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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서는 이 달부터 가능한 격달로 주목할 만한 작가를 선정해 인터뷰를 진행하려 합니다. 오래도록 좋은 글을 써왔는데 우리나라에서 장르 단편을 쓴다는 특성상 주목을 받기 힘들었던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작품 세계를 들여다봅니다.
‘이 작가를 주목하라’는 한두 달 간격으로 올라옵니다. 첫 작가는 작년 5월 첫 번째 작품집인 [우주화]를 출간한 권민정입니다. 이후 존칭은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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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5월에 온우주에서 출간한 우주화 표지


권민정, 거울 필명 가는달과는 세기말인 1990년대 후반부터 알고 지냈으니 얼추 20년 가까이 되어간다. 오래도록 알아온 사이라는 이유로 조금 편하게 부르자면, 민정은 같이 어울리며 글을 써온 지인들 사이에서 가장 어렸다. 나이는 어리지만 속이 깊고, 때로 나이답지 않은 말을 툭툭 뱉어내, 농담처럼 속에 할아버지가 있다는 이야기가 오가곤 했다.
민정은 ‘무서운 신예’라는 말처럼 우리 중에 가장 빨리 성장했고, 당시 단편 좀 쓴다는 사람은 누구나 응모했던 ‘이매진 장르문학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그 후 민정은 글쓰기에 전보다 더 열을 올리는 듯 해 보였다. 하지만 웹진 거울이 만들어지고 필진으로 참여한 무렵은 글쓰기에서 멀어져 몇 년 간 신작을 쓰지 않았다. 
나는 10대 때부터 창작을 하는 모임에 하나씩은 꼭 가입해 있었다. 돌이켜봐도 범상치 않은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습작 시기에 눈에 띄는 글을 쓰지 못했고, 새 글을 게시판에 올릴 때마다 주목받는 이들이 부러웠다.
세월이 흐르자 뜻밖에도 당시 빛났던 사람들은 다른 길로 갔고, 그 때 눈에 띄지 않았던 이들이 꾸준히 이 길을 걸으며 성과를 냈다. 결국 진짜 재능은 열정과 끈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이 타고난 걸 부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이따금 그 재능을 뒤로 하고 다른 길로 가는 사람들을 보며 아쉬웠다. 민정이 새 글을 쓰지 않기 시작한 몇 년간 내 마음이 그랬다. 아쉽다, 잘 쓰던 이였는데…….
그런데 거기서 다시 또 시간이 흐르자, 결국 내면의 목소리를 이기지 못하고 돌아와 글을 쓰는 이들이 생겼다. 작가는 작가로 태어난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갈고 닦으면 빛나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된다. 결국 돌아와 신작을 쓰며 작품집을 출간한 권민정처럼 말이다.
권민정은 다채로운 글을 쓰는 작가다. 현을 타는 악사가 침묵을 찾아 온 세상을 헤맨 묵직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인 ‘나하의 거울’부터 수많은 생을 오롯이 한 사람을 사랑하며 같은 자리를 맴돈 아린 사랑 이야기 ‘윤회의 끝’이나 깜찍하고 풍자적인 ‘인간은 길들여지는 것을 좋아한다’, ‘임금님의 이름이 길고 길고 긴 이유’ 같은 엽편까지 다양한 글을 쓴다.

우린 2015년 2월 3일 저녁 온라인 메신저에서 만나 권민정의 첫 번째 작품집 [우주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보다 오래 민정을 알고 지냈으며, [우주화]의 담당 편집자이자 거울 편집장인 pena가 찬조출연했다.
이후 질문자는 박, 작가인 권민정은 권, 거울 편집장은 pena로 표기한다.



