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mirror.jpg

시작하기 전


2012년 올해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는 장르문학 북페어를 함께 진행했다. 오로지 장르문학만 따로 모아 벌이는, 장르 팬으로는 조금 솔깃한 행사였다. 전시물로는 SF&판타지 도서관에서 제공한 ‘한국 SF 100년사’와 ‘SF 최신 동향’이 있었고, 도서전에는 거울을 비롯해 예닐곱 군데에서 참가했다. 전시회와 도서전 모두 대규모는 아니었지만, 배치가 화려해서 보는 맛이 있었다. 특히 책이 쌓여있는 모양새가 시각적으로 절묘해서 그걸 구경하는 것도 소소한 재미였다.


7월 28일에는 환상문학웹진 거울 작가와의 만남이 있었다. 그즈음 막 출간된 거울의 다섯 번째 소재별 단편선 [세상의 재시작까지 11억년] 출간 기념회이기도 했다. 참가자는 PIFAN 홈페이지에서 사전 신청을 해야 했으나, 통제보다는 이벤트를 위한 것이었기에 체크가 엄격하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적당한 인원으로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거울에서는 곽재식, 박애진, 정도경, 앤윈, 한별, pena 6명이 패널로 참여했고, 라키난이 진행을 맡았다. 패널이 여럿이었기에 질문 하나에도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다. 행사에 할당된 2시간이 짧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정리할 때 보니 전혀 안 짧았기 때문에, 본문은 2부로 나눠서 올린다.


진행자 안녕하세요. 오늘 장르문학 북페어에서 거울 작가들과의 만남을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찾아오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행사는 지금 여러분 앞에 보이는 책, [세상의 재시작까지 11억년]에 관한 거고요. 이 책이 언제 나왔죠?

pena 어제 나왔습니다.

진행자 네. 어제 나왔어요. 따끈따끈한 신간이 나왔는데, 이 책에 참여해주신 분들을 모시고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시작하기 전에 거울 소개를 간략하게 할게요. (생략)
그러면 혹시, 한 분씩 자기소개를 해주실 수 있으세요? 이쪽부터.

pena 안녕하세요. 전 페나라는 필명을 쓰고 있고요. 이번 책에서 기획하고, 편집하고, 단편 하나 실었습니다.

박애진 네, 안녕하세요. 저는 박애진이고요.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초대 편집장이었고, 여기에는 작가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앤윈 저는 거울에서 앤윈이라는 필명을 쓰고 있는 이서영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세상의 재시작까지 11억년]에는 <히스테리아 선언>이라는 글을 실었고요. 반갑습니다.

정도경 안녕하세요. 저는 정도경 혹은 정보라 라는 이름을 쓰고요. 이 작품집에는 맨 마지막에 <씨앗>이라는 글을 실었습니다. 보통 치정 얘기만 쓰는데 치정 아닌 걸 써서 조금 부끄럽습니다.

곽재식 네. 저는 환상문학웹진 거울 탄생 단편선에서 <탄생>이라는 이야기를 쓴 곽재식이라고 합니다. 거울에서도 곽재식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듀나 게시판 그런 데서도 곽재식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본명도 곽재식입니다.

한별 안녕하세요. 저는 이 책의 보조기획을 맡은 송한별이고요. 한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책을 보시면 어디에 참여했는지 찾기 힘드실 텐데요, 제 손길이 닿아 있는 책이긴 합니다. 감사합니다.


진행자 말씀해주신 대로, 여기 나와 계신 분들은 다들 책에 참여해주신 분들입니다. 저희 이번 행사는 패널 분들을 모시고 여러분들이 질문을 하시면 패널 분들이 답변해주시는 방식으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저는 라키난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심완선이라고 합니다. 책에는 참여하지 않았고요. (웃음) 진행을 맡게 되었습니다.

행사를 어떻게 시작할까 하고 첫 번째 질문을 생각을 해왔어요. 작가 분들마다 사실은 각자 이야기를 갖고 계실 텐데, 모든 분들에게 드리는 질문입니다. 글쓰기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글쓰기가 왜 장르적 글쓰기인지를 답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ena 사실 글을 본격적으로 소설이라는 형태로, 모작이 아닌 창작을 쓴 건 고등학교 작문시간인 것 같아요. 아무거나 자길 위한 글을 써오라는 숙제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 때 한창 보던 만화책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나 어렸을 때 재미있게 읽은 [반지의 제왕]이나 [어스시의 마법사]나 이런 것들이 왕창 들어간 글이 나왔죠. 어차피 읽은 게 글에 나오잖아요. 그러다 보니 장르소설을 쓰게 되고, 그중에서도 정통 판타지를 쓰게 됐죠. 현실 같은 이야기는 저로서는, 그다지 쓸 게 없으니까. 그래도 취향은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는 걸 했는데 지금 이런 글이 나온다, 어느 면에선 내가 쓰는 글의 장르란 성격과 비슷한 것 같단 생각을 해요.

박애진 저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만들고 놀았던 것 같고, 딱히 판타지라든가 환상문학이라는 걸 인식하기 전부터 그냥 제가 만든 것 안에 항상 환상성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게 자연스러웠던 것 같고. 당연히 제가 창작 쪽을 계속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계속. 이야기를 항상 만들었거든요. 만화도 했고 뭐 애니메이션을 해보고 싶기도 했고 그런 커리큘럼에 참가해보기도 하다가. 그러다가 대학교 졸업할 때 확실히 깨달은 것 같아요. 글이구나. 글을 쓰는 게 나한테 딱 맞는구나. 그 때 확실하게 느꼈어요.

