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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거울에 바란다

2006.06.03 01:1706.03

거울 운영자이신 진아 님의 메일은 솔직히 좀 무섭습니다. (하하)

저는 환타지 읽기 Reading Fantasy (http://readingfantasy.pe.kr) 라는 작은 환상소설 홈페이지의 관리자, 김태희 입니다.

저희 홈페이지도 벌써 4년이 가까와오는데... 거울이 생긴지도 3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군요. 처음에 거울이 생겼을 때에는 워터가이드가 있어서, 뭐랄까 상당히 대조가 많이 되었는데,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워터가이드는 사라져버렸고, 거울은 여전히 있습니다.

저는 거울에 자주 들어가는 편이 아닙니다. 가끔도 들어가질 않습니다. 진아 님과 연락이 닿으면, 그제서야 한 번 메인 페이지, 그리고 커뮤니티 페이지, 그리고 창을 닫습니다. 꽤나 인터넷을 많이 즐기는 편인데도, 거울에는 발걸음이 닿질 않습니다.

당연히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발걸음이 닿질 않을까. 개인적으로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열 번째 세계라는 글에 대해서 서평을 하나 드린 적이 있습니다. 꽤나 공들였고 열심히 했지만, 그닥 좋은 서평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거울 독자 분들도 대번에 알아보시더군요. 이런 글 보러 거울에 오는 것이 아니라는 댓글이 달린 적이 있지요. 그리고 나서는 그나마 이틀에 한 번은 들어가던 거울에 들어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픈 상처를 꺼내어서 괜히 상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에...

일련의 사건들을 계기로, 거울은 프로를 지향하는 공간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마추어입니다. 즉, 책으로 먹고 살 사람이 아닌, 단지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이라는 이야기이죠. 조금 빗대어서, 저는 보드게임을 좋아합니다. 뒤늦게 취미가 들었는데, 집에 한 100개 이상을 모으고 있습니다. 조금 희귀한 보드게임을 모은다고 이베이질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와이프는 모릅니다... 쿨럭) 그렇게 보드게임을 즐기다보니, 보드게임을 생업으로 하시는, 소위 보드게임방 주인분들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수의 분들은 보드게임이라는 문화가 가진 아날로그성에 반하셔서 아예 그것을 직업으로 가지신 분들도 상당했습니다. 그래서 게임에 대한, 게임이 지닌 아날로그성에 대한, 그리고 사람 냄새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게 같이 하다보면... 어디에선가 맥락이 얽히는데, 그 곳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바로 '돈'에 대한 이야기이더군요.

저는 결코 '돈'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환상 소설 부류에서도 좋은 작품을 담보할 수 있는 시장이 확보되어야 하고, 시장의 밑바탕을 이루는 독자군이 형성되어야 하지요. 그래서 전업작가도 생기고, 전업작가를 추종하는 맹렬 회원도 생기고, 끊임없이 전업작가를 출판할 수 있는 출판사도 생기고. 저는 거울의 두 번에 걸친 단편선, 그리고 여러 차례 이루어진 e-book 이나 작가 단편선들이 이와같은 저변을 만들어가기 위한 하나의 작은 시도였고, 비교적 성공적이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울에는 아마추어, 거칠게 이야기하면 상품을 구매할 소비자군의 층이 빈약합니다. 글을 올리는 사람도, 글을 들어와서 읽는 사람도. 어떻게 보면 상당수가 프로를 지향하는 분들이지, 저같이 좋은 글을 쓰지도, 좋은 감상을 만들어내지도 못하는, 단지 책읽기 좋아하고 글읽고 쓰기만을 좋아하는 아마추어에게는 거처할 공간이 그닥 크게 보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아, 여기에서 프로와 아마추어라는 단어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이 있었으니, 대비하여 의미를 전달하려는 용도로 쓴 것임을 헤아려주시고 읽어주시길).

