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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곽재식님과의 인터뷰

2005.12.30 23:5112.30

곽재식님은 독자 게시판에 올린 단편 “달과 육백만 달러”가 거울 우수 단편에 선정되시면서 거울 필진으로 합류하셨습니다.
그 후 26호에 섬뜩하면서도 리얼한 이야기인 하얀 이빨, 27호에 자전거와 사랑에 얽힌 이야기인 최악의 레이싱, 28호에 반복되는 악몽과 예상외의 결말을 주는 낙하산, 29호에 마녀의 피까지 스토리텔러로서 재질이 돋보이는 단편들을 발표해 오면서 독자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어오셨습니다.
처음에는 거울 인터뷰 최초로 오프라인 인터뷰가 진행될 뻔도 했으나, 몇 가지 일들이 허락치 않아 메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재식님은 굉장히 재미있고, 또한 로맨틱한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찌 느끼실 지 궁금하네요. ^^


1. 간단한 자기 소개를 해주세요. 나이, 거주지, 현재 하는 일..

나이는 열 살 넘은지는 꽤 되었고, 환갑은 아직 꽤 남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주지는 대한민국 서울이고, 현재 직장인 입니다.

2. 거울은 어디서 알게 되셨나요?

지금으로부터 수백일 전의 일입니다. 우연히 아는 사람이 유명한 송경아님의 홈페이지에서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면서, 이런 단편
소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http://supermew.soge.net/zero01/view.php?id=board04&no=1193
"나의 우렁총각 이야기" 인데, 읽어 보시면.... 그렇습니다. 소설속에 한두번 언급되는 바람둥이 악당의 이름이 "재식"입니다. 심지어 자세히 읽어보면 "곽재식" 입니다.
호기심과 충격을 느껴, 송경아님 홈페이지 여기저기를 뒤적뒤적하다가 거울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3. 전공을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재식님의 글을 보면 과학도같다는 인상을 줍니다.

학교 다닐 때 전공은 원자력공학, 화학, 중국어. 였습니다.

4. 소재는 어디서 얻으세요? 아이디어들이 참 재미있어요. 최악의 레이싱에서 자전거를 타기 위해 나오는 온갖 기계공학적인 요소라거나...

스스로 좀 돌아봐야 겠습니다. 덧글에서 이야기했듯이, "최악의 레이싱"은 우주에서 지구로 귀환하는 디스커버리호에서 소재를 얻었습니다.

"달과 육백만 달러"는 어느 모임에서 본 것과 어느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의 한 장면에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얀 이빨"은 신문기사에서 본 한 이상한 사건에 대해서 나름대로 이유와 배경에 대해서 상상하다가 시작했고, "낙하산"은 출장가다가 비행기 속에서 꽤 오래전에 "....이러면 어떤 기분이 들까"하는 공상을 한 적이 있어서, 언제 한 번 써봐야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녀의 피"는 학교 다닐 때 한 선배가 들려준 이야기가 아이디어가 되었습니다.

5. 언제부터 글을 쓰셨어요?

여러 사람이 보게 된 시/수필/소설이라면, 고등학교 때 학교 신문에 실린 소설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런 것을 써서 뭐라도 대가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따진다면, 대학 다닐 때 학교에서 주최하는 문학상에서 입상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6. 글을 쓰시게 된 계기라면요?

고등학교 때는 학교 신문사에서 일하는 한 이쁘장한 여학생이 지면을 때울 거리가 필요하다면서 청하기에, 불가항력. 그것을 숙명으로 여기고 썼습니다. 대학 때는 약간의 방탕한 생활로 급변한 경제적 상황에 당황하고 있을 무렵... 학교 문학상 소설 부문 상금이 꽤 높은 것을 보고, 상금 사냥꾼으로서 도전했습니다.


7. 상금사냥꾼으로 도전하셨던 다른 공모전도 있나요?

같은 대학 문학상 공모전에 한 번 더 보내서 또 한 번 상금을 타 먹었드랬습니다. 몇몇 출판사,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것은 항상 마감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고, 공연이나 음악회 감상문 같은 것을 보내서 다음 공연/음악회 티켓을 받은 적은 몇 번 있습니다. 오페라 티켓을 받을 응모가 있다면 웬만해서는 하나 써 보내곤 합니다.