살아남은 작품의 기준, 저장과 백업의 중요성

이번 인터뷰는 첫 작품집인 [우주화]를 중심으로 진행했다. [우주화]는 온우주 단편선 11번째이다. 앞으로 진행할 인터뷰도 온우주 단편선을 중심으로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거울은 단편 중심 웹진이다. 거의 대부분의 장르소설 사이트가 장편을 중심으로 하고, 단편은 게시판 하나에 곁다리 정도로 다룰 때 거울은 단편을 주로 쓰는 작가들로 시작해, 작가들에게 개별 게시판을 줬을 만큼 단편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지금은 사이트 관리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카테고리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단편을 중요시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그렇게 꾸준히 5년을 넘기자 몇몇 출판사에서 공동단편선을 출간했고, 또 그렇게 10년이 될 무렵 아예 작가 단편선을 출간하는 출판사가 생겼다. 바로 온우주다. 현재까지 출간된 온우주 단편선 14권 중 13권이 거울 필진의 작품집이다. 어쩌면 거울이 있었기에 가능한 기획이었다. 그러느니 만큼 온우주에서 단편선이 나올 무렵부터 해당 작가와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어 거울에 게재해야겠다는 기획을 마음에 두었지만 장편을 쓰며 다른 일에 시간을 쏟기 쉽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시작하게 되었다.
판타지 장편 소설은 시간이 흐르며 여러 가지 틀이 생겼고, 그 틀에 맞는 작가와 그 틀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쓰고 읽는 장르가 되어 갔다. 하지만 고정된 틀은 자칫 비슷한 작품의 재생산으로 가게 될 우려가 있다. 단편은 장편과 다른 흐름으로 움직이며 틀에서 좀 더 자유롭게 틀을 깨고, 부수며, 가지고 놀 수 있다. 물론 장편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만, 많은 공력을 기울여야 완성할 수 있는 장편보다 한 순간 몰입으로 다양한 작품 생산이 가능해진다. 바로 이런 다양하고 풍성한 글을 쓰는 작가 권민정을 만났다.

박 : 먼저 많이 늦었지만 출간 축하해요.
권 : 감사합니다ㅎㅎㅎ

박 : 이제껏 많은 글을 썼잖아요. 작품집 [우주화]에 수록한 글을 선별한 기준이 있다면 뭘까요?
권 : 일단 제가 컴퓨터 하드를 두 번 날려먹어서 복구 가능하게 남아있던 것이 제일 첫 기준이었고요. (눈물)
박 : 네, 작가 후기에서 봤어요. (눈물2)
권 : 그 다음으로는 분량을 채울수 있을까가 (... 같은 대화방에 있는 온우주 담당 편집자 눈치를 흘끔) 마지막으로 그래도 너무 심하게 못 쓴 건 뺐습니다. ...

여담이지만, 인터뷰와 함께 [우주화] 엮은이의 말을 넣기로 했는데, 파일이 없어 책을 보고 타이핑을 해야 했다. 물론 권민정 작가의 잘못은 아니지만 어쩐지 “작가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 라고 하고 싶어지는 대목이었다.

박 : 혹시 복구하지 못한 작품 중, 넣고 싶었던 게 있나요? 아쉬운 글이 있다면요?
권 : 작은 나닌, 이 있었는데 꽤 많이 고치려고 애쓰고 있다가 날아가 버리는 바람에 ㅎㅎ
박 : 아, 작은 나닌. 이매진에 실렸던 글이죠?
권 : 네.

이매진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데 190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있던 장르문학 웹진이었다.

박 : [우주화]에서 제일 첫 작품인 ‘나하의 거울’이 이매진 장르문학상 대상수상작이었잖아요. 작은 나닌이 그 후에 이매진에 실렸던 거니까, 공모전 상금을 제외하면, 첫 고료를 받은 원고였을 것 같은데…….
권 : 맞아요……. (자판 너머로 격하게 웃습 ㅠㅠ)
박 : 저도 기억나네요. 저는 그 때 가작이라 문화상품권으로 받아서 저도 그 때 이매진에 실었던 글이 첫 고료를 받은 글이었죠. *아련* 작은 나닌 외에는 이매진에 실은 글이 없었나요?
권 : 제가 생산성이 매우 떨어지는 사람이라 ...
박 : 이후 이매진이 정기 업데이트가 아니라 글이 올라올 때마다 업데이트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그러다 어느 날 사라졌죠.
권 : 저보다는 아마 진아님이 더 잘 아실 거예요. 
박 : 저도 기억이 가물합니다;;;; 저는 두 편 정도 실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확신은 안 서네요.
권 : 네. 저보다 많이 실으셨습니다!
박 : 권민정님은 한 편, 저는 두 편이면 무려 두 배인가요. ^^

