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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a(01demian@hanmail.net  demianbo.egloos.com)

 


1. 시간의 잔상 : 밤의 여왕 by 진아
2. 기획/대담 : 인터뷰1 : 박애진(진아) 인터뷰 - 작가의 귀환, 변신의 시작 by 연심, pena
3. 기획/대담 : 인터뷰2 : 작가 대담 1/2 by ida+askalai+배명훈+콜린+진아
3. 기획/대담 : 인터뷰2 : 작가 대담 2/2 by ida+askalai+배명훈+콜린+진아
4. 국내소설 : 지우전 리뷰 : 너의 세상에 닿기를 by 배명훈
5. 기획/외부 감상 : 단편 리뷰 : 현실 그 자체로서의 환상 - 진아와 환상소설 by 현서
6. 기획/일반 : 웹툰 : [지우전] by ida
7. 그림이 있는 벽 : 지우 by ida
8. 그림이 있는 벽 : [지우전] 에필로그 by 양원영
9. 기획/일반 : 거울 필진이 좋아하는 진아의 단편

 

 

 1부 : 단편과 장편

 박애진(진아) 작가님의 첫 장편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askalai(이수현), 배명훈, ida(김보영)이 모여 대담을 펼쳤다. 2부에서는 ‘장편을 많이 쓴 작가를 불러!’ 해서 갑자기 콜린(김이환)님 소환, 초호화 출연진!
 마침 진아님과 마찬가지로 모두들 장편을 준비 중이거나 혹은 출간을 앞두고 있는 작가들이라, 단편을 쓰던 작가가 장편을 쓰는 것에 대해서, 공식 등단 시스템이 없는 세상에서 작가가 되는 것, 또 작가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모인 작가 자신들도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지만, 다른 단편작가들에게도, 앞으로 장편을 준비 중인 작가들에게도, 예비 작가들에게도 독자들에게도, 출판업계에 계신 분들에게도 생각해볼 거리를 던질 대담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대하시라!

 패널 : 진아(박애진), askalai(이수현), 배명훈, ida(김보영), 콜린(김이환)
 사회자 : askalai
 녹취록 정리 : ida
 막 그린 삽화 : ida


 askalai 자, 우선 출간 축하해요.
 일동 와아~
 진아 이 작위적인.
 askalai 음, 공식적인 인터뷰는 기사필진과 따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요. 그래서 두 분이 했을 때처럼(ida, 배명훈은 거울 85호에서 대담을 나눈 적이 있음―――편집자 주) 작가 대담을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지금 주제를 잡고 있는 게 두 가지가 나왔는데 하나는 마침 단편을 계속 쓰다가 첫 장편이 나온 것이고, 마침 이다님도 쓰고 계시고, 배명훈님도 출간 기다리고 계시고.
 배명훈 맞아요. 기다리고 있어요. (울분)
 askalai 단편 쓰다가 장편으로 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하고, 또 하나는 배명훈님이 생각하신 주제, <작가가 되기>였나요?
 배명훈 셀프 등단에 대해서 이야기를. (모두 웃음) 등단 시스템이 없는 곳에서 작가가 된다는 게, 뭔가, 없는 것을 스스로 채우는 거잖아요. 아마 (지우전) 책 머리말에도 그런 느낌이 물씬 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이걸 쓰지 않으면 뭔가 안 된다는 기분, 아마 다들 느끼고 계실 거예요.
 진아 네. 거울에서 지금 장편 준비 중이신 분들도 꽤 되니까.


 1. 쓰는 문제

 • 분량의 압박

 askalai 진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질문을 던지자면, (어색어색) 장편을 쓰면서, 단편과 제일 다르게 느낀 게 뭐였나요. (어색어색)

 (일동 웃음.)

 ida 목소리 톤이 바뀌었어.
 배명훈 아~ 이건 유재석이라면 이렇게 안 했을 텐데.
 askalai 전 유재석이 아니에요! (버럭)
 진아 장편을 쓰면서 단편과 제일 다르게 느낀 게 뭐였냐면, 제일 크게 차이가 느껴진 건 분량의 압박인 것 같아요. 글을 쓰다가 막히면 앞부분으로, 도입부로 돌아가서 차근차근 돌아보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도입부에서 돌아오기까지가 너무 멀어요. 보통 여정이 아닌 거예요. 그걸 다시 한 번 돌아오는 데까지만 해도. 단편은 어쨌든 쓰다가 막혀서 돌아와도 몇 시간 안에 돌아오는데, 장편은 쓰다가 막혀서 돌아오면 며칠이 걸리기도 하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왜 막혔는지가 약간. (일동 웃음)
 배명훈 맞아요, 맞아요.
 진아 가물가물하기도 해요. 그러니까 가장 많이 느낀 게, 아, 머리가 좋아야 한다. (일동 웃음)
 ida 앞에 것을 기억해야 하는 건가요.
 진아 기억력이 좋아야 한달까. 특히 장편은, 연출이랑 위치를 좀 바꾸다 보면, 이게 넣었나, 안 넣었나 헛갈리고. 그러니까 얘를 여기에 넣으면 얘가 여기 들어가야 하고, 얘가 여기에 들어가면 이게 이렇게 되었어야 했는데, 내가 앞에 얘를 어디다 놨더라? (웃음)
 배명훈 맞아요.
 진아 그러니까 이게 원고지 80매 분량을 외우는 것하고, 원고지 1400매를 (제가 분량이 원고지 1400매 정도 나왔거든요) 기억하는 게 좀 달라서. 좀 그런 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일단 절대적인 시간이 훨씬 더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퇴고를 하는 것도 단편은 하루에 한 번 할 수 있는데 이건 나눠서 해야 하더라고요. 특히 마지막 퇴고는 문장 하나하나 쪼잔쪼잔하게 들여다보면서, 되게 마나를 많이 요구하는데, 그게 하루에 다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자리에서 읽을 필요가 있거든요. 그 자리에서 읽으면서 봐야 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런 게 진짜, 아, 이게 정말 체력과 정신력의 싸움이구나.
 배명훈 그러니까, 하루에 다 못하더라도 중간에 끊으면 안 돼요. 흐름이, 다음날 하더라도 쭉 이어가야 하는 흐름인데, 하다가 지쳐서 반쯤 하다가 놓고 좀 쉬다가 다음에 들여다보면 안 돼요. (웃음)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해요.
 진아 네, 좀 그런 게. 절대적인 시간문제가 크더라고요. 체력과 정신력이 다 많이 소모가 된다는 거.