앤윈 방금 그 질문을 듣고 제일 처음 쓴 소설을 생각해봤어요. 전 제일 처음 썼던 소설이 팬픽이더라고요. 아까 장르문학을 쓰는 게 성격과 같은 거다 하는 말씀을 하셨는데,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떤 방향으로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교합해서 자기 취향이라고 하는 것들을 만들어 나가잖아요. 저는 제 삶의 경험에서 “취향”을 만들어나가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순문학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정석적 테크트리를 밟아왔어요. 예고에서 문창과 전공했었고, 대학교를 국문과를 나왔고, 대학원에서 문창과 과정을 밟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순문학 테크트리를 밟으면서도 저는 제 문학적 취향이라는 걸 버릴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장르문학이 아닌 방식의 훈련을 반복하면서도 항상 제가 좋아하는, 예를 들면 르귄의 책 같은 걸 보면 참을 수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장르문학의 방식으로 글을 쓰면서, 그런 종류의 주제의식과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묶어서 쓰고 있어요.

정도경 저는 돈이 궁해서 시작했는데요. (웃음) 대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매년 하는 문학상이 있는데 그 당시 대학생에게 거금이었던 거금 백만 원을 상금으로 준다고 해서요. ‘소설을 써서 내야지, 저 돈을 타야겠다’ 하고 시작했어요. 첫 페이지를 써서 동생에게 보여줬는데 동생이 재미없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서 여주인공만 제외하고 현실적으로 있을 법한 일을 모두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없게 만들었더니 동생이 열광하더라고요. 재미있다고. 그래서 그렇게 써서 백만 원 탔거든요. (웃음) 근데 그 다음부터는 제 글을 아무도 안 봐주더라고요. 그러다 2008년도에 거울 독자 단편에 글을 냈더니 박애진님이 글 쓰라고 막 그러셔서 그 후로 글 쓰고 있습니다.

곽재식 정도경님이 말씀해주신 것과 저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옛날 연속극이나 영화 같은 거 보면 글을 쓴다는 게 드문 일인데, 그래서 뭐 오랜만에 남편이 아내한테 편지를 써주는데 글로 보는 남편의 마음은 어쩌고 하는 게 나오죠. 요즘에는 다 문자 메시지로 보내고 인터넷에도 글을 쓰고 하기 때문에 누구나 글이라는 걸 굉장히 많이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영화나 연속극 이런 걸 보고 ‘아 그거 말도 안 된다, 내가 썼으면 이렇게 썼겠다’ 이러기도 하고. 아니면 나름대로 기발한 발상을 가지고 써보기도 하죠. 예를 들어서 오늘 아침에 런던 올림픽 개막식 하는 거 보고 ‘아 우리나라에서 개막식을 했으면 이러저러한 게 나오지 않겠냐’ 하고요.

거기서 한 발만 더 나가서, 작심하고 이야기를 꾸며 모양을 갖춰 놓으면 소설도 되고. 소설이 안 된다 싶으면 가벼운 이야기가 되고.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흘러왔던 것 같네요. 뭐 고등학교 때 교지에 채울 지면이 부족해 친구가 써달라 그랬다 이런 것도 있고. 저 같은 경우에는 앞부분을 써서 동생에게 보여줬더니 재미있다고 그랬어요. 동생이 착한지. 그런데 문제는 동생이 자기가 그걸 써서 먼저 교지에 보냈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다른 걸 써서 보내고 그랬어요. 대학교 들어가서는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주최하는 상금 걸린 문학상이 있었어요. 거기 소설 써내서 당선되고. 이거 쏠쏠하네. 그래서 다음 해에도 다시 쓰고. 그러다가 재밌다 잘한다 하는 얘기도 듣고. 이러다 보니까 글 써야겠구나 했어요. 그런 식으로 쓰게 된 것 같습니다.

한별 저도 하나요? (웃음)

진행자 네.

한별 제가 이 분들 앞에서 글 쓰는 얘기를 하는 건 아닌 거 같고요. 저는 다양한 아마추어 창작집단을 돌아다녔는데, 거기서 나오는 글들이 굉장히 쉽게 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누군가 이걸 엮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제가 하게 되더라고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그런 글 모음, 이제 보면 책이라고 부르기에도 미묘한 것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편집 기획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현재는 꾸준히 독학으로 배워가고 있는 야매 아마추어 기획자 겸 편집자로 일하고 있고요.

글을 만지다 보면 가끔, 이 원고가 내 손에 들어온 게 참 좋은 일이구나, 내가 이런 원고를 만지게 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 느낌 때문에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전 그런 식으로 편집자로서의 정체성을 갖춰가고 있습니다.

박애진 한별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보통 책이 나오면 작가들이 제일 조명을 받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보조기획자가 정말 많이 고생을 하시는 자리거든요. 여러모로 이런 자리에 같이 나오는 게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진짜 고생 많이 하셨고.


진행자 한 바퀴 돌았네요. 제가 질문을 하나 던졌었는데요. 이런 식으로 궁금한 점이나, 작품을 읽으면서 알고 싶었던 점, 혹은 작가라는 종류의 사람에게 궁금한 점 등이 있으면 자유롭게 질문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침묵)

진행자 궁금하신 거 없으세요? (웃음)

질문 전체 작가 분들께 궁금한데요. 거울 업데이트는 대부분 월말에 새로운 호가 올라오잖아요. 올리고 싶으면 올리고 아니면 아니고 자유롭게 운영하시는 거라고 알고 있는데요. 마감은 어떻게 지키시나요? 그리고 어떤 식으로 쓰시나요? 마감이 다가오면 글이 잘 써진다든가 평소에 미리미리 쓴다거나 하는 등, 습관이나 버릇 같은 게 있는지.

