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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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 이어짐)

질문 저, 출판사 관계자 분들이 들으면 혹시 싫어하실 질문일지도 모르겠는데요. 장르문학 작가 같은 경우에 책 가격의 10%를 인세로 받잖아요. 그런데 예전에 어느 작가님이 책이 만 부 팔렸다고 대박났다고 블로그에 쓰신 적이 있어요. 책이 만 원짜리라고 하면 하나에 천 원 받게 되잖아요. 천 원 받는 걸로 만 부 팔려봐야 천만 원이잖아요. 하지만 책 쓰는 데 최소한 1년 이상을 들였을 거 아니에요. 1년 수입이 천만 원, 그건 상당히 불합리한 게 아닌지.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작가의 기여도가 10%인 건 아니지 않을까요. 이런 인세 계약 때문에 작가들이 결국 부업으로 글쓰기를 하는 수밖에 없게 되지 않나요.


박애진 다른 분들이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지만, 제가 한 가지만 말씀을 드리면요. 장르문학만 10%인 게 아니에요. 전반적으로 10%에요. 장르문학만 아니라 순문학 거의 대부분이 10%고. 굉장한 대박 작가일 경우 드물게 12-3%까지 하고, 아니면 몇 부 이상 팔리면 그 때부터 퍼센트를 높여주는 경우가 있고요. 장르문학 쪽은 신인 작가나 물정 모르는 작가의 경우에는 그보다 더 적게, 심하면 3% 이럴 때도 있는데요. 작가가 아직 어릴 경우에는 자기 책을 세상에 내놔준다는 것만으로 기뻐서 얼결에 사인을 해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음. (10%라는 인세가) 합리적인가 아닌가의 문제를 넘어가서, 일단 보통 10%라는 거만 얘기할게요.

pena 그리고 창작이 있고 번역이 있잖아요. 번역의 경우에는 매절이라고 해서 매당 얼마씩 계산하는 게 있단 말이에요. 창작은 잡지에 나올 때는 매당 얼마 이런 게 있어요. 그런데 장르문학은 잡지가 없죠. 그냥 책으로 나오죠. 보통 문예지에 실리는 단편의 경우에는 매당 일정량의 원고료를 받고 잡지에 게재를 해요. 그 후에 나중에 책으로 내는 거라서, 인세의 10%를 받는 게 원고료의 전부는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나라 장르문학은 잡지 게재가 없이 책을 바로 내는데도 원고지로 계산을 해주지 않고 그냥 책값으로 매기기 때문에 아마 충분한 수입이 안 되는 것 같고요. 미국 쪽의 예를 보면 보통 단편마다 어디 실렸었다고 표시된 게 많죠. 그렇게 잡지에 실리거나, 아니면 선인세를 많이 받거나 합니다. 영어권은 단어로 계산하는데, 단어 당 얼마 하는 식으로요. 그래서 작가 경험담 보면 원래 단어 당 1달러 받는 작가였는데 5달러로 옮겨갔느니 하는 이야기도 있고요. 그런 건 우리나라에서는 불합리한 구멍이 되는 부분인데, 대다수가 아까 5%나 3% 받는 경우와 비슷한 심정으로 그걸 받아들이는 거죠. 내는 게 어디야 하고.

질문 그러면, 아까 책을 만들 때 작가의 몫이 10%고 출판사가 나머지를 차지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pena 90%는 아니고요. 60%에서 70% 정도가 작가를 포함한 출판사 몫이고요. 30%가 도매나 유통 등등의 몫입니다. 이에 대한 건 제가 답변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네요.

박애진 사실 맞는 지적이에요. 제 경우에도 첫 장편을 낼 때 정말 오롯이 1년을 그대로 박았거든요. 일도 안 했고. 진짜 내 인생에서 한번쯤은 그렇게 해보고 싶었어요. 다른 거 아무 것도 안 하고 글만 쓰는 거. 정말로 통장을 털어서 쓴 책이에요. 제가 뭐 사치하고 살지는 않았지만 한 사람의 1년 생활비로 들어가는 돈이 있잖아요. 그런데 [지우전] 책값을 두고 대충 계산해 보면 사실 제가 받은 돈은 그 1년간 쓴 생활비에 비하면 얼마 안 되는 금액이죠.