 • 시점의 문제

 askalai 그거 말고 다른 차이는 없었음……. (말 흐림)
 진아 다른 차이라면 일단, 이건 내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배명훈 / ida (속닥속닥) (웃음)
 askalai  아, 넘어가요!
 진아 뭐야? 왜 웃는 거야?
 askalai 아니, 순간 반말 하려다가. (진아와 askalai는 원래 반말을 쓰는 사이입니다.)
 진아 아, 그래서 웃은 거야? (일동 웃음) 제 단편들이, 단편이라고 다들 그렇게 쓰는 건 아닌데, 저는 중심이 되는 인물이 대체로 한 명이었기 때문에, 인물을 여럿 굴리려니까 좀 힘들었어요. 각자 역할을 좀 줘야 하고. 저는 소설 쓸 때 ‘인물을 이런 성격으로 해야지’ 하는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어요. 캐릭터성으로 가는 소설은 아니었기 때문에. 근데 그런 것도 좀 어렵긴 어렵더라고요. 인물들 위치 배치하고,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도 써야 하고, 단편은 그럴 일이 거의 없잖아요. 그리고 저는 1인칭으로 쓴 적도 많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많이 없었는데, 여러 인물들을 다뤄야 된다는 것도 어렵기는 어렵더라고요.
 배명훈 그러니까, 여러 인물들을 다뤄야 하니까. 1인칭이 되게 힘들죠.
 진아 네.
 배명훈 규모가 있으면 이 시점, 저 시점을 오가야 하니까. 모두에게 보편적일 수 있는 관점으로 옮겨가야 이걸(작품을) 고르게 쓸 수 있어요. 안 그러면 “이 책 주인공이 누구야!” 하는 말이 딱 나와요. (일동 웃음)

 • 기록 깨기

 진아 그런 것도 좀 힘들었고. 이야기 자체가 좀 힘들었던 것도 있었고. 지금까지 제가 쓴 것 중에 제일 힘들었던 것 같고. 앞으로는 이 기록을 계속 깰 것 같아요. ‘매번 그 기록을 깨지 않으면 제대로 된 글을 쓸 수가 없겠구나.’ 하는 것을 좀 절감하게 되더라고요. 얘를 쓰면서. 그래서 좀 다작하는 작가들이 부러운데. 저는 그 방향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점점 더 들더라고요. 얘를 쓰면서 더더욱.
 ida 그 방향이 아니라는 건?
 진아 왜 좀, 다작하시는 분들은 어떤 글은 힘을 주기도 하지만 가볍게 떠오르는 착상을 콱 풀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점점 그쪽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ida 그러면?
 진아 떠오르는 것을 확 푸는 게 아니라 계속 묵히고 쌓이고 발효시키고 해서 쥐어짜는 쪽으로. 이걸 쓰다가 중간에 단편 하나를 올렸어요. 그냥 가볍게 쓰고 싶었거든요. 너무 힘들게 안 쓰고. 그랬더니 글이 완전히 망한 거예요. 그거 2011(단편선)에 올라갈 유일한 후보작만 아니었어도 낼름 버렸을 텐데. 후보작이 걔밖에 없어서 못 버렸어요. 나 그래서 대표 중단편선에 마음에 안 드는 것 많이 들어갔어요. (일동 웃음)
 askalai 빠질 순 없어서.(웃음)
 진아 빠질 수는 없고! 좀 괜찮은 건 출판사에 팔렸고! (일동 웃음)
 ida 아, 가슴 아프다. 뭔가 직설적인 게 나온 것 같아.
 진아 그런데 그 글을 쓰고 되게 후회했거든요. 이제 안 되겠다. 그때 그런 느낌을 받은 것 같아요. 나는 매번 이렇게 전에 내가 했던 기록을 깨면서 앞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라는.

