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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6월 거울 단편 단평

2004.06.25 22:3906.25

이리스(earth_sea@hanmail.net)



   0. 들어가며

  지난달의 단평을 올리며 몹시도 마음을 졸였다. 글을 올리는 분들이 혹시나 불쾌할 내용이 있지나 않나 해서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작가분들 중에 단평을 읽으시는 분이 적은 모양이다. 6월의 단편들은 그래서 일주일 정도가 지난 후에야 찬찬히 읽기 시작할 수 있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6월의 글이 5월의 글들에 비해 대체적으로 고르고 안정적이었다는 것과, 대부분이 ‘사랑’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시기적으로 시작하면 풋사랑에서 출발하여 가정을 이룬 후, 두 사람의 아이가 태어난 시점까지 있으니 6월호는 사랑의 여러 가지 이야기라고 묶어도 될 듯도 싶다. 예외적으로 볼 수 있는 글이 둘, 원혼택시(무한슬픔)와 안개속에서(askalai)다. 이 중에서 모든 글을 살피는 것은 이번에도 역량이 부족하여 힘들 듯하고, 몇 가지 점들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1. 풋사랑 이야기 - 그림(unica)

  지난달에도 unica 님의 글을 가장 먼저 살폈는데, 이번에도 우연히 그리 되었다. 여(余)의 단평을 보고 나서 글을 쓰셨을 리도 없겠지만 무척 관심을 가지고 읽은 글이다. 지인 중에 한 사람이 작가님의 글에 대하여 ‘계속 발전해 가는 분인데다가, 굉장히 포용적이라서 좋아해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과연 그렇다. 5월의 글과 이번 글을 비교하면 각자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여로서는 이번 글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동화풍인 아기자기한 이야기인데다가 전체적으로 기승전결이 확실하게, 깔끔한 마무리를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성인이 되는 것’은 사랑에 대해서 알게 되는 순간이라고 한다. 이 점이 다음에 이야기할 ‘어른들은 왜 커피를 마시지’와 신선한 대비였다. 후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어른들은…’에서의 16세가 되는 생일은 이 글에서의 성인이 되는 순간과 같은 맥락을 가진다. 사랑에 대해서 알게 되는 그 순간을 겪지 못한 미숙한 외형의 아이들은 끝내 어린아이의 취급을 받고, 스스로의 몸을 지키기도 쉽지 않다. ‘어른들은…’에서 16세의 생일을 지난 아이들이 생일이 되지 않은 아이들과 별개의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하고 어린이들을 배척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의 성인이 되는 순간이란, ‘어른들은…’에서의 16세 생일- 어른들이 마시는 커피를 처음 마시게 되는 순간-과 달리 다분히 정서적이며, 또한 동화적이다. 소녀인 폰 크시엘이 선배를 좋아하면서도 성인이 되지 못하고, 선배가 이미 연인이 있었을 때에 성인이 되지 못했던 것처럼 사람을 좋아한다고 느끼는 것만으로는 성인이 될 수 없다는 조건도 로맨틱함을 위한 양념처럼 느껴질 정도다.

  우연처럼 만난 소년 소녀 (성인의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부장은 글쎄, 여의 눈으로는 아무리 봐도 소년이다.)가 서로를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의 풋풋한 이야기. 사랑 시리즈의 시작으로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글도 작가의 전작과 같이 비문들이 자주 눈에 띄어 흐름을 끊어놓는다. 깔끔하고 잘 읽히는 이야기에 양념을 조금 더했다면 맛깔스러워졌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다. 대사로만 슬쩍 언급되고 마는 두 사람 사거의 과거지사를 폰 크시엘 아가씨의 내적 독백으로라도 건드려 주는 것은 어땠을까? 후반부에 나타나는 두 사람 사이의 일이 조금 낯설게 느껴지니 말이다.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의 남자에게 그림을 달라고 졸랐던 일이라면 분명 기억에도 생생히 남아 있지 않을까. 만약 그것이 소년의 착각이었다면 그런 해석이라도 달아 주는 것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퇴고를 좀 더 했더라면 중언부언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주어가 없어진다거나 하는 문장들도 없앨 수 있었을 것이다. 대개 이야기꾼들이란 자신이 말할 것에 도취되어 종종 문장의 맥락을 잃고는 한다. 하지만 퇴고는 그렇게 뜨거운 가슴을 식히고 차가운 이성으로 벼리는 칼날이어야 한다.

