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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읽기 SF총서와 happysf.net에 대하여①

임형욱(happysf.net 운영자)



  한 달쯤 전에 미러 웹진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습니다. 행복한책읽기 SF총서 전용사이트인 happysf.net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려달라는 것이었지요. 그러겠다고 청탁을 수락했습니다. 청탁을 수락해놓고 보니까 문제가 생겼습니다. 청탁을 수락한 직후에 <북페뎀> 장르문학 특집호가 발간되었는데, 거기에 이미 행복한책읽기 SF총서 메이킹 스토리며, happysf.net에 대한 웬만한 이야기를 다 써놓았던 것입니다. 그것도 두 꼭지에 걸쳐 150매 가량의 이야기를 썼었는데, 막상 미러 웹진의 원고청탁을 살펴보니 A4용지 2장 분량이랍니다. 20매 정도 분량인 거지요. 길게 쓰는 것은 자신 있어도 짧게 쓰는 것은 자신 없는 터라 참으로 난감하긴 하지만, 그래도 청탁받은 것이 있으니 분량이며 마감이며 지킬 것은 지켜야겠지요.

  각설하고…. 행복한책읽기가 지금은 과학소설(SF)를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주요한 출판사 중의 하나로 어느 정도 자리매김을 했지만, 행복한책읽기가 과학소설 전문 출판사는 아닙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희 출판사에서 낸 책들 중에는 현직 대통령인 노무현 대통령의 책도 두 권 있고, 저희 출판사의 필진 중에는 소설가 장정일이며, 영화감독 김기덕이며, 여러 필자들이 있지요. 문학비평서나 소설집도 여러 권 냈고, 영화 관련 책들도 몇 권 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책읽기가 과학소설을 내는 여러 중요한 출판사 중의 하나인 것은 여전히 사실입니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과학소설을 계속해서 출판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출판할 것이며, 과학소설만을 위한 전용사이트(happysf.net)을 운영하고 있으며, 며칠 전에는 국내 최초로 과학소설 전문잡지 창간호를 발간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리폰북스를 발간하며 국내에 과학소설 붐을 일으켰던 시공사조차도 얼마 전에 장르문학 전용 사이트인 디겐을 폐쇄하는 등 국내의 다른 출판사들이 다소 장르문학에 대해 주춤하고 있지만 행복한책읽기는 무크지를 발간하고, SF총서 외의 다른 SF시리즈까지 출간하는 등 새로운 시도들을 계속하고 있으니 이제는 싫어도 어쩔 수 없이(물론 원하는 바입니다만) 한국 과학소설의 역사 속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행복한책읽기가 과학소설 출판에 전략적으로 뛰어들게 된 것은 어떤 면에서는 우연이, 어떤 면에서는 필연이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략과 의지의 문제이겠지만요. 행복한책읽기는 애초부터 장르문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표이자 발행인인 저도 그렇기도 하지만 편집주간인 구광본 씨도 환상문학(판타지) 등 장르문학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진 작가입니다. 단순한 애정과 관심이라기보다는 장르문학의 가능성에 대한 문학비평서(<소설의 미래>)를 내고 실제로 환상문학 작품집(<나의 메피스토><미궁>)을 출간하기도 했지요.
  20년 문학동지이기도 한 출판사 대표와 편집주간 사이에 이미 장르문학의 가능성에 대한 기본적인 공감대가 있는 상태였고, 이런 바탕 위에 어떻게 장르문학을 출판할 것인가에 대해 전략적인 접근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소설가 송경아 씨, SF비평가이자 번역가인 김상훈 씨 등과 접촉을 하면서 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했습니다. 원래는 환상문학(판타지) 쪽으로 먼저 출판을 할 계획이었습니다만, 여러 가지 시장 조사를 해본 결과 너무 많은 판타지가 쏟아져 나오고 있고 수많은 출판사들이 판타지 시장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행복한책읽기까지 판타지 시장에 뛰어든다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그때 주목을 하게 된 것이 과학소설(SF) 시장이었습니다. 저희가 과학소설을 주목할 때만 하더라도 그리폰북스도 다소 주춤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열린책들의 경계소설선 등에서 간헐적으로 과학소설이 섞여나오기는 했지만, 이미 주류는 과학소설 시장에서 철수하고 간혹 입질만 하는 정도였지요. 행복한책읽기는 이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의 과정이나 결과들에 대해서는 여러분들도 어느 정도 아시는 그대로입니다.