 • 흐름을 끊을 수 없어요.

 askalai 그런데 이거 처음에 초고 완성하는 데는 되게 짧게 걸린 것 아닌가요? 작년에 썼잖아요.
 진아 작년 초부터 시작했으니까요. 1월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한 7,8개월은 걸렸어요. 물론 7, 8개월 내내 쓴 건 아니라고 해도.
 askalai 그래도 그게 다 쓴 기간이죠.
 배명훈 ida님 혹시 7, 8개월이란 말 듣고 금방 썼네라고 생각했죠.
 ida (고개 마구 끄덕임) 응응응. 빨리 썼네.
 askalai 하지만 ida님, ida님 소설은 분량이 두 배 가까이 되잖아요.
 ida 분량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단편과 장편의 차이라는 주제 듣고 그때 생각을 해 봤는데, 단편은 중심이 되는 ‘장면’이 있으면, 장편은 중심이 되는 ‘흐름’이 있는 것 같아요.
 진아 네.
 ida 그러니까 단편은 장면이기 때문에 퇴고가 쉬워요. 빼고 넣을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장편은 흐름이라서, 퇴고했을 때 하나를 들어내면 흐름이 딴 데로 가요.
 진아 오, 맞아요, 맞아.
 ida 그래서 쓰기에는, 제 입장에서는, 오히려 장편이 쉽고 재미있어요. 흐름에 맡겨 가면 되거든요. 제가 쓰는 글도 사실은 거의 끝까지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썼거든요. (하지만 저는 퇴고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 퇴고하는 데 단편보다 훨씬 시간이 오래 걸려요.
 진아 예, 퇴고가 더 어려워요. 그런데 저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단편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뒀어요. 단편은 그렇게까지 글을 통제하려 하지 않아요. 저는 장편은, 얼개를 짜고, 장면 재배치를 하고, 조금 더 살을 붙이고, 조금 더 살을 붙이고, ‘이 장면 배치로 가겠다’고 결정한 다음에 그걸 따랐어요. 그러니까 ‘옮겨가지’ 않아요. 옮겨가고 싶거나, 더 살을 붙이거나 빼고 싶은 욕망이 생길 때마다 그냥 그걸 잘라요. 그러지 않고 거기서 한 번 흐름이 흩어지면, 단편은 조금 흩어져도 그냥 쓱 가는 데로 갈 수가 있는데, 장편은 잘못 흩어지면 배가 산으로 가고, 중간에 암 덩어리가.
 ida 암 덩어리? (웃음)
 진아 암 덩어리라고 말하니까 좀 그렇다. 나무가 이렇게 있는데 중간에 가지 하나가 너무 큰 게 붙어 있는 거죠.
 ida 처음에 파악을 하셨기 때문에 통제를 하신 거군요.
 진아 그렇게 되면 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통제를 하면서 썼어요. ida님이랑 저는 좀 반대인 것 같아요.
 ida 저는 단편은 통제했던 것 같아요. 단편이 좀 길어지면 흐름에 맡겼던 것 같고. 중편이 되면 좀 더.
 배명훈 그렇구나. 저는 은경이가 하고 싶은 대로. (웃음)
 ida 단편도 장편도 전부?
 배명훈 네. 장편에서도.
 진아 그러면 은경이가 안 나오면?
 배명훈 아무튼 주인공들이 원하는 대로. 장편에서 좀 더 그런 것 같은데, 앞쪽에서 한 3분의 1 지점까지는, 인물이라든지 세계라든지 그런 것들을 막 힘들게 쓰잖아요. 어느 정도 쓰고 나면 애들이 암세포든 뭐든 지 맘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저는 그걸 다 누르지는 않아요. 누를 수 없는 거죠. 특히 결말 근처에 가면 거의 그애들이 결말을 내게 놔두는 편인 것 같아요.
 진아 저는 구상할 때는 흘러가게 내버려둬요. 머릿속에서는. 어디로도 막지 않고 다 흘러가게 내버려 둬 보는데, 옮길 때는 통제를 해요. 하지 않으면 장편은 안 되는 것 같아요. 흐름대로 가면 망하더라고요. 애들이 어디로 갈지 알 수가 없어요.
 askalai 그런데 차이가요. 어쩌다보니 두 분의(배명훈, ida) 출간되지 않은 장편까지 읽은 제 생각에, (일동 웃음) 두 분이(배명훈, 진아) 쓴 장편은 단편에 가까운 느낌이 드는 장편이고, ida님이 쓴 글은 대하소설에 가까운 장편이에요. 느낌 자체도 완전히 달라서, 꼭 스타일만의 차이는 아닐 수도 있어요.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달라서.
 진아 아, 어떤 건지 알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도 부 단위로 나뉘어져 있고, 그 단위마다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다르고.
 askalai 예, 쪼개져 있는 느낌이라면, ida님이 쓰시는 건 진짜로 이렇게(두 손을 펼치며) 되어 있는 느낌이라.
 배명훈 ‘이렇게’라고 하면 나중에 (기사에) 쓸 수가 없어요. (웃음)
 askalai (웃음)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는 느낌이라. 하나의 흐름을 쪼개는 것과, 쪼개져 있는 것이 이어져 있는 것 사이의 차이라고 할까요.
 진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흔히 생각하는 장편이 ida님이 쓰는 장편이고, 보통은 쪼개 쓰는 쪽이 적으니까.

 • 속임수가 통하지 않아요!

