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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배명훈님과의 대담

2006.02.25 00:0202.25

 배명훈님에게 인터뷰 신청을 했다. msn을 사용하시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하셨다. 다행이다. 메일 인터뷰보다는 msn 쪽이 이야기가 더 잘 풀린다. 물론, 꼭 그런 건 아니다. 대화란 방식에 상관없이 늘 어렵다.

 내 사정으로 인터뷰는 밤늦은 시간에 하게 되었다. 총 대화 시간은 두 시간 정도였다. 이 대화가 재미있었을까? 판단은 독자 여러분에게 맡기겠다.

 배명훈님의 싸이월드 주소는 http://www.cyworld.com/maroha 이다. 이 인터뷰를 읽기 전에 명훈님의 싸이월드에 가셔서 거울에 올라오지 않은 다른 단편들을 읽어보길 권한다. 단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고, 어쩔 수 없이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될 이야기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최소한 이번 업데이트 때 올라온 글은 먼저 보고 이 인터뷰를 보셨으면 한다.

 명훈님의 글을 처음 본 것은 제2회 과학창작문예 공모전 수상작인 Smart D였다. 작년에 fool님과 ida님을 컨택한 것처럼, 이번 공모전에서도 좋은 분을 컨택할 수 있기를 바랐다. 만화부문에서 수상하신 소연님이 말을 전해주셨고, 명훈님은 혼쾌히 거울 필진으로 합류하는 걸 수락하셨다. 그간 메일로만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처음에는 아무래도 좀 어색했던 게 사실이다. 거기다 이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대화다. 이야기는 조금 딱딱하게 시작되었다.



 싸이월드에 올리신 글들은 언제부터 쓴 글들인가. 못 본 단편들도 여럿 볼 수 있었다. 거기 단편 쓰기 시작한 건 2004년 6월인가 7월인가. 제대할 무렵이다.

 그 전에 쓰신 글들은 온라인상에서는 읽을 수 없는가. 그것도 사실은 미니홈피에 다른 폴더로 있다. 공개는 안 해 두었다. 단편들로 된 연작이었다. 미완성 상태로 지금은 손을 안 대고 있어서 닫아 놓았다.

 혹시 그게 마로하 시리즈인가? 그렇다. 제목도 못 붙였다.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 명훈님의 싸이월드 홈페이지를 방문했다가 마로하 시리즈라는 글에 대한 이야기를 봤었다.

 단편 중에 매뉴얼이 그 시리즈에 들어가나? 시리즈에 넣을까 말까 했던 건데, 세계관은 공유하지만 연대 같은 게 조금씩 안 맞는다. 일단은 안 넣어 놨다.

 ‘매뉴얼’은 휴대폰 매뉴얼을 보며 마치 판타지 소설 같은 이야기를 읽어내는 한 소녀에 대한 글이다. 인터뷰 중 이 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잘 모르는 독자를 위해 마로하 시리즈가 어떤 이야기인지 대강 설명해주면 좋겠다. 사실 그것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할 수도 있다. 중학교 때 쯤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때까지 머릿속에서 맴돌던 이야기들이다. 언젠가 쓰고는 싶었는데 언제 쓸 수 있을까 기약 없다고 생각하다가 군대 가서 손을 대게 되었다. 어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주인공이 어느 날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어떤 소리를 듣게 되면서 시작된다. 내가 미쳤을까 아닐까 그런 고민을 하던 어느 날 세상이 멸망한다는 예언이 주어진다. 남자의 마음속에서 들리던 소리는 멸망을 되돌릴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는 믿지 않는다. 그러다 결국은 되돌리게 되기는 하지만. 되돌려진 후의 세계에서 이야기가 다시 진행된다. 이쪽 세계, 지구에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외계의 공격 때문에 허둥대고. 저쪽 세계는 마로하라는 여자가 등장하는 일종의 판타지 세계이다. 두 세계 각각의 예언자인 이 두 사람이 교감을 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매뉴얼은 1500년 전에 만들어진 양피지에 쓰인 글자는 한국어로 된 휴대폰 매뉴얼이었고, 한국에서 어린 아이가 읽던 휴대폰 매뉴얼은 고대 세계의 예언이었다는 설정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그런 식으로 멸망을 예언하는 사람들에 대한 단편들이 몇 개 모여 있는 시기가 있었다. 그것들 중 하나다. 하지만 마로하 시리즈는 어디에다 꾸준히 발표한 게 아니라 미니홈피에만 올리던 거라서,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조회수가 떨어지는 바람에 그냥 단편들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도 안 읽는 글 쓰기가 좀 뭣했다. 품질은 뒤로 갈수록 좋아졌는데, 판타지라서 제 주변의 "멀쩡한" 독자들은 흥미를 잃었던 것 같다.