박애진 저쪽부터 가죠. (웃음)

한별 저는 글을 안 쓰는 사람이라. (웃음)

정도경 이거 어디까지 폭로해도 되는 거죠?

곽재식 네. 저부터.

박애진 글 폭격기시잖아요, 재식님이. 마감 폭격.

곽재식 마감은 지금 개같이 하고 있죠. (웃음) 한 달에 하나는 꼭 쓰자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가끔, 정말 아주 가끔 글 달라는 제의가 들어올 때가 있는데요. 뭐 ‘이런 걸 하나 써주십쇼’ 이러고 올 때도 있지만, 보통은 ‘뭐 재미있는 거 보내주십쇼, 그럼 골라가겠슴다’ 이렇게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소에 하나라도 더 미리 써두면 다 돈이 되는 거구나! (좌중 웃음) 하는 생각이라기보다는, 저는 전업으로 하는 게 아니다 보니까 꾸준히 내려는 생각을 가지고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거울 같은 경우에는 제가 활동하는 곳이니까 한 달에 단편을 하나씩은 꼬박꼬박 쓰자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항상 마감 전에 마쳐야 한다는 생각만 갖고, 업데이트 2분 전이나 업데이트 도중에 뭐 이럴 때 메일로 보내서 급하게 올리죠. ‘올려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이러지 않겠습니다’ 하고. 이러고 있습니다.

정도경 저도 한 달에 하나씩은 꼭 써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는데요. 월초에, 마감이 지나간 직후에 썼다가 그 달 마감 때 올리면 중간에 퇴고도 할 수 있고 여유가 있으니까 좋아요. 그런데 제가 퇴고를 강박적으로 하거든요. 뭘 쓰면 일단 탈고를 하고 자요. 그런 다음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퇴고해야지’ 하는 거죠. 밥 먹으면서 퇴고하고, 들여다보면서 퇴고하고, 다시 밥 먹으면서 퇴고하고. 한 이틀쯤 진짜 강박적으로 퇴고해요. 내가 이놈의 글에 그만 집착하고 사람답게 살아야겠다 싶어서 원고 게시판에 올리거나 메일로 보내고 나면, 생각해보니까 다시 고치고 싶은 거예요. 다시 고쳐서 다시 메일로 보내요. “죄송합니다. 이걸로 해주세요.” 하고. 또 생각해보니까 고치고 싶어서, 다시 고쳐서 “죄송한데 앞에 두 개 버리고 이걸로 좀” 하죠. (웃음)

저도 생업이 따로 있어서 정말 바빠지면 못 쓸 때도 있는데요. 그럼 정말 억울해요. 생활에 찌들어서 하고 싶은 걸 못 하는 그런 기분이 들어서. 그래서 한 달에 하나 정도는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번 업데이트는 못 냈어요. 죄송합니다.

앤윈 제가 쓰는 방식에는 딱히 마감이 영향을 끼치진 않아요. 저는 진짜 게으르거든요.  그래도 필진이 되고 나서는 어쨌건 뭔가 써야겠다는 동기가 생겨서 저에게는 도움이 많이 되네요. 대체로 전 집필력이 강한 것도 아니라서, 하루에 언제부터 언제까지 써야지 이런 걸 잘 못 해요. 그래서 텀을 둬요. ‘한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어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자. 이 한 시간이 지나면 쉬겠어.’ 좀 쉬다가 마음이 풀리면 다시 다음 한 시간. 그렇게 쓰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마감과는 상관없이 그 한 시간이 쌓여서 그냥 탈고가 돼요. 방금 보라님 말씀하신 거 들으니 약간 반성이 되는데, 저는 탈고하고 나면 그 순간 저한테 상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 퇴고를 잊어버리거든요. 일주일 동안 퇴고하지 않고 일주일 있다가 다시 꺼내보고 그제서야 퇴고를 하죠. 그런데 일주일 있다가 보면 사소하게 고치는 게 아니라, 아예 틀을 다시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웃음) 그렇네요. 저도 하루 있다가 바로 봐야겠다는 깨달음을 얻네요.

박애진 저는 마감이 정해지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마감에 딱 맞게 쓸 수가 있어요.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결심하고 집중해서 달리면 나오더라고요. 그 기간 동안 제 생활이 완전히 무너지기는 해요. 그건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사람이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기 때문에. 처음엔 그렇게 쓴 글이 착상을 오래 묵히고 다듬은 글이 아니라 불안했는데 막상 거울 게시판에 올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보여줬을 때 제가 몇 달 공들인 것보다 반응이 좋을 때도 있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글을 쓰는 걸 좋아하진 않았는데 그런 반응을 겪다 보니 작가로 자신감이 생겼어요.

저는 계속 장편에 매진하고 있고, 지금 새 장편을 쓰고 있어서 단편을 예전만큼 못 쓰고 있어요. 장편을 쓰면서 단편을 못 쓰는 게 저한텐 약간 스트레스거든요. 나도 거울에 매달 글을 올리고 싶고? 어떻게 저 사람은 장편과 단편을 다 쓸 수 있는지 모르겠고? 전 단편을 쓰고 있는 동안은 장편이 멈추거든요. 동시가 안 되는데. 그래서 이번 [세상의 재시작까지 11억년]도 사실 어느 날 잡고 달린 거예요. 저는 매달 올리진 못하고, 계속 장편을 쓰니까 딴 건 못 해도, 이건 써야겠다 싶어서.

