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축하합니다.

 맨 처음을 무슨 말로 시작할까 고민했지만 역시 이게 최고일 것 같군요. 그럴 듯한 수식어와 유려한 표현들로 점철된 문장이라면 더 좋겠지만 능력도 안 되고 거울의 분위기에도 어울리지 않겠지요. 축하드려요. 더없이 축하드리고 감사드립니다. 3주년이라니,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특집호 기사를 맡은 저 자신에게도 축하하고 싶구요. 어이, 너 정말 대단하구나. 굼벵이 주제에 무슨 재주로? 라고 반문하고 싶기도 하구요. 필자나 거울독자들에게 정식으로 인사드린 적 없는 뜨내기 같은 사람인데. 편집장님은 그래서 더 선택했다고 합니다. 사실 이 원고 받아들고 ‘난 거울에 바라는 거 없어요, 이대로만 쭈욱 나가주세요. 나는 항상 부비부비할 겁니다.’라고 한 줄로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는데(진심으로) 그러면 여기서 방금 이 글 클릭한 여러분과 여기까지 나아온 거울 관계자분께 너무 염치없는 짓이라 어떻게 글줄 좀 늘릴까 고민했지요. 방법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 길게 늘려쓰기. 아마 편집장님이 저한테 바란 것도 그거겠지요. 독자대표니까, 내 글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분들만 댓글다세요. 오늘만은 필자분들은 불만은 접수하지 않겠어요.(어, 저기서 부들부들 손떠는 필자분들, 독자도 겸하신다고 잡아떼세요. 사실이잖아요? :)


 거울 돌아보기

 어, 난 여기 세상(online & fantasy) 잘 모릅니다. 입문한지 얼마 안 됐지요. (아는 것보다 말하는 게 훨씬 많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총대 맸지요.) 하지만 거울의 3년을 돌아보려면 여기 세상의 그 앞 년수까지 헤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쭈욱 연결된 역사니까, 그걸 생각하지 않고 거울만 보는 건 의미없겠죠.
 PC통신(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개인홈피(라니안, 라다가스트…)/거대 커뮤니티. 너무 얼토당토않게 나눠버린 느낌도 있지만 대충 온라인 역사가 아닐까 합니다. 동호회 시절은 가장 젊었기에 많은 결과물이 쏟아지고 다양한 논의들이 일어났었죠. 역사에 비유하자면 철의 발견정도라고나 할까. ‘판타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 하나만 있으면 밤을 세울 수 있던 열정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이 열정에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팬텀층이 넓어집니다. 그리고 통신망의 힘이 약해져서 개인홈페이지로 흩어지기 시작해요. 이것이 두 번째 시대 지성의 발현이랄까요. 하지만 사람수는 많아진만큼 환상의 범위도 넓어져서 취미가 돈이 되고, 능력이 됩니다. 이전 시대의 성과물들이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하지요. 학교도 갈 수 있게 만듭니다. 그래서 단순한 취미활동으로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기획되기 시작해요. 라니안이나 라다가스트(아, 이게 이제 추억의 이름이 되어버렸다니)가 개인 홈피에서 시작된 자연스런 확장이었다면 조아라나 에프월드 같은 곳은 기획부터 사업적 의미를 둔, 거대 커뮤니티 형성이었지요. 자아, 메트로폴리스의 등장입니다.
 이것은 다시 초기 때처럼 단합된 단체의 형태로 돌아갔음을 뜻하는 것일까요? 아니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장르를 즐기는 대중으로 ‘흡수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장르의 힘은 예전보다 더 세진 것 같지만 ‘우리들 자체의 힘’이 그만큼 성장했는가는 미지수라고 생각해요. 문화전반에 장르가 인정받으면서 오히려 우리는 만들어가는 것에서, 시스템이 만들어낸 환상을 소비하는 측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두를 네티즌이라고 뭉뚱그려 네이버 폐인이나 디시인의 대세를 넷심으로 확장 보도하는 것처럼요. 블로그가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이건 두 번째 시대의 개인홈피 같은 것이지 첫 번째 시대와 같은 활화산 폭발력을 기대하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거울이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해요. 조아라 같은 거대 커뮤니티가(저는 포털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의) 나쁘단 의미가 아니라, 그런 곳이 있으면 이런 곳도 있어야 한다는 상호 저울추 같은 의미로 말입니다. 시스템에 소속된 한 명이 아니라, 나 아무개 누구누구로 소리 낼 수 있는 곳, 그러면서 확실한 나침반을 가지고 나아가는 곳 말입니다. 이미 많은 것이 완성되고 숙성된 지금 옛날과 같은 격렬한 토론과 활발한 전진을 바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블로그는 방향성이 없고 시스템은 너무 느리고 제한되어 있습니다. 신세계는 아직도 멀었죠. 그러나 우리가 나아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줄 수 있는 곳, 그 곳이 저에게는 바로 거울입니다.