 본시 장편이 1화와 마지막화사이의 조회수는 대략 열 배 정도 나더라. 클릭수가 아닐까.

 재미있게 읽어서, 기회가 된다면 마로하 시리즈도 더 읽어보고 싶다. 언젠가 다듬어서 내 놓을겠다.

 마로하라는 말이 부인을 높여 부르던 말이고, 그 말에서 마누라가 나왔다는 점도 재밌었다. 나도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날 인터넷 검색하다가 보고는 깜짝 놀랐다. 마로하라는 이름을 처음 지었을 때는 그런 의미인지 몰랐는데, 나중에는 정확하게 마로하의 뜻이 되었다.

 매뉴얼을 읽으며 우리 세계와 저 쪽 세계가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었다는, 원래는 같은 세계였다가 떨어져 나왔다는 설정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 설정이 맞다. 이름이 그렇게 일치한 건 완전 우연이었다. 마로하는 유목민 세계의 족장, 무당 뭐 그런 존재다. 터키어에서 아내를 "한음"이라고 하는데, 이건 "나의 칸"이라는 뜻이다. 마로+하와 완전히 똑같은 조어법이다. 마로하 쪽 세계에서 마로하의 존재는 족장, 칸이니까, 신기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구상하셨다면, 그 때 부터 SF/판타지에 관심을 두었다는 건데, 그 때는 SF/판타지 소설을 구해서 읽기 쉽지 않았다. 구상이었다기는 뭐하고, 그냥 그런 이야기가 머리에 맴돌았다. SF/판타지를 마구 읽고 떠오른 구상은 아니다. 그냥 그런 이야기가 마치 어디서 들은 이야기처럼 마구 머릿속에 맴돌았다. 차원의 세계에 접속을... 4차원의 세계에 접속하고 있으면 주위에서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 이상한 소리하고 그러니까.
근데, 지금 인터뷰 분위기가 너무 딱딱하다.

 명훈님의 제안으로 인사부터 다시 나누었다. 인터뷰를 신청해놓고 약속시간보다 늦게 시작하게 되어 마음이 급해진지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 분위기를 경직되게 만든 것 같다. 매번 인터뷰를 할 때 마다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다음에는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다음 인터뷰를 할 때쯤에는 새로운 문제에 부딪친다. 인사를 겸해서 몇 가지 잡담을 나누고 나니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다른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Military! Fantastic! - 군대에서 눈 치운 이야기 -}는 실화에 바탕을 둔 글인지, 글 속 교수님의 모델이 된 인물이 있는지 많이들 궁금해 하는 것 같다. 모델이 있기는 있다. 근데 우리 과에 있는 다른 학생들은 저마다 다른 교수님을 모델로 생각하고 읽었더라. 정작 내가 모델로 생각한 분은 한 학기 강의하고 가신 분인데. 다들 분명 이 사람이야 그러더라. 그래서 이건 선생님들 귀에 들어가면 큰일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교수님들이 모두 자신이라고 생각해버리는 일이 발생해버리면 곤란하겠다. 그래서 리얼리즘 소설은 왠만하면 젊어서는 안 쓰려고 한다. 오래 살아야지. 근데 조금만 현실세계와 가깝다는 느낌으로 쓰면 주위에서 자기 이야기 아니냐고 그런다.

 그만큼 보편적인 설득력을 가진 글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그랬으면 좋겠다.