이게 되게 어려운 게, 작가는 예술가이기도 해요. 직업이기도 하죠. 그런데 사회는 작가에게 너무 예술가적인 측면만 강요하고 있어요. 물론 가끔 대박이 나는 작가들이 있단 말이에요. 만 권이면 천만 원인데, 백만 권만 팔릴 거 내면 억 단위죠. 뭐 이렇게 일확천금의 꿈으로 작가들을 좀 몰아가는 게 있고.

출판사 쪽에서 네 책이 안 팔리는 거라는 식으로 얘기를 해버리면 할 말이 없어요. 작가라는 게 돈을 많이 버는 직종도 아니고 자기 자존심과 자긍심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이잖아요. 그런 식으로 네 책이 안 팔렸어 해버리면 굉장히 상처가 된단 말이에요. 항의를 할 수가 없어요. 내 잘못 같아요. 사실은 작가 잘못만은 아닌데. 홍보를 어떻게 했느냐 기타 등등 수많은 요인이 있거든요. 그런데 안 팔리면 기본적으로 작가 탓을 하는 구조가 있고요.

저도 인세를 제외한 계약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작가들이 최소한의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 그런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현실적으로 작가(작가지망생)보다 출판사 수가 적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나라 작가, 특히 장르 작가는 끊임없이 해외의 작가들과 경쟁을 해야 해요. 솔직히 국내 작가와 계약하는 것보다 해외 작가와 계약하는 게 돈이 훨씬 더 많이 들어요. 기본적으로 번역료가 창작료보다 더 비싸고, 에이전시에 지불하는 비용 등이 있어요. 그런데도 해외에서 뭔가 상을 받았다든가 하는 게 있으면 잘 팔릴 거라고 기대를 하나 봐요. 그런 식으로 작가들이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고. 목소리를 높이기가 힘든 상황이 있는 거예요. 이를 테면, 좀 극단적인 표현인데, 내 책이 나온다는 거 자체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어요. 모든 작품의 완성은 발표거든요. 내 하드 드라이브 속에 있는 이야기는 아직 미완성이에요. 어떤 형태로든 발표가 되어야 최종 완성이에요. 그런 면에서 사실 전업 작가라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작가 지망생이신가요?

질문 (끄덕)

박애진 근데 그 예술적인 면이 있다 보니까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냉정하게 말하면 세상에 먹고 살기 쉬운 직업은 뭐 얼마나 많겠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웃음)

진행자 네. 그만큼 책이 많이 팔리면 좋을 텐데요. 여러분, 앞에 책 판매하고 있거든요. (좌중 웃음) 또 다음 질문 받겠습니다.


질문 저는 끄적대는 느낌으로 글을 쓰고 있는데요. 작품을 쓰기 전에 미리 밑그림이나 플롯 같은 걸 작성을 하시는지. 혹시나 작성하실 때 나름의 팁이 있으시면 공개해주시면 어떨지요.

진행자 작법에 대해서 질문을 해주셨는데요. 혹시 작가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좋은 방법이나, 과거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라든가, 이런 게 있나요?

pena 마감을 언제나 맞추시는 프로 작가님께서 한 마디. (웃음)

박애진 전 방금 질문에서 답을 해서 다른 분들의 답을 듣고 싶은데.

pena 저는 정도경님이 궁금하네요.

정도경 제, 제가 왜.

박애진 글 폭탄이셔서.

pena 한 달에 한두 편씩 꼭 쓰시기 때문에.

정도경 이번 달에 못 썼는데.

앤윈 저번 달에 두 편이셨죠.

정도경 아, 그랬나요.

박애진 재식님이나 도경님이 말씀해주세요.