이매진 장르문학공모전은 1999년에 열렸다. 위에 썼다시피 당시 하이텔 환타지 동호회 회원들뿐만 아니라 단편을 쓴다는 사람들은 다 응모했었다. 언젠가 한 번 찾아보니 그 때는 몰랐는데 당시 응모했던 분들의 상당수가 거울 필진으로 합류해 있었다. 이 길은 아직 좁고 험하지만 결국 쓰는 사람은 계속 쓴다. 당시 내가 응모한 글은 ‘어른들은 왜 커피를 마시지?’로 판타지 부문 가작을 받았다. 거울 필진 김이환 님도 수상했던 걸로 기억한다.



오랜 기다림과 수확, 멈추지 않는 사람들

박 : 작품집에서 나하의 거울을 보며 굉장히 반가웠어요. 나하의 거울이 그 때 같이 했던 ‘세상의 모든 테마’ 라는 글쓰기 모임에서 쓴 글이잖아요. 
권 : 네.

pena, 민정, 몇몇 지인이 모여 ‘세상의 모든 테마’라는 글쓰기 모임을 했다. 그 때 민정이 당시 표현으로 ‘물어온’ 책이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으로, 그 책에 있는 플롯으로 돌아가며 글쓰기를 했었다. 돌이켜봐도 글쓰기 책 중에서 실질적이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었지 싶다.

박 : 나하의 거울이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에서 ‘추구’라는 플롯으로 쓴 글이었어요. 근데 지금 보니 상당히 재밌네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셋 다 그 때 ‘추구’ 플롯으로 쓴 글이 각기 의미 있는 글이 되어주었잖아요. 나하의 거울은 이매진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pena : 전 유일한 출간작이죠. 시작 출판사에서 나온 환상문학단편선에 실린 ‘용의 비늘’이었어요.
박 : 저는 신체의 조합이었고요. 신체의 조합은 (역시 온우주에서 출간했던) 작품집에서는 너무 튀어 뺐지만, 제 단편 중 제일 좋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고. 저도 좋아합니다. 다시 못 쓸 글이라서 그런 것도 있고요. 거울에서 낸 개인지에서는 표제로 할 만큼 애착이 있던 글이죠.

이매진 장르문학 공모전은 1999년이었다. 그 때 글을 쓰던 이들이 결국 작품집을 내고, 그 때 수상작이 작품집에 묶여 나온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동안 멈추지 않고 꾸준히 글을 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괜히 아련한 기분이 밀려왔다.

박 : 작품집으로 모으며 수정은 많이 했나요? 전 엄청 수정해 편집자를 곤란하게 했죠. pdf 단계에서 쪽수를 넘기는 수정을 하지 않나;;;
권 : 그 정도는 아닐 거 같고……. 컴퓨터가 날아간 여파로 프린트해두었거나 책으로 만들어두었던 글들을 전부 새로 타이핑하는 삽질을 하면서 소소하게 수정을 했어요.
박 : 저런;; 애도를;;;
권 : 다행이죠 ...
박 : 그렇긴 하네요. 복구 못한 글들이 있으니…….

박: 굳이 애착이 가는 글을 뽑자면 어떤 글일까요?
권 : 제일 좋아하는 글은 엄마는 고양이야, 입니다. 고양이가 두 마리나 나오니까요.
박 : 아, 그 글 읽으며 빵 터졌어요. 그 글이 실제 키우는 고양이의 입장에서 한 번 상상해본 거죠?
권 : 네. 하지만 우리집의 크고 뚱뚱한 고양이 말고 최대한 작고 귀여운 고양이라고 상상하면서 썼습니다. ... 녀석들은 아직도 작은 줄 착각하고 있지만 ... 영원히 끝나지 않을 착각이지만 ...
박 : 뭐, 사람보단 작으니까요. 키득키득
권 : 그렇죠.