 비슷한 궁금증이다. 여자 캐릭터 이름을 거의 다 "은경"으로 쓰는데 특별한 의미가 이쓴 이름인가? 없다. 최소한 나한테는 의미가 없다. 근데 어느 후배가, 자기 첫사랑 이름이 김은경이라고, 내 글 볼 때마다 기분 이상하다고 그러더라.

 뒷이야기 때문에 덜 아쉬워졌다. 같은 이름입 반복되면 흔히 작가의 첫사랑은 아니었나 기대하게 되지 않는가. 그냥 새 글 쓸 때마다 새 이름 짓는 게 너무 번거로워서 그랬다. 오해들 많이 한다. 뭔가 딱 떠올라서 지금 당장 써야 되겠는데, 여자 주인공 이름 짓느라 한 시간쯤 고민하고 나면 놓아버리게 되지않나.

 글 쓸 때 등장인물 이름이 마음에 안 들면 진도가 잘 안나가더라. 마음에 드는 이름 하나 정해놓고 가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그렇다. 굉장히 신경써야 새 이름 하나를 지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나름대로 같은 이름으로 나오는 글이 쌓이다 보니 재미도 있더라.

 아까 4차원의 세계에 접속하고 있으면 주위에서 이상한 시선으로 본다고 했는데, 글을 읽다보면, 정말 4차원의 세계에 접속한 사람 같다. 시각이 굉장히 재밌다. 칭찬이겠지?

 물론이다. 사실 그건 독서가 부족해서 그렇다.

 거짓말 같은데 진짜고, 진짜처럼 말하는데 거짓말이고, 은유/비유적인 의미의 말이 아니라 실재하는 사실이고. 요즘은 그게 좋더라. 사실과 허풍 사이를 오가는 거.

 그런 의미에서 이웃집 신화 즐겁게 읽었다. 오, 그런가? 최근 쓴 글 중에 제일 재미있게 쓴 글이다.


 화제를 바꾸었다.


 표현하기 좀 애매한데, 흔히 말하는 "주류 문학"과 "장르 문학"은, 둘 다 정의를 내리자면 골치 아프지만, 어쨌든 읽어보면 이건 주류 소설, 이건 장르 소설, 이라는 직감이 온다. 주류에서 장르의 코드를 수용한 경우와 장르에서 주류의 코드를 수용한 글을 읽을 때, 그게 어느 정도는 구별이 되는 게 사실이다. 근데 명훈님은 잘 모르겠다. 역시 모호한 표현이지만 명훈님 글은 분위기는 굉장히 주류 문학적인데 내용은 정밀한 SF에 가깝다. 정체가 뭐냐, 이런?

 이런저런 거 물어보자고 하는 인터뷰니까.(웃음) 어려서부터 SF를 열심히 읽으면서 글공부를 한 게 아니다. 주류문학도 역시 열심히 안 읽었기 때문에 주류문학의 작법과 장르문학의 작법을 둘 다 모르는 상태에서 쓰기 시작했다. "테러리스트"라는 단편이 대학문학상에 당선되고 나서 사람들한테 이  글이 어떤 글인지 설명해야 될 때가 있었는데 굉장히 고민했다. 이 글의 장르는 도대체 뭘까? 쓴 사람도 모르겠고 읽은 사람도 모르겠는데 심사위원들은 SF적 기법을 도입했다고 하고 정작 나는 그게 SF인지 모르겠고. 정말 본격 SF를 쓴 건 Smart D가 처음일 거다. SF의 정의가 뭐고, 우리나라에서는 어디까지를 SF로 보는지 등등을 두 달쯤 연구하고 나서 썼다. 근데 그거 쓰고 나서는 다시 군기가 빠져서 지금처럼 돼 버리고 말았다.

 장르소설이든 주류소설이든 소설을 많이 안읽는 편인가? 쓰는 것 치고는 많이 안 읽은 편이다. 그래서 최근 몇 년간은 아주 열심히 읽으려고 하고 있다.

 좋아하는 작가를 물어보려고… 인터뷰 때 마다 안 빠지는 질문이다. 침묵의 의미는 다음 질문이 막힐까봐였구나. 필립 딕의 SF 단편들이 좋았다. 짠한게. 번역되고 손에 쉽게 닿는 게 많이 없어서 그랬겠지만, 장편이 아니라 단편이 이렇게 재미있는 거구나 하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한 편 한 편에 녹아들어가 있는 그 음울한 정신세계나, 무엇보다도 결말의 임팩트. 영화화된 작품들 보면, 원작이 훨씬 강렬했다.