그러고 보면 거울이 계속 동기 부여를 해주는 게 있는 거 같아요. 거울 대표 중단편선이나 소재별 중단편선에 들어갈 단편은 반드시 써야 한다는 의지를 품고 있거든요. 그렇게 저 스스로 계속 글을 쓰도록 해요. 글을 쌓아 놓으면 재식님이 말한 것처럼 어디서 갑자기 원고가 필요하다고 할 때 써먹을 수가 있죠. 새로 쓰지는 못하지만 이건 어떠세요 하고 보여드릴 기회가 생기니까. 그렇게 짬짬이 써놓게 되네요.

pena 저는 필진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긴 한데, 사실 거울에서 쓴 글은 기사가 더 많고요. 기획이나 편집을 더 많이 하고 있어요. 편집자와 작가가 병행하기가 되게 나빠요. 작가로서 쓰고 있으면 정신분열처럼 ‘이래갖고 팔리겠어?’ 이러고 있고. ‘이 문장은 안 돼’ 이러고 있고. 그렇게 정신분열처럼 되기 때문에 글 쓰는 게 잘 안 되기도 하고.

이번 [세상의 재시작까지 11억년]에 실린 글은 굉장히 오랜만에 썼어요. 단편으로 치면 한 5년 만에 쓴 글이에요. 거울이 백 호를 맞았을 때, 백 호 특집이라고 해서 100이 들어간 걸 쓰기로 해서 <백련>이 들어간 거예요. 아주 힘들게 내긴 했지만, 거울에서는 뭔가 옆에서 계속 글 쓰라는 사람이라든가, 글을 꾸준히 쓰는 사람들이 있어서 자극이 돼요.

진행자 모두 자기 나름의 능력을 설명해 주셨는데요. (좌중 웃음) 사실 거울에 글을 쓴다고 해서 원고료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마감을 안 지킨다고 해서 누가 독촉을 하는 것도 아닌데요. 자발적으로 글을 올리는 걸로 돌아가는 곳이니만큼 자기 내부에 글을 쓰려는 동기가 있어야 지속이 가능하지 않나 싶네요.

답변 잘 들었습니다. 다른 질문 없나요?


질문 자기 글을 읽는 독자가 어떤 사람일까 하는 거요. 남녀 성비라든가 유형이라든가. 내 글은 학생들이 보는 글이구나, 아니면 여자들이 보는 글이구나, 이런 느낌이 좀 있을 것 같은데요. 그게 어떤 층이라고 생각하는지 말씀해주시고요. 그리고 여태까지 받았던 평 중 가장 인상적인 비평?

진행자 자기 글의 독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자기 글에 대한 비평, 두 가지 질문해주셨는데요. 이쪽부터 갈까요?

pena 저는 출판된 단편이 딱 한 편 있는데요. 프로필에도 썼듯이 굉장히 정통파 판타지예요. 다른 세계 얘기고, 용 나오고, 마법 쓰고, 중심 테마는 로맨스고. 출판이 되면 신경이 쓰이잖아요. 검색을 해보니 ‘이 단편집에서 최악이다’와 ‘이 단편집에서 최고다’가 같이 있는 거예요. 최고다 하는 분에는 어린 여자분이 많았던 것 같고, 최악이다 했던 분들은 주로 남자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 반응을 보면 저는 여자한테 맞는 글 그리고 로맨스적인 글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글을 쓸 때는 말씀 드렸듯이 약간 운명론자가 되는데, “이렇게 쓰자” 하고 결심을 해서 쓸 수 있는 게 아니고 그냥 “이런 얘기가 있네” 하고 나와야 쓸 수 있는 거라서요. 딱히 반응에 영향을 받진 않는 것 같아요. 내 독자가 어떤 사람들인지 생각하고 그 사람들이 좋아할 요소를 넣거나 하는 걸 못해요. 그렇게 타겟팅을 할 수 있는 게 프로 작가의 자질 중에 하나라고 생각을 하는데, 아직 못 하고 있어서 언제나 스스로 작가 지망생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평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평이라면, 색감이 좋은 작가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이건 제 글을 봐야 알 수 있는 건데요. ‘붉은’ 심판이라든가, 아니면 용의 비늘인데 ‘푸른’ 용의 비늘이라든가, 보라색이라든가 그런 식으로 색이 많이 들어가는 걸 쓴다고, 색감이 좋은 작가라고 해주신 분이 있어요. 그게 제일 기억에 남네요.

박애진 일단 스무 살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수위에서도 좀 자유롭고 싶고 해서.
저는 어떤 독자를 대상으로 쓸까보다 반대로 어떤 독자가 내 글에 공감을 할지 알고 싶어요. 누가 내 글에 공감을 해줄까, 내 글에 공감을 해줄 수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하는 생각이요. 어차피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설득할 수는 없어요. 30대 여자를 대상으로 한다, 혹은 20대 남자를 대상으로 한다고 말을 해도 그 안에서도 제각각이거든요. 같은 30대 여자라고 해도, 직장을 다니는 사람, 일찍 결혼해서 애가 몇 있는 사람, 이혼한 사람, 싱글맘 등등. 온갖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독자층을 먼저 상정하지는 않아요. 글을 발표할 때마다 늘 어떤 사람들이 공감할지 궁금하긴 해요. 피드백이나 감상문이 올라오면 참 좋은데, 보통 거기서 자기가 몇 살이고 어디 거주하는 누구입니다 하는 내용을 들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항상 궁금한 지점이에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제 이야기에 공감해줄 수 있으면 좋겠죠. 그런데 그걸 위해서 글을 쓸 수는 없고, 또 독자를 먼저 상정할 수 있는 건 아니고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극한으로 몰고 갔을 때 그게 누구를 끌어당길 수 있는가 쪽이 더 궁금해요. 독자를 생각해서 글을 바꿀 수는 없더라고요.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쓸 수 있는 이야기만 쓸 수밖에 없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비평은, 거울에 올라왔던 건데요. 거울에서 첫 번째 단편선인 [2004년 환상문학웹진 거울 단편선]을 냈을 때 <아도니스>라는 단편을 실었거든요. 그거랑 제가 거울에서 냈던 개인지인 [신체의 조합]에 대해서, 거울 비평 게시판에 절영님께서 평을 써주신 적이 있어요. 그 평이 굉장히 많이 위안이 됐어요.