민정 고양이 사진-밝게.jpg


▲ 권민정이 키우는 고양이 두 마리 중 하나, 연비의 수줍은 두 발 사진.





이 작가의 작품이 만화화 되었다면…….

박 : 온우주 단편선은 매번 한 작품을 만화화했는데, 아쉽게도 11번째 노래하는 숲부터 만화가 빠졌지요. 만화가 빠진 게 아쉽지는 않았나요?
권 : 만화화가 되었으면 재미있었겠지만 되지 않았다고 해서 아쉽지는 않았어요.

나는 아쉬웠다. 우주화를 만화화하거나 일러스트에 글이 가미된 형태로 구현해봤다면 아름다운 작품이 나올 것 같았다. 혹은 ‘인간은 길들여지는 것을 좋아한다’에서 ‘쪼만한’ 인간이 거대한 드래곤을 상대로 바늘 같은 칼을 쥐고 악악대는 장면을 그렸다면 재밌을 것 같았다.




표제작은…….

박 : 표제작을 '우주화'로 하셨는데요.
권 : 저는 ‘K씨의 개인사정으로 이번 호의 연재는 쉽니다’ 가 어떨까를 피력해보았지만 거절당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 편집자가 작품들 하나하나를 우주화처럼 생각해서 표제로 하면 어떻겠느냐, 제안하셔서 전문가의 혜안을 믿었습니다. (당당)
박 : 작품들 하나하나를 우주화처럼 생각한다는 게 어떤 뜻인지 좀 더 자세히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권 : 글 속에 나오는 우주화, 는 만남이나 부딪힘으로 만들어지는 가능성이랄까, 세계랄까 그런 이미지로 썼으니까요. 글이라는 것도 글과 읽는 사람이 만나서 그 순간에 만들어지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편집자가 부연설명을 했다.

pena : 더 단순하게는 우주화가 평행우주 다중우주에서 말하는 세계 각각을 가리킬 수도 있겠다 싶어 제목으로 함축적이고 작품 무게도 좋아서 추천했어요. K 씨... 는 무게가...
권 : 라고 편집자가 이야기하시네요!
박 : 그럼 K씨로 하고 싶었던 작가의 이유는?!
권 : K씨가 부러워서요! ... ㅋㅋㅋ
박 : 그렇기도 했겠고 그냥 어림짐작으로 말해보자면, 진지한 작품들 중에서 고르기가 쑥스러웠던 건 아닐까, 가볍고 유쾌한 엽편에서 보이는 그런 면모가 그 작품을 고르게 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권 : 솔직하게 말해서 (응?)  작품들이 방향성이 있다면 있지만 없다면 또 이런 중구난방이 없달까 (....) 
박 : 네, 작품집 [우주화]에는 진지하고 무게 있는 글과 가벼운 옆편들이 섞여있죠. 좋게 말하면 다채롭고. ^^
권 : 그래서 아예 도피의 끝을 달리는 K씨나 (...)
박 : 도피의 끝이라……. 뭔가 적절한 표현인 듯. ^^
권 : 우주화는 전체적으로 포괄할 수 있어서 좋은 표제였다고 생각해요. 





작가가 첫 작품집을 내고 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박 : ‘나하의 거울’이 시작 [한국환상문학단편선]에 실리긴 했는데, [우주화]가 오롯이 본인의 글만 실린 첫 작품집이잖아요. 책을 준비하는 과정이랄까 책이 나온 후 기분이랄까 그런 이야기를 해주세요. 
권 : 사실 놀라울 정도로 아무렇지 않아서(...) 지금도 실감이 별로 없습니다.(...) 단지 명절에 친척집에 가는 게 좀 무섭네요.
박 : 친척들 반응이 뜨거웠나봐요? 
권 : 제가 부끄러운 걸 못 견디기 때문에 최대한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나이 드신 분들 입장에서 책을 낸다는 건 굉장한 일이라서 ...
박 : 나이 들지 않은 사람 입장에서도 그렇습니다. ^^
권 : 책이 나오는데 아무 말도 안했다고 혼났습니다 ...
박 : 저런;; 이번 설에 다들 잔뜩 기대하고 있겠네요.. ^^
권 : 진지하게 어디 짧게 여행이라도 다녀올까하구요 ...
박 : 그랬다 추석에 더 큰 난리를 겪을 지도요.
권 : 추석쯤 되면 누군가의 다른 뉴스가 또 있겠죠. 있을 거야....
박 : 다른 뉴스가 있는 사람이, 민정 책으로 화제를 돌리고자, 벼르고 나올지도 모릅니다. *진지*