 필립 딕 소설들은 영화화 꽤 많이 되었는데 블레이드 러너를 제외하고는 원작을 못 살렸다. 원작과 별도로 보면 그냥 재미있게 볼 수는 있지만. 그게 신기했다. 그냥 영화 볼 때는 나름 재미있게 봤는데, 원작을 보고 나면 이건 수박 겉핥기구나 싶은 게 있었다. 만만만하지 않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다. 그 맛을 몰랐으면 SF는 안 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들 그렇겠지만.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냉동인간과의 인터뷰도 SF 쪽에 가까웠는데 재밌었다. 고전적인 뱀파이어도 아니었고. 다른 인간들은 더 살기 위해 냉동을 택하지만, 영생을 끝내기 위해 냉동을 선택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사실 고전적 뱀파이어의 흥미가 아직도 있나 하는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 어느 독자단편란 글에도 리플을 달아서 논쟁을 만들어 놔 버렸지만 뱀파이어의 번역이 "흡혈귀"라서 어쩐지 흡혈이 중요한 일인 것 같기도 한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냥 공포스러운 존재가 있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언젠가 저 존재는 뭘 먹고 살까 생각하다 보니 피를 생각한 게 아닐까 하는 느낌도 들었다. 피는 본질이 아닌 게 아닐까. 간 빼 먹는 구미호처럼. 초등학교 때 이쁜 선생님들을 보면 도대체 저 사람은 뭘 먹고 살까, 화장실은 갈까 이런 생각은 전혀 안 했었는데. 좀 크고 나면 저 사람도 먹고 배설하고 하겠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처럼 흡혈귀도 먹고 산다고 생각하게 되면, 신비감이 떨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식으로 신비감을 부여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예언"을 택했다. 흡혈귀가 먹고 산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럼 저 우아하고 무서워 보이는 존재도 매일 사냥을 다녀야 하는 거야? 하고 생각하게 되고, 나중에는 살인 안 하려고 짐승 피 먹는 뱀파이어들이 대거 등장할 수 밖에. 뭐든 계속 먹게 만들어야 되니까.

 거기에, 그가 2만년을 기다려오다가 포기하려고 한 순간에 그 일이 지나가버렸다는 것도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어준 것 같다. 신선했다. 고맙지만 자화자찬 같아서 좀 민망하다.

 인터뷰가 잘 되면 질문자도, 하는 사람도 무언가를 얻게 되는데 그 지점을 찾기가 늘 어렵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대화"라는 게 작위적일 수밖에 없기도 하고. 그렇다. 그런 게 사람을 굳어지게 만든다.

 홍보와 필진 소개를 겸하는 거니까 자화자찬 모드로 가도 상관없지 않을까. 물론 내가 한 말은 다 진심이었다. 너무 자화자찬하면 내가 창작한 인터뷰 같아서 그렇다. 그런 놀이 좋아한다.

 자작 인터뷰 정말 재미있었다. 그거 쓰고 나서도 마치 소설 하나 쓴 것처럼 키득거렸다.

 명훈님은 싸이월드 미니홈피 단편 게시판에 올라온 단편 중 두 단편에 대해 창작 인터뷰를 했다. 명훈님의 허락을 받고 그 중 '고고심령학자'를 쓰신 후 한 인터뷰를 올린다.



 최근 비자발적 절필 선언으로 충격을 일으키고자 시도했으나 호응이 없자 다시 예전의 미완성 원고를 들고 화려한 컴백을 시도한 "고고심령학자"의 저자를 만났다. 기자의 여러 번에 걸친 이메일 인터뷰 요청에, 시간적인 여유가 없음을 일관적으로 호소하던 그는, 거의 체념에 가까운 상태에서 기자가 전화로 인터뷰 요청을 하자 의외로 흔쾌히 응해 주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테러리스트" 발표 직후에 인터뷰를 담당했던 박은경 기자의 말에 따르면 기자가 여성이라는 것을 그때서야 비로소 눈치챘기 때문이라고 한다.)