  ‘말도 못하던 이국 소녀에게 자신의 연인과 헤어지는 장면을 들킨 나니까‘ 이것대로라면 엘라는 이국 소녀가 아니고, 다른 이국 소녀에게 헤어지는 장면을 들킨 주체가 되어버린다. 물론 내용상으로라면 반대가 될 것이다. ’말도 못하는 이국 소녀에게 연인과 헤어지는 장면을 들킨 것을 벌써 잊었을 리가 없다. 그런데 그 소녀가 지금 후배로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의 맥락이 아닐까.

  그 바로 뒷 문장도 마찬가지다. ’너무나도 잘 어울리던 그들 둘이어서, 항상 웃으면서 그 둘의 밀회를 아버지의 장원에서 감히 시도하는 모습을 그냥 못 본 척 했었으니까.‘ 우리말에서라면 ’그 둘이 너무나도 잘 어울려서, 감히 아버지의 장원에서 밀회를 시도하는 것도 그냥 못 본 척 해줬었으니까.‘ 가 자연스럽다. 영어의 번역 문장에서 종종 나오는 표현이지만, 자연스러운 표현은 아니다.

  그 뒤쪽에 있는 문장 ’나중에 안 일이지만, 신입 부원을 맡게 된다면 자신들도 같이 파트너로서 제출해야 하는 작품이 느는 것이 싫어서 죄다 그의 물감으로 바꾸어놓았다고 했다는 것을 들었다‘의 경우에는 주어도 없지만 문장의 호응도 맞지 않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은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라든가 ’나중에 알았지만‘ 쪽이 자연스럽지만 문제는 그 호응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었다.‘ 가 되든지, ’나중에 선배들로부터 ~했다는 것을 들었다.‘ 가 되는 것이 맞다.

  작가는 종종 긴 문장에서 이런 비문을 만드는 실수를 하곤 하는데, 부디 문장을 조금 간결히 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문장이 길어질수록 뜨겁게 달구어진 심장으로는 냉정하게 끝을 맺기 힘들어지니까. 그것이 힘들다면 좀 더 시간을 들여 찬찬히, 퇴고를 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음 글에서는 비문을 발견하지 않기를 바라며, 건필을 빈다.

   2. 고독에서 갈망하는 사랑 - 왜 어른들은 커피를 마시지(가연)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그림’과 ‘어른들은…’은 상당히 비교가 되는 글이다. 완전히 이곳과 다른 세계에서 펼쳐지는 것 같은 ‘그림’이지만, 그 안쪽에서 다루는 사랑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풋사랑과 거의 같은 형태다. 그러나 얼핏 보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와 달라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어른들은…’은 비틀린 설정으로 낯설은 상징들을 우리에게 태연히 쏟아내고 있다.

  이 글에서는 사랑 이전에 sex가 존재한다. 서로간의 신뢰라는 문제 이전에 sex로 시작되는 이 세계에서의 ‘성인식’은 곰곰이 생각해보면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걸 우리 세계의 sex와 동일시 하지 않고 보면 어떨까. ‘고독이 커피보다 쓰게 느껴질 때’ 사람들이 찾게 되는 정서적인 위안. 이 세계에서 ‘커피의 동반자’라는 것은 가장 고독할 때 손을 뻗는 상대다. 개인적으로는 16세가 된 순간, 고독의 의미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도 커피를 만나고, ‘고통’으로 시작되는 관계를 갖게 된다는 것은 유감스러웠지만.