정도경 저기, 저는 나오는 대로 쓰는데요. 일단은 주제를 정하고요. 주제가 제목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고 결론을 정하고, 결말이 나온 다음에, 첫 문장이 나오면 첫 문장부터 쓰면 되거든요. 보통 그렇게 써요. 그런데 중간을 비워두고 생각나는 대로 쓰다 보니까 앞뒤가 안 맞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제가 웬만하면 주인공에게 이름을 안 주거든요. ‘그’ 아니면 ‘그녀’인데, 남자가 두 명 이상 나오면 ‘그’가 누군지 헷갈리기 시작해서요. 그런 경우에는 사람 이름을 정하고 그 사람의 일대기를 만들어요. 일대기라고 해서 큰 게 아니고요, 페이스북 프로필 같은 식으로 간단하게. 그러니까 몇 년도에 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도에 직장을 가졌고, 언제 군대 갔다 왔고. 그렇게 맞춘 다음에, 그런 다음에 제가 써놓은 줄거리와 프로필이 맞는지 봐요. 말이 안 되면 줄거리를 고치든지 하고요. 그렇게 하니까 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주인공이나 중요한 등장인물일 경우에는 대체적인 프로필을 만들어둡니다. 만든다고 그걸 다 쓰진 않아요. 안 쓰는 경우가 더 많아요. 그 중 몇 가지만 소설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아닌 경우가 더 많은데요. 그렇게 만들어두면 등장인물이 진짜 있는 사람 같아요. 소설은 그 등장인물의 삶 중 일부분이고, 어떤 사건의 일부일 뿐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예를 들어서 여러분도 이렇게 모여 있다가 집에 가면 각자 자기 생활로 돌아가잖아요. 등장인물도 그렇게 실제로 있는 사람 같아서 소설 쓸 때도 좀 더 리얼하게 된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진행자 재식님도 말씀해주세요.

곽재식 네. 쓰는 과정에 대한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으니까 전 아이디어를 메모하는 쪽에서 말씀을 드리면.

(침묵)

(좌중 웃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제가 3년 전 정도에 독자 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요. 어떤 분께서 아이디어 메모하는 데 쓰라고 몰스킨 수첩을 하나 주셨어요. 그 전까지 저는 아이디어를 메모하는 습관이 없었는데, 그렇다고 수첩을 놀리고 있을 순 없으니까 들고 다니면서 메모를 하고 있어요. 재미난 게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써놓는 거죠. 영화를 보다가도 저거 좀 재밌다 싶으면 수첩에 쓰고. 나중에 나와서 보면 어두울 때 쓴 거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그런 식으로 하는 건데. 수첩에 쓰는 것 자체가 특별히 더 많이 도움이 된 거 같지는 않고요. 어떤 게 도움이 많이 됐던 거 같냐면. 영화든 책이든 아니면 신문 기사나 어디서 들은 이야기나 그런 거 재밌는 거 많잖아요. 뭐 누구한테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는데 짧지만 온몸에 소름이 쫙 돋고 기가 막힌다 그런 거. 그럴 때마다 한 줄씩만, 아니면 머릿속으로라도 생각을 해보는 거예요. 이건 왜 재미있었을까, 이건 왜 무서웠을까, 어떤 점 때문에 이건 무서웠던 것 같다, 이러이러하게 갖춰져 있기 때문에 이건 재미있었던 것 같다, 하고요.

