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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황금 드래곤 문학상 비평단을 마치고


글지패 S.A. ( airysnow@hotmail.com )



  3개월이라……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황금가지에서 제 3회 금룡상(나는 노란도롱뇽상이라고 불렀었지만) 개최 소식을 들었을 땐 아무 관심이 없다가 비평단을 모집한다는 말에(사실은 그 상품에) 이끌렸다. 처음에는 비평단 전원을 글지패 멤버로 채워 볼까 생각했었지만 귀찮아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기에 무산됐다. 뭐, 끝난 이 시점에서는 둘만 뽑힌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결론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리고 리딩 판타지의 하리야 선장님께 이 사실을 알려 비평단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아무래도 모르는 사람보단 아는 사람이랑 노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비평단에 붙으려면 테스트를 거쳐야 했기에 미리 연재 되고 있던 장편 하나를 골랐다. 제목은 향해向海. 꿈 많은 소년이 말하는 새를 데리고 바다를 찾아 나선다는 해양 판타지 소설이었다. 이 비평문은 금룡상 사이트에 가면 있지만 심사가 끝나면 지울 예정이다(그 후에는 글지패에서만 볼 수 있다.).
  나는 바다에 관심이 많으며 꼭 쓸 예정인 소설 하나가 해양 판타지이다. 혀 잘린 마법사와 손목 잘린 검사가 대륙에서 버림받아(실은 자기네들이 도망친 거다.) 바다로 진출해 해적왕이 된다는 슬픈 사기극인데 이 소설을 준비하기 위해서 노트 2권 분량의 지도를 직접 작성했고(파트너가 그렸는데 군대 갔다. 그 후 뺏겼다면서 제대하길 기다리란다.) 방대한 양의 해양 및 선박 자료를 구했다. 그런 자료 덕에 향해를 비평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 문학 비평이란 것은 순전히 문학 텍스트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문학 텍스트를 이해하지 못하면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해를 하기 위해선 텍스트 전반에 사용된 모든 분야의 지식을 갖출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하면 비평하려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누구나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에 대해 평가를 내렸을 때 기분이 어떠했는지 떠올려 보라. 비평도 그와 같아서 이해하지 못한 작품에 대해선 헛소리만 할 수밖에 없다.
  향해를 처음 읽었을 때는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비평 대상이었기에 제대로 된 독서를 할 수는 없었다. 좀 아쉬웠다. 발단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주제의 부각 정도나 플롯의 흐름, 인물 관계의 갈등 정도를 전체적으로 살펴봤다. 그리고 싹 잊었다. 그런 식으로 해 봐야 향해를 읽은 사람이나 작가 자신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 향해를 읽지 않고 비평만을 읽는 사람에겐 무가치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가능하면 많은 사람에게 동시에 어필될 수 있는 내용을 쓰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향해가 갖는 특징 중에서 많은 사람이 공유할 것을 골라내게 되었는데 의외로 그 범위가 작았다. 사소한 습관이나 형식주의에 의거해서 보는 문법 오류가 그 주였다. 그때부터 비평의 방향에 대해 조금씩 망설이게 되었다. 또한, 정말로 할 말이 이거밖에 없는지, 그럴 만큼 요즘의 판타지가 뻔한 수준인지 실망했다.
  비평단에 붙었을 때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고작 이 정도로 붙다니 너무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뫼비우스의 띠를 그렸다(사실 떨어질 거란 생각은 갖지도 않았다.). 그러나 할 일은 해야 했기에 남의 비평문을 읽어 보았다. 남의 글을 보는 것은 직접 쓰는 것보다 더 많은 도움이 될 때가 많기에 나는 새로운 연재 사이트를 찾게 되면 비평문부터 훑어본다. 도롱뇽상 비평단도 그런 이유에서 응모했다. 상품이 아무리 좋을지언정 내 공부에 도움이 안 되면 결코 응모하지 않았으리라. 다른 비평단원의 비평문은 기대했던 수준보다는 낮았고 예상했던 수준과는 맞아 떨어졌다. 나는 출판사에서 원고를 고르는 일을 하고 있던 터라 연재 사이트는 매일 들락날락거렸기 때문에 전반적인 실력은 알고 있던 상태였다. 프로를 제외한 아마추어 평론가의 실력은 대부분 거기서 거기이다. 따르는 학파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일 뿐 작품을 이해하는 능력은 실질적인 면에서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실정을 알고 있다면 비평에 어느 정도 자신 있는 사람은 전부 응모했으리라 생각되지만 홍보가 잘 되지 않은 까닭도 있고 모집 기간이 짧은 탓에 생각보다 적은 사람이 응모를 했을 것이다. 제 4회 때도 비평단을 모집한다면 충분한 홍보와 기간을 둠으로써 이번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여지를 넓혔으면 한다.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다. 나는 홍루라는 작품을 비평할 때 서두에서 “이 작품은 졸작이다.”라고 대놓고 씹고 들어갔다. 정말 졸작인지는 읽은 사람이 판단할 문제이다. 다만, 내겐 빌미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비평단원의 비평문이 전체적으로 호평이었기 때문에 확인하고픈 것이 있었다. 홍루의 비평문을 올리고 며칠이 지난 뒤 비평 게시판을 확인했다. 몇 개의 답문이 달려 있었다. 그중 하나는 내 비평문을 지우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 일로 확인하고자 했던 것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바로, 비평에 대한 인식이다. 아무래도 비평Criticism보다는 강의Lecture의 성향이 훨씬 강하다(나는 보통의 경우 이 두 가지를 완전히 갈라서 인식한다. 그러나 비평문을 올리는 장소의 성격에 맞게 써야할 경우엔 어쩔 수 없이 조율한다.). 그 외에도 비난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게 편협에 빠져 있었다. 비평에 호평이 있는 것처럼 악평이나 혹평, 폭평도 분명 존재한다. 논리 전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비평문을 비평하면 되지 않는가. 비평도 분명 비평의 대상에 속한다. 나는 그 점을 언제나 인식하고 있다. 비평문에 대하여 마음에 안 드니 그저 지우라고 하지 않고 비평을 했다면 응할 용의가 있었다. 논리도 맞지 않는 반발보다는 논박이 품위 있다. 그리고 웃긴 사실은 홍루가 아니라 어떤 작품이라고 해도 상관없는 일이었으며 비평하기 제일 힘들었던 게 홍루였다.