 진아 그런데 진짜 장편은 단편보다 속임수가 안 통하는 면도 있더라고요. 단편은 좀 슬쩍 가릴 수 있어요. 내가 자신 없는 부분들을 슬쩍 넘어가고, 자신 있는 부분에 딱 중점을 둬서 딱 치고 갈 수가 있는데, 장편은 쓰기 싫은 장면도 써야 해요. 그걸 피해가면 안 되더라고요. 피해 보려고 했는데. 아, 안 되는구나. 이걸 그냥 밟고 가야 하는구나. 그런 것도 좀 힘들었어요.
배명훈 그러니까, 꼭 그런 챕터가 있어요. 써야 하는데 쓰기 싫은 챕터가 있는데 (일동 웃음)
 진아 꼭 쓰기 싫은 장면, 힘든 장면!
 배명훈 대충 써 놓고 넘어가더라도, 나중에 꼭 거기로 돌아가야 해요. 계속 그것만 붙들고 있어야 해요.
 진아 예, 그걸 건너뛰면 안 되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단편은 슬쩍 넘어가도 되는 부분들이 장편에서는 좀.
 배명훈 일단 넘어간 다음에 다시 돌아오고, 다시 돌아오고, 맨날 거기만 돌아왔어요.
 진아 중간에 몇 번 그런 유혹이 느껴지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이를 악물고, ‘여기를 밟아야 한다. 어차피.’ 그런데 그런 장면을 지나갈 때 오래 걸리더라고요. 분량이 짧아도 좀 오래 걸리고.
 ida 어디인지 말해 줄 수 있어요? (일동 웃음)
 진아 싫어요. 절대 안 돼요. (일동 웃음)

 • 장르가 달라요

 배명훈 그런데 그런 게 해결되고 나면 뒤에 어느 정도 쭉 가잖아요. 어떤 면에서는 단편을 장편 분량만큼 쓰는 것하고 장편 하나 쓰는 것하고 비교하면 오히려 장편이 더 쉬운 것 같기도 해요.
 진아 아, 그렇죠, 그렇게 따지면. 매번 이걸 해야 되는 거라고 따지면.
 ida 분량 대비를 생각하면, 그러니까 장편 분량의 단편을 쓴다고 하면.
 배명훈 반만 단편으로 채운다 그래도 오히려 장편이 쉬울 수도.
 ida 제 느낌에는 이야기가 끝나기 위한 에너지가 있어서, 그건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단편이든 장편이든. 짧다고 짧은 만큼 쉬운 게 아니에요.
 진아 시작하기 위한 것과 끝내기 위한 에너지가 필요한 거, 맞아요.
 askalai 하지만 장편이 확실히 뭉텅이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죠. 체력이랑.
 배명훈 저는 옛날부터 생각했지만 단편이랑 장편이 다른 장르라서, 짧은 소설이 단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완전히 다른 식으로 접근해야 해요.
 ida 장편 정말로 잘 쓰시는 분들이 단편 쓰실 때 장편처럼 쓰는 경우도 있고. 장편의 일부라는 느낌으로.
 askalai 그래서 단편으로서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많고.
 배명훈 완전히 다른 느낌인데, 훨씬 압축적으로 (써야 하고). 그러니까 단편의 경우에는 분량이 짧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전체를 작가가 통제할 수 있는 상태에서 쓸 수 있는 게 (있어요). 눈에 딱 보이는 범위 안에서 일어나는 장면들, 인물들을 가지고 눈에 딱 보이는 이미지로 만드는 방법인 것 같은데, 장편은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한 눈에 다 안 보이는 것도 해야 하는 작업이에요. 그러니까 그 뭐가 있냐면, 전쟁사 공부하다 보면.
 ida (웃음) 전쟁 나왔습니다, 여러분.
 배명훈 옛날 전쟁은 아무리 커져도 전장이 눈에 딱 보여서, 지휘관이 다 명령을 할 수 있는, 통제를 할 수 있는 상황인데, 1차대전 이정도 가면 전장이 지평선을 넘어가요. 그러면 직관적으로 통제가 안 되고, 다른 기술, 행정적인 기술이라든지, 내 눈 앞에 없는데 들어온 보고만을 가지고 마치 실제로 있는 것처럼 상상하는 기술 같은 게 필요해지는데, 저는 딱 단편과 장편의 느낌도 그런 것 같아요.
          단편은 전장이 다 보여요. 높은 곳에 올라가면 지휘를 할 수 있어요. 단편의 경우는 실제로 이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내 눈에 보이는 상황인데, 장편은 지평선 넘어가 있는, 그 너머까지 통제를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사실 내 눈에는 안 보여요. 보고만 들어오죠. 그런데 보고가 잘못 들어왔으면 판단을 잘못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잘못된 명령을 내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느낌이에요. 장편 쓸 때 퇴고할 때가 힘든 게,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범위, 눈에 딱 들어오는 범위만 가지고 이게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지평선 너머에 있는 다른 이야기 덩어리들이 몇 개가 더 있는데, 이거와의 관계를 다 고려해야 하는데, 내 눈에 들어오는 화면은 딱 여기밖에 없다는 답답함. 그러면서도 옮겨가면서 하기는 하는데, 그거 이상을 봐야 한다는. 단편을 쓸 때 통제되는 시야로 장편 전체를 비출 수는 있는데 여기를 비추고 있으면 다른 부분을 놓치고 있는 거죠. 항상.