거울을 만들었던 그 초창기가, 일단 첫 해라 아직 자리를 못 잡아서 거울 자체가 힘들었던 해고, 작가로서 저도 글이 안 써져서 너무 힘들었던 때에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한 몇 년간 진짜 글을 못 썼어요. 아무 것도 떠오르질 않고, ‘설마 예전에 썼던 글들이 내 전부인가? 나 앞으로 글 못 쓰나? 그럴 수는 없지’ 막 이런 생각이 들고. 그런데 절영님 평을 보면서 되게 많은 위안을 받았어요.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바란 식으로 글을 써주셨거든요. 되게 놀랐어요. 이 사람 내 마음에 들어왔었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제가 기대한 이상으로 그 작품들을 평해주신 거예요. 그 순간 받은 위안이 굉장히 컸던 것 같아요. 이런 독자 한 사람만 있어도 내가 계속 글을 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음 한편으로는 너무 잘 말해줬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럼 내가 이런 말을 들을 만하지’ 하는 그런. (웃음) 그 뒤로 글이 풀릴 때까지 시간이 좀 걸렸는데, 그 동안 힘들 때마다 저를 몇 년간 지탱을 해준 글이에요. 훌륭한 비평은 이런 비평일 수가 있구나, 내가 작가로서 이런 비평을 받아보는구나 싶었어요. 제가 힘들었던 시간을 넘어갈 수 있도록 해줬던 것 같아요.

앤윈 저는 특정 사람이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상정하고 쓰지는 않는데, 어떤 사람들은 아마 썩 감흥이 없을 거야 하는 건 있어요. 거울에 들어와서 읽거나 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정치적 성향이 명확한 편이고 그런 소설을 쓰거든요. 그래서 종종 저랑 지향이 다른 사람이 이 소설을 읽으면 어떻게 느낄까 하는 생각을 하긴 해요. 소설이라는 게 팜플렛이 아니잖아요.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기 위해서 어떤 상황을 빌려서 이야기를 전하는 게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앞에 펼쳐놨을 때 저랑 지향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까 하는 게 저한테는 늘 고민이에요. 궁금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지향이 비슷한 사람들은 많이 접해도, 지향이 다른 경우는 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요. 전에 한번 이런 평을 보고 흥미로웠던 적은 있네요. 어떤 평을 들었냐면, "나는 이 소설 불편하다. 정치적 소설은 별로다. 이건 소설이 아니라 태도 아니냐." 그리고 뭐라 그랬더라? 그리고 "왜 얘는 프로필에 사회주의자라고 써놓고서는 카페에서 글 쓰는 사진 올리냐?" (웃음)

박애진 사회주의자는 카페에 가면 안 되는 거예요?

앤윈 잘 모르겠어요. (웃음) 어쨌건 내 글이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여질까 하는 데 대한 고민은 늘 있어요. 물론 그 안에 어떻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내재되어 있는 건 사실이에요. 당연히 그걸 제가 독자에게 강요할 수는 없겠죠. 독자의 역량에 맡겨진 부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럼에도 제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이야기는 있네요.

대상 독자층을 딱히 정하기가 어려운 게, 소개할 때 진행자님이 제가 묵직한 주제를 가지고 쓴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이번에 거울에 올린 건 청춘 하이틴 로맨스예요.

진행자 어디가요?

박애진 본인의 기준이 아니라 보편적인 기준에서. (웃음)

앤윈 저는 청춘 하이틴 로맨스라고 생각하고 썼는데요? (웃음)

pena 한 서너 편 더 쓰면 스펙트럼이 넓다고 해줄게요.

앤윈 그러니까 그런 걸 읽고서는, 여고생들이 자기도 이런 설레는 마음을 느끼고 싶어 했으면 좋겠고. 또 <종의 기원>에 대해서는 청소 노동자들이 그걸 보고 느끼는 감정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독자가 누구라고 딱 지칭하긴 힘든 것 같아요.

제일 인상에 남는 비평이라면 두 가지 정도 있는데요. 첫 번째는 거울에서 아밀님이 <종의 기원>을 보고 해주신 이야기예요. "이 사회에 계급이 있다는 걸 분명하게 적시하고 있어서, 그 안에서 화해의 꿈을 꾼다는 게 매우 매력적이다. 좀비가 이런 상징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게 아름답다." 이런 식으로 평해주셔서 되게 기뻤어요. 실제로 그런 식으로 읽히길 바랐거든요. 또 하나는 여기 [세상의 재시작까지 11억년]에 실린 <히스테리아 선언>에 대해서인데요. 저번에 이걸 합평했을 때 저기 옆에 계시는 pena님과 절영님이 같이 있었는데, 절영님이 절 딱 보자마자 제가 이 소설을 썼을 것 같지 않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pena님한테 대체 어떤 인상이냐고 하니까, 되게 히스테릭한 노처녀일 것 같다고 (웃음) 이야기해주신 게 기억에 남아요.

pena 글이 깔끔해서 그러신 거예요.