그에 비해서 옴탱이 재미없는 거, 예를 들면 되게 닭살 아 이게 뭐야 오글오글 이런 걸 봤을 때는 저렇게 하니까 손발이 오그라드는구나 하는 걸 느낄 때가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한 줄씩 두 줄씩 자기 나름대로 써요. 자기가 나중에 자기 글에 쓸 거니까. 그게 글쓰기의 정답인지 무슨 내러티브 작법이나 이론에 맞는지는 상관이 없죠. 내가 앞으로 쓸 사람이니까, 내가 보기에 재미있다 재미없다 하는 걸 씁니다. 내가 터득을 해서 내가 그거대로 쓸 거니까. 그러면 정답이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뭐 예전에 환상특급 같은 텔레비전 단막극 시리즈 있잖습니까. 다 반전이 있고 재미있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쭉 보면 백 편씩 이백 편씩 되지 않습니까. 집에서 할 일 없을 때마다 하나씩 보면서, 하나씩 쓰는 거죠. 이건 재미있었다, 재미없었다, 왜 재미있었다, 이렇게만 했어도 재미있었을 텐데 하고. 그러다 보면 아이디어를 모으는 데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진행자 잠시만요. 저도 질문하겠습니다. 아까 질문과 관련해서인데요. 영화 리뷰나 평론도 많이 쓰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아이디어 메모하는 게 그런 작업과 관련이 있는지.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다른 작품에 대해 글을 쓰는 게 자기 작품에 도움이 되는지를 짧게 듣고 싶어요.

곽재식 도움이 됩니다!

진행자 짧다!

pena 화끈하다.

박애진 저도 하나만. 아까 왜 재미있을까 재미없을까를 생각한다고 하셨잖아요. 이게 딱 정답인데,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게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이게 기본이 되는 거고.

또 쓸 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글을 쓰면 완결을 내셔야 해요. 쓰다가 이야기가 좀 재미없다, 생각했을 땐 좋았는데 막상 옮기려고 하니까 잘 안 된다, 그럴 때 멈추면 안돼요. 실패를 하든 성공을 하든, 이야기가 제대로 되든 안 되든 일단은 끝을 내는 습관이 필요해요. 끝을 내야만 그 작품에 뭐가 부족한지 알고 다음 작품을 쓸 수가 있거든요. 혹시 끝을 잘 못 내시는 습관이?

질문 (끄덕) 중간에 하다 말고...

박애진 그런데 그것도 습관이에요. 엔딩을 못 내 버릇 하면 계속 엔딩을 못 내는 거예요. 저도 아는 분 중 도입부 진-짜 재밌게 쓰시는데 엔딩을 못 내시는 분이 있는데, 매번 새 글을 쓰세요. 그래서 말씀드리고 싶은 거 하나는 엔딩을 꼭 내라는 거고요.

두 번째는, 친구들이 자기 일상에서 일어난 일이나 화나는 거 황당한 거 이야기하잖아요. 이런 거 다 받아 적어두세요. 분명히 나중에 이야기를 풍부하게 살리는 데 써먹을 순간이 와요. 그래서 저는 가끔 그런 얘기 듣다가 못 적을 것 같으면 “야 잠깐만 녹음해도 돼?” 이러기도 하거든요. 다 적어서 갈무리 해두면 좋아요. 왜냐면 본인이 안 겪어본 직업을 주인공으로 설정해야 할 때도 있고, 내가 해본 걸로만 쓸 수는 없잖아요. 그 정도인거 같네요.

앤윈 저 아까, 끝을 잘 못 낸다고 하셔서요. 이건 제 팁인데요. 끝을 못 내게 되는 게 사실은 쓰다 보면 내가 생각한 퀄리티가 안 나와서 그러는 거거든요. 쓰다가 “어 나 이런 거 생각한 거 아니었는데. 어우 나 못 쓰겠어.” 이렇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럴 때는요, 싫은 소설을 읽으세요. 내가 얘보다는 잘 쓰겠지 하고 읽으세요. (좌중 웃음) 그럼 갑자기 내 소설이 괜찮아 보이고 쓸 수 있어요. 진짜로.

pena 그거 되게 실제적인 이야기인 것 같아요. 어쨌거나 글을 시작하는 것까지는 재미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게 되는데, 끝날 때까지 버티려면 ‘이 글은 재밌어’, ‘내 글은 최고야’, 이런 마인드가 있어야 하거든요. 쓰다가 ‘아 이거 끝까지 써봤자 내가 쓰레기를 추가해서 뭐 하겠어, 이 세상엔 종이가 넘쳐나는데.’ 이런 생각이 들면 절대 끝을 낼 수가 없고요.