  시간이 흘러도 한참 흘러 2월 말이 되었을 때 문화일보에 가서 대담을(실상은 좌담이었다.) 가졌다. 으음, 분명 난생 처음 가보는 신문사였지만 실내가 따땃한 게 집보다 포근했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미녀 기자님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평안해지고 잠이 살살 오는 게 데이트하는 기분이었다(몸살감기로 고열에 시달리고 있던 날이라 걸을 때마다 반쯤 미치곤 했었다. 기자님이 말을 걸지 않았다면 난 아마 그냥 잠드는 쪽을 택했으리라.). 평소 약속 시간에 대한 강박 관념이 있어서 아주 약간, 한 5분쯤 일찍 나갔는데(전자 지도를 이용해 도보 경로의 거리를 측정하고 지하철 도착 시간과 환승 시간을 잘 맞추면 지하철이 닿는 모든 곳은 정시에 도착할 자신이 있다!)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안내 데스크(맞는 말인가?)에서 물었는데 이 사람들 일 처리를 어떻게 하는 건지 황금가지도 모르고 황금 드래곤 문학상도 모르고 김준혁 씨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몰랐다. 오히려 묻는 나를 향해 싱긋 웃었다(그래, 내가 헛소리하는 거 같아서 재미있으셨소?). 그 싸람들은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영문 모를 미소만 지은 채 인터폰으로 세 군데나 연락을 한 후에 내가 가야할 곳을 가르쳐 주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왔는데 웬 통로와 철문만 몇 개 휑뎅그렁하니 있을 뿐 어디로 가야할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문이 다 닫혀 있는데 아무 거나 열어서 확인해 볼 결단력은 없었다.). 그 상황에서 극도의 통찰력과 방향 감각을 이용해 화장실로 간 다음 볼일 보는 사람에게 물어 기자님에게까지 인도될 수 있었다…….
  일단 나밖에 오지 않았기에 명함을 받고 웬 휴게실로 갔는데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기자님은 그 사람들을 몰아내고 나와 자리를 잡고 마주 앉아서 몇 가지를 물은 뒤에, 오지 않는 사람들은 어디서 헤매고 있는 걸까 서로 친근하게 추리하면서 놀았다. 김준혁 씨와 다른 비평단원은 꽤 늦은 후에야 도착했고 그때부터 우리들의 암묵적인 침묵 놀이가 시작되었다. 서로가 어찌나 무안하던지 살살 실실대고 쪼갤 뿐 입을 열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나는 단지 자고만 싶었다.). 어쨌든 기자님과 김준혁 씨의 노력에 불이 붙기 시작한 비평단원들은 이 얘기 저 얘기 신나게 했다. 주로 요즘 판타지의 흐름과 수준 정도에 대한 것이었는데 출판사에서 일하느라 폐침망찬하며 의무적으로 연재 작품을 읽던 내겐 자장가에 불과했다(안 듣자니 예의가 아닌데 듣고 있자니 다 아는 얘기라서 거시기했다.). 소득이 있었던 건 오갔던 얘기보다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알게 됐다는 점이었다. 대담을 마치고 황금가지에 잠깐 들렀는데 민음사 판타지 브랜드라서 그런지 다른 출판사와는 그 내부 구조가 격이 달랐다.
  기사가 나온 건 일주일 정도 뒤였는데, 정말 굉장한 경험이 되었다. 2시간가량의 대담을 12초짜리로 편집하자 하지 않은 말은 아니지만 어떻게 그런 말이 되는지 신기하게 돼 버렸다. 약간의 오보도 있긴 하지만 거두절미하면 그렇게도 되니 뭐라 따질 수도 없고, 정말이지 굉장하다고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편집을 심하게 당한 작가가 울부짖는 이유를 느껴 버렸다고나 할까!
그리~고
두둥!
  후후, 이제 제 3회 금룡상이 끝났다. 당선작은 발표가 아직 안 나왔지만 나로서는 모든 것이 끝난 기분이다. 비평도 다 했겠다, 책도 다 받았겠다. ……. 다시 공부하면서 비평도 하고 글도 쓰고 그래야겠지. 비평단 일을 하면서 시간에 지나치게 채인 느낌이다. 그러나 할 일은 해야 하니, 비평을 원하시는 분은 얼마든지 글지패에 찾아오시기 바랍니다(할 일이란 비평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유감이 있다거나 지적할 것이 있는 분도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그럼 모두 건강하시기를.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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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lchizede 04.03.27 11:29 댓글 수정 삭제
    저두요!저두요! 저는 10분전쯤에 도착했는데 경비 아저씨가 못 올라가게 하더군요. 나중에 전화 연결되서 올라갔는데 아무도 없어서... 나중에 준혁님께서 전화하셔서 다시 밑으로 내려가 다른 사람들 기다렸던 거랍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No Profile
    airygale 04.05.02 15:54 댓글 수정 삭제
    으하하하. 무지 못 쓴 글이죠. 멜기세덱 님 글이 훨씬 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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