 필자들

 참 좋은 것은 작가들 간의 커뮤니케이션도 활발한 것 같다는 점입니다. 이거, 발전에 좋은 원동력이 될 거에요. 서로의 작품에 대한 코멘트만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서로의 창작력에 불을 지피는 뮤즈들이 되어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가릉이 시리즈 같은 것도 유쾌해서 너무너무 좋습니다. 까마득한 곳에 상주하는 신들의 장난을 지켜보는 것 같달까요?

 /시간의 잔상/ 꾸준한 성장판 지도는 재미있습니다. 작가들의 창작물이 쌓이는 거, 매우 즐겁습니다. 때로 공백이 생기기도 하는데(출판으로 인해서든 작가 개인의 사정이든간에) 모두가 그런 것이 아니라면 추측하는 것도 재미있으니까요. 다른 곳에서 봤던 좋은 작품의 작가를 찾아낼 때는 보물찾기 한 기분이지요. 마음에 들었던 단편 작가의 작품을 찾아내려면 많은 품팔이를 해야 하니까, 그런 점에서 거울의 시스템은 무척이나 편리합니다. 그리고 꾸준히 작가층이 늘어나고 있으니까 언제 내가 봤던, 이제는 희미한 기억만 가물가물한 작가의 최신작을 읽을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무척 가슴 뛰는 기대지요.

 /해외 단편/ 번역일은 잘 모르지만 읽는 데 어려움도 없고 재미있는 작품들이 꾸준히 올라와 주니까 좋습니다. 처음엔 한 쪽으로 치우친 것 같았던 느낌도 이젠 사라졌고 동서양의 번역되지 않은 장르 소설 전반을 읽을 수 있어 기쁩니다. 저 같은 능력 없는 일반 독자들은 그게 가장 좋고 감사하지요.

 /독자우수단편/ 독자우수단편선정은 흥미진진합니다. 말도 없고 탈도 없는 거울에 유일하게 떠들썩한 축제 같지요. 사건사고도 있었지만 그래서 더 활활 불이 지펴진 것 같아요. 항상 두근두근하며 열어보게 된답니다. 그저 읽는 것이 아니라 판별하기 위해 읽는 건 언제나 힘든 법인데 항상 매호 수고하시고 계신 듯 해서 감사합니다. 거울의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독자 참여 코너니까 더 떠들썩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마 그 코너 때문에 거울을 찾는 분도 많을 듯 하니까요. 어디서 그런 성의 있는 평가를 들을 수 있겠어요. 저도 참가해 보고 싶긴 한데 단편은 영 젬병이라… 언제 장편도 심사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

 /책의 향기/ 저는 매호 가장 먼저 이 쪽을 둘러봅니다. 이전에는 마음에 들면 사서 읽어보기도 했는데 요즘은 바쁘다는 핑계로 눈팅만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좋아요. 지성 포인트가 올라가는 착각이 든달까요. 이미 읽은 작품 이야기가 나오면 반갑고 읽지 않은 것들은 호기심이 동하죠. 이젠 거의 창작도 손에서 놓고 있다시피하고 커뮤니티에 참여도 하지 않고 있어선지 이 코너만이 나도 장르에서 같이 호흡하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이런 슬픈… 노병이 된 것 같군요ㅡㅜ)

 /기획물들/ 관계자님들의 아이디어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골치아플 수도 있을 코넌데 항상 신경쓰는 것 같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항상 그 쪽 질을 매번 떨어뜨리는 것 같아 죄송하기도 하구요.;; 이번엔 어떤 걸 기획하실까, 기대도 된답니다.

 /먼 여정/ 가슴아프게도 이 쪽은 정말로 먼 여정이 되어버린 느낌입니다.(게시판 제목을 다시 지어보는 건 어떨까요?) 장편 쓰는 게 쉽지 않다는 건 알지만 이건 어느 정도 전염병이 아닌가 싶어요. 모두 함께 멈춰버렸다… 라는 느낌? 거울의 가장 중앙을 차지하는, 꽤나 많은 비중인데도 힘들죠, 업데이트 찾아보기가. 작가로서는 이해도 됩니다. 장편이란 건 정말 자신만의 싸움이지만 어떤 면에선 그래서 독자들의 무조건적인 신뢰가 더욱더 필요하기도 한데, 거울에서 그런 걸 바라기는 어렵거든요. 장편이란 거, 앞에 몇 가지 잔가지가 신경쓰이기 시작하면 쓰기 어렵고 남 앞에 내보이기는 더욱더 어려워집니다. 거울의 작가라면 이미 보는 눈은 높으실 테니, 자신의 작은 실수도 용납하기 힘들고 아마추어는 아이디어가 막히기 시작하면 그걸 극복할 만한 문장력을 기대하기도 힘들죠. 신바람이 안 나니까. 다 이해하니까 힘냈으면 좋겠어요. 차라리 특단의 조치로 댓글을 모두 막아버려 완전히 자신만의 싸움으로(개인 게시판처럼) 만들던가 아니면 업뎃되는 것만 뜨게 하든지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역시 모든 건 작가 손에 달렸다고 봐요. 힘내세요.