8. 좋아하는 장르와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독서가 짧은지라, 작가를 이야기하기에는 고전 밖에 이야기 할 것이 없습니다. 같은 이유로 어떤 장르...를 좋아한다고 하기에도 읽은 책의 깊이가 좀 부실합니다. 서머셋 몸, 알렉산드르 뒤마, 쥘 베른, 모리스 르블랑, 조나단 스위프트, 오 헨리, 마크 트웨인, 그림 형제. 스스로 되돌아보니,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도 거듭 읽고 있는 책이고, 중국 고전이나 우리나라 중세 수필도 종종 읽는 편입니다.

온라인 작가 중에는, 수많은 우리나라 SF를 읽는 사람들처럼, 듀나를 빠뜨리기 어렵습니다. 90년대 후반부터 PC통신 시절부터 계속 읽어오다보니, 정드는 것 비슷하게 된 듯도 하고.

어릴 때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후다다닥, 기다림 없이 볼 수 있는 듯한 재미에 빠져서, 시드니 셸던 소설도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존 그리샴 책도 많이 본 것이 기억납니다. 50년대 한국 도시에 대한 묘사가 재미있어서 박완서 소설도 즐겨 읽습니다.


9. 본으로 삼는, 삼고 싶은, 목표로 삼은 작가나 작품이 있다면요?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는 오. 헨리 단편 소설 흉내를 내 보곤 했습니다만, 시간이 지나갈 수록, 세상에는 작가도 많고 작품도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죄송스럽게도 작가분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만, 옛날 PC통신시절에 "비 오는 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눈 오는 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비롯한 몇몇 단편소설을 올려주셨던 작가분이 한 분 계셨습니다. 뭐든지 써서 올려 놓을 때 마다 항상 머릿속에서 종종 떠오르곤 합니다.


10. 매 작품마다 언제, 어디서라는 후기가 들어가는데요. "어디서"가 참 재미있어요. 그 장소가 마침표를 찍은 장소인지, 아니면 그 작품을 구상한 곳인지, 작품의 대부분을 쓴 장소인지, 그 작품을 쓸 당시에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던 곳인지가 궁금합니다.

맨 마지막 끝을 낸 곳의 장소를 쓰는 것이 보통입니다만, 보통 그 장소가 "작품을 구상한 곳이자, 작품의 대부분을 쓴 장소"가 되곤 합니다. 장소를 덧붙여 써 놓으면, 쓸 때 생각했던 감상이나 분위기 같은 게 나중에 돌이켜져서 일기처럼 재미난 것도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읽힐 때도, 괜히 사연이나 현장감에 대해 상상할 여지를 하나 더 드릴 수 있지 싶어서 꼬바꼬박 써 넣곤 합니다.


11. 시간의 잔상 필자로 들어오시기 전에 단편 게시판에 올리신 작품 중 "아더왕과 원탁의 탐정들"에서 주인공의 친구이자 사실상 화자라고 할 수 있었던 인물이 곽재식인데요. 그 사람이 진짜로 본인을 모델로 했는지, 전혀 상관없는지, 전혀 닮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에게 본인 이름을 대담하게도(!?) 붙인 이유는 무엇인지 여쭤볼게요.

첫번째 이유는 인물들에게 이름 붙여 주기가 골치 아파서 그랬습니다. 거기다 기왕 지어주는 이름 보통 작가를 1인칭 화자로 상정하면서 글을 읽게 됩니다만, 거기에 혼란을 주려는 장난을 한 번 해 보자, 뭐 그런 것도 있었습니다. 무개성적인 기능적 악당이 아닌 다음에야, 글 속의 등장인물이라는 게, 주연이든 조연이든, 작가가 생각하거나 느꼈던 여러 감정, 생각들이 추출되고 편집되어서 나오곤 하지 않습니까? 그런 점을 한 번 드러내 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자신을 모델로 했다기 보다는, 제가 만드는 이야기를 밑에서 꾸미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글을 쓴 곽재식과 글 속의 곽재식이 하는 일이 같은 셈입니다.


12. 재식님의 작품에는 '연애'가 화두 내지는 주제로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는데 남자와 여자, 연애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옛날에 잠시 메모해 두었다가, 검색엔진에 잡힌 덕분으로 여기저기 퍼져나간 글 하나를 인용하고자 합니다. 너무 오래전에 써 둔 것이라 좀 어설픈 데가 많긴 합니다만, 생각이 많이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검색해서 Copy&Paste 하면서 다시 한 번 더 읽어보니까, 유치함에 닭살 돋기가 한량없습니다. 용서 부탁드립니다.