조금 더 막나가보면(히히), 워터가이드는 말 그대로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끊임없이 담론을 만들어내고 재생산해 내었습니다. 몇몇 말도 안되는 논리를 들고 나타난 예의없는 사람들에게 휘둘린 바도 없지 않으나, 거칠게 말해서 초보부터 고수까지 모두모두 사고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이야기의 장을 만든 바가 있습니다. 다들 안타까와하신 것 중에 하나가, 워터가이드 자체의 존폐보다, 그곳에 집적된 자료의 손실이었지요. 거울에 그런 공간이 있는지 한 번 여쭙고 싶습니다. 어떠한 계기에서든지 처음 환상 소설을, 아니 (속칭) 장르 문학이라고 하는 분야를 접하고 환상소설웹진 미러에 와서 도대체 무슨 글을 읽어야 할지 알 수 있을까요? 혹여 자기도 환상소설을 한 번 써보고 싶어서 들어왔는데, 치기어린 마음에라도 거울의 연재 공간에 글을 올려둘 마음이 생길까요? 그런 초보들에게, 유조아나 가라, 고 말할 수는 없잖습니까... (흐흐)

그러나, 한 편으로는 거울이 워터가이드를 통해서 얻은 교훈도 상당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운영진이 날고 기어도, 예의 없고 경우 없는, 게다가 말도 안되는 논리로 중무장한 유저 두셋만 합심해도 게시판은 아작나죠. -_- 저희도 얼마 전에 디씨 판갤에서 마음 다잡고 싸움 걸러 오신 분이 한 분 계셔서 심심찮은 적이 있었습니다. 사이트가, 이영도 씨 빠돌이(!)들이 많다고 소문이 좀 나서... 그런 글로 한 번 재미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거울의 운영진이 아니니, 요모조모 돌아가는 것을 가지고 유추해 본 결과, 거울은 프로를 지향하는 준 작가들의 모임인데, 문턱이 조금 많이 높다, 라는 것이 거울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입니다.

저는 거울이 조금 더 독자들에게 친숙하여진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팬관리죠.

지난번에 거울 중단편선 1에 대해서 세 편에 걸쳐서, 아마추어 독자의 시선으로 읽은 후에, 한 편 한 편에 대해서 감상을 썼습니다. 두 편 쓰다 말았죠. 거울에 글 싣는 분들은 자신의 감상에 대해서 댓글 하나 안 주시더군요. 아마추어 독자의 작은 열성이 부끄럽게 말이죠. 저도 세 편 쓰다가 그냥 말았습니다.

글은, 소통의 도구이나, 말보다 훨씬 위력적입니다. 시간차가 존재하니까요. 작가가 발화하면 독자는 작가를 곱씹을 시간을 받습니다. 말은 그런 것이 없죠. 대화는 동시간에 이루어지니까요. 글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정제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인터넷 연재에 대한 피드백은, 독자와 작가의 거리감을 아주 많이 줄여주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웹진, 인터넷 연재 등의 메리트입니다. 그러나 뭐. 그렇죠.

예전에 뚝섬에서 거울 단편선 1과 하이텔 환타지 동호회 단편집을 팔 때, askalai 님을 뵌 적이 있네요. 싸인도 받았습니다. (으쓱으쓱) 거울에 연재하시는 분들은, 싸인은 차치하고라도 독자와의 거리감을 줄이기 위한 작은 팬서비스는 하고 계신가요?

진아님 InnerView 바로가기

예전에 진아 님께서 창간 때 해주셨던 InnerView 입니다. :) 다시 한 번 읽어보면서 짧고 긴 우답을 마치겠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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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야 헌처크님은 환타지 창작 및 비평 사이트인 환타지 읽기 Reading Fantasy (http://readingfantasy.pe.kr) 를 운영하고 계십니다.
댓글 3
  • No Profile
    yunn 06.06.04 09:58 댓글 수정 삭제
    소통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
    (그나저나 팬서비스... 팬서비스... ^^;;)
  • No Profile
    배명훈 06.06.04 15:54 댓글 수정 삭제
    그렇군요. 팬관리. 동감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작가들도 조회수와 리플을 바라보다 눈이 빠지지 않았을지. 가끔 바닥에 굴러다니는 눈알들을 목격하거든요. 저도 이미 애꾸눈이구요.
  • No Profile
    절영 06.06.05 14:34 댓글 수정 삭제
    핵심을 바로 찔러주셨네요. 아마추어 공간 부재와 빈곤한 소비자층...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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