정도경 전 독자 반응을 세 가지 정도로 나눠봤는데요. 첫 번째로는 대다수가 기분이 나쁘다고 하세요. 저기 앉아계시는 pena님께서 거울에 있는 프로필이나 출판사에 보내는 프로필에 영향을 많이 주셨는데, "어둠의 작가", "치정 전문 작가" 다 pena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기분이 나쁘다 말고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마음이 어두워진다, 이런 말 되게 많이 듣고요. 기분이 나빠서 댓글을 쓰고 싶지 않다는 말씀을 하신 분도 있어요. (웃음)

근데 제 글 기분 나쁠 거 저도 알고 쓰거든요. 알기 때문에 독자 반응을 생각하고 쓰면 쓸 수가 없어요. 다들 싫어할 거야 막. (웃음) 여기 독자 여러분들 앞에 두고 이런 소리하긴 죄송하지만 웬만하면 독자에 대해서는 생각 안하고 일단은 제가 쓰고 싶은 얘기부터 써요. 싫어하면 어쩔 수 없지 하고. 네, 그렇게 첫 번째는 기분이 나쁘다는 거고요.

두 번째는 죄송한 얘긴데요. 저는 글을 쓸 때 주제를 가능한 한 정확하고 분명하게 내보내려고 노력하는 편인데요. 저는 A를 생각하고 썼는데 어느 분은 이건 확실히 B다 하고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예를 들어 저는 북한을 생각하고 되게 어두운 소설을 썼는데 이거 캄보디아다, 캄보디아 맞죠 하고. 참고로 캄보디아는 글 쓸 당시엔 생각도 못해봤습니다. 그런데 아니라고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아 예 감사합니다 하고 넘어갔는데요. 그렇게 의도와 다른 해석을 굉장히 확신을 가지고 하시는 경우. 뭐라고 말씀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마지막은 제 올타임 베스트일 거 같은데요. 제 기분 나쁜 소설을 읽고 굉장히 위안이 됐다 하시는 분이 있었거든요. 이건 거울은 아니고 제 블로그에서, 지금은 없지만, 블로그에서 개인적으로 써주신 이야기였는데요. 그 분의 개인적인 상황과 제가 소설로 썼던 이야기하고 묘하게 겹쳐서 글을 되게 감명 깊게 읽으셨던 것 같아요. 그 분께 진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기분이 나쁘다 마음이 무겁다 치정이다 뭐 이런 말만 듣다가, 위안이 됐다고 하시니 아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구나 싶었거든요.

제 글을 누가 읽어주시는지는 잘 모르겠고요. 거울 작가 분들이 읽어주시는 건 맞는 것 같은데요. 작가님들이 다 마음이 어둡다 이런 말씀을...

박애진 어, 저는 그런 식으로 얘기한 적 없어요. 겉보기엔 어둡지만 늘 읽고 나면 생명력이 느껴지는.

정도경 그러니까 애진님 빼고. 거울 작가 분들 중에서 애진님만 저보고 계속 글 쓰라고 하시고요. 나머지 분들은 다 마음이 어두워진다, 댓글을 달고 싶지 않다 그러고. (웃음)

pena 무슨 소리죠?

박애진 그건 좀 오버인데.

앤윈 아니에요. 계속 써주세요. 글에 댓글은 못 달겠지만 계속 써주셨으면. (웃음)

정도경 네. 왜 읽어주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진행자 네, 잘 모르겠습니다. 어두워지는지 기분이 나빠지는지 생명력이 느껴지는지는 여러분이 읽어보고 판단하시고요. 자기들의 독자, 그리고 비평에 대해서. 곽재식님이 말씀해주세요.