Q. 납량특선에 호러 장르를 선택했던데, 호러물은 오랫동안 안 쓰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A. 대단히 오랜만이지요. 하지만 초기에는 호러 장르의 습작들을 많이 썼어요. 습작은 처음에는 연애 소설들로 시작했었는데, 그런 장르적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쓰기 시작했던 것이 호러 장르였습니다. 새로운 플롯을 시험해 보는 연습 차원이었지요. 오랜만에 호러에 손을 댄 것은, 갑자기 고고심령학이라는 소재가 떠올랐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반, 무더운 여름이었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반 정도 되겠지요.

Q. 발표 시기가 납량 특선 치고는 많이 늦은 감이 있는데.
A. 오히려 이렇게 약간 선선할 때가 더 낫다는 평가도 있더군요. 사실은 여름이 가기 전에 발표할 생각이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늦어졌습니다. 사실은 비자발적 절필 공고를 한 적도 있습니다만, 학기가 시작되면서 글을 쓸 시간이 갑자기 모자라게 되어버렸거든요. 집필에 드는 시간이 없다기보다는 소재를 떠올리고 개발해 나가는 데 드는 시간이 없다고 보는 게 더 옳겠습니다. 대략 50시간 이상이 될까요? 머릿속에서 그려내는 시간까지 포함한 제작 시간이요.
이번 글은, 소재 자체를 설명하는 데만도 생각보다 지면이 많이 할애되어서 예상보다 훨씬 길어져버렸어요.

Q. 대단히 독특한 소재이던데.
A. (기다렸다는 듯, 그의 얼굴에 화색이 만연했다.) 그렇습니다. 어느 영화의 고고학 발굴 현장을 보다가 떠올린 장면이었어요. 고고심령학 발굴 현장의 분위기. 이 글을 쓰기 시작한 동기가 되는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글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생각은, 이제 막 다니기 시작한 대학원에 대한 상상이었습니다. 이 글의 대부분이 학기 시작 직전에 쓰여졌으니까요. 현실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다고는 해도 역시 상상은 상상이겠지요.

Q. 집필하시면서 무섭지는 않으셨는지.
A. 사실은 저도 밤에는 전혀 집필을 하지 못했습니다. 원래 글을 쓰려면 글로 쓰여진 것 이상의 장면들을 상상해 보아야 하는데, 밤에는 그런 작업이 전혀 불가능했어요. 사실은 글을 다 쓴 다음에도 밤에는 읽어 보지 않았습니다. 독자의 자유이겠지만, 밤에는 읽지 말 것을 권합니다.
사실 처음 70퍼센트 정도를 썼을 때, 다시 처음부터 읽어 봤는데 전혀 무섭다는 느낌이 들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여러가지 비쥬얼 측면이 강한 장면들을 많이 집어 넣었죠. 그 덕분에 완전히 다른 느낌이 되었다고 할까요.
진짜로 으스스하다고 느낄 수 있게 쓴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인터뷰 전에 무섭지 않았냐는 그의 물음에 기자가 그다지 무섭지는 않았다고 대답한 것을 의식한 반응이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교묘한 방법으로 기자의 인적 사항과 관련된 것들을 알아 내려고 시도했다. 기자의 단호한 거절에, 어색하게 돌아서는 그를 뒤로 하고 힘겨운 인터뷰를 마쳤다.



 자작 인터뷰가 명훈님 소설과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테러리스트’ 같은 경우, 굉장히 어둡고 우울하고 사회비판적인 글임에도 부담 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던 건 화자의 철없던 시절 고백 못한 짝사랑에 대한 풋내 물큰 나는 남자의 심리가 잘 살아있고, 부인과 알콩달콩 사는 이야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런 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장르 소설을 쓰더라도 사람 사는 거에 대한 작가로서의 묘사 능력같은 거.

 그 인터뷰도 자화자찬이면서 (대단히 독특한 소재이던데, 라거나.) 그 인터뷰는 확실히 자화자찬이었다.