  애초에 행복한책읽기가 목표했던 바가 과학소설 시장에서 대박을 터트리겠다거나 우리가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출판사들이 과학소설 시장에 뛰어들 수 있도록 돌격대 역할을 하고 과학소설 시장의 파이를 키우겠다는 것이었으니 지금으로선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보아야겠지요. 현재 시공사, 황금가지, 열린책들, 집사재, 옹기장이 등 다양한 출판사들이 과학소설 시장에 뛰어들어 있으니까요.
  행복한책읽기의 다음 목표 중 하나는 주류문학의 화두를 ‘장르문학’에 두는 것입니다. 이미 이런 조짐들은 보이고 있습니다. <북페뎀><문학과 사회> 등에서 장르문학에 초점을 맞춘 특집들을 다루기 시작했고, 주류문학에서도 문학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가운데 장르문학으로 그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적절한 담론들이 오고갈 공간이 마련되고, 장르문학이 돌파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작품들이 나와주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목표의식을 가지고 행복한책읽기는 과학소설 전문무크 를 창간한 것이고, 앞으로 국내 창작 SF작가들의 작품집 발간을 계획하고 있으며, 역량있는 신인 발굴에도 더욱 힘을 쏟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목표 중의 하나는 과학소설 시장의 확대 또는 SF 팬덤과 일반 독자들(주류문학을 포함하여)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일입니다. 현재 과학소설 시장은 분명하게 양분되어 있습니다. SF팬덤은 절판된 SF들까지도 일일이 찾아다니며 구해 읽고 있으나 ‘과학소설’이 아니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나 기타 SF적 기법이나 상상력을 차용한 초보자용 ‘공상’과학소설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반면, 일반 독자들이나 주류문학에서는 ‘공상’과학소설 몇 편 읽은 것이 전부인 독서경험을 가지고 ‘과학소설’ 전체에 대한 높고 단단한 편견의 벽을 쌓고 있습니다. 이런 둘 사이의 깊고 높은 벽을 허무는 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한책읽기에서는 2004년 들어서는 과학소설 출판도 훨씬 세분화하여 기존의 SF총서 외에도 SF팬덤을 위한 ‘SF전집’ 시리즈와, 일반 독자를 위한 별도의 SF시리즈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외에 과학소설과 관련한 담론 형성과 좋은 과학소설들이 소개될 공간 마련을 위해 무크지를 창간하였고, 조만간 현재 게시판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happysf.net 사이트도 블로그와 포럼 중심의 웹진 형태로 개편하여 SF허브 사이트로 변신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직 happysf.net 사이트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나 행복한책읽기에서 출간되는 SF들에 대한 소개는 정작 시작도 못했는데, 제게 허락된 원고 분량에 이미 다다랐군요. 기회가 된다면 다음 기회에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고 이만 마무리해야겠습니다.
  행복한책읽기의 SF들이 어떤 장기적인 전략을 가지고 출판되고 있는지, happysf.net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이른바 ‘행덤’이라고 불리는 행복한책읽기 SF의 회원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행복한책읽기 SF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성공한 것은 무엇이고 실패한 것은 무엇인지, 과학소설 출판의 문제점들은 무엇인지, 환상소설과 추리소설 등 과학소설과 이웃한 ‘사촌들’과는 앞으로 어떻게 관계 정립을 할 것인지 등등의 모든 이야기들은 다음 기회로 미루며 이만 줄이도록 하지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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