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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창간 축사

2003.06.26 03:3006.26

Yoni@hitel.net
 
 단편집을 내자는 제의가 들어올 때마다, 나는 비실비실 웃으면서 거절했다. 왜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했다.
 "출판사에 못할 짓 시키고 싶지 않아서요."
 단편, 더군다나 장르 단편 시장은 정말이지 암울한 동네다. 짧은 분량이라는 것은 대여점 위주의 장르시장에서 상업성에 치명적인 단점을 안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거대 서사 중심의 판타지 단편이라고 하면, 그 암울함은 이미 지옥의 심연 그 이상이다.

 축전을 써달라고 했는데 이렇게 암울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심술 때문은 아니다. (혹시 그럴지도?) 어쩌면 바로 그런 이유로 단편을 쓰는 사람들은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오늘 게시판에 올려 내일 출판되고 모레 잊혀지는 이 생명력 짧은 시장에서, 실리와는 완전히 담쌓은 단편 쓰기는 오히려 이야기 자체, 글쓰기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이제 문을 여는 거울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실리와는 담을 쌓는다는 것이 곧 타자와의 소통 자체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 정도다. 타인과 이야기하는 법을 아는 자는 자신과 이야기하는 법을 알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거울을 통해 보이는 것이 단지 자기 자신만의 모습은 아니길 빈다. 이 거울에, 부디 세상의 많은 모습들이 비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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