- 인용 글

지금 이 백문백답 자기소개를 만들면서 참고하는 사이트의 37번 항목이 뜬금없이 '사랑이란'이다.
뭐, 무슨 이야기를 하라는 거냐.
그러나 최근의 정황상,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하게 되면 갑자기 여기에 대해서 당연히 인용하게 될 수밖에 없는 말이 있다.
"사장님은 거울도 안보세요?
도대체 작업이 안되는 얼굴이잖아요.
그래서야 박민주라는 여자가 호르몬이 땡기겠어요?
사람이 첫눈에 뿅갈때 뇌에서 도파민이란 화학 호르몬이 분비되거든요.
독타민이 분비되는 기간은 18개월이고, 단순히 정신적 사랑에 관련된 호르몬이죠.
반면 육체적인 사랑에는 옥시토신이란 호르몬이 관여하는데 일명 사랑의 호르몬이라고도 하죠."
뭐 어디에 나오는 말인지는 알 사람은 그냥 알고, 모르는 사람은 그냥 대강 뭐 어떤 거의 일부겠지 하고 상상하고 넘어가면 된다.
호르몬이 땡기는 게 사랑이라는 게 얼핏 들으면 냉정한 알코올 냄새나는... 어감이 이상하군. 정정. 얼핏 들으면 소독용 알코올 냄새나는 냉정하고 재수 없는 과학자나 의사의 대사지만, 사실 뭐 그렇지도 않다.
어떤 사랑하는 사람을 단지 먼발치에서 보기만 해도. 온몸에 그 사랑의 기운이 흘러서 눈 빛. 볼. 입술. 심장. 손가락 끝에 이르기까지 찌릿찌릿한 느낌에 가까운 긴장이 흐른다른 것. 나름대로 많이 로맨틱하지 않나.
사랑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될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사람이 세상을 태어나서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최고로 기쁜 느낌을 줄 수 있는 기회임은 틀림없다.
전에 기뻤던 순간에서도 말했던 것 같은데, 멋있는 여학생한테 용기 내서 무진장 떨면서 데이트 신청했는데, 먹혀들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좀 더 극적인 경우를 상정하자.
아주 심도 있게 사랑스런 여학생이 있다고 치자.
얼마나 사랑스럽냐면. 평소 때는 이놈 저놈하고 농담 따먹기 잘하는 나이지만, 그 여학생한테는 왠지 너무 멋있어 보이려고 하다보니까 어림없는 개폼만 잡으려다가 결국 실패 내가 생각하기에도 추한 모습만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여학생과 뭐 친해질 기회가 있겠냐.
결국 서먹서먹한 관계인데, 보기는 좋잖아. 먼발치에서 그냥 넋 빼놓고 감상을 하는 것이 주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언제 길가다가 마주치지나 않을까 하는 망상을 자주하고.
그래서 심지어 그 여학생이 자주 다니는 곳으로 자기도 괜히 다녀보고.
아주 가끔은 그 여학생이 나오는 꿈을 꿀 때도 있고, 꿈속에서는 영화처럼 그 여학생과 일이 잘 풀리기도 하고.
한편 자기 말고 다른 남학생이 - 이 남학생이 좀 한심한 놈이거나 나랑 원한 관계가 있으면 더욱 효과 만점 - 집적거려 좀 가까워진 듯싶으면 그렇게 배 아프고 질투 나고 짜증나기 그지 없는 그런 대상이 있다고 치자.
심지어 공부를 잘하거나 돈을 벌거나 성공하는 것조차도 항상 '성공해서 멋진 모습으로 저 여학생 앞에 나타나면 되게 폼나겠지' 하는 염두가 떠나가지 않는 상황에서 목표로 두고 노력하게 되는 그런, 대형 그레이트 그랜드 사랑스런 여학생이 있다고 치자.