 거울에게 바라는 것?

 없어요. 있다면 전부 나에게 바라는 것이겠죠. 좀 더 성실한 독자가 되고 싶고 장르 문학에 좀 더 눈뜨고 싶습니다. 그럼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주시고 많은 정보들을 던져주세요. 생각해 보면 제가 이렇게 부끄러운 글줄이라도 몇 줄 적어낼 수 있게 된 것도 많은 인터넷 선배들 덕분입니다. 포털보다도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 것은 판타지 커뮤니티의 토론과 댓글, 자게의 글들이었습니다. 나의 인터넷 인격의 많은 부분은 그 곳에서 만들어졌습니다.(그래서 이렇게 삐뚤어진 것일까요?;; 태생이 어디인지는 도저히 밝힐 수가 없겠군요.;;)
 거울의 필자분들, 작가진들, 편집인분들, 여러분은 이제 막 눈 뜬 많은 장르인들의 선배이기도 합니다. 책임감보다 즐거움을 저는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나아가는 건 이미 거울 자체입니다. 이 안에 올라타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요. 일부러 분위기를 띄우려고 노력하거나 많은 사람을 끌어당길 필요는 없습니다.(잘 아시겠지만.) 때론 힘들고 부질없어 보일지라도 내리지만 말아주세요. 꾸준함만은 항상 간직하시고 즐거워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의 치고박기, 사건사고, 재미있는 코멘트, 단순한 가쉽, 이런 게 다 흥미거든요. 원래 애들은 가르치려는 것 외의 것에서 더 민감하게 배우지요. 부담갖지 마시고 즐겨주세요. 저 같은 뜨내기가 들려도 그저 슬쩍 웃으며 눈감아주는 것 정돈 옵션으로 해 주시고요, 이왕이면 반겨주셔도 고맙겠습니다. 외부에선 거울이 분위기가 무섭다고들 하지요. 하지만 거울 초보 여러분, 걱정할 필요 없다고 봐요. 저는 첫인사도 하지 않았답니다. (자랑이 아냐!!)


 3년간……

 놀랍도록 잘 버텨냈다고 생각합니다. 잘 버텨낸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잘 해 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가장 확실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축전부터가 염려였고 시대는 하 수상하고… 거울은 조용하기 짝이 없는데 입소문은 꾸준히 나고 있는 모양으로 그 질면에서는 대부분의 장르 포털들도 이해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참으로 신기한 곳입니다.
 분석이라면 쑥스럽고 그냥 제 생각을 말하자면, 아마 그 꾸준함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뭔가 돈 될 구석은 전혀 보이지 않는데 날짜 꼬박꼬박 지켜서 업데이트 되는 것 보면 정말 신기하죠. 게다가 년수마다 책도 잘 내고 기획도 나름 좋아서 시기 별로 독특한 거 하나쯤은 내어주거든요. 독자측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잡지가 있을까요? 소식없는 만화잡지 허브에 비교하면 더 확실해 지겠군요. 상업지가 저 수준인데, 하물며 비영리 웹진이 이 정도 아니, 이렇게나 독자에게 신뢰를 심어준다면 잘 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관계자 분들에게 나름의 커리어로 쌓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작가 소개 책 옆면에 실리는 거죠. ‘이 작가 거울 출신이네.’ ‘그게 뭔데?’ ‘응, 장르 웹진 중에 꽤 유명한 곳인데 이 곳 출신 작가는 보증되어 있지.’
 한국판 어메이징스토리스 같은 잡지, 어때요? 저는 충분히 자격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M.절영님은 제3회 황금드래곤 문학상에서 독자 비평단으로 활동하셨습니다. 거울에는 11호부터 참여하셨으며 국내에 몇 안되는 장르 단편 비평가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댓글 5
  • No Profile
    가연 06.06.04 18:56 댓글 수정 삭제
    ㅠㅠㅠㅠㅠㅠ
  • No Profile
    yunn 06.06.04 19:42 댓글 수정 삭제
    이야, 정말 편집진에게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 말씀. 멋진 상상인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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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둥쓰 06.06.05 14:25 댓글 수정 삭제
    와... 마지막 말씀에 저까지 그냥 감동이..
  • No Profile
    절영 06.06.05 15:24 댓글 수정 삭제
    괜히 말만 길고 내용 없는 글줄이로군요. 언제나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하고 있답니다. 3주년 축하드리고, 감사드려요.^^
  • No Profile
    정말 거울이 더욱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절영님 글을 읽으니 앞으로 입소문을 좀 더 열심히 내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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