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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절영독경3, 37호 감상

2006.07.28 23:3807.28

M. 절영 ( m e l c h i z e d e k @ n a v e r . c o m )



왁자지껄한 특집호가 끝나고 다시 차분한 메인메뉴로 돌아간 37호 시간의 잔상에는 그리 많은 글이 올라오지 않아 있었다. 업데이트 후 상당한 시일이 지나고서야 대문을 들어섰기에 쫄아든 시간의 잔상 크기 자체에 놀라기도 했지만 아주 활발해 보이는 댓글 표시에 더욱더 놀랐다. 역시 시기를 잘 타고나야 하는 것인가...라고 생각하며 메뉴를 클릭했다. 그리고 그 댓글-즉 관심으로 치환할 수 있을-들이 단순히 시기상의 문제라고만 할 수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그 세 소설 모두가 읽는 이로 하여금 말많게 생각많게 하는 글들이었던 것이다.

#항상 나와 대출도서가 겹치는 그(혹은 그녀?). 책에는 친절히(?) 펜으로 줄을 그어놓기까지?! 그가 누군지 정말 궁금하다. 게다 시한부 인생인 나에게 중요한 도서 하나를 목전에서 대출해 갔다. 이젠 참을 수 없어. 대체 누구야!#
**과도(過度)한 스포일러 대량 있음**
[355서가]는 대학생 시절을 지난 누구나라면 한번쯤은 겪어 봤을 소재로 시작된다. 이런 소재로 유명한 멜로(?) 소설도 하나 있다 보니 제대로 감정이입하고 궁금증을 가진 채 결말을 기대할만도 하다. 물론 기대완 다른 식으로 재미를 선사하지만. 미스테리에서 멜로(단순히 화자와 다른 성이란 이유로 끝까지 가능성을 놓지 않았던 구태불쌍한 타자에게 묵념을.)를 거쳐 허무한 호러에 이르르기까지, 이 소설이 끝까지 강한 흡입력과 유쾌함을 잃지 않은 것은 글의 소재가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찾는 책은 번번히 없었던 때의 낭패감―특히나 그것이 필요에 의한 것일 때의 안타까움, 그리고 머리를 심난하게 만드는 공공도서의 낙서자국들을 대했을 때의 분노 등을 느꼈을 사람이라면 유쾌하게 읽었을 것이다. 고지식하고 약간은 신경질적이기까지 화자가 우스워 개그물이 되는가 싶다가도, 끝까지 학자연한 태도의 서술이 글의 현실성을 놓지 않게 만든다. 하나의 헤프닝이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원인결과가 논리는 좀 떨어져도 독자가 개연성을 느끼게 만드니 결론까지도 제대로 감정이입이다.
이런 거, 정말 유쾌하고 좋음.

#뭐 하나 부러울 게 없는 송진혁 교수. 괜찮은 직업에, 수완좋게 프로젝트도 따 왔고, 잠자리를 같이 할 섹시한 여자친구도 한명(?) 있다.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맥주를 홀짝홀짝 마셔대는 이상한 감사원 뿐. 나는 잘못한 게 없어! 아니, 잘못한 게 없어야 해!#
[흡혈귀의 여러 측면]은 [355서가]와 마찬가지로 제목이 많은 걸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 제목이 무얼 의미하는가 궁금해하기를 독자가 잊어먹을 즈음에―그러니까 결말 즈음에― 뒤통수 탁 치면서 그래서 그런거야 임마 하는 것 같은 재주를 부린다. 그러나 [흡혈귀의 여러 측면이 좀더 사람을 한 순간 움찔하게 만드는 단편스런 결말을 가지고 있는데, 제목에 박혀 있는 저 부담스러운 ‘흡혈귀’라는 단어가 도대체 언제 등장할 건더기가 생기느냐는 호기심을 나름 재미있게 풀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겐 이래서야 요즘같은 세상에 흡혈귀도 살기 힘들겠군, 이라는 망상을 갖게 하는 단편이었다.
경험 지식에 바탕을 둔, 단단한 기반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이 작가의 글은 한 번 드라마로 옮겨진 적도 있고([토끼의 아리아, 맥주의 마음]mbc베스트극장) 소설이 그럴듯한 현실기반이라 영화시나리오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작가의 여러 가지 장점 중에서도 등장인물의 속을 뻔히 들여내보이는 것 같은 서술을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영상편집물보단 원본이 더 좋다. 특히나 느글느글하고 적당히 비리 저지르고 필사적으로 살 구멍 찾는 아저씨 캐릭터상 구현은 거의 도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보는 바다. 이번 호 작품 같은 것도 이 사람, 굉장히 나쁜 사람이긴 한데 살 길 찾아 빨빨 거리며 머리 굴리는 거 보고 있자면 어쩐지 감정이입 되어 나도 끙끙거리게 된다. 어쩌면 그래서 더 결말이 충격적이었던 걸지도.
너무 감정이입했어. 으으.