어느 비온 뒤에 개인 멋진 날.
심지어 환상적인 무지개 마저 보일 수 있는, 그러나 아직 촉촉히 젖은 도시의 청량함이 가득한 그런 날.
딱 적당한 살짝 시원한 산들바람이 볼에 미묘하게 느껴지는 데.
그 여학생이 돌아보는 모습에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그런 세상의 모습과 완벽히 어울리는, '헉'하고 왠지 숨이 막힐 듯만한 느낌이 드는 신선한 - 형용사가 좀 이상하다만 - 그런 감동이 있는 것인데.
옆에서 딱 곽재식 같은 놈이 바람을 넣는 것이다.
"야, 인생을 한 번 살지 두 번 사냐. 잘되면 초특급 금괴로 가득 찬 보물 상자가 있는 보물섬 발견이요, 못되어도 본전인데. 겁나는 건 좀 쪽팔리는 것 뿐인데. 아쉬울게 뭐냐. 밀어붙여라."
온갖 감언이설로 바람 넣는 친구놈과, 마음속 살짝 이는 '세상에 온갖 이상하게 생긴 넘들도 잘만 멋진 여자랑 다니던데, 나도 그 '이상하게 생긴 넘들'만큼 못할 건 뭐냐. 김국진도 이윤성이랑 결혼해서 애가 생긴다는데.'라는 오기에 가까운 어떤 세상의 불공정함에 대한 약한 분노감.
그리고 무엇보다, 이 아름다운 세상의 날씨와 그 아름다움의 근본적인 원인인 이 아름다운 여학생.
이 세 가지 원인 때문에 그 날 따라 살짝 미쳐서 이 여학생에게 다가가서 말을 하는 것이다.
"사실 옛날부터 너 정말 좋아했어."
일 수도 있고. 최근 들어 직접 초장에 면상에 대고 사용하는 말로는 활용 안되는 듯 하지만,
"사랑해."
일 수도 있겠지만.
아니면, 좀 이상하게
"야 오늘 날씨 정말 좋지 않냐. 이 시멘트 건물과 아스팔트 바닥이 젖어있는 느낌하고 아직 하얀 뭉게구름이 좀 남아 있는 파란 하늘하고 어울리니까. 이런 날씨 좋잖아...."
따위로 말을 시작해서 결국.
"너도 정말 예뻐 보인다."
로 나가는.
어쨌거나 이렇게 이 오랫동안 생각해 오던 사랑스런 여학생에게 이렇게 직접적인 상호 작용의 첫 손을 내밀었는데.
감격적이게도, 그리고 놀랍고도, 가슴 벅차오르게도.
아.
이 여학생도 사실은,
사실은 말이지.
가끔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내 생각을 하며 보내는 그런 날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 그러니까 그 여학생도
사실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때 느껴지는 자동으로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고, 의식과 마음은 이미 사랑의 기쁨으로 하늘 끝을 날고 있기에 미소가 떠오르는지 표정관리가 어떤지 생각도 할 수 없는 즐거움.
그야말로 세상의 주인이 되어 그녀와 함께 무지개 위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
무슨 일이건 다 해낼 수 있을 듯한 그 짜릿한 기쁨.
그것이야 말로, 인간이란 제한된 존재로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멋진, 그야말로 인생을 걸고 도전해 보아야 할만한 감동 아니겠는가.

더하기.

만약. "좋아했어."
해도, "그러냐? 그건 정말 고맙네. 그런데... 난 어쩌고 저쩌고 하니. 부담되네."
라는 말을 듣거나.
진지한 표정으로 "너도 정말 예뻐보인다." 해도,
"그냐? 헛소리 하기는. 너 어디 가냐? 난 밥 먹으러 갈래. 빠이빠이."
라는 사실상의 무관심 내지는 회피를 당했을 시에는.
꽤 좌절감이 분명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이 좌절감은,
방금 내가 행한,
이 여학생에게 다가가서,
뭔가 한 번 수작을 걸어보려고 할때 느껴지는 두근거림과 떨림.
자신에게 자꾸 용기를 내도록 획책하면서 심장을 진정시키고, 그러나 또 심장의 박동이 귀에 들리는 그 느낌.
이런 모든 멋진 모험과 기대, 짧은 순간에 온갖것이 꿈처럼 붕떠서 교차하는 그 강렬한 어떤 심리적인 느낌은, 비록 그 결과가 실패한다고 해도, 그 자체만으로 인생에 있어서 일생일대의 기회를 경험할 수 있다는, 사랑하는 사람만의 행복이라고 본다.

내 생각에 사랑이란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13. 재식님의 글은 단편이라기에는 길고 중편에 가까운데요.
감상들마저도 상당히 길다는 특징을 갖고 있었어요. 뭐든지 글로 써 버릇 하는 타입이신지요? 아니면 단편 소설의 경우에는 조금 다른 과정을 거치시는지요? 글쟁이로서 자기의 작업 스타일을 정의한다면요?

