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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11호 거울 단편 단평

2004.05.29 00:1705.29

earth_sea@hanmail.net
이리스 ( earth_sea@hanmail.net )



0. 들어가며

  원래의 계획은 5월에 올라온 모든 단편에 대한 코멘트를 하는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무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메인에 실린 단편 몇 개와 독자단편란에 실린 단편 몇 개를 골라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언급되지 않은 글이 언급된 글보다 낫다거나 못하다거나 한 것은 아니고 단지 거울의 글들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좋은 글들을 추렸으니 양해 바란다.


1. 달이 오늘날의 달이 된 이유/열 - unica

  작가는 ‘거울’에 이미 몇 개의 단편을 실은 적이 있고, 장편 연재로 이미 완결까지 본 분이다. ‘거울’을 어느 기간 정도 들낙거린 사람이라면 닉네임 정도는 알 수 있을 인물이다. 이번 5월호에는 단편이 두 개나 독자단편란도 아니고 메인단편란에 실렸기에 흥미를 가지고 이것부터 훑어 보았다. 두 개의 글이 전혀 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에 동일한 작가가 쓴 글이라고는 금방 잡아내기 힘들다. 만약 두 글을 놓고 거울에 낼 단편을 고민했다면, 둘 중에 어느 하나를 골라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달이 오늘날의 달이 된 이유-이하 ‘달이’-는 unica님의 전형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낸 글이다. ~답니다, ~했지요, 등으로 이어지는 종결어가 동화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며, 아기자기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러한 동화적인 글들 중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졌던 단점이 이 글에도 드러나는 것이 아쉽다. 대화의 끝에 ‘으르렁’이나 ‘호호호’같은 의성어를 삽입하는 것은 사람들마다 선호도가 있겠지만, 필자의 의견으로는 “~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으르렁.” 으로 하는 것보다는 [“~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으르렁대며 사자왕이 말했습니다.]로 하는 편이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게다가 이 대화에서는 바로 윗부분에 사자왕이 으르렁거렸다는 묘사가 이미 나와 있으니, 으르렁이라는 의성어를 삭제하더라도 문제는 없어 보인다. 웃음소리 역시도 대화 안에 삽입하는 것보다는 대화를 마치고 [호호 소리내어 웃었다.] 정도로 문장을 끌어내는 편이 자연스럽다.

  unica님은 단편에서 종종 열린 결말을 시도하는 경향이 있다. 거울에 공개한 첫 단편 ‘그 서점에 갔었다’의 경우에도 이야기의 끝에서 이야기의 시작을 화자에게로 되돌리는 수법을 사용했었는데, 이번의 ‘달이’도 그러한 방법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 서점에 갔었다’가 주된 이야기를 모두 서술한 후에 독자에게도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어 글을 현실속으로 끌어내는 효과를 내는 데 비하여, ‘달이’는 “얼떨결 용자”의 이야기 전체를 독자에게로 넘겨 버리는 방식을 사용한다. 달이 지금의 달이 된 이유가 변덕스러운 달 공주님이 용자와의 관계에서 일어난 것이라는데, 정작 그 본론인 “얼떨결 용자”의 이야기는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 은빛의 가운을 입게 된 것이 한 계기가 된 것 같지만 그 이야기는 오히려 싱겁기까지 하다. 얼떨결 용자 이야기에 뭔가 본론이 나오는가보다 하고 기대했던 독자는, 끝 결말에서 맥이 풀려버리지 않는가. 어느쪽에 작가가 주안점을 두었는지 모르겠지만 은빛 가운을 입기까지의 이야기가 주라면 그 쪽의 이야기에 좀 더 무게를 줄 필요가 있다. 얼떨결 용자의 이야기가 주라면 독자에게 그 이야기의 전권을 넘겨 버리기 전에 좀 더 용자의 역할에 대해 암시를 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열’은 unica 님의 글 중에 분류하자면 ‘불꽃놀이’ 같은 글과 맥락을 같이 한다. 현실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우리와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문체는 ‘달이’보다 부드럽고 감정적이다. ‘달이’와 같은 맥락의 동화적인 글들, 디어파파와 같은 글들이 들뜬 분위기라면 ‘열’은 침울하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느낌이다. 글의 전개나 독자를 빨아들이는 느낌, 쉽게 읽혀지는 점 등을 보면 ‘달이’보다 매력적이다. 목소리가 고조되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들떠 이야기해주는 것이 아니라, 큰 창이 있는 커피점에서 소리를 낮추어 커피향에 둘러싸여 나직하게 들려주는 느낌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글의 화자가 이미 스스로 말하고 있듯이 ‘불치병에 걸려 죽는’ 이야기는 흔하다. 그 스토리를 멋지게 포장할 특이한 장점도 없다. 이 이야기가 장편의 일부분이라면, 주인공인 ‘나’의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큰 주제를 담고 있고 그 안에 이 글이 부분으로 포함되어 있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편 하나, 이 부분만으로는 그저 스윽 읽고 넘어가면서 음, 참 촉촉한 이야기를 들었구나 하고 넘어갈 정도에 머물러 버린다. 게다가 아쉽게도, 죽은 연인이 [“정원”으로 올라가 버]렸다는 묘사를 제외하면 이 글이 환상문학일 이유는 보이지 않는다. 평이한 러브스토리가 다른 SF적 요소를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 단지 글의 후반부에 2030년의 달력이 슬쩍 스쳐지나간다고 해서 SF로 분류될 수 있을까. 이 글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환상문학의 범주를 매우 넓게 보는 축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수필에서 별반 벗어나 있지 않은 사소설이다. 환상문학웹진에 싣기는 다소 무리다.