곽재식 독자는, 저 같은 사람을 독자라고 생각하면서 씁니다. 그러니까 저처럼 생긴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고, 저와 같은 시각과 취향을 가진 사람이요. 만약 내가 이걸 본다고 하면 던지고 싶진 않을까, 재미있다고 생각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요. 가끔 서점에 가서 베스트셀러라는데 막상 보면 ‘아 이건 뭐 아오’ 하는 게 있고,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은데 읽어보면 정말 재미있어서 사람들이 왜 이걸 안 보고 있나 싶어서 선물도 해주고 싶고 그런 책이 있잖아요. 그래서 전 서점에 가면 가끔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별로인 책은 살짝 치우고 내가 생각하기에 잘 나가야 할 책을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려놓고 했었는데요. 친구가 그런 걸 서점 사람들이 제일 싫어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안 하고 있는데. 어쨌든 전 그렇게 저와 같은 시각을 가진 독자가 봤을 때 괜찮다 싶게끔 쓰고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평은, 뭐 [곽재식 단편선] 이런 거에 감상문이나 소개글 써주신 거 다 기억에 남는데요. 오늘 말씀 쭉 하시는 거 보니까 저도 기억에 남는 게 두 개 정도 생각나는데. 한 4년 전에 거울에 올렸던 건데, 제목이 <월척>이라는 글이 있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리 재밌는 건 아닌데. 어떤 사람이 자기가 낚시를 잘 한다고 뻐기는 사람이 있었어요. 이 사람이 한강변 가서 낚시를 하는데 엄청 큰 고기가 걸릴 듯 걸릴 듯 하면서도 고기가 너무 영리해서 영 잡히질 않는 거예요. 여자친구하고 약속도 있어서 가야하는데. 여자친구냐 고기냐 고민을 하다가 결국 낚시를 때려치고 여자친구한테 가요. 그런데 사실은 그게 물고기가 아니라 기상이변 때문에 한강까지 거슬러 온 돌고래였던 거죠. 그래서 여자친구하고 같이 사진 찍는 데 돌고래 튀어오르는 모습이 같이 찍혔다 그런 식으로 끝나는 게 있었는데요. 재미 없죠? (좌중 웃음) 말도 안 되는 거 같고. 저도 이건 별로 뭐 이러면서 썼는데. 어떤 분이 댓글을 달면서, 자기가 삶의 의욕이 없고 세상이 다 썩은 거 같고 내가 왜 살아야 하나 이러고,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걸 읽고 나니까 그래 역시 세상은 밝고 살만한 거야 (좌중 웃음)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거예요. 아마 명랑하고 밝은 분위기로 적혀 있어서 그랬나 봐요.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건 뭐냐면. 7년 전 정도에, 거울 책에 실린 건 처음인 것 같은데, <달과 6백만 달러>라는 게 있습니다. 그건 뭐 숨겨진 자식이 발견되고 어쩌고 하는 건데요. 제가 고등학교 친구 중에 되게 무서운 친구가 있는데, 검도부라 칼질하고 다니고 뭐. 지금은 해운회사 같은 데서 일하면서 배 타고 외국 다니고 있어요. 배를 타고 있으니까 딴 거 할 게 없으니 인터넷을 엄청나게 많이 하더라고요. 원래는 거울 이런 거 대문 그림만 봐도 안 들어갈 친구인데, 인터넷을 워낙 많이 하다 보니까 그걸 다 읽어봤더라고요. 제 글을 다 읽고 뭐 댓글을 달거나 하진 않고. 밤에 읽었나 봐요. 전화를 한 통 하거나 이러고 싶었는데 그 땐 제가 자고 있을 것 같으니까 문자메시지를 보낸 거예요. 몇 글자 안 되는 문자메시지인데, “새끼야 울었다” 이렇게 보냈더라고요. 울었다 이거죠, 감동 받아서. 그래서 잘 썼나 보구나 이렇게 생각이 들어서 그게 기억에 남습니다.

진행자 새끼야 울었다. (웃음)

한별님께서는 자기 글에 대한 독자 평이든, 아니면 자기가 만든 글에 대한 평이든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별 그런 말 있죠. 악플보다 무서운 무플이라고. 반응이 없는 게 참 무섭죠. 저도 글을 띄엄띄엄 쓰기는 해요. 그런데 이분들 앞에서 글 쓰는 이야기 하면 혼날 것 같고. 글쎄요. 거울에 올라가는 건 주로 리뷰 같은 거예요. 전 주로 제가 평을 하는 쪽이라 답하긴 어려울 것 같네요.

진행자 네, 다음.


질문 전 좀 두루뭉술한 질문을 하고 싶은데요. 저는 미국에 살고 있고, 그 쪽에서 SF나 영화 등을 봐요. 그럼 어떤 긴장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요. 누군가는 자기 내면의 의식에 푹 들어가서 내 의식이 바로 세계다 싶은 표현을 하는데, 그런 분들도 가족 관계나 사회적 관계가 있단 말이죠. 또 어떤 분들은 사회적인 면이나 의식의 표면 같은 데 매여 있어서, 그걸 넘어가고 싶어도 잘 안 되고.  이 두 가지 텐션이 어떤 면에서는 작품 활동에 창의적인 소스가 된단 말이에요. 이를 테면, 일본 작가들을 보면 완전히 자의식에 빠져서 또는 자기 세계에 들어가서는 세계가 멸망하든 말든 신경 안 쓴다 하는 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고요. 반대로 서구의 작가들 중에는 자기 시각과 남들이 보는 시각이 완전히 동일하다고 가정하고 보는 게 느껴지는 때가 있는데요. 작품 쓰신 걸 보면 그런 미묘한 긴장이 느껴지거든요. 한국 땅에 살고 있는 한, 한국 땅이 내세우는 가치 같은 게 싫다고 해서 뭐 배 타고 내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200만년 미래에 갈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쓰시면서 그런 긴장을 느끼시면 그걸 어떻게 최소화하시는지, 아니면 이를 작품에 반영하는 노하우라든지, 한국 장르문학의 특징이랄지, 그런 걸 듣고 싶습니다.

진행자 말씀해주신 게, 다른 곳의 소설을 보면 자의식에 빠져서 자기 생각대로 쓰시는 분들이 있고, 아니면 보다 현실적으로 이 사회의 관계 등에 기초해서 쓰시는 분들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작가 분들이 모두 자기 나름의 이야기를 쓰지만 또 한국 작가들이다 보니까 한국 땅에서의 생각을 벗어나기가 힘들잖아요. 특히 장르문학이라는 건 세계적인 혹은 우주적인 보편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또 그러면서 한국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나 사고방식을 반영하는데요. 그 사이에서 일종의 긴장이 발생하잖아요. 예를 들면 주제를 설정할 때 특정 시대의 한국에서 통하는 주제를 쓸 것인가 아니면 보다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주제를 다룰 것인가 하는 긴장이 있을 수 있겠는데요. 소설을 쓰실 때 이런 긴장이라든가 아니면 한국 작가로서 갖는 한계라든가 하는 것들을 어떻게 다루시는지, 그리고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를 대답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말씀하시고 싶은 분이 대답하면 될 것 같아요.