뭐든지 글로 써 버릇하는 타입 인가 봅니다. 1번 부분의 답도 이렇게 길고 장황하게 썼으니. 누차 지적도 당했고, 또 스스로도 느끼듯이, 멋진 표현, 그럴듯한 시적인 문장을 만드는데 재주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만들고 싶은 장면, 생각나는 대사를 간단하게 옮기는 것에만 치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말이 꼭 술상 앞에서 잡담하는 것 마냥 마냥마냥 길어지는 것이지 싶습니다.


14. 장편 쓰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있습니다. 심지어 써 둔 것도 있습니다. 무진장 통속적입니다. 그런데, 대하 장편이 아니라 얇은 책 한 권 정도의 길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좀 긴 중편 쯤 되는 길이기 때문에, 그냥 거울 단편란을 통해 올리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15. 마찬가지로 전업 작가를 꿈꾸진 않으시는지요?

잠자는 시간에 푹 자는 편입니다. 중간에 별로 깨지도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꿈은 한 달에 한 두번 정도 밖에 안꿉니다. 그렇습니다만, 작가가 된 저 자신이 꿈에 나온 적도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예, 뭐, 문예창작과 국문과 이런 근처라든가, 글쓰기 교실, 이런 곳에 별로 가보지를 않아서 요즘 분위기는 모릅니다만, 작가를 하면 입에 풀칠하기 힘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입에 풀칠도 좀하고, 나아가 겨울철에 안락한 외출을 위해서 입에 립글로즈 비슷한 것 칠도 좀 하고 하려면, 나아가 사랑하는 처자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고 자식농사 지으며,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기 위해서는 다른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들 하더군요. 전업작가라는 것이 왠만한 자신과 용기, 기회, 시간, 상황, 믿어주는 주위사람이 동시에 있지 않으면 도전하기 좀 힘든 거 아닌가 생각합니다.

16. 음악 방송 때문에 블로그에 들러 봤더니 상당히 다양한 분야에 대해 글을 남기셨는데, 글과 일 이외에 자신을 가장 사로잡는 분야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리고 왜 그런지요?

사로 잡는 분야라... 아무래도, 사냥이나, 경찰특공대 인질구출작전, 주요인사 납치 특수부대 이런 쪽이, 무엇인가를 "사로잡는 분야" 겠습니다....만, 아직까지 그런 쪽에 정말로 사로잡힌 적은 없습니다. 평화롭게 인생을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남에게 사로 잡히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영화를 보면, "없애버려~" 이러는 악당에게 걸리는 것보다는, "반드시 산 채로 잡아와야 한다." 이러는 악당에게 걸리는 게 더 유리해 보이긴 합니다만...

시간 없이 늦게 답장을 보내드리는 주제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타이핑 하면서 헛시간과 아까운 인터넷 트래픽을 소모하고 있다니, 죄스러울 뿐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비슷하죠 뭐. 저도 영화도 좋아하고, 노래도 좋아합니다. 제가 쓴 것에서도 뻔히 보이듯이, 노래는 옛날 유행가들이랑 오페라에 나오는 노래들을 좋아합니다. 국립오페라단이 공연을 할 때는 웬만하면 가서 표를 사서 보곤 합니다. 오랫동안 보아오던 가수들이 많으니, 정 드는 것 비슷하게 되었습니다.

또 제가 뭐에 사로잡히면 좋을까나... 예, 여행 다니는 것도 좋아합니다. 일정 없는 여행, 나아가서 목적지 없는 방랑, 그런 것을 주로 좋아합니다. 또, 또 뭐가 있냐면, 쓸데없이 맥주집에서 오후부터 맥주마시는 거 좋아합니다. 공유일 오후에 청계천 근처에 맥주집에 가시면 대개 제가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코메디, 농담, 고전해학 찾아 보고 음미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매달 사 보곤 하는데, 되돌아보면 농담만 읽은 달이 팔할입니다.


17.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씀 한 마디 해주세요. ^^

오늘 무슨 말이 더 필요 하겠습니까! 여러분, 남은 2005년 - 조금밖에 안남았습니다만 - 잘 보내시고, 2006년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댓글 1
  • No Profile
    oz 05.12.31 12:22 댓글 수정 삭제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한동안 드나들지를 않아서, 곽재식님 인터뷰가 있었는 지도 몰랐네요. 알았으면 이것저것 질문을 생각했을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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