또는, 자기 글이 별로라고 느껴지거나 원하는 대로 안 나가는 등 감정적인 이유로 안 써지는 게 아니라, 처음 생각한 플롯에 결말이 없었기 때문이라면. 정말로 앞부분 아이디어는 있었는데 중간부터 이걸 어떻게 끌고 가야 하는지가 막혀서 엔딩을 못 내는 경우라면요. 처음부터 끝까지 개요가 완성된 다음에만 써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대략적인 서술 말고 세부 묘사만 없는 자세한 개요로. 스크립트나 대본처럼 된, 그 정도 디테일의 개요를 먼저 써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한별 저는 그렇게 끄적이는 정도로 글을 쓰시는 아마추어 작가 분들과 작업을 여러 번 했었거든요. 그 분들도 끝맺음을 못 하시는 분들이 되게 많아요. 3년째 같이 작업하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는 3년 동안 단 하나도 완결을 낸 작품이 없어요. 그런 식으로 중간에 막혀서 엔딩을 못 내면, 저는 어떻게 어거지를 써서라도 엔딩을 내라고 조언을 해요. 어차피 완결을 못 내는 대부분의 이유는 지금까지 쓴 분량이 마음에 안 들고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모든 글은 처음에 완벽하지 않아요. 완벽할 수가 없어요. 일단 어떡하든 완결을 낸 다음에, 주변 사람에게 보여주고 또 본인이 시간을 두고 다시 읽어보고 하면, 그때서야 본인이 생각하는 대로 가는 경우가 많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당장은 만족하지 못하셔도 완결부터 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완결을 내고 나면 마음속에서도 매듭이 지어진다는 효과도 있고요.

진행자 네, 감사합니다. 다음요.


질문 박애진 작가님이 아까 조언해주시면서 삼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삼다가 다독, 다작, 다상량이잖아요. 다상량은 많이 생각하라는 뜻이라고 배우는데요. 어느 날 중국어 사전을 보다가 상량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나서 뒤져봤는데, 그게 ‘의논하다’로 해석이 되더라고요.

박애진 이 말이 꼭 중국에서만 온 이야기는 아니에요. 서양 쪽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 기원이 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많이 생각해야 된다는 쪽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왜 내가 이야기가 막히는지, 왜 갑자기 여기서 진도가 안 나가는지, 어떻게 하면 이 주인공을 설득할 수 있는지, 그런 건 작가가 시간을 들여서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죠.

진행자 저도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건 몰랐네요. 관련해서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글쓰기는 혼자 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외로운 길이라고도 하고, 혼자 작업을 하는 걸 견딜 수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고도 하는데요. 또 한편으로 다른 사람과 의논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긴 해요. 그래서 거울에서 합평회도 많이 하고 평도 받고 그러잖아요. 피드백도 굉장히 중요하고요. 아이디어가 있을 때 “야 이거 어떻게 생각해?”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시는 분도 많을 테고요. 그렇게 글을 쓰는 중 혼자 맡아야 하는 부분과 다른 사람의 시선이 필요한 부분을 어떻게 조율하고 계신지 답을 듣고 싶습니다.

앤윈 저는 쓰면 제일 먼저 애인에게 보여줘요.

진행자 네, 애인이 있으시군요.

앤윈 (웃음) 쓰고 나서 제일 처음 애인에게 보여주는데, 보고 나서 평을 듣잖아요. 제 애인의 독서 방법은 소설 읽기에 적합하진 않거든요. 무슨 사료 분석하듯이 읽더라고요. 그래서 도움이 많이 돼요. 말하자면, 역학관계가 어긋나는 부분을 굉장히 정확하게 집어내거든요. 그 다음에는 같이 소설 쓰는 친구에게 보여줘요. 그 때는 어디에서 재미있다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고요. 그 다음에는 친구들에게 되는 대로 보여주는데, 그럼 대체로 돌아오는 대답은 되게 쿨하죠. 재밌어 혹은 재미없어. 그 다음에는 제 과제로 남는 거죠. 왜 재미있고 없는지. 저는 탈고하고 나서 주변 사람에게 쉽게 보여주는 편이라서요.