#이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이다.#
종이 먹는 남자 이야기에서 이미지 세상의 여백으로 내용이 확대된다. 역시 로비(콜린)답다. 책의 내용과 강연회가 있는 현실이 겹쳐질 것을 처음부터 상상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나름 다른 방식으로 뒤통수 쳐오는 글이랄까. ‘이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다’ 라...  마치 황량한 파이 이야기를 읽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를 기둥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다. 어쨌든, 결말에 이르르면 상관없어 지는 것이다.
중요한 건 독자님들이 댓글로 달아놓았으니 길게 얘기해봤자 사족.


p.s 시간의 잔상과 37호의 다른 단편들은 느낌이 확연히 달라 평소보다 훨씬 색다르게 느낀 건지도 모르겠다.
p,s2. 흡혈귀단편선을 읽었기 때문일까. 이 모든 글이 흡혈귀 소재와 연관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자신이 스스로는 충분한 혈액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심각한 병에 걸렸으며...’(355서가) ‘역겨웠다. 그러나 그는 게걸스럽게 쭉쭉 피를 빨아 먹었다.’(흡혈귀의 여러 측면) 그리고... 종이바깥의 영화...는 모르겠지만;; 그러고보니 독자우수단편까지 흡혈귀. 요즘 거울은 흡혈귀 천국이로구나.
p.s3. [355서가]에 덧붙여 거울에는 도서관 유령이 하나 더 서식한다. 자유게시판에서 찾아볼 것.
http://mirror.pe.kr/zboard/zboard.php?id=g_free&page=asc&no=2053
p.s4. [종이바깥의 영화]가(아니, ‘도’) 에셔의 그림과 닮았다는 이야기에 네이버 검색을 해 봤다. 공감가는 글이 있어 잠깐 인용해본다. ‘많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이와 비슷한 느낌을 작품들을 해왔지만, 에셔의 작품 세계가 그들과 다른 가장 큰 이유는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작품은 그것이 일상세계와 다른 것이라는 비 이성적 현실이라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게 하는 데 반해 에셔의 작품들은 아주 이성적으로 보인다는 데 있다.’ 이거 마치 작가 들으라고 써 놓은 글 같잖아!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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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명훈 06.07.30 14:03 댓글 수정 삭제
    확실히 거울은 작가들만 득실거리고 감상을 글로 풀어낼 사람이 적은데, 그런 역할을 혼자서 맡아 하시니 힘드시겠어요.
    이 꼭지야말로 리플이 서른 개쯤 달려야 하는 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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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아 06.08.01 17:32 댓글 수정 삭제
    도서관 소재로 유명한 멜로(?) 소설이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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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영 06.08.01 23:12 댓글 수정 삭제
    배명훈/힘들진 않아요.전에 할 때는 좀 부담가지고 썼는데요, 이젠 제 한계를 아니까요.^^ 그저 아무 결론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한번씩 기분이 쭈글쭈글(;;;)해지긴 하지만요. 흐흐.

    진아/하하. 멜로 아니에요.;;;;'밑줄 긋는 남자'요. 저 딱 읽는 순간 그 소설 생각나더라구요. 그래서 결말이 더 웃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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