 • 글이 글을 써요.

 ida 장편부터 쓰신 분의 의견은?
 askalai 아니, 저는 사실 들으면서, 정작 이 주제를 꺼내 놓고서는 ‘멍뎅’해지는 게. 저는 장편이랑 단편이랑 다르게 썼나 생각이 드네요.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장편이 있는데, ……쓰고 있다고 하기에는 몇 달 동안 못 쓰고 있지만, 차이가 무엇인가. (생각)
          저는 장편을 먼저 썼다고 해도 옴니버스 형이었고 지금 쓰는 것도 옴니버스 형인데, 오히려 느낌으로 치자면 저는 쭉 흐름을 따라가는 게 더 쉽고, 통제하는 게 더 힘든가 봐요. 저는 역시 순수하게 들어가야 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크다는 점을 빼면 단편이 훨씬 더 힘들거든요. 게다가 제대로 통제해 본 적이 거의 없는 느낌이고.
 ida 저도 사실 단편이 제일 힘들다고 생각해요. (일동 웃음) 단편이 제일 힘들고 그 다음이 중편이에요. 이게 길어질수록 어려운 부분은 분명히 있는데, 그만큼 글이 나를 도와준다고 해야 하나. (웃음)
 진아 그렇죠. 어느 순간 글이 나를 끌고 가는 느낌.
 배명훈 맞아요. 술이 술을 마시는 느낌이. (일동 웃음)
 ida 맞아요, 있어요.
 진아 그런데 이번에 pena님이 특집에 실을 단편 하나 없겠냐고, 그래서 하나 문득 떠올라서 마감까지 쓰겠다고 했는데, 이것도 그렇게 쓰고 있더라고요. 얼개를 잡고, 통제를 하면서. 이게 글 쓰는 방식이 달라진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두고 봐야 알 것 같아요.
 배명훈 전에 콜린님이 이 자리에서 잠깐 한 이야기가 있는데, 장편이라는 건 좀 옆길로도 새고 그래야 맛이 아니냐. 너무 이야기 전체 흐름에 모든 세부 이야기가 다 동원되는 게 아니라, 주인공이 좀 옆길로도 새서 딴 짓도 하다가 다시 돌아오고, 그게 맛인 것 같다고 하셨어요.
 진아 또 다른 의견이군요.
 ida 작가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에 따라 다를 것 같네요.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목적인가. 아니면 흐름을 끊지 않고 어디론가 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목적인가.
 askalai 사실 거장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들 작품도 여전히 단편처럼 장편을 쓰는 작가도 있고, 단편도 장편처럼 쓰는 작가가 있고.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요.

 • 콜린님을 불러! (1)

 askalai 사실은 너무 큰 주제는 아니냐는 생각이 드네요. 많이 써도 모르는 거긴 한데. 일단은 단편과 장편 쓰기 자체가 어떻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경험이 어쨌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걸로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ida 장편 오래 쓰신 분이 한 명 더 있어서 설명을 해 줘야 하는 건데.
 진아 그러니까. 우리 콜린님 부를까요. (일동 동의)
 askalai 다섯 명이면 너무 많아지지 않나 싶어서 안 불렀는데…….

 • 미리 분량을 알 수가 없어요.

 진아 그런데 저 그거 잘 모르겠어요. 사실 뭐가 단편이 되고 중편이 될지는 쓰기 전에는 모르는 것 같아요.
 ida 저도 그런 느낌 조금 있어요.
 진아 솔직히 장편도 다 쓰기 전에는 얘가 원고지 몇 매가 될지 전혀 예측이 안 돼요.
 배명훈 맞아요.
 ida 어쩌면 단편이 어려운 건 의뢰는 단편을 쓰라고 받았는데 (웃음) 쓰다 보니 이야기는 중편으로 빠져 버리는 거예요. 그런데 중편은 안 실어줘서 줄여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단편이 어려워지나요. (일동 웃음)
 askalai 전 분량은 딱 맞춰서 쓸 수 있어요. (뿌듯)
 진아 진짜?
 askalai 분량은 맞출 수 있는데, 그러면 얘기를 덜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는 게 문제죠 (웃음)
 ida 오, 어쨌든 분량을 맞출 수 있는 거잖아요.

 • 힘이 딸려요.

 askalai 아니, 그러니까, 오히려 제 경우의 문제는 뭐냐면 방금 말했듯이, 제가 단편을 쓴지…… 완성한지는 한참 됐지만, 계속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쓰다가 왜 무조건 집요하게 밀어붙여서 끝까지 가야 할 때가 있는데, 체력이 딸린다거나, 아, 여기서 끊어야지 하는 등등의 이유로 끊어버리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러면 안 되는데.    
 배명훈 맞아요. <갑자기 헤어졌어요>, 사람들이. 갑자기 ‘안녕~’그러면서. (일동 폭소)
 ida 배명훈님 갑자기 전쟁 일어나고, 갑자기 다 죽어버렸어. (웃음)
 진아 체력적으로도, 마지막에 기가 빨릴 때, 포기하거나 슬쩍 타협하고 싶은 욕망이 슬쩍 올라오는데, 그것을 누르면서 계속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도, 마지막까지, 그런 것도 힘든 것 같아요.
 askalai 그게 정말 힘든 것 같아요. 갈 데까지 가야 하는데 그걸 알면서 못 가겠어.
 배명훈 꼭 가야 하나요. 안 가도 돼요.
 askalai 그래요? (반색) 갑자기 이쪽에 쓱 붙고 싶은데.
 진아 저는 그러면 나중에 후회하더라고요.
 askalai 확실히 뭔가 덜한 느낌이 들잖아요.