  두 글을 함께 살펴보았을 때, 작가가 공통적으로 범하는 실수 두 가지를 짚고 넘어가겠다. 첫 번째가 맞춤법과 바른 문장의 사용이다. 오타로는 만들어지지 않는 오류들이 있다. ‘아니였지요.’는 ‘아니었지요.’로 써야 맞다. 서울 경기도 지방에서 종종 앞의 이 모음의 영향으로 ‘어’ 발음이 ‘여’로 나는 경우가 있는데, 아마도 ‘아니야’라는 활용 때문인 듯싶다. ‘아니어요.’의 줄임말인 ‘아녜요’로 인해 원 말이 ‘아니예요.’로 잘못 쓰이는 것과 같은 오류다. 또한 ‘각종의 지원’은 ‘각종 지원’이 맞다. 관형격 조사 ‘의’는 명사 뒤에 붙어서 전체를 관형어로 만드는데, ‘각종’은 이미 관형사이므로 조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한탄을 하다’는 ‘한탄하다’가 맞다. ‘한탄’은 ‘하다’가 붙어 서술어가 되며, 명사형으로 사용될 때에는 한숨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한탄을 금치 못하다, 한탄이 배어나오다와 같이 쓰이기 때문에 작가가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 ‘진노를 했다’도 마찬가지, ‘진노했다’로 쓰는 것이 맞다.

  또한 두 글 모두에서 종종 마침표와 쉼표를 혼동하는 것이 보인다.
  [그래, 이젠 정말로 잊어야지. 지워버려야지. 하면서 무리하게 일하다가 열에 끙끙대어도.]
  [느즈막히 출발할게. 라고 약조하자 그나마 기분이 풀린 듯 했다.]

  문장의 끝이 아니므로 모두 쉼표가 되는 것이 맞다. (~하면서, ~라고의 용법은 사전적 용법과 많이 다르게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언급하지 않겠다.)

  그 외에도 몇 개, 비문이 눈에 거슬린다. [하지만 받았다는 사실 자체에 아마도 확실히 운 기억은 난다.] 라든가, [ 때때로 드라마에서 봤던, 불치병에 걸려서 죽는 여주인공을 보거나, 실연을 당하는 남녀 주인공들을 보면서 뻔한 패턴이네 하고 식상해 왔던 그 벌을 받았나보다] , [열 때문에도 못 나가서 죄송하다고를 반복하는 네게 그렇게 심하게 말하다니.] 같은 문장들이다. 의미가 잘 통하지 않는 문장도 있고, 동의반복이나 잘못된 조사가 첨부된 것들이 눈에 띄는데, 퇴고의 과정을 통해서 충분히 고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unica님의 글을 접한 지도 어느새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간 unica님의 글은 처음에 보았던 글에 비해 많은 성장을 보였다. 계속해서 습작을 해 왔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단편란에서 볼 수 있는 습작에 비하면 이번의 두 글은 확실히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갖고 있다. 앞으로도 꾸준히 많은 습작과 퇴고의 과정을 통해 보다 나은 글을 쓰시기를 바란다.