문득 예전에 읽은 우주비행사의 일화가 생각났다. 우주비행사들이 모여 사는 기지에 살던 아이가 학교에 갔다. 같은 반 아이가 자기 아버지가 보안관이라고 자랑하자 아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좋겠다, 우리 아버지는 그냥 우주비행사야.”
내 경우 인간관계의 80%가 작가나 출판관계자다. 그러다보니 굴러다니는(?) 게 작가인데, 가끔 다른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작가라는 점을 신기하게 여긴다. 나는 그래서 신기한 기분이 든다. 많이 받는 질문이 ‘어떤 작가’인가 이기도 하다. 내게는 놀랍게도(?) ‘소설가’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 방송작가나 드라마작가를 떠올린다.




작가에게 이 질문은 피해주세요.

권 : 다른 건 덜 부끄럽거나 안 부끄러운데 글 관련해서는 어쩔 수 없이 많이 부끄러운 거 같아요. 정말 부끄러움 많을 때 시작하기도 했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식으로든 드러날 수밖에 없으니까....
박 : 제가 권민정님 글을 읽을 때는 작가와 인물/이야기 간 거리가 그렇게 짧아 보이지 않았는데 본인이 느끼기에는 짧은 편인가요?
권 : 음. 어려운 질문이네요. (잠시 사이를 두고) 굳이 거리감의 문제만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글에는 작가의 내면이나 성격, 생각이 변형된 형태로든 어떤 형태로든 묻어날 수밖에 없는 거니까……. 거리를 최대한 벌리고 싶어서 장르 소설을 쓰는데 그것조차도 뒤돌아보니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 내가 바라는 이야기…… 니까 말이죠, ^^
박 : 거리를 벌리고 싶어서 장르소설을 쓴다, 라는 말도 인상적이네요.
권 : 적어도 이거 네가 겪은 이야기냐, 진짜로 있는 일이냐는 질문을 받지 않을 수 있잖아요 ...
박 : 장르소설을 써도 그런 질문 받았습니다만;;;
: 역시 용 정도는 등장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
박 : 드래곤 레어에서 얼마 받고 일했는지는 안 물어보겠죠. ㅋㅋ (‘인간은 길들여지는 것을 좋아한다, 를 읽은 사람만 알 이야기)
권 : 책에는 실리지 않은 글인데, 서글픔, 을 썼을때 역시 용이 나오지 않아서(...) 네 얘기라고 생각했다, 라는 얘길 들었네요.

‘서글픔’에는 바지락 칼국수를 좋아하지 않는 주인공이, 지인이 가자고 할 때만 가는데, 그 때마다 자기 바지락에서 모래가 나온 이야기가 나온다.