정도경 작가들이 글을 쓸 때는 한 명 한 명 사람에 따라서 다른 것 같아요. 많이 이야기를 할수록 정리가 되는 사람이 있고요. 이야기를 할수록 진이 빠져서 도저히 못 하겠다 그러는 사람도 있고. 그리고 친구들이나 가족과 이야기할 때하고 같이 글 쓰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가 또 달라요. 가족하고 이야기하면 “글 쓰는 거 그만하고 취직이나 해라” 이런 얘기를 들을 수가 있고요. (좌중 웃음) 친구나 애인하고 이야기를 하면 지지는 해주는데 구체적인 이야기는 못 하는 경우가 있고요. 그래서 같은 작가들하고 이야기하는 게 제일 좋거든요. 그런 이유로 제가 합평회를 굉장히 좋아했었는데요. 거기서 부작용이 있다면 끝나고 다 같이 술 마시러 가서 밤새 출판계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술 먹고 한다는 거랄까.

사람마다 경우가 다 다르고, 특히 저처럼 기분이 나쁘다는 소릴 계속 듣는 사람이라면 남에게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 모두 기분 나빠하는 것 같아서. (웃음) 저도 그냥 누가 뭐라 말하기 전에 그냥 혼자서 조용히 씁니다. 다 쓰고 나면 누가 기분 나쁘거나 말거나 이미 끝난 일이 되니까.

글 쓰는 데 뭐가 중요하다 하는 것도 다 다른 작가가 한 이야기거든요. 다른 사람의 방식은 저하고 백 퍼센트 맞을 수가 없어요. 아무리 유명한 작가의 방법이라도 자기 글은 자기가 쓰는 거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한테 맞는 방식이어야 하거든요. 남들이 다 좋은 방법이라고 아이패드 써보는데 반대로 이걸로는 글 못 쓰겠다는 분도 있고요. 타자기 쓰시는 분도 있어요. 글 쓰는 도구에서부터 시작해서 글 짓는 방식까지 다 다르죠. 자기가 어디 가서 작가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런 구체적인 물건서부터 시작해서 머릿속에 생각하는 방식까지 자기 것에 대해 확신이 있어야 해요. 자기 것에 확신이 있을 때 남의 것도 받아들일 수 있는 거지, 유명한 사람이 했다고 해서 따라다니다 보면 결말을 못 내게 돼요.

진행자 말씀하신 대로 사람마다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해야 하는 것 같고, 또 작가가 직업인이자 예술인이기 때문에 더 개인차를 타는 것 같네요.
마지막 질문 하나 받을게요. 네, 저기 안 하신 분.


질문 작가님들께 여쭤보고 싶은데요. 글 쓰실 때 주제를 정하고 쓰셔야 하잖아요. 주제를 찾는 방법이나 아니면 글 안에서 주제를 이끌어나가는 방법에 대해 묻고 싶은데요.

진행자 주제를 찾는 방법이나 아니면 글 안에서 주제를 이끌어나가는 방법이요. 여기에 더해서, 작가 분들마다 자기 색이 있잖아요. 나오신 분들 모두 조금씩 분위기가 다른데, 자기가 어떤 식으로 자기 세계를 만들어 왔는지, 그런 것까지 대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ena 질문을 심화시키셨네요.

진행자 네. 진행자의 역할이죠. 질문 심화.

박애진 저는 일부러 주제를 찾지는 않아요. 항상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거든요. 그래서 찾지 않아도 계속 꺼내달라고 요구하는 이야기가 있는 편이라서, 따로 찾지는 않고요.