 • 콜린님을 불러! (2)

 진아 그런데 이야기하다 보니 여기 장편을 많이 써 본 분이 없다는 게 계속 아쉽네요. (일동 웃음) 연락이나 해 볼까요. 의외로 홍대 근처 카페에 계실지도. 문자 한 번 때려 봐.
 askalai (주섬주섬 메시지 보내기) 한두 시간 걸리신다는데요.
 진아 날아오시라 그래요.(웃음)

그래서 2부에는 콜린님이 등장합니다! 기대하시라! 녹취록이 두 배다! 아싸!


 2. 현실적인 문제

 • 나를 작가라고 불러 줘요.

 배명훈 제가 장편과 단편이라는 주제를 들었을 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단편은 뭐고 장편은 뭘까가 아니라……. 장편을 써야 된다는 느낌들을 받고 있잖아요. 그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았어요. 계속 단편을 썼었는데, 우리들도. 어느 순간, 최근 몇 년 사이에 다들 ‘아, 우리도 장편을 써야 해’ 하고 생각이 바뀌는 시기가 오고. 앞으로는 단편 위주로 쓰는 게 아니라 장편 위주로 쓰다가 단편을 섞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진아 그게, 먼저 했던 인터뷰에서도 이 이야기가 나왔어요. 장편을 쓰게 된 계기가 뭐냐고 물어서요. pena님이 제 옛날 인터뷰를 가져왔는데, 거기에 ‘장편을 쓸 생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제가 ‘아니오’라고 답했더라고요. (모두 웃음) 너무나 당당하게. ‘누군가를 만났어’ 인터뷰 때였을 거예요.
          그런데 그게 현실적인 이유가 있더라고요. 제가 이번에 지우전 나오고, SF도서관에서 독자 만남도 하고, 굉장히 많은 축하도 받고, 좀 주위에서 저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것을 알게 모르게 느껴요. 아버지가 저를 ‘박 작가’, 이렇게 부르고, 친구들도 가끔 문자 보낼 때 ‘어이, 박 작가’, 이렇게 부르고, 오빠가 “야, 너 네이버 인물이랑 위키백과에 있더라.” 하는 거예요. 그게 언제부터 있었는데, 이제 봤다는 거잖아. (일동 웃음)
 askalai 뭔가 장편이 나와야 작가 대접을 하는 건가요.
 진아 단편을 아무리 많이 내도 말이죠. 저 단편 많이 냈잖아요. 아무리 모음집이었다고 해도. 그렇게 오래 써 왔는데도 그렇게 저를 작가라고 봐 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이제 장편이 나오니까 이제야 저를 작가라고 불러요. 뭔가 그렇게 되는 게 있더라고요. 이게 확 달라지는 지점이 생기더라고요.

 • 가족을 해결해 줘요.

 진아 집에서도 뭔가 나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는 걸 느끼고. 전에는 책이 나왔을 때……, 처음에는 좋아하셨죠. ‘누군가를 만났어’ 나왔을 때. 하지만 그 뒤에는 되게 심드렁해지는 거예요. 그건 제 책이라고 생각하시지를 않더라고요. 장편이 나오고 나서야 사람들이 나를 작가로 봐준다는 느낌도 있고. 가족들 태도가 달라진 것도 조금 있고. 오빠가, (웃음) 책을 여벌로 가져와서, ‘누구에게’라고 안 쓰고 그냥 사인하라고. (일동 웃음)
 배명훈 백지수표다! (웃음)
 진아 하지만 오빠가 그렇게 내 책을 산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가족이 그렇게 내 책을 산 적이 없어요.
 배명훈 등단이 중요한 게, 사회적 인정보다 가족 내의 인정이 되게 중요한 거 같아요. (일동 공감의 웃음)
 진아 저희 집은 다들 아시겠지만, 다들 응원해주는 편이고 편안한 쪽이잖아요. 많이. 격려해주는 쪽이고. 근데 그 반응을 보니 ‘오래 참아 준 건가, 기다려 준 건가’ 싶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아, 이런 일에 이렇게 기뻐해 줄 수 있었다면 왜 진작 이걸(장편 쓰는 걸) 안 했을까 싶은.
 배명훈 그러니까, 가족을 어떻게 해결해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ida 가장 친밀한 사람들이 나를 지지하는가 아닌가가, 사실 이 일이 힘들고 어렵고, 버티기 힘든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가장 힘이 되기 때문에, 등단의 중요성은 사회적 지위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이 더 이상 방해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배명훈 예. 보통 사회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나도 사회에 관심 없고 사회도 나한테 뭐라고 하지 않거든요. 아, 전에 엄마가, 나보고 안돼 보인다고, 백수 같다고. 어디 출근하는 데도 없고. (웃음)
 askalai 역시, 책이 한 번 나오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요.
 배명훈 저는 지금은 신경 안 쓰는데, 좀 더 어렸을 때, 대학원 다녔을 때에는 그게 여전히 신경이 쓰였었죠. 엄마는 항상, ‘저거 그냥 저러다 말겠지, 취미로 하다 말겠지.’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고.
 askalai 그렇죠, 뭐. 저도 어찌어찌 합치면 번역을 10년을 했는데도, “집에만 있지 말고 어디 좀 나가라.”는 소리 안 들은 지는 몇 년 안 됐어요. 그냥 집에만 있는 것 자체가 보기 안 좋은가 봐요.

 • 나 일 하고 있어요.