  그러나 또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주인공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면서도 커피의 동반자를 만나지 못했던 것은 무슨 의미인가? 주인공이 동반자를 만난 것은 왜 하필이면 오빠를 잃고 가장 슬퍼했던 순간이었을까. 그 순간은 주인공이 진정한 고독의 의미를 알게 된 순간이 아닌가. 소중했던 존재가 이제 더 이상 있을 수 없다는, 영원히 함께하는 것이 없다는 절대적인 고독의 순간에 소녀는 커피를 찾고, 동반자를 만난다. 그럼으로써 소녀는 이 세계에서 요구되는 성인식의 기준을 통과한 것이다. 어른이 되고 동반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삶의 기쁨보다도 슬픔을 알아야 한다는 것일까.

  아쉽게도 초반에 등장하는 ‘16세 생일을 지난 소녀’들이 어른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철없고 이기적인 모습으로까지 보이지만, 그것은 1인칭 주인공의 눈으로 본 것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가연 님의 글은 상상력에 기반한 현실 비틀기의 절묘함 때문에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어른들은…’은 처음 보았을 때 가장 충격을 받았던 글이라서, 거울에 이 글이 실리게 된 것이 무척 반갑고 고맙다. 앞으로도 작가가 신선한 글들을 계속 써 주기를 소망한다.

   3. 아쉬운 이별과, 모든 것을 걸어 사랑하기 - 인형을 만드는 남자(bluewind)

  푸른바람님의 글을 만난 것이 이번 호의 가장 반가운 점 중의 하나였다. 8호의 글잔디 이후로 글이 올라오지 않아 서운했던 참이었다. 게다가 글잔디는 이미 기존에 다른 곳에서 보았던 글이라, 후작을 쓰지 않으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인형을 만드는 남자’도 새로운 글은 아니지만, 거울에 다른 글을 공개했다는 것은 후작을 기대해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냐고 멋대로 기대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표제작을 내셨던 다른 분들도 신작을 목빼서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한다.)

  인형을 만드는 남자는 쉽게 읽히는 글은 아니다. 몽롱하고 습하다. 얼핏 읽고 내려가면 짧은 이야기가 너무 미끄럽게 이어져버려, 자칫하면 글의 반전을 놓칠 우려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선뜩한 반전을 놓치고 지나가면 이 글의 매력을 1/3도 제대로 못 본 것이다. 어렸을 때 헤어진 아련한 그리움의 상대는, 사랑했으나 헤어진 수많은 연인들처럼 과거의 기억일 뿐이다. 그는 인형을 만들던 손으로 ‘인형’을 만든다. 팬더 인형이 ‘그녀’에게 간 이후로 그는 순수한 마음은 모두 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기억하고, 선물을 준비한다. 과거의 연인,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그녀에게 주는 최후의 선물이다.

  뒷골목의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음침하고 습기찬 분위기도 매력적이지만, 군더더기가 없으면서도 단순하지 않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도 멋지다. 직설적인 글투는 선명하지만 때로 너무 노골적인 것이 더 분위기를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작가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결정적인 부분에서는 한 번 비틀어, 슬쩍 은유를 써버린다.

  푸른바람 님의 이 사랑 이야기는, 어쩌면 사랑중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사랑의 아픔을 겪지 못한 동경의 상태에서만 쓸 수 있는 이야기로 보일지도. 하지만 여는 사랑의 상처를 겪어본 사람만이 그리움을 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푸른바람님께 하고 싶은 말은 단 한가지다. 신작을 부디, 쓰시기를.

   4. 헤어짐 이후, 담담해지기 - 돌아오는 여름이 다시 여름인 것처럼(赤魚)

  처절한 글이었다. 이 명쾌한 분위기로 가볍게- 때론 웃음까지 배어나오게 하는 이 글이, 여에게는 왜 그렇게 심장을 후벼 파는 이야기로 보였는지 모르겠다. 이 글은 사랑 후를 이야기한다. 어쩌면 ‘짝사랑’이라고만 불러버릴 수도 있는 감정의 뒤를 이야기한다. 너무 힘들었다고도 말하지 않고 그 남자가 나쁜 놈이라고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 남자는 나쁜 놈이 맞는데. 자신이 그런 결과를 의도했든 아니든, 그는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가 그 사랑의 감정으로 빚어낸 것을 냉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도 주인공은 ‘저 성격은 하나도 안 변했네’ 라고 말한다. 가장 소중했던 친구와 크게 싸워 다시는 얼굴을 보지 않게 된, 그래서 세계에서 잊혀져버린 모후가 하는 말도 그 말이다. 가장 절실했던 상대에게서 잊혀지고 세계에서 잊혀져버린 사람들이, 그 원인인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그저 쓸쓸하게 웃으며 바라본다.