박 : 본인의 이야기가 아니었나요?
권 : 물론, 심각하게 돌을 씹는 건 제 이야기였지만 물어본 포인트는 다른 데였거든요.
박 : 어떤 포인트였는데요?
권 : 애인과 돌솥밥을 먹었느냐, 라는 포인트였습니다.(...)
박 : 그래서 돌솥밥은 먹었나요? 키득
권 : 아뇨. 
박 : 상당히 부담스러운 질문 같아요. 직접 경험이냐, 는. 특히 등장인물들이 연애를 하거나 할 때 그런 질문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pena : 글을 안 써본 사람일수록, 작가한테 "이거 네가 겪은 일이냐?"라는 질문을 쉽게 하는 것 같아요.
권 : 누가 하든 부담스러운 질문인 거 같아요. 그 다음으로 부담스러웠던 질문은 나하의 거울에 나오는 설화가 진짜로 있는 설화냐는 것이었죠
박 : 그 질문은 왜 부담스러워요?
권 : 그런 거 없으니까요. 가짠데, 거짓말(...)
박 : 그만큼 그럴싸하게 잘 만든 설화라서 그런가 봐요.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하면 뭐라 그래요? 
권 : 그랬더니 진지하게 신라시대나 진짜 있는 시대를 끌어와 붙이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들어서……. 당시의 저는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ㅠㅠ ...
박 : 네, 자기 방식이 있고, 자기 이야기가 있는데, 진짜 좋은 이야깃거리가 있는데, 라는 조언(?) 때로 부담스럽죠.
권 : 이건 거짓말이다! 라고 대놓고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 장르를 쓰는데 섬세하게 남을 속이기 위한 조언을 들으니 괴로웠습니다 ...
박 : 윗말은 뭔가 권민정다운 말이면서 재밌네요. 장르를 쓰는 권민정만의 이유, 일까요.
권 : ㅎㅎㅎ

박 : 서글픔, 은 어쩌다 빠졌어요?
권 : 제일 색깔이 달라서요.
pena : 허구이긴 한데 환상이 거의 안 느껴져서…….
박 : 그러고 보니 [우주화] 수록작은 무거운 이야기든, 가볍고 유쾌한 이야기든, 어쨌든 다 장르인데 서글픔, 은 다르네요.




부담은 줄이고, 힘은 빼고…….

박 : 꽤 오래 글을 쓰지 않았잖아요. 거울 기준으로 2006년부터 2011년까지는 아예 글이 없는데, 그 전에 올린 것들도 예전에 쓴 글들을 다시 올린 글이 많고요. 그러다 2012년부터 다시 조금씩 글을 보게 된 듯해요. 글을 쓰지 않았던 이유랄까 그런 게 있을까요.
권 : 사실 저는 글을 친구 따라 강남가면서 쓰기 시작했어요.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쓰는 멋진 언니들이랑 친해지고 싶어서요 ... ㅋㅋㅋ
그나마도 생산성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 고민이 많았어요. 어릴 때는 스스로에게 좀 더 결벽하기도 하고 글 쓰는 건 즐겁다기보다는 늘 고통스러운 작업이라서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다른 거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서 멀어졌던 거 같아요. 그러다가 이제는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려고 노력하면서 할 수 있으면 하고 아니면 말고. 좀 편해져서 조금씩 되는 만큼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글을 올리게 된 거랄까, 그런 거구요.
박 : 첫 책이 나오고 어떻게 보면 작가로 시작점에 섰다고 할 수도 있잖아요. 뭔가 더 적극적으로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드나요? 아니면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지 않고 아까 말한 대로 할 수 있으면 쓰는 그런 느낌으로?
권 : 멀어져는 있었어도 쓰고 싶다고 생각한건 늘 있었고 일단 그것들부터 천천히 쓰려고요.
박 : 오, 그럼 일간 신작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
권 :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노력하겠습니다(큽)

마쳐야할 시간이 되었다. 긴 시간 알고 지냈지만 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해본 적은 거의 없던 듯 했고, 역시 권민정은 재미있는 작가라는 생각을 했다.


박 : [우주화]를 읽을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
권 : ..... ㅠㅠ 계십니까! 잡상인은 아닌데 여기 책이 한권 ....


거울 인터뷰 마지막 질문은 대부분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이번부터 질문을 바꿨다. 거울 인터뷰 ‘이 작가를 주목하라’ 기획의 마지막질문을 던졌다.


박 : 권민정에게 글쓰기란?
권 : (한참을 고민하다) 많은 것이 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타자치는 행위가 된 것.

글쓰기에 대해 부끄러움이 많은 권민정 식의 대답이리라. 이 부끄러움 많은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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