2. 인간놀이  - 아이

  거울의 8호에 실린 ‘진화하는 장난감’ 이후로 아이님의 글을 새로 찾아 읽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단편이 일관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데, 안정적인 문장이 매력적인 글들이었다. 아마 작가는 화자와 실제 사건의 불일치에 대해서 계속 시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시간이 비틀리고 화자가 비틀린다. 글의 시작과 끝이 순환하기도 한다. 글을 처음 읽으면 어지간히 집중하지 않고는 글의 흐름을 쫓아가기 힘들 정도다. 그런 것이 이 글의 특징이지만, 독자로서는 잘 읽히는 글을 선호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글에서는 인형과 인간 (혹은 두 인형이거나 두 인간일 수도 있다)이 교차되면서 글의 서술의 주체가 되는데, 둘 다 자신을 ‘나’로 지칭하기 때문에 양쪽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작가가 그것을 의도했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읽기에는 꽤 긴 편인 이 단편에서 주체까지 모호하게 흔들린다면,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잡아내기에는 어려움이 따르지 않을까. 작가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려 했는지도 모르지만, 긴 글을 몇 번씩이나 읽어도 알 수 없다면 독자로서는 애가 탈 노릇이다. A4용지로 10장 가량 되는 글이다. 단지 현실의 모호함을 나타내려 했다면 너무 길다. 세 번 네 번을 읽어도 사건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안정적인 문장력이라든가 탁월한 구성력으로 아이 님은 상당한 지지 독자를 확보하고 계신 듯하다. 실험적인 글도 매력적이지만, 다른 분위기의 글도 보고싶다는 생각이다.

3. 도시 속의 하늘소 - 캔커피

  캔커피 님의 글은 특별히 눈에 띄는 단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상당히 안정적이다. 이번 글 역시도 그랬다. 가끔 묘사의 중간에 이해할 수 없는 비유가 등장하는 경우가 있지만 눈에 띌 정도의 단점은 아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열’과 마찬가지로 이 글이 환상문학의 범주에 포함될 것인가 하는 점인데, 환상문학 웹진을 표방하고 있는 거울의 표제작인만큼 넓은 범주의 환상문학에라도 포함될 글이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끔 불필요하게 삽입된 쉼표나 어색한 말 끊기가 눈에 띄는데, 좀 더 퇴고의 과정을 거쳐 수정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4. 월아 - 루나벨

  조선조 중반 이후의 농촌을 배경으로 한 독특한 글이었다. 루나벨 님의 글은 때로 극단적인 탐미로 치달아 이미지 중심의 글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월아’는 그렇지 않다. 섬세한 묘사와 서늘한 서술로 이야기의 분위기를 이어 가다가, 마지막에 선뜩하게 마무리한다.

  조선조 말기에 왜구의 침입으로 우리네 민초들의 삶이 매우 어려웠다거나, 하위 관청의 관료들이 부패해서 평민의 조세 부담이 매우 컸다거나 하는 역사적인 사실이 이 글에도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전반적인 글의 분위기는 조용하고 다소곳하다. 때로는 이 여인네가 아들까지 전쟁에 보내놓고 혼자 살림살이를 어렵사리 이어나가는 그런 아낙이 아니라, 중인 이상의 가문에서 중국 사절단에 포함되어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다소곳한 마님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할 정도다. 자세히 읽어보면 이 아낙이야말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그런 삶을 살고 있을텐데도.

  하지만 이 글은 백의를 입은 동자의 신비로운 등장, 일관된 분위기만으로도 매력적인 글이다. 처음 등장할 때에도 눈이 시리게 맑더니 두 번째 등장해서 아낙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정말 이 세계에 살고 있지 않은 소년 같다. 소년의 말투는 등장 인물들 중의 누구와도 다른, 현대적인 느낌까지 든다. 소원을 이뤄주는 신비로운 존재가 사라지고 나니 꿈처럼 느껴지더라 하는 것은 오래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을 구현해 놓은 듯하다. 그리고 소원을 이뤄주는 존재들이 늘 붙이는 전제조건- 금기-를 어긴다는 것 역시 그렇다. 금기를 어김으로써 아낙은 자신이 겨우 이뤄놓은 소원이 깨어지고,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 글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글이지만, 글을 다 읽고 났을 때의 선뜩한 한기 외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무언가가 심장에 닿을 수 있다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루나벨 님의 글 중에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것은 ‘H이야기’였다. 환상소설의 범주에 넣을 수는 없을 글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분위기를 끌어나가는 솜씨도 좋았을뿐더러, 마지막에 드러나는 사실이 가슴이 저리기까지 했었다. 아직 ‘불치병’과 ‘H이야기’ 사이의 괴리감처럼 루나벨 님의 글은 양극을 오고 가는 느낌이다. (불치병이 나쁜 글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전혀 다른 분위기의 글이라는 뜻이다.) 기본적으로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계신 분이니만큼 앞으로도 멋진 글을 기대한다.