 배명훈 아, 그런데 글을 쓴다고 해서 항상 타이핑만 하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뭔가 그냥 멍하게 있는 동안에도 뭔가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데. 놀고 있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생산하기 힘든 건데. 사실 결과물이 안 나오면 백수하고 구분이 안 돼요.
 진아 그런 것 같아요. 저 하루에 많이 써 봤자 원고지 2,30매거든요. 그게 하루 열 시간, 스무 시간 붙잡고 쓴 건 아니잖아요. 쓰는 데에는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지 않는데, 그 2, 30매를 쓴 다음에 파일을 닫고 다음날 그 분량을 뽑아내기까지 끝없이 저를 준비시키는 게 있는 거잖아요. 남은 시간 내내.
 askalai 하루 20매를 쓰는 게 사실 24시간 일하는 건데 말이죠.
 진아 그렇죠. 남은 시간 내내 ‘아, 오늘은 여기 고쳤으니 내일은 여기 고치고’ 하면서.
 askalai 자면서도 생각하고.
 진아 누워서도 옆에 메모지 놔두고. 그리고 다음날, 좋아, 그거야 하고 폭발시키고. 아주 천천히 가지만 그걸 반복하는 건데.
 배명훈 사실 글을 붙들고 고민을 안 하고 있어도 필요한 시간이잖아요.
 진아 예. 책상 앞에 앉아 있거나 침대에서 구르거나, 어차피 일은 머리가 하니까 몸은 편한데서 구르면 되거든요. 가릉이를 끌어안고 구르거나.
 ida 그러니까 일을 머릿속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하기 때문에, 현실 세계의 사람들이 보기에 놀고 있는 거군요.
 배명훈 그러니까, 그런 게 필요해요. 저는 동네 도서관 갈 때, 멀쩡한 사람이 낮에 다니면 뭔가 좀 눈치가 보여요.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닌데, 와서 이상한 책 보다 가고. 그렇다고 제가 먼저 “아, 저 작가거든요.” 이럴 수 없잖아요. (일동 폭소)
 진아 아, 저, 정말, 이 동네 오래 살았잖아요. 한 번은 마트 아주머니가 슬쩍 보더니, “뭐 해요?” 하고 물어보는 거예요. 되게 궁금했을 거예요. 딱 보니까 학생은 아니고. 직장인은 아닌 게. 뭔 술은 이리 자주 사가고. (일동 웃음) 도대체 이 아가씨는 뭐하는 아가씨일까.
 배명훈 그러니까, 낮에 동네 못 돌아다니겠어요. 뭔가 필요해요. ‘아, 이 사람 작가임’ 표시할 수 있는. 뭔가 있어야 하는데.
 ida 뱃지 달까요. 작가 뱃지.
 배명훈 저는 출판사에서 책 같은 걸 보내면, 제가 낮에 집에서 우편물을 받는 걸 알잖아요. (일동 웃음) 나중에 막 물어봐요. “뭐 하는 분이에요?”하고.
 진아 내 사진이 있는 책 포스터를, 집에 대문짝만하게 걸어 놓는 거야. (웃음)
 ida 더 누구냐고 물어볼 것 같아요. (웃음) “정말 뭐 하는 분이예요.” 하고.

 • 생존의 문제

 진아 아, 그런데 그렇게 낯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정말 농담처럼 하는 말이고, 이게 너무 불안정한 직업이라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나를 작가로 보아주느냐 않느냐의 문제는, 그 정도로 내가 인지도가 있다는 뜻이고, 다른 말로 하면 내가 글을 쓸 때마다 안정적인 출간을 보장받을 수 있느냐 마느냐를 결정짓는 문제잖아요. 하지만 이게 작가에게 가장 힘든 문제고. 심지어 작가들끼리도 진솔하게 말할 수가 없는 부분이에요. 왜냐하면, (잠깐 침 삼키기) 일단 다들 센 척 하는 게 있어요. (일동 대폭소, 박수.)
          그런데, 이런 부분, 자기가 힘들 때, 자기 작품을 걸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많지가 않고요. 두 번째는, 자기 약한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서 득 될 건 별로 없어요. 오히려 그게 문제가 될 경우가 많고. 세 번째는, 그래서 이야기했을 때 서로 뾰족한 대안은 있는가, 기분은 전환이 되지만.
 askalai 기분전환이 되지 않고 다 같이 가라앉을 수도 있어요. (웃음)
 진아 그럴 수도 있고. 그런 것 때문에 내가 작가인가 아닌가의 정체성 문제는 그 문제와 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글로 최소한의 생계는 이어갈 수 있는가. 아니면 최소한 안정적인 출간이라도 보장받을 수 있는가.

 • 고료는! 매수로!

