입니다. 이 정도를 앞으로도 꾸준히 쓸 수 있도록 해야 하는게 일단 목표라면 목표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비슷비슷하면 안 되고, 나름 참신한 것도 하면서. 그리고 제대로 평을 받지 못하고 있는 다른 작가들이 글에 맞는 평을 쉽게 받는 데 일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생각이 나네요. 하루키가 “[삼국지]를 세 번 읽어야” 하니까 삼국지 나오고.

안철수가 깁슨 이야기 하니까 [뉴로맨서]가 많이 팔리고.

이건 팬이라서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이 듀나 소설을 한번 읽고 나면 영향을 안 받기가 힘들다는 생각 듭니다. 특히 작가라면 더. 자기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요.
저는 작가 출신이라든가, 작가가 자주 활동하던 장르라든가, 그런 무형의 경계와 상관없이 작품 자체를 보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그런 무리가 더 많이 생겨나도록 일조하고 싶습니다. 말하자면 판이 커질 수 있도록 하는 작가가 되겠다. 좀 넓은 시각으로 받아들여지게.

그런 시각이 인정받을 만한 재미있는 책을 쓰고 싶다.

인터넷 언어로 번역하자면, 취향과 장르를 뛰어넘는 존잘이요.

그럼 정말 건방져 보일 것 같고요. 그보다는 경계를 뛰어 넘어 솔직하게 책을 평가하는 분위기가 생기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그런 시각이 생기는 데 작은 씨앗이라도 뿌리고 싶다.

가능할 것 같아요. 장르로 따지면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나 [모살기]는 어디 한 곳에 한정하기 힘들잖아요. 잘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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