5. 월색 흘러나리는 밤 - 명비

  명비님은 거울 내에서 가장 많은 팬을 확보한 작가 중의 한 분인 듯하다. ‘꽃의 변용’으로 처음 표제작을 내기 전에도 독자 단편 게시판에 올린 글들이 상당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어서 놀라서 보고 있던 작가다. 혹 정식으로 창작 수업을 받고 계신 게 아닐까 추정될 정도로 문장 하나 하나를 다듬는 솜씨가 상당하다. ‘꽃의 변용’에서는 전통적인 느낌의 문장을 맛깔스럽게 묘사하면서 감정을 서늘하게 훑어 내리더니, ‘먼 산 꽃닢 찾던-’에서는 노랫처럼 이야기를 끌어내는 솜씨가 여간아니다. 문장만으로 보자면 더 나은 문장을 쓸 수 있겠나 싶다. 작가 지망이었던 필자로서도 명비님의 문장에 감탄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번에 실린 ‘월색 흘러나리는 밤’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황금 드래곤 문학상에 연재되었던 ‘서울에 울다’였다. 몇 화 연재되지 않았으면서도 총평에 언급되었을 정도로 독특하고 매력적인 글이었다. 후자가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글에서의 ‘서울’이나 현실 역시도 ‘서울에 울다’의 그것과 같지 않을까 싶다. 문장의 분위기도 서울에 울다와 흡사하다. ‘화조월석’의 고풍적인 문체와는 전혀 다른, 현재적이고 도시적인 느낌의 문장이다.

  이 글의 ‘서울’은 지금의 실제 세계를 비틀어놓은 것이다. 송경아의 ‘아기찾기’나 ‘테러리스트’를 떠올리게 하는 비틀기이고, 신경숙의 초기 환상단편이 보여주는 경계적인 비틀림이다. 그것은 이 세계가 보이는 것과는 다르다고 믿는 유년기의 공상에서 비롯된 것이거나 또는 현실의 상황-또는 모순-을 극단적으로 강조시켜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인 비틀기일 수 있다. 신경숙의 단편이 현실을 몽환적으로 다루면서 현실에 환상성을 부여했다면 송경아의 장편들은 몽환적이기보다는 날카로운 쪽이다. 명비 님의 ‘서울에 울다’나 ‘월색 흘러나리는 밤’에서는 무엇을 의도한 것일까. 이 글 속의 밤은 신비로우면서도 기괴하다. ‘나’의 독백은 낯설고 비현실적이다. 현실을 걷고 있던 ‘나’는 돌연 비린내가 넘쳐나는 밤으로 흘러든다. 어린 등골이 훔쳐 씹히고 선도자에게 잡아먹히는 그런 밤이다. 불명확하게 비춰진 설정은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승합차 안에서 삼켜지는 ‘알’들이 이 서울을 살아가는 불완전한 인물들을 나타내는 것일까. 이 글에서 넘칠 듯이 제시되는 수많은 상징들은 도대체 무엇을 나타내려는 것일까.

  명비 님의 단편은 상당한 길이를 가지고 있지만 쉽게 벗어날 수 없는 흡입력이 있다. 눈을 떼지 못하고 글의 추이를 따라가게 만든다. 돌연 등장하는 개구리, 돌연 나타나는 성적인 묘사. 그 모든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궁금해하면서 독자는 글을 따른다. 그리고 결말. 결말까지 도착해보면 독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 것도 없다. 모호한 상징은 모호함으로 끝나고 글의 이미지만이 머리에 남는다. 서울의 밤에서 미친 듯이 도주하던 화자는 결국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일 뿐이었던가. 내가 읽은 것은 그의 비틀린 상상이었던가. 아니면 작가는 현실 속을 살아가는 불안정한 인물들을 그런 식으로 보여 주었던 것인가.