 진아 외국 작가 중에 단편만 쓰는 사람이 있는데, 책도 정말 재미있었어요, ‘유부남이 사는 법’ 인가. 그 작가가 하는 말이, 단편이 장편보다 돈이 안 된다고 누가 그러느냐고, 통계 내 본 적이 있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장편을 1400매 써서 받은 원고료와, 단편을 1400매만큼 팔아서 받은 원고료를 비교하면, 단편이 의외로 쏠쏠할 수도 있거든요.
 askalai 팔 곳만 있다면. 지면만 있다면.
 배명훈 다 팔리기만 한다면.
 진아 솔직히 계속 나오는 이야기인데. 번역가는 몸값이 꾸준히 올라요. 어느 정도 상한선은 있지만. 그런 표정을 당신이 지을 필요는 없어.(askalai를 보고) 당신한테 뭐라 그러는 건 아냐. 뜨끔해서는. (일동 웃음)(askalai님은 번역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창작이 같은 원고지 매수로 더 돈이 안 된다는 게 정말.
 askalai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데.
 진아 솔직히 초판의 선인세는 원고지 매수로 줘야 한다고 생각해.
 askalai 사실 원래 다른 나라 같은 경우는 단어 당 원고료 주는 거에 더해서 인세, 이런 식으로 계약하기도 하죠. 물론 처음에 잘 못 나가는 작가는 그렇게 못하지만. 정말 초판 인세는 너무 작아요.
 진아 출판계가 전반적으로 어렵다고 하는데, 외국 책 판권료는 단가가 계속 올라가고 있거든요. 그 단가는 계속 경쟁해서 올리면서.
 askalai 그게 힘들어지면 여기로 돌아오는 게(국내로 다시 눈을 돌리는 게) 수익이 날 텐데 하는 생각은 드는데. 검증된 것만 하겠다, 올인하겠다로 가는 전형적인 생각.
 진아 그런데 판권료를 그 정도로 지불하고 홍보비까지 어쩌고 하면, 억 단위로 지불하면 100만부 이상 팔리지 않으면 기본도 안 되는데. 그런데 그건 손해 봐도 계속해요. 그런데 국내작가는 몇 십만 원도 손해를 안 보려고 하는 거예요. 솔직히 인세 받는 게 몇 백만 원이나 된다고, 얼마 안 되잖아요. 1,2천씩 받는 게 아니잖아요. 완전히 이중 잣대인 거죠. 이건 사회적인 지위, 명예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문제. 그러니까 꼭 먹고 사는 문제의 생존이 아니라, 내가 계속 작가일 수 있게, 내가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최소한의 무엇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거죠.
 배명훈 그런데 저는 밥그릇 문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askalai 물론 제일 중요하죠.
 배명훈 엄청 많이 달라는 게 아닌 이상 기본적인 것 해 달라고 하는 건데. 돈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그쪽은(출판사는) 돈 문제 계속 이야기하면서 이쪽은(작가는) 돈 문제 이야기 못 하게 하는 체제예요, 이상하게. 전반적으로, 뭔가 원고 청탁을 했을 때 돈을 얼마를 줄게요 라는 이야기를 안 해요. 물어봐야 해요.
 진아 중요한 이야기인데 무슨 민망한 이야기처럼. 이건 진짜 생존의 문제인데요. 한 사람의 생존을 떠나서 한 작가의, 한 존재의 생존.
 ida 한 작가의 생존을 넘어서 문학계 전체의 생존과 관계되는 문제라고 봐요. 작가가 없다, 문학 콘텐츠가 없다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 정작 한 사람도 살려주지 않아요. 죽어라고 하겠다는 사람조차도 살아남기 힘든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말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진아 정말, 초판은 원고지 매수대로 좀 달라고요. 우리도 좀 살자! 저는 정말 글만 쓰겠다고 작정하고, 일 안 하고 썼는데, 큰 적자를 봤죠. 그 일 년 치의 생활비를 생각하면.


 askalai 일 년 장편 써서 받을 수 있는 돈이 정말 말도 안 되는 금액이라.
 진아 저도 이 길을 계속 걸어왔잖아요. 나름 직업이라고 치면, 이 직업을 계속 해서 이 정도 왔을 때, 보통 우리 또래에 계속 한 길을 걸으며 직장을 다닌 친구들을 생각하면, 내 일년 연봉이 그 애들 한 달 월급도 안 되는데. 1년 고생해서.
        (일동 침묵)
 ida 역시 숙연해졌어요.
 배명훈 그 생각을 안 해 주는 것 같아요. 이 작가들이 생산해내는 물건이 시장에서 이 가격에 팔릴 거다, 그것만 갖고 계속 생각하는데, 이 사람이 이거 안 하고 취직했으면 얼마를 벌 수 있었을 텐데, 그걸 버리고 이걸 하고 있다는 것도 좀 생각은 해야 할 것 같아요.
 askalai 왠지 예술가니까 힘들고 굶으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당연하다는 태도 같은 것도 있죠.
 진아 몇몇 예술가들이 안 좋은 선례를 남겼어요. 그 상황에서 성공한 사람들 좀 때려 줘야 해요. (웃음)
 askalai 원고료 이야기 잘 안 하는 이유 중에 그것도 있어요. 우리 윗세대가 돈 문제 먼저 꺼내면 화내는 분들이 있거든요. 거기에 익숙해져서 편집자들도 먼저 이야기 꺼내는 것 조심스러워하는 면도 있어요.
 배명훈 근데 돈 이야기 먼저 안 꺼내 놓았으면 좀 두둑하게 찔러주든가. (일동 웃음) 안 꺼내놓고 나중에 쥐꼬리만큼 넣어주면서 날짜도 안 지키고. 또 그때 되면 화나잖아요. 그때 되면 아, 처음에 이야기했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askalai 그런 것 많이 슬퍼요. 저는 번역도 우습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확실히 번역은 단순히 돈만의 조건이 아니라, 조건을 점점 개선할 수 있거든요.
 진아 그러니까.(흥분)
 askalai 왜 작가는 그게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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