자기 세계를 심화시키는 거. 이게, 저는 되게 딜레마를 느껴요. 왜냐면 전 글쓰기가 재능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믿고 싶지 않거든요. 이 세상 모든 창작이 재능에 의해서 좌우되는 건 아닐 거예요. 분명히 죽자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확 치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에요.

근데 가끔 미숙한데 자기 색을 가진 사람이 있단 말이죠. 그리고 예술은 결국 소설이든 뭐든 간에 사람들 기억에 남는 건, 탄탄하고 완성도가 높은 게 아니라 뭔가 부족해도 그 작가만의 색깔이 확 묻어나는 거잖아요. 이를테면 뭐 꼭 치정이나 불륜이 아니더라도 (웃음) 도경님 글은 언제나 도경님 글이에요. 재식님 글은 언제 봐도 딱 재식님 글이고. 그런데 이런 자기 색을 어떻게 갈고 닦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생길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어쩌면 재능이라는 게 조금은 상관이 있을지도 모르죠.

그래도 그게 밑받침은 될지언정 절대적인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생각할 때가 있죠. 나는 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왜 나는 그 이야기에 끌리지? 왜 나는 이런 캐릭터를 좋아하지? 제가 가끔 쓰는 것 중 하나가 십대 소녀들이 성 정체성 혼란을 겪는 이야기에요. 그걸 꼭 혼란이라고 할 필요는 없을 수도 있지만. 어쨌건 저는 그런 주제에도 굉장히 끌리거든요.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고요. 작가가 자신의 색깔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건 너무 좁은 방법인 것 같아요. 그보다는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쓰고 싶은가, 왜 그걸 쓰고 싶은가에 대해서 천착하다 보면 자기 색깔은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진행자 또 대답하실 분 없으신가요? 치정 전문 작가님.

정도경 전 잘 모르겠으면 치정을 하자 이렇게. (좌중 웃음)

pena 자기 색 중에 그런 것도 있긴 해요. 이야기가 안 풀리면 써먹는 방법. 다 죽이거나, 뭐 치정을 하거나, 아니면 갑자기 에로물로 빠지거나.

글 쓰는 일은 다른 사람한테 보여야 되는 일이지만, 글을 완성하기까지는 자기를 믿어야 하죠. 자기밖에는 믿을 사람이 없고. 자기를 되게 싫어하는 사람은 글을 끝까지 못 쓸 것 같아요. 자기에 대한 사랑도 있어야 하고. 그렇게 자기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가진 채로 끝까지 글을 쓰다 보면 어쨌건 자기 세계는 나오는 것 같고요.

이야기의 주제는, 평소에 생각하던 주제가 아니면 소설로까지 나오지가 않더라고요. 전 시사적이고 정치적인 주제를 잘 다루는 작가님이 부러워서 ‘나도 저런 거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해본 적도 있는데요. 자기가 평소에 마음에 품던 걸 쓰게 되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별로 신경 안 쓰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런 거지?’ 하고 신경 쓰이는 거. 다른 사람들은 생각 안 하는데 나 혼자 ‘안 이상한가?’ 하는 거요. 이런 식으로 균열이 느껴지는 지점이 있는데, 보통 그 쪽으로 파고들게 되더라고요. 사람들이 다 다르니까.

앤윈 저는, 직업이라고 해야 될지 뭐라고 해야 될지 잘은 모르겠지만, 전 일상적으로 데모를 해요. 온갖 데모 현장에 다 다녀요. 저는 눈물도 많이 헤픈 편이고, 나가면 되게 많이 울어요. 뭔가를 떠올렸을 때 계속 눈물이 나요. 되게 괴롭고 힘들어요, 그게. 그래서 안 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그 운 것들이 쌓이는 것 같아요.

저는 사실 뭔가를 쓰려고 했을 때 뭐 ‘그래, 나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써야겠어!’ 이러고 쓰진 않거든요.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만 갖고 쓰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자면 뭔가가 하늘을 나는 이미지라든가, 뭔가 폭발하는 이미지라든가. 그런 하나의 이미지만 갖고 쓰는데요. 제가 울었던 기억들이 그 이미지를 타고 쏟아져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요.