  이 글이 흔한 독백체의 수필 투로 되었다면  매력은 반감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드래곤이 등장하고 외계인이 등장하는 환상소설의 설정이 개입하면서 이 글은 더욱 매력적이 되었다. 드래곤은 소설을 통해서 되살아나기도 하지만 사람이란, 얼핏 기억에 그 사람을 떠올리더라도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있는 존재들 아닌가. 그러면서도 드래곤은 이야기한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는 기사였노라고. 증오의 감정도 사랑의 감정과 마찬가지라고.

  작가의 필력이나 글 솜씨는 거울 독자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말하지 않겠다. 이미 출판 작가에다가, 공인받은 공모전까지 거친 작가가 아닌가. 이번 글은 똑같은 주제를 풀어내는 데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낸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작가의 건필을 빈다.

   5.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사랑 - 누구를 먼저 구할까(cancoffee1)

  가장 즐겁게 읽은 글이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이번 단평의 마지막 글로 찜했다. 이 글이 환상소설이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거울에 이 글이 올라왔다는 것- 그래서 이 글을 접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했다.

  이 짧은 콩트를 읽고 입가에 웃음을 머금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너스레를 떨면서 교황 덕분에 커피를 마시게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누굴 먼저 구하지? 라고 중얼거리는 남자의 모습에 한 번 웃고, 마지막의 포즈에 행복하게 웃었다. 처절한 고민을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닥 처절해 보이지 않는다. 용돈이 깎이지 않도록 절실히 답을 찾는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아내를 원망하는 느낌은 전혀 없지 않은가. 우리 정말 행복해요 라고 노래를 부르는 닭살커플들도 따라오지 못할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 느껴지는 글이다.

  개인적으로는 전작인 ‘도시 속의 하늘소’ (실제로는 후작일지도 모르겠지만)의 난해함보다도 이런 명랑한 분위기가 작가분의 글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글로도 이런 기분 좋은 느낌을 가져다주실지 사뭇 기대된다.


   6. 맺으며

  지난달에도 말했듯이 거울은 환상문학 웹진이다. 가능하면 이곳에는 환상문학의 일반적인 분위기에서 소외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 환상문학 단편들이 많이 올라와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누구를 먼저 구할 것인가’와 같은 글을 위해서는 비 환상문학(즉 일반 순문학이나 SF쪽의 글들)을 위한 코너를 하나 정도 마련해 두고, 그 곳에 한정해서 싣는 것은 어떨까.

  여는 이번에 거울 단편집의 1차 교정을 맡았다. 교정을 보면서 한숨이 나왔다. 분명 멋진 글들임에는 분명한데 조금만 신경 쓰면 범하지 않을 실수들이 눈에 띄는 것이다. ‘이었다’와 ‘이였다’를 구별하지 못하는 맞춤법 오류 같은 것들을 보고 있으면, 8을 읽어 2를 쓰라는 옛 글스승님의 말이 자연히 생각난다. 많이 읽고 그것을 잘 여과해서 새로운 자신만의 창작물을 만드는 것이 글쓰기라는 것이다. 여는 그 말을 이 곳의 작가들께 감히 부탁드리고 싶다. 많은 글을 접하고 많이 퇴고한다면 글의 매력을 더욱 살릴 수 있지 않겠는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야기는 어쩌면 너무 뻔한 내용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어떻게 풀어내고 어떤 상징을 걸러내느냐에 따라 글은 전혀 다른 완성도를 띄게 된다. 그런 기술은 글스승이 있어 교정을 봐 준다면야 제일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에야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어 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독자 단편란의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였다. 아쉬운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몇 달째 신작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거울의 많은 필진 여러분들의 신작을 목놓아 기다리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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