곽재식 말씀해주신 내용이 제가 듣기로는, 사회적인 주제나 소재와 개인적인 주제나 소재들을 어떻게 융화를 시키느냐, 내지는 어떻게 충돌을 시키면서 어떻게 재밌는 이야기를 만드느냐 하는 것에 대한 것 같은데요. 듣고 있으니 최근에 좀 재밌어 보이는 일이 떠올라서 그걸 좀 나서서 말씀을 드리면,

예를 들어 4대강 사업이라 치죠. 이런 국토 사업이 아니라 정쟁이나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이쪽 지도자가 행동하면 저쪽에서 맞부딪히고 하는 이야기를 뉴스 기사처럼 쭉 싣는 방법이 사회 문제를 다루는 데 흔히 나오는데요. 좀 딴 길로 가는 것 중에 왕왕 재밌는 방법이 있어요. 굉장히 주목을 받는 어떤 사회적인 사건이나 충돌을 두고, 그로 인해 멀리 떨어져 있는 개인 한 명이 어떤 영향을 받는가 하는 걸 다루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아까 4대강 사업 이야기를 꺼냈는데요. 예를 들어 4대강 사업을 하면서 담당 공무원이 위에서 시킨 대로 기안을 작성하고 있다 치죠. 근데 제목을 꼭 40자 이내로 쓰라 그랬다 이거죠. 뭐, “ㅇㅇㅇㅇㅇㅇ중장비에 대한 사업”이라고 쓰면 40자가 되는데, “사업 등”이라고 쓰면 41자가 되는 거죠. 이게 ‘~등’이라고 쓰면 중장비 외의 다른 것도 좀 지원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데요. 40자를 맞춘다고 ‘~등’이라는 말을 빼면 딱 그 중장비만 지원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 공무원은 40자를 맞춘다고 생각 없이 ‘~등’이라는 말을 뺀 거죠.

그래서 한창 사업을 하다 보니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현장에 나온 사람 중에 되게 취업이 안 돼서 고생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중장비 기사 자격증을 따서 드디어 이 현장으로 취업이 된 거죠. 고향을 떠나 현장에서 기곗밥 먹고 하니까 피곤하긴 하지만 그래도 취업이 됐다는 기쁨에 일을 하려고 온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을 뽑은 회사에서 사업 이름에 ‘~등’이라는 말이 빠졌기 때문에 얘가 돌리는 기계는 쓸 수가 없고, 얘는 뽑혔지만 놀아야 되는 그런 상황이 올 수 있겠죠.

이런 이상한 상황에 빠진 이 사람은, 자기가 뭘 잘못해서 이런 불행을 겪는지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서는 하나님의 마법처럼 이 사람이 제외된 사연이 있었던 거죠. 이 이야기를 쓰면서 뭐 4대강 사업이 생각 없이 진행돼서 그런 거라고 풍자할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공무원 사회가 워낙 미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격식만 따지다 보니까 문제라는 걸 풍자할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이런 배경은 그냥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만들기 위해 깔아놓은 것뿐이고 사실은 한 불쌍한 개인이 복잡한 사회 속에서 겪는 절망감을 묘사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요.

이렇게 신문 1면에 실릴 것 같은 큰 사건으로 인해서 굉장히 구석진 데서 영향을 받는 개인 한 명 한 명의 좌절과 삶의 우여곡절을 묘사하는 이야기가, 말씀하신 그런 사회적 부분과 개인적 부분의 충돌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요즘에 좀 많이 보이는데요. 뭐 고전 중에도 헤밍웨이가 자기가 전쟁에 참전해서 느낀 걸 삽화 형식으로 담은 것에서도 보이는 것 같고. 아니면 요즘에 신선한 아이디어로 이야기를 꾸민 코미디 영화 같은 거에서도 보이고요. 전 요즘에 이런 방식에 재미를 붙인 것 같습니다.

앤윈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 보다 본질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모든 게 모순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굉장히 작은 것부터 아주 큰 것까지 세계의 대부분이 모순되어 있다고 느껴요. 그렇기 때문에 소설이라는 장르가 존재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방금 재식님이 말씀하신 것도 모순된 일면인 거잖아요. 그러니까 어느 한쪽으로, 예를 들면 자의식에 완전히 골몰해버리면 별로 재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가진 자아를 안 쓸 수는 없죠. 우리는 누구나 자아가 있고, 말하지 않으면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르잖아요. 제가 말로 표현하기 전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여러분들은 모르시죠. 그런 차이를 무시해버리는 경우에도 되게 재미없는 소설이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아까 미국이나 일본 소설과 한국의 차이를 이야기하셨는데, 만약 정말 그런 차이가 있다면 저는 개중 한국 소설이 가장 장래성 있게 느껴지는데요. 모순된 양쪽을 다 취한다는 점에서.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는 차치해 두고서요. 그게 ‘한국’ 소설의 특징은 아닌 것 같네요. 전에 배명훈님이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어요. 장르 판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한국인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코스모폴리탄이라고 느낀다고. SF적으로 말하면 자기를 지구인이라고 느낀다고.

어쨌든 결론적으로, 저는 방금 말씀하신 개인적인 갈등과 사회적인 갈등 사이의 긴장, 바로 그 부분이 소설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느껴지거든요. 그 부분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것 자체로도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듭니다.

진행자 굉장히 실제적인 이야기와 이론적인 이야기를 해주셨네요. 다음 질문 받도록 하겠습니다.

2부 기사를 보러 가기[클릭]

댓글 0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25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