진행자 잘 들었습니다. 사실 오늘 편집자도 두 분이나 계시고, 전업 작가, 아닌 작가 다 계신데요. (웃음) 패널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니라서 좀 아쉽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예를 들면 책이 대박 나거나 상금을 타면 뭘 하고 싶으신가, 아니면 어떤 편집자가 좋은가, 이런 거 하고 싶었는데.

박애진 그 대박은, 짧게 한 문장씩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진행자 그럴까요? 그러면 한 문장씩, 자신의 포부와 야망을 밝혀 주세요.

pena 전에는 출판사를 차리고 싶었는데, 지금은 장르문학 작가를 먹여 살리는 재단을 만들고 싶어요.

박애진 이 친구랑 저랑 가끔 그 얘기 하거든요. 저도 전업 작가들이 글만 쓸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재단을 진짜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좀 그렇게 살고 싶어요.

pena 서로 약속을 해요. 막.

박애진 네. 네가 대박나면 내가 해주고. 가끔 이렇게 헛된 공상을. (웃음)

앤윈 제가 이런 이야기 하면 이상하게 들릴까봐 걱정을 했는데, 저는 쌍용차나 재능 같은 장기 투쟁 사업장에 기부하고 싶어요.

정도경 아무 생각이 안 나네요. (웃음)

곽재식 책이 천만 권이 팔리면, 제 책이 여기저기 많이 있겠죠. 그죠.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항상 다 있겠죠. 그죠. 그럼 평소에 관심 있었던 사람이나 눈독 들였던 사람 데리고 와가지고, 모르는 척 하면서 “어어 뭐 여기도 이 책 있네” 하고. 즉석에서 사인을 하고. 그런 거 해보고 싶습니다.

도서관 같은 데 가면 책에 낙서 하면 안 된다고 하잖아요. 도서관에서 책 뽑아서 사서 분들 보시는 데서 보란 듯이 사인펜이나 매직펜을 꺼내가지고 사인하는 거죠. “아 책에 낙서하시면 어떡해요!” 그러면 “사인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한별 전 전공이 도서관이거든요. 이런 작가 분들 모시고 도서관 하나 세우면 참 재미있을 것 같네요.

pena 그럼 대박이 나면 재단 하나와 도서관 하나와...

박애진 재단을 만들어서 도서관을 만들고 그 때 그 분을 데리고 오시면.

한별 그 때 오셔서 하는 거죠. 이것 보세요, 사인입니다.

앤윈 거기서 막 수익을 기부하고.

pena 한 명만 나면 되는 거네요, 그럼.

진행자 네. 좋은 포부였습니다. (웃음)


장대한 포부와 함께 작가와의 만남 시간은 끝났다. 이후에는 PIFAN측에서 준비한 책 증정 이벤트를 진행했다. 증정되는 책에는 거울에서 나온 책과 [더 레이븐] 등 다른 곳에서 나온 신간들이었다. 책 이벤트에 관해서는 PIFAN 자원봉사자 분들이 수고해주셨다. 마지막으로 인사말과 사인이 오가며 행사는 훈훈하게 정리가 됐다.

작가와의 만남 행사 장소가 도서전이 열리는 곳 옆이었기 때문에, 행사가 끝난 후 여유롭게 도서전을 다시 둘러볼 시간이 있었다. 전시장치고는 그리 넓은 곳은 아니었지만 공간 구성 방식이 인상적이고 효율적이었다. 책이 놓인 중간 중간 붉은색, 갈색, 보라색의 현수막이 휘장처럼 길게 드리워지고, 이게 실내 장식 겸 안내문 역할을 했다. 차단막 역할도 했다. 책이 더 많았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들었지만, 지금까지 있었던 PIFAN 책 관련 행사 중 가장 쾌적한 전시가 아니었나 싶다. 다음 해에도 다시 찾아올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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