 그러면서도 화자가 여자를 밝히는 모습이나, 매정하게 차이는 모습 등등이 자기 비하도 함께 하고 있어서 균형이 맞았달까. 질문자의 질문도 분명 작가가 만들어낸 것임에도, 작업 거는 남자를 뿌리치고 가는 기자의 모습을 보면 자화자찬적인 질문이 아니라, 소설로 보자면, 그냥 기자가 직업상 물어본 것처럼도 보였다. 그게 포인트였달까. 재밌었다. 아무래도 막 자화자찬하기는 그래서… 그게 포인트였다. 재미있어하는 사이 작가의 메시지에 세뇌되는 거. 사람 사는 이야기에 대해서 묘사하는 건 어느 글을 써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때로는 사랑 이야기를 하면서 전혀 공감 안가는 글도 볼 수 있다. 기본이랄까. 글 쓰려면 그거 연습은 이미 하고 왔어야 된달까. 그림 그리는 사람이 연필로 정물 그리는 거 연습하듯이.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그보다 더 기본적인 걸 안 갖추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다시 연습중이다.

 그게 뭔가? 문장 쓰기. 선배 하나가 니한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문장 지옥훈련을 받고 와야 해!" 어렵더라. 미문으로 잘 쓴 글 보면 내용 떠나서 참 읽기 좋은데.

 어떤 면에서 문장 지옥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했나? 고칠 데가 많다는 거다. 나는 문법에 맞는 정도면 됐다고 넘겨 버렸는데, 예쁘게 쓸 여지가 더 있었다는 거다. 고쳐주는 거 읽어 보면 실제로도 그렇고. 사실 문장 잘 써 놓으면, 독자는 읽기가 무지하게 편해진다.
 뭐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 글쓰는 거 어렵구나. Military Fantastic 모델이신 선생님은, 수업시간 발제문 보고도 문장 좀 쉽게 쓰라고 맨날 타박했는데. 요지는 이런 거였다. 내가 아무렇게나 써도, 독자가 시간 내서 읽어만 준다면 이해가 되겠지만, 누가 니 글 한 번 이상 정독해 준대? 문장은 기본이 아닐까. 그거 잘 한다고 막 칭찬해주고 싶지는 않지만 못 하면 욕먹는… 그런 생각을 했다.

 화제를 바꿨다.

 연극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한데 많이 안 봤다. 보면 참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드는데.

 연극 대본 형태의 단편 소설이 몇 편 보인다. 그건 "누알…."이라는 글 때문이다. 그거 굉장히 외롭고 쓸쓸하고 혼자라는 느낌이 드는 기간에 썼다. 그때는 내가 누군가에게 말을 털어놓고 싶은 게 아니라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막 주저리주저리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탄생한 글이, 관객 1명인 모노드라마였다. 물리적으로 무대 상연이 불가능한. 그거 쓰고 나서 며칠 있다가 쥐스킨트였던가, "콘트라베이스"라는 모노드라마 읽고는 감동했다.

 ‘누알, 멈춰진 시간 속의 악마’를 읽으면서 관객 역 배우가 연기하기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반문하고 싶어 하지만 반응하지는 못하는 연기라거나. 가만있으면 된다.

 아니면 연출자가 머리 쥐어뜯거나. 관객역 배우가 가만있더라도, 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어야 하니까. 근데 그건 관객 역 배우가 아니라 관객이다. 진짜로. 관객까지 주무를 수 있는 힘이 글에는 있다, 뭐 그런 메시지도 있었다.

 굉장한 시도다. 어쩌면 오만하게 보일 정도로. ‘연애편지’는 더 나갔는데, 반응들이 조용해서 나도 조용히…

 ‘냉동인간과의 인터뷰’도 바로 그런 독자와의 심리 싸움을 벌이는 글이었고,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럴 생각이었다. 이웃집 신화는 좀 더… 일거다. 아마. 서술 중심 인물이 바뀔 때마다 장르가 다르게 보이게 하려고 했다. 써 놓고 나면 항상 제가 써 놓은 걸 읽어내 주는 독자를 기다리게 된다. 물론 다 읽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지도 모르지만. ‘다이어트’의 외계인 이름들을 어떻게 지었는지 아는 독자는 아마 몇 명 안 되지 않을까 한다. 그런 걸 깔아 놓고 기다린다.