  필자는 문득, 아직 읽지 않은 명비 님의 단편 하나를 무작위로 쪼개어 일부만을 읽어 보았다. 불완전한 구성이어야 할 글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완전한 단편 하나를 읽은 다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건 구성의 문제다. 문장 하나하나는 매끄럽게 이어져 있는데 글 하나는 완결되지 않고 열려 있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게다가 문장이나 묘사에 집중하다보니 글 전체를 보게 만드는 힘은 떨어져서, 글을 덮고 나서 이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였냐고 요약하려 하면 막막해진다. 이미지의 전달에 주력하는 글이라면 모를까, 작가가 상징을 사용하면서 뭔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면, 지나친 장식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명비 님은 이미 어휘력이나 표현력에서 나무랄 데 없이 탄탄한 실력을 갖춘 분이다. 혹시 장편을 몇 편이나 완결한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글을 연습할 때에 단편이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필자의 경험으로 책 1권 정도의 (원고지 800장에서 1000장 가량) 장편을 하나 끝내면 글의 구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단편이 짧게 압축된 안에 주제와 내용을 농축시키는 법을 배운다면 장편은 이야기를 끌어가면서 복선과 암시를 적절히 풀어나가 결론에 이끌어내는 방법을 배운다. 단편이 단거리 경주라면 장편은 장거리 마라톤이다. 아쉽게도 명비님의 단편은 완전히 압축되어 맺어진 잘 짜여진 글이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함이 있다. 장편의 일부분으로 보이는 분절된 글들도 종종 보이는 것이다. 만약 필자가 생각한 대로 이 글이 ‘서울에 울다’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글이라면, 청컨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배경의 단편을 써 보시길 권한다. 이미지즘이나 상징, 묘사에 치중한 글이 아니라 사건의 시작과 종결이 포함된 전통적인 글 말이다. 조금 강하게 주제에 목소리를 높여도 좋겠다.



6. 맺으며

  거울이 이제 1년을 맞았다. 처음 시작했을 때에도 환상문학웹진이라는 이 마이너한 기획이 부디 오래 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고, 지금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거울은 인터넷상에 널려있는 수많은 판타지 관련 사이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나라에서 비록 마이너에 속하는 판타지 단편을 다루는 곳이지만 다른 어느 곳보다도 뛰어난 글이 많이 실려 있고, 아마추어의 풋풋함과 실험정신이 건재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울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라면, 그 아마추어의 풋풋함이 지나치면 곤란하다는 사실이다. 독자 단편란에 실리는 글들 중에 상당히 수작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몇 개의 글들은 그 작가의 이름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습작이라고 불러야 할 것들이었다. 자유롭게 글을 실을 수 있는 분위기는 좋은 것이지만 습작의 비중이 높아지면 게시판을 읽는 독자로서는 조금 맥이 빠져 버린다. 독자 단편의 글들 중에는 메인에 실리는 단편 보다도 돋보이는 글들이 종종 눈에 띄는데, 그런 글들을 읽기 위해서 게시판 전반을 모두 훑어보는 필자로서는, 채 몇 분 걸리지도 않는 짧은 습작들이 반갑지 않다. 게다가 기본적인 퇴고도 거치지 않은 듯 맞춤법이 틀린 글들, 심한 오타들, 별로 길지 않은 문장에서도 나타나는 비문들이라니. 물론 다른 열린 판타지 사이트들에 그보다 더한 글들이 올라온다는 것은 알고 있다. 거울정도면 상당한 수준이라는 말도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 더 욕심을 내면 안되는 것일까. 거울을 주목하고 있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거울에 실리는 글들이라면 이미 검증된 글들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싶어하면 안 되는 것일까.

  메인에 실리는 단편도 마찬가지다. 소설 하나를 창작하는 게 얼마나 뼈를 깎는 고통인지는 한때 소설을 쓰기도 했던 사람으로써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거울의 메인 단편들은 독자 단편란의 기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호 수를 달고 나오는 거울의 메인 단편들이 수준이 높아질수록 독자 단편란의 작가들도 그 글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점점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필자는 믿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지금 뽑아낸 글들은 단순히 그 글만을 보기보다는 거울의 다른 글들에서도 보여지는 점들을 짚기 위한 것이 많다. 이번에는 주로 지적할 것을 이야기했기 때문에 혹시 이 글의 작가들이 불편해 하시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하지만 대부분 이 글에서 언급된 글들의 작가는 필자가 매우 좋아하는 분들이며, 게시판에 그들의 글이 올라올 때마다 반가워하며 읽고 보는 사람들이다. 부디 넓은 마음으로 외람된 의견을 고려해 주시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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