 어떻게 지었나? 모르겠다. 모르는 게 당연하다. 사랏찬드라 차터지라는 작가가 쓴 데브다스라는 소설과 그 등장인물들 이름으로 만든 거다. 그 소설의 모티브들도 들어가 있다. 작가는 백 년쯤 전에 활동했고, 소설은 인도 영화인데, 2002년에 히트쳤다. 그냥 혼자서만 즐긴다. 이런 건.

 데브다스라는 소설에서 어떤 모티브를 따 왔나. 주인공 사랏사랏은 지구 이름으로 차태지이다. 이건 사랏찬드라 차터지 이름이니까 작중 모티브는 아니고. 데브다스가 남자 주인공이고 파르바티와 찬드라무키라는 두 여자 주인공이 나온다. ‘다이어트’에서는 파르파르바 행성과 묵희라는 여자와 데브데브다브라는 외계 종족이 나온다. 파르파르바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 그리고 이루어지지 않는 묵희와의 사랑, 이런 모티브다. 사실 데브다스는 두 여자 모두와 이루어지지 못하고, 알콜 중독으로 고생하다 여행 중에 객사한다.

 중동 쪽을 소재로 몇 번 삼았다. 지명이름들이 낯설고, 쉽게 알기 어려운 곳인데… 여행을 가 본 적이 있는지? 여행은 중국, 그것도 상해 밖에 안 가 봤다. 전공이 국제정치 이런 거다 보니 그런 것도 있고, 우즈베키스탄에 사는 펜팔은 실제 인물이다. 페르가나 주 마르길란. 완전 외계 행성 이름이라고 해도 그럴듯한…

 처음엔 그런 줄 알았다.

 화제를 바꿨다.

 과학기술창작문예에 응모하시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 일단 발표할 데가 거기밖에 없어 보였다. 언젠가 어디에다 내고 싶은데, Smart D나 다른 글이나 다 다른 공모전에 낼 데가 없다. 찾다 보니 마침 눈에 확 띄었다.

 과학기술창작문예 사이트에 수상소감이 올라와 있기는 하나 다시 한 번 해준다면. 사실 처음에 연락받고는 굉장히 덤덤하다고 생각했는데, 엄청 좋았었나보다. 아 덤덤해, 아 덤덤해 하면서 4시까지 못 잤다.

 시간은 자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직 못다한 이야기들은 아쉽지만 인터뷰를 정리할 때가 된 것이다.

 자유롭게 하고픈 이야기를 하나 한다면. 나는 글쓰기를 급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사실 생각보다 굉장히 일찍 수상을 해 버리는 바람에 이렇게 됐지만 진짜 "내 인생의 글"이라는 게 나오는 때는 50쯤 돼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지금도 연습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마도 마로하 시리즈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이 되지 않을까 싶다. 늘 다양한 서술 방식이나 다양한 소재 시점 같은 거 써 보려고 노력하고. 그런 게 다 지금 당장 완성하자는 게 아니라 이게 20년 뒤에는 다 밑거름이 된다 그런 생각이다. 그때가 되면, 2000년대 초반에 있었던 "거울"이라는 신화적인 웹진에 대해서 허풍 좀 섞어서 회고할 수 있을 거다. 그땐 그런 게 있었지, 하면서.

 거울이 그 때 까지 있으면. 옛날에는 이랬지, 뭐 그런 식으로. 그 편집자라는 사람 말이야… 이런 이야기.

 50대에 "내 인생의 글"이 나오면… 그 다음에는? 그럼 "네 인생의 이야기"를 써야 할까. 계속 써야지.

 명훈님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그것도 역시 수상 소감에 쓴 거. 취미와 특기 사이. 취미란에다 쓸까 특기란에다 쓸까 고민하고 있다. 내가 더 재미있으면 취미, 남들이 더 재미있으면 특기. 나는 특기이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50이 넘어서도 취미라는 측면이 남아 주기를 바란다. 쓰는 재미를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다.

 취미와 특기 사이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마치 블랙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배명훈님의 신작을 기